자라면서 끊임없는 비교에 시달리고 괴로웠던 게 나만의 기억은 아니리라.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 비교와 간섭으로 받아왔던 고통이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럼 결혼하면 끝이냐고? 그것도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낳는 데로, 딸이 있어야 한다 아들이 있어야 한다, 혼자는 외로우니 둘 이상은 낳아야 한다 등등 남의 인생 계획에 전혀 연관 없는 사람들이 나의 자녀 문제를 정하려고 든다. 듣기 싫은 소리 들으면서 참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이러다가 정말 살인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정도의 극한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자기 인생이 아니고, 남의 인생이다. 그들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사는지,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살아가는 순간마저도 그들의 몫인 거다. 제발 멋대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파헤치고, 걱정이랍시고 오지랖 떠는 일 좀 그만해주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행이 아니라 불쌍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나이 들어갈수록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려워지곤 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아이 문제 때문이다. 새로 관계를 맺고, 무슨 통과의례처럼 호구 조사가 시작된다. 나이는 몇이냐, 어디 학교 나왔냐, 결혼은 했냐, 아이는 몇이냐. 특이 이 나이 먹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특히 같이 일하는 사이로 엮이는 사람들은 아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다. 여기 나와 일하고 있으면 아이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는다. 아이가 없다고 말하면 순간 몇 초쯤 침묵.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대답은 '아...' 이미 아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특히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아이 없는 우리 부부의 삶을 불쌍하게 보는 눈빛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아이를 낳는 건 개인의 선택이고, 낳았으면 책임을 다해 길러야 하는 게 부모의 의무이다. 그거면 된 거다.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처음부터 계획했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든, 그냥 각자가 감당하면 되는 일 아니었나.


아이 없는 우리 부부가 어떤 마음과 계획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되던 중에, 아이 없이 살아가는 부부에 관한 책 몇 권을 읽게 됐다. 사실 다 읽을 필요도 없긴 했다. 온전하게 우리 둘이 잘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고, 노후의 삶이 불행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 외에 뭐가 더 있을까. 그런데도 굳이 읽어본 이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우리 부부가 많은 고민 끝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게 잘한 일인지 아직도 100%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 것까지 다 고려해야 하니까. 그래서 인생에서 아이를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얘기가 더 듣고 싶었다. 어떤 자세로 노년을 준비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비슷하면서도 다를 거로 예상했지만, 역시나. 각자의 이유로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고, 각자에게 맞는 노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자발적으로 아이 없는 삶을 받아들인 10년 차 부부의 이야기 우리, 아이 없이 살자에서는 부부 사이의 변화를 찾아냄으로써, 관계 재정립과 아이 없는 부부생활을 잘 만들어가는 계기로 여행을 선택했다. 1년간의 여행 후 이 부부는 분명 달라졌다. 보편적인 정답이 아니라 그들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 말고도 부부 관계에 조금은 고민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들이 함께 겪은 여행지에서의 고단함을 같이 경험해도 좋겠다. 어쩌면 실컷 싸우기만 하다가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그 힘든 시간을 같이 경험하다 보면 사랑을 넘어선 동지애가 싹틀지도 모른다. 전통적 사고나 사회적 규범이 만든 틀 안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던 우리는 이제 우리만의 룰을 만들어 지켜나가기로 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175페이지, 우리, 아이 없이 살자)


딩크족 여성 18명의 이야기를 직접 담아낸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역시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그들의 선택이고, 본인의 선택에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주변의 시선과 말들은 어김없이 이들의 선택이 틀렸다는 듯이 참견하며 인생 지도를 다시 그려주려고 한다. 타인이 잊고 있는 그것, 아이 없는 삶을 여성 혼자가 아니라 배우자와 같이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라는 것. 무례한 오지랖에 상처 입으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노하우를 같이 듣게 된다. 실질적인 경험담을 듣는데 최적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서른을 지나고 마흔을 향해 가는 동안 알게 된 것이 있다. 여자들의 친구 관계는 대개 결혼을 중심으로 한 번, 출산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재편된다. 삶의 형태, 사는 지역, 관심사, 친밀도, 시간적 여유, 금전적 여유, 자유와 책임의 문제까지 서로 달라지는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160페이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몇 권 더 읽긴 했는데, 비슷하게 중복되는 부분도 많았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중에 객관적으로 들리면서도 당당하게 아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게 하는 게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이었다. 저자는 아이 없는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선택을 위한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아이 없이 살기로 한 이들에게서 나오는 확신을 들려준다. 중립자의 시각에서 아이 없는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다. 저자가 상담했던 사람들은 거의 세 가지로 나뉜다. 인생이 다르게 흘러갔으면 아이를 낳았을 수도 있는 사람들(어쩌다 보니 아이 없이 살게 된 사람들), 행복하게 아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 아이를 낳지 못해 슬퍼하는 사람들(사정상 어쩔 수 없이 아이 없는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지만, 그 기저에는 위의 세 가지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감정의 문제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본인의 선택에 잘 책임지며 살아가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치 비정상의 삶이라는 듯 바라보는 시선은 좀 거둬주시기를.


저자는 우리 사회의 세 가지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자녀를 가질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자녀 없는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일부 부모는 자녀를 낳은 일을 후회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는 거다. 피임약의 등장은 아이를 낳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결혼했으니(결혼하지 않았어도)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한 일처럼 여겼던 시대는 지나갔다.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 누가 탓하거나 혀를 찰 일이 아니라는 것. 부모가 아이를 낳은 것에 책임을 지듯,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은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있는 가정과 아이가 없는 부부가 겪는 경제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를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기에 이 부분에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노키즈존을 선호하는 사람과 비선호 하는 사람 사이에 어떤 시선의 차이가 있는지, 아이가 있는 집에는 세금이나 기타 여러 가지 혜택을 주면서 아이가 없는 집에는 필요해도 받지 못하는 혜택이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더 많고 다양한 생각들이 언급되는데, 싸움판 벌어질까 봐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어떤 정책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결혼이 선택이든 아이를 낳는 것도 선택의 문제일 텐데, 개인의 선택 문제에 누군가는 부당하다고 여길 문제가 있다면, 이는 깊게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이 주제의 많은 책이 아이 없는 삶 자체를 찬양하는 게 아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고, 그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일이 고단함에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아이 없이 살아가는 일의 긍정적인 면만 말하지도 않는다. 아이 없이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이 삶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아이 없이 살아간다는 불안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고민에 저자는 말한다. 아이 있는 삶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라고, 어떤 불안이 더 큰지 비교할 것 없이 비슷하다고, 이런 고민 자체가 헛된 일이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아이 없는 삶에 대해 누군가 판단하거나 함부로 말하려고 든다면 참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다. 사생활을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고 싶지 않다고, 이 삶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말하면 된다고,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분명한 이유를 인지할수록 불안감은 덜하다고 말이다.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하는 게 인생이 아니었던가.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다. 그저 여러 갈래의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아이가 없다면 택할 수도 있는 몇 가지 길을 부모가 됐다면 포기해야 한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주변 상황 때문에 혹은 생물학적인 조건으로 부모가 될 수 없다면, 인생의 다른 목적을 찾아 즐겁게 살면 된다. 우리의 사명은 각자 내린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풍요롭고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270~271페이지, 아이 없는 완전한 삶)


아이 없는 삶을 먼저 살아본 이들의 이야기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표현하는 ‘childfree’가 더 어울리긴 한다. ‘childless’가 부정적으로 들리는 반면 ‘childfree’는 아이 문제를 우리가 선택했다는 어감을 담고 있어서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와 더 맞는 듯하다.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이유는 제각각이더라도, 아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건 똑같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답을 찾아가게 하는 글이다. 지금 내가 늦은 저녁 시간에 남편과 둘이 각자의 책을 읽으며 뒹굴뒹굴하는 것 같은 취미가 필요하다. 나이 들어가면서 부부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노년의 만족이 다를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성격도 아주 다른데, 다행히 비슷한 거 하나는 책을 보는 일상이라는 거다. 나는 출간된 종이책이나 전자책을, 남편은 지금 연재 중인 작품들을 찾아서 본다. 서로 시간 보내는 일이 아주 다르지 않게 조율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이 없는 부부를 바라보는 편견에 무심해지는 것. 아이가 있어도 불행할 수 있듯이, 아이가 없는 이대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것. 지금 바라는 소박한 세 가지다.



*) 이 책에는 더 많은 사례와 그들의 선택에 대한 근거, 아이 없는 부부에게 사회가 부여하는 불평등한 정책들이 언급된다. 여기에 다 옮길 수도 없지만, 각자의 선택과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를 것이기에 한마디로 말할 수도 없다. 많은 사람과 다른 삶을 선택했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국가의 정책과 세금 문제에 관해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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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29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동감 합니다!
사회의 관습 통념
가족의 개념 의미가
각자의 삶의 방향과 추구하는 삶의 모습에 맞게 살아 가는 것!

서로 조율 하면서 ^^

구단씨 2022-09-29 22:07   좋아요 3 | URL
그냥요... 더도 바라지 않아요. 서로 살아가는 모습이 똑같지 않다는 것만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미미 2022-09-29 14: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감입니다. 저도 별의별 일 다 겪었어요.
최재천 교수님이 그러더라구요. 출산률이 떨어지고 있어도
워낙 기본값?이 (세계인구) 상당히 커져있기 때문에 인구증가가 소폭 상승해도
증가율이 과거와 비교가 안되게 크다구요.
이런 상황에서 보면 출산율 저하는 ㅡ위기다 뭐다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ㅡ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다수의 횡포는 어디에나 있는것 같아요. 최근 통계를 보니 이제 절반이상은 비출산을 선택하던데
머지않아 왜 안낳느냐등의 타인의 영역을 침해하는 질문은 사라질거라고 예상합니다.
저도 이 책들 다 읽어보고 싶네요.^^

구단씨 2022-09-29 22:11   좋아요 4 | URL
저하고 무슨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오늘 갑자기 옆자리 20대 중반 남자 동료가 출산율이 더 떨어지고 있어서 큰일이라면서, 아이는 낳아야 한다는 말 듣고 깜작 놀랐어요. 어디서 내가 쏟아내는 속내를 듣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가치관의 차이가 있겠지만,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화하길 바라고 있네요.

서니데이 2022-10-07 2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구단씨 2022-10-10 22:1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mini74 2022-10-07 2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이가 하나인데 어떤 분이 대뜸 하나 더 낳아
애국하라고. ㅎㅎ 아니 이 무슨 소리지 했습니다.
당선 축하드립니다 *^^*

구단씨 2022-10-10 22:13   좋아요 1 | URL
애국의 기준이 뭘까 궁금해지긴 해요.
감사합니다. ^^

이하라 2022-10-07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2-10-10 22:1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하루 평균 400~500명의 민원인을 나와 옆자리 동료가 상대하고 있다. 짧게는 1~2, 길게는 4~5분씩 많은 사람과 얼굴 맞대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반년이 넘게 일하면서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매일 느낀다. 좀 심하게 말하면 매일 진상을 마주한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진상은 매일 업그레이드되어 나타난다. 말 그대로 X진상.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대한 적도 없거니와 세상에 이렇게 많고 다양한 진상이 있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게 하루하루 멘탈이 뿌리째 흔들리곤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마스크 안에서 내 입은 소리 내지 않고 욕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에 마주할 사람은 더 심각한 진상이다.’라고 읊조리며 눈앞의 사람을 상대한다. 사람 성격 쉽게 안 변한다고, 어차피 두 번 볼 사람은 거의 없으니 진상 개조에 마음 둘 일은 아니다. 빨리 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그중에서도 정말 오랫동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있는데, 나이 든 사람의 반말이다. (나이 든 사람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볼 때마다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다짐한다. 내가 하루에 마주하는 사람의 절반 가까이 나이가 든 사람이다. 보통 60대 이상의 노인분들. 딱히 적당한 호칭을 찾을 수 없어서 보통은 어머님, 아버님, 혹은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이들 중에는 겉으로 보이는 차림새에 상관없이 예의가 바르고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존대하면서, 찾아온 용건을 차분히 말하고 잘 해결하고 가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반말인 사람들이 있다. 이거 해줘, 안 했어, 모르지, 내가 어쨌는데, 등등. 반말로 시작해서 반말로 끝난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그런 거지? 나이를 먹으면 상대가 누구든 저렇게 말을 놔도 되는 건가? 친한 사이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초면에?


이럴 때마다 궁금해진다. 도대체 우리는 나이를 왜 먹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의 경험도 많아지고, 뭘 배우고 배우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될만한 세월인데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뭔지... 나이를 먹었으니 대접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보다 어려 보인다고 당연하게(?) 말을 놓는 사람이 있다는 걸, 당연하게 뭐든 양보하고 우선으로 해줘야 한다고, 나이 든 사람의 특권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었으니 당연하게 먼저 해주고 양보하고 상대가 손해를 봐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몸이 불편할 테니, 판단이 둔해질 수도 있을 테니, 한번 말한 것을 바로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으니, 도와 드리고 안내하고 살피는 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도 계속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눈앞 노인의 나이가 될 테니까. 그러니까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하는 건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여겼다. 나의 부모이고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그 배려를 버리고 싶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많은 노인을 만났고, 많은 반말을 들었다. 반쯤 올린 존댓말에 거의 내린 반말에 익숙한 하루를 보내던 중,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민원인을 마주했다. 너무나도 심한 반말 폭격에 내가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표현해야 하는데, 싸우지 않으면서 적나라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몇 초 고민하다가 말이 쏟아져 나왔다. 민원인이 찾아온 목적을 다 해결해주고 한마디 건넸다.


구단씨 : 어머님, 혹시 저를 아시나요?

민원인 : 그럼, 알지~

구단씨 : 어머, 정말요? 저를 어떻게 아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민원인 : . 전에도 여기서 본 적 있어~

구단씨 : 아니요. 그런 거 말고요. 혹시 원래 저를 알던 분이신가 해서요. (진짜 내 기억에 없는데?)

민원인 : 아니, 그건 아니고. 여기서 처음 봤는데?

구단씨 : , 그러세요. 저는 또... 처음 오시자마자 너무 편안하게 반말을 막 하셔서, 제가 아는 분인데 못 알아뵌 줄 알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려고 여쭤봤어요.

민원인 : (정말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죄송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을까? 사과하는 걸 보니 알아듣기는 한 것 같은데, 아마 뒤돌아서서 육두문자를 날렸을지도 모르겠다. 저 대화를 끝으로 나는 다음 사람을 부르며 그 민원인에게서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으니까. 옆자리 동료 역시 나와 비슷하게 정신이 피폐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20대 청년이 한 달 반가량 겪은 정신적인 피폐함은 그에게 절대 서비스직은 못 할 것 같다는 교훈을 주었다지. 내가 그 민원인에게 하는 말을 듣고 옆자리 동료가 잠깐 감탄의 눈으로 쳐다보기는 하더라만. 글쎄, 반년 넘게 벼르고 벼르다 꺼낸 말이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모르겠지만, 그 민원인이 많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처음 본 사이에 전혀 친하지도 않고, 많은 관공서나 은행 등등 이용하면서 만나는 직원에게, 자기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무조건 반말부터 시작하는 무례한 태도가 바로 본인의 얼굴이라는 것을. 자기 자식이 어디에선가 자기같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누구나 늙는다. 언제까지 젊은 나이에 머물 수 없다는 게 인간의 몸이니까.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 이렇게 배우면서, 혹시라도 다 알지 못하는 것을 계속 배워가는 게 나이 듦의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기 살아왔던 라떼만 계속 고집하지 말고, 나이 든 사람의 특권같은 것만 찾지 말고, 요즘 세상의 모든 것을 흡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번쯤 다른 생각도 들어보면서 살아가는 태도를 쌓는 것. 말하는 것처럼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겪는 감정의 고통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건 안다. 이렇게 해야지 하는 다짐보다 이렇게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는, 장점으로만 채울 수 없다면 단점을 지우면서 살아가는, 그것도 잘살아가는 잘 늙어가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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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8-17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인류애가 사라지게 하는 진상들이 많군요ㅠㅠ 저도 일하면서 반말 제법 듣는데 제 동생은 정말 심한가 보더라구요. 약국에서 일하는데 진짜 자기는 노인포비아라고, 너무 공포스럽다가도 너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하더라구요. 배려를 권리로 여기고 나이를 훈장처럼 생각하고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구단씨 2022-08-18 00:54   좋아요 3 | URL
방송으로 비유하자면, 정말 비방용 진상들이 어마무시합니다.
겪을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새로운 진상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말하기 조심스러웠는데, 저 정말 노인포비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습니다. ㅠㅠ
동시에 배우게 됩니다. 사람이 존중받으려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요...

햇살과함께 2022-08-1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힘드시겠어요..
제 친구도 공무원인데 민원실 발령 받으면 정말 괴로워하더라고요.
전화 받자마자 욕 하는 사람도 어찌나 많은지.
나이 들어가면서 의식적으로 반말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되요.
친근감 표시(언제 봤다고??)라고 쉽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구단씨 2022-08-18 09:53   좋아요 1 | URL
저는 공무원은 아닙니다만, 정말이지 어느 관공서든 일반 회사 민원실이든 괴로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알라딘 고객센터 통화도 조심히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

오후즈음 2022-08-18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비슷한 일을 해 본적이 있어요. 마스크 없는 그때 집으로 오면서 수없이 혼자 속으로 욕했던때가 있었어요. 특히 특정한 지역 사람들이 너무 괴롭더라고요, 저도 늘 반성합니다. 난 저렇게 늙지말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님 내일도 화이팅 입니다

구단씨 2022-08-25 21:59   좋아요 0 | URL
고된 한주였어요. 월요일부터 사건이 터졌고요.
결국 사건이 폭발하고야 말았습니다. 다른 파트에서 다른 민원 건으로요... ㅠㅠ
결론은 뭐, 저희가 참고 해야 한다는 지침 같은 조언 같은 뭐 그런 공지가 있었더랬죠...
화가 난다고 다짜고짜 반말부터 쏘아대는 인간들 보면, 누가 잘못 했는지가 아니라 그냥 저런 인간이 되지 말아야지 합니다.
 


가끔 올라오는 애서가들의 책장 사진을 본다. 한쪽 벽면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사방팔방 책장이 자리하고 있는 이도 있더라. 책장에 꽂은 책뿐만 아니라, 좁은(?) 집에서 자리를 못 잡고 바닥에 누워있는 책들, 책장에 이중으로 꽂혀 있거나, 그것도 모자라 방 천장과 책장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빈틈을 꽉 채운 책들이 가득하기도 했다. 맙소사! 처음에는 부러웠다. 그들이 그렇게 간직하고 있어야만 하는 책의 무게와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나에게 주어지지 못한 물리적 공간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하지만 그림의 떡이다. 어차피 내가 갖추지 못할 공간이라면 어쩔 수 없다. 내 옆에서 이중 삼중으로 바닥에서부터 쌓여 있는 책들을 내보내는 수밖에. 한 번씩 책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애서가는 아니었구나. 그냥 책을 읽는 게 좋아서, 읽는 그 순간을 만족하면 되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책이 얼마나 있느냐고? 글쎄, 세어보진 않았지만, 500권쯤 되려나? 그중에서도 중고로 판매하려고 올려놓은 책이 100권이 넘는다. 소장한 책 300권쯤에서 1년 사이에 불어나서 그 정도다. 항상 결심한다. 책은 그저 읽는 게 좋은 것으로, 가진 책은 300권 이하로 만들기. . 이게 쉽지 않다는 건 우리가 모두 아는 일. ㅠㅠ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읽으면서 애서가의 기준을 만났다. 저자의 마법에 맡기고 싶은 책이 있는 정도라면 분명 애서가일 테다. 저자의 직업은 망가진 책을 되살리는 일이다. 완벽한 복원이 아니라, 그의 상호처럼 책을 수선한다. 찢어지고 떨어져 나가고, 곰팡이가 잠식한 책들. 그 정도로 망가졌으면 그냥 버려도 될 거로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는 그 책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시간, 기억, 감정이 담긴 책들이었다. 버린다고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망가진 책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하는 게 마음 아플 정도였다. 계속 간직해야 할 그 책을 지금보다는 낫게, 제법 온전한 모습으로 소장하고 싶은데 어떻게 수술해야 하나 고민할 때 저자의 두 손이 마법을 부렸다. 약간의 흉터는 남아 있을지언정, 거의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켰다. 때로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옷을 입혀 새로운 느낌으로 재회하게 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해? 보면 볼수록 부러워죽겠다. 간직하고 싶은 책을 의뢰하는 사람들도, 그 책들을 정성으로 수선하며 회복시켜 퇴원하게 하는 저자도. 마음이 닮았고, 닿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만약 이 책을 읽고 계신 분들이 나에게 책 수선을 의뢰한다면 어떤 책을 맡기실지 궁금하다.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동화책?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한 책? 부모님의 유품? 수집용 책?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254페이지)


가장 먼저는 책을 수선한다는 접근이었다. 옷이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핏이 살지 않아서 수선하곤 하는 일반적인 생각이 책에 미친다는 게 놀라웠다. 아니, 오히려 책을 대하는 마음이 근본적인 관심까지 다가가게 하는 건 아닐까. 책을 수선하기 위해서는 그 책을 만드는 종이까지 잘 알아야 한다. 종이의 질감, 형태처럼 그 습성을 알아서 어떤 파손에 어떤 방법으로 구원해야 하는지 배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책이 망가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책을 구성하는 종이의 상처가 시작인 거다. 종이가 찢어지고, 색이 바래고, 때가 타고,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 변형되는 일이 모두 책에 난 상처다. 그것을 하나하나 살피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집도한다.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작은 틈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고치다가 망한 책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까. 죽은 환자를 살리는 의사는 없지 않은가. 오직 단 한 번의 시도로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한다.


의뢰를 받은 한 권의 책을 수선하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모든 걸 손으로 해내야 하니, 어떻게 망가졌는지 일일이 확인하면서 한 장씩 회복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았을 거라고 저자의 글로 알게 됐다. 어렴풋이 그럴 거로 생각하긴 했는데, 이 정도의 정성과 애정이 담겨야 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돈으로 주고 살 수 없는 게 의뢰인이 들고 오는 책에 스며들어 있었으니, 수선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리라. 할머니가 곱게 써 내려간 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30년이 넘고 심하게 곰팡이가 핀 앨범을 아내에게 깜짝 선물하고 싶다고, 어릴 적 아이가 애착하며 읽던 책을 계속 소장하게 해주고 싶다고, 대대로 물려주게 될 것 같은 낡은 성경책을 튼튼하게 만들고 싶다고, 이제는 보기 어려운 종이로 된 백과사전을 회생시켜달라는 것까지. 사연과 책이 너무도 다양했다. 어디 책뿐인가. 모양이 다 다른 액자의 뒤판을 고쳐달라는 의뢰는 의외였다. 테두리가 뜬 종이 책갈피를 고치고 싶다는 사람, 애정하는 연예인의 굿즈가 상해서 속상했던 이도 있었다. 그래, 이것도 책이니까.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의뢰인들 대부분이 ‘~ 이런 건 의뢰해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물어오며 그 책과 사연을 들려주었다. , 정말이지, 들으면 들을수록 저자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저자가 아니면 이 슬픔을 해결해줄 사람이 없었을 테니까. 의뢰인 모두에게 그 책을 꼭 간직해야만 하는, 망가져서 아픈 마음을 회복시켜야 할 이유가 있던 거다. 저자 역시 의뢰를 받고, 오랜 시간을 들여 수선하고, 의뢰인에게 되돌려 줄 때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잘 고쳐진 책을 받고 한없이 기뻐하는 그 얼굴을 보며 같이 기뻐하는 마음이 드는 것. 작업하면서도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을 듯하다. 마치 자기 책인 것처럼, 잘 고쳐서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책의 구석구석을 손보고 있었겠지? 내 책도 아닌데, 내가 고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마음을 잘 알 것 같아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뭉클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기억은 이렇게 책에 담긴 채로 간직하게 된다. 저자는 그렇게 기억된 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저자의 손길이 돕는다. 새것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


찢어진 종이를 붙이고, 무너진 책등을 바르게 세우고, 사라진 조각을 채우면서 책이 잃어버렸던 기억을 회복시켜 주고, 새로운 커버나 지지대, 혹은 케이스를 만들어주며 책에게 새로운 시간을 약속하다 보면 사람의 인생처럼 책에도 한 권 한 권 각자만의 책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사연들과 파손된 책과 주인의 추억, 그 책이 지나온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165페이지)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까? 점점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 책마저 전자책이 대신하고 있다. 책이 아니어도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건 너무 많다. 그런데도 종이책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미래의 어느 날에도 책장을 넘기고 있을 것만 같다. 그 오랜 세월을 견디려면 종이책도 튼튼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손길이 닿는 종이의 수명은 어떻게 보관하고 돌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너무 많이 읽어서 책의 귀퉁이가 닳았거나, 잘못 보관해서 틀어졌거나, 약한 접착으로 낱장이 되어버렸거나. 책이 훼손되는 이유도 너무 많지만, 망가져 가는 책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저자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닳고 찢어지고 분리되는 걸 보면서 아플 독자의 마음도 같이 치료한다.


어떤 기록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퍼져서 같은 감동을 만들기도 한다. 저자에게 의뢰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들의 사연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다른 경험으로 같은 감동을 알게 하는 게 사람의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가 벽의 달력을 찢어서 뒷면에다가 방송에서 나오는 요리의 레시피를 흘려 적는 걸 볼 때마다, 저걸 언제 한번 다 정리해서 노트로 만들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만이 낼 수 있는 손맛을 기록해두고 싶기도 했다. 마음만 그렇지 여전히 나는 그 마음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저자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게으름을 조금은 다그치고 싶어진다. 읽으면서 자꾸만 소박한 내 책장을 둘러보게 된다. 이 책 중에서 나는 어떤 책을 간직하고 싶은지, 혹시라도 사라지면 가슴 아파질 책이 있는지, 잘 보관했다가 누구에게 주고 싶은 책은 있을지...


의뢰인의 이야기 사이 사이에 책 수선가인 저자 이야기가 채워져 있다. 원래 순수미술과 그래픽을 전공하던 저자는 미국 유학하였을 때 이 분야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책 수선 일을 하며 좀 더 깊게 이 분야를 체험했다. 학교 지하의 책 보존 연구실에서 보낸 3년여의 세월이 오늘 저자가 이 일을 더 의미 있게 하는 발판이 되었으리라.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칼질, 풀질, 종이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도서관의 많은 책을 차곡차곡 수선해오면서 쌓은 경험이 이 작업의 섬세함까지 갖추니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기초부터 탄탄하게 다져온 이의 능력이겠지. 듣다 보면 책 수선이라는 게 간단하지 않았고, 그 범위가 넓었다. 종이에서부터 종이를 바탕으로 파생한 많은 것이 저자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어쩌면 이 책 수선의 진짜 감동은 내가 직접 의뢰하고 고쳐진 책을 돌려받는 순간을 경험하지 않으면 다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책에 담긴 많은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책에 시간과 추억과 감동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 수선은 책이 진화하는 방법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원본의 외형과 아주 똑같지는 않을 수 있지만, 비록 원본에는 없던 다른 구조가 덧붙을 수도 있지만, 파손된 부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서 다가올 앞으로의 시간들을 잘 견뎌낼 수 있게,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만드는 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은 수선을 통해 진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271페이지)


다 읽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죽어도 놓지 못할 한 권의 책을, 이 많은 책을 꼭 소장해야 하는 이유도 찾지 못했다. 여전히 책을 사고 읽고, 되팔거나 기증하며 책장에서 내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책을 아끼고 사랑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자를 찾은 의뢰인들이 쓸어주고 만져주고 고쳐주면서 아끼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저 읽는 그 순간이 더 애틋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나에게는 왜 이런 감동을 주는 책이 없을까 아쉽고 서운했다.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싶어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간직하고 싶은 책이 없다고, 쉽게 책을 사고 내보내고 한다고 해서 책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므로, 지금 이 정도의 마음도 썩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혹시 모르지, 언젠가 심하게 훼손된 책을 들고 저자를 찾아갈지도. 이 책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말하면서 간절한 회복을 의뢰하며 어떤 시간을 부르고 있을지도. 수술이 잘 된 책을 바라보며 흐뭇해할 내 표정을 상상하는 일이, 행복했다.











#어느책수선가의기록 #재영책수선 ##헌책 #책수선 #종이 #에세이

#감동 #추억 #시간 #행복 #선물 #기억 #문학 #한국문학 #책의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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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8-1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구단씨 2022-08-18 00: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으로 담아낼 수 있는 좋은 이야기가 많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

이하라 2022-08-11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구단씨님^^
편안하고 기쁜 시간 되세요.

구단씨 2022-08-18 00:07   좋아요 0 | URL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책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좋았어요. ^^

thkang1001 2022-08-1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구단씨 2022-08-18 00: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일주일의 절반이 가고 있네요.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기를. ^^
 


김겨울의 책의 말들을 읽다 보면, 언급된 100개의 문장 때문에 그 문장이 담긴 100권의 책이 궁금해지는 건 당연했다. 목록 중에는 내가 읽은 책도 있지만 몇 권 되지도 않더라. 그마저도 내가 읽은 그 책에 그런 문장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긴, 시간이 지나고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춰보면서, 내가 밑줄 그어놓은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웃음이 날 때도 있었으니까. 왜 이 문장에 표시가 되어 있지? 분명 그때는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이었을 테고, 그 문장에 꽂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김초엽의 추천사처럼,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안다. 독서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행위여서 가끔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문장이 실은 그 책에서 가장 무쓸모한 문장일 때도 있다는 것을.’


목록을 쭉 훑다가 받아들였다. , 내가 이 책을 다 찾아서 읽어볼 수는 없겠구나. 그래서 오히려 소개된 문장에 더 눈길이 갔다. 그중에 공감하고 싶은 몇 문장만 골라봤다. (몇 문장만 고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신도 알고 있을 테니 그 고통까지 말하지는 않으리.)



만약에 말이죠, 제가 이 서점에서 내 평생의 짝을 만나게 된다면, 서점의 어느 책 옆에 서 있어야 그렇게 될 확률이 가장 높아질까요? (젠 캠벨, 그런 책은 없는데요…』)

...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ㅠㅠ 영화나 드라마가 우리를 다 세뇌한 것만 같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이런 상상 좀 해본 적 있지 않아? 도서관의 서가 사이를 돌다가 눈이 마주친 누군가와 인연이 되는, 서점의 높은 책장에 꽂힌 책을 못 꺼내 뒤꿈치 들고 손을 뻗을 때 등 뒤에서 쑥 올라오는 기다란 팔 하나가 내가 찾는 책을 꺼내주는. 말하고 보니 너무 유치하긴 한데, 그래도 이런 상상 너무 설레잖아. ㅎㅎ 유치해도 어쩌겠나, 이미 이런 걸 너무 많이 봐 버린 것을. 그러니 이런 가능성을 상상하며 서점을 찾은 이에게 서점 직원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싶다. ‘그래요, 그런 책은 없어요. 상상과 현실을 혼동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데 혹시나 이런 장면을 현실로 옮긴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함부로 단정할 수도 없겠다. 그래도 이런 상상, 은근히 즐겁다. 괜히 한번 설레고 싶을 때 이런 이야기를 찾아 읽고 싶은 건 독자의 비슷한 감성이 아닐까.


그러니까 소설책을 두 번째 장만 찢어서 가지는 사람은 없잖아요. (장류진, 다소 낮음,일의 기쁨과 슬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민할 때 이 문장이 떠오를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건 단순하지 않다. 듣고 생각하고, 그 말의 의미 역시 곱씹기도 한다. 책도 그렇다. 그러니 책을 읽어낼 때, 중간부터 읽어도 괜찮은 책이 있는가 하면, 소설처럼 처음부터 읽어야 내용을 확인하게 되는 책도 있다. 그 일은 왜 시작되었는지, 과정이 어떠한지, 결말은 왜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항상 그렇게 집중하며 읽어가면 좋으련만, 우리는 너무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때로는 비디오 빨리 감기처럼 축약본이나 줄거리를 찾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온전히 내가 직접 읽은 책으로 이야기의 힘을 느끼고 싶다.


돈키호테는 실제로 책이 되었고, 따라서 자기 자신으로서의 책에 충실해야 한다. (미셸 푸코, 말과 사물)

누군가의 글을 읽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그 글을 쓴 이의 많은 것을 상상하는 일이다. 문장 하나로,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이미 익숙해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실제의 모습과 다른 글로 말을 풀어내기도 한다. 비슷한 경험, 이 온라인상의 누군가도 많이 겪어보지 않았을까? 이 공간에 끼적이는 말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평소에는 못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문장 하나로 나를 상상하는 사람은, 실제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문장과 전혀 다른 나를 만날 수도 있다. 나 역시 평소에 하지 못하는 말을 이 공간에 풀어낼 때도 많으니까. 그러니 우리, 어떤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이 온전히 일치하지 않다는 것을 미리 연습하자. 혹시라도 문장 너머로 만나게 된다면 놀라지 않게. ^^


글자와 눈앞에 있는 멋진 세밀화들이 미워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덮어 버린 책을 베개 삼아 깊은 잠에 빠지고 만다. (조르조 아감벤, 행간)

아무리 재밌는 책이라도 졸음을 이길 수 없듯이, 아무리 읽고 싶어도 읽히지 않아 수면제로 쓰이는 책도 있다. 보통 나는 취향에 안 맞는 책을 수면제로 이용하곤 하는데, 친절하게도 많은 책을 읽어온 저자가 우아하게 수면에 좋은 책 고르는 법을 알려줬다. ‘너무 흥미진진한 소설이나 자극적인 주제의 책 말고, 적당히 어려우면서 적당히 관심 없는 책이라면 완벽하다고 한다. 너무 재미있으면 책 속에 빠져들 테고, 너무 어려우면 자꾸 책 펴놓고 딴짓하겠고, 취향인 책을 만나면 또 파고들게 될 테니, 적당히 거리감(?)이 있는 책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수면제겠지. 안 그런가?


나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도 못 하면서 생소한 책을 읽어 나간다. (세라 워터스, 핑거스미스)

저자와 비슷한 이유로, 이해도 안 되는 책을 꾸역꾸역 읽은 적이 있다. 읽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기도 했고, 전투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저자의 말처럼 시간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문장으로 써진 것 이상의 많은 게 책에 있다고 생각하면, 책은 책 이상의 존재가 된다. 이런 문장을 만날 때마다 왜 책을 읽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재미로 읽기도 하고, 내가 책으로 배운 것이 무엇인지 떠올린다. 확실히 책으로 배운 것이 일상에 도움이 될 때가 많긴 하다. 소심하고 수줍은 내가 말싸움에서 이긴 적도 있다. (이렇게 활용해서 미안하지만) 결론은, 책을 읽어서 손해 본 적은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읽겠다는 마음.


필요한 서류들을 가방에 넣다가 나도 모르게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넣는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윈스턴은 일할 때는 다리 사이에 끼워 두고 잘 때는 깔고 잤던, ‘그 책이 든 손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지 오웰, 1984)

작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공간의 많은 이가 나와 비슷할 거로 생각한다. 어차피 나가서도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탁자 위에 있던 책 한 권을 가방에 넣고 나간다. 너무 무겁지 않은, 집중해야 내용이 기억될 두툼한 소설보다는 끊어 읽어도 괜찮은, 하다못해 주간지라도 가방에 넣고 나간다. 읽다 보면 뭔가가 남겠지. 실제로 지금은 격주로 발행되는 잡지를 자주 넣고 다니는데, 의외로 집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읽는다. 항상 읽지 못하고 폐지로 버리곤 했는데 말이지.


책을 옮기거나 먼지를 털어 낼 때마다 거기에 시선을 던지고, 띠지의 글을 읽고, 우연히 어떤 페이지를 읽고, 그렇게 조금씩 대부분의 내용을 흡수했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책 한 권 한 권이 깨끗해 보이는 것이, 모든 책을 자주 읽거나 자주 먼지를 터는 게 분명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지금 집으로 이사하면서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방 한 칸을 나에게 양보했다. 방 두 개 중 하나를 나에게 내어주면 자기의 공간은 없을 텐데, 괜찮다고 한다. 이사하면서 어느 정도는 버리고 갖고 있을 책만 가져왔는데도, 이 집의 책방은 다시 이사 오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책장을 청소하는지. 솔직히 말하면, 책장의 먼지를 털어낸 적이 거의 없다. 책 한 권 꺼내는데 손에 뭐가 묻어나오지 않는 이상 책장 청소를 생각한 적도 없다. 지금처럼 이사할 때나, 책을 몽땅 버리자고 정리할 때가 아니면 말이다. 이 문장을 봤을 때 그 생각이 났다. 예전에 편지를 버리려고 하나씩 꺼내 볼 때, 정작 정리는 못 하고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시절의 편지들을 다시 읽느라 시간을 다 써 버렸던. 책 정리도 그렇게 하면 될까? 청소하면서, 한 권씩 꺼내면서, 조금씩 다시 들춰보면서 다시 읽는 시간으로?


테크 기업들이 인류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흡수해 버리려고 해도, 종이책 읽기는 그들이 완전히 손에 넣을 수 없는 몇 남지 않은 영역이다. (프랭클린 포어, 생각을 빼앗긴 세계)

우리,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한 손에 들고 쉽게 페이지를 넘기는 전자책은 너무 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종이책을 계속 사는,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이 문장을 보면서 정말 세상의 발전이 종이책 영역으로는 파고들지 않았으면 싶기도 하다. 우리 집 작은 책방에서 책이 넘쳐 흘러도, 정리하지 못해 쏟아져 내려도,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먼지가 쌓여있어도 종이책이 내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 듯. 그래도 한 번씩은 정리해야지. 책을 적당히 들이고 내보내면서, 그때마다 살짝 책장의 먼지를 닦아주기도 하면서 그들(?)이 종이책을 손에 넣지 못하도록 지켜야지.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에 책을 한 권 들고 가서 오래오래 베이글을 먹는 건 윤나만의 즐거움이었다. (정세랑, 피프티 피플)

정세랑 소설의 주인공뿐만 아니라, 내가 바라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느긋한 아침에 집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며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기분. 상상만 해도 즐거운데, 현실은 주말 아침에 다른 일정이 없으면 꼭 늦잠을 자고 말리라 다짐하면서 전날 밤 잠든다. 일어나면 아침이 아니라 점심에 가까운 시간, 그날의 첫 끼니는 점심때를 훌쩍 지날 때도 많다. 그래서 나에게 이 문장은 상상만으로 멈추기 일쑤다. 잠이냐 로망이냐. 선택은 늘 어렵다.


탑승 수속을 할 때 무게 제한에 걸려 이민 가방을 풀고 밑바닥에 있는 책을 몇 권 꺼내야 했어.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어딘가로 움직일 때마다 늘 가방에 책이 있다. 며칠씩 이동할 때도 책을 몇 권 추린다. 그냥, 습관처럼 그렇게 책을 골라놓을 뿐이다. 몇 권은 챙겨 넣고, 몇 권은 넣었다가 뺐다가. 읽지 못할 것 같아서 빼고 가방이 무거워지니 빼고. 다시 생각해보니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넣고 좀 무거워도 책이니까 넣어야 한다고 우기면서. 책은 정말, 가까이하고 싶은데 가끔은 이렇게 가까이하기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가 생긴다니까. 여행 가방에 챙겨 넣을 게 너무 많은데, 그 공간을 책에 나눠준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불청객이 올 때를 대비해서 책을 세워 들어요.” (뮤리얼 스파크,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나를 건드리지 마.’ 무언의 경고를 하고 싶을 때 이어폰을 끼고는 했다. 음악을 듣지 않아도 그냥 귀에 꽂아두면 선뜻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말 걸지 말라는 의미는 전달된 것 같아서, 그거면 됐다고 여겼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지만 않는다면 이 평화는 계속되겠지. 그와 비슷한 이유로 책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느낀다. 책을 펼쳐놓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면 약간 고민하는 마음이 생긴다. 집중하고 있는 상대를 방해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이 문장을 보고 감탄했다. 이런 방법이 있었네! 언제 올지 모를 불청객을 대비해서 책을 세워 들으라니. , 그럼 일단 내가 책을 읽고 있다는 표시를 강하게 하는 것, 그것만이 불청객을 해치우는 방법이 되겠군. 너무 좋은 방법이야.


내가 읽고 대화를 경청하는 책 속의 인물들과 나 자신이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로 이상하게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그게 어떤 소설이 되었든,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그것이 모두 허튼소리라는 것을 숙지해야만 하며, 그러면서도 읽는 동안에는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 (어슐러 르 귄, 어둠의 왼손)

책을, 소설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어서 속상했다. 뭔가 이유는 있는데 그게 또 전부는 아닌 것 같고, 허구의 세계에서 뭘 하느냐고 핀잔이라도 듣는다면 그게 또 기분이 나쁘고. 이 묘하고 어정쩡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는데, 어슐러 르 귄의 문장을 보니 알 것 같다. 소설을 허구이지만, 그 허구의 세계에 있는 동안은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고, 그렇게 이야기에 빠져들고 즐기면서 현실로 돌아오면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듣는 게 좋았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는 게 좋았다. 그거면 된 거지, .


그러나 고독한 이는 모름지기 책을 벗 삼아야 한다. (라르스 스벤젠, 외로움의 철학)

책이 우리 인생을 구원해줄 거로 믿지 않는다. 책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렇게 책을 놓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덜 외로우려고 그러는 건 아닐까? 책은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취미이자, 혼자서도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책을 친구 삼아 대화하고 소통하며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인간이기에 외롭지 않기는 어렵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책이라는 친구로 덜 외롭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 역시 그러하기를.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누구나 할 말이 많을 듯하다. 그래서 독서 토론도 하는 건가 싶지만, 선천적으로 게으른 인간인 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한 적이 없다. 내가 나를 안다. 꾸준히 성실하게 독서 모임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책을 읽고, 약속한 시각에 각자 읽은 책을 이야기하는 일이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기에 진즉에 포기했다. 대신,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나 혼자 재밌게 읽어야지 하는 다짐은 변함이 없다. 어쩌겠어,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을. 이렇게라도 만나는 책의 많은 이야기가 그저 반가운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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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6-17 0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책의 한 문장들을 꼽아 써내려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문장들이 특히 책에 관한 부분인 건 몰랐네요. 이거야말로 책에 관한 책에 관한 책이로군요! 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구단씨 2022-06-20 20:24   좋아요 2 | URL
100개의 문장이 다양하게 담겨있는데요. 지금 보니 제가 골라본 게 책에 관한 문장들이네요. ^^

바람돌이 2022-06-17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책에 관한 문장들을 만나면 할 말이 많아지는 우리들이잖아요. 김겨울 작가가 뽑은 문장도 좋고, 구단씨님의 대답도 좋고 , 독서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가 저랑 똑같아서 더 좋고요. ^^

구단씨 2022-06-20 20:23   좋아요 1 | URL
아, 정말... 독서 모임은 저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냥 저 혼자,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봅니다. ^^

mini74 2022-07-08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청객이 올 때 책을 세워들어요 ㅎㅎ 넘 웃깁니다 구단님 축하드려요 *^^*

구단씨 2022-07-09 00:25   좋아요 1 | URL
정말 좋은 방법이지 않나요?! 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7-0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상쾌하고 행복한 주말되세요.^^

구단씨 2022-07-09 00:2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푹푹 찌는 이른 더위 어떻게 견디고 계시나요?
너무 덥네요...

이하라 2022-07-09 06:59   좋아요 1 | URL
네. 정말 너무 덥지만
상쾌한 기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분 좋은 아침 되세요. 구단씨님^^

새파랑 2022-07-08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의 말들> 좋더라구요. 당선 축하드립니다 ^^

구단씨 2022-07-09 00:26   좋아요 2 | URL
편하게 읽히고 소개해준 문장들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들키지 않은 경험이 당신에게 있는가? 예를 들면, 어렸을 적에 동네 슈퍼마켓에서 사탕 하나 훔쳤는데 들키지 않았다던가, 시험에 커닝했는데 아무도 못 봤다던가, 뭐 그런 일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살인은 다르다. 이런 중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는다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저질렀는데 여전히 그 범인을 알 수 없다면 우리는 무서워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살인이 범죄소설을 따라 한 모방범죄라면 그 공포는 더 크지 않을까? 즐기려고 읽는 소설이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살인을 만들어줄 선생이 된다는 게 평범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피터 스완슨의 작품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연쇄 살인이 등장한다. 처음부터 연쇄 살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나씩, 그 범죄를 추적하다 보니 이건 한 사람의 소행일 거로 여긴다. 그 중심에 범죄소설이 있다. 범인은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범죄소설의 내용대로 살인을 저질렀다. 서점에서 일하는 주인공 맬컴이 과거의 어느 날 블로그에 올려놓았던 글 하나가 마음에 걸린다. 그는 추리소설 마니아이면서 추리소설을 전문으로 하는 서점을 운영한다. 그가 과거에 그 서점에서 일할 때 책 좀 팔아보겠다고 정리해서 올렸던 리스트가 이 살인사건의 중심에 있던 거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는다. 때로는 살인이 아니라 자연사로 보이게 하는 능력도 있다. 누군가를 죽이고, 혹은 의심받는 상황이 닥쳐도 결국은 그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완벽한 살인 아닌가? 그러다 보니 이 소설들을 따라 하는 사람도 등장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 소설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의 범인 말이다.


범인은 왜 이 소설들을 따라 했을까? 블로그에 이 목록을 올려놨다는 이유 하나로 맬컴은 은근히 용의자가 된다. 처음에는 나도 맬컴이 범인이 아닐까 계속 의심했는데, 의심할만하면 의심이 풀리고, 의심이 풀릴만하면 의심이 되는 마음이 반복되더라. 진짜로 범인은 누굴까. 급기야 맬컴이 용의자로 지목되자 나 역시도 그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짙어졌다. 그의 인격이 두 개여서 사람 좋은 서점 주인과 연쇄 살인을 동시에 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마음. 그런데 그 의심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가 범인인지 목격자인지, 아니면 그거 블로그에 글 하나 올려놓고 억울하게 의심받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모방범죄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현실에서도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는 종종 있었고, 그들은 마치 환상 속을 거니는 것처럼 범죄 사실을 말하곤 했다. 따라 하면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처럼, 실패할 리 없을 것처럼 말이다. 그게 사실인지 알 수 없다. 지금도 미제 사건은 많겠지만, 누군가는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사건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 소설의 범인이 간과하고 있는 게 바로 그 지점인 듯하다. 잡히지 않을 거라는 확신, 이 살인이 계속되어도 좋다는 즐거움을 한꺼번에 이루려는 듯 자신만만하다. 한 번의 살인은 두려움과 설렘을 주었지만, 점차 그의 인생에 활력소가 되었을 테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계속되면 그 두려움도 사라진다. 즐기는 수준에 이르지는 않을까? 누군가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만족감을 느낄지도 모르지. 이 소설의 범인도 그럴까? 사건들에 다가갈수록 사건 자체보다는 범인의 심리에 집중하게 된다. 왜 이런 살인을 계속 저지르고 있는지,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쩌면 다음 피해자는 맬컴 자신이 될지도 모르니까.


피터 스완슨의 전작들을 봐도 그렇지만, 이 소설 역시 가독성은 좋다. 계속 읽어본 작품들의 분위기가 비슷해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반면 어느 정도 기본 독자는 확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새끼를 치는 책이라 그런지 더 궁금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설에서 언급된 다른 소설들을 찾아보게 된다. 살인의 방법이 된, 추리소설의 고전처럼 남아있는, 따라 해보니 정말 완벽한 살인이 될 것만 같은 소설들. ^^ 제목도 익숙하고, 어디선가 한권 이상은 분명 읽어봤을 목록이 되시겠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덫, A.A. 밀른의 붉은 저택의 비밀,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살의, 제임스 M. 케인의 이중 배상, D. 맥도널드의 익사자,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등은 물론이고 이 외의 작품들도 단서로 등장한다.


이 중에 몇 권 읽으셨는지? ^^ 목록을 보고 고개가 푹 숙여졌다. , 추리소설 좋아하는데, 이렇게 유명한 책들인데? 이 중에 읽은 게 딱 한 권, 그마저도 내용이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이거 꼭 확인하고 싶은데, 이 소설들 속에서 정말 맬컴이 소개했던, 범인이 원했던 완벽한 살인이 가능한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데 지금은 알 수 없네. ㅠㅠ 의지가 불끈 솟는다. 기어코 다 읽어내서 확인하고야 말리라.


소설의 내용대로 살인하는 사람의 마음을 무엇일까 궁금했다. 범인은 소설의 내용대로 절대 잡히지 않은 완벽한 살인이 될 건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게 소설에서만 가능한 일인지, 현실에 적용해도 똑같은 결말을 마주할 수 있을지. 읽는 나도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도 있을지,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을 수 있을지.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은 읽으면서 상상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지만, 간혹 이 소설의 범인처럼 그가 그 상상을 현실로 이뤄낼 수 있다고 믿으면 대책이 없다. 정상에서 벗어난 그 사고를 멈출 수 있는 건 범인을 검거하는 것뿐이다. 그에게는 나름 이 살인의 당위성도 있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골라서 죽이는 것이니 그다지 죄책감도 없다. 쓰레기 취급받을 정도로 나쁜 사람을 죽이곤 했다. 물론 처음에만 그랬다. 살인이 계속될수록, 점점 맬컴의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이로써 분명해졌다. 범인은 맬컴을 겨냥한 거다. 그에게 보라고 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누가 쫓고 누가 쫓기는 건지 모를 정도로 줄다리기를 계속하는 기분이다. 한쪽에서 당기면 끌려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반대편에서 확 끌어당기면서 메롱하는 느낌. 그러면서 하나씩 드러나는 단서와 감춰진 진실들이 이 소설을 더 복잡하고 촘촘한 짜임으로 만든다. 뒤늦게 들려오는 진실들은 이 살인사건들과 얼마나 연관이 되어 있을지, 완벽해 보이는 범죄소설이 현실에서 어떻게 이용될 수도 있는지 묻는 것만 같다. 눈에 보이니 따라 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누군가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는 도구가 된다. 들을수록 완벽해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이어지고, 누군가는 정말 죽어 마땅한 존재로 남아있다는 게 놀랍다. 분명 살인은 범죄인데, 그 범죄의 피해자들이 죽었다고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거. 우리가 느끼는 법 감정이 여기에서도 통하는 것만 같다. 범죄는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그 범죄의 피해자가 악인이라면 우리는 피해자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하는 걸까? 때로는 이 아이러니한 관계가 단순해지기도 한다는 걸 알겠다. 악인은 누군가 처벌할 수도 있고, 그 처벌을 은밀하게 감춰주고 싶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의 독자는 나와 비슷한 고민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다. 죽어 마땅한 이들을 죽여도 범인이 잡히지 않기를, 그래도 살인은 범죄이니 범인이 빨리 잡혔으면 싶은 정의를 외치는... 어떤 선택도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꼭 하나로 결정되어야 하는지 묻기도 했다. 이 소설의 묘미는 고전으로 불리는 추리소설을 복기하는 것이면서, 살인사건이 계속되면서 드러날 진실에 시선이 머무는 게 아닐까. 작품을 재현하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뿐만 아니라, 살인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작품을 비틀고 응용하면서 살인을 더 교묘하게 변형시킨다. 그러면서도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노력으로 작품을 헌정한다. 소개된 작품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확인하면서 감탄하고, 함부로 범인을 단정할 수 없는 미스터리에 빠지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 이제 이 소설의 살인 도구(?)로 이용된 작품을 확인할 시간이다.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그 범죄의 바다에 빠져 즐겨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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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5-12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빅픽쳐 읽을때 그런 느낌?이었어요
영원히 잡히지 않기를...^^

구단씨 2022-05-13 16:08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맞아요. 잡히는 것보다 어떤 사람들을 죽이는지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mini74 2022-06-10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덱스터 생각도 나네요 ~ 구단님 축하드립니다 *^^*

구단씨 2022-06-13 18:45   좋아요 1 | URL
아, 덱스터. 읽다가 말았는데 다시 펼쳐봐야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6-10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구단씨 2022-06-13 18: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더위가 너무 일찍 찾아온 듯해서 힘들어요. 괜찮으신가요? ^^

새파랑 2022-06-10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구단씨 2022-06-13 18: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6-10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구단씨 2022-06-13 18: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thkang1001 2022-06-13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 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구단씨 2022-06-13 18: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