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무리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아쉬움을 가득 담고 2012년이 흘러갔다.
나에게도 유쾌하지 못한 감정으로 마무리가 된 한 해였지만,
주변인들에게도 슬픔과 아픔으로 무겁게 보내야만 했던 한 해가 된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항상 흘러간 그 시간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유독, 지난 해, 너무 힘들게 연말이 흐른 것 같아 그 아쉬움이 배가 되는 듯하다.





십년이 넘는 시간을 그녀와 알고 지냈는데, 그녀의 눈물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지독한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안 보는데서 참 많이 울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이번에 본 그녀의 눈물은 겨우 잠깐이었지만, 아마도 그녀에게는 통곡에 가까운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꾸만 변해가는 그녀의 부정적인 모습에 화가 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 역시도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누군가(무엇에)에 대한 신뢰보다는 의심을 먼저 하는 인간이라
그녀만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의심이 많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는 나라고 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세상의 모든 일 앞에서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란 공식이 머릿속에 깊게 박혀
다른 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원래 그래왔으니까 당연하게 받아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힘들었다.
다른 이의 의견이나 생각에, 단숨에 귀를 닫고 상대로 하여금 말문이 막히게 하는 태도에
이젠 나에게도 버겁고 지친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무언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날 나의 역할은 그냥 앞에 앉아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뿐이었을 것이기에 또 한 번 참았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세 명의 그녀들은 2012년을 이틀 앞두고 터지고야 말았다.

듣고 있기에 너무나도 불편한 말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만하라는 뜻으로
그녀의 어깨를 살짝 톡톡 두드렸고, 나는 그녀가 그 의미를 알아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그녀는 얼굴이 굳었고, 행동이 변했고,
그 자리를 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모르겠다는 의미로 다른 말을 했다.
나는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다르면 이야기를 해서 들어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는데,
그녀는 내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원래 이러니까.’, ‘나만 고치면 되겠네.’ 하는 식으로 말을 하고 모든 것을 닫아버렸다.
상대가 그렇게 말을 하면 무언가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은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황을 만나고 나니, 나 스스로도 입을 다물고 싶어지고야 말았다.
그 순간 나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그녀와 함께 보내고 보아왔던 다른 친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입을 연 순간, 느낄 수가 있었다. 아, 이렇게 정리가 되면서 이 관계가 끝나겠구나 싶은...
결국 나는 그녀들을 알고 지냈던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서로를 할퀴고 멍들게 하는 말들과 오해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전쟁 같았던 그날이 흐르고 그 다음 날, 나는 그녀와 만났다.
왜 그런 시작이 되었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무나도 다른 성격, 다른 표현방식, 그리고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상황들에 대해서.
정말 마지막일수도 있겠구나하는 다잡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답답함만을 느껴야 했고,
서로를 위한 일이 어떤 것인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한가지, 다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조금이라도 말해 보고난 후의 달라질 그녀와 나의 관계였다.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그럴 수밖에,
이런 기회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생긴다면 다행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그녀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화살이 자기에게 향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 코가 석자인데도 그녀를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었다.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생각하면서, 십년쯤 전에 그녀가 나에게 소개했던 이 책을 떠올렸다.

책을 잘 읽지 않는 그녀였다고 기억된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프리카의 어린 소녀들에게 행해지는 할례의식과 그런 힘든 시간을 건너와 세계적인 모델이 되었던
소말리아 출신인 와리스 디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당시의) 자신이 겪는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용기가 난다고 했었다.
그녀는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고, 쉽지 않겠지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자주 웃었고,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지내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메일 계정에 ‘인샬라(Inshallah)’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많은 것들이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듯했다.

며칠 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오래 전의 이 책이 저절로 떠올랐었다.
그녀의 지금 이런 이야기들이, 생각이, 행동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그녀와 꾸준히 만나오면서 계속 보아오던, 언젠가 한번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을 보면 갑작스러운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만큼이나 나도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사고방식들이 조금은 달라지길 바라면서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여,
누군가가 보내는 배려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도 이번에는, 내가 이 책을 그녀에게 건넬 차례인가보다.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새벽 세시에 걸려온 전화가 예사로울 리는 없었다.

김주영의 『잘 가요 엄마』의 이 한 줄처럼, 새벽 여섯시에 걸려오는 전화도 예사로울 리는 없다.
누군가는 벌써 그날의 활동을 시작했을 시간이지만, 아직은 주위가 캄캄한 시간.
갑작스러운 새벽의 전화는 며칠 전부터 엄마의 꿈에 보였다던 외삼촌의 소식이었다.
엄마의 몸도 편치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꿈에 보였던 외삼촌에게 전화를 한번 해본다는 것이
자꾸만 내일, 내일로 미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진료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신 다음 날 새벽, 외삼촌의 부음을 들었다.
엄마는 ‘그래서 자꾸 외삼촌이 꿈에 보였나보다.’ 하시면서 한참을 우셨고,
본인의 몸도 추스르지 못한 상태에서 정신적이 충격까지 더해져 극도의 슬픔으로 또 한참을 멍하니 앉아계셨다.
더군다나 엄마의 형제들 대부분이 미국에 살고 계셔서 5년에 한번 얼굴을 보면 자주 본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나마 한국에 남아계신 몇 안 되는 형제 중에서도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계신 외삼촌이어서 그런지 그 충격이 어마어마한 듯했다.
나이 육십, 칠십이 넘은 사람들이 ‘야’, ‘너’ 하는 호칭을 써가면서 이야기할 때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는 참 웃음 밖에 안 나던데, 지금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너무나도 다르게 보인다.
나이를 얼마를 먹더라도 형제이기에 가능한 호칭들, 잔소리들, 관심들이었을 텐데…….
이제 그렇게 부를 대상이 없어졌다는 것은 ‘안 하는 것’이 아닌, ‘못 하는 것’이 되어버린 일들이 몰려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삐쩍 마른 사람, 이 추운 날 차가운 냉동실 안에서 더 춥겠네.’ 하시면서 또 한 번 통곡을 하시더니
일어나시려다 다시 주저앉으신다. 엄마의 눈물은,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나에게도 고통이다.
기억에서 지워질 수 없는 아픔이고 슬픔이겠지만,
조용히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듯해서 더 안타깝다.
지금도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그때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하는 말과 함께 여전히 계속되는 통곡은 내 마음까지 울린다.

언젠가는 누구나가 겪는 이별일 것이지만, 매번 겪어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아픔인 것 같다. 이별에 대한 연습마저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린-이별에 대한 연습이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일들을 눈앞에서 겪는다는 건 말할 수 없는 슬픔일 것이다. 누군가의 이해가 아니라,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견뎌야 할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이 다르고, 엄마가 견디는 만큼이 다를 것이기에 나는 또 한 번의 슬픔 앞에서 조연으로 존재할 뿐이다.

 

유독 추웠던 날, 기다렸다는 듯이 폭설까지 내렸던 날, 연말이고 연휴라서 누군가의 방문도 쉽지 않았던 날. 그렇게 아픈 날 시작되었던, 엄마는 친오빠와의 이별로 또 한참을 앓으실 것 같다. 그 앓음이 길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는 것 말고는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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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3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3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3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마가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우면서 밥을 잘 챙겨먹으라고 했고,
나는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볼일을 보시라고 했다.
엄마는 말로만 하지 말고 알아서 좀 잘 하라고 다시 말했고,
나는 또 다시 알아서 할 테니 조심해서 다녀오시라고 반복했다.
몇 달 전에도 엄마가 며칠 자리를 비우면서 똑같은 당부를 내게 했었고,
나는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때 엄마가 집에 와서 할 말을 잃고 혀를 끌끌 차면서 했던 말은,
도대체 며칠 동안 무엇을 먹고 살았냐고 물었고,
나는 그냥 잘 먹고 이렇게 멀쩡히 있다고 대답했다.
그 당시에 엄마가 보셨을 때는 밥통은 차갑게 비어있던 상태였고,
싱크대는 설거지 한번 한 적 없이 말끔하게 말라 있었고,
냉장고는 엄마가 집에서 나갈 때 그대로였으니,
나는 아마도 공기만 마시고 살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냥 내게 있어 끼니라는 것은,
배가 고프면 먹는 것,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번에도 엄마가 같은 당부를 하시기에 나는 버니니를 사달라고 말했고,
엄마는 버니니가 뭔지도 모르시면서 사러가자고 했다.
그리고 마트 카트에 버니니 5병을 담고, 맥주 5병을 쓸어 담는 당신 딸을 보면서,
두 가지를 합해서 5병을 넘으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고,
나는 이대로 계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은 버니니 3병, 맥주 2병으로 5병을 채우고 나왔다.
어차피 모자라면 더 사오면 그만인 것인데, 5병이면 어떻고 10병이면 어떠랴.
엄마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실 테지.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저 5병이 비워지지 않고 그대로 있기를, 하고 말이다.






       






마치 실연이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감정의 휘몰아침을 겪고 있다.
나는 계절을 타는 사람도 아니고 날씨를 타는 사람도 아닌데,
가끔 한 번씩 몰아치는 이 감정을 주체 못해 사람들과의 거리를 길게 밀어두고,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생각도 행동도 나 혼자, 그렇게 알아서 했던 것처럼...



<단순한 열정> 속의,
이 여자의 모습에, 행동에, 생각에 지금의 나를 이입시킨다.
여자는 실연을 했고, 나는 아무 일 없지만 그냥 사람이란 대상에 지친 것 뿐이다.
그런데 여자의 모습에 나는 빠져들고 있다.
이 여자만의 방식에 빠져서 나의 지겨움을 잠시 덮어둔다.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일상을 멈추고,
그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대부분 이 여자의 심리 상태, 그대로 표현하자면 미친 여자쯤으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여자는 미치지 않았다. 그냥 사랑을 했을 뿐이다.
사랑은 지극히 사적인 일이며,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누구나의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사랑은 자기만의 일이며, 개인적인 일이다. 이별도 마찬가지.
여자는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고, 이별의 후유증을 겪어가는 중일뿐이다.
그 시간을 여자는 기록으로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했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을...
자신의 경험만을 쓴다는 작가에게 그 솔직함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여자(작가)는 자신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했을 뿐이고,
우리(독자)는 그 기록을 보았을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사람이 가지는 감정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뿐이다.
사랑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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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2-12-14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 오는 날 오늘 출장을 가는 데, 개인적인 경험과 겹쳐서 이 페이퍼의 글이 가슴을 두드리네여. 그렇죠, 전 미치지 않은 거에요. 사랑을 했을 테니 말이죠. 비 오는 밖을 보며 버스 안에서...마음에 확 다가오네요 감사합니다 ^^

구단씨 2012-12-15 21:54   좋아요 0 | URL
흐린 날씨 속에서 출장은 잘 다녀오셨나요?...
누구나의 일상 속에 있는 일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건 각자의 이야기일 뿐이라고요...
남들에게 뭐라 들을 말도 아니라고요...

저의 한숨 섞인 푸념이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렸다니, 제가 오히려 감사할 일이네요.
감사해요...

루쉰P 2012-12-17 16:35   좋아요 0 | URL
날씨는 흐려도 출장은 잘 다녀왔죠. ^^ 하기사 사랑은 사람마다 자기 가슴 속에 다 다르게 있으니 그 누구에게도 해답을 찾을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공감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한숨 섞인 푸념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주고, 세상을 좀 더 볼려고 하는 눈을 주는 것 같아요. ^^ 구단씨 근데여...식사는 하셔야 해요. 술만 먹으면 뼈 삭아요 ㅋ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행운은, 바로 그것. 다른 이의 글을 만나고, 눈과 마음에 담아낼 수 있는 마음. 나는 그런 마음으로 책을 만나고 싶어 한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런 독자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써내려간 글을 통해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공감이란 것을 느꼈을 때의 그 희열이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안의 것들을 활자로 자유스럽게 표현해내지 못하는 나는 독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책을 기다리는, 나는 그렇게 표현된 활자를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목이 길어 슬프다던 사슴이 되는 것도 불사하게 된다.

지난 한 달 동안 책을 많이 구입했다. 평소의 속도나 양을 기준으로 보자면 한 10배 이상은 되는 것 같다. 무엇의 빈자리를 그렇게 책으로 채워야 했을까 고민해 봐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 선명한 이유는 없었다. 이런 저런 것들이 쌓여져 내 안의 것들을 비우게 만들었기에, 그 자리를 또 채워야만 했던 허한 마음이 커진 이유라고 변명해 보지만, 그것도 맘에 들지는 않는다. 날씨는 추워졌고, 내리는 비와 눈에 온통 젖어서 들어왔던 날, 또 한 번 책으로 비워진 마음을, 엉망인 방안을 채웠다.





단편집을 어려워해서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는 한, 단편집을 내가 먼저 손 내밀어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짧은 이야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허둥대고 이렇게 모여진 단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자 하는 마음에 답답해서 어렵다는 선입견을 아직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순전히 이 책만큼은 나의 의지로 먼저, 선뜻 만나게 된 책이다. <너 없는 그 자리> 제목과 표지에 반해서 골라 들었던 이 책은 나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너무나 매력적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하나의 단편들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짧다. 그래서 단편을 통해 느꼈던 그 ‘이야기하다가 만’ 것 같은 분위기로 찜찜할 것 같은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그 짧은 이야기들은 그 토막 난 이야기 같은 그대로를 안고 가게 했다. 뭐랄까, 이 부분만을 내가 담아내도 충분할 것 같은 생각에 뭔가 중지된 느낌 보다는 이대로도 좋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배신과 쓸쓸함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들이 지금 살아가는 우리를 대변해주는 것 같은 생각에 고스란히 흡수되고 있었다. 내 안에...
누군가가 알지 못하게, 내가 선점하고 싶은 욕심에, 나만 알고 싶은 간절함에 내내 가슴에 담아두었던 책. 게다가 나에게 단편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게 만들었던 책. 곧 읽게 될 <그 집 앞>에 대한 편안함을 선사해 준 책이다.





우리가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진 책 같았다. 부모와 형제가 이루어내고 있는 가족, 연인, 친구. 많은 대상들이 그 사랑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그 관계들이 사랑을 이루어가게 하고 있었다. 사랑이 뭐 별건가, 싶었던 생각에 사랑이 별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랑이란 단어가 포함하고 있던 그 넓은 범위를 이제야 재정립해주는 것 같은 느낌에 이 따뜻한 이야기를 더 담게 된다. 누군가가 풀어내는 마음, 누군가가 흘려보내는 슬픔, 많은 것들이 그 사랑이란 이름으로 세상 속에 흩어져 있었다. 미처 보지 못했던 많은 마음들을 보게 만들어, 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책...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제목이 풍기는 느낌이 너무 슬프고 쓸쓸해서 출간되기도 전에 눈에 담을 수밖에 없었던 책이다. 시인이 풀어냈다는 그 글이 궁금한 건 두 번째였고, 저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빨리 찾아내어 보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고비사막의 그 흙이 내게 가져올 감정들이 궁금했고, 이야기 하나하나에 따라오는 소제목이 애틋했다. 그 마음이 그대로 바람 타고 날아온 듯했다. 여러 말이 필요 없게 그냥 만나는 그 순간을 즐기게 해줄 책 같았다. 아니, ‘즐기게’라는 말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다. 그저 ‘만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게 했던 것 같다. 만나고 난 후의 감정들은 아직 내가 정의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기다림을 견딜 수 있었나보다. 만나기만 한다면, 그러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떠났고, 그는 돌아온 것 같았다.

아닌가?

그녀는 떠나는 것 같았고, 그는 돌아온 것 같았다고 해야 하나?

누군가가 풀어내는 책에 대한 이야기, 글에 대한 느낌이 내 귀에 들어온 것은 그 두 사람의 영향이 컸다. 그녀는 떠날 것 같은 한 장의 페이퍼를 남기고 아무런 말이 없고, 그는 한 편의 리뷰로 잠깐의 등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그들의 책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소심한 팬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싶어진다.

그녀는 떠나지 않기를, 그는 이번 등장으로 계속 보여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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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12-0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소개해주신 단편집 정말 마음에 들어요. 다음 구매 때는 꼭 넣어야겠어요.
김경주 시인의 시도...

구단씨 2012-12-08 12:28   좋아요 0 | URL
단편집에 대한 선입견이 있던 저에게는 좋았습니다. ^^
김경주 시인의 시집은 개정판입니다. ^^
 

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로맨스소설들...



가끔 읽는 책들 중의 일부분이지만, 사실 내 책장에서 몇 권 안 되는 로맨스소설들을 문득 다시 꺼내어 보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시간을 따로 구분해서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면 어김없이 ‘얘들(책 속의 주인공들) 잘 지내고 있나?’ 하는 궁금증으로 한 번씩 펼쳐본다. 그리고 그들에게 몇 달 만에 혹은 몇 년 만에 안부를 전한다.
“안녕?”
하고...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잠옷을 입으렴>
영원한 0순위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다시 꽂아두었다. 건피디도 진솔이도 마치 의무처럼 내가 그들의 안부를 듣고 싶어진다. 지금 마포대교 어디를 걷고 있나? 낙산공원 어딘가에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나? 두 사람 사이에 사라졌을 그 결계는 어딘가에서 다시 침입의 순간을 엿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난다의 일기>, <허니비 모놀로그>, <러브 고 라운드>
조금만 더 대중적인 글로 만나보고 싶은 작가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속에 한번은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야기를 그냥 이야기가 아닌 가슴에 남을 이야기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번 신간이 더욱 기다려지고 있나보다. 한 달에 한권 정도 마련하는 로맨스소설에 이 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안달이 난...








<무정>
어마어마한 몸값을 자랑하는 메디컬 센터 때문에 알게 된 작가이지만, 나는 이 책이 더 맘에 든다. 가슴이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효림과 규원 두 사람을 통해 보게 된다. 사람이 되어가는 그 온기는 언제든 전염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이 들만큼...








<바람>, <정우>
상당한 분량에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다음 작품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고민 없이 구매해서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이 분의 모든 책을 서늘한 계절에 만나서 그런지, 이분의 글은 출간작의 제목처럼 ‘바람’과 동의어 같다.










그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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