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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스페셜 에디션 홀로그램 은장 양장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김수영 옮김, 변광배 해설 / 코너스톤 / 2024년 3월
평점 :
<어린 왕자>는 20세기 전반 프랑스의 요절한 문학가, 저널리스트, 비행사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남긴 작품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새삼 어떤 소개가 필요없는 명작입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지만 특히 한국에서도 세대를 초월하여 사랑 받고 널리 읽힙니다. 웬만한 큰 도시의 적당한 장소에서 이 <어린 왕자>의 어느 한 구절(번역)이 새겨진 걸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 코너스톤에서 나온 이 책은 예쁘게 홀로그램이 입혀졌으며 겉표지에 한글 인쇄 부분 없이 Le Petit Prince, Antoine de Saint-Exupery라고 작품명과 저자명이 불어로 적혔을 뿐이라서 마치 외국 책 같은 인상을 줍니다. 혹은, 책이 아니라 고급 팬시 상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생텍스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배경으로 입혀져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양은 보이는 거면 무엇이든 먹어버려. 가시가 있는 꽃도 먹지." "그럼 가시가 대체 무슨 소용이지?(p36)" 마치 동양 고사에서 모순(矛盾)의 고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순간순간을 비연속적으로 잘라놓고 보자면 아킬레우스도 거북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아마 양은 가시가 돋힌 꽃을 먹을 수 없다가, 어느 순간부터 가시에도 대응할 수 있었을 겁니다. 거꾸로, 지금 이 순간에도 꽃은 양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기만 한 게 아니라, 양이 자신을 먹을 수 없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입니다. 그리하여 아주 먼 훗날, 어느 특이점이 지나면, 양은 이제 그 꽃을 먹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나, 저 꽃, 양 모두, 개체로서는 너무 짧은 삶을 살기에 그 결과를 볼 수 없습니다. 왕자에게 "나'는 이미 무언으로 그 답을 전했으며, 왕자도 답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 가시가 소용이 없겠습니까. 지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은 존재 이유(raison d'etre)가 있습니다.
꽃은 호랑이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지만 바람만은 두려워합니다. 어린왕자는 꽃을 사랑하면서도, 그 말과 행동에 괴리가 생기는 걸 보고 당혹했으며, 마침내 꽃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에로스는 자신을 의심한 프쉬케에게 "의심이 깃든 곳에 사랑도 더 이상 자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사랑하던 두 연인도, 여전히 사랑하지만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서로에게 더 머물 수 없을 때가 있으니 이런 모순(p46)이 또 없습니다. 자신이 꽃을 올바로 사랑하기에는 너무 어렸다며 왕자는 꽃의 말이 아니라 그 행동을 보고 선택했어야 했다고 자책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꽃은 거짓말쟁이는 아니지만 너무 약했고 그러면서도 허세가 강했습니다. 차라리 왕자에게 자신은 바람도 호랑이도 심지어 왕자도 무섭다고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왕자는 아마 그런 꽃을 바르게 파악하고 더 알맞은 방법으로 보살펴 주었을 것입니다.
왕은 권위와 군림을 위해 사는 존재입니다. 더 이상 그의 명령을 받을 신민(subject)이 없어도 그는 끊임없이 명령을 내립니다. 왕자(물론 자신의 아들은 아닙니다)에게도 그는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리는데, 사실 법무부장관은 누구를 심판하는 직위가 아닙니다. 어린 왕자가 이 점을 지적하자 그는 엉뚱하게도 "그럼 너 자신을 심판하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p56)"라고 합니다. 말이야 맞는 말입니다만 그게 이 왕자가 직분을 수행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하니 말입니다. "이치에 맞는 명령을 내리시면 바로 이행이 됩니다." 그래도 왕은 이치에 맞길 좇기보다, 자신의 명령 권위를 세우기 위해 애써 이치를 맞춥니다. 선후가 거꾸로 되었습니다.
"작은 종이에 별들의 수를 적고, 그 종이를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근다는 뜻이지.(p68)" 사업가가 자신의 직분을 정의하는 방식입니다. 어린왕자는 그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듣고 잠시 술꾼의 논리(이 사람의 말도 상호순환모순이었죠)와 같다고 생각하더니, 이내 "매우 시적(詩的)"이라며 애써 좋은 방향으로 정리합니다.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일인가. 어린왕자는 내가 하는 일이 상대한테 유익한지 아닌지가 "중요성"의 기준이라고 하는데, 여기 대해 사업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뻔뻔스럽게 상대의 말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왕자의 말에 답할 논리가 생각이 안 나 당황해서인 듯합니다.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위인입니다.
예쁜 외관과 달리 생텍스의 <어린왕자>는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진 동화인지 그 묵직한 메시지가 독서를 마친 후에도 내내 독자의 가슴을 지긋이 누릅니다. 사람의 양심은, 초심은 그만큼이나 소중하며 우리가 먼 곳 먼 시간에 안타깝게 분실하고 온 소중한 자산이라서인기 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