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향화

천 리로 퍼지는 그윽한 향기

瑞香花

窨中開遍瑞香花 음중개편서향화

擎出淸明香滿家 경출청명향만가

鼻觀先通揩兩眼 비관선통개양안

淡紅枝上散餘花 담홍지상산여화

서향화

움 속의 서향화가 흐드러지게 피는데

청명에 꽃대를 내미니 향기가 집 안 가득하네.

콧구멍으로 소통한 뒤에 두 눈을 비비고 보니

연분홍 꽃송이들이 나뭇가지에 흐ㅌ어져 있네.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여섯번째로 등장하는 이색(李穡, 1328~1396)의 시 '瑞香花 서향화'다.

이색이 고려 사람이니 서향은 이미 그 전부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꽃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향기로 주목했으니 "천 리로 퍼지는 그윽한 향기"라는 수식어가 그럴듯하다.

서향은 중국 원산으로 , 향기가 매우 강해 천리를 간다하여 천리향이라 부르기도 한다. 꽃은 연분홍색으로 피고 흰색으로 피는 것을 백서향으로 부른다. 요즘도 이 향기에 매료되어 기르는 사람들이 많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서향화를 두고 “한 송이 꽃봉오리가 벌어지면 향기가 온 뜰에 가득하고, 활짝 피면 그윽한 향취가 수십 리에 퍼져나간다”라고 했다.

시골로 이사오기 전 도시의 아파트에 살 때 봄 꽃시장에서 구한 천리향을 키웠다. 특별히 관리해 주지 않아도 잘 자라며 몇 해 동안 꽃을 피우며 그 좋은 향기를 나눴다.

지금 사는 곳으로 터전을 옮기며 같이 왔고 화단을 마련해 심었는데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추위에 대비하지 못한 탓이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알았다. 그후론 뜰에 들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곱던 색과 은근했던 향기로 기억에 남은 꽃이다.

매해 첫 꽃놀이를 섬진강 매화로부터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핀다는 매화를 만나고 마을 끝자락에 있는 소학재라는 찻집에서 커피 한잔을 나누며 잘 가꿔진 정원에 꽃으로 가득 피어날 봄날을 상상한다. 그 집 입구에는 커다란 서향이 매화와 향기를 견주며 피어 있다. 그렇게 잘자란 서향을 본 기억이 없다.

사진은 꽃벗인 송인혁 선생님의 서향과 백서향에 내 사진 하나를 얹었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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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꽃'

어찌 도리화와 봄을 다툴까

茱萸花 수유화

勁節高孤似伯夷 경절고고사백이

爭春桃李肯同時 쟁춘도리긍동시

山園寂寞無人到 산원적막무인도

藹藹淸香只自知 애애청향지자지

수유화

굳은 절개 고고함이 백이와 같거늘

어찌 도리화와 같은 시기에 봄을 다투겠는가?

고즈넉한 산속 동산 이르는 사람 없어도

가득한 맑은 향기에 그저 절로 알겠거니.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다섯번째로 등장하는 곽진(郭瑨, 1568~1633)의 시 '茱萸花 수유화'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이른 봄 꽃을 피우는 산수유는 매화와 더불어 봄꽃의 대표주자 중 하나다. 옛사람들도 이 점에 주목하여 가까이 두었나 보다.

이 시에서는 가을에 꽃봉우리를 맺어 추운 겨울이라도 뜻을 굽히지 않고, 봄에 이르러 다른 꽃들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백이 숙제의 절개를 이야기하고 있다. 도리화가 피는 봄에는 꽃향기가 어지럽지만 그 전에 피는 산수유꽃은 향기도 맑아 정신을 맑게 한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어찌 도리화와 봄을 다툴까"라는 수식어는 여기에서 온듯 싶다.

섬진강을 따라 오르던 봄기운이 광양 매화마을에서 머물며 숨고르기를 한 후 다시 올라와 지리산 자락에서 노랑꽂을 피운다. 넓다란 골짜기를 노랗게 물들이며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봄기운을 불어넣는 곳이 산수유로 유명한 산동이다.

그곳에 현천 마을이 있다. 골목마다 돌담과 샛노란 산수유가 어우러진 마을에 선배 한분이 산다. 대학 4학년 말 갑자기 사라져 소식을 몰라 모두가 궁금해 했는데 어느날 불쑥 들려오는 소리가 그곳에 터를 잡고 살림을 차렸다는 것이다.

그 집터에 커다란 산수유 나무가 있었고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어느날 붉은 열매를 딴다기에 몇명이 방문했다. 그렇게 만난 것이 산수유와 첫만남이었다. 그후로도 몇번 나들이겸 방문하였는데 잘 살아가는 모습이 더없이 정겨운 모습으로 꼭 산수유 나무 같았다.

나 역시 시골에 자리를 잡고 뜰을 가꾸면서 산수유 한그루를 심었다. 이제는 제법 커서 꽃피는 봄날이면 노랗게 봄기운을 전해준다. 하지만 꽃은 만발한데 열매를 맺지 못한다.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미적대며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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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杜鵑花次古韻 두견화차고운

一聲春夜萬山啼 일성춘야만산제

啼破幽寃血萬枝 제파유원혈만지

欲識千年亡國恨 욕식천년망국한

暮風微雨落紅時 모풍미우낙홍시

두견화를 보고 고시에 차운하다

봄밤 온 산에 두견새 울더니

울음 그치자 통한의 핏물 가지에 한가득.

천년 이전의 망국의 한을 알려면

저녁 바람 가랑비에 지는 꽃을 봐야 하네.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네번째로 등장하는 권호문(權好文, 1532~ 1587)의 시 '杜鵑花次古韻 두견화차고운'이다.

이 책에는 진달래를 "꿈에도 그리는 고향의 꽃"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최치원이나 구봉령의 시에 담긴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식물 이름인 '진달래'라고 하면 될텐데 굳이 '진달래꽃'이라 표현한 이유가 한자어로 두견화라서 그런건가도 싶다.

내게 진달래는 봄 기운이 완연하다 싶을때 야산 언저리를 보면 어김없이 이 꽃이 피어 있던 꽃이다. 젊은시절 매케한 최루탄 연기 속의 학교 안 동산에서 언듯 보였던 꽃으로 4월을 대표하는 꽃이었다.

멀리는 4ㆍ3제주항쟁과 4ㆍ19의거 가깝게는 4ㆍ16 참사에 이르기까지 유독 애달픈 사연이 많은 4월이기에 진달래의 그 핏빛 꽃잎에 기대어 울분을 토해내곤 했었다.

참꽃이라는 말, 화전놀이 등에서 진달래는 그저 들판에 흔히 피는 꽃이 아니다. 우리들의 일상과 긴밀하게 관련된 꽃이기에 그 의미는 특별하다.

담장에 갇힌 여인네들의 숨통을 열어주었던 연분홍 화전놀이의 그것에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먹먹한 가슴으로 먼하늘 바라보았던 내 청춘의 빛에서, 살아가는 이땅의 모든이들의 4월을 감싸 안아주는 진달래의 그것, 영원한 4월의 꽃이다.

진달래로 장식되어 가는 내 봄날은 그 무게에 짓눌려 숨쉬기 버겁지 않을 만큼, 기우뚱거리며 서툰 날개짓으로 같은 자리를 맴도는 노랑나비의 몸짓이면 족하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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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仙花 수선화

一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品於幽澹冷雋邊 품어유담냉준변

梅高猶未離庭砌 매고유미이정체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오롯한 겨울 마음 둥글게 늘어뜨리니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 차갑게 주위를 둘렀네

고상한 매화도 뜨락의 섬돌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가에서 진정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세번째로 등장하는 김정희의 시 '수선화'다. 제주도 유배 시절에 지은 작품이다.

수선화를 특별히 좋아했던 김정희와 수선화의 인연은 젊은시절 중국 나들이로보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김정희는 "맑은 물가의 진정 해탈한 신선"으로 묘사한 수선화의 이미지와 유배길에 올라 제주도에 머물던 자신의 처지를 연결지어 스스로를 돌아다 본 마음이 담겼으리라 짐작된다. 김정희가 좋아했던 수선화는 제주도에 흔하게 있던 금잔옥대로 본다. 이 책에선 금잔은대로 표현 되었다.

내게 수선화와의 인연은 오래 전 꽃 보자며 무등산 언저리를 드나들던 어느 봄날이었다. 길가에 홀로 피어 있는 꽃을 보고 이름을 알기 위해 알아보던 중 추사 김정희가 좋아했던 수선화라는 것까지 이어졌다. 조선후기를 살았던 인물들에 주목하고 있던시절이라 무척이나 반가운 만남이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사는 시골로 터전을 마련하고 뜰을 가꾸면서 심었던 것 중에 하나도 수선화였다. 김정희의 수선화와는 조금 다른 품종이다. 꽃대 하나에 노랑색의 꽃이 하나 피는 종류다. 금잔옥대라고 부르는 수선화를 들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올 이월 제주 꽃나들이에 선듯 나선 이유도 마음 한구석 이 금잔옥대를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추사적거지는 아니었지만 김영갑갤러리와 이중섭미술관에서 오랫동안 눈맞춤 했다.

이 책에서는 수선화를 송나라 시인 황정견의 시 수선화의 "물결 밟는 선녀 버선에 먼지가 이는데 희미한 달빛 아래 사뿐히 물 위를 밟네"에서 빌려와 "달빛 아래 물결 밟는 선녀의 발자국"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얀 꽃잎에 금잔을 올려둔 듯한 꽃이 주는 맑은 기운을 가슴 한켠에 담아둔다. 김정희와 정약용이 수선화 주고 받으며 나눴던 마음을 알듯도 싶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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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花 매화

姑射冰膚雪作衣 고야빙부설작의

香脣曉露吸珠璣 향순효로흡주기

應嫌俗蘂春紅染 응혐속예춘홍염

欲向瑤臺駕鶴飛 욕향요대가학비

고야의 얼음 같은 살결에 눈으로 옷 지어 입고

향기로운 입술로 구슬 같은 새벽이슬 마시네.

응당 속된 꽃들 봄에 붉게 물드는 것 싫어하여

요대를 향해 학 타고 날아가려는 게지.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두번째로 등장하는 이인로의 시 '매화'다.

매화梅花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라는 그림이다. 그림은 강 건너 멀리 보이는 높은 언덕에 소담스러운 매화가 피어 있다. 건 듯 부는 봄바람에 실려 온 향기가 강가에 이르러 뱃전에 부딪친다. 이미 술잔을 기울인 노인은 비스듬히 누워 매화를 바라본다. 매화와 배를 이어주는 것은 텅 빈 공간이다. 그 공간이 주는 넉넉함이 매화를 바라보는 이의 마음 속 여유로움과 닮은 듯싶다.

매화야 옛부터 사람들이 워낙 좋아해서 마음으로 담아 시나 그림으로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만큼 매화는 특별한 존재였다.

증단백의 청우淸友, 임포의 매처학자梅妻鶴子나 암향부동暗香浮動, 소식의 빙혼옥골氷魂玉骨이나 아치고절雅致高節, 안민영의 황혼원黃昏月, 이황의 매형梅兄 등 모두가 매화를 가르키는 말이다.

옛사람에게만 그럴까. 오늘날에도 매화를 찾아 길을 떠나는 이들은 많다. 해가 바뀌는 1월이면 어김없이 섬진강가 소학정을 찾는다.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꽃을 피운다. 그 매화 향기를 맡고자 탐매의 길을 나서는 것이다. 혼자여도 좋지만 멀리 있는 벗과 만나 꽃그늘 이래 들어 정을 나눈다.

금둔사 납월홍매, 통도사 자장매, 화엄사 흑매, 단속사지 정당매,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 전남대 대명매 등 가까이 또는 멀리 있는 매화를 보러 탐매길에 나선다. 나귀나 말에서 타고 자동차나 기차로 이동수단만 달라졌을 뿐 매화를 보러 나선 사람들의 마음자리는 같을 것이다.

서둘러 봄을 불러오던 매화는 이미 봄바람에 밀려 지고 있다. 김홍도의 주상관매도를 보며 이른 봄 섬진강가에서 함께 매화를 보았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 매화처럼 곱고 깊은 향기로 기억되는 탐매의 추억이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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