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꽃

제왕으로 군림하는 독보적 꽂

詠牧丹 영목단

風流富貴百花尊 풍류부귀백화존

國色天香到十分 국색천향도십분

如何箇樣花開大 여하개양화개대

不及區區芥子孫 불급구구개자손

목단을 읊다

풍류와 부귀는 온갖 꽃 중에서 높고

국색과 천향은 온전함에 이르렀네.

어이하여 그토록 꽃이 크게 피면서도

보잘것없는 겨자의 자손만큼도 번성치 못하는가?

-서거정, '사가시집' 권31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스물여덟 번째로 등장하는 서거정(徐居正, 1420 ~ 1488)의 시 "詠牧丹 영목단"이다.

모란은 중국이 원산지로 5월에 붉은색의 꽃이 피는 나무다. 비슷한 꽃이 여러가지 색으로 피는 작약은 풀이다.

모란이라 하면 우선 신라의 선덕여왕의 설화에 등장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당태종이 모란 그림과 함께 씨앗을 보내왔는데 덕만공주가 그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듬해 핀 모란은 향기가 없었다고 한다. 공주가 그렇게 이야기 한 이유는 그림 속에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모란에는 향기가 없을까? 무수한 벌들이 날아들어 꽃속에 묻힐듯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란은 진한 향기를 풍긴다.

모란은 대체로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풍성한 꽃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양반집 뜰에는 반드시 모란을 가꾸었던 것과 수많은 문학작품과 그림에 등장하는 것이 반증이리라.

내게 모란은 어린시절 외갓집 장독대 옆에서 붉게 피던 그 모란으로 기억된다. 학창시절에는 김영랑의 모란으로 옮겨왔고 내 뜰을 가진 지금엔 삼백예순 날을 기다려 겨우 닷새 보고 마는 애뜻함으로 남았다.

붉은색으로 피는 모란이 주는 화려함 보다는 흰색으로 피는 모란의 단아함에 더 빠져 있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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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꽃

연자주빛 꽃잎 흩날리며

여름을 알리네

松上藤花 송상등화

藤花一樹附寒松 등화일수부한송

紅影重重翠色濃 홍영중중취색농

觀者未知根本異 관자미지근본이

謂言連類互相容 위언연류호상용

소나무 위 등꽃

등꽃 한 그루 소나무에 붙어 있으니

붉은 그림자 겹겹에 푸른빛 짙네.

보는 이는 근본이 다름을 알지 못하고

같은 무리가 서로 용납한다 말하네

-김우급, '추담문집' 권4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스물일곱 번째로 등장하는 김우급(金友伋, 1574 ~ 1643)의 시 "松上藤花 송상등화"다.

등나무의 자주색 또는 흰색의 꽃은 무리지어 핀 모습이 곱기도 하고 향기 또한 좋아서 그 꽃그늘에 들기를 좋아했다.

옛부터 사람들은 벤치에 등나무를 심어두고 덩굴성으로 자라는 성질을 이용하여 그늘을 만들어 그 아래서 볕을 피할 용도로 많이 가꾸었다. 초중고를 다녔던 기억 속 모든 학교에는 이 등나무벤치가 있었다.

이 책에서 등꽃은 여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으로 옛시에 여름 풍경을 묘사하는데 자주 등장한다며 다른 꽃을 설명할 때보다 많은 시를 인용하고 있다. 그만큼 옛 사람들에게는 주목을 받았던 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자줏빛 등꽃 떨어지는 풍경을 고향 집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상징물로 보고 있다.

등나무 하면 칡덩굴과 더불어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 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라는 뜻으로, 칡과 등나무가 서로 복잡하게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의지나 처지, 이해관계 따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을 일으킴을 이르는 말"이다.

어원은 두 식물의 특성에서 연유한다. 오른쪽으로 감는 칡과 왼쪽으로 감는 등나무가 각기 감고올라가는 방향이 달라 한곳에서 만나면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등꽃의 풍성한 꽃봉우리가 늘어진 모습의 아름다움에 많은 이들이 꽃그늘을 찾는다. 이 꽃을 찾는 이들이 등꽃의 향기를 담아 한결 곱고 너그러웠으면 좋겠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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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백발의 할머니 절로 떠오르네

詠白頭翁 영백두옹

鬢絲蕭瑟落花風 빈사소슬낙화풍

少日姸華一夢空 소일연화일몽공

須識靑春元易老 수식청춘원이노

草中還有白頭翁 초중환유백두옹

백두옹을 읊다

귀밑머리가 꽃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쓸쓸하니

젊은 날의 곱고 화려함 한바탕 꿈처럼 부질없네.

모름지기 청춘은 본디 늙기 쉬움 알아야 하니

화초 중에 또 흰머리 노인이 있네.

-이수광, "지봉지" 권2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스물두 번째로 등장하는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시 "詠白頭翁 영백두옹"이다.

할미꽃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봄에 뿌리에서 올라온 줄기 끝에 꽂봉오리가 열리면서 점차 아래로 굽는다. 꽃송이가 아래로 향하여 핀다. 꽃이 지고난 후 흰 털로 덮인 열매의 덩어리가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같이 보이기 때문에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고초(老姑草) · 백두옹(白頭翁)이라고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 할미꽃은 신라 때 설총의 "화왕계"에서 왕에게 바른말을 하는 노인으로 등장한 이래 일반적 이미지가 노성한 인물로 나타난다고 한다.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흔하게 보던 꽃이었는데 이젠 보기 쉽지가 않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정겨움을 전하주던 대상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크기에 어느집 담장 아래나 화단에서라도 만나면 반갑기만 하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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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무릉의 신선이 보낸 선물

寄雙溪齊桃花洞 기쌍계제도화동

北嶽攢靑矗幾層 북악찬청촉기층

雙溪流水碧澄澄 쌍계유수벽징징

桃花萬樹紅如海 도화만수홍여해

未必桃源在武陵 미필도원재무릉

쌍계재의 도화동에 부치다

북악산 푸른 봉우리 몇 층으로 솟았는가?

쌍계에 흐르는 물은 맑디맑아 푸르네.

일만 그루 복사꽃이 바다처럼 붉으니

도원이 무릉에만 있는 게 아니로다.

-서거정, '사가시집' 권51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열세 번째로 등장하는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시 "寄雙溪齊桃花洞 기쌍계제도화동"이다.

이 책에서는 동양에서 복사꽃에 대한 이미지를 두가지 상반된 이중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필 때는 모두 꽃구경을 갔으면서도 화려하게 핀 꽃이 너무 흔해서 천시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내게 복사꽃은 안평대군의 꿈을 그렸다는 안견의 그림 "몽유도원도"가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동양에서 도화원이나 도원경의 이상향에 등장하는 복숭아꽃의 그 이미지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이 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어느 시골 골짜기에는 복숭아나무가 천지다. 경사면을 이룬 그곳에 복숭아꽃이 필 때면 많이 이들이 찾아 도원경을 감상하곤 한다. 나도 매년 찾아가는 곳이다.

내뜰에도 복숭아 나무를 심었다. 첫 열매가 열리고 신기해하다가 익은 제법 많은 복숭아를 따서 아주 달콤하게 먹었다. 그 처음을 끝으로 다시는 맛을 볼 수 없었다. 매년 벌레를 이기지 못하여 그냥 꽃만 보고 만다. 열매보다 꽃이다라며 스스로를 위로 하지만 첫 수확 때의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첫 복숭아나무는 죽었고 다시 심은 나무에 올해도 제법 많은 열매가 달려 있긴 하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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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청명 시절 혼을 끊는 고향의 꽃

臨水杏花 임수행화

​瓠犀齒白捲脣紅 호서치백권순홍

草麝淸香散曉風 초사청향산효풍

似怕嬌顔容易老 사파교안용이로

淡施脂粉照靑銅 담시지분조청동

물가의 살구꽃

박씨 같은 흰 이에 붉은 입술 말아 올리고

그윽한 맑은 향기 새벽바람에 흩어지네.

아리따운 얼굴 쉬이 늙을까 두려운 듯

연지와 분 옅게 바르고 거울에 비추어 보네.

-성현, "속동문선" 권9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열한 번째로 등장하는 성현(成俔,1439∼1504)의 시 "臨水杏花 임수행화"다.

봄의 화사함을 말하기에 빼놓을 수 없는 꽃이다. 매화가 지고 벗꽃이 피기 전에 살구꽃이 핀다. 살구꽃은 꽃받침이 홍자색으로 꽃이 피면서 뒤로 졎혀진다는 특징이 있다. 홍자색의 이 꽃받침이 살구꽃의 화사하게 보이도록 한다.

살구꽃의 이미지는 다양하지만 우선 고향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시절 살구를 먹었던 기억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려말 조선 초의 시인 정이오읮 "천금으로도 오히려 좋은 계절을 살 수 없는데, 뉘 집에 술이 익어 가길래 꽃이 저리도 피는가. 千金尙未買佳節 酒熟誰家花正開라는 구절에서 술 익는 마을에 핀 꽃도 응당 살구꽃일 것이다"며 살구꽃을 술익는 마을과 연결하고 있다.

어린시절을 보리타작 할 무렵 살구나무가 있는 집 골목에서 주운 살구를 먹었던 기억이 있지만 꽃에 대한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시골동네로 이사를 온 이듬해 봄 동네 뒷길 어느집에 나이 먹은 살구나무가 있었다. 꽃 필 때부터 열매 익어 떨어질 때까지 일부러 그길을 출퇴근 길로 삼았다. 꽃도 보고 열매도 맛보는 재미를 누렸는데 올 봄에 그 나무는 잘려나갔다.

더이상 이 마을에서는 살구꽃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올 봄 내 뜰 대문 옆에 한그루 심었다. 이제 꽃 피고 열매 열릴 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아무리 찾아도 살구꽃 사진이 없어 꽃친구 평상 선생님의 사진을 빌려왔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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