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단순한 동물의 차원을 뛰어넘어 사람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읽은 부분에선 푸바오가 독립훈련을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책에 나온 글과 함께 페이지 하단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해서 사육사 할부지와 푸바오 그리고 러바오의 모습을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어서 좀 더 친밀감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걸 정(情)이 든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푸바오가 엄마로부터 독립할 때가 되었습니다. 독립 훈련을 하는 동안 아이바오와 푸바오는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야 했지요. 둘은 틈만 나면 서로를 찾고 그리워했습니다. - P47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푸바오의 가슴에도, 발가락과 손가락 마디에도 엄마와 함께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 P47

언젠가 푸바오도 엄마가 된다면 아이바오에게 받았던 사랑과 마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떠올려 볼 수 있을 겁니다. - P47

푸바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P47

"할부지,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잘할 수 있어요." - P55

"할부지가 더 걱정이에요. 할부지도 잘할 수 있지요?" - P55

푸바오는 잘 해낼 겁니다. 훌륭한 엄마에게서 이미 세상 살아가는 방법들을 모두 배웠으니까요. - P55

조금 멀리 있어도 할부지가 늘 지켜 줄 거야!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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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5-06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계속 보면 정이 들지요 ㅎㅎ 푸바오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잘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일요일 저녁 잘 보내시길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5-06 20:32   좋아요 1 | URL
푸바오에 대해 잘 몰랐었는데 책과 관련 영상을 통해 조금씩 알게되고 친숙해지면서 왜 많은 사람들이 푸바오에 열광했는지 이제야 좀 알것 같더라구요ㅎㅎ 푸바오가 훈련도 잘 받았으니 잘 지내고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서곡님도 저녁 시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문학이 우주와 같다는 저자의 얘기에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하여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우주에 있는 수많은 별들이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과 같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그만큼 다양한 문학 작품을 접하면서 느꼈던 깨달음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이 우주와 같다는 이 은유가 더욱더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건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듯 싶다.

또한 뒤이어지는 글에서 저자는 인생이라는게 원래 불완전한 것이기에 어떤 길을 걸어가든 관계없이 각자가 걸어가는 길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작년 말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나왔던 메시지 중 하나와도 일맥상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삶이든 간에 다 나름의 가치가 있고 소중한 삶이라는 게 그 소설과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에서 공통적으로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을 바꿔서 이번에는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글을 읽어 볼 수 있었는데, 읽으면서 이들이 마치 양날의 검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민주주의를 통해 획득한 개인의 자유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는 불안함이라는 요소를 만나게 되면, 특정 개인을 영웅시하여 자신들의 불안함을 떨쳐냄과 동시에 그 특정 개인에게 자신의 자유를 위탁함으로써 그 영웅시된 특정 개인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는 독재가 일어난다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같이 돌고 도는 이 논리는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줌과 동시에 개인의 자유라는 것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민주주의 시대가 된만큼 이것을 유지하고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이 어리석고 무지몽매하여서는 안되며 한사람 한사람이 똑똑한 개개인이 되어야 권력을 홀로 독점하려는 자들의 거짓 선동에 넘어가지 않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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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사유‘라는 키워드에 관한 글이 이어진다.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저자는 얘기하는데 이는 각종 영상매체가 아닌 책을 통해서 기를 수 있는 능력이기에 저자는 독서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또한 사색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독서외에도 신체의 속도를 늦추는 활동을 할 것을 독자들에게 권하는데 과거 유명한 철학자들이 즐겨했던 ‘걷기‘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최근 ‘왜 걸어야 하는가‘라는 책을 함께 읽고 있는데, 거기서도 걷기의 중요성에 관한 다양한 과학적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어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의식적으로 걷기를 실천하고 있지만 좀 더 걸을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유‘와 관련된 절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Chat GPT, AI와 관련된 얘기들이 언급되는데 저자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능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상상력과 의미 부여야말로 인간이 AI 시대를 살아낼 수 있는 길‘이라는 카이스트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최근 급변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우리 인간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변해나갈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마치 우주와 같습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별이 저마다의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고 그중에는 이미 죽어버린 별도, 터져버린 별도 있습니다. - P266

우주가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빛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문학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고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한 번도 이해하지 못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문학의 그런 점을 통해서 우리는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왔고,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입니다. - P266

우리의 삶도 하나의 별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수많은 별자리 속에서 때로는 방향을 잃고 헤매는 그 과정 자체가 바로 인생입니다. - P266

나의 선택뿐 아니라 타인의 선택에 대해서도 너무 손쉽게 재단하고 비난하는 자세는 지양해야 합니다. - P266

내 선택에 대해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면서 나와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혀가는 삶이 진짜 살아볼 만한 멋진 인생인 것입니다. - P266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가지 않은 길」 속 화자처럼 두 갈래 길을 앞에 두고 갈등하는 인간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 P268

우리 앞에 놓인 길은 가보지 않고서는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 P269

중요한 것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더라도 자책하지 않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 P269

괴롭고 외로운 시간들 속에서도 우리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소소하지만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을 어쩌면 후회 속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 P269

그(다니엘 핑크)는 후회를 ‘삶을 바로잡고 싶어 하는 건강하고 본질적인 충동이자, 나 자신의 진실에 관해 묻는 출발점‘이라고 하더군요. - P270

다니엘 핑크의 말처럼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인생을 망치는 헛소리! ‘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가끔은 나의 지난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면서 스스로와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 같습니다. 그때의 깨달음이 언젠가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선택의 시작이 될지 누가 알겠어요. - P270

민주주의는 개인이 주체성을 버리고 강자에게 의존해 나의 존엄성과 권리를 그들에게 맡기는 순간 균열이 생기며 도태되고 맙니다. - P274

인간은 불안한 존재이며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나의 생각이나 투철한 신념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떠올려야 합니다. - P275

파시즘이나 독재는 우리의 불안감을 우상화한 특정 대상에게 위탁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그 시작은 대중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의 지속은 우상화된 대상에 빠져든 대중들의 동의로 가능합니다. 놀랍지만 사실은 자발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죠. - P275

신분제에서 벗어난 이후 우리가 부여받은 자유 때문에 우리는 매번 선택적 상황 앞에 놓이고, 이것은 때때로 우리를 불안하게도, 극단적인 소외감으로도 몰아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절대적 고독과 선택의 번민에서 나를 구원해줄 현대적 영웅을 원하기도 한 것이죠. 그런데 그에게 내 삶의 선택권을 맡기게 되면 다시 우리의 자유는 제약당하게 되는 것이죠. - P277

역설적이게도 자유로 인한 불안감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제약당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은 흔들리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항상 자유의 역설에 관심을 가지고 민주주의가 지닌 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P277

이청준의 소설《당신들의 천국》은 개인의 영웅주의가 우상화로 이어지면서 탄생한 권력자와 민중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권력과 자유, 개인과 집단의 갈등을 바탕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조를 그려낸 소설이죠. - P277

사람들은 ‘현실은 불안하지만 미래에는 유토피아가 펼쳐질 거야. 내가 그 세상을 만들어줄게!‘라며 이상향을 펼치는 우상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면서 자유의지까지 포기합니다. 이것은 들끓는 용광로에 내 모든 것을 던져 넣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 P279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절대시해서 타인에게 강제하는 것은 또 하나의 지옥을 탄생시킬 뿐입니다. - P279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구성원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함이 아닐까요. - P280

사회 구성원들의 욕망이 어디로 흐르는지 읽으려 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은 올바른 정치가 아닙니다. - P280

‘지금 네가 품고 있는 욕망은 옳지 않아. 대신 내가 새로운 욕망을 품게 해줄게. 그리고 내가 다 이루어줄게‘라고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이상적인 행동이라고 해도 폭압적인 정치에 불과합니다. - P280

비단 정치인뿐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타인에게 자신의 욕망을 강요하곤 합니다. 타인의 삶을 부정하면서 옳지 않다는 가치판단을 내리기도 하지요. 과연 부모라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이유로, 더 많이 배웠고 더 오래 일했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삶의 방식을 강요해도 되는 걸까요? - P280

지금 젊은이들이 태어난 시대는 이미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대인 것이죠. 이런 시대에서 오늘날의 청년들이 시대의 부름에 답하는 방식은 ‘매 순간 자신의 앞날에 대한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 P281

문학은 정해진 답을 알려주고 삶의 방향을 이끄는 대신 ‘인생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불완전한 방식으로 정처 없이 헤매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 P284

어느 시대든 인간은 모두 불안해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지켜내고 시대와 싸우면서 살아왔다는 깨달음을 주는 게 바로 문학입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나를 받아들이고 기꺼이 껴안고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죠. - P285

사회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우리는 언제나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어쩔 수 없음의 진리‘를 모두가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 P285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니체의 말 ‘아모르파티‘ - P286

오늘도 우리는 흔들리지만 결국에는 조금씩 나아갈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내일을 꿈꿔봅니다. - P286

사색하는 법을 잊어가는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간이 바로 책을 읽을 때입니다. 행간의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다 보면 비판적 성찰까지도 가능하죠. 무엇보다 책 읽기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지식 습득의 차원을 뛰어넘는 창조적 활동이 가능합니다. - P289

《화씨 451》은 책을 읽는 행위가 범죄로 규정되는 미래 세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1953년 당시 텔레비전과 라디오 같은 뉴미디어의 대량보급으로 읽고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해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 P290

인간이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지구의 멸망이 온다 - P291

책이 사유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 - P292

결국 모든 사유는 책과 책의 연쇄작용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문학과 책의 쓸모이기도 하죠. 이 책에서 알게 된 정보를 다른 책 속 지식에 적용해 발전시키거나, 문학 작품 속 시대와 인물들의 삶에 몰입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습니다. - P292

우리가 인생의 가치를 찾아내고 매 순간 인간다운 판단을 하려면 스스로 사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야 하고 비판적인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 문해력도 키워야 합니다. - P294

인간이 독서를 통해 비로소 세상의 진실에 눈뜨고 진정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 - P294

오늘날의 사회는 지속적으로 사유를 방해하면서 속도, 성과, 효율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이 잣대로 평가받다 보니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 수많은 가치가 하나씩 떨궈져 나가면서 결국은 결과에 집착하며 살아가게 된 것이죠. - P294

음악의 가장 중요한 속성인 시간성은 독서 행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음악을 들을 때 하나의 음을 순차적으로 들으면서 총체적으로 화음을 느끼듯이, 문학 작품도 언어적인 시간의 연쇄작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필요합니다. - P295

독서를 하는 동안의 시간 흐름은 우리의 사고를 지연시키고 잠깐이나마 사색을 하며 내 삶과 주위를 돌아보는 성찰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우리는 내일의 삶을 기약하게 되죠. - P295

책을 읽을 때는 일정한 시간을 들여 문자를 다 읽고 나면 그 감상이 종합적이고 동시적으로 다가오잖아요. - P296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하층민은 마음껏 질문하고 생각할 자유가 없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전제된 사회에서나 나와 세계에 관한 질문이 만인에게 허용되었습니다. - P297

책을 읽는 것 외에 사색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신체의 속도를 늦추는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 P298

몸과 마음의 연관성을 고려한다면 걷기는 인간의 사유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걸으면서 깊이 사색할 여유를 갖고 어느새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가게 됩니다. 루소, 홉스, 니체, 칸트 등 위대한 철학자들이 모두 걷기를 즐겼다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 P298

‘걷기를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 P298

니체도 혼자만의 산책을 통해 실존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합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심오한 영감과 위대한 생각은 모두 길 위에서 떠올렸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 P298

바쁜 일상을 살면서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평소에 접하는 이런저런 일들에 여러 가지 질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모두 얻을 수는 없겠지만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 P299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사고의 범위가 넓어지고 특정 이슈에 관한 저만의 관점이 정립되어 가는 즐거움도 느껴볼 수 있습니다. - P300

생각의 연쇄작용이 멈추면 인간은 정신적 빈곤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 P300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아일랜드」는 상상 속 복제인간 이야기를 통해 질문이 사라진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 P301

질문은 인간다움의 근원입니다. AI가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에 새로운 기술과 공생하기 위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삶의 태도도 바로 이것입니다. 질문을 통해 우리는 의미를 발굴하고 인간으로서 존재 이유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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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두려운 일‘이라는 제목의 글로 시작한다. p.193에 밑줄 친 문장에서 유추해보자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지 여부가 굉장히 중요해 보인다. 말을 좀 더 보태자면 정상이 비정상화되는 것보다 비정상이 자신을 정상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라는 얘기다. 나는 과연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다음에 나오는 글은 ‘전쟁 극장‘이라는 글이다. 얼핏 보면 무슨 전쟁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말은 전쟁이 진행되는 영역을 지칭하는 theater of war라는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밑줄 친 문장에 이 말의 유래가 간단히 소개되는데 ‘아 이런 관점에서 이러한 말이 나왔구나‘하고 감탄했다.

또한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는데,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과 관련하여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인 젤렌스키가 우리 국회의원들에게 화상으로 연설을 했던 일화가 나오는데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젤렌스키의 연설에 관심없이 딴 짓을 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저들의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앞서 말했던 진짜 현실판 ‘전쟁 극장‘이라는 게 씁쓸하긴 하지만 이런게 아닌가 싶었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유사시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러한 우리 국회의원들의 태도로 인해 전 세계로부터 외면받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낸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이 남의 나라 전쟁이라고 영화보듯이 보는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한국 전쟁‘ 때 우리를 도와줬던 나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현실판 ‘전쟁 극장‘ 이야기와 더불어 전쟁의 본질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p.204에 밑줄친 내용인데, 전쟁이라는게 결국에는 정치적으로 유리한 조약 체결을 위한 도구로써 사용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얘기는 나를 포함한 독자들에게 전쟁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다음으로는 요즘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챗GPT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 책이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보니 챗GPT와 관련된 전문적인 내용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챗GPT와 문학을 연계하여 생각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특별히 마지막 부분에서 챗GPT의 발전 수준과는 별개로 자신의 경험을 문학의 언어로 재발견하려는 욕구가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할 거라는 얘기는 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위의 말을 약간만 더 확장해서 챗GPT같은 기술의 발전과 무관하게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어떤 근본적인 욕구 혹은 본능은 영원할 거라는 말로 일반화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이것이 어떤식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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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중국의 한 농민공에 관한 얘기다. 농민공이란 중국에서 이주 노동자를 지칭하는 용어인데,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하는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거의 다 소진하기 때문에 책과는 거리가 먼 경우들이 많다고 하는데 여기 소개된 첸지라는 농민공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노동 후의 무력감을 달래고자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중에 철학자 하이데거의 책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첸지가 어떤 저자의 책에 푹 빠졌는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자기 삶의 자유를 찾기 위해 철학을 추구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우리가 독서를 하는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거창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사람들마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독서를 하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문학작품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도있게 하기 위해 독서할 수도 있으며, 에세이 같은 글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받기 위해 독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단지 재미를 위해서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독서를 하는 이유에 합당한 어떤 것을 얻어간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도 p.212에 밑줄친 부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내가 어떤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그 책을 읽는 사람에게 ‘저런 책을 쓸데없이 왜 읽고 있지?‘라고 함부로 말해서도 안될 것이다. 남이 뭘 읽든 참견하지 말자는 말이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면 그만인 것에 딴지 걸지 말자는 얘기다. 그냥 저 사람에게는 저 책이 필요하니까 읽는가보다 하면 그만인 것이다. ‘남이 뭘 읽든 신경쓰지마‘라는 말이 참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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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오는 것은 ‘완전한 소모‘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단어는 아니지만 ‘미니멀리즘‘이라고 해서 가급적 자신이 소유하는 물건을 줄이고 간소한 삶을 추구하자는 주의가 있다. 이미 그렇게 살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집에 쇼핑한 각종 물건들로 가득찬 분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형태가 미니멀리즘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을 완전히 써보지도 못하고 버리는 행위는 단지 그 물건과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는 저자의 얘기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독자인 나도 얼마 전에 잘 쓰지 않고 공간만 차지하는 듯한 물건을 버린 경험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 물건을 버렸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물건을 쓸만큼 써서 처음 구입했을 때 느꼈던 효용만큼의 효용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기에 과감하게 더 이상의 미련없이 버릴 수 있었다. 버리는 것도 이렇게 기분좋고 유쾌한 버림이 있는 반면 막상 사놓고 별로 쓰지도 못한채 공간만 차지하다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버리게 되는 경우들도 많이 있는듯 하다. 이런 걸 보면 애초에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독자인 나도 예전에 사놓고 아직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한 물건들이 적지 않게 방에 존재한다. 오늘의 독서를 통해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소비습관에 대해 재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소비하는지 아니면 없어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없지만 단지 싸고 예쁘다는 이유로 소비하는 건 없는지 반성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나를 비롯해 현대인들이 소비라는 것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관대해진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환경적인 측면도 생각해서 지금부터라도 꼭 필요하지 않은 소비는 조금이라도 줄이는 쪽으로 가는게 맞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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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는 ‘겨울 이야기‘라는 글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연극 제목이자 에리크 로메르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독자인 나의 추측으로는 연극과 영화라는 형태만 다를 뿐 문맥상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상연 혹은 상영하는 듯 보여진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보는 작품인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꽤나 뿌리깊은 작품인듯 보인다. (독자인 내가 이쪽 분야에 무지한 편이라 너그러이 양해바란다.) 어쨌든 이 극의 내용을 놓고 저자는 인생에 대해 간단한 논의를 전개한다. 핵심은 사람이 진정한 인생을 사는 경우도 있지만 대충(혹은 임시적인) 인생을 사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좀 풀어서 나만의 설명을 보태자면 사람이 자기가 꿈꾸던 삶을 현실에서 살아간다면 진정한 인생을 사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꿈꾸던 삶이 아닌) 경우에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그냥저냥 대충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글(‘겨울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죽음과 부활이라는 단어도 잠깐 나온다. 이것이 지칭하는 의미를 좀 더 자세히 풀어보면 대충 사는 인생을 죽이고 진정한 인생을 살아가는 부활을 맛보자는 얘기인데, 이러한 부활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대충 사는 인생을 살아갈 때 사랑했던 것들을 과감히 놓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에 앞서 언급한 대충 사는 인생을 살아갈 때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예시가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다가오는 각종 유혹이나 쾌락 혹은 온갖 부질없는 것들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p.221에 밑줄 친 문장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무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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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4에 밑줄 친 부분은 ‘슈레버 사건‘이라는 글에 나온 글인데 사정 상 다음 번 포스팅에서 이 글의 내용에 대한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아마 한 조직이 선한지 악한지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두목보다 착한 부하가 생존이 가능한지를 살펴보는 것일지 모른다. - P190

평범한 사람이 악당이 되는 것보다, 악당이 자신을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여기기 시작하는 것, 그게 훨씬 두려운 일이 아닐까. - P193

개인과 마찬가지로 권력 집단 역시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심연을 향해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다. 간혹 계획이 좌절될 때, 문득 정신 차리고 뒤돌아설 수 있을까. 그보다는 더 끔찍한 다음 단계로 질주하는 것이 보통 아닐까. - P201

원고를 읽는데 ‘전쟁‘ 옆에 ‘극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 편집자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군사학 용어로 전쟁이 진행되는 영역을 뜻하는 theater of war를 번역자가 ‘전쟁 극장‘이라고 무심코 옮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P202

전쟁 극장은 클라우제비츠 이전부터 있던 말이다. 속설에 의하면 전황이 궁금한 왕과 영주들이 지도를 가지고 보고받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 좀 더 실감할 수 있도록 전쟁을 극화해 궁정 무대에 올리게 한 것이 어원이라고 한다. - P203

클라우제비츠는 극장을 외부 현실로부터 분리된 독립적인 공간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서양 문화에서 극장이 이 정도로 광범위하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인가 하고 놀랄 때가 있는데, 우리는 수술실의 옛 명칭이 수술 극장(operating theater)이었음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 P203

군사(軍事)라는 것의 극장적 요소들은 흔히 지적되고 있다. 실용적이라 보기 어려운 번쩍이는 군복이라든지, 해마다 광장에서 펼쳐지는 열병식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이런 것은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 P203

실제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전략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 같은 민간인 지역을 초토화시켰다는 뉴스가 나온다. 물론 이는 공격자가 자신들이 이처럼 무자비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알리려는 것이다. - P203

전쟁은 자체의 목적과 효율성을 따르는 게 아니라 정치에 복종할 뿐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정치의 연장"이라는 경구처럼, 전쟁 중에도 외교 협상은 계속된다. 전쟁 중 정치가 사라지거나 우위를 잃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정치의 입장에서 최종 목적은 유리한 강화 조약의 체결이며, 전쟁은 이를 위한 협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이 평화 협상과 반대이기는커녕 바로 그 테이블에 펼쳐 놓는 수단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전쟁의 민얼굴에 좀 더 접근하게 된다. - P204

그 극장의 진짜 무대는 스크린이 아니라 관람석이라는 것 - P204

챗지피티(chatGPT)-3는 샌프란시스코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오픈에이아이가 공개한 프로그램이다. - P206

화이트칼라 노동을 기계가 대신해 주는 미래가 갑자기 우리에게 맛보기로 제공된 것이다. 몇 초 만에 끝나는 것을 노동이라고 부르게 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 P206

사람들의 의견은 대체로 ‘약간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이걸 기계가 썼다니 놀라울 따름‘으로 수렴된다. - P206

그 이름이 가리키듯 챗지피티는 대화용 프로그램인데, 중요한 건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 P207

우리는 인공지능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어려운 문제를 "사람이 이 기계를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는가?"라는 판별 가능한 테스트로 바꾸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화하면서 기계가 기계인지 사람이 못 알아차리는 지경이 되면, 그 기계는 지능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207

체호프의 단편 「문학 교사」(1894)에는 세상 사람이 다아는 것밖에 말할 줄 모르는 인물이 나온다. - P207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 P208

편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자신의 체험을 문학화하려는 욕구인데, 이는 문학가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곤경의 탈출구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 P208

자신의 경험을 문학의 언어로 재발견하려는 욕구는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할" 가능성이 있다. - P209

농민공(農民工)은 중국에서 이주 노동자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 P210

"인간은 시적으로 산다."라는 하이데거의 말 - P211

하이데거가 예로부터 사회주의권에서 언제나 인기 철학자였다는 사실 - P211

자기 삶의 자유를 찾기 위해 철학을 추구하는 태도가 훨씬 훌륭 - P212

‘그가 뭘 읽든 넌 신경 쓰지 마‘ - P212

핸디캡 (지적이든 경제적이든)은 참견쟁이들을 모여들게 하는 좋은 조건 - P212

경제적인 욕망도 네 처지에 맞게 가지라고 충고하는 세상에서 독서에 관한 참견쯤이야 애교일지도 모르겠다. - P212

노동과 가난. 사람들을 가차없이 책과 멀어지게 하는 이유들이 첸지의 경우에는 반대로 책을 집어들게 했다. - P213

‘못 찍은 사진도 지우지 말 것‘ - P214

물건을 줄이는 삶, 간소한 삶에 대한 담론은 늘 있었지만 대유행이 되기도 했다. 공간은 비울수록 아름답고, 옷은 몇 벌이면 충분하고, 매일 물건 하나씩 줄여야 하며, 그게 지구에도 이롭다는 것이다. - P215

이 담론이 다이어트와 똑같은 갈망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나는 이 삶을 지고 가는 것이 힘들고, 출발점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으며, 자신과 주변에 대한 지배력을 회복해야겠다는 것이다. 물건들은 체중과 같고, 물건이 없거나 버려서 생긴 불편은 배고픔이나 운동의 고통과 등가이다. - P215

간소한 삶과 다이어트의 유사성은 피상적인데서 그친다. 다이어트는 자기의 지방을 태우지만, 간소한 삶은 물건을 내버릴 뿐이다. - P215

지방은 본래 태우라고 쌓아 두는 것이므로, 다이어트는 지방의 본질을 존중하고 목적의 실현을 돕는다고 할 여지도 있다. - P215

물건을 버리는 것은 이와 다르다. 여기에는 일방적인 관계 단절이 있을 뿐 물건의 특성을 존중한다거나 적절한 사용법을 찾아보려는 관심은 들어 있지 않다. 자신이 물건뿐 아니라 다른 대상에도 이런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면, 과연 간소함으로 삶의 변화를 얻을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 P216

‘우리는 허기진 사람처럼 물건을 사서 공간을 채우므로‘ 따라서 ‘뭔가 반대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진실은, 큰 시간 단위로 보면, 우리가 열심히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 P216

우리는 공간이 좁아서, 또는 새 물건을 들이기 위해, 또는 심리적, 심미적 이유에서 많은 사물들과 작별한다. - P216

일상이 된 이 버리는 삶은 삶의 허망함의 주된 원인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허망함은 정직한 감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건과 의미 있는 연관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물건의 가능성을 완전히 써 버리지도 않은 채 버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가 인생을 다루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 P216

물건을 끝까지 다 사용했을 때 쾌감이 일어난다고 말했던 스토아 철학자들이 있었다. 예컨대 치약이나 장판 테이프를 끝까지 다 쓰면 우리는 실제로 기쁨을 얻는다.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감정이라는 건 확실하다. - P216

삶의 목적은 자신을 생산하는 것이고 인간은 그것을 완전히 소모해야 한다고 말한 키르케고르 - P217

자신을 소모할 때 인간은 출발점에 서게 되는 거라고 - P217

인생의 실마리는 물건을 치우는 쪽보다. 사용 방법을 이해하고 끝까지 써 보려고 하는 쪽에 섰을때 더 찾기 수월해지는 건지 모른다. - P217

셰익스피어의《겨울 이야기》. 배우자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연극이다. - P219

에리크 로메르의 영화 「겨울 이야기」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언제 시작할 수 있는가? - P219

죽음만 우리의 상상 속에서 유예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인생을 사는 날도 계속 연기되고 있는데, 내가 준비가 안 되었거나 객관적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19

"지금까지 난 대충 산 겁니다!" - P219

자신이 임시적으로 사는지 진짜로 사는지 타인이 알아차릴 수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본인들은 그걸 구분하면서 산다. - P220

어쩌면 우리가 타인을 공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그의 진짜 삶과 임시적인 삶, 양보할 수 없는 것과 어찌되든 상관없어 하는 것을 가려서 살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 P220

내게는 중요한 일인데 이 일에 엮인 상대방은 이게 자신 인생의 본령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온도차를 내가 감수하면 되는 걸까? - P220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실무적이든 윤리적이든 책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 P220

왜 우리는 인생을 살지 않는가. 사랑했던 것을 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의 죽음과 부재를 받아들이고 애도를 표하자. 그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간으로 돌아오는 첫걸음이다. 부활은 아마 그 다음에야 가능한 것일 게다. - P221

슈레버는 1903년 『어느 신경병 환자의 회상록』을 출판했다. 여기서 신경병(Nervenkrankheit)은 정신병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신경증(neurosis)과는 다르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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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 이어서 ‘용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개인의 삶이라는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 한 차원 진화하여 인류 역사에 있었던 사건에서 용서와 관련한 논의를 하기 위해 저자는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사례를 간략히 소개한다. 핵심은 용서의 주체인 피해 당사자들이 용서의 시기나 방법도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떠올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일이 다 나열하긴 힘들지만 각각의 이슈들에 있어서 피해 당사자들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의사가 용서를 하는 것이든 하지 않는 것이든 간에 선택은 그들의 몫에 맡겨야지 당사자도 아닌 제 3의 인물이 와서 용서를 해라 말아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내는 목소리에 대해서 제 3자들이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전반적으로 바람직한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또한 여기 별도로 인용하진 않았지만 용서와 관련된 정호승 시인의 시《이슬이 맺히는 사람》이라는 시를 통해 내게 상처준 사람에 대해 분노하는 대신 연민하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지만 이것의 핵심은 결국 내가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듯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이었다.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독자인 내 개인적으로는 큰 그림에서 봤을 때 웬만큼 용서가 되는 것이라면 가급적 용서하는게 내 신상에도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물론 세상엔 정말 용서하기 힘든 일들도 종종 발생하기에 모든 일에 대해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에게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면 기꺼이 용서하는 것이 궁극에는 나도 어떤 다른 상황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용서‘라는 키워드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데, 저자는 이러한 ‘부끄러움‘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부끄러움은 자기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볼 수 있는 반면교사의 역할도 있기에 긍정적인 면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이라는 키워드와 관련하여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의《마음》이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한 번 읽어봤던 작품이라 저자가 느끼는 이 작품에 대한 생각이나 감상이 궁금했다. 읽으면서 내가 읽고 느꼈던 것과는 또다른 관점이나 느낌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 이런걸 보면 같은 작품을 읽어도 읽는 사람에 따라 감상의 깊이나 느낌이 천차만별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나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이 났지만 그 속에서 발견하는 어떤 메시지에 있어서 전문가인 저자의 예리함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고, 인간관계 혹은 세상에 대해 너무 단순하고 한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여러가지 요인들을 고려하는 것이 삶에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선택‘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이 이어진다. 저자는 먼저 자신이 걸어왔던 인생길을 독자들에게 간단하게나마 소개하면서 여타의 이유로 인해 임시로 시작했던 강사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음을 고백한다. 저자의 이력에 관해 자세히는 몰랐던 독자인 나로서는 조금 의외였다. 왜냐하면 저자가 현재 공무원 국어 영역에서 아주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알려져 있기에 젊은 시절부터 강사의 꿈을 키우고 지금까지 걸어왔을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이 책의 저자뿐만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든 간에 인생의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선택을 하고 나면 그 선택이 또다른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하는 것들을 보게 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어떤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지 않은 혹은 못한 것을 자꾸 돌아보면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며 엄청난 내적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도 이런 갈등의 순간이 잠시 있었지만 선택의 이유가 내 자신의 의지든 아니든 간에 결국 자신이 선택한 길에 들어온 이상 그 선택의 앞에 놓여 있는 길에 집중해서 잘 걸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고 저자 본인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듯 하다.

독자인 나도 이 부분(‘선택‘)을 읽으면서 과거에 했던 선택을 잠시나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배경이 다들 다르기에 성급하게 일반화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마 누구나 살면서 아쉬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파도를 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매순간 파도가 들이닥칠 때마다 그 파도에 잘 올라타면 내가 의도했던대로 인생이 풀려가는 것이고, 파도에 휩쓸린다면 중심을 못잡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이동해서 다시 거기서 새로운 파도가 올 때를 기다리며 또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인생을 파도에 비유한 게 내가 어디 다른데서 들어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 p.263에 밑줄친 문장을 보면 ‘깨달음‘과 ‘결단력‘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깨달음이 일종의 지혜라면 결단력은 일종의 실행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혜와 실행력이 합쳐지면 능치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이 ‘선택‘에 대한 내용에서 저자는 이광수의《무정》이라는 작품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학창시절에 이런작품이 있다는 것만 들어봤을 뿐 제대로 읽어보지는 못했던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나마《무정》의 내용과 메시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내용이야 해당 작품을 찾아 읽어보면 될 일이고, 메시지 부분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아주 의미있다고 느껴졌다. 비록 나온지는 좀 오래된 작품일지 몰라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인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p.264에 밑줄 친 《무정》의 마지막 문장은 어둡고 힘든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빛처럼 보였다. 뭔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면서 희망이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어떤 굳건한 의지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선택‘이라는 것과 관련해서 생각을 정리정돈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유익하지 않았나 싶다.

개인의 삶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용서는 큰 화두입니다. 일례로 매년 홀로코스트 추모일에는 이스라엘과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희생자를 기리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면서 용서의 마감일을 정해놓지 않은 것이죠. - P232

용서의 주체들은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 일과 관련된 기록을 책으로 펴내면서 끊임없이 역사를 되짚습니다. 용서의 주체들이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죠. - P232

용서의 주체는 결국 피해 당사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용서의 시기나 방법도 그들이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사회는 언제까지고 기다리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233

우리가 용서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서로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아야 하는데, 심지어는 내가 아주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상처의 깊이는 깊어지고 빈도는 잦아지죠. - P234

해가 지고 나면 가슴에 분을 품지 말라 - P234

분이 맺히는 것이 아니라 ‘이슬이 맺힌다‘ - P236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연민하게 되었다는 뜻 - P236

왜 분노하는 대신 연민하게 되었을까요?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가슴에는 이슬이 맺히는 용서와 연민이 필요한 것이겠죠. - P237

다만 용서의 주체는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용서하고 싶지 않은 이에게 용서를 강요하면 분노만 깊어질 뿐입니다.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살아갈 연민도 생겨날 것입니다. - P237

용서하고 싶은 일은 용서하고, 아직 담아두고 싶은 일은 그대로 담아둔 채 오늘도 별다르지 않은 우리네 하루를 살아갑니다. - P237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부정적 의미만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반면교사 삼으면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고, 시대정신을 확립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건강하게 승화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 P240

자신의 부끄러움이 어떤 모양인지에 따라 삶의 모습은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 P240

숙부에게 배신당하고 괴로워하던 선생님은 친구의 죽음을 통해 자신도 숙부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숙부를 경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욕망을 앞세워 스스로를 기만하고 친구를 배신했으니까요. - P242

세상에는 그 어떤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 P244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만큼 영혼이 올곧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 P244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 그것에 관해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다면 그 감정은 자신에 대한 혐오로 전이되어 고독감이 깊어지면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속 선생님처럼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 P245

끝내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면 우리 삶에는 빈 공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 P245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할 대상이 없는 것처럼 사람을 약하고 고독한 존재로 만드는 상황도 없는 것 같아요. - P249

오늘날 사회에서 고립과 단절은 너무나 흔하죠.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이 가능한 세상이라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단절과 고립에 따른 부작용으로 점점 더 파편화되어 가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 P249

문학의 면면들은 현실의 삶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문학 속 등장인물처럼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지는 않지만, 그들의 면면은 우리 삶 속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잖아요. - P250

선생님의 삶 속 허무는 어쩌면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그 속에서 나의 역할을 규정한 탓에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는 관계는 결코 단순하게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겪는 감정도 때마다 모두 다릅니다. - P251

자연이라는 존재를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를 보고 그저 ‘바다네‘라고만 생각한다면 그 순간의 특별함은 사라집니다. - P251

얼마 전 유행했던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라는 말처럼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만 살고 싶어서 ‘세상은 다 그런 거지. 그게 그거야‘라고 단정 짓는다면 누구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을까요?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만 생각하면 한순간도 충만할 수 없습니다. - P251

허무주의에서 비롯된 고독감이 극단적인 고립감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나치게 도덕적인 관념 속으로 몰아넣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 P251

우리는 모두 백석의 시「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구절처럼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을 소처럼 계속 되새김질하며 사는‘, 저마다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 물론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도요. - P251

후회는 무용지물입니다. 이제는 그저 내가 선택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합니다. 나의 선택을 믿고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힘, 그런 배짱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쫓겨 정해진 방향으로 걸어간다고 해도 그다음의 길을 만들어가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죠. - P256

선택의 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마음가짐 - P256

아쉬움은 또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고 내가 선택한 길을 묵묵히 가다 보면 새로운 가능성과 만날 수 있기 때문 - P256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 P256

그리운 것은 잊고 외면하는 게 아니라, 그리운 대로 두고 나의 선택을 받아들여 보세요. 그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나의 선택에 몰입할 힘을 갖게 됩니다. - P257

도망갈 생각에만 빠져 있으니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더군요. - P257

또 다른 선택을 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겠다는 위기감 - P257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기 - P258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일단 포기하자!‘ - P258

결국 상황에 관한 객관적 인식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죠. - P258

내가 원했던 삶은 아니었지만 이 길이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놀라운 몰입감이 생기면서 점점 두드러진 성과를 내게 되었습니다. - P258

때때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포기할 줄 아는 것, 그리고 다른 길이 없다면 지금의 선택에 몰입하는 것이 또다른 삶을 펼칠 계기가 된다는 것 - P258

무언가를 선택한 후에는 결과를 걱정하며 망설이기보다는 뛰어들어서 몰입과 집중을 해야 성과가 납니다. 달리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죠. 계속 흘끔흘끔 뒤돌아보며 자기 위치를 확인하거나 시계를 쳐다본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몰입을 방해해서 좋지 않은 결과만 낳을 뿐이죠. - P258

인생을 살아가며 모든 걸 다 가지고, 모든 걸 다 뜻대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오만입니다. - P259

선택의 결과도 예측하거나 장담할 수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일단 선택한 후에는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는 몰입 그리고 한눈팔지 않는 집중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몰입과 집중이 시간의 힘과 만나 쌓여야만 비로소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 P259

선택의 갈림길을 이야기할 때 항상 떠오르는 소설 중 하나가 바로 이광수의 『무정』입니다. 이 소설은 최초의 근대장편 소설이자 신문학사상이 반영된 기념비적인 계몽소설이죠. 문학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소설 - P259

이 소설에는 조선사회의 전형화된 모습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면적인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 P259

『무정』의 주인공들은 그 운명 앞에서 고뇌하고 흔들리는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P260

‘계몽주의 소설‘이라는 틀 안에만 가둬놓을 수 없는 이유는 네 명의 인물 모두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결정하는 법을 배워나가기 때문입니다. - P260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할 것이냐, 아니면 열정을 좇을 것이냐 - P262

‘진정한 사랑이 아니므로 낡은 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생활을 열라‘ - P263

결국 인생의 방향을 선택할 때 필요한 것은 깨달음과 결단력인 것이죠. 결단할 용기가 없다면 어떤 깨달음도 쓸모가 없습니다. 또한 깨달음이 없어도 결단과 열정의 힘만으로는 끝까지 나아갈 수 없죠. 아무리 내면의 의지가 강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 이정표가 되어줄 지식과 지혜, 조력자가 없다면 그 결단은 무모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 P263

영채가 새로운 시대에서 갈등하며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고 체념한다면 갈등할 이유가 없겠지만『무정』의 인물들은 여기저기 부딪히고 고민하고 좌절도 겪으면서 결국 스스로의 인생을 선택하고 성장합니다. - P263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 P264

현실이 자꾸 내게 상처를 주고 있다면 우리도 내 안의 작은 불빛들을 조금씩 키워나가 보는 건 어떨까요?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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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 몸에 5가지 흐름[혈액(림프), 위장, 소변, 공기, 기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이 흐름에 막힘이 없어야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이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 나온 용어가 ‘신진대사‘라는 것인데, 오늘은 이 말의 의미를 하나하나 파헤쳐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마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한 것이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어찌됐든 핵심은 걷기를 통해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여 우리 몸의 흐름을 좋게 만들자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선 혈액순환과 관련된 얘기가 나온다. 원활한 혈액순환이 중요한 이유와 그 과정에 대한 얘기를 비롯해 인체와 관련된 과학적인 내용들이 등장해 마치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우면서 잠깐 스쳐지나갔던 과학지식들을 다시 한 번 리뷰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지금 다시보니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이해도 잘되고 좋았다. 과학분야에 관심과 흥미가 생기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전문분야나 세부분야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기초과학 정도만 제대로 알아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듯 하다.

신진대사(新陳代謝)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명사로서 ‘생명 유지를 위해 생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물질의 화학 변화‘ 혹은 동사로서, ‘걸러서 배출해 내는 일을 하다‘이다. 한자 뜻풀이를 하자면, 새것(新)이 들어와 진(陳)을 치고, 옛것이 버려진다(謝)는 뜻이다. 즉, 새로운 음식이 들어오고 소화된 음식은 배설된다는 것,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 체내에서 순환한 뒤 나가는 것.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고 오래된 세포가 없어지는 것, 새로운 호르몬이 만들어지고 오래된 호르몬이 없어지는 것 등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 P119

규칙적이고 꾸준한 걷기는 소화, 배설, 공기의 흐름, 혈액의 흐름, 호르몬의 흐름에도 도움이 되고, 새로운 세포의 생성에도 도움이 된다. 이 모든 흐름에 막힘이 없는 것, 즉 원활한 순환이 곧 생명 유지의 기초이다. 즉, 걷기는 신진대사 증진에 대단히 유익한 운동이다. - P119

비타민(Vitamin)이라는 단어는 폴란드의 과학자 카지미르 풍크가 생명(vital)과 아민(amine, 질소를 가진 화학물질) 을 합쳐서 만든 것이다. - P119

걷는 동안 땀을 흘리면 체내 노폐물이 땀으로 배출되어 만성피로까지도 해소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 P120

걷기는 만성피로 해소 및 면역력 증강에도 매우 유익한 운동이다. 이왕이면, 피톤치드(phytoncide)가 많은 숲길에서 걷는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 P120

(피톤치드는) 식물이 병원균·해충·곰팡이에 저항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이다. 피톤치드를 호흡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 ‘phytoncide‘는 희랍어로 ‘식물의‘라는 뜻의 ‘phyton‘과 ‘죽이다‘라는 뜻의 ‘cide‘가 합쳐져서 생긴 말이다. - P120

음식이 소화되면 영양분으로 바뀌어 몸속 곳곳으로 이동한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음식이 위와 장을 거치면서 소화되어 혈관을 타고 간으로 가고, 간을 거친 피는 심장과 폐를 거쳐 우리 몸속 곳곳의 세포로 흘러가게 된다. 그런데 음식 속에 우리 몸에 맞지 않는 것이 들어 있다면, 결국 혈액 속으로 들어와 간에서 이상을 일으키기도 하며, 혈액 속에 있어서는 안 될 노폐물이 발생하게 함으로써 혈액순환에 문제를 일으켜 손발이 저리고 아프면서 몸 곳곳에서 염증반응이 생길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혈관 내벽에 노폐물이 쌓이면서 혈관을 막기 시작하고(그 결과 혈관이 좁아지면 고혈압, 동맥경화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심해지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을 일으키게 된다. - P120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혈액공급이 잘되어야 온몸의 세포가 건강하다. 내부장기에도 혈액공급이 잘되어야 건강하다. 위장, 소장, 대장 등 소화기관의 근육들도 혈액공급을 잘 받아야만 그 근육들이 활발하게 움직여 연동운동을 함으로써 음식물을 제대로 분해할 수 있다. 음식물이 제대로 분해되어야만 영양분이 세포에 제대로 공급될 수 있다. 영양분이 세포에 제대로 공급되어야만 정상적인 세포 분열이 가능해진다. - P121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정상적인 세포 분열이 불가능해지고, 이때 염증반응이 일어난다. 이것이 만성화되면 궤양이 되기도 하고, 더 만성화되면 암 조직으로 변하기도 한다. - P121

인체 혈관의 총 길이는 약 10만km인데, 크게 동맥, 정맥, 모세혈관으로 분류된다. 혈액은 심장의 좌심실에서 방출되어 ‘대동맥→중동맥→세동맥(細動脈/소동맥)→모세혈관/우회로(By-pass)‘를 거쳐 장기나 근육을 비롯한 온몸 구석구석의 세포에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수거하여 세정맥(細瀞脈/소정맥)→중정맥→ 대정맥‘의 경로를 거쳐 심장으로 돌아온다. - P121

동맥, 정맥, 모세혈관 외에 ‘측부혈행로側副血行路)‘라고 총칭하는 혈관의 경로도 있다. 세동맥이나 세정맥끼리 모세혈관 이전 부분에서 교통하는 것(혈관문합), 동맥의 가지가 문합에 의해 서로 교통하는 것(작은 의미의 측부혈행로), 모세혈관을 지나지 않고 동맥과 정맥이 교통하는 것(글로뮈, 동정맥문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동맥과 정맥을 직접 잇는 우회로와 같은 다른 경로도 있는데, 이것이 글로뮈(Glomus)/동정맥문합(Arterio-venous anastomosis)이다. 프랑스의 해부학자 레알리 레알리스가 1708년에 혈액이 모세혈관 외에 글로뮈를 통해서도 순환함을 밝혀냈다. 즉, 글로뮈는 세동맥과 세정맥 사이에 있는 혈관의 우회로로서, 혈액은 상황에 따라 모세혈관 혹은 글로뮈를 통해 흐른다. - P121

인체에 있는 약 10만km (지구 둘레의 두 배 이상) 길이의 혈관 중 약 97%는 모세혈관이고, 인체에는 약 51억 개의 모세혈관이 있다. 심장에 있는 네 개의 판막, 연골 조직, 눈의 각막이나 수정체 등을 제외하고 몸의 다양한 부분에서 세동맥과 세정맥 사이에 그물처럼 퍼져 있다. - P122

모세혈관 안쪽에는 혈관내피세포가 있는데, 이 세포는 그 벽이 얇아서 세포의 틈새나 작은 구멍을 통해 세포와 물질을 교환한다. - P122

혈장은 투과성이 있어 모세혈관의 벽을 통해 조직간액에서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받아들인다. 반대로 세포는 조직간액을 통해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받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배출한다. - P122

즉, 산소와 영양소는 모세혈관을 통해 세포로 운반되고, 세포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은 모세혈관을 통해 배출되므로, 세포가 건강하려면 모세혈관이 건강해야 한다. - P122

핏속에 기름(지방)이 증가하면 점차 혈관 벽에 쌓여서 혈관 벽이 두꺼워지고 혈관 내부가 좁아지며, 기름이 쌓인 곳에 혈전(血栓, 피떡)이 생기게 되는데, 이와 같이 혈관이 두꺼워지고 좁아지는 것이 동맥경화이다.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대표적인 병이 바로 동맥경화이다. - P123

죽상경화증도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질환인데, 혈관 안쪽 벽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혈관을 막는 것이다. - P123

동맥의 구조는 수도파이프와 비슷한 원통형 구조로 되어 있다. 동맥을 구성하는 벽은 세 종류의 서로 다른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층을 바깥부터 외막, 중막, 그리고 내막이라고 한다. 내막의 맨 안쪽, 즉 혈액과 접촉하는 면은 내피세포라고 하는 한 겹의 세포층으로 덮여 있다. 동맥경화증은 병변의 분포 범위가 미만성으로 넓고, 주로 동맥의 중막에 퇴행성 변화가 일어나서 섬유화가 진행되어 혈관의 탄성이 감소하게 된다. 이로 인해 노인들에게서 많이 관찰되는 수축기 혈압을 상승시키게 되어 심장의 근육이 커지고 두터워지는 심근비대가 일어나게 된다. - P123

죽상경화증(atherosclerosis, 粥狀硬化症)이란, ‘죽(먹는 죽과 같이 걸쭉한 상태)‘과 ‘경화(단단하다)‘를 합친 단어이다. 죽상경화증은 병변의 부위가 국소적으로 혈관의 일부분에서만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동맥의 벽을 이루는 세 층 중에서 맨 안쪽에 있는 내막에 변화가 생긴다. 동맥의 내막에 지방과 세포의 덩어리인 죽종(또는 죽상종)이 생겨 혈관이 좁아지고 결과적으로 혈액의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 죽상경화증 때문에 병을 일으키는 장기에 따라서, 예를 들면 뇌동맥의 죽상경화에 의한 뇌경색, 관상동맥의 죽상경화에 의한 협심증 등 구체적 병명이 붙게 된다. - P123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고혈압이나 노화 현상인 반면에, 죽상경화증을 일으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혈액 속에 콜레스테롤이 너무 많은 상태인 고콜레스테롤 혈증이라는 것도 중요한 차이이다. 동맥경화증이나 죽상경화증이란 말은 구체적인 병명이 아니고 우리 몸 안의 혈관 특히 동맥의 병적인 변화를 말하는 의학용어이다. - P123

혈관에 문제가 생겨 혈류가 정체되면 고혈압, 고지혈증, 수족냉증, 남성의 발기력 저하, 뇌경색, 뇌졸중, 치매, 부정맥, 다리 통증 등이 유발될 수 있다. - P123

부정맥은 심장근육을 움직이는 전기신호에 이상이 생겨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이로 인해 혈액 공급이 제대로 안 돼 몸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는 질환이다. 실제로 부정맥은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심장마비로 인해 급사로 이어질 수 있다. 모든 급사 중 95%의 직접적인 원인이 부정맥으로 지목된다. - P123

당뇨병 및 심근경색, 협심증, 허혈성 심장질환은 혈관 노화와 대단히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혈관의 유연성이 떨어지면 심장에서 혈액을 내보낼 때 혈압이 과도하게 상승할 뿐만 아니라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고 정체되기 때문에 심장이 더 강하게 혈액을 내보내야 하고, 그 결과 심장비대증도 유발할 수 있다.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심장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심장 질환을 예방하려면 혈관을 건강하게 해야 한다. 혈관이 건강하면 온몸이 건강해진다. - P124

혈액순환의 원동력은 심장이지만, 모세혈관 등의 말초혈관까지 가면 그 힘이 약해진다. 이것을 보완하는 것이 근육의 수축과 확장에 의한 모세혈관의 수축과 확장이다. - P124

근육의 수축과 확장에 의한 모세혈관의 수축과 확장으로 혈액순환을 더욱더 원활하게 할 수 있고, 혈관 탄력을 높일 수 있으며, 그 결과 혈액이 더 깨끗해진다. - P124

혈액순환과 혈관 탄력의 향상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근육을 수축 · 확장시켜 주는 운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다리에는 몸 전체 근육의 70%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걷기 운동을꾸준히 실천하면 몸 전체 근육 중 대부분의 근육이 수축 · 확장을 반복함으로써(젖 짜기 효과) 혈액순환 활성화, 고혈압 개선의 효과를 크게 거둘 수 있다. - P124

한방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만병의 근원은 하나, 즉 혈액의 오염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 P125

몸이 차가워지면서 혈관이 수축되고 혈행(血行)이 원활하지 못한 것을 ‘어혈‘이라 하는데, 혈행(血行)이 악화되면(어혈) 혈액에 각종 노폐물이 쌓여 피가 혼탁해지는 ‘오혈(汚血)‘이 된다. - P125

혈액은 체내를 40~60초에 한 바퀴씩 도는데, 오염된 혈액이 매일 60조(兆) 개의 세포와 만나게 되면 세포나 조직을 손상시켜 발진, 염증, 동맥경화, 고혈압, 출혈, 암 등의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 P125

반면, 오염원이 전혀 없는 심산유곡(深山幽谷)의 명경지수 (明鏡止水)처럼 피가 깨끗하다면 60조 개의 세포에 산소와 영양이 잘 공급되고 노폐물이 잘 배출되며 백혈구가 활발하게 기능함으로써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또한, 심산유곡의 명경지수처럼 깨끗한 피를 유지하기 위해걷다 보면 마음도 깨끗해지고 영혼도 맑아진다. - P125

혈관 건강과 혈액 건강을 위해서는 피를 탁하고 끈적끈적하게 하며 혈전을 만들고 혈관을 두껍고 좁게 만드는 당분(달콤한 음식)과 동물성 지방(기름진 음식)의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 또한, 소식(小食)을 생활화하면서 금주와 금연을 실천함으로써 혈전 생성인자를 줄여야 한다. - P125

규칙적이고 꾸준한 걷기를 통해 혈관 탄력을 높여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피가 깨끗해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걷기는 천연 혈전용해제(thrombolytic agent)이기도 하다. - P126

젖소의 젖통에 젖이 가득 들어 있더라도 흘러내리지 않는다. 우유 입자가 유선보다 굵기 때문이다(우유 입자가 자동 마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젖소의 젖꼭지를 송아지가 빨아먹거나 유축기로 짜 주면 유선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우유가 빠르게 흘러나온다. - P126

마찬가지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혈류가 정체되지만(혈액의 성분인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혈장 등이 모세혈관 내부를 가득 메우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면 혈액순환이 빨라진다. 그 이유는 몸을 움직일 때 근육이 수축. 확장되면서 근육 속을 지나가는 모세혈관도 수축 • 확장을 반복하여 온몸의 혈액순환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 P126

이 원리에 착안하여 운동할 때 모세혈관이 수축 · 확장하여 혈액순환이 빨라지는 것을 이시하라 유미 원장은 ‘젖 짜기 효과(milking action)‘라고 명명(命名)하였다. - P126

심장박동만으로는 혈액을 온몸에 보내기가 어렵다. ‘젖 짜기 효과‘가 보조되지 않으면 혈액순환 불량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 운동을 하면 근육이 수축. 확장되면서 혈관도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여 혈액순환이 좋아지는데, 하반신에는 몸 전체 근육의 70%가 모여 있기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젖 짜기 효과‘가 크게 일어나 매우 효과적으로 혈액순환을 촉진시킬 수 있다. 걷기가 혈액순환 개선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P126

혈액의 구성요소 중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의 지름은 약 8.5 ㎛(마이크로미터)이고, 혈액의 통로인 모세혈관의 지름은 약 10㎛(머리카락 한 올의 1/5~1/7 정도이다)인데, 모세혈관의 안쪽 벽에 쌓인 각종 노폐물(특히, 동물성 지방)로 인해 모세혈관의 내부가 좁아져 있기 때문에 ‘적혈구(8.5m)가 모세혈관(10㎛) 속을 원활하게 통과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P127

혈액의 성분에는 적혈구 외에도 백혈구, 혈소판 혈장도 들어 있을뿐만 아니라, 백혈구의 크기는 무려 12~15㎞에 이르는 것도 있다. 즉, 좁은 모세혈관(10㎛) 내부가 혈액의 여러 성분으로 꽉 채워지기 때문에 혈류가 정체된다. - P128

1㎛(마이크로미터)=0.001mm, 즉 1m의 1/1,000,000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설명하자면, 1m(미터)는 1km(킬로미터)의 1/1,000이고, 1mm(밀리미터)는 1m(미터)의 1/1,000이며, 1㎛(마이크로미터)는1mm(밀리미터)의 1/1,000이고, 1nm(나노미터)는 1㎛(마이크로미터)의 1/1,000이다. 다시 말하자면, 1㎛(마이크로미터)는 1m(미터)의 100만분의 1이다. 참고로 아들 단위를 1m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다. 1m=1/1,000km, 1mm=1/1,000m, 1um=1/1,000,000m, 1nm=1/1,000,000,000m. - P127

백혈구는 적혈구와 달리 종류가 다양한데, 세포질의 특이 과립의 존재 여부에 따라 크게 과립성 백혈구(顆粒性 白血球, granulocyte)와 무과립성 백혈구(無顆粒性 白血球, agranulocyte)로 나뉜다. 과립성 백혈구에는 호산구(好酸球, eosinophil), 호염기구(好鹽基球, basophil), 호중구 (好中球, neutrophil)가 있다. 과립성 백혈구는 염증반응에 관여한다. 무과립성 백혈구에는 림프구 (림프球, lymphocyte)와 단핵구(單核球, monocyte)가 있다. - P127

걷기 운동을 하면 모세혈관의 ‘수축•팽창(milking action)‘에 의해 혈관 내벽에 붙어 있던 혈전이나 노폐물이 쉽게 떨어져 나가면서 혈관 내부가 넓어지고(혈관 내벽 청소) 혈관 탄력이 향상되어(혈관 노화 지연) 고혈압이나 동맥경화도 개선되고 피가 깨끗해지는 효과까지 발생한다. 그 결과 심장질환도 예방할 수 있게 된다. - P128

뿐만 아니라 세포들이 신선한 산소와 영양소를 원활하게 공급받고 노폐물이 쉽게 배출됨으로써 만성피로가 해소되고 몸에 생기가 돌게 된다. 뇌 혈류도 증대되어 뇌세포가 건강해지고 기분도 좋아지며 집중력도 향상된다. 당연히 학습능력이나 연구능력도 향상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다. 뇌 혈류 증대로 뇌세포, 특히 해마(馬)가 건강해짐으로써 혈관성 치매도 예방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걷기의 효과이다. - P129

장시간 움직이지 않으면 (운동을 하지 않으면), 혈류가 정체되고(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고), 혈류가 정체되면 혈액이 탁해지고(汚血). 그 결과 온몸의 세포가 신선한 산소와 영양소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며 노폐물을 회수하지도 못하여 온몸의 기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염증(장기적으로는 암세포)이 생기게 된다. 그 결과, 늘 무기력증 상태를 보이고, 뇌 혈류가 정체됨으로써 뇌세포가 노화되며(특히, 해마가 노화되면 치매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집중력이 떨어져 학습능력도 저하된다. - P129

우리는 피부(몸 바깥쪽) 청결을 위해 깨끗한 물과 때밀이 타월을 사용하여 목욕(shower)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몸속 청결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 우선, 깨끗한 물(순수한 물, 산성이 아닌 ph7.4의 중성수)을 마셔야 한다. 그리고 걷기 운동을 통한 모세혈관의 수축 팽창 효과(milking action, 젖 짜기 효과)로 혈관 내벽에 쌓여 있는 노폐물을 배출시켜야한다. 걷기 운동은 때밀이 타월로 목욕을 하는 것처럼 혈관과 세포를 청결(건강)하게 해 준다. - P129

걷기 운동은 심박 수를 증진하는 유산소 운동으로 체내에서 일산화질소(NO, nitrogen monoxide)를 생성하는데, 일산화질소는 주변의 근육세포에 작용하여 근육을 이완하는 효소를 활성화함으로써 혈관을 확장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혈관이 확장된 결과 조직에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게 된다. 이 점에 있어서도 걷기 운동은 탁월한 효과가 있다. - P130

만성피로와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중에는 취침 시간 외의 시간에도 수시로 누워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휴식으로 피로를 회복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기만 하면 점점 더 몸의 기운이 쇠약해지면서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 P130

식물처럼 꼼짝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심장질환이나 뇌질환으로 인해 실제로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 만성피로와 무기력증에 빠졌다고 생각할수록 수시로 조금씩이라도 움직여 주는 것이 좋다. 수시로 움직여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온몸의 세포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배출시킴으로써 만성피로와 무기력증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생기(生氣)와 활력(活力)을 불러일으키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 - P130

호르몬의 원리로 보자면,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는 걷기 운동을 하면 혈압을 내리는 작용을 하는 도파민 (dopamine)이 증가하고, 혈압을 올리는 카테콜아민(catecholamine)의 분비가 억제되어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준다. - P131

걷기 운동을 하면 혈액이 한 곳에서 뭉치지 않고 온몸 구석구석에 잘순환하게 되어, 고혈압과 동맥경화, 심장질환을 예방하고 개선하며 온몸의 기력이 왕성해지는 효과가 있다. 당연히 뇌 혈류 증대로 집중력도 향상되고, 학습능력도 향상되며, 의욕도 왕성해진다. - P131

한편, 턱걸이나 팔굽혀펴기 정도의 운동이 아니라 지나치게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운동, 즉 한순간에 많은 힘올 쓰는 운동은 말초혈관을 압축하게 되어 혈압을 올라가게 한다. 근력 운동(weight training)도 우리 몸에 필요하고 유익한 운동이지만, 지나치게 무거운 물건을 이용한 운동은 고혈압을 초래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각각의 운동의 특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체력과 체질에 맞게 여러 가지 운동을 적절히 조화롭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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