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라, 눈물이 네 몸을 녹일 것이니 - 인도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이화경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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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아보면 나름대로는 적지 않은 곳을 방문한 것 같은데 특별하다는 느낌을 얻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뜨내기의 시선으로, 주마간산 식으로 지나치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만 보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미국에서 머물적에는 그래도 여행 일정이 나오면 적어도 한달 이상은 무엇을 볼 것인지 나름대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귀국한 다음에는 업무와 관련하여 방문하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그 곳에 사는 사람의 시각으로 그 사람들의 일상을 같이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도는 여전히 동경하는 나라이면서도 선뜻 나서게 되지 않는 저항감이 있는 나라입니다. 아직까지는 학회나 업무와 관련하여 인도를 방문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소설가 이화경님의 인도여행 산문집 <울지마라, 눈물이 네 몸을 녹일 것이니>는 제목이 주는 독특한 느낌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인도와 눈물’이 어떻게 연결이 될까? 인도에 가면 지극한 슬픔으로 눈물에 익사할 지경인 사람도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일까? 하는 억지스럽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론은 ‘그럴 수도 있다’는 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화경님이 인도에 머물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고 합니다.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삶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기 마련인데 이화경님 역시 그 순간에 인도 캘커타대학에서 한국어강좌를 담당할 기회를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저 역시 그런 순간이 찾아왔었고, 이를 참아내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간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삶의 무늬를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자의 감정의 흔들림까지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글이 마음에 감겨옵니다. 그리고 곁들이거나 글의 배경으로 깔려있는 사진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평범한 인도사람들의 표정이 사진에 그대로 살아서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떠나면서 곱씹은 듯한 상념들, 인도에서 생활하기, 인도에 머무는 동안 찾아갔던 여행지에 대한 담백한 느낌, 그리고 인도에서 만난 그곳 사람들의 느낌들을 시(詩)로 혹은 에세이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인도는 한마디로 정리해서, “인도에는 많은 인도가 있다. 인도의 모든 것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상이(相異)한 것들 속에 존재한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표준도 단 하나의 고정된 정형(定型)도 없다. 인도로 가는 일방통행은 없다. 인도를 이해하는 원웨이는 없다.(59쪽)”라는 것입니다.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인도는 밖에서보다 안에서 들여다보면 훨씬 넓고 크고 깊다. 살면 살수록 요령부득이고, 알면 알수록 더 복잡하게 느껴지는 곳, 어떤 공통 집합도 참수도 찾기 힘든 곳, 그곳에 바로 인도였다.(1112쪽)”

그들의 삶 가운데 놀라운 것으로는 인도에서도 소불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꼽아야 하겠습니다.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젖국 얻어먹는다’라는 우리네 속담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놀랐던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더 테레사에 대한 콜카타 사람들의 묘한 감정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콜카타를 마치 빈곤과 기아와 질병이 창궐하는 지옥으로 고착화시키고 자신은 지옥같은 그곳을 정화하는 기적같은 사람으로 “기적의 연꽃상”을 비롯하여 국제적인 각종 상은 물론 노벨평화상까지 받아 천문학적인 상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가 보기에 콜카타는 구제받을 길이 없는 빈민가일지 모르지만 지식인들에게 콜카타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타고르, 칸 영화상을 받은 영화감독 사티아지트 라이와 므리날 센,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을 배출한 예술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는 부유한 곳이라는 자부심을 세워도 부족하지 않을 곳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일은 밖으로 비쳐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입니다.

어제 읽은 천운영님의 소설 <그녀의 눈물사용법;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29278>에 나오는 울지않는 여주인공과 달리 이화경님의 여자는 “슬픈 것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그 여자는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비로소 눈물로 몸을 채운 눈물의 여자가 되었다.(52쪽)”고 합니다.

책의 제목 <울지마라, 눈물이 네 몸을 녹일 것이니>는 윤성학님의 <소금 詩>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 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 / 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 / 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 / 나는 소금 병정 / 한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 월급을 받는다 / 소금 방패를 들고 / 굵은 소금밭에서 /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 / 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하여 / 한달을 절어 있었다 / 울지 마라 / 눈물이 너의 몸을 녹일 것이니(78쪽).” 땀흘려 만든 소금만큼 월급을 받는 것이니 행여 녹을새라 눈물을 흘려 소금을 녹이지 말라는 시인의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이화경님은 울고 실을 때 울어야 한 직성이 풀린다는 것입니다. 하진 울고 싶은 감정을 눌러 마음에 가두면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는 것이니 울어야 할 때는 울어주는 것이 옳겠습니다.

이화경님이 직접 겪은 인도의 삶을 읽고나니 정말 인도를 방문할 기회를 꼭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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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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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가 주최하는 신춘문예 당선작 소설을 읽기 위하여 월간지를 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소설에서 무언가 목마름을 채우려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추리소설에 빠져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소설은 시나브로 관심대상에서 멀어져갔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작가가 그려내는 소설의 세계에 빠져들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운영작가님의 말대로 소설은 ‘내안에 든 것을 그대로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세계를 받아들어 소화시킨 다음 다시 세상에 내놓는 것(163쪽; ‘내가 쓴 것’)’인데 그런 느낌을 얻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천운영 작가님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외면한 세상, 내가 저지른 실수, 알게 모르게 저지른 세상에 대한 교만과 악행들, 그것에 대한 고백성사이며, 자기반성이며, 죄사함이다. 세상에 진 빚이 없으니 자유로운 소설이 나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만이고 자기합리화다.(191쪽, ‘내가 쓴것’)”라고 소설쓰기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소설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제가 천운영작가님의 소설집 <그녀의 눈물사용법>을 읽게 된 것은 제목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제가 화두로 삼고 있는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색다른 이야기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녀의 눈물사용법>은 천운영작가님의 세 번째 소설집으로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그녀의 눈물 사용법’, ‘알리의 줄넘기’, ‘내가 데려다줄게’, ‘노래하는 꽃마차’, ‘내가 쓴 것’, ‘백조의 호수’, ‘후에’ 등 8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8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평범하지 못한, 무언가 상처를 안고 있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역시 평범하지 않은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에 등장하는 부부는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삐걱대면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위태한 관계이고, 그 사이에 등장하고 있는 소년이 이 부부의 관계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묘한 기대감을 부풀리더니 독자들의 수준을 비웃듯이 묘하게 비틀어서 마무리하는 작가의 성동격서적 성향을 읽게 해줍니다. 저의 관심을 끌었던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서도 제가 기대했던 여성의 무기로서의 눈물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어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즉 여성의 유약함과 보호받기 위한 무기로서의 눈물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는 적극적인 눈물의 사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눈물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말입니다.

“눈물은 감정의 늪이다. 유약한 인간들만이 제가 만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법이다. 눈물은 굴복의 다른 이름이다. 아픔과 고통에 대한, 조롱과 비난에 대한, 슬픔과 고독에 대한 굴복의 징표다. 나는 눈물 대신 오줌을 싼다. 울고 싶을 때 오줌을 싸다가 문득문득 돌출된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몸을 탓하는 대신 다른 방도를 찾기로 했다. 침을 뱉거나 땀을 흘리는 것으로도 몸의 물기는 배출될 테니까.(57-58쪽)” 그녀는 눈물샘이 뚫리지 않아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신생아처럼 태어날 때부터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하고, 할머니는 시앗을 보아 나가살던 남편이 다시 곁에 돌아와 죽은 다음부터 눈물흘리기를 잊었고, 어머니는 유방절제수술을 받은 다음부터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눈물사용법>에 실린 천운영의 소설을 해설한 신형철님의 설명에 따르면 “삶의 간난신고 속에서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던 여자들의 고투”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일곱 살 일 때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났다가 하루 만에 죽어 버려진 남동생이 어느날 몸속으로 들어와 7살이 될 때까지 자란다음 서른일곱의 여자가 될 때까지 머물다가, 항상 눈물바람하는 오빠를 위한 천도제를 치룬 다음에 그녀를 떠나면서 부터는 그녀는 다시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되고, 레즈비언으로서 성정체성까지 찾게 되면서 그녀는 제대로 눈물을 사용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눈물사용법>을 통하여 천운영작가님이 보여주는 색다른 타입의 주인공들을 통하여 그들이 안고 있는 색다른 상처와 색다른 치유법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이 남습니다. 저의 눈물에 대한 이야기 속에 천운영작가님의 눈물을 어떻게 정리가 될지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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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구하는 집, 제중원 - 조선, 새로운 의학을 만나다
박형우. 박윤재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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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찾아 나선 미국인 때문에 뿌리찾기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족보가 있어 뿌리를 제대로 간수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조선, 새로운 의학을 만나다’는 부제를 달고 있는 <사람을 구하는 집, 제중원>은 우리나라 현대의학의 뿌리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서양의학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주류의학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 뿌리가 제중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연세대학교와 서울대학교가 각각 제중원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이 자리에서 논의할 대상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동아시아국가들 가운데 일본은 이미 18세기에 이미 전통의학을 버리고 서양의학을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18세기면 유럽의 패권이 스페인으로부터 네덜란드로 넘어가던 시절입니다. 일본은 네덜란드로부터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가운데는 서양의학도 있었습니다.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인 1543년 포르투갈 상선이 다네가시마에 기착했을 때  당시로서는 신무기라 할 소총 두 자루를 구입하고 불과 1년 만에 이를 모방한 조총을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존재를 감추려들었던 우리나라와는 다른 행보를 통하여 단숨에 동아시아국가들의 선두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서양문물을 일본이 처음 접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서양과의 교역이 열려 있었고, 우리나라 역시 중국을 통하여 서양문물을 알고 있었지만, 국가경영에 이를 적극반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해 초 <제중원>이라는 이름의 드라마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도입된 과정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집, 제중원>을 쓰신 저자들께서 드라마 제작과정에서 많은 조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서양의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개화파가 주도했다가 실패한 갑신정변이라고 합니다.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의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민영익을 전통의학이 포기한 상황에서 서양의학을 전공한 선교사 알렌을 치료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민영익의 주도로 서양의학을 시술하는 의료기관으로 <제중원>이 1885년 설립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서양의학의 지식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서양의학이나 동양의학의 수준이라는 것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서양의학이 발전의 전기를 맞은 것이 르네상스시대였다고 한다면, 이미 17세기에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서양의서를 통하여 서양의학의 가치에 눈을 떴을 것 같습니다만, 수용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독일인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이 1629년에 저술한 <주제군징>에는 갈레노스의 해부 생리학 이론이 소개되고 있었고, 이익의 성호사설(1760년)에도 ‘서국의((西國醫)’라는 제목으로 생리원칙, 혈액, 호흡 및 뇌척수 신경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정약용의 경우는 <의령(醫零)에서 음양오행의 이론을 의학에서 배제하였을 뿐 아니라 마과회통(1798년)에서는 우두법을 소개하기까지 했으나 이를 국가정책으로 채택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자들은 <사람을 구하는 집, 제중원>에서 고종황제께서 서양의학을 받아들인 과정 뿐 아니라 앞서 적은 것처럼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소개된 역사적 흔적으로부터 시작하여 제중원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치밀하게 뒤쫓고 있습니다. 의학, 간호학, 치과에 이르는 분야도 아우르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경찰조직을 통하여 위생에 관한 제도를 세운 일, 천연두를 퇴치하기 위한 우두법이 도입되는 과정, 치명적인 만성질환인 나병과 결핵 그리고 성병에 대한 관리대책이 마련되는 과정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민간에서 의료를 주도하고 있고 사회보험의 성격으로 건강보험제도 아래서 관리되고 있습니다만, 과거에는 의료는 왕조의 중요한 관심대상이었습니다. 백성은 국가경영의 바탕이었을터이니 백성의 건강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한의학을 전공한 의원이 민간의 영역에서 의료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혜민서 등을 통하여 국가에서 질병을 관리하는 부분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 제중원(濟衆院)의 이름은 논어에 나오는 박시제중(博施濟衆)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국가가 백성에게 인정을 베푼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고종황제께서는 처음에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은 ‘광혜원(廣惠院)’이라는 이름을 고려했다가 제중원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료에 대한 왕조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이름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한 다음 지방에 설치한 자혜의원(慈惠醫院) 역시 한국인을 회유하기 위한 무료진료 혹은 저가진료를 시행하다가 1·92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본격적인 수익경영으로 전환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심훈의 소설에 나오는 채영신이 “의사람 놈들이 있다 해도 그저 돈에만 눈이 빨갛지”라고 하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인술로서의 의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이 주도하는 의료의 현실에서 인술을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가 싶습니다. 조선시대의 유의(儒醫)의 사례도 들고 있습니다. 유의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의학관련 서적을 통하여 익힌 의술을 사례를 받지 않고 동리사람들에게 베풀었다 해서 유의라고 불렀다고 합니다만, 실제로는 의술을 업으로 하는 의원들은 사례를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편에 倉凜實而知禮節(창름실이지예절) 衣食足而知榮辱(의식족이지영욕) 禮生於有而廢於無(예생어유이폐어무)라는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의 말을 적었습니다. “곳간이 가득 차야 예절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예도 부끄러움도 알게 된다. 예의는 재물이 풍족하면 생기고 없으면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새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의료를 통하여 얻는 수입이 천차만별이라서 잘 나가는 분들도 계신 반면,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중의 말을 다시 새겨보는 이유입니다.

의술도 업인 세상입니다. 의술을 시행하는 의사들에게만 인술을 강요하는 것이 적절한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사실은 의사들 가운데 의료봉사에 나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다만 뉴스거리로 다루어주지 않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저 역시 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했던 의료봉사 동아리를 통하여 시작한 의료봉사에 수십 차례 나선 바 있습니다.

저자들은 1934년 조선일보에 실렸던 장기무의 「한방의학 부흥책」을 인용하여 한의학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IMS가 침술이냐”는 이슈로부터 한의학에서 현대의학의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등 의학과 한의학이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의학과 한의학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의료계와 한의계에 의하여 두 차례 제기된 바 있었지만, 각각 상대측이 수용하지 못하여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국가의 보건의료체계가 이원화되어 있어 효율적이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의료계와 한의계는 대승적 차원에서 의료일원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한의과대학에서도 커리큘럼에 현대의학을 배우고 있으며 방송매체 등을 통하여 한의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현대의학의 이론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한의학으로 돌아가곤 하는데, 동의보감에서 서양의학의 이론을 인용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현대의학의 술기를 통하여 진단하고 한의학적인 치료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기회가 되면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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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1-10-2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포르시안>에서 댓글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댓글 달아주신 한 분께 이 책을 드립니다.
http://www.rapportian.com/n_news/news/view.html?no=2102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3 동문선 현대신서 119
피에르 쌍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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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에는 ‘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오가며 쉽게 만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안타깝게도 프랑스의 평범한 시민들이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탓인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http://blog.yes24.com/document/4460181),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http://blog.yes24.com/document/4636207) 등의 전작들에 비하면 공감의 파워가 다소 떨어진다고 할까요? 

상소는 뛰어난 학자들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평범한 인생들에 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그가 위대한 학자들의 영광을 폄훼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적은 다음 글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대한 지식의 지도 위에서 한 개인의 지식은 하찮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그런 지식 때문에 교만해질 이유가 없겠지요. 반면 설익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해주는 설명은 우리를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당혹감만 더해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자신의 우월감을 나타내고, 당황해하는 우리의 모습을 즐깁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그런 계략을 꿰뚫게 되면, 이번엔 그들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할 것입니다.(9쪽)”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3>에 담긴 내용은 아마도 그의 전작들 <감각적인 프랑스>, <가난한 사람들>, <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사람들>, <공원>, <민감한 프랑스> 등에 담긴 철학들을 정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소박한 사람들이 가지는 미덕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소박함에서 나오는 일련의 태도들, 곧 거만하게 보이지 않는 것, 과도한 주장을 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난폭한 경쟁심을 갖지 않는 것, 삶의 소박한 것들을 기뻐하는 것 등은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을 잊어버리는 태도,’ 흔적을 남기기 않는 태도이다.(25쪽)”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나는 치유자, 나이든 사람들이 찾아오면 길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동네빵집의 여주인, 아마추어 수리공, 그리고 유럽축구를 휘젓는 꿈을 품고 시작하는 길거리축구 등등 소박한 동네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의 글은 한폭의 그림을 떠오르게 합니다. 실내 분위기를 그려내는 글은 마치 정물화를 보는 듯하고 교외의 풍경을 서술하는 글은 한폭의 풍경화를 만나는 느낌이 듭니다.

“연못 위로 솟은 언덕 위에는 사람의 노동이 가해지지 않은 황무지나 방목지가 펼쳐진다. 그곳에서 피우는 불은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켜 준다. 불 그림자 속에서 밤은 점점 길어지고..... 청춘의 뜨거운 피가 넘치는 젊은이들은 불빛 앞에서 포도주 잔을 기울이면서, 포도주란 것이 따뜻한 열기를 주면서도 가볍고(적포도주) 신선하며(백포도주) 젊음을 느끼게 하는(분홍색의 로제포도주) 음료라는 것을 알게 된다.(148쪽)” 뿐만 아니라 그는 정물에 냄새까지도 곁들여 현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주방이 풍기는 냄새는, 어른이 되어 훗날 정서적인 기억들을 떠올릴 때 반드시 따라오는 냄새라는 점이 다르다. 그것은 아침에 갈아 마시는 커피의 향기이며, 다갈색이 될 때까지 자글자글 졸이는 캐러멜의 냄새이고, 튀김 재료를 넣고  튀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요, 럼주를 약간 넣어서 마시는(아이들 때문에 너무 많이 넣으면 안된다) 달콤한 영국식 크림 냄새에다. 포도주를 넣은 소스가 제격인 부르기뇽 쇠고기찜 냄새이다. (151쪽)”

소박한 사람들의 삶에도 빠지지 않는 부부싸움은 슬며시 웃음이 떠오르게 만듭니다. 그것은 다른 동네에서 보는 부부싸움과는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늘 되풀이되는 부부의 낡은 언쟁은 어느덧 닮은꼴이 되어버린 일상적인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서로의 곁에서 살아온 덕분에, 그리고 꼭 뜨거운 열정을 지닌 채 살아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흔들리지 않는 동거생활을 해온 결과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개성이 모두 닳아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완벽하게 닮은꼴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이 마셔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술집의 한귀퉁이에 쓰러져 자는 마을 술꾼에 대한 상소의 지적은 애매한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 읽는 저로서도 뜨끔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뚜르 드 프랑스가 프랑스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를 비롯한 다양한 프랑스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점도 읽을만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우리네 보통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상소처럼 소개하는 글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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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단 하루가 남아있다면 - 삶의 끝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김인선 지음 / 서울문화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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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블로그(http://blog.joinsmsn.com/yang412)에 담고 있는 자료 가운데는 죽음관련 기사, 품위있게 죽기, 장수만세, 우아하게 늙어가기 등, 죽음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장수만세나 우아하게 늙어가기도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길에 관한 이야기일 터입니다.

품위있게 죽기는 안락사 혹은 존엄사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적극적인 개념의 안락사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만, 의미없는 연명을 위한 의학적 조치에도 반대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를 위하는 조처라기보다는 오히려 편안한 죽음을 방해하는 조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이유로 죽음을 기다리는 분의 의학적 조처를 포함한 제반편의를 제공하는 호스피스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호스피스란 환자가 마지막을 편하게 맞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활동을 하는 호스피스봉사자는 환자와 끝까지 동행하는 사람일 뿐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죽음을 앞당기거나 고통을 덜어주는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출판사의 이벤트를 통하여 읽게 된 <내게 단 하루가 남아있다면>은 독일 베를린에서 ‘사단법인 동행-이종문화 간의 호스피스’를 이끌고 있는 김인선 대표가 오랫동안 호스피스활동해오면서 경험한 다양한 죽음들 가운데 대표적 사례들을 정리하여 호스피스의 정신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에세이집입니다. 1부에서 4부까지는 삶의 마지막이 이랬으면 아름다울 것 같은 분들의 이야기를 ‘1부 집착을 버린 마지막’, ‘2부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는 마지막’, ‘3부 가족과 함께하는 마지막’, ‘4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마지막’ 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왔던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고 한다면, 한 사람의 죽음은 죽은 사람만의 문제일 수는 없습니다. 가끔은 죽은 사람이나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입장을 제대로 생각해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평화로운 마음으로 마지막을 잘 마무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또는 그녀를 보내고 남은 사람들은 이별의 아픔 대신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 더 가지게 된다.(105쪽)”

책의 뒷장에는 “내게 단 하루가 남아있다면, 당신이 바라는 ‘생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인가요?‘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인디언 속담 가운데 제 눈길을 끈 구절을 소개합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만 울고 세상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으니, 내가 죽었을 때는 나만 미소 짓고 세상 사람들이 슬퍼하는 삶을 살아라.(119쪽)” 하지만 그 또한 집찰이 될 수도 있겠다싶어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저자는 죽음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의미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오히려 거꾸로 삶에 집작하지 않으면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살면서 앞만 보고 정신없이 내닫지 말고 가끔씩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정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합니다.

톨스토이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서 인용한 구절을 적어봅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삶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리라. 30분 후에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삶을 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하루 일과와 같다. 생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를 가장 자유롭게 하는 것은 죽음이다. 사람의 행동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러니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239쪽)” 일찍부터 웰빙보다 웰다잉이 더 중요하든 점을 지적한 셈입니다.

저자는 ‘아름다운 이별을 돕고 싶다’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얼마전 방영한 드라마 <49일>을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익숙한 노래말, 드라마, 책의 한구절을 인용하여 삶과 죽음 그리고 호스피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도 큰 관심을 가지고 보던 드라마였기 때문에 저자의 인용이 눈길을 끌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주인공이 다시 찾은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깨닫게된다는 결말이 놀라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의 5부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죽음을 앞둔 분듥을 위해 호스피스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 “우리들 모두 평생 살 것처럼 여기지만 언젠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세상을 떠날 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237쪽)” 그리고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는 죽음 자체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254쪽)“고 당부하고 있기도 합니다.

참 아름다운 표지사진 이야기를 빼놓을 뻔 했습니다. 평화로운 모습의 촛불을 감싸고 있는 예쁜 손은 아마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를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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