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 과업

 

상황이 바뀌자 과업이나 지침, 전술까지 바뀌었습니다. 거의 9년 세월 동안, 우리 민족과 군은 당과 정부의 지도 아래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 용감하게 싸워 자랑스럽게 승리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 병력은 발전했습니다. 당과 정부의 올바른 정책에 힘입어 훌륭한 공적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상황이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바뀌고 있고, 이에 따라 정책과 슬로건도 바뀝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프랑스 제국주의 세력을 일소하는 데 온힘을 집중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프랑스인들과의 대화가 가능해진 반면, 미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주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공격의 초점을 후자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평화를 되찾을 때까지 프랑스와의 전투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민족 모두가 미국에 대한 공격에 집중해야 합니다. 미국은 인도차이나 전쟁을 확신하여 국제화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싸우며 미국의 전쟁 정책에 반대합니다.

 

우리 당은 9년 동안 계속해서 당의 방침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즉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의 완전 독립을 지지하고, 프랑스 연합을 인정하지 않으며,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군을 모조리 몰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괴뢰정부와 괴뢰 무장세력을 제거하고, 제국주의자와 반역자의 재산을 몰수하여, 농업개혁을 위한 단계적인 조치로 지대와 이자율을 삭감할 것입니다. 또한 전 민족이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저항전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고 말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부분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실로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에서 낡은 방침에만 매달릴 순 없겠지요. ‘끝까지 저항하자가 예전의 모토라면, 지금은 평화, 단결, 독립, 민주주의라는 새 모토를 내걸어야 합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인도차이나 전쟁에 개입하여 전쟁을 확산하려는 정책에 반대하여, 평화의 기치를 강력하게 내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책도 바꾸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프랑스 제국주의 세력의 재산을 몰수했다면, 이제는 협상이 진행중인 만큼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 따라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서 자국의 경제적, 문화적 이익을 보호하도록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협상에는 양쪽의 분별있는 용인이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프랑스 침략 세력을 일소해야만 한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우리 쪽에서 상호 협의하여 프랑스군 철수 날짜를 확정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프랑스도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과거에는 민족통일을 위해 괴뢰정부와 괴뢰군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관용을 실천하며 선거를 통해 국가의 통일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평화를 얻으려면 전쟁이 종식되어야 합니다. 전쟁을 종식시키려면 정전에 합의해야 합니다. 정전을 위해서라면 지역 재정비 작업이 필요합니다. 즉 적군이 어느 한 지역에서 점진적으로 병력을 철수하기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면, 우리 군 역시 다른 지역에서 재편성 작업을 진행하여 합니다. 병력의 조직, 확대, 강화에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얻을 수 있도록 넓은 지역을 확보하여 타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역 재정비가 나라의 분할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이건 단지 통일에 필요한 한시적인 조치일 뿐입니다. 이때 지역의 경계를 정하고 통치 구역을 바꾸는 일도 생기기 때문에, 기존 해방구 중 일부는 한시적으로나마 적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고, 이 경우 그곳 주민들의 불만도 높아지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낙담한 채 적군의 기만에 넘어가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동포들에게 잘 알려야 합니다. 나라 전체의 이익을 위해 견뎌야 할 시련은 영광을 낳고, 시련을 견뎌낸 자에겐 민족 전체의 찬사가 따를 거라고, 모든 사람들이 비관주의나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프랑스군의 전면 철수와 더불어 독립을 이룰 그날을 위해 열렬히 투쟁해달라고 호소합시다. 평화를 위해 지역을 재정비하고 민족통일을 위해 전국적인 선거를 치르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저항전은 독립, 단결,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를 목표로 합니다. 새로운 상황을 맞아 새롭게 성공하려면, 새 정책이 필요합니다. 전쟁이냐 평화냐를 가르는 중요한 시점인 만큼 솔선수범합시다. 선견지명을 가지고 항상 철저히 준비합시다.

 

평화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길고 복잡하며 거친 투쟁입니다.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도 있지만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유리한 조건이란, 우방국과 전 세계 인민이 우리를 지지한다는 것, 왕성한 혈기를 자랑하고 당과 정부를 신뢰하며 항상 단결 투쟁하는 인민이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에게 닥친 난관이라면, 미국이 인도차이나에서 평화가 다시 꽃피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어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평화주의자들이 미국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현재 상황은 어렵과 복잡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이제는 구해방구와 신해방구에 각기 다른 정책을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장악한 해방구와 재편성 작업 후 한시적으로 적군이 관할하는 지역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정책을 펴야 합니다. 이제는 농촌뿐 아니라 도시 정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대프랑스 정책 역시 과거와 달라야 합니다. 친미, 친불 반역자에 대한 정책 역시 예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국내 문제와 우방국과의 외교에만 신경 썼다면, 이제는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이익을 구별해야 하고, 지역별 이해관계와 전체의 이해관계 역시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러 난관이 겹치면서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민과 간부들의 생각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요.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고 적절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념적인 오류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먼저 좌파적 편향성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번의 승리에 도취되어 무조건 끝까지 싸우려 듭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격이죠. 그들은 프랑스군의 철수에만 목을 맨 나머지, 적의 책략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프랑스와의 싸움에만 열중할 뿐, 미국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또한 군사행동에 치우쳐 외교를 경시합니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려면 전장에서뿐 아니라 국제회의에서도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새 슬로건에 대해, 그 내용이 우파적이며 주체성을 많이 잃고 양보한 것 같다면 반대합니다. 그리고 적이 받아들일 수 없는 과다한 조건을 내걸기도 합니다. 평화를 위한 투쟁이 어렵고 복잡할 거러난 생각 대신, 결과만을 재촉합니다. 이러한 좌파적 편향성 때문에 자민족뿐 아니라 전 세계 민족들에게서 멀어지고 고립되어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우파적 편향성은 비관주의와 무기력, 원칙 없는 관용을 낳습니다. 더는 인민의 힘을 신뢰하지 않고 전투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들은 역경을 견뎌내기 위한 에너지를 상실한 채, 조용하고 평안한 인생만을 꿈꿉니다. 이와 같은 좌파적, 우파적 경향은 옳지 않습니다. 둘 다 적들에게 이용당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에게는 해를 끼칠 것입니다.

 

2. 과업과 노동

 

이처럼 상황이 바뀌면서, 우리에게도 세 가지 의무가 생겼습니다.

 

(1) 평화를 보장하고 공고화하며, 나라 전체의 단결과 독립, 민주주의를 달성한다.

(2) 인민무력부대를 강화하고, 새로운 상황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강력한 인민군을 건설한다.

(3) ‘경작자에게 땅을이라는 슬로건을 실천에 옮긴다. 생산 복구와 국가 재건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이 세 가지 의무를 이행하려면, 열 가지 과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1) 새로운 상황과 과업을 위해 당과 인민이 한마음으로 뭉친다.

(2) 외교전에 필요한 지도력을 강화한다.

(3) 인민군을 보강한다.

(4) 신해방구를 장악한다. 특히 도시를 장악하고 관리하는 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5) 적의 재편성 이후 한시적이나마 그들이 장악한 지역에서의 활동에 새 지침을 제시한다.

(6) 구해방구를 통합 정리한다.

(7) 열성을 다해 토지개혁에 필요한 대중동원에 나선다.

(8) 경제와 재무 관련 업무를 개선하고 국가 재건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한다.

(9) 파테트 라오와 크메르군을 후원한다.

(10) 신해방구 내 당을 재정비하고 이념 개조 작업을 실시한다.

 

이상 열 가지 과업은 중앙위원회가 지도합니다. 모든 지역과 지부가 열 가지를 모두 완수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각 지역에 의무적으로 일정량을 할당할 예정입니다. 이중에서도 이념적 리더십이 가장 중요합니다. 당원뿐만 아니라 비당원도 새로운 상황과 과제를 제대로 이해해야 생각을 모을 수 있고, 생각이 모여야 행동이 하나가 됩니다. 당 안팎, 각 단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통일할 때,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현재 전 세계 인민의 주적이며 인도차이나 인민을 직접 위협하는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을 반대하는 데 활동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심지어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나 개인은 연합전선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평화와 독립과 단결, 민주주의는 변하지 않는 목표입니다. 원칙은 확고히 지키되, 전술은 유연해야 합니다. 각 활동이 전체를 구성하니, 모든 활동은 서로 연결되어야 하며 조화로워야 합니다. 각 지역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게, 주어진 시간에 과업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 당과 정부의 올바른 지도력, 간부와 인민 모두의 노력과 단결, 전 세계 우방국과 평화를 사랑하는 인민들의 지지와 격려가 있으니, 우리는 위의 세 가지 의무와 열 가지 과업을 반드시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54715

호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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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동지는 석방되야 한다! 그를 불법적이고 부당한 방법으로 감옥에 보낸건 박근혜 정권이었지만, 정작 그를 장기수로 만들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권이다. 민주당이든 국민의 힘이든 이석기 동지 문제에 있어선 정말이지 똑같은 놈들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석기 동지는 석방되야 한다! 반미반제 자주의 길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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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12-06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옳소 !!!!!!! 이석기 동지는 석방되어야 합니다 !!!!!!

NamGiKim 2020-12-06 18:23   좋아요 0 | URL
반미자주! 아 민족해방하고싶다!
 

중국혁명의 역사적 특성은 혁명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절차로 구분되는 데 있다. 지금에 있어서 그 첫걸음은 벌써 일반적인 민주주의라는 것이 아니라 중국적인, 특수한 새 형태의 민주주의인 신민주주의다. 그렇다면 그 역사적 특성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것은 100년 전부터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후에 와서 생긴 것인가? 중국과 세계의 역사적 발전을 연구해본다면 이 역사적 특성은 결코 아편전쟁 때부터 있은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와서, 즉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 및 러시아 10월혁명 후에 와서야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제 그 형성과정을 연구해보기로 한다.


중국 현 사회의 성격이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 성격인 이상 그것이 중국혁명을 두 절차로 구분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규정짓고 있다는 것은 아주 명백한 일이다. 첫걸음은 이 식민지,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형태를 독립적인 민주주의 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걸음은 혁명을 더 발전시켜 사회주의 사회를 창립하는 것이다. 목하 중국의 혁명은 그 첫걸음을 걷고 있는 중이다.


이 첫걸음의 준비단계는 벌써 1840년의 아편전쟁 때부터, 즉 중국사회가 봉건사회로부터 반식민지, 반봉건적 사회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태평천국운동, 중국-프랑스전쟁, 청일전쟁, 무술변법, 신해혁명, 5·4운동, 북벌전쟁, 토지혁명전쟁을 거쳐 오늘의 항일전쟁에 이르기까지 거의 100년이나 걸린 이 많은 개별적 단계들은 어떤 점에서 말한다면 모두가 이 첫걸음을 실천했던 것이며, 중국인민들이 각각의 이들 시기에서 봉건세력을 반대하고 독립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한 것이며 첫걸음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투쟁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해혁명은 보다 더 완전한 의미에서 이 혁명을 개시한 것이다. 이 혁명은 그 사회적 성격으로 본다면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이다. 지금 이 혁명은 아직 완수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계속 더 많은 힘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이 혁명의 적이 아직도 매우 강대하기 때문이다. 손중산 선생이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못하였으니 동지들은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을 두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은 1914년에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이 폭발되고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에 의해 지구의 1/6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창건된 후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그 이전까지 중국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낡은 세계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일부분이었다. 그 이후부터 중국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은 새로운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으며 혁명의 진영으로 말하면 세계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의 일부분이 되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과 맨 처음으로 승리한 사회주의 10월 혁명이 전반 세계의 역사적 방향을 개변시켰으며 전반 세계의 역사적 시대를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 전선이 이미 지구의 한 모퉁이에서 (이 한 모퉁이는 전 세계의 1/6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붕괴되었고 그 나머지 모퉁이에서도 그 부패성이 충분히 발로되고 있는 시대에 있어서, 아직 남아 있는 이러한 자본주의 부분들도 식민지, 반식민지에 더한층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된 시대에 있어서, 사회주의 국가가 이미 창건되었고 또 그가 모든 식민지, 반식민지의 해방운동을 원조하여 투쟁할 것을 선포한 시대에 있어서, 자본주의 국가의 무산계급이 나날이 사회제국주의적 사회민주당의 영향으로부터 해방되어 나오고 있는 동시에 그들이 식민지, 반식민지의 해방운동을 찬조할 것을 선포하고 있는 시대에 있어서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어떠한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에서든지 만일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즉 국제 자산계급을 반대하며 국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더는 낡은 세계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범주에 속하며 더는 낡은 자산계급 및 자본주의적 세계혁명의 일부분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혁명의 일부분 즉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혁명의 일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혁명적인 식민지, 반식민지는 이미 세계 자본주의 반혁명전선의 동맹군으로 간주할 수 없으며, 그것은 벌써 세계 사회주의 혁명 전선의 동맹군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식민지, 반식민지 혁명의 제1단계, 즉 첫걸음은 그 사회적 성격으로 볼 때는 기본상 여전히 자산계급 민주주의적인 것이며 그 객관적 요구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한 길을 닦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혁명은 이미 낡은, 자산계급에 의하여 영도되는, 자본주의 사회 및 자산계급 독재 국가를 건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이 아니라, 새로운 무산계급에 의하여 영도되는 혁명으로써, 제1단계에 있어서는 신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고 각 혁명적 계급들간의 연합독재의 국가를 창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혁명은 또한 사회주의의 발전을 위하여 더욱 광활한 길을 닦아주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은 그 진행과정에 있어서 적정 및 동맹군의 변화로 인하여 또 약간의 단계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그 기본적 성격은 변화되지 않는다.


이러한 혁명은 제국주의를 철저히 타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국주의는 이것을 용서하지 않고 반대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그것을 용서하며 사회주의 국가와 사회주의적 국제 무산계급은 그것을 원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혁명은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 혁명의 일부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중국혁명은 세계혁명의 일부분이다”라는 이 정확한 명제는 1924~1927년의 중국 제1차 대혁명 시기에 이미 제기된 것이다. 이 명제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제기한 것으로서 당시 반제 반봉건적 투쟁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의 찬동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이론의 의의가 아직 전개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문제를 애매모호하게 인식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세계혁명’은 이미 낡은 세계혁명(낡은 자산계급 세계혁명은 이미 끝났다)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혁명이며 사회주의적 세계혁명이다. 마찬가지로 이 ‘일부분’이라는 것은 이미 낡은 자산계급혁명의 일부분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의 일부분이다. 이것은 극히 큰 변화이며 세계적으로나 중국에서나 유사 이래 유례없는 큰 변화이다.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제기한 이 정확한 명제는 스탈린의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스탈린은 일찍이 1918년 10월 혁명 1주년을 기념하여 쓴 자신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0월 혁명의 위대한 세계적 의의는 주로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 첫째, 민족문제의 범위를 확장하여 이것을 유럽에서의 민족적 압박과의 투쟁이라는 부분적 문제로부터 피압박 민족과 식민지 및 반식민지를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일반적 문제로 전환시켰다. 둘째, 서방과 동방의 피압박 민족을 제국주의와 승리적 투쟁의 공동궤도로 끌어들여 그들의 해방을 위한 광범한 가능성과 현실적인 길을 열어놓음으로써 그들의 해방위업을 대단히 쉽게 해주었다. 셋째,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주의적 서방과 예속된 동방 간에 다리를 놓았고, 서방의 무산자들로부터 러시아 혁명을 거쳐 동방의 피압박 민족들에 이르는 세계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새로운 혁명전선을 결성케 하였다.”


이 논문을 발표한 후에 스탈린은 또 식민지, 반식민지 혁명이 낡은 범주를 벗어나서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의 일부분이 된 것에 관한 이론을 여러 차례 거듭 전개하였다. 그중에서도 해석이 가장 분명하고 명확한 것은 스탈린이 1925년 6월 30일에 발표한, 이 논문은 장중실이 번역한 《민족문제에 관한 스탈린의 논술》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 제목은 <다시 한번 민족문제에 대하여>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쎄미치는 스탈린이 1912년 말에 쓴 소책자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 가운데서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그 책에는 “대두하는 자본주의의 조건하에서의 민족적 투쟁은 자산계급들 상호간의 투쟁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는 이문구로써 현 역사적 조건하에서의 민족운동의 사회적 의의를 규정한 자기의 공식이 옳다는 것을 암시하려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의 이 소책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민족문제가 아직 전 세계적 의의를 가진 문제로 생각되지 않던, 또 자결권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기본 요구가 무산계급혁명의 일부분으로가 아니라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일부분으로 평가되던 대인 제국주의 전쟁 전에 쓴 것이다. 따라서 그 이후 국제정세가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것. 또 한편으로는 전쟁과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에서의 10월 혁명이 민족문제를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의 일부분으로부터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의 일부분으로 전환됐다는 것을 보지 않았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1916년 10월 레닌은 <자결에 관한 토론의 총결>이라는 자기 논문에서 말하기를, “자결권이라는 민족문제의 기본사항은 이제는 일반적 민주주의 운동의 일부분이 되어 있지 않고 그것은 이미 일반적인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의 구성부분으로 변했다”고 하였다. 나는 레닌이나 또 러시아 공산주의의 기타 대표자들이 민족문제에 관한 그 후의 저서들에 대하여서는 더 이상 새삼스레 말하려 하지 않겠다. 모든 것이 그렇다면 러시아에서의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 시기에 쓴 스탈린의 소착재에서 주지하다시피 앞에서 소개한 것을 쎄미치가 인용했다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역사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새 시대, 즉 무산계급혁명의 시대로 들어온 지금에 있어서 어떠한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인용이 가질 수 있는 의의라는 것은 다만 쎄미치가 공간과 시간을 떠나서 산 역사적 환경과는 관련없이 인용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함으로써 그는 변증법의 초보적인 요구도 지키기 않고 있는 것이며, 또한 역사적 환경에서의 옳았던 것이 다른 역사적 환경에 있어서는 옳지 못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치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두 가지 종류의 세계혁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 종류는 자산계급 및 자본주의 범주에 속하는 세계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혁명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그것은 벌써 1914년 제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이 폭발되었을 때, 특히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때 종결되었다. 그 후부터는 둘째 종류의 세계혁명, 즉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혁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혁명은 자본주의 국가의 무산계급을 그 주력군으로 하며, 식민지, 반식민지의 피압박 민족을 그 동맹군으로 한다. 피압박 민족 내부에 있어서 혁명에 참가하는 그 계급, 정당 또는 개인들이 어떠한 계급, 정당 또는 개인이거나를 막론하고, 또 그들이 이 점을 의식하고 있거나 못하고 있거나를 막론하고, 오직 그들이 제국주의를 반대하기만 한다면 그들의 혁명은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혁명의 일부분이 되며 그들은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혁명의 동맹군이 된다.


오늘에 와서 중국혁명은 그 의의가 한층 더 커졌다. 오늘날은 자본주의 경제적 위기 및 정치적 위기로 말미암아 세계가 나날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는 때이며,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이행하게 될 소련이 전 세계 무산계급 및 피압박 민족을 영도하고 원조하여 제국주의 전쟁에 반항하며, 자본주의적 반동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때이며, 자본주의 국가들의 무산계급이 자본주의를 타도하여 사회주의를 실현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는 때이며, 중국의 무산계급, 농민계급, 지식인 및 기타의 소자산계급들이 중국 공산당의 영도하에 이미 위대한 독립적인 정치적 역량이 형성되고 있는 때이다. 오늘날 이러한 시기에 처해있는 우리로서는 중국혁명의 세계적 의의가 더한층 커졌다고 평가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당연히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국혁명은 세계혁명의 위대한 일부분인 것이다.


중국혁명의 이 첫단계(그것은 또 많은 작은 단계로 구분된다)는 그 사회적 성격으로 말한다면 아직 무산계급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새 형태의 자산계급 민주주의 혁명이지만 이미 무산계급 사회주의 세계혁명의 일부분이 되었고, 현재에 와서는 더욱 이러한 세계혁명의 위대한 일부분이 되었으며, 이러한 세계혁명의 위대한 동맹군이 되었다. 이 혁명의 첫걸음, 즉 제1단계는 결코 중국 자산계급 독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것이 아니고 또 그럴 수도 없으며, 중국 무산계급을 그 영도자로 하는 중국의 각 혁명적 계급들의 연합독재의 신민주주의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이것으로 제1단계에 대한 설명을 마치려고 하며, 이를 다시 제2단계로 발전시켜 중국에다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시키고자 한다. 이것이 목하 진행되고 있는 중국혁명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며, 20년 이래(1919년 5·4운동으로부터 계산해서)의 새로운 혁명과정이며, 목하 중국혁명의 생동하고도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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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폰다입니다. 저는 지난 두 주 동안 베트남민주공화국을 방문했습니다. 많은 곳을 보았고, 많은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노동자, 농민, 예술가, 학생, 무용가, 역사가, 저널리스트, 영화배우, 군인, 의용소녀, 여성동맹 단원 그리고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나는 누에고치가 길러지고 비단이 짜지는 협동농장, 그리고 하노이 방직공장과 유치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문예궁전에서 베트남 전통무용을 감상했고, 저항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남쪽 밀림의 게릴라들이 적군을 공격하기 위해 벌을 훈련시키는 것을 극화한, 잊을 수 없는 발레를 보았습니다. 벌들은 여자무희들이 춤을 추었는데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었습니다.

 

나는 문예궁전에서 베트남 배우들이 아서 밀러의 나의 아들2막을 연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나라를 폭격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은 적국인 미국의 희곡을 번역하여 연출하고 있었다는 이 사실! 그것은 너무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는 공장의 지붕 꼭대기에서 수줍음을 타고 얼굴을 붉히는 의용소녀 하나가 베트남의 푸른 하늘을 찬양하는 힘찬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인상적인 모습을 기억합니다. 이들은 부드럽고 시적이며 목소리고 꾀꼬리 같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폭격기가 그들의 도시를 쑥밭으로 만들어 버릴 때는 그들은 씩씩한 전사로 변모합니다.

 

나는 미국의 폭탄이 떨어질 때 적국의 여자인 나를 감싸안고 방공호로 뛰어들어갔던 한 농부의 따스한 손길을 소중하게 기억합니다. 우리들은 팔과 팔, 뺨과 뺨을 부비고 있었습니다. 나는 남 딘(Nam Dinh)의 길목에서 학교, 병원, , 공장, , 관개제방 등 모든 민간 시설이 모두 무참히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내가 두 주전에 미국을 떠날 때, 닉슨은 미국인들에게 베트남전을 종료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 딘의 어지러운 폐허에서 나는 그의 말은 살인자의 음험한 감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팔을 꼭 붙잡고 매달리는 어린 한 베트남 소녀의 뺨을 부비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베트남과의 전쟁일지 모르지만, 이 모든 비극은 결국 미국의 것일 뿐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진리로서 이 나라에 깨닫게 된 하나의 사실은 닉슨은 결코 이 땅의 사람들의 정신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북베트남이든 남베트남이든 폭격과 침략 어떠한 방식의 공략으로도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떨어진 폭탄 하나는 결국 이 땅의 사람들을 저항의 의지만 단호하게 만들 뿐입니다. 나는 녹둑의 농부들로부터 그런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내가 만난 농부들은 과거 그들의 삶은 지주에 소속된 노예일뿐이었으며, 교육과 의료의 혜택이 전혀 없었고, 그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폭격에도 불구하고, 닉슨이 그들에게 저지르는 범죄 행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국민은 자신의 토지와 학교를 갖고 있습니다. 문맹은 사라졌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창녀 노릇했던 여성들이 용감한 전사로 변했습니다. 인민은 자신의 손에 스스로 권력을 쥐고 있으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습니다.

 

베트남 인민은 4천년 동안 자연과 외국 침략자들을 상대로 줄기차게 싸워왔습니다. 프랑스와 식민투쟁에서도 이겼습니다. 베트남의 완전한 자주 독립을 스스로 쟁취해나갈 것입니다. 리차드 닉슨이 베트남 역사와 베트남의 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호찌민이 쓴 시를 잘 읽어 음미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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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 한국에선 소위 페미니즘이라는 주제가 많이 주목받았던 것 같다. 물론 페미니즘이라는 담론이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사회현상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공간에서의 남녀차별 및 여러 사회적 모순에 대한 반작용으로써 나타난 것도 분명히 있다. 아마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전사회적인 영역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5년 메갈리아의 등장이 컸던 것 같다. 물론 그 방법론에 있어서 시민들에게 충격과 혐오를 준것도 사실이지만, 이 계기를 통해서 페미니즘이라는 주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연결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좋고 싫고의 단순한 감정을 떠나서 페미니즘이라는 사회의 한 현상이 전 사회적 영역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은 분명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아닌게 아니라 페미니즘 진영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급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매우 강력하게 존재를 드러냈다. 그것이 바로 안티 페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안티 페미니즘은 원래부터도 일간베스트와 같이 차마 입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저급한 반동조직에 항상 존재해 왔지만, 페미니즘의 부상과 더불어 일부 인사들의 주장에 살이 붙어 사상화 되었고, 조직화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올해 봄에 강남역에서 열렸던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집회를 예로 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급부로 엄청나게 조직하고 세력을 부풀렸지만, 일간베스트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전혀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더 타락의 길을 걸었다. 왜냐하면 반공주의라는 극단적 반혁명 사상이 머리에 주입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페미니즘=사회주의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심을 드러내고 있고, 좌파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며, 심지어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계승받아 이승만과 그의 반공사상을 내세우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반북관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 그냥 안티페미니즘=반공주의라는 공식이 대체로 성립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처럼 이번에 강남역에서 혐오집회를 벌였던 한국의 안티 페미니즘 진영은 본질적으로 반동이며, 사회적으로 청산해야할 암덩어리고 우리가 연대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현재 주류 페미니즘의 의견을 다 동의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다는 것은 절대 아니며, 그들이 범하는 일부 비과학적 접근은 상당히 경계해야 한다 생각한다. 그리고 나 또한 이쪽 분야에 대해선 학습이 부족하기에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을 적어놓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말이다.

내 sns 친구들 중에는 페미니스트들도 있고, 안티 페미니즘의 주장에 상당부분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들의 주장을 양면 다 보려고 하는 쪽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도 있겠으나, 이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선 그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난 본질적으로 페미니즘의 진영보다 안티 페미니즘 진영에 반감이 더 강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부터가 좌파를 자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치녀'나 '보슬아치' 등등의 단어들을 쓰는 이들 그리고 반공을 내세우는 그들을 지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슬슬 결론을 내리자면 반공을 중심으로 두고 있는 한국의 안티 페미니즘은 당연히 청산해야할 대상이다. 따라서 이들은 동맹세력이 아니라 사회주의에 있어서 적이고 반동이다! 이들을 분쇄하지 않는 이상 사회주의가 얘기하는 여성해방과 남녀평등은 실천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류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적 그리고 과학적 비판과 더불어 이들에 맞선 투쟁도 당연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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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11-26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 페미니즘도 신-신보수주의로 볼수 있지요..

NamGiKim 2020-11-26 13:57   좋아요 1 | URL
그런 측면도 없지는 않겠죠. 어디가 되었든 문화 탈레반이 되서는 안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