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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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게 진짜 기억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혹은 스스로가 만든 기억일까

어떤 일을 할 때 문득 떠오르거나 혹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번쯤 있었다면 그건 스스로가 경험했던 걸 무의식에서 떠올린 건지 아니면 누군가의 말처럼 전생의 기억인 건지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익숙한 개념인 전생을 소재로 해서 작가 특유의 과학적 개념과 철학을 섞어 이번에도 독특한 작품이 나왔는데 여전히 폭넓고 거침없는 사고와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 작품이다.

작가의 전작들에서 자주 언급되거나 소재로 다뤘던 소재에다 이번에는 성경에 있는 창세기와 신화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에 인간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게 또 언제나 그렇듯이 그럴듯하다.

친구와 우연히 들른 공연장에서 퇴행 최면 즉 전생 최면의 대상자가 된 르네는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 공연장을 뛰쳐나왔다 강도와 몸싸움 끝에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고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르네가 한순간에 살인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퇴행 최면에서 본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그 기억이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걸 발견하고 공연을 했던 오팔을 찾아가 다시 한번 퇴행 최면을 하게 되면서 전생을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특정적인 점이 과거의 경험에서 온 것이라는 걸 깨닫고 전생의 나와 현재의 나가 무관하지 않고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르네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사람들과 경찰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조금씩 퇴행 최면에 익숙해진 르네는 최초의 방으로 가고 그곳에서 믿을 수 없게도 아틀란티스를 보게 된다.

그곳 아틀란티스는 소유의 개념이 없고 일을 하는 사람도 돈도 없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평생 갈등을 겪는 일이 없는 그야말로 평화롭고 조용한 유토피아였지만 르네는 그들이 곧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릴 운명이라는 걸 알기에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전생인 게브를 통해 알고 있는 진실을 이야기해 주고 운명의 날을 피할 수 있도록 배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정신적으로는 성숙하지만 기술의 개발이나 물건의 개념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게브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통 원해 배를 만들어 위기에 대처하도록 하고 그 배를 방주라 하는 부분에서 성경의 내용과 연결된다.

매일 밤 퇴행 최면을 통해 전생을 여행하면서 르네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았던 모든 전생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전의 삶에서 가장 원했던 걸 다음 생에서 가지고 태어난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에다 의문을 던지고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단서를 쫓아가다 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식의 의식의 확장... 여기에다 작가 특유의 박학다식함을 보태서 주장을 뒷받침하고 누구나 한 번쯤 의문을 가질만한 근본적인 내용을 왜 그런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가만의 작풍은 여전히 신비롭고 매혹적이지만 아쉽게도 신선한 맛은 없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는 게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작가의 기존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이론이나 지식, 세계관이 이 책 기억에서도 여전히 작품 곳곳에서 나오거나 예를 들고 있어 다소 식상하다는 점이 아쉬울 뿐... 언제나 그렇듯이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지 늘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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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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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번화가 뉴욕에는 여전히 수동으로 엘리베이터를 운행하는 곳이 53곳이 있었고 그중 한 곳이 바로 5번가 12번지였다.

그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는 사람 디팍은 신분 차이가 엄격한 인도에서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여자를 사랑했고 여자의 가문 남자들로부터 위협을 받아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건너온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했지만 기회의 땅인 미국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인도에서 전도 유망한 크리켓 선수였던 디팍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버리고 미국으로 왔기에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맡은 엘리베이터의 안전운행에 모든 걸 걸었고 오랫동안 그의 정성은 보답받는듯했지만 동료의 뜻밖의 사고로 이 모든 일이 어그러지기 시작할 뿐 아니라 사고가 없었다면 절대로 몰랐을 주민들의 본모습을 보게 된다.

기다렸다는 듯 주민대표의 주도로 신식 엘리베이터의 도입을 추진하는 주민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디팍

하지만 모든 주민이 다 이 계획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고 오랫동안 디팍의 보살핌을 받아왔던 클로이 역시 이 계획에 분노하면서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9층의 그녀 클로이는 사고로 다리를 잃고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여전히 밝고 긍정적일 뿐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있고 추진력도 있는 사랑스러운 여인이지만 사고 이후로 누군가 자신의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도움을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 클로이가 공원에서 한 남자와 우연히 만나게 되고 평소의 그녀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산지

그는 인도에서 투자자를 찾아 미국으로 온 남자이자 디팍의 처조카로 고모의 오해로 인해 디팍의 집에 머물고 있다 뜻하지 않게 디팍 동료 대신으로 야간 엘리베이터를 운행하는 일을 맡게 되지만 그는 인도 굴지의 호텔의 대주주

엄청난 갑부인 그가 고모부의 일을 도와 수동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는 일을 승낙한 이유는 첫눈에 반한 클로이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함이라는 로맨틱한 이유가 있었다.

오래된 전통의 건물이자 부유층들만 사는 이곳 5번가 12번지에는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뜻하지 않은 사고가 계기가 되어 서로 간의 민낯이 드러나고 갈등이 드러나는가 하면 사람들의 편견을 보란 듯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사람의 달콤한 로맨스도 곁들여져 있다.

그런 반면 자신이 그들에게 그 오랜 세월 애정을 기울이고 오랫동안 봉사한 만큼 주민들 역시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을 여느 종업원 대하듯 쉽게 저버리지 않을 거라 믿었던 디팍의 믿음은 자신들이 불편하지 않을 동안만 지켜질 믿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뿐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 그들에게 헌신해왔던 것이라는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 씁쓸하게 그려진다.

그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자신들의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보살핀 디팍의 친절과 봉사를 당연한 듯 여겨 고마움을 모를 뿐 아니라 그가 자신들과 다른 유색인이라는 걸 한시도 잊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는 도난 사건 소동은 여전히 미국 내 유색인종을 바라보는 편견을 보여주고 있다.

느닷없는 사고로 다리를 잃은 클로이 역시 자신은 굳건한 의지로 이겨내고 있다 믿었지만 스스로 사랑에 위축되어 있었다는 걸 산지의 고백으로 깨닫게 되면서 자신 역시 사랑할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걸 깨닫기도 하는 등...

모두가 알게 모르게 각각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그녀, 클로이는 등장하는 캐릭터의 사랑스러움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클로이와 산지 그리고 디팍의 아내이자 사랑을 위해 가족과 조국 모두를 버리는 데 두려움이 없었던 랄리가 보여주는 인생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모습은 이 책을 더 사랑스럽게 해주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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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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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동물농장은 어릴 적 읽어보고 이번에 다시 읽어봤는데 나이를 먹어서인지 그때 읽었을 때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어릴때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읽고 넘어간 부분...갓낳은 개들과 동물들을 외부의 접촉을 금지하고 자신이 키우는 별다를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뒤에 가서 그 개들을 자신의 권력탈취를 위해 앞세우고 다른 동물들을 위협하도록 하는 장면을 통해 맹목적으로 자신에게 충성하게 하도록 세뇌하는 가장 무서운 방법을 알 수 있었다.

다른 동물들과 접촉할 수 없었던 개들에게는 나폴레온이 전부일 수밖에 없었고 그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왜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그렇게나 집요하게 학교에서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 말을 사용하게 했는지... 제대로 된 정체성과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을 세뇌하고자 했던 일본인들의 치밀한 교활함에 새삼 화가 났었다.

1945년 출간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었다는 소개 글이 납득이 갈 만한 책이었지만 당시에는 출간하는 것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는 건 의외였는데 시대적 배경을 알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2차 대전이 소련의 도움으로 연합군의 승리를 얻은 덕분에 당시 시대적 분위기가 소련에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것이 이 책의 출판에 걸림돌이 된 것인데 동물농장이 겉으로는 동물들이 인간을 몰아내고 농장을 차지해서 스스로 그 농장을 이끌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지만 누가 봐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소련의 스탈린과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었기에 출판사들 스스로 혹은 정부의 압력이 있었던 탓이다.

따지고 보면 누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출판사 자체적으로 검열을 했다는 것인데 잘못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침묵하는 지성인들의 비겁함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사회주의자인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이 있어 소련의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의 민낯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레닌을 비롯해 마르크스 등 공산주의들이 주장하는 이론 즉 계급 없는 사회란 그저 허울뿐인 허상임을 알고 있었고 그런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쓴 글이 바로 동물농장이었다.

존스 씨가 운영하던 장원 농장의 동물들 중 많은 동물들로부터 신망을 얻고 있었던 메이저 영감이 꾼 꿈에서부터 시작된 인간들에게 착취당하지 않는 동물들만의 세상은 이윽고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 존스 씨를 몰아내었고 그들이 장원을 차지할 때는 분명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어디든 그런 무리를 이끌어 나아가고자 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가 있기 마련인데 젊은 돼지 나폴레온과 스노볼이 그 역할을 맡게 되지만 동물들에게 존스 씨가 먼저 떠난 것은 불운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서로 성향과 목적이 다른 스노볼과 나폴레온은 늘 안건을 두고 대립하기 일쑤인데 끊임없이 동료인 동물들을 독려하고 격려하며 앞을 보고 달려가는 스노볼에 비해 나폴레온은 뒤에서 뭔가를 조직하고 자신만의 패거리를 만들어 호시탐탐 스노볼의 내쫓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을 땐 이미 장원을 비롯해 모든 것들이 나폴레온의 손에 들어간 뒤였다.

그런 후 스노볼이 이룬 성과를 축소하기 시작하다 나중에는 은폐와 조작을 통해 처음 동물들이 알고 있던 스노볼은 어디로 사라지고 모든 나쁜 일과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스노볼의 소행으로 돌리기 시작하며 동물들을 선동하는 데 이용된다.

이렇게 될 때까지 동물들의 저항이 없었던 것은 나폴레온이 하는 일에 의문을 가지거나 저항하는 동물들을 그가 키운 사나운 개를 앞세워 위협하거나 제거하고 말을 잘하는 선동꾼 스퀼러가 앞장서서 통계의 조작을 통해 동물들을 속여왔기 때문인데 처음 동물들이 반란으로 농장을 점령했을 때 모두 함께 만들었던 7계명 역시 조금씩 조작되고 변질되는데도 아무도 그 원래의 7계명을 기억하는 동물이 없다는 것은 대중이 얼마나 쉽게 잊고 기억이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권력을 잡은 나폴레온이 자신이 손수 가둬 키운 개들을 전위대로 앞세워 모두를 위협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는데도 동물들은 그저 참기만 하고 이의조차 제기하지 않는 모습은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이 취하는 방법과 같다.

대중들이 원하는 말로 현혹해서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는 무슨 무슨 조직이나 위원회를 만들어 그 권력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공포감을 조성해 누구도 제대로 의견을 말하지도 반대를 하지도 못하게 한 후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만한 라이벌을 제거하는 모습은 나폴레온과 스퀼러가 스노볼을 몰아내고 동물들을 조종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그 이후 나폴레온과 그 측근이 하는 행태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결국 모든 권력은 감시하는 사람이 없고 비판하는 사람이 없으면 부패하기 쉽다는 걸 동물농장을 통해 들려주고자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왜 다시 동물농장을 읽어야 하는지...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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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씨 허니컷 구하기
베스 호프먼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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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한창 빛날 때의 모습만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놔버린 엄마와 밝고 건강할 때의 아내 모습과 너무 달라진 지금의 모습을 참고 봐줄 수 없어 언제나 일을 핑계로 밖으로만 도는 아빠를 둔 어린 소녀 씨씨

나고 자라면서 제대로 된 부모의 보살핌을 받은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키다 못해 구경거리로 전락한 엄마로 인해 수치심을 품고 살았던 씨씨는 그런 엄마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실현될 거라는 걸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에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죄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엄마 없이 홀로된 딸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아빠마저 씨씨를 남부의 친척에게 보내겠다는 말은 씨씨로 하여금 버림받았다 느껴진 것과 동시에 아빠마저 포기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고아가 아니면서 고아가 된 씨씨는 마음속 상처를 안고 남부의 엄마 친척인 투티 할머니 집으로 오게 되고 그곳에서 처음 받아보는 환대와 제대로 된 식사는 얼어붙었던 씨씨의 마음을 조금씩 녹여주지만 너무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아본 적 없어 투티 할머니와 올레타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게 쉽지 않다.

이렇게 씨씨 허니컷 구하기는 보이지 않는 상처로 가득했던 소녀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의 호의와 사랑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내보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가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사랑 하나를 믿고 자란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북부로 왔지만 늘 일 때문에 외부를 떠돌아야 했던 남편으로 인해 외로움에 지쳐 정신을 놔버린 엄마가 일으키는 소동은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 너무 힘들고 무거운 짐이었기에 어른이면서 자신의 짐을 어린 딸에게 떠맡겼던 아빠에게 소녀가 보내는 경멸은 타당했다 생각한다.

그래서 용서를 구하는 아빠를 쉽게 용서해 주지 않는 씨씨의 마음이 이해가 갔을 뿐 아니라 혼자 아픈 엄마를 돌보면서 씨씨가 느꼈을 외로움과 슬픔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귄 적이 없고 오로지 책만 팠던 책벌레 씨씨가 남부로 와서 맛있는 롤빵과 음식을 만드는 롤레타 아줌마와 한없는 사랑을 주는 투티 할머니의 환대와 애정 속에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지는 씨씨 허니컷 구하기는 빨강 머리 앤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리고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여자들이 상처 가득한 씨씨에게 해주는 말들은 꼭 씨씨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길잡이가 되는 말들이 많다.

아픈 엄마를 대신해 곁에 있어 주었던 오델 할머니가 헤어지기 싫어하는 씨씨에게 인생은 변화로 가득 차 있고 사람마다 인생 책을 하나씩 가지고 태어나 책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인생을 배운다며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조언해 주는 대목도 그렇고 인생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용기를 내어 인생에 뛰어 들것을 조언하는 롤레타 아줌마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사랑이 넘치고 위트 있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씨씨가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그려진 씨씨 허니컷 구하기는 표지만큼 사랑스러운 소설이었고 읽는 내내 남부의 따뜻한 정취와 맛있는 롤빵과 케익의 냄새가 맴도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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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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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던 호텔의 탁자 서랍에서 우연히 발견된 원고를 읽고 단숨에 매료된 안느 리즈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읽고 마는 걸로 끝나지 않고 그 원고 속에 쓰인 주소로 원고와 함께 편지를 보내면서

이 우연이 믿을 수 없는 인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128호실의 원고는 안느가 원작자로 추정되는

살베스트르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로만 주고받는 서간체 소설이다.

서간체 소설로 유명한 작품이 몇 있는데 서로 간에 느끼는 감정이나 사건들을 편지로만 묘사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여차하면 단순하게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처럼 평이해질 수 있어 독자의 시선을 잡는 것 역시 쉽지 않아서인지 서간체 소설이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 128호실의 원고는 캐나다에서 잃어버렸던 원고가 어떻게 프랑스의 그 호텔 서랍에 있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누가 그 뒷이야기를 이어서 썼는지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와 우연히 원고를 읽었던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드라마적인 요소에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까지 여러 장르가 다양하게 섞여 단숨에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편지에 수수께끼와 드라마틱 한 사랑 이야기가 섞인 또 다른 소설 건지 감자껍질 파이 클럽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둘 다 재밌는 소설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2차 대전이라는 무거울 수 있는 시대적 배경에 비해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이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내용 역시 부담 없이 읽기엔 좋은 것 같다.

오래전 한창 피 끓는 나이에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을 평가받기 위해 캐나다로 향했다 어이없이 원고를 잃어버리고 그 이후 글을 쓰는 것에도 의욕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던 살베스트르에게 느닷없이 이름도 모르는 여성으로부터 당신의 원고를 읽었다는 편지는 얼마나 큰 놀라움을 안겨줬을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 이후 그가 보인 반응 즉 그녀에게 원고를 찾아준 것에 고마움을 전하지만 그녀가 그 원고를 추적하는 것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그의 심정도...

여느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멈추겠지만 안느라는 여자는 다르다.

그녀는 평소 적극적이고 궁금한 것을 못 참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참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다소 오지랖이 있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쉽게 협조를 얻어내 그 원고의 여정을 쫓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한다. 이제 그 원고는 작가 한 사람의 원고가 아니라 모두의 원고가 되었고 그런 그녀의 관심이 언젠가부터 사람들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사람들을 피해서 은둔자처럼 생활하던 살베르트르를 변화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 원고의 여정을 쫓아가는 데에는 그 소설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과연 누가 그 뒷이야기를 쓴 건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던 탓이기도 했다.

그렇게 또 다른 작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살베르트르의 원고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고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데 그 하나하나의 사연을 따라가는 것 역시 편지를 읽는 재미와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그 소설은 은둔자였던 살베르트르를 자신의 거주지에서 벗어나게 했고 안느의 친구이자 이 과정의 또 다른 조력자인 마기가 남편과 아이를 잃어버린 상처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게 했을 뿐 아니라 누군가 가슴 아픈 사랑의 비밀을 밝혀내기도 한다.

원고를 찾기까지의 긴 세월이 말해주듯 그 세월을 거치면서 원고를 접했던 사람들의 변화된 삶도 그리고 그들 각자의 사연도 잔잔한 감동을 주지만 이 원고의 여정을 쫓으면서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새로운 인연을 맺어가는 과정도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누군가에게 상처를 돌아보고 마주할 힘을 주는 원고는 또한 중요한 일은 내일로 미뤄선 안된다는 교훈도 주고 있다.

한 편의 소설이 어떻게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지 그 여정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는 128호실의 원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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