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은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업하던 남편이 암에 걸려 병석에 눕자 아내 되는 여자가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결국 남편은 세상을 떴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들 형제와 작은 아파트 한 채. 그나마 아파트는 많은 빚에 저당 잡혀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민 끝에 상식을 넘는 선택을 하였다. 아들 형제를 내팽개치고 다른 남자랑 따로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그 남자와 옆 동네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이다. 모자간에 길에서 맞닥뜨릴 상황이 되면 그녀는 먼저 다른 길로 피해 감으로써 자신이 원치 않는 만남을 용케 면하며 산다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애만은 천고불변의 진리인 듯 영원할 거라 믿어온 무심으로는 정말 믿기지 않는 실화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형제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애들이 아니라 하나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고, 다른 하나는 군대에 갔다가 막 제대한 청년이라는 사실이다. 하긴, 형제가 열 살 미만의 어린이들인데 그녀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법의 심판을 받았을 테다.

그렇다 해도 무심으로서는 가난 앞에 무너진 모성애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생각 끝에 지인들에게 과연 그런 비극이 가능할 수 있는지그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경제난이 심화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다수였다. 뜻밖이었다.

결국 무심은 그 이야기를 작품화하여 허구로나마 못된 어미를 응징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를 응징했다고 해도 비극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허구이긴 하지만 개연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비극의 재생산에 무심의 가슴은 다시 아팠다.

박쥐가 된 아이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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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차는 마침내 운포면 희망리 마을로 가는 도로로 들어섰다. 방금 전 운포면 면소재지 동네 가까이 다다랐지만 외곽도로로 그냥 지나쳐 온 거다.

자갈 많고 먼지 나던 신작로가 아닌 깨끗한 아스팔트길이다. 그런데 다른 차들도 없이 한적한 길이라 그는 차의 속도를 시속 40키로 정도로 낮추었다.

웬 사내의 멱살을 쥐고 , 이 새끼야! , 춘천에서 온 봉길이 알아?’하고는 냅다 발로 후려차기를 했던 고개가…… 없어진 듯싶다. 고백하건대 달빛에 드러난, 놀란 사내의 얼굴은 최소한 30대는 돼 보였다. 나이도 열 살 이상 될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운이 좋았다. 만일 사내가 면소재지 파출소로 달려가 춘천에서 온 봉길이란 깡패한테 봉변을 당했다고 신고했더라면 어찌 될 뻔했나? 하마터면, 다음 날 저녁쯤 외갓집에 나타난 경찰관에 체포되어 충주나 청주 같은 대도시의 경찰서로 이송되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는데, 그건 사내가 하마터먼 맞아죽을 뻔했는데 운 좋게 살았다!’며 안도의 숨이나 쉬고 만 덕분이 아닐까?

그리고, 코피가 터진 것은 둘째 치고 앞니가 몇 대 나갔을 키 작은 아이.

다행히 그 아이도 사나이끼리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끝까지 애써 담대한 자세를 유지한 게 아니었을까?

운포면 내에는 마땅한 치과도 없었을 테니 하는 수 없이 충주나 청주의 치과를 다니면서 의치를 해 넣느라 고생이 많았을 게다. 요즈음같이 인정 삭막한 시대에는 결코 있을 수 없는 키 작은 아이의 담대함이었다. 그 아이한테 지금이라도 고마워해야 한다.

그의 차가 어느 새 희망리 앞에 다다랐다. ‘희망리란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동네 어귀에 서 있다. 그 바위가 아니더라도 버스 정류장 역할 하던 도로 변 구멍가게집이 허름하나마 남아 있어서 희망리 어귀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에 동네 통 털어서 하나뿐이던 그 가게가 이제는 널빤지 여러 장으로 전면을 폐쇄해 버린 폐가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바위 옆에 차를 세웠다.

, 그 날 밤 사건의 현장은 언제 지나쳤을까? 험한 신작로 대신 말끔한 아스팔트길로, 차로 5분여 만에 도착하는 바람에 그날 밤 사건의 현장을 휙 지나치고 만 것 같다. 우선은 외갓집부터 가 보고, 다시 돌아갈 때 사건 현장을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예전의 굽이 많던 신작로를 바로 펴면서 아스팔트길로 만들어 놓아, 과연 그 현장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동네 안 길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놀랍게도 예전의 즐비했던 집들이 대부분 사라진 풍경이다. 새마을운동으로 철거됐을 그 많던 초가집들은 그렇다 치고 몇 안 되던 기와집마저 빈 터로 남았거나 농촌주택이라는 표준형 단층 건물로 변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사람이 사는 주택보다 조립식 창고나 비닐하우스가 더 많아 보이는 동네다.

농촌 사람들 대부분 도시로 나가면서 농촌이 황폐화된다는 뉴스 보도를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듯한데, 45년 전 사건 다음 날새벽에 마지막으로 본 정겹던 풍경이 이렇게 황폐화되었을 줄이야.

45년 전 새벽이다. 그는 책가방 짐을 싼 뒤 외할머니를 찾았다. 외할머니는 새벽부터 부엌 바닥에 앉아 옥수수 껍질들을 벗기고 있었다.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하나 남은 외동아들 용석 아재를 충주의 모 고등학교에 유학까지 보낸 정성은 그렇듯 항시 변함이 없었다.

할머니, 나 춘천 가야 해, 차비 좀 줘.”

갑작스레 나타난 외손주에 놀란 외할머니. 주름살 가득한 얼굴로 옥수수 껍질 벗기기도 멈추고, 그냥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개학하자마자 학교에서 시험을 본다는데 그걸 깜빡 잊었어. 어서 집에 가서 공부해야 돼.”

외할머니는 허리를 천천히 펴며 일어나더니 당신의 허리춤에서 비닐로 돌돌 싼 작은 돈뭉치를 꺼냈다.

차비 하고…… 남은 거는 니 에미한테 줘라. 아니 그런데 손이 왜 퉁퉁 부었냐?”

어제 벌에 쏘였어.”

그럼 된장이라도 발라야제.”

괜찮아. 가다 약방 들를게.”

그는 그 길로 외갓집을 나왔다. 먼동이 트는 새벽에 동네 안 길이 아닌, 뒷동산 오솔길로 해서 동네를 떠났다. 외할머니 말고는 아무도 그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전 날 밤 저지른 일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전개될 듯싶은 불길한 예감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그렇듯 춘천으로 새벽같이 달아나는 방법을 택했다. 개학은 아직도 열흘이나 남았다. 뒷동산을 넘을 때 그는 왠지 외갓집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잠깐 멈춰 서서 외갓집을 비롯한 희망리 온 동네를 돌아보았다.

‘“꼬끼요오!”

닭울음소리들이 여기저기 나며, 굴뚝들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밥 짓는 연기들. 초가집들 사이로 드문드문 기와집이 있는 그 평온한 풍경.

그의 황급한 처지와 비교되던 평온한 풍경이라니…….

그 후 그는 왠지 외갓집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장장 45년간이나 발길을 끊었다.

이듬해는 고 3이 되면서 대입예비고사 공부를 하느라 바빴고, 그 이듬해에는 학비가 저렴한 사범대학에 들어가 미팅하고 데이트하고 실연도 하고 그러느라 경황이 없었다. 그러면서 외갓집은 추억 혹은 기억 속의 무엇이 되었다.

솔직히 마음만 먹었다면 외갓집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한테 주먹을 맞고서 앞니들이 다 나간, 망신창이가 된 키 작은 아이가 마음에 걸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뒤늦게 그 날 밤 사건을 문제 삼을 것 같은 두려움이랄까.

그는 낡은 기억을 뒤지듯, 동네 골목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골목이라면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길을 뜻하는데 동네가 황폐화된 지금 골목이란 표현이 합당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 휴대폰이 부으응!’ 울었다. 아내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차에쥐색빛깔지갑있나확인바람

쥐색빛깔지갑이라면 아내가 성당 갈 때마다 지참하는 돈지갑이다. 그걸 차 안 어디에 둔 모양이다.

이런 칠칠치 못한 여편네 같으니라고. 백 날 콩나물 값 몇 푼을 깎으면 뭐해? 돈지갑도 잊고 다니면서……!’ 속으로 발칵 욕하던 그는 돌연 발걸음을 돌렸다. 조금만 골목을 더 걸으면 외갓집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할 수 있지만 그건 지금 중요치 않다. ‘희망리바위 있는 데로 황급히 걷는데, 조수석 창이 고장 나서 반쯤 열어둔 차 생각이 퍼뜩 났기 때문이다. 인적도 그친 동네처럼 보이지만,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 조수석 창 안으로 손을 넣어 차 문을 연 뒤, 돈지갑을 갖고 갈 수 있다.

황급히 뛰어갔더니, 늦가을 햇살 아래 차는 그대로 있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움직임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불편한 차 실내에서 몸을 사방으로 움직여가며 쥐색빛깔 지갑을 찾았다. 없었다. 글러브 박스는 물론이고, 의자 뒤의 주머니 닮은 부분의 속과 의자 밑까지 샅샅이 살폈으나 그 지갑을 찾을 수 없었다.

모자란 여편네 같으니라고. 대체 어디다 흘린 거야.’

마지막으로 트렁크를 뒤져볼 생각에 차 밖으로 나왔는데 그 때 조수석 쪽의 창유리가 푸르륵소리를 내며 아래로 내려졌다. 반 정도 열려 있던 게 이제는 활짝 열린 꼴이다. 장만한 지 10년 넘었음을 어김없이 증명하는 고물차다.

이제 어떻게 한다? 이대로 400리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꼴불견도 그렇지만, 차 안으로 들이치는 쌀쌀한 바람을 세 시간이나 감당해야 한다. 그건 못할 짓이다. 천생, 카센터라도 찾아, 어서 해결하자. 그러려면 면소재지로 가 볼 수밖에.’

그는 아까 오던 아스팔트길로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45년 전 그날 밤 사건의 현장이고 뭐고 차창 고장을 수리하는 일이 급하다.

면소재지 동네에 도착했다. 희망리와는 다르게 제법 번듯한 건물들이 들어선 장거리. 약국, 다방, 당구장, 철물점, 농협 하나로마트, 우체국…… 인적은 뜸하지만 있어야 할 건물들이 작은 규모로 존재하고 있다. 마침내 우정 카센터란 간판의 조립식 건물을 만났다.

차를 건물 앞에 세우자 키 작은, 때에 전 가죽점퍼 차림의 사내가 안쪽의 작은 사무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 참! 조수석 창유리가 내려가서는 안 올라오거든요.”

고치는 데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오늘 중으로야 수리되겠죠?”

그 말에 사내가 입을 벌리고 헤헤 웃는데 앞니 모두가 누런 금니였다. 작은 키에 앞니를 다 간 사내……. 그는 억지로 따라 웃으며 등허리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 때 성가시게도 휴대폰이 또 부응울었다. 아내가 다시 보낸 문자메시지.

찬미예수님지갑주방에서찾았어미안해당신지금어딨어?’

이럴 때 답신이 가능할까?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다는 이상한 답신이 아내에게 가능할까? 그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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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청주 녀석에 대한 대책에 골몰하다가 맞이한 그 날 밤이다.

45년이나 흘렀는데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건을 저지른 그날 밤이다. 보름달이 훤하게 떠 있었다. 동네 애들이 어김없이 외갓집 마당에 들어와 그를 불렀다.

, , !”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집에 있어야겠다고 둘러댈까궁리하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어이!’ 응답하며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이틀에 하루 꼴로 애들이 찾아와 , , 부르고, 그러면 어이대답하고 나가는 변함없는 반복이 조건반사 같은 결과를 빚은 게 아닐까? 아니면 될 대로 되겠지하는 체념이었을까?

어쨌든 그는 별나게 보름달까지 환하게 뜬 그날 밤, 동네 애들과 유행가들을 부르며 신작로를 걸어갔다. 그저께 밤에 마시다 남긴 소주 댓병을 찾아, 두어 모금씩 돌아가며 마셨으므로 유행가가 안 나올 수 없다.

사아나이 가슴에도오 눈물으은 이있다아 이이렇게 정을 두우고 떠어나아 가알 바에……

면소재지 동네로 가는 신작로의 중간쯤 왔을 때다. 멀리, 거뭇한 움직임이 있더니 서서히 사람들 무리로 드러났고, 거리가 좁혀지자 무리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면소재지 애들로 보이는 대여섯 명 가운데에 학생모를 쓴, 키가 다른 애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아이가 있었다.

청주에서 온 녀석이구나.’

이런 순간을 예상하며 지낸 때문일까? 뜻밖에 그는 마음이 가라앉듯, 차분해져 스스로 놀랐다.

약속이라도 한 듯 양 쪽이 약 3미터 거리를 두고 멈추어 섰다. 무심한 풀벌레 울음소리만이 존재하는 침묵을, 그 쪽 무리에서 키 작은 아이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깨뜨렸다.

그래, 춘천에서 왔다는 그 대단한 봉길이가, 여기 있냐?”

그 아이는 청주에서 온 녀석 옆에 서 있다가 앞으로 나선 것이다. 빈정거리는 어조인 게 춘천 당수와 청주 당수의 대련을 이 자리에서 이끌어내려고 시비 거는 역이다.

그래, 난데?”

하면서 그도 아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아이가 헤헤웃음을 흘리며 한층 빈정거리는 어조로 그래, 당수 실력이하는 순간 그는 얼굴 정면을 주먹으로 냅다 갈겼다. 있는 힘을 다한 단 한 번의 가격에 아이는 어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 떨어졌다. 정확히는, 뒤로 서너 걸음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신작로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잠시 후 엉거주춤 간신히 일어난 아이. 한 손으로 코 부분을 막고 섰지만 신작로 바닥으로 무슨 액체가 툭, , 툭 떨어지는 게 아무래도 코피가 터진 듯싶었다. 급히 지혈을 돕느라 면소재지 동네 애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그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그는 기세 높여 씨부렁거렸다.

이런 씨팔 놈의 새끼가 얻따 대고 까불어! 에이 썅, 죽여 버릴까 보다.”

그러면서 아이 쪽으로 나아가려 하자, 희망리 애들이 다행히도그의 양 팔을 붙잡았다.

그만 참아, 봉길아.”

순식간에 벌어진 눈앞의 참사에 놀란 청주 당수 녀석. 못 이기는 체 양팔이 붙잡혀 있는 그를 향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공손하게, 그러나 애써 품위를 잃지 않으려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씨. 반갑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왔거든요.”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도 양팔을 애들한테서 뗀 뒤 손을 내밀어 악수했는데 정말, 남은 힘 모두를 모아 내민 손이며 악수였다. 방금 전 아이를 가격한 순간 그의 주먹도 심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귀가해서 그 손을 살펴봤더니 온통 시커멓게 멍 든 데다가 새끼손가락은 뼈까지 휘어있었다. 만일 청주에서 온 녀석이 맞은 아이의 복수를 하겠다며 그 자리에서 당수 대련을 청했더라면 그는 꼼짝 못하고 자기 제삿날을 만들 뻔했다.

악수한 채로 청주 녀석이 말을 이었다.

저도 당수를 배웠거든요. 2단입니다.”

나도 당수를 배우긴 했는데, , 그깟 당수 백 날 배워 봤자, 구찌로 찌르면 말짱 꽝 아닌가? 아니, 역도산이 당수를 못해서 죽었나? 안 그래, 형씨?”

구찌란 깡패들이 쓰는 은어로 칼을 뜻한다. 몇 년 전, ‘역도산이라는 재일교포 출신의 유명한 프로레슬러가 일본 조무래기 깡패의 칼에 찔려 허무하게 죽은 사건이 있었다. 레슬링 경기 때마다 당수 기술을 사용해 승리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의 허망한 피살은 아니, 역도산이 당수를 못해 죽었나?’하는 음산한 유행어를 낳고 말았다. 내게 칼이 있으니 함부로 덤비지 말라는 위협에 다름 아니다.

청주 당수 녀석은 기겁해서 침묵했다가, 손수건으로 코피를 막느라 경황없는 키 작은 아이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탁 치며 말했다.

야이, 새끼야. 니가 잘못한 거야. 저 분한테 사과해.”

키 작은 아이가 왼손은 코피를 막으며 오른손을 내밀어 그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말없이 고개를 한 번 꾸벅였다. 그는 몹시 아픈 손으로 다시 악수하면서, 그 아이가 코피만 터진 게 아니라 앞니도 몇 대 나갔음을 눈치 챘다. 코뿐만 아니라 입 부분도 온통 피투성이가 돼버렸기 때문에 아이는 입으로 사과의 말도 못하고 고개만 꾸벅인 것이다. 그는 이거, 내가 간단치 않은 사고를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으나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일인 것처럼 넘어갈 수도 없었다. 짧은 시간에 정이라도 든 듯 그는 어울리지 않게, 측은히 여기는 따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많이 아파?”

그러자 아이는 손수건을 잠깐 떼고는 입을 다쳐 제대로 되지 않는 발음으로 겨우 답했다.

……찮아.”

주먹 한 방에 망신창이가 되었으나 애써 사나이의 담대한 기개를 잃지 않는, 딱한 아이였다.

그는 이번에는 청주 녀석한테 아픈 자기 손의 고통을 숨기며 다시 악수를 청한 뒤 말했다.

다음에 봅시다. 그 때, 따로 둘이서 소주 한 병 까자고.”

그런 뒤, ‘춘천에서 온 봉길이의 대단한 당수 실력과 그에 따른 호걸스런 마무리에 존경의 염까지 생긴 희망리 시골 애들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씨발 피 봤으니, 오늘 밤 기분도 좆같고. , 그냥 우리 동네로 되돌아가자고.”

 

돌이켜보면 사건을 저지른 그날 밤자기가 얼마나 기민하게 대처했는지, 스스로도 놀랍다.

요즈음 애들이 잘 쓰는 말로 자뻑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예순세 살 평생에서 1968년 여름날 달밤에 충북 음성군 운포면 희망리 신작로에서 벌인 그 사건만큼 온몸의 피를 끓게 만든 사건도 없었다. 차를 몰고 운포면에 다가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이다.

이제 그는 다소 어법에 맞지 않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 그 날 밤 내가 그 위기를 기민하게 잘 대처했을까?’

……당시 그의 나이 18세였다. 그 나이는 인생에서 가장 신체기능이 좋은 나이다. 많은 학자들이 인간은 사춘기 때 몸의 기능이 가장 왕성하다고 진술한다. 1968년 여름 밤, 그는 왕성한 자신의 갖가지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마치 한 마리의 팔팔한 수컷늑대처럼.

키 작은 아이가 시비를 걸어왔을 때 채 말도 끝나기 전에 주먹으로 가격한 사실 하나만 봐도 그런 기능의 유감없는 발휘였다. 왜냐면, 그는 본능적으로 이 순간 이 아이를 공격하지 못하면 내가 당한다. 허를 찔러야 내가 이길 수 있다.’ 판단했고 그 판단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만일 키 작은 아이가 시비를 거는 대로 그들의 작전에 휘말렸다면 그는 청주 녀석한테 엄청 맞고 터지는 결과를 낳으면서 1968년 여름은 그에게 인생 최악의 여름으로 남았을 게다.

그가 2단 옆차기 동작을 활용하지 않고 극히 단순한 동작인 정권 치기’, 즉 주먹으로 그 아이의 얼굴을 가격한 것 또한 아주 적절했다. 왜냐면 2단 옆차기는 화려하고 멋진 동작이긴 하지만 반드시 일정 거리가 확보되어야 하고 준비자세도 갖춰야 했다. 따라서 키 작은 아이가 바짝 다가서며 시비를 걸던 순간에는 결코 적합한 대응동작이 못 되었다. 평범하고 단순한 정권 치기야말로 그 순간 절묘한 선택이었다. 아이가 가격을 당하자마자 무참하게 쓰러지던 모습이 그를 입증한다.

싸움이 끝난 자리를 더 잇지 않고 씨발 피 봤으니, 오늘 밤 기분도 좆같고. , 그냥 우리 동네로 되돌아가자고.’ 며 마무리한 것도 잘한 일이었다. 괜히 머뭇대고 시간을 끌어봤자, 하나도 좋을 게 없었다. 청주 당수 녀석이 뒤늦게 친선경기 한다 치고 당수 대련을 한 번 합시다고 제안한다면 간신히 가라앉힌 재앙이 되살아나 지옥이 될 게 뻔했다. 게다가 키 작은 아이가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연실 닦고 있었으니, 잠시라도 그 자리에 더 머물러서는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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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복수보다는 용서와 화해가 더 높은 가치로 얘기 된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은 최순실이란 특정인의 경우를 보자. 그녀를 용서하고 화해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그러잖아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어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해결난망의 생계에 맞닥뜨려 난리인데, 그녀가 단지 대통령과 친하다는 이유 하나로 저질러 놓은 국정 난맥과 그 폐해를 용서하고 화해의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의 절대적 가치를 훼손한 최순실 그녀와 무리를 절대 용서하거나 화해의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은 물론 어머니의 삶까지 파멸시킨 나쁜 고향마을 사람들에 대해 틸리(케이트 윈슬렛)가 복수에 나선다. 영화 첫 장면에서 고향을 이십 몇 년 만에 찾아온 그녀가 내뱉은 한 마디.

I'm Back, Bastards.(내가 돌아왔다, 나쁜 놈들아)!”

그렇다면 그녀는 기관총을 들고 왔어야 하는데 어이없게도 재봉틀을 들고 왔다. 허를 찌르는 반전이다. 이 영화에서 반전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반전이란 기법은 우리 삶을 한 번 뒤집어줌으로써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보게 하는 효능이 있다.

마침내 그녀는 온 마을을 불태우고 멀리 떠나가 버린다. 이십 몇 년 간 품었던 복수가 실천된 것이다. 스토리의 앞과 뒤가 호응하는, 전형적인 수미상관이다.

 

 

어릴 적 그녀에게 살인자라는 누명을 씌운 양심불량의 마을이 훨훨 불타는 장면을 보면 그 순간 관객으로서의 카타르시스가 대단하다. 일개인이나 몇 사람을 죽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마을을 통째로 없애는 복수이기 때문이다.

호주의 외진 작은 마을에서 전개되는 스토리라서, 나는 어쩌면 마을 전체를 없앨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었다. 그런 규모의 세트장이라면 재산상의 손실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은 나의 짐작과 기대를 어기지 않았다.

 

복수로써 마을 전체를 불태우는 영화들이 전에도 있었다. 기억나는 영화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인공으로 나온 용서받지 못한 자. 악당들에 의해 망신창이가 된 주인공이 기사회생하여 그 마을 전체를 불태우며 복수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물론 우리는 온 마을을 대상으로 불을 지른다든가 하는 복수를 해서는 안 된다. 재산상의 손실도 손실이지만 그것은 큰 범죄다. 그렇기에 대안으로써온 마을을 불태우는 영화 감상을 권한다.

드레스메이커는 그런 면에서 아주 괜찮은 영화다. 재미도 있고 감동까지 준다. 답답한 요즈음, 이 영화 보기를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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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대련 제안도전장이 하루 만에 그에게 전해졌다. 문서가 아니라 지인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 구두 도전장이다.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희망리 애들의 우두머리로 으스대며 지내느라 재미있는 날들이 순간 허풍 짓으로 들통 날 위기다.

어떡하나?’

달리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동네 애들한테 이제는 그 먼 면소재지 동네에 가지 말고 예전처럼 가까운 강에 가서 놀다 오자고 제안하고 싶었지만 이미 동네 애들은 과연 청주 당수와 춘천 당수가 맞붙으면 어느 쪽이 이길까?’하는 호기심 내지 설렘마저 생겨나, 돌이킬 수 없는 사태였다.

 

동네 애들이 소 먹일 꼴을 마련하고 돼지 똥을 치우고, 논의 피도 뽑고, 담배 밭의 김도 매고 그러는 땡볕의 낮 시간에 그는 외갓집의 윗방에 누워 이런저런 궁리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루에 다섯 페이지씩 잘 나가던 ‘AW메들리영어 공부도 중단됐다.

당수 2단 녀석과 며칠 안 돼 맞닥뜨릴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묘안이 나질 않는 것이다. 물론 녀석의 빠른 시일 내 날을 잡아 대련하자는 제안은 일단 얼버무렸다.

그 새끼, 내가 뭐 한가한 줄 알고 빠른 시일 내에? 웃기고 자빠졌네. 언제고 나중에 한 번은 만나겠지. 그 때 한판 붙으면 되는 거지, 안 그래?”

호쾌한 답변을 기대한 동네 아이가 조금은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놓고는 혼자 윗방에 누워 고민하고 있다. 외할머니는 안방을 쓰고 그는 외삼촌이 쓰던 윗방을 쓰고 있다. 윗방에는 외삼촌이 보던 만화책이니 연애소설책이니, 누렇게 빛바랜 책들이 널려 있다.

액션영화의 한 장면처럼 녀석을 찾아가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드리면서 제가 당수 1단이니까 어디 형님한테 대적이 되겠습니까? 하며 위기를 모면할까?’ ‘아니 그건 너무도 비참한 꼴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나를 믿고 따르던 희망리 애들한테도 업신여김을 당해, 다시는 방학 때 외가로 놀러오지 못하는 딱한 꼴이 될 거다.’ ‘무슨 소리야? 살고 봐야지. 까짓 거, 매 맞아 죽고 나면 누가 알아나 주나? 괜한 외할머니만 고생바가지를 쓰는 거지. 외손주 장례를 치르느라고 말이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까짓 새끼, 칼 하나 품고 갔다가 싸움이 붙으면 그 칼을 휘두르면서 맞서는 거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래, 고작 당수 대련 한 번 하고 나면 그만인 것을 칼까지 갖고 가 난리친다고? 호적에 빨간 줄 갈 일이 있어?’

비좁은 춘천 집의 뒤란과 여기 뒷동산 숲에서 익힌 독학 당수갖고는 청주에서 정식으로 당수 도장을 다니며 2단을 땄다는 녀석한테 도저히, 대적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개학날이나 가까웠다면 어서 춘천 집으로 가서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짐을 싸서 새벽같이 버스 타고 달아났을 텐데, 개학날이 열흘이나 남았으니 그것도 마땅치 않고.

에라 모르겠다. 죽이 되나 밥이 되나 부딪쳐 볼 수밖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긴소매남방을 걸치고는 방에서 나왔다. 외할머니가 돼지 울에 붙어 서서, 팔자 좋게 바닥에 누운 돼지들의 몸을 작대기로 벅벅 긁어주고 있었다. 그래야 돼지 몸에 붙은 벌거지도 떨어지고, 잘 자란다는 얘기를 그는 들은 듯싶다.

돼지 울 앞을 지나 사립문밖으로 나가는 그를 외할머니가 불러 세웠다.

봉길아…… 차려 놓은 점심도 안 먹고 어딜 가는 기야?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더니만.”

밥 먹는 게 뭐 그리 중요해? , 당수 연습하러 가는 것, 옷을 보면 몰라?”

 

차는 조수석 창이 반쯤 열린 채 제천의 외곽도로를 지나고 있다.

그나마 창이 반 내린 정도에서 고장 나길 다행이다. 쌀쌀한 바깥 기운과 화창한 햇빛이 만들어낸 실내의 뜨거운 기운이 뒤섞이면서 적절한 실내 기온을 만드는 것 같다.

남제천 인터체인지에 다다랐다. 톨게이트를 통과한 뒤 그는 내비게이션을 간간이 보며 국도로 들어섰다. 30분 이내로 음성군 운포면에 도착할 것 같다. 내비게이션 지도에는 운포면 면소재지를 경유해 희망리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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