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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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하는게 미국인지라 전쟁영화는 주로 미국의 시각에서 만들어진다. 때문에 다른 전쟁도 마찬가지지만 2차대전에서 미국은 승리의 주요 원인자였고, 큰 피해를 입은 것 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2차대전에서 주요 승리의 원인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는 사실 소련이다. 소련은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을 막아내어 전력의 분산 및 연합군이 반격할 시간을 마련해주었고, 그 대가로 전 국토의 초토화와 2차대전중 가장 많은 천만에 달하는 전사자를 내었다. 

 전쟁중 여성은 민간인으로 주로 전쟁의 피해자이거나 남성들을 대신해 일상직업에 종사하거나, 전쟁물자를 생산하는데 참여하곤 했다. 하지만 소련은 달랐다. 아무리 넓은 국토와 인적자원을 자랑하는 나라지만 이런 인적 피해를 입었으니 자연스레 병력이 모자랐다. 이에 소련은 다른 나라와는 많이 다르게 전투병에도 여자들을 투입했다. 수는 무려 백만에 달했고, 전체병력의 10%수준이었다. 이렇게 참전을 많이 했고, 승리의 영광을 누렸는데 그들은 무려 50여년간 자신들의 자랑스런 전과에 대해 침묵했다. 왜 그랬을까? 

 이에 작가 스베틀라나는 저널리스트로 2차대전에 참전했던 소련 여군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정확한 시간과 분량은 나오지 않지만 십수년이 걸리고, 수백명, 아니 어쩌면 수천명의 목소리를 담았을 작업이었다. 이 결과물은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충분히 그럴만한 작품이었다. 스베틀라나의 이 작업은 처음에 공산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유는 여성을 다룬 점, 그리고 영광스러운 대조국 전쟁의 승리의 이면이 너무나도 참혹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실상이었다. 그리고 그 참혹한의 단상은 소련군 여성이 같이 있었다.

 다른 나라의 여군들이 대부분 간호병이나 취사쪽에 집중된 반면 소련여군들은 병과도 가리지 않았다. 저격병, 파르티잔, 공병, 항공부대원, 취사병, 위생병, 간호병, 군의관등, 무척 다양했다. 책에 목소리를 담은 여군들은 분명 자신들의 선택을 나중에 후회했겠지만 놀랍게도 대부분 무리를 해서라도 자원했다. 그들은 심지어 나이를 속이기도 했고, 자원하고자 고관을 직접 찾아가 강짜를 부리기도 했다. 이처럼 당시 침략자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강했던 것 같다.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가족이 피해를 본 여성까지 군에 지원했으니 그들의 애국심이나 외부의 적이 내부를 단속하는 힘은 상당했다. 

 하지만 호기와는 다르게 전쟁의 참상은 참혹했다. 간호병이나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이들은 하루종일 피바다에서 살아야 했다. 잘려진 팔과 다리는 통에 담아 한꺼번에 처리했고, 피냄새가 코와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았다. 죽어가는 이들은 하나 같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고, 자신의 죽음을 잘 믿지도 못했고, 죽음을 호기심있어 하기도 했다. 퇴각하며 때로는 수 많은 부상병들을 버리고 가야하기도 했다.

 전투병들의 참상은 더욱 끔찍했다. 지원병이나 간호병이 죽음을 간접적으로 느꼈다면 이들은 직접 죽음의 공포를 맞이했다. 자신들이 수없이 부상들 당하기도 했고 친구들이 죽어나갔다. 예뻤던 친구는 고향에서 가져온 붉은 색 머플러때문에 죽었다. 그것만큼 눈에 잘 띄는게 없었기 때문이다. 한 여군 병사는 밤새 경계를 서다 머리가 하얗게 새버렸다. 적이 언제올지 모른다는 공포가 밤에 온갖 것들을 공포의 대상을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게릴라전을 펼친 파르티잔들은 굶주림에 지치게도 했고 때론 잡혀서 엄청난 고문을 받곤 했다. 10개의 손톱밑을 파고들던 기계, 그리고 팔다리를 마구 꺽어버리던 잔혹한 고문도구들을 그녀들을 이겨냈다. 소련의 여병사들은 그들이 여자임에도 남성의 군복을 지급받았다. 여성병이 없었으니 애초에 그런 것도 없었을 것이고 물자가 모자란 소련이었다. 생리를 하게되어 하혈하면 바지가 흠뻑 젖었다. 피로 굳은 군복은 살을 벨만큼 날카로웠다. 적의 공격이나 공습이라도 받게 되면 그들을 위험하게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피를 씻어낼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한 병사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전쟁의 소리를 기억한다고, 사방에서 으르렁, 쾅쾅, 불을 뿜어 대던 그 소리를, 전쟁터에서는 사람의 영혼마저 늙어버리고, 전쟁이 끝나도 다시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전쟁은 그들의 인간성도 변화시켰다. 하지만 그래도 여자였다. 전쟁중에서도 다리가 예뻤던 병사는 다리를 다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전쟁통에 사람이 갈려나가면서도 애꿎은 동물들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는 걸 가슴아파했다. 하루종일 치열하게 사람들이 죽어나간 전장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죽어가는 병사들에게 엄마같은 여자친구 같은 안식처가 되어주려고 했다. 적들을 죽을 만큼 증오하게 되어 그들이 자신들에게 한 것 만큼 해주고 싶었지만 막상 독일부상병을 간호해주고 그들에게 빵을 주었다. 그리고 적진에서 독일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쩌면 그들은 이런 면에서 전쟁의 참상을 완화해주는 하나의 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병사들은 처음 여군을 무시하기도 도움이 안되는 존재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혹은 불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전장에서 자신들 못지 않은 그들을 보면서 인정과 존중을 하기 시작했고 전쟁터임에도 반드시 지켜야하는 존재로 아꼈다, 그들의 공통적 증언이다. 때론 여군 병사와 사랑에 빠져 전시중임에도 결혼하거나 사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후의 반응은 이율배반적이었다. 남자 병사들은 승리의 영광을 여군들과 나눠갖지 않았다. 전장에서는 그토록 금지옥엽으로 여겼음에도 말이다. 여군들도 그랬다. 그녀들은 전쟁에서 받은 메달이나 각종 증명을 애써 숨기려했다. 전쟁에 다녀온 여군을 남자들이 가득한 그곳에 다녀온 여성을 사회가 받아주지 않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과 무척이나 비슷한 지점이다. 우리도 냉전과 성장에 휩쓸려 그것들이 어느정도 해소된 이후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간접적이나마 전쟁의 참혹함과 수많은 죽음, 그리고 그 아픔을 어느정도 느낄수 있었다. 인간이, 시민이 이런걸 꾸준히 기억해 나간다면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아직 2차대전, 베트남전쟁,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우리의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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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8-04 0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천해 주신 <기억전쟁>애 딱 어울리는 좋은 책입니다. ^^

닷슈 2020-08-04 12:54   좋아요 0 | URL
저도 보며 그 책이 연상되더군요. 기억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기억을 남길 필요가 있습니다.

레삭매냐 2020-08-04 0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영화에서는 미국이 혼자서
다 전쟁을 치른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적어도 유럽 전선에서 미국이 참전
한 건 고작 1년 남짓이었죠.

지적해 주신 대로,
구 소련이 혼자서 대륙의 전쟁을
다 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닷슈 2020-08-04 12:55   좋아요 0 | URL
그렇죠. 구 소련이 버텨낸게 승리의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미약하지만 핀란드마져 공격을 했었고, 소련은 스탈린이 대숙청을 실시해 쓸만한 군관조차 없는 상태였죠. 소련민들의 승리라 생각합니다.
 
페인트 (양장)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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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누구나 부모가 있거나 있었다. 형태는 다양하고 사연도 가지가지 겠지만 그렇다. 생물은 생물에게서만 생겨나니까. 적어도 한 두 세대에선 달걀이 닭보다 먼저 일순 없으니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천명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선택권이 없는 것이다. 하긴 그것은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식보다야 조금더 선택권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들은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는 성별도 결정할 수 없으며 더 어려운 외모나 지능지수, 성격 등 그외 모든 걸 고르지 못한다. 바라는건 많지만 그저 얼마 안되는 자신들의 좋은 점만을 물려받기를 기원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부모가 자식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건 자식을 낳지 않아 부모가 안되기로 하는 것 뿐일 것이다. 

 이런 어떤 자의성과 선택권도 없이 그저 우연과 바램, 천명이라는 포장으로 부모 자식 관계가 형성된다. 이 관계 사이에선 무조건적 사랑이 전제된다. 물론 아름다워 보이는 이면 안엔 엄청나께 끔직한 일들과 다툼, 현실이 자리한다는걸 우린 잘 안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힘든 관계 속에 사랑과 아름다움이 자리하기도 한다. 희생과 헌신, 이해, 좋은 관계의 맺음, 배려 등등 이런게 있다는 것도 우린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그러하니까.

 책 페인트는 어쩌면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자식관계를 순서를 뒤집음으로써 그것이 무엇인지 재조명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배경은 조금은 가까운 미래 한국이다. 저출산현상이 심화되어 사람들은 급기야 애를 거의 낳지 않기에 이른다. 남북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 거대한 국방비를 돌릴 여지가 생긴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급기야는 태어난 아이들을 국가에서 키워주는 거대한 NC(Nation's children)센터를 전국 각지에 설립하기 이른다. 센터는 3단계로 아이들 연령대에 따라 퍼스터, 세컨드, 써드로 나뉜다. 아이들은 여기서 생활하며 학교도 다니고 운동도 하며 정서적, 인성적, 신체적으로 철저히 관리받는다. 아이들을 관리하는 가디언들이 존재하며 아이들 이름은 모두 제누301, 아키505식이다. 달 이름에서 따오는 것인데 1월생이면 젠뉴어리니 남자면 제누, 여자면 제니식이며 뒤에 식별 숫자가 붙는다. 가디언들은 아이들 관리 이외에 아이들 입양도 담당한다. 센터 바깥의 사람들은 센터안의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었는데 센터로 와서 입양하고 싶은 아이를 만나는 것은 parent's interview 즉 줄여서 책 제목 페인트라고 한다. 바깥의 부모들은 입양에 성공할 경우 정부로부터 제법 큰 보조금과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은근히 입양은 인기가 있었다. 거기에 입양은 아동의 정서적 신체적 학대 방지를 위해 사춘기시기엔 13세이상, 즉, 써드센터부터 가능했다. 그러다보니 바깥의 부모들은 아이를 입양해도 힘든 유아기를 거치지 않아도 되니 입양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센터의 아이들 역시 사회적으로 센터 출신을 차별하는 풍조가 있어, 입양을 선호했다. 이런 배경속에서 주인공 제누301에게 페인트 기회가 디시 찾아온다. 제누301은 벌써 17살로 센터에서 머무를 나날이 길지 않았다. 

 책은 이런 제누와 페인트를 하는 부모, 제누의 친구들과 가디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면서 천명이기에 누구나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면서도 크게 고민하고 인생에 추억과 상처를 주는 부모자식관계에 대해 재조명한다. 책을 보면서 각자 내가 부모로서 어떤가 혹은 자식으로서 어떠했는가 그리고 다시 부모자식으로서는 어떤지를 생각해 본다. 이것 만큼 사람에게 큰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올바른 부모란 뭘까? 자식을 사랑으로 대하면서도 올바른 쪽으로 이끌어주고 그러면서도 그 녀석을 하나의 독립된 사람으로 존중해주고 나도 그녀석과 떨어져 살 수 있는 것일까? 사랑과 그로 인한 간섭과 다툼, 내 욕망의 투사, 그리고 자식이 자람에 따라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자식을 하나의 동등한 존재로서 인정해나가는 것. 이 모든 노력 과정이 올바른 부모자식간의 관계의 정립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천명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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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탐정 고민 상담소 1 - 자아는 가출 중 문학동네 청소년 44
이선주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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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청소년 권장도서다. 제목도 그렇고, 표지그림도 조금 아이스러워 사실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저 나중에 아이들에게 하나 추천해줄만한 책에 대해서 알아보자는 느낌으로 접근한 것이 사실. 그런데 재밌었다. 생각할 거리도 많았고, 독특한 서술에 재밌고 개성있는 주인공의 말씨, 가상의 지역인 산이군이라는 해안마을 공간배경도 인상깊었다.

 주인공은 맹승지, 중1이고 탐정임을 자부한다. 하도 탐정탐정하니 주변사람들도 탐정으로 해주는 것 같지만 나름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옷을 맡긴 걸로 다둔 세탁소와 정육점의 일을 해결해 마을사람들에게 공인받는다. 그래서 탐정이긴 한데 골치거리가 좀 있다. 명탐정이고 싶은데 성이 맹가이니 맹탐정이 되어버려 역 마뜩치 않다. 거기에 책 제목처럼 탐정사무소에 사건 의뢰라는 것이 죄 고민상담이다. 누구도 범인을 잡거나 물건을 찾아달라 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하긴 시골 해안마을이니 당연한일일까.

 가사도 화목하지 않다. 이 시골바닥에서 서울대까지 나온 아버지는 자아를 찾는답시고 다 중년의 나이에 아이 셋과 아내 ,노모를 팽개치고 집을 떠난지 거진 10년이다. 집은 3층집으로 3층에 살고 2층은 세를 주었으며 1층에선 엄마가 마을의 사랑방격인 카페를 운영한다. 그나마 가족중에 마음에 드는 언니는 고등학생이 되어 인근 정주시로 나갔고, 남동생은 귀찮고 엄마는 자신을 구박하기만 한다.

 책에서 맹탐정이 받은 의뢰는 네 개다. 자식에게 지나치게 집착하여 10분마다 전화를 거는 엄마가 너무 부담스러워 일부러 전화기를 잃어버리는 윤미, 공부를 잘 하고 곧 고등학생이 되어 인근 정주시로 나아가 의대를 가고 싶은데 이를 반대하는 어머니와 갈등하는 영은 언니, 부모가 이혼하게 되었고 미국으로 곧 떠날 엄마와 남아있을 아버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 자아가 이탈해버려 자아를 찾아달라는 인혜, 남모를 자신의 성적정체성을 고민하다 이를 엄마에게 들켜버렸다고 착각하는 용우. 맹탐정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아니 해결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스스로 보게해주고 자신도 성장해나갔다는게 정답일 것이다.

 이 책의 결말은 약간 열린 형태로 나아가는데 속편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사람들과 자신의 고민을 발견해나가고 성장하는 맹탐정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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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20-07-17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닷슈님 글 보면서 힐링합니다. 날도 더운데 건강도 챙기시면서 독서 하시길 바랍니다 ^^

닷슈 2020-07-19 09:16   좋아요 0 | URL
저도 라이프님 글 보며 힐링합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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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이 책에 대한 수준 높은 리뷰가 무척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기회가 되어 보게 되었다. 책의 외양만 보면 도무지 과학 소설 갖진 않은데 저자는 포스텍 화학과를 나온 공대출신 작가다. 최근의 과학소설은 미래기술을 많이 다루어 좀 어려운 감도 없지 않은데 이 책에 나오는 미래과학들은 어렵지 않고 매우 쉽게 읽혀 소설로서 과학과 미래의 묘미도 살리고 드라마적 요소도 잘 살린 느낌이다. 그래서 두께가 좀 있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두시간 정도면 전체를 충분히 다 볼 수 있다.

 이 책도 단편집을 모은 책인데 수록된 거의 모든 작품들이 상을 받았지만 가장 높은 상을 받은 단편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며 그래서 이게 타이틀이다. 하지만 단편집들이 많이 그렇듯 타이틀이 가장 재밌진 않다.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단편은 '공생 가설'이다. 미래에 류드밀라란 사람이 있다. 외롭게 자랐는데 그는 언젠가부터 한 행성의 모습을 그리기 사작했다. 당연히 우주를 가본적이 없는 사람이라 상상화로 여겼는데 그의 그림은 묘하게 전 인류의 마음속 깊은 무언가를 건드리는 힘이 있어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는 행성의 구체적 물리수치까지 제시하며 그림이 구체성을 띠었드며 말년엔 이별의 감정을 토로하는 색채가 강한 추상화를 남기곤 했다.

 그런데 류드밀라가 죽은 후 우주를 관측하던 천체우주선이 실제 류드밀라가 그린 행성과 물리적 수치가 일치하는 행성을 발견한다. 하지만 관측한 빛은 오래전의 빛으로 실제 류드밀라의 행성은 그 항성계의 태양풍으로 모두 타버린 후.

 그리고 인간의 뇌파와 동물의 뇌파로 언어가 아직 미숙한 존재와의 의사소통 체계를 연구하던 팀은 이상한 연구결과를 얻는다. 아직 언어전 이해가 없어 사고가 미숙해야 할 어린 아이들이 고도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 아이들의 뇌파가 말하는 언어는 고도의 윤리, 철학, 이타성에 관한 것이었고, 이런 뇌파는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7세가 되는 시점에 사라진다. 그리고 7세이후로는 아이의 생각과 말, 뇌파가 일치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 모순되는 결과에 고민하던 연구팀은 류드밀라의 행성을 본 아이들이 상당한 집중력을 보였고, 엄청난 감정의 고양이 일어났음을 알아낸다. 충격적이게도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인간이 태어나면 외부환경과의 접촉을 통해 뇌에 특정 생물들이 자리잡고 이 생물들이 7세이전 인류의 특성인 고도의 사회성과 윤리 및 철학체계의 기초를 뇌에 만들어놓는 다는 것. 즉, 결론은 류드밀라 행성의 멸망과 함께 지구로 오게된 미생물들이 초기 태아의 머릿속에서 문명의 기본을 만들고 7세가 되면 사람의 몸에서 사라지는 일종의 공생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류드밀라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어른이 되면서도 이 미생물들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로인해 류드밀라의 행성을 그리는 것이 가능했던 것. 이 작품은 몇몇 생물학자들은 지구 생물진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 외계도래설을 제시하곤 하는데 아무래도 여기에 영향을 받은 소설인듯하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다른 재밌는 단편집들이 많은데 나 같은 경우 공생가설이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모두 비슷한 수준의 재미와 여운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다 읽고 보니 단편소설들의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었다. 처음 겪는 일인데 이것도 이 단편집의 또 하나의 매력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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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생쥐가 한 번도 생각 못 한 것들
전김해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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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솝우화에 사자와 쥐이야기가 있다. 초원의 왕 사자가 쥐를 우습게 보았다. 왕인데 한낱 쥐가 얼마나 우스웠겠는가 그냥 먹기도 고까웠는지 쥐를 도와줬는데 쥐는 사자에게 은혜를 갚는다고 한다. 왕이 천민하나 도와줬다고, 천민이 은혜를 갚는다하면 오히려 우습지 않겠는가. 딱 그격이었다. 그런데 쥐는 인간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어찌할바 모르는 사자를 이로 그물을 갉아 구해준다. 이 동화는 여기서 시작한다.

 이야기는 좀 달라서 사자와 쥐가 나온다. 그런데 이솝우화와는 반대로 사자가 쥐에게 관심을 보인다. 쥐가 워낙 풍모가 대단한 사자에 눌려 긍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오히려 사자가 '사자와 쥐' 이야기를 한다. 나도 못끊는 그물을 끓을 수 있는건 바로 너라고, 쥐는 이말에 낚여 이 이상한 사자와 함께 하기로 한다. 한때 자신을 먹으려고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이 사자는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이 사자는 매우 이상해 쥐와 함께 하며 바다를 보더니 바다엔 끝이 없을 것 만 같다고 한다. 해와 달이 계속 돌아오듯. 물이 떨어지는게 아니라 다시 솟구치는게 아닌가하는. 그래서 우리도 배타고 가면 그걸 볼수 있지 않을까라고 한다.

 그래서 둘은 뗏목을 만들어 막상 떠난다. 가다가 바다사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바다에도 사자가 있다니 둘은 대단한 상상을 하며 바다사자를 보고 싶어 한다. 누구나 바다사자의 이름만 듣고 어릴적 대단한 상상을 한적이 있다 실망하곤 했을텐데 둘도 그러했다. 미끌거리고 까만 몸에 몸이 뒤룩뒤룩 살찌고 기름이 많아 범고래에게 쫓기기만 하는 녀석은 실망스러웠다. 바다사자는 범고래에게 쫓기는 것도 지겹고 이들의 여행이 재미나 보여 하늘사자가 있다고 거짓말하고 길안내를 해주겠다며 합류한다.

 그래서 이 책은 사자로 계속 가나보다 했다. 왜, 하늘사자에 , 사막사자에 이런식으로. 그런데 뜬금없이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로 전환한다. 아무래도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오래도록 항해했더니 한국에 닿았나보다. 여기서 부터 두이야기가 묘하게 짬뽕되는데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에 바다사자, 사자, 쥐를 곁들이며 이야기를 다소 각색한다.

 결론은 사자와 쥐가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좀 아쉽다.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애매한 느낌이 들었고, 동서양의 두 이야기의 콜라보도 좋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차라리 사자가 계속 다른 사자를 찾아다니며 삶과 우주에 대한 교훈과 이야기를 얻는 만남으로 구성하는데 더 낳지 않았을지 싶다. 이 동화엔 삽화가 적지 않게 있는데 무척 독특해서 처음엔 눈에 잘 들어오질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삽화가를 따로 쓴게 아닌가 싶었는데 글그림작가가 동일인이었다. 이야기도 그림만큼 독특했으면 좋았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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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4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4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