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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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가 조르바라는 인물과 함께 한 자전적 이야기. 카잔차키스는 고향인 크레타 섬에서 조르바와 탄광 개발을 하며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조르바의 자유롭고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삶에 크게 감화 받는다. 번역에 이윤기 선생의 손길이 녹아 있다. 


책 속 몇 구절: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 조건(時限條件)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 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두목, 이따금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가를 당신에게 보여 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170 페이지)

  순간순간 죽음은 삶처럼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봄이면 선남선녀들은 4천 년 동안이나 신록 아래서(포플러나무 밑에서, 전나무 밑에서, 떡갈나무, 참나무, 플라타너스, 키다리 종려수 밑에서) 수천 년을 더 그렇게 출 터였다. 그들의 얼굴은 욕망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그 얼굴이 바뀌고 허물어져 흙으로 돌아가도 다른 얼굴이 나타나 뒤를 잇는 터였다. 춤추는 자는 하나지만 얼굴은 수천이었다. 나이는 늘 스물, 불사신이었다. (277 페이지)

  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善)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

  「조르바, 우리는 구더기랍니다. 엄청나게 큰 나무의 조그만 잎사귀에 붙은 아지 작은 구더기이지요. 이 조그만 잎이 바로 지굽니다. 다른 잎은 밤이면 가슴 설레며 바라보는 별입니다. 우리는 이 조그만 잎 위에서 우리 길을 조심스럽게 시험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잎의 냄새를 맡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알아보려고 우리는 맛을 보고 먹을만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 잎의 위를 두드려 봅니다. 잎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소리를 냅니다.

  어떤 사람은...... 겁이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잎 가장자리까지 이릅니다. 거기에서 고개를 빼고 카오스를 내려다봅니다. 그러고는 부들부들 떱니다. 밑바닥의 나락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되지요. 멀리서 우리는 거대한 나무의 다른 잎들이 서그럭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는 뿌리에서 우리 잎으로 수액을 빨아올리는 걸 감지합니다. 우리 가슴이 부풀지요. 끔찍한 나락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는 몸도 마음도 공포로 떨고 맙니다. 그 순간에 시작되는 게......」

  나는 말을 멈추었다. 나는, 그 순간에 시작되는 게 바로 시(詩)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조르바가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아 말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305~306 페이지)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잠자고 있네.><그럼 잘 자게.><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일하고 있네.><잘해 보게.><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309 페이지)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至高)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다. (33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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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3-24 0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은 그리스어 - 불어 - 영어 - 우리말, 이렇게 3중역을 거친 책입니다. 게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그리스 문학자 유재원의 직역에 실려있는 프롤로그도 통째로 빠져 있습니다.

확인하지 않은 풍문에 의하면, 다시 말씀드리는데 이건 풍문 또는 유언비어 뿐입니다. 진실이라고 믿으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평소에 유재원과 호형호제 친하게 지내던 이윤기 선생이 유재원 씨에게 자기 살아생전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진짠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이윤기 선생이 세상 뜨고 나서야 유재원 씨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세상에 나왔고요.
두 양반은 함께 카잔자키스의 고향인 크레타 섬에 가서 작가 무덤에 가지고 간 마른 오징어와 소주를 놓고 절 두 번 반 하고 왔답니다. 이건 문지 책 후기에 쓰여 있습니다.

blueyonder 2022-03-24 08:55   좋아요 1 | URL
지금 책을 사서 읽어야한다면 유재원 역을 읽었을 것 같네요. 이윤기 역은 워낙 오래 전에 사놓은 것이 있는지라...

베터라이프 2022-03-24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blueyonder님. 이윤기 선생님이 타계하시기 전인 한 한해전쯤인가 우연히 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전인 2003년쯤에도 우연히 뵐 수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개인적 기억들이 조금 있는데 여기선 적지 않겠습니다. 죄다 그리운 것들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뮈토스를 너무 좋아해서 판본별로 다 구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전국 헌책방도 뒤져보고 그랬는데 선생님이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계실지 모르겠네요.

blueyonder 2022-03-25 11:0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베터라이프 님. 이윤기 선생님 타계하신지도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저는 이윤기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선생님 번역의 <장미의 이름>를 매우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더 살아계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하늘나라에서도 편히 잘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평안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Dune ( Dune #1 ) (Mass Market Paperback) - 『듄 』원서 Dune (Paperback)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 Ace Books / 199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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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먼저 보고 읽어서인지 진행이 매우 느리게 느껴진다. 기대만큼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사건이나 액션보다는 정황의 묘사와 대화가 많다. 소설의 분위기를 빌뇌브 감독이 영화에서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봉건제적 주군과 가신은 현재에는 잘 와닿지 않는 개념이다. 혼란을 거치면 미래에 다시 봉건제로 갈 수 있을까. 이게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제도인가에 의문이 있다.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여 이후의 많은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의미가 크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SF는 아니다. 난 아무래도 아서 클라크 류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아시모프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언젠가 읽어보려고 한다.


영화 후속편이 나오면 볼 것이다. 전반부는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었는데, 후반부는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게 된다. 어떤 느낌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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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세계문학 232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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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라는 측량사가 성의 부름을 받고 마을에 와서 벌어지는 일이다. 문제는 그가 왜 왔는지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조금씩 정황이 밝혀지는데, 휴, 내가 측량사라면 정말 미치도록 답답할 일이다. 일견 지루한 대화를 통해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도대체 관리와 비서라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만나기가 힘든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처럼 읽히기도 하고, 사람들은 왜 그렇게 반목하고 우울해 보이는지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처럼 읽히기도 한다. 거의 포기한 심정으로 대화를 읽다가, 이야기가 좀 전개되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싶었는데 또다시 이야기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된다. 소설은 카프카가 결국 끝내지 못한 미완이므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어도 문제가 해결되는 카타르시스는 결코 느낄 수 없다. 누구는 이런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또 다른 누구는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므로, 객관적 실체는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처럼 읽히다가, 결국 'K'가 정말 측량사가 맞나 하는 의문까지 든다. 다층적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작품이라면, 이 책은 분명 그러한 카테고리에 들어갈 만 하다. 비서 뷔르겔의 독백을 읽으며, 거의 해탈할 것 같은 즐거움을 느꼈다면--과장법이다--난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인가.


사족: 책을 읽으며 노란색 양장본 표지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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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시사인) 제750호 : 2022.02.08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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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5일, 우리나라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드디어 1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 코로나19가 막바지로 접어드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마지막 고비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해 깊이 있고 균형 잡힌 기사를 지속적으로 게재해 온 <시사인>에서 오미크론의 유행과 더불어 다시 한 번 묵직한 기사를 실었다. 일간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읽고 많이 배웠고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본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역사 속의 한 가운데에 있다. 후에, 힘들었지만 잘 이겨냈다고 (자랑스레?) 회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새벽이 오기 전에 밤이 가장 어둡다고 한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곧 동이 트기를 고대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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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9 2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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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7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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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9 1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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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8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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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3 14: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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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6 15: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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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2 1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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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 0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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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0 14: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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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8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석륜 옮김 / 책세상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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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의 유명한 구절에 이끌려 읽고 싶어졌다. 나쓰메 소세키 본인을 나타냄이 분명한 화가가 온천장에 방문하며 느끼는 상념이 주이다. 여기에 이혼하고 다시 친정으로 온 온천장 주인집 딸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처음에는 나름 집중해서 읽었는데, 화가인지 글쟁이인지 모를 주인공의 사념에 더해지는 영시와 한시를 점점 대충 훑어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때는 바야흐로 러일전쟁이 한창인데, 주인공은 세상과는 동떨어져 본인의 사념에만 빠져있다. 전쟁에 나가는 사촌동생에게 "살아서 돌아오면 창피"하니 "죽어서 돌아"오라는 여주인공의 말에도 공감이 어렵다. 이혼한 남편을 만주로 떠나보내며 문득 보여주는 "애련"한 얼굴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가?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유미주의적 감상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100년 전, 우리는 신소설이 유행할 시기에, 의식과 상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은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온갖 단어에 대한 주가 뒤에 있는데, 차근차근 뜯어보며 당시와 현재 일본 사회를 공부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학 전공자가 아닌 나는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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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1-21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루얀더님 문학 전공자가 아니시라서 그러신 것인지 모르지만, 핵심만 딱 써주시는 이런 리뷰 사모합니다.^^;; 저 시간도 없고 성급한 편이라 다른 사람의 긴 리뷰 잘 못 읽고 그러거든요. ^^;; 인용하신 유명한 구절은 정말 고개 끄덕여지네요. 인간 세상은 정말 살기 어려워요. 그냥 다 내려놓는 것이 답일까요?^^;

blueyonder 2022-01-22 00:50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느낌도 제각각, 감상도 제각각, 독후감도 제각각이지요. 길게 늘어놓을 밑천이 없어서 제 리뷰가 짧은 건지도요 ^^;;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지만, 또 한편 어차피 정답이 없는 인생, 그저 제 잘난 맛에 살면 그냥저냥 살 만한지도요... 그게 라로 님 말씀처럼 다 내려놓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22-03-11 16: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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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4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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