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고 끝나갈 무렵 레이디 버드는 성장하여 크리스틴이 된다. 그리고 한 시간 반 동안 우리는 크리스틴이 엄마에게 전화를 할 때를 기점으로 영화를 보기 전과 영화를 보고 난 후, 같이 성장해 있음을 느끼게 된다
.

레이디 버드는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제대로 된 성장통의 영화다. 특별하지 않고 하천의 개울물이 흘러가듯 흐르지만 그 속에서 방황과 고통을 받고 상처를 주며 우리 모두는 그렇게 성장해왔기 때문에 레이디 버드를 보고 있으면 정말 나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그래서 레이디 버드가 크리스틴으로 성장했을 때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묵직한 무엇이 울컥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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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의 장면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반짝이고 보석 같은 것으로 꽉꽉 채워져 있다. 청춘일 때 느꼈던 처절한 상처가, 곪을 대로 곪고 곯아서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내모는 자신 속의 자신을 어쩌지 못했던 그때의 상처가 레이디 버드를 보며 떠오른다
.

죽기보다 더 싫은 이 지긋지긋한 세크라맨토를 떠나고 싶은 크리스틴은 더 싫은 가톨릭 고등학교를 일 년이나 다녀야했다. 크리스틴에게 최고의 적은 엄마이다. 시시때때로 사사건건 따지고 들고 괴롭히는 사람은 엄마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낮은 크리스틴은 이름을 레이디 버드로 바꾸고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 일연의 일들이 시시하기만 하다. 특별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크리스틴의 모습에서 그녀의 세계는 엄마, 남자친구, 그리고 절친에서 행복함을 느끼면 되는 것이지만 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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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창피하게 생각하여 학교 몇 블록 전에서 내려달라는 크리스틴을 보면서 아버지는 내색하지 않고 보듬어 주는 모습에서 영화의 태도가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항에서 운전을 하면서 웃으며 우는 엄마의 모습에서 그 태도는 더 확실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뉴욕으로 온 레이디 버드가 크리스틴이 되었을 때 운전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에서 성장한 모습이 스크린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이제 크리스틴은 뉴욕에서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이 참 예뻤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말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청춘을 투영시킬 수 있었다. 크리스틴의 그 아름다움이 너무나 찬란하여 갈등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은 버려야 할 자신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어서, 부모가 지어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일부, 아니 전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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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은 아오야마 고쇼의 탐정물이다. 탐정 추리 만화로 당시 소년탐정 김전일의 인기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이다. 좀 더 저 연령층에 적합한 이야기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명탐정 코난은 94년부터 현재까지 24년째 연재를 하고 있는 장수 추리물이고 이 시리즈는 만화책으로 90권이 넘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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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과 그의 친구들은 여전히 그대로의 모습, 나이 먹지 않고 있고 24년째 유미란은 남도일과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영화 속 기술력과 휴대전화 같은 것들은 고도로 발전을 했지만 코난과 친구들, 유미란과 그녀의 아버지인 유명인은 전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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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애니메이션도 상당한 인기를 보유했고 그 인기는 극장판으로 확장되어 한국에서도 나이 먹어가는 코난의 팬들은 나이 먹지 않는 코난이 스크린에 나올 때면 어김없이 가서 보게 되었다. 국내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명탐정 코난 극장판을 보는 팬들은 기이하여 애들뿐만 아니라 성인남녀, 성인남남 또는 성인 남자가 보러 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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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의 팬이 아니라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만화적으로 요즘 코난의 붕괴가 보이면서 팬들에게서는 말이 많아졌고, 더불어 돌아서는 팬들이 늘어났지만 극장판은 꼬박꼬박 챙겨 보는 희한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명탐정 코난은 시리즈로 오랫동안 극장판이 진행되다 보니 특허 같은 전유물이 생겨났다. 그것이 오프닝이다. 명탐정 코난 만이 가지는 인트로를 보는 순간 팬들은 몸의 세포가 두근두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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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고등학생 탐정 남도일. 소꿉친구이면서 같은 반인 미란이와 놀이공원에 놀러 갔다가 검은 양복을 입은 수상한 남자들의 거래 현장을 목격했다. 그 장면에 정신을 빼앗긴 난 다른 한 패가 등 뒤에서 접근하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당하고 말았다. 그 남자는 나에게 이상한 약을 먹였고 정신을 차려보니 (목소리가 급변하여) 난 어린아이로 변해있었다. (인트로의 이 부분부터 팬들은 흥분의 발동을 건다) 몸은 작아졌어도 두뇌는 그대로! 불가능을 모르는 명탐정! 진실은 언제나 하나!(코난이 엄지를 세울 때 모두가 그것을 따라 하며 진실은 언제나 하나!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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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트로에서 주인공 코난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매번 각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을 소개하기 때문에 명탐정 코난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바로 봐도 적응을 할 수 있다. 코난은 옴니버스 방식이라 각 극장판마다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새로운 인물은 홍장미, 본명은 안시호. 홍장미 역시 코난처럼 약을 먹고 어린아이가 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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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이번, 일 년 만에 나온 ‘제로의 집행인’을 기다린 이유는 지난번 ‘진홍의 연가’에서 더빙판이 빠져버린 것이다. 김혜선의 코난과 강수진의 남도일, 이정구의 유명한이 일반화가 된 작금의 한국에서 더빙판 없이 오직 자만판의 명탐정 코난은 한국 팬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진홍의 연가에서는 카루타라는 헤이안 시대부터 내려오는 일본 카드가 사건의 중심에 있었기에 한국화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추리물이지만 추리는 빠져버리고 코난의 슈퍼히어로적인 영웅담만 늘어놓았기에 이번 제로의 집행인에 거는 기대가 팬들에게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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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인트로를 거쳐 국제 정상회담이 열리는 엣지 오브 오션이라는 곳이 폭파되면서 유미란의 아버지인 유명인의 지문이 그곳에서 나오면서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가 되면서 추리, 본격적인 추리가 시작된다. 만화지만 추리물은 일반 상업 영화의 추리물 못지않게 잘 짜여있다. 그리고 이번 제로의 집행인 편에서는 아이들이 보기에는 어려울 수 있는, 검찰과 경찰의 관계와 각 소속의 보안국이 가지는 권력과 활동에 관한 것들이 나온다. 검찰이 하는 일과 경찰이 하는 일 그리고 법정과 변호사의 관계들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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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찰과 검찰의 모습은 일본의 경검의 모습을 따라왔다. 일본도 원래 경찰의 힘이 아주 강했다. 오래전에 일본순사,라는 말만 들어도 사람들이 벌벌 떨었던 때가 있었다. 그건 홍콩의 영화나 중국의 영화를 봐도 그렇다. 일본 내에서도 경찰의 힘이 아주 강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그랬다. 한국은 불과 30년 전까지 그랬다. 경찰에게 잡혀가면 고문을 당해도 어디에 말도 하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다. 일본은 강력한 수사권과 권력을 가진 경찰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의 힘을 키웠고 그에 따라 한국도 그렇게 따라 하면서 현재는 경찰보다는 검찰의 권력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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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로의 집행인에서도 그런 권력구조에 대한 심리가 잘 드러난다. 코난이 주인공이지만 이번 편은 안기준을 위한 영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들이라면(영화 속의 여자들도, 영화 밖의 여자들도) 안기준의 매력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를 영화가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과 섞여 코난을 봤던 어른이들이 이번 편에서는 아이들이 조용해는 바람에 민폐단의 참극이라는 글을 올리고 있는 형편의 ‘제로의 집행인’은 추리 극화로서 거의 실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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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하나!를 언제까지고 외치고 싶은 명탐정 코난은 내년 극장판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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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감정의 소모로 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며 꿈을 키우고 영화 한 편에 눈물을 펑펑 흘리며 감동을 받고 영화 속 대사에 삶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후자인 그들은 아마도 영화 한 편에게 받은 감동이 수그러 들 때쯤 다시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들어가 받은 감동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동력을 채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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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영화 이전의 문화에 비해 가장 나이가 어리기에 늘 다른 문화에 신세를 지고 있다. 그래서 영화라는 예술은 잘 만들어야 한다. 소설, 음악, 그림처럼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다. 영화라고 일컫는 하나의 예술을 성공하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하나에 매달린다
.

그리고 이들 중에는 영화에 목숨을 건 사람도 있다.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의 켄지도 그런 인간들 중에 한 명이다. 영화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를 밑에서 차즘차즘 배워 올라가는 켄지는 분명 영화, 일상에서 동떨어진 영화를 사랑하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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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은 아주 기묘한 곳으로 극장의 문을 기점으로 여기와 그 안쪽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소풍을 온 기분이 들고 극장을 찾은 나 이외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스크린 속 이야기에 빠져들어가는 것은 참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극장은 일상 속에 자리 잡은 일탈이 가득한 곳이기에 우리는 그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추억을 쌓아왔다. 좋아하는 영화가 같으면 그 사람에게 당연하지만 호감이 간다. 영화는 이제 인간생활에서 떨어질려야 떨어질 수 없는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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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로맨스 극장은 대 놓고 이전 영화를 오마주 했다. 그렇기에 몰래 갔다 쓴 다른 영화에 비해 더 귀엽고 예쁜 영화다. 시네마천국을 비롯해서 오즈의 마법사와 로마의 휴일 심지어는 엽기적인 그녀의 장면도 떠오른다. 오드리 헵번의 드레스를 변주한 미유키의 의상도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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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세 하루카는 10년 전 ‘호타루의 빛’에 나왔을 때의 모습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제멋대로 굴었던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이 다시 환생한 듯 예쁘게 나온다. 사이보그부터 혼노지 호텔을 통해 과거로 갔고 여러 캐릭터를 거쳐 이번에는 영화 속에서 현실로 튀어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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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두 사람에게 모진 태도를 취한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을 수 없는 고통은 수많은 고통보다 훨씬 아픈 고통일 것이다. 그럼에도 미유키와 켄지는 같이 있기로 다짐한다. 영화는 그렇게 두 사람을 3, 40년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한다. 따뜻한 온기 한 번 만져보지 못하고 오로지 시각과 후각으로 점철된 감각으로 그 오랜 시간을 두 사람은 보낸다. 인간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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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줘서 고마워요.
찾아준다는 것, 찾아야 한다는 것. 비록 기적과 같은 일이라 일상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찾으려 하는 마음이 강하여 마음이 끄는 대로 몸을 움직여 찾고 또 찾으면 그것은, 그 사람은 내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오늘 밤 로맨스 극장’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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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전’은 씨발, 무섭구나.였다. 무서움은 스크린 밖으로 갑자기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사각거리며 나와서 발목을 살짝 잡고 눈치채지 못하게 살살 잡아당기고, 어느 순간 어딘가 발이 끌려가고 있다고 느꼈을 땐 숨이 막히고 시야가 좁아진다. 그때야 비로소 무서움은 힘을 꽉 주어 발목을 아프게 하고 칼날 같은 것으로 발목의 정당함을 없애기 위해 피를 낸다. 그리고 힘이 빠져들면 어둠 속으로 무서움은 나를 확 끌고 가는 것 같다. 영화 유전에 깔린 무서움은 서서히 뿜어져 나오지만 오컬트적 히스테릭함은 보는 이들을 오랜만에 진정한 무서움의 세계로 데리고 가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

영화 유전은 ‘글’처럼 은유가 시작부터 계속된다. 유전에서 무서운 그것은 찰리의 몸속에 이미 들어가 있었다. 찰리를 통해서 비둘기의 머리를 자르고 환영을 보게 한다. 영화 속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은 오컬트적인 의식의 한 부분이라 생각되는데, 찰리의 몸속에 들어가 있는 그것, 파이몬은 강하지도 않고 아직은 힘도 덜하다. 파이몬은 남자의 몸을 숙주로 해야만 아주 강한 힘이 나오는 것이다. 파이몬은 피터의 몸으로 들어가기 위해 찰리마저 교통사고로 머리를 잘라 버린다
.

애니는 영매가 있는 사람으로 본능적으로 피터의 몸에 파이몬이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그동안(영화 속 이전의 시간부터) 저지하려고 했다. 애니의 과한 행동과 빠른 말투, 쓸데없이 많은 말들, 미국식의 재스쳐와 대화가 거슬렸지만 애니가 자신의 아들인 피터를 죽이려 할 때 애니의 과한 행동, 말투, 이상한 모든 것이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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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진실과 거짓을 모호하게 섞어 버렸고 현실과 비현실도 구분 짓지 못하는 태도를 가졌다. 애니는 몽유병을 앓고 있다고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마저 거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들 때쯤 불안함이 묵직하게 변모하여 체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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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역시 찰리처럼 헤일로 같은 빛의 움직임을 본 후 피터도 점점 파이몬으로 변해가려고 한다. 유리창에 비친 피터의 놀란 얼굴은 실제와 다르게 음흉하게 웃고 있고, 피터가 파이몬이 되는 그걸 막으려고 애니는 피터를 잡으려 하는데 남편인 스티브와 다른 사람들은 애니를 정신병자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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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오컬트적 장면들, 벽을 기어오른다거나 하는 장면들과 현실의 장면들은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영화를 두 번 이상 보게 되면 영화 속에 상징이 아주 많고 단순히 영화 속을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파이몬의 시선, 피터의 시선, 애니의 시선도 뒤섞여 뭐가 진실인지 누가 거짓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확실히 영화는 우아한 공포를 보여준다. 으악 무서워! 가 아니다. 씨발, 무섭구나.였다. 연출이 밀도가 굉장하여 무서움의 농도가 아주 짙은 공포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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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수습직원이었던 아키코는 작가인 이시키 마사카즈의 원고를 받으러 가서는 첫눈에 반하게 되고, 마사즈키 역시 아키코를 보고 첫눈에 반해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가마쿠라의 집으로 가서 살게 된다. 가마쿠라는 여러 신들과 요괴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아키코는 이런 마을의 모습이 그저 축제의 한 부분이고 사람들이 변장을 하거나 코스프레를 하는 것으로 안다. 마사카즈는 가마쿠라의 경찰서에서도 심령 범죄의 고문도 맡고 있어서 미스터리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마을에서 열리는 요괴 시장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송이버섯을 사 오면서 아키코와 마사카즈는 갈라지는 운명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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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성(姓)이 한국(300개 정도)보다 훨씬 많은 십만 개 정도가 있다.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섬기는 신이 많은 나라이고 신에 대한 이야기가 널려 있는 나라이다. 요괴의 모습도, 신의 형태도 아주 많아서 일본의 이런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기분 좋을 영화라 생각한다. 기분 좋다는 말은 말레피센트처럼 동화 같고, 운명적인 만남에 대해서 영화는 말하고 있어서이다
.

가마쿠라에서는 요괴들이 스스럼없이 다니고 있으며 그런 요괴들과 인간들이 함께 지내는 모습은 흥미 있고 기분 좋다. 가정부 킨 할머니의 나이는 13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같이 살고 있는 마사키즈도 나이를 모른다) 요괴들이 여는 밤의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과 요괴의 모습도 흥미롭다.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실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 스타워즈에 나오는 외계 종족들의 모습도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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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이시키 마사카즈보다는 이시키 아키코 역으로 분한 타카하키 미츠키다. 극 중에서도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신부로 나오는 타카하키는 약간은 철없고 남편만을 바라보며 신혼 생활과 새로운 가마쿠라의 환경, 요괴와 신들과의 만남도 거부감 없이 즐긴다. 놀라거나 기쁠 때는 커다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뜨고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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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숨어 들어온 빈곤의 신에게조차 잘해준다. 빈곤의 신이 집에 붙어 있으면 점점 빈곤으로 가게 되는데, 아키코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빈곤의 신에게도 식사를 대접하고 가마쿠라의 과자를 나눠먹곤 한다. 송이버섯을 준 요괴 때문에 후에 육체와 영혼이 분리가 되어서 저쪽 세계로 가야 하고 마사카즈는 기차를 타고 저쪽 세계의 아키코를 구하러 가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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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운명’에는 유명한 일본.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 혼노지 호텔의 츠츠미 신이치가 나와서 개구리 요괴로 변하기도 하고, 어느 가족의 안도 사쿠라, 타나타 민, 카세 료의 여친(아직도 사귀는지?) 이치카와 미카코, 곡성으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쿠니무라 준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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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맑은 동화 같은 영화다. 사랑하는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억지스러움이 있긴 하지만 동화책을 펼쳐서 읽는 기분이 들면서 그런 것 따위 넘겨버리게 된다. 영화는 슬프다거나 복잡한 이해관계도 없다. 다양한 모습의 요괴와 저쪽 세계의 배경,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중간의 기차의 모습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먼저 죽은 자들이 떠나기 싫어서 생명을 연장하려고 하는 설정도 나쁘지 않다. 조금은 비어 보이는 빌런들의 모습도 동화스럽다. 엔딩곡도 좋아서 여러 애니메이션이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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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너무나 뻔한 플롯이다. 운명 같은 여자가 요괴에 잡혀가고 그곳으로 가서 요괴에게 잡혀 있는 그녀를 구하는 내용, 너무 뻔한 내용의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나는 좋다. 그건 마치 11살 때 대야에 담은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꿈같은 동화책을 읽었던 기억을 여지없이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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