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거윅이 나오면 그 배역에 그대로 끌리게 된다. 그래타 거윅은 그 배역이 정말 자기 자신인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많이 보는 이유는 헐리우드키드의 생애처럼 영화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만 영화에 잡혀 먹혀 버리는 소년 임병석처럼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허물어 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예술의 세계에 몸을 걸치게 되면 예술이 자기의 세계로 몸을 서서히 끌고 가버린다. 예술의 세계는 꿈을 꾸는 것처럼 비규정적이고 리얼리티가 떨어지고 확정 지어지지 않는 것들이 가득하다. 그 세계에 몰입하다 보면 현실의 경계는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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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를 많이 보면 볼수록, 예술의 세계로 발을 담굴수록 영화와 현실의 경계는 더 뚜렷해지는 것 같다. 영화 속 비현실적인 존재가 되어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멀어지기를 바라지만 전혀 내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
가령 숨바꼭질을 할 때 술래가 바로 앞에 집으러 왔지만 나는 그 밑에 숨죽이며 숨어 있는데 자칫 바로 잡힐 것 같은 그 긴장감을 느끼지 못한다. 마치 메이즈러너 스코치 트라이 멀에서 좀비들이 잡으러 왔을 때 그 밑에 숨어 있는 그 느낌의 긴장감. 그 느낌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아마 현실이 영화보다 더 버라이어티하거나 단조롭거나 지옥 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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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최신 영화에 대해서 짧은 언급을 하자면 톰 하디의 팬심으로 본 사람들이 많겠지만 영화의 장면들은 전부 다른 영화에서 조금씩 떼와서 이어붙인 장면 같았다. 영화는 중간은 없고 시작과 끝 만 있는 아주 베놈 같은 영화였다. 베놈, 착한 사람은 건들면 안 돼. 그럼 나쁜 사람은 머리를 먹어도 되고?
지네 나라에서는 따돌림당하던 놈이 지구에서는 힘깨나 쓰는데 그게 악당이면 머리를 씹어 먹어 죽여도 된다는 설정? 망작이라 할 수 있다. 스텐 리가 출연해줬으니 망작은 아닌가. 베놈 네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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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는 예전의 훌쩍 커버린 로빈 윌리엄스의 피터 팬 이야기 후크와 닮았다. 아니 그대로 되돌이표하고 있다. 디즈니는 꿈의 동화를 실사하기로 했고, 미녀와 야수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 존 파브로(아이언맨 감독이자 아이언맨 친구 역)가 감독을 맡고 라이온 킹이 내년에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알라딘에서 무슨 역인지 모르겠지만 윌 스미스가 선택이 되었고, 뮬란에는 유역비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 있다. 디즈니 사는 왜 장윤주를 보지 못했는가. 메리 포핀스도 실사 화가 되어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에밀리 블런트가 메리 포핀스며 메릴 스트립과 콜린 퍼스가 나온다. 메리 포핀스 역시 제목이 ‘메리 포핀스 리턴즈’로 보아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미녀와 야수처럼 그대로 실사화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조금 비틀어서 실사화하는 것이다. 피터 팬도 크리스토퍼 로빈도 성장을 하면서 공허하며 닳을 대로 닳아버린다. 모두가 그들에게 부양이라는 책임과 회사의 운명을 짊어지게 한다. 어른이, 어른들이, 아빠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면 로빈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 100 에이커의 일을 몽땅 잊어버린다. 피터 팬 역시 팅커 벨과의 일들을 전부 잊어버리고 만다. 모두가 로빈에게 기대고 부탁을 한다. 곰돌이 푸 역시 현실에서 닳을 대로 닳아버린 로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다. 한 남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회사에서 진급을 하며 어른이 되어 가지만 대체로 남자는 풀어지면 아이가 되어 버린다. 회사일로 지칠대로 지친 아빠들이 지친 그대로 들어가서 보면 그만 무너지고 마는 영화. 그런 어른들이 보면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지만 이 영화는 좀 더 유치해도 되고, 좀 더 신났어야 했다. 어른이들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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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는 올가 쿠릴렌코가 주연으로 극을 끌어가는 공포영화다. 히트맨에서 잘 빠진 몸매를 드러내며 할리우드의 입지를 다진 그녀는 007퀀텀 오브 솔러스, 오블리비언, 모멘텀 등 많은 영화에 주조연으로 등장했지만 홀로 극을 끌어가는 공포영화의 주연은 처음인 듯하다. 공포의 주체가 처음부터 등장해서 긴장을 빠지게 하고, 공포의 빌런은 꼭 일본의 꺾기 귀신을 보는 것 같다. 장면에서 주는 무서움은 공포의 주체인 마라보다 마라에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 정도다. 공포 영환데, 올가 쿠릴렌코는 옷을 다 입고 나오지만 야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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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 살인에서 주지훈의 부산 사투리가 어색하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있는 곳의 사투리는 부산 사투리와 다르기 때문에 내는 마 씨그러운 귤 까묵으며 봐도 뭔가 좀 그르트라. 분노, 분노로 인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폭력은 폭력 그 이상의 공포를 준다. 주지훈의 그런 연기는 실감난다. 맞제?
분노로 인해 일어나는 폭력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 같은 것.
하지만 영화 놈들이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으면 사전에 당사자들에게 양해를 구했어야지 다 만들어 놓은 다음 펼쳐놓는 태도는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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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치를 실사화 해놓은 블리치는, 블리치에서 나가사와 마시미는 예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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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의 대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의하면, 우주에서 온 공포와 그 앞에 선, 한없이 나약한 인간은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라는 건 끝없는 우주에서 먼지 같은 존재로 우주의 공포에게 맥없이 박탈당하게 된다. 인간의 잣대로 잴 수 없는 우주의 존재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무기력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 서사를 영화로 잘 나타낸 것이 이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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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호라이즌은 뭐랄까 시대를 잘못 만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97년도 작품이니까 그 당시를 보면 주위의 상업영화들 속에서 이벤트 호라이즌, 같은 우주적 존재에 대항하는 인간이 고어스럽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장면이 많은 상업영화는 성공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 속에는 고어 장면이 나오지만 아주 짧게 지나가 버린다. 제작사에서 모든 고어 장면을 빼 버리기를 원했으나 짧게 끊어서 1,2초 정도로 넣는 것으로 타협을 본 것이다. 그래서 지금 본다면 징그러운 장면은 그렇게(요즘 고어물에 비하면) 많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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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호라이즌은 물리학 용어로 블랙홀의 바깥 경계라는 말이라고 한다. 영화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2015년에 우주를 마음대로 나가게 되고 2040년인가? 그때부터는 태양계 끝이나 그 밖으로 연구를 하러 우주선이 다닌다. 그중 한대였던 이벤트 호라이즌이 조난을 당하고 몇 년 후에 주인공들의 우주선이 이벤트 호라이즌을 찾아서 그 속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그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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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긴장감을 죽 끌고 간다. 공포의 주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공포를 주는 그 주체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기에 영화를 보는 사람도 주인공들처럼 긴장을 바짝 하며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속수무책으로 빠지고 만다. 공포의 주체를 관객은 알고 주인공들은 몰라서 어어? 그쪽으로 가면 안 돼! 하면서 긴장을 하는 경우가 있고, 관객과 주인공들 모두 공포의 주체를 몰라서 긴장을 하며 숨죽여야 하는 영화가 있는데 이벤트 호라이즌의 공포는 후자에 속한다. 몇몇 장면들은 샤이닝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주인공들이 서서히 미쳐가는 모습 역시 샤이닝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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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물리학의 양자역학에 관한 부분은 아주 미흡하다. 우주의 공포, 지구에서 볼 수 없는 암흑, 온 마음과 뇌를 바꾸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전지전능한 악의 존재 암흑을 영화는 표현하려고 했다. 러브크래프트식의 코믹스 호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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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개연성이나 표현방식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방식에서 벗어났지만 영화 속에는 기억에 남을 만한 대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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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군, 지옥은 그저 단어일 뿐이야. 

실제는 훨씬, 훨씬 끔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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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도 애매하고 내용도 애매하여 보고 나면 뒷이야기가 많은 이런 영화가 흥미롭다. 순전히 편견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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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10-1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급 영화로 종종 소개되는 걸 봤는데, A건 B건 참 재밌었다는 ^^

교관 2018-10-16 12:0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재미있었고 요즘 봐도 재미있네요 ㅎㅎ
 

샐린저가 적은 ‘호밀밭의 파수꾼’ 읽어보셨습니까. 나 자신이 어른이 되어도 아이 같은 마음이 강하게 남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읽어 보세요. 주인공인 홀든 녀석의 말과 행동에 이입이 되고 마는 마법 같은 소설이에요. 아마도 이렇게 호밀밭의 파수꾼이 지금까지 사람들이 미친 듯이 읽고 있는 건 샐린저가 글을 적을 땐 정신이 제정신이 아니어서가 아닐까. 군인으로 2차 대전 인가에도 참전을 했어요. 근데 막사가 폭격을 맞아서 허물어지는데도 책상 밑으로 들어가 타자기로 글을 썼어요. 뭐 그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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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존 레논을 죽인 살인범 마크의 손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들려 있었다고 하고,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 오래된 영화 ‘컨스피러시’에서는 멜 깁슨의 집 책장에는 호밀밭의 파수꾼만 가득 꽂혀 있어요. 멜 깁슨은 극 중에서 서점에만 가면 그 책을 사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이 영화는 지금보면 촌스럽지만, 영화학도들은 반드시 보고 연구를 하는 영화로 알려져 있어요. 그 속을 관통하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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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가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서 비평이나 감상문을 써 내 놨어요. 영국과 미국에서 책의 제목이나 내용에 나오는, 같은 단어지만 받아들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각각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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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비틀스의 ‘노르지안느 우드’는 영국에서는 노르웨이산 가구라고 받아들이고, 미국에서는 노르웨이 숲이라고 받아들입니다. 한국은 대체로 하루키의 소설책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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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밀밭의 파수꾼에는 홀든 녀석의, 홀든 녀석 식의, 홀든 녀석대로의 욕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어쩌면 샐린저의 정신세계일지도 모르겠고....... 사실 책 속에 욕이 난무하면 그것대로 재미있습니다. 욕이라는 것은 잘 적어 문맥에 녹여낸다면 완전한 새로운 세계입니다. 소설가 한창훈의 ‘홍합’을 읽어보면 지역의 욕을 그대로 들을 수 있는데 마치 사운드스케이프가 가동된 것 같아요. 글인데 소리가 들리는 마법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욕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문체로 적어내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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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허’에서 꼬마 캐릭터가 욕을 사정없이 난발하는 장면에서 자막 버전 중에 욕을 아주 신랄하게 해석해 놓은 버전이 있는데 그것을 보면 직독직해로 참 재미있게 해석을 하여 자막을 넣었는데 번역한 사람이 꽤 연구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예전에 어벤져스 1편도 욕 버전이 있는데 극장에서 제대로 된 번역보다 훨씬 재미있는 겁니다. 공부를 상당히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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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도 홀든 만의 욕이 나오는데 지난 삼십 년 동안 천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12월을 마녀의 젖꼭지처럼 춥다고 했는데 작년의 추운 날(러시아보다 춥다고 호들갑을 떨었던)을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날이었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제목은 한국에서만 이렇게 불리고 있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완전히 다른 제목으로 읽히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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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한 남자의 인생

일본: 인생의 위험한 순간들

노르웨이: 모두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악마는 최후 순간을 취한다

스웨던: 기억의 순간에 나타나는 구원자

덴마크: 추방당한 젊은이

독일: 호밀밭의 남자

네델란드: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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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보고 위의 제목들을 보면 아아 그래, 그럴 수 있겠군.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홀든 녀석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이야기가 좋지만 이런 문장은 참 좋습니다. 마치 그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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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하품했다. 이 방에 들어온 이후로 하품이 멈추질 않는다. 이 방이 지나치게 따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졸리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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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는 장편 소설을 두 권이나 냈다. 

이 책에는 저 밑까지 떨어진 인생의 이야기가 있는데 차인표가 그걸 잘 적었다. 

리얼리즘이지만 책 속에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도 있다. 

유머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조금 웃으며 읽는데 저 끝으로 가면 묘하게도 코끝이 찡해진다. 참 기이하다. 

마치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를 붙잡고 똥을 싸니까 살아 있는 거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찡 한 것과 비슷한 결의 찡함이다. 

꼭 어른들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책 속에는 이런 대화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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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아 뱀 좋아하니

뱀 먹는 거?

아니 그냥 뱀 좋아하냐고

아니 싫어하는데

혹시 뱀한테 물린 적 있냐?

아니 없는데

그런데 왜 싫어해?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냥 싫지?

남들이 싫다고 하니까 무조건 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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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보 중에는 또 이런 대사도 있다.

밥은 먹는다고 하고, 잠은 잔다고 하고, 방귀는 뀐다고 하잖아. 그런데 왜 사랑은 한다,고 하는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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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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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는 사랑한다의 반대말이 사랑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사랑했었다,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사랑은 늘 현재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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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라의 소설 읽어보셨습니까. 원작이 러브크래프트인 이 영화는 1986년인가 작품입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순수한 감정, 그중에서 제일 위에 있는 공포를 문학의 저변으로 확대시킨 사람이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거든요. 러브크래프트는 공포 문학으로는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어요. 두려움이라는 건 한 번 경험해 보고 나면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는, 그리고 두려움이 정신을 가득 지배하면 슬픔, 기쁨, 환희, 애완 같은 다른 감정은 가질 수 없습니다. 공포라는 건 인간의 가장 밑바닥 내지는 제일 위에 있는 감정이라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공포의 주체가 되는 영화 속 크리처, 고스트, 이종(외계인)의 모습은 대체로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보면 됩니다. 러브크래프트는 평단에서는 좋은 평을 듣지 못했고 뒤에 나온 후배 소설가들도 러브크래프트의 문장력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소설은 문학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불행한 인물이었어요. 저렴한 질의 종이에 잠깐 읽고 넘길 수 있는 가벼운 소설이 실리는 펄프 잡지에 기고를 하면서 인기를 얻었어요. 주러 호러, 공상, 판타지, 갱스터물이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잡지를 통해 코난 더 바바리안, 타잔, 쾌걸 조로 같은 캐릭터가 탄생했어요.

러브크래프트는 193746세라는 말도 안 되는 나이에 죽었습니다. 영화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험한 존재 에일리언이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에이리언의 디자인은 이미 1973년부터 제작이 되었다고 하니 영화라는 산업? 문화는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러브크래프트의 족적은 짧았지만 그가 지닌 그 어마어마한 세계관, 상상도 생각도 하지 못할 암울하고 음울한 분위기와 기이한 표현과 독특한 묘사는 현재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러브크래프트는 흔히 말하는 크툴루 신화의 밑거름을 닦은 사람입니다. 크툴루 신화는 그리스 신화나 중국 신화 같은 신화인데 역사는 짧아요. 판타지 문학에서 빛으로는 반지의 제왕의 톨킨을 말한다면, 어둠에 관해서는 단연 러브크래프트입니다.

그는 인간이 지니는 아주 순수한 공포, 저 밑바닥의 근원직인 공포는 미지에서 오는 공포라 확신하여 소설을 썼어요.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는 지정할 수 없고 톡정할 수 없는, 사람의 생각으로 파악이 전혀 되지 않는 음산한 존재가 늘 소설의 주위에 숨어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러브크래프트가 말하는 공포는 고대 신들을 본뜬 거대한 형상과 그 앞에서 그야말로 처정하게 무력한 인간, 결국 인간은 공포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인간은 공포를 느낀 다음 수순으로 그 공포 앞에서 경이의 순결함을느기고 그 공포의 아름다움에 흡착되어 버리게 됩니다. 공포가 주는 미학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건 뱀에게 쫓기는 쥐가 궁지에 몰리면 뱀에게 발악을 하다가 서서히 먹히는데 그 먹힐 때 쥐도 쾌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튼 러브크래프트가 현재 공포소설의 신격화로 추앙받게 된 이유가 설명이 가능하게 합니다. 현재 영상산업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영화뿐 아니라 미술, 게임, 소설, 애니메이션까지 러브크래프트의 스타일과 세계관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산업이 많어졌어요.

그는 자신의 소설 중 단편인 우주에서 온 색채를 가장 사랑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나홈이라는 농부의 밭 가운데 운석이 떨어지는데, 그 안에서 지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색채를 발견하게 되면서 진행됩니다. 나홈의 가족들은 그 색채 때문에 점점 광기에 빠져들어 죽어가고 그 색채에 의해서 사람이 타들어가듯이 잿빛으로 변해서 부서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빛이, 지정할 수 없는 색채가 뿜어져 나오며 그 범위가 서서히 넓어지는데 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 소설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은 작품이 근래의 영화 서던 리치입니다.

서런 치지, 이 영화의 미술은 훌륭합니다. 몹시 아름답고 아주 화려해요. 매혹적이며, 그간 지나치면서 또는 영화 속에서 봐온 빛과는 다른 질의 빛의 움직임을 볼 수 있어요. 빛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은, 아주 고혹적이면서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잡아당기는 이 아름다움이 불쾌하고 불안하고 기괴해요. 영화를 가득 메우고 있는 미술에 빠져들 때쯤에는 이미 내 모든 세포가 불쾌하고 괴기하게 변하는 착각이 듭니다.

꼭 램브란트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아요. 램브란트의 그림 속에는 빛이 꼭 살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인공적인 조명을 비춘 것 같은, 그래서 램브란트의 그림을 조금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림인지 사진인지, 그리고 보는 시간을 좀 더 길게 끌고 가면 그림 속의 인물이 마치 나에게 뭐라고 말 할 것 같은 기이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림 속 사람들은 표정이 거의 없거나 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 역시 어쩐지 기괴하게 보입니다.

서던 리지는 미국에서는 아나힐레이션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고 소설은 국내에도 출간되어 있어요. 소설은 3부작이며 영화는 1부를 영화로 만들어졌어요. 국내개봉은 안 했습니다. 이 소설 역시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스티븐 킹도 이 소설을 칭찬하고 좋아했어요.

이 영화는 엑스 구역, 쉬머라는 공간이 왜 생겨났는지(러브크래프트의 우주에서 온 색채,에서 처럼 빛의 구역이 느닷없이 생겨났어요), 점점 대지를 잡아먹고 영역을 넓혀가는 것을 해결하려 들지도 않아요. 쉬머라는 그 구역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집중을 하고 있어요. 초현실적인 공간의 쉬머는 지구에 없는 색채로 인해 환상적이며 아주 몽환적인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속에 들어가는 순간 그간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외의 현상이라는 것이 일어납니다.

쉬머에서는 서로 다른 종의 세포의 굴절과 분열 그리고 병합이 이루어져서 생물체가 이상하게 변종이 됩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는 새 복제가 되거든요. 쉬머 속에서 살고 있던 곰이 세포가 망가져서 헬프 미라고 하는 부분은 소름이 쫙 끼치죠. 무엇보다 영화의 음악이 기괴하고 괴기합니다. 바닥에 붙어 있는 신경 줄을 뜯어 올리는 듯한 음악 역시 아주 음산해요. 이 감독은 이전에 엑스 마키나를 연출한 감독인데, 그 영화 보셨습니까?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죽 끌고 가는 스타일의 연출을 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공포는 주는 주체가 크리처나 살인마, 이종이나 괴물이 아니라 색채라는 것이 상상을 넘어서고 충격을 줍니다. 이 색채의 모호함은 미지에서 온 공포라는 것이고 이것이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이거든요.

공포 속 미지의 공포에는 촉수가 있고, 촉수는 늘 에로티시즘을 방불케 합니다. 일본의 공포문화에도 영향을 끼쳤어요. 그로테스트적인 면이 당연하지만 같이하며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은 한동안 전 세계의 극장에 영화가 되어 상영이 되곤 했다가 근래에는 거의 다루지 않았는데 서던 리치가 나왔네요.

공포라는 건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공포는 대체로 사라집니다. 공포라는 건 공포의 주체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공포가 극대화가 됩니다. 그건 영화 뿐 아니라 실제와 실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오래된 영화로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당시에는 꽤 높은 특수촬영효과가 있었다. 연구를 통해 미지의 존재가 인간의 뇌로 파고들어 흉측하게 변하여 인간의 뇌를 집어삼키려 하려 하고 그걸 막으려 하는 내용이다. 영화가 공포영화지만, 공포영화가 대체로 그렇듯이 에로티시즘적이다. 축축한 피부와 점액질의 촉수 역시 은밀한 부위를 묘사하고 있고 곳곳에 그런 장치가 있다. 인간은 그걸 좋아하면서도 우아한 척, 싫어하는 척하니 인간이 정말 미지에의 공포 중 으뜸이라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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