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카페나 맥주를 마시러 가서는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자주 보는 주인이나 아르바이트 학생이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더불어 그 안에 있는 음악도 묻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나는 주절주절 음악이 어떻니 하면서 힘이 빠진 괄약근처럼 줄줄 해버리고 만다.

 

두세 개 정도의 카세트테이프를 놓고 번갈아가 가면서 음악을 듣는데 노래가 끝이 나면 플레이어를 탁 열어서 틱 빼서 착 다시 넣고 툭 버튼을 눌러 음악을 듣는 행위가 재미있는 모양이다.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는 것에 비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나 카세트 테이프가 많고 카세트플레이어가 있으니까 듣는 것뿐이다. 음악이라는 게 음식처럼 추억을 소환하는 연쇄반응을 하기에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면 이 음악을 열심히 들었던 그때의 랜드스케이프가 눈앞에 펼쳐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유행이라는 게 정말 돌고 도는 것인가를 실감한다. 오늘 이전에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들이 오늘 이후로는 신기해하며 관심을 가진다. 나도 어쩐지 어딘가에서는 또 여봐란 듯이 슬며시 꺼내서 탁 탁 거리며 불편하게 음악을 듣는다.

 

일명 워커맨이 대단히 유행일 때가 있었다. 소니의 워커맨 세계를 위협했던 아이와 워커맨이 있었다. 아이와 워커맨은 몹시 심플하며 리모컨이 달려있고 외향이 정말 예뻐서 누구나 빠져 들만하게 만들었다. 음질도 좋아서 마구 앨범을 구입하고 싶은 욕망이 분출되기도 했다. 이런 세계에 도전장을 내던진 것이 삼성의 마이마이였다. 하지만 그 도전이 쉽게 먹혀들지는 않았다.

 

하루키의 에세이 중에도 워커맨에 대한 글이 있다. ‘오디오 가게에서 산 두 번째 신형 워커맨은 첫 번째에 비해 훨씬 작고, 무게도 절반에 가깝고, 오토리버스 장치가 달려 있는데다 충전도 할 수 있다. 값도 천 번째 것보다 싸다. 한 기계가 사 년 사이에 이렇게나 진보하다니(하루키는 첫 번째 워커맨이 4년 만에 아작이 난 것에 대해서 앞서 투덜거려놨다), 감개무량이라는 좀 과장스럽지만 정말 감탄스럽다. 적어도 인간이 진보하는 속도에 비하면, 그 빠른 속도에 그저 눈이 휘둥그레질 뿐이다’라고 했다.

 

최근의 과학기술이나 IT 기술을 보면 4년이 뭔가, 1년 만에 항상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고 그것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발전하는 과학으로 아직까지 날씨를 잡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돌고 도는 유행처럼 아주 예전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70년대 초 대한민국의 하늘은 지금처럼 먼지가 가득하여 일하고 집으로 들어온 아버지들의 코밑이 새카맣게 되어서 얼굴을 잘 씻어야 한다고 했던데.

 

유행이 지난 워커맨이 신기한 것처럼 요즘 하늘도 신기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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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빅은 참 한결같은 그룹이다. 멤버의 변화 없이 지금까지 주욱 같이 왔다. 미스터 빅의 보컬인 에릭 마틴의 목소리는 너무나 매력적인데 이렇게 매력적인 목소리에 이렇게 잘생긴 얼굴에 무대매너까지 좋으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에릭 마틴은 스튜디오 버전과 라이브 버전의 목소리가 거의 변화가 없는 정말 희한하고 요상한 사람이다.

 

에릭 마틴은 소녀소년 같은 얼굴에서 점점 더 멋있어져서 그런지 여자들의 애정공세는 현재에도 식을 줄 모르는 것 같다. 에릭 마틴의 목소리에 한껏 빠져든 나는 어떤 소설 속에서도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학교 축제 무대에 올라 에릭 마틴의 노래를 부른다고 써 버렸다. 미스터 빅이 ‘투 비 위드 유’로 한국에서, 아시아에서 인기가 있을 때 이게 무슨 록이야! 했던 록 마니아들이 많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만이지. 하지만 미스터 빅의 고출력 고사운드 록이 앨범에는 가득하다. 그들은 메탈밴드였던 것이다.

 

부드러운 것 같은데 갈라지는 허스키가 끝에 살짝 묻어나는, 아무튼 에릭 마틴의 목소리는 잘 담근 갓김치 같은 그런 맛이 나는 소리였다. 미스터 빅은 지금까지도 투어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은 뭐 수도 없이 갔고 우리나라에도 작년까지 왔다. 기타를 치는 폴 길버트, 일명 길벗 아저씨는 꼭 코미디언 같은 얼굴로, 코미디언 같은 표정으로 연주를 하는데 기가 막힌다. 마르고 목이 길어서 꽤 멋있어 보여야 하지만 길벗 아저씨는 그냥 친근하다. 미스터 빅이 최고를 달릴 때 부산 공연을 와서 드릴로 막 연주를 하고 이빨로 막 그냥.

 

에릭 마틴은 나이는 들었지만 살도 찌지 않고 목소리 또한 변하지 않고 무대 매너 역시 청중을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음악을 즐기는 것 같다. 베이스에 빌리 시한 역시 변함이 없다. 길벗 아저씨도. 단지 드럼을 치던 펫 토페이가 2018년 2월에 사망함으로 드러머가 바뀌었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 빅의 시끄럽고 사운드가 강한 음악이 좋지만 ‘저스트 테이크 마이 하트’같은 노래가 에릭 마틴의 목소리를 잘 담아냈다고 본다. 그러니까 에릭 마틴이 ‘졋 텍 마 핫’하면 앞 줄의 여자들이 꺅 하며 사르르 무너졌다. 여러 공연이 그렇지만 미스터 빅의 공연을 보는 관객들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이다. 그건 아마도 미스터 빅이 지금까지 주욱 끌고 온 그들만의 에너지가 공연 중에 팬들에게 막 뿌려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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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위 맘스틴은 잉베이 맘스틴, 잉위 맘스테인 같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서로 자기가 알고 있는 이름이 맞다며 잉위 맘스틴의 팬들은 서로 우기기도 했었다. 잉위 맘스틴은 잘 생긴 얼굴로, 날씬한 근육질로 늘 바로크 시대의 레이스가 달린 의상을 입고 기타를 미친 듯 연주했다. 마치 들판을 뛰어다니는 백마처럼.

 

2015년에 서울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역시 육중해진 몸이었다. 하지만 실력 만은 출중했다. 요즘 보면 마를린 맨슨도 섹시함은 몽땅 사라지고 항아리 같아진 몸으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뭔가 딱해 보인다. 그럼에도 전 세계의 수만은 팬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이승환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잉위 맘스틴의 음악을 제대로 듣는 건 역시 음악감상실에서였다. 요즘에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이동을 할 때에도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때에도 음악을 듣지만 리스닝보다는 히어링 같은 개념이다. 그저 듣는다,라는 의미다. 적어도 음악감상실에서 듣는 잉위 맘스틴의 음악이라는 건 몸이 음악에 잠기고 음악에 머리가 감싸이고 온 정신이 음악에 맡겨지는 느낌이었다.

 

집중적으로 음악을 들으려고 했다. 음악밖에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음악을 듣는 것이다. 다른 건 전혀 필요 없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정도 듣고 싶은 음악을, 오로지 음악을 듣는 것에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음악감상실 정도는 없어지지 않고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가 음악을 들으러 갑니까? 온천지가 음악인데,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도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지만 아직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음악 따위 카페에서 들으면 되잖아요, 할지도 모르지만 음악을 들으러 카페에 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극장처럼, 수많은 가수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면 음악 감상실에서 먼저 틀어준다. 오로지 음악에 몸을 맡기고 음악을 듣는다. 음악이라는 것이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기 때문에 천장, 벽면, 바닥 그리고 앉아 있는 의자에서 세밀한 리듬까지 나온다. 그러면 집이나 차에서 또는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과는 다른, 확실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오래전에는 음악을 들으려면 음악이 있는 곳에 가야만 했다. 그래서 음악은 대부분 귀족문화였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당연히 음악이 있어야 했고, 음악을 연주하려면 악기와 악사가 있어야 하고 그 공간이 있어야 가능했는데 일반 서민들은 그런 곳에 발을 디딜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음악가들이 귀족의 녹을 받으며 음악을 만들었고 그 대부분이 귀족 음악이었다. 베토벤도 모찰트도 바그너도 대부분 그랬다.

 

사람들이 공연장에 품을 들여가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오케스트라를 듣는 건 분명히 그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음악 소리를 크게 해도 와서 시끄럽다고 조용히 해 달라고 하는 요즘이다. 음악이 소음과 비슷해져 버린 건 주위에 너무 많은 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들리는 음악은 그저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음악감상실에서는 오로지 음악이 흐른다. 침대처럼 편한 소파에 앉아 흐르는 음악을 듣는다. 때로 잉위 맘스틴 처럼 강력한 기타 연주는 몸을 부르르 떨게도 한다. 음악에는 어떤 그런 마력이 존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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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누군가 나의 책을 읽고 리뷰를 해주었는데 글을 쓴 나보다 더 글을 좋아해 준 것 같은 기분이다. 나의 다른 책이 나온다면 읽을 계획이라는 말에 묘한 기분이 든다. 시와 소설은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작년의 나에게 일어난 신기한 여러 개의 일 중에 하나는 단편영화를 제작하여 극장에까지 올려 상영을 한 신입 영화감독이,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봐 달라며 보내온 일이었다.

 

나는 시나리오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보내온 시나리오를 펼쳐 보고 이것이 영화 시나리오라는구나, 하며 신기해했다. 시나리오라는 것은 소설과는 다르고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마치 눈앞에 노을 질 무렵에서 어스름해질 무렵으로 넘어가는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는 주인공인 시원과 주영이 있는 듯하다.

 

S#이 뭔지, 인서트에 대해서 찾아봤던 작년이 떠오른다. 시나리오 어땠어요?라고 물어오면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시나리오에 대해서 나 같은 인간이 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나리오에 대해서 묻지 않았고 나 역시 시나리오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어쩌면 서로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글’이라는 크고 굵고 단단한 강이 흐르고 있어서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무언으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사회가 변영주 감독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변영주 감독은 어떤 우울하고 암울하고 슬픈 영화 속에서도 위트와 유머를 찾아낸다. 이 사회가, 그 속의 우리들이 변영주 감독 같다면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변영주 감독이 인간이 망가지는 길의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수십 번 본다. 두 번째는 그 영화에 대한 리뷰를 작성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뛰어들면서 망가진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기분 좋게 망가지는 것이다. 한 번도 망가지지 않고 죽는 것 또한 불행하고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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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자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음악감상실 때문이었다. 프랑스 음악이라고는 에디트 피아프, 파트리샤 까스 정도였다. 조지 밴슨의 ‘낫띵스고나 체인지 마이 러브 포 유’를 불러 인기를 얻은 글렌 메데이로스가 엘자와 노래를 같이 불러 알게 되었다.

 

글렌 메데이로스,라는 이름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촌스럽지 않으며 이름이 긴데도 발음하면 길어 보이지 않고, 영어 발음이 좋은 사람이 ‘글렌 메데이로스’라고 발음하면 호감이 대번에 갈 것 같은 이름이다. 글렌 메데이로스는 이름만큼이나 좋은 얼굴로 노래까지 잘 불러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건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받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글렌 메데이로스는 엘자와 ‘프렌드 유 기브 미 어 리즌’이라는 듀엣곡을 불렀다. 여기서는 엘자도 영어 버전으로 부르는데 ‘엉 로망 뒤£¥$§#&’에서는 엘자가 불란서버전으로 부른다. 영어로 하면 ‘러브 올웨이즈 파운드 어 리즌’이다. 뮤직비디오는 80년대 불란서인지 미국인지 아름다운 해변에서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를 너무 잘 연기한 덕분에 실제 사귀기도 했다.

 

엘자의 얼굴은 불란서의 얼굴보다는 구라파의 얼굴에 가까워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불란서 출신 배우들, 줄리엣 비노쉬나 줄리 델피의 얼굴이 엘자에게 보인다. 엘자의 얼굴은 되게 동양적인데 눈은 구라파, 언어는 불란서 뭐 이런 느낌이다. 엘자는 가수지만 데뷔는 영화로 했다.

 

이름도 멋진 글렌 메데이로스와 듀엣을 불러 알게 된 엘자의 노래를 음악감상실에서 여러 곡 들었다. 머리에 박혀있던 샹송의 이미지가 깨졌다. 엘자의 노래는 장벽 같던 샹송이 아니었다. 엘자의 노래는 꼭 가요를 듣는 것 같았다. 강수지가 불란서어로 부르는 느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들어보면 가요처럼 친숙하다.

 

한때 불란서 음악을 꽤 들었는데 대체로 가요와 비슷하여 듣기 편해서 신기해하기도 했다. 얼마 전 티브이 먹방예능 국경 없는 포차인가, 거기서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서 열린 포장마차에서 프랑스인들의 흥이 어쩐지 한국인과 비슷하게 보였다.

 

미래 같은 걸 모르고 그저 하루를 견디기 바빴던 중고등 시절에는 그래서인지 음악을 꽤 다양하게, 집중적으로 들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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