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하고 싶은 말은 대체로 몸속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느닷없이 다른 형태가 되어 비명처럼 밖으로 툭 튀어나온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나는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개똥벌레의 주인공은 친구의 죽음을 본 후 죽음은 생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뿌연 공기 같은 미미한 죽음의 잔존이 주인공을 끝 간 데 없는 결락으로 몰고 간다

 

하루키의 단편 개똥벌레를 양쪽에서 잡고 힘 좋은 누군가가 주욱 늘린 것이 노르웨이 숲이다. 개똥벌레에서 주인공은 친구가 자살을 하고 난 후 친구의 여자친구와 만나게 되면서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내 팔이 아니라, 누군가의 팔이었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내 체온이 아니라 누군가의 체온이었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문장이 단편인 개똥벌레에서 장편인 노르웨이 숲으로 심도 있게 늘어나게 된다. 단편인 개똥벌레에서는 장편인 노르웨이 숲의 나오코가 요양소에 들어가게 되고 편지를 주고받는 것까지 나온다

 

나오코, 그녀에 관한 기억이 와타나베 안에서 희미해져가면 갈수록 와타나베는 더욱 깊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죽음,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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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되는 거예요. 그뿐이에요

 

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귤이 그곳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된다.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늘 있어야 할 그곳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된다

 

마치 음식을 먹고 있는데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건 재능도 무엇도 아니다

 

그것은 사실 그곳에도 존재하고 이곳에도 존재한다. 동시 존재한다. 동시공체일지도 모른다. 스팅이 그에 관한 철학적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나는 이곳에 존재하지만 렌선을 타고 그곳에도 존재한다

 

구름 없던 하늘에 구름이 모락모락 그림을 그려 한참을 서서 바라보는데 꼭 저 대책 없는 구름의 모습이 나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름 같은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참 어렵다.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양립된 마음이 동일선상에 놓여 있어서 자칫 발을 헛디디면 한쪽으로 기울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쩌면 일상의 반은 습관을 유지하려고 자신과 싸우고 또 일상의 반은 습관에서 벗어나려고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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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과 흑백을 좋아하지만 맹렬한 컬러도 좋다

 

여기 바닷가를 따라 죽 돌아가면 포구가 나오고 포구를 지나면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가 있다. 이곳을 슬도라 부르는데 드라마도 몇 번 찍고 등대마저 리모델링을 싹 해버리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들어서면서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이 많아졌다. 예전의 소담한 등대가 슬도를 지키고 가만히 앉아 바람을 맞았던 모습에서 벗어났다

 

사진을 담을 수 있는 좋은 곳이기에 많은 찍사들이 찾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많아진 다음에는, 그러니까 등대가 태권브이에서 84태권브이처럼 변해버린 후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그곳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다 보면 가끔 그물에 걸린 고래의 해체 작업을 볼 때가 있다. 고래가 육지에 오르는 순간 엄청난 양의 얼음이 트럭으로 온다. 그리고 장팔사모와 청룡은월도 같은 긴 칼을 들고 몇 명의 건장한 20대 중반 청년들이 장화를 신고 고래의 해체작업에 들어간다

 

먼저 배를 가르면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양의 피가 흐른다. 그때 재빨리 호수를 잡고 있던 사내가 물을 뿌리고 트럭에서 또 다른 사내는 삽으로 얼음을 퍼 배를 가른 고래의 몸속에 부어 넣는다

 

장팔사모가 고래의 큰 부분을 해체하고 나면 청룡은월도가 지느러미와 꼬리 등 세세한 부분을 몸통에서 잘라낸다. 역시 엄청난 피와 분비물이 흘러나온다. 물과 얼음. 그렇게 불과 두어 시간 만에 크나큰 고래는 촘촘하게 조각조각 난다

 

고래는 검은색이지만 고래는 실은 빨강과 하양으로 되어있다. 조합에서 나온 감독관은 거만한 포즈로 사내들의 해체작업을 지켜보고 있고 그 밑으로 고래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난다

 

크고 검은 고래는 작고 보잘것 없는 빨강과 하양으로 분리되어 배출된다. 맹렬한 컬러다. 붉은색으로 표한할 수 없는 빨강과 흰색보다 더 순수한 하양은 맹렬하다. 바닷속에서 고요하게 숨죽이고 있다가 바다 위에서 숨 쉼과 동시에 찰나로 맹렬하게 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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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녀석들에서 문세윤이 그러던데, 치킨은 맥주가 생각나고 통닭은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나에게도 파란풍차 빵집의 햄버거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 빵집의 햄버거는 햄버거 전문점의 햄버거에 비해 전문적이지는 않다.

내용물도 양상추에 패티에 치즈 한 장이 전부다.


이 햄버거를 먹으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가 6살 7살 때쯤, 아버지는 회사에서 점심에 한 달에 두 번 나오는 햄버거를 먹지 않고 들고 와서 나에게 먹였다.

빵 사이에 패티 한 장에 치즈 하나가 달랑 들어있던 햄버거.

맛있게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아빠와 아빠가 햄버거를 들고 올 날을 기다려 모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처럼 그 햄버거를 앉아서 야무지게 먹으며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때 아버지가 나에게 먹였던 그 햄버거의 맛이 파란풍차 빵집 햄버거의 맛이다.

눈물보다 진한 붉은 사랑을 주고팠을까.

추억의 절반은 맛이고 맛은 추억으로 통한다.

아버지가 계신 그곳은 좀 따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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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자보다 가난한 자가 되도록 해라. 배부른 자는 바다를 보고 어떻게 더럽힐까 생각하지만 가난한 자는 그 속에서 생명을 발견한다 - 알멕 에드워드 팔론소

 

아빠를 따라 나온 바다

세상은 바다와 같단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다는 것

어려우면서 꽤 멋진 일인 거 같아

어딘가에 있는 나의 행복을 바라는 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일과 마주하고 있는 일일지도 몰라

혼자서 세상에 발을 내밀기 전까지는 아빠가 곁에 있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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