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을 '적의 화장법' 따위의 저자로만 알고 있다면 저에게는 대단히 섭섭한 일입니다. '반전' 이야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독자들의 성향 탓이었을까요? 2000년대 초 대학가에는 도서관에 출입하는 사람치고 아멜리 노통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들이 추천하는 책을 들어보면 '적의 화장법'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물론 '적의 화장법'은 정말 훌륭한 소설입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아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게 만드는 매력이 있고 한 두페이지만 읽어봐도 몰입이 되어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들며 종반부에 반전으로 정점까지 찍어 주니 정말 대중 소설로서는 이만한 책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별미'입니다. 맛이 너무 강해 연달아 3-4번 읽다 보면 쉽게 물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사실 독특한 소재나 반전 같은 장치는 신인 작가가 데뷔 초 이름을 날리기 위한 수단으로나 쓰는 방법입니다. 
만약 반전 이야기로 성공한 사람이 재차 반전 이야기로 승부를 걸려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낭패를 보게 되어있습니다. 식스센스로 슈퍼스타가 된 M.나이트 샤말란이나 Open your eyes로 헐리우드에 스카웃된 알렉산드로 아메나바르 같은 사람들이 그 증거입니다.

적의 화장법에 떡실신된 사람들은 분명 '살인자의 건강법'을 보고 '오후 네시'를 봤을 것이며 '로베르 인명사전'에서 갸우뚱 했다가 '앙테 크리스타'나 '머큐리'에선 그럭저럭 재미를 보고 '황산'이나 '제비 일기'에 이르러 '드디어 노통도 맛이 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더이상 읽지 않았을 것입
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그 사람들은 진정한 노통의 매력, 살인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1968년 생 싸이코 벨기에 여자의 진가를 아직 못 느껴 봤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통의 '소설'을 '논'픽션과 픽션으로 구분합니다. 소설은 모두 허구이며 픽션인데 이것을 '논'픽션과 픽션으로 구분한다니요?  이상한 말 같지만 노통의 백미가 바로 여기 '논'픽션에서 나오니 반드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픽션을 들어볼까요? 앞서 언급한 살인자의 건강법, 적의 화장법, 오후 네시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럼 '논'픽션은 어떤 책들일까요? 배고픔의 자서전, 사랑의 파괴,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 바로 이 자전 소설들이 노통의 '논'픽션 들입니다.  

이 소설들은 전부 자기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옮긴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이 책들이야 말로 노통을 참신한 표현의 대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석하는 소격의 달인, 그리고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만들어 주는 소설들입니다.  

이를테면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에서 노통은 '엄마 뱃 속에 있는 아기'를 '튜브'로 아직 말을 못하는 어린 자신을 '부모님을 놀래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말을 참는 조숙한 아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잘 와닿지 않는 다고요? 그럼 이런 표현은 어떤가요?


  지금까지도, 나는 딱 잘라 입장을 정리할 수 없다. 1970년 8월말에, 잉어가 있는 연못에서 길이 끝나는게 나았을까? 어떻게 알겠는가?
  삶이 한 번도 지루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저 건너편에 가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나한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나?
  대단히 심각한 건 아니다. 어쨌거나,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에돌아가는 방법일 뿐이니까. 언젠가, 더 이상 시간을 벌 방법이 없을 떄가
올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저 건너편에 가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나요? 죽음의 세계를 천국과 지옥으로 편을 갈라 끊임없이 회개하기를 충동질하는 세상과 그것을 '무', Nothing, 바니타스, 세계의 끝, 종말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태연하게 묻는 대범함. 게다가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에돌아가는 방법'이라고까지 하다니… 이로써 호환마마,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마지 않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대마왕 '죽음'은 노통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 어둠에서 빠져나와 삶의 대안이 됩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고 가치를 전복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노통의 주특기이며 '논'픽션 이외의 소설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진정한 필살기 입니다.

재미를 따지는 것이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저는 이 '논'픽션들을 첫 손에 꼽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노통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소설을 쓸 수 없는 아직은 미숙한 작가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머리 속에만 있는 기괴한 상상들. 있는대로 설명했다간 미친놈 취급을 받기 딱 좋은 뒤죽박죽 얽힌 추상적 관념들을 세련된 소설로 풀어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지구상에 딱 한 번만 존재했는데 바로 보르헤스라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로 눈이 멀었음에도 평생동안 2만권의 책을 해치워 버린 괴물 중에 괴물입니다.

노통을 보르헤스의 반열에 올려 놓기에는 아직 모자란 점이 많습니다. 두 사람의 '픽션'만 두고 본다면 말이죠. 하지만 노통의 '논'픽션 소설들만 뽑아놓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저는 결코 노통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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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괭이 2011-07-23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도 아멜리 노통의 인기에 한몫했던 사람으로서 글을 보면서 와닿는게 많네요.ㅎ
저도 처음엔 적의 화장법에서 시작했으나, 제가 꼽는 그녀의 책은 살인자의 건강법,오후 네시,사랑의 파괴,이토록 아름다운 세살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왠지 예전에 읽었던 생각하니 향수에 빠지네요. 흐흐
오랜만에 그녀의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최근에 나온 책들은 못 읽어봤거든요.
지금도 그녀의 서랍속엔 그녀의 이야기가 뭉탱이로 잠들어 있겠죠? 그걸 다 풀어놓을 날이 올까요? ㅎ

한깨짱 2011-07-24 09:47   좋아요 0 | URL
노통의 최근 책들은 역시나 픽션 위주라 재미가 덜한 편입니다. 올해 나온 책이 '생명의 형태'인데 웬지 손이 가질 않습니다. 작년인가에 나온 '겨울 여행'도 그닥 감흥은 없더군요.

그래도 매년 책을 낸다는건 정말 존경할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글을 쓴다는건 정신적 노동을 넘어 육체적 고통을 안기는 일 같아요. 저같은 경우 글을 쓸때 죽을만큼 괴롭던데 오히려 노통은 글을 쓰지 않았으면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니, 글쓰기에 대한 그녀의 집념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디자이너 생각위를 걷다
나가오카 겐메이 지음, 이정환 옮김 / 안그라픽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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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관련 책은 제목부터 간지가 나야한다'라는 것이 안그라픽스, 소위 한국 디자인 시리즈의 대부인 이 출판사의 철학인 듯 하다.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라는 제목도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의미가 '보통 사람의 생각위를 넘어 다니는 디자이너의 사유법'을 말하는 것인지 '복잡해져버린 세상사, 그 생각의 쓰레기장을 유유자적, 유아독존 거칠 것 없이 홀로 치닫는 디자이너의 오만과 자신'을 뜻하는 것인지, 아무튼 알쏭달쏭 그러나 그 '간지'만은 확실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제목으로 낙점된 것이 아닐까. 거기다 책 용지를 보면 재생용지인 갱지. 나가오카 겐메이가 재생 가구, 잡화 사업과 연관이 있음을 감안할 때 오히려 그 '싼 맛'이 자연스런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지니 이로써 '간지의 완성'을 이뤘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나가오카 겐메이가 D&Department라는 디자인 잡화점을 운영하는 동안 써내려간 일기다.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 하던 여자 아이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던 흥분과 스릴. 옆 자리 친구의 일기를 훔쳐봐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나가오카 겐메이라니 디자인계의 스타라 부를 수 있는 이 사람의 일기라면 분명 짜릿한 사건들로 가득차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한 챕터를 다 읽어 내려가기도 전에 종종 집중력을 잃고 내용을 놓치게 되는 이유도 이것이 일기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개요를 짜놓고 일기를 쓰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때로는 너무 짧아 아쉬운, 아니면 주저리주저리 반복되는 혼잣말을 듣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이 책의 매력이다. 아직 가공되지 않은 채 뜨끈뜨끈, 고조된 감정이 토해놓은 순도 높은 생각의 덩어리. 이 책에서는 그런 살아있는 생각의 펄떡임을 느낄 수가 있다.

짧은 이야기는 기록을 해두고 싶을 만큼 강렬한 충격이었다는 것이요 반복되는 이야기는 그만큼 자주 겪는 일이라는 것일테니 어쩌면 이것들이 그 세계를 살아가는, 나아가 우리네 인생을 설명하는 힌트가 아닐까? 디자인 관련자가 아니어도 쉽게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는데는 아마도 나가오카 겐메이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이 겪는 보편적 감상이 디자인으로 이름을 바꿔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두께는 상당하지만 대부분이 여백과 제목이니 두려워할 것 없다. '디자이너 생각위를 걷다'는 이 봄 한가하게 의자에 앉아 독서를 하다 졸기도 하는, 그런 여유와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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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인문학이 멸종한 시대.

인문학이란 '어느 철학자가 몇년 부터 몇년까지 살았고 무슨 무슨 주장을 했다'라는 따위의 지식을 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은 사람을 이해하는 힌트를 제시하고 그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힘과 인내를 길러주는 학문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하다. 인문학은 지루하고 고된 일, 눈길만 스쳐도 피하고 싶은 유리관 속의 먼지 쌓인 박제가 되버렸다.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소설책을 추천하는 CEO를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철학과 사회를 주제로 토론하는 엔지니어를 본 일이 있는가? 시간이 금이 되고 속도가 미덕이 되는 오늘의 야비함은 이 무던히도 깊은 생각의 역사, 그러나 오랜기간 정제가 필요한 사유의 강줄기를 완전히 말려 버렸다. 똑똑하다고 불리는 사람들은 재빠르게 고객의 Needs라는 것을 Catch, 마침내 압축된 지식의 양산에 성공해 바겐세일을 외쳤다. 이로써 단기 속성 학원이 흥행하고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는 언제나 자기 계발서의 차지가 되었다.

인문학은 세계를 구현하는 플랫폼이다. 경영학, 마케팅, 컴퓨터공학, 트위터, iTunes, WOW 따위도 인문학이라는 App Store가 진열해 놓은 Application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그것을 연구해 디자인패턴과 API 사용법을 깨우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한국에 애플이 없는 세 번째 이유다.

IT 강국이란 H/W, S/W, 서비스 플랫폼을 정연하게 갖춰놓고 각종 컨텐츠를 활발히 유통시켜 건전하고 참신한 발상이 온전히 뜻을 펼 수 있는 나라를 말한다. 전 국민이 스타와 와우를 즐기고 야동을 다운 받는데 10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며 올레를 외치는 것으로는 결코 IT 강국의 꿈을 이룰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언론은 한국을 IT 강국이라 치켜세웠다가 언제부터 그 IT가 붕괴된다고 야단법석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번도 IT 강국 이었던 적이 없다. 아니,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이상의 글을 쓰면서 분노, 회한, 다짐, 우울, 슬픔, 광기, 연민, 조소, 허탈 기타 등등의 감정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문득 바다 한 복판에 망망히 표류하고 있는 것을 느낄때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IT 산업 역군으로서 또 다시 소용없는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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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한국에는 재미를 쫓아 기업을 만든 사람이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 알토스의 가젯 덕후 두 명은 창고에 모여 잡다한 기계를 만드는 것이 취미였다. 필요한 부품이 있으면 HP에 전화를 걸어 공짜로 달라고 졸랐다. 이들은 시외 전화를 공짜로 쓸 수 있는 불법 기계를 만들어 용돈을 벌었는데 스스로 만족할 만한 좀 더 아름다운 제품을 만드길 원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가지고 있던 가장 소중한 물건들을 팔아1300달러에 창업을 했고 30년 뒤 iPhone을 만들었다.

한편 UCLA의 컴퓨터공학과 졸업생 세 명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면 좋을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모두 컴퓨터 게임 매니아였는데 고민 끝에 
'게임을 좋아하는 우리가 게임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1991년, 그들은 가지고 있던 돈 10,000 달러씩을 모아 결국 실리콘&시냅스라는 컴퓨터 게임 제작 회사를 창업했다. 그리고 3년 뒤 회사 이름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로'로 바꿨다.

블리자드와 애플의 창업주들은 모두 그 분야의 심각한 매니아였다. 그들은 제품에 대한 꿈과 철학이 확실했고 지식이 풍부했다. 또 좋고 나쁜 제품을 가르는 기준이 엄격해 제품의 완성도를 최우선으로 여겼다. 창업주들은 결코 제품의 완성도 앞에서 주판알을 튕기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들은 그들을 존경했고 마음놓고 목표를 추구할 수 있었으며 그 누구도 자신의 꿈을 돈으로 바꾸려 하지 않았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전부 부잣집 도련님들이 만든 금지옥엽이다. 수 백년간 물려받은 전답을 팔아 사업을 시작했으니 이윤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들이 이미 검증된 일, 크기가 큰 일만 쫓는 이유도 이제나 저제나 혹시 가산을 까먹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부들부들 손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 지기 때문이다. 

전문 경영인이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전자과를 나왔든 경영학과를 나왔든 그들은 한국 교육에 적응을 잘한 규격품에 불과하다. 공부를 매우 잘했고 수학능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진로를 선택해야 할 때가 오자 각각 컷트라인이 가장 높은 전자과와 경영학과를 선택했을 뿐이다. 최고 경영인이 됐을 때는 이미 자신이 무엇을 사랑했는지 조차 잊었고 임기 또한 2년이 넘지 않기 때문에 당장의 성과를 쫓아 기업을 운영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의 뿌리를 튼튼히 하고 긴 목표를 세우는 사람이 씨가 마른다. 한국의 인재들이 이런 기업에 몰리지만 곧 자신이 원하는 일보다 시키는 일을 해야하고, 먼 미래를 대비하기 보단 목전에 닥친 일을 해야만하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기업에 대한 존경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스스로도 사랑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 12시간을 투자하니 애정 결핍으로 병든 제품들이 창고를 가득 채운다.


이것이 한국에 애플이 없는 두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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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한국 기업을 깐다. 애플을 본 뒤로.
지금까지는 잘해 왔지만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니 어쩌니 이러쿵 저러쿵 쑥덕쑥덕. 누구나 다 알법한 이야기를 전자렌지에 3분간 넣고 돌린 뒤 꺼내오는 즉석 기사.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언론 기사의 얄팍함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정크 푸드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정보로써 받아들여지고 입 맛이 바뀐 대중들이 스스로 정크 푸드를 원하게 되는 악순환. 좀비가 되는 의식. 정크푸드가 일상이 된 사회는 현상의 이면을 파고드는 끈기가 부족하다. 그러니 근본적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매번 똑같은 지적만 되풀이 된다.  

'왜 한국에는 Apple이 없을까?'

나는 그 이유를 다음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 이공계 천시 문화.
한국은 예로부터 '사농공상'을 따져 공과 상을 매우 천박하게 여겼다. 근자에 상업이 일고 이웃나라가 이로써 부국강병을 이루니 역시 세상은 돈이 최고라 '상사공농'이 되었다. 농사야 이제 흔적 조차 사라진 업이니 실상은 '상사공'이요 이 말은 공이야 말로 지고의 천한 일, 관심을 가져서도 손을 대서도 안되는 불가촉지위로 격하됐음을 알리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공계에 뜻을 두고 정진하던 청년들 마저 공돌이를 자칭하며 그 처지를 부끄럽게 여긴다. 이제 이들이 향하는 곳은 Meet, Deet, Leet, Peet로 원래 머리는 좋고 또 무식한 면이 있어 어렵지 않게 성공을 거두니 앞 다투어 공돌이의 인을 벗기고 노트북에 깔아둔 와우와
슷하크래프트를 uninstall 하여 고시촌으로 향한다.

그럼 공돌이로 졸업한 자들은 어떠한가? 남중, 남고, 공대, 군대의 로얄로드 12년을 가까스로 마치고 난 뒤 이제야 비로소 산업 역군이 되어 기술 혁신을 이루고 승천하려는 차에 금융권, 대기업 전산실 따위의 잡일에 마음을 뺏긴다. 엔지니어로 입사해 밤낮 죽도록 고생해봐야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 나보다 코딩도 못하고 창의력도 형편 없던 놈들이 좋고 편한 곳에 취업하여 베짱이처럼 띵까띵까 하니 그 상대적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제 세상은 이공계에 진학하려는 학생 자체가 급격히 줄어들었을뿐만 아니라 중도에 포기하는 자가 수십만이요 이공계로 졸업을 했다 하더라도 동일 직군에 투신하는 자는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이것이 한국에 Apple이 없는 첫 번째 이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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