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사리 물리치지 못하는 까닭에 책의 유혹은 여전히 그리고 즉흥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뽐내는 선전 문구에 이젠 멈추어야 한다던 다짐을 잊게 하기 일쑤이다.

 

불륜 스토리를 통해 인간의 구원 문제를 우회하여 넌지시 도덕성을 촉구하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읽다가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부터 구원의 길을 얻지 못하던 농촌 귀족 레빈때문에, 혹은 기독교에 의해 쾌락주의 누명을 쓰고 고귀한 사상이 자칫 묻혀버릴 뻔 했던 에피쿠로스가 눈에 밟히던 중 마침 출간된 '존 셀라스'의 엑기스 같은 책을 저버리지 못하는 식이다.

 

퀴어가 대중적 이해를 획득함에 따라 새삼스레 부상하는 '미시마 유키오'금색(禁色)은 그의 군국주의자로서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육체와 인간의지의 치열한 투쟁의 공존과 균형을 향한 미학에 대한 호기심을 물리치기 어려워 구입하는가하면, '매들린 밀러'의 소설은 단지 화려한 장정과 '아킬레우스'의 현대적 해석은 어떤 것일까 하며 현혹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노리나 허츠고립의 시대는 저자의 대중을 향해 내뱉는 유창한 설득의 언변에 매료되어 있던 차에 무조건적인 지적 신뢰가 통하였으며,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리아는 상처 받고 이방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울림을 뒤늦게 찾기도 했다. 아마도 공감의 감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내 처지와 상통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인리히 호프만'더벅머리 아이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판 역시 스치듯 언급되던 역사서 모퉁이의 어느 한 문장이 떠올라 다행스럽게도 절판되지 않고 판매되고 있어 구입을 미룰 수 없었던 책이라고 판단했다. 타셴에서 출간하는 책의 그 촘촘한 밀도의 구성에 매료되었던 기억으로 20세기 사진 예술은 사물에 대한 통찰력의 압축으로서의 사진에 대한 매혹이 결합된 구매 욕심이었던 듯싶다.

 

이렇게 2월 한 달 구입한 책을 정리하면서 구입의 무수한 정당화의 변명을 하고, 책 마다 에 내 인상과 느낌을 기록해두는 의미를 기술해 본다. 이젠 그만 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책을 향한 욕심이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해 할 뿐이다. 이 책들은 또 어떤 책을 부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03-05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에서는 많아도 많아도, 해롭지 않은 것이 ˝책욕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탑 보기만 해도, 덩달아 기분이 업됩니다

필리아 2022-03-05 15:38   좋아요 1 | URL
쌓인 책들 중 정리해버릴 책을 선별하는 작업을 몇 개월마다 하면서 탑을 줄여나가는데 다시금 영역을 확장해 나갑니다. 책에도 어떤 의지가 있는 듯 싶어요. 언젠가 제 욕심이 수그러들면 함께 책 영역도 사라지겠지요. 유쾌한 주말 시간 되십시요~~
 


많은 사람들이 어둠을 밝힐 불빛이 없어 세상이 이렇게 어둡다고들 얘기한다.

나는 이러한 시선에 그리 관대하게 동의하기가 어렵다.

정말 불빛이 없어 한국 사회가 어두운 것인가?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도시의 밤 거리도 대낮처럼 밝지 않은가?

철학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은 『반딧불의 잔존』에서

오늘 사람들이 반딧불을 볼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불 정도로 충분히 어두운 곳에 사람들이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불빛이 없어 어두운 것이 아니라 어둠을 내치고 몰아내는 불빛만 있는 세상이어서

그 밝은 불빛 탓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정작 시야에서 사라지게 한 어둠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밝은 대낮 같은 세상에도

어둠이 가시지 않으니 빛 타령을 하며 본질을 외면한 주장들을 넘치도록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였을까? 시인 장혜령은 보고 발견하고 그리고 깨우침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충분한 어둠이 있어야 한다고 산문집 『사랑의 잔상들』 에 쓰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어둠은 커녕 온통 빛의 홍수이고,

잠깐의 단절도 참지 못하는 고독이 부재하는 시간을 잘 사는 삶이라고 까지 떠들다보니

막상 정말 제대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피상적 무사유의 언어들만이

넘실 댈 까닭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극장은 영화라는 이미지를 위해 어둠의 장막을 내리고,

꿈을 꾸기 위해서는 잠의 어둠에 잠겨야 한다.

글의 진정한 함의, 그 이면의 사유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는 고독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

밝은 빛만 내리 쏟아지는 세계는 위장과 가면들, 과시와 무사유가 점령한다.

아무것도 꿈 꾸지 못하고, 적나라한 그 무엇도 내비치지 못한다.

눈 감고 저 깊은 사유의 언어를 끌어 올릴 겨를을 가지지 못한,

이런 시간을 견뎌낸 언어를 지니지 못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 세계를 차지한다.

디지털 혁명의 세계? 광소자가 빛나는 그 환한 가상의 공간은 생명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아무런 사유의 자리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점점 어둠을 상실해가는 오늘, 우리는 의지처를 찾지 못해 서성거리는 마음에게

어둠과 고독이라는 존재의 지혜를 선물해야 한다.

빛이 찬연한 곳에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보이지 않으며,

그 어떤 고통의 사건도 드러나지 않는다.

어둠의 공간으로 가야지만 이들의 모습과 상황이 보인다.

빛 속에서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은폐되어 있어 세계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된다.

우린 어둠의 권력을 포기하거나 잃어버리고 있다.

어둠을 되찾아야 꿈도, 소망도, 사랑도, 사람들도 발견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불빛이 아니라 어둠인 이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한히 다른 타자의 세계를 알아가려 할 때 아마 우리는 조금은 더 살아갈 이유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집을 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담한 정의라 해도 된다고 선언하고 싶다.  


작가는 이 책이  "대중에서 시민으로관중에서 독자로 이끄"는 그런 훌륭한 일을 해낼 만한 대단한 책이 아니라고 겸손해 하지만 그 일을 해낸 작품집이 맞다!

"놀랍지만 늘 벌어지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자주 망각했고 또다시 처음처럼 경악했다. 그렇기에 이것은 새로워도 낡은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들의 이야기도, 전부 똑같거나 혹은 전부 달랐다." - 23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이 책은  인지부조화와 자기합리화에 능숙한 우리 인간 존재의 실체를 반추하며 오늘날 소통의 흐름을 차단하여 인간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교착상태에 빠뜨리는 사고의 양극화를그 필연적 독단성을 반성케 하고진실 파악 불능의 능력을 회복시키려 하는 노력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흥미로운 논제들로 빼곡하여 읽는 즐거움도 만끽하게 하지만 지성과 어리석음의 대결이라는 역사적 양상을 지켜보는 지적 성취도 만만치 않은 지성사적 만찬이라 해도 지나친 수사가 아닐 것이다.

"멍청이들은 (...) 지혜를 가졌다고 믿지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약점이다.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에 지식은 그저 일시적이고 임시적이며 이로움을 주는 망각의 영역으로 물러나야 한다." -11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장 써! CREATE NOW! - 디즈니, 드림웍스, BBC가 선택한 크리에이터 맥라우드 형제의 창작 기법 바이블
맥라우드 형제 지음, 이영래 옮김 / 북드림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키는대로 따라하면 창작열 불타오르는 창작비법 대방출의 이야기 만들기 바이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