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미술의 거장들
스테파노 G. 카수 외 지음, 안혜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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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판이 정말 훌륭하고 좋은데 내용이 읽기가 어렵다.

편집도 약간 이상하게 되어 있어 그림과 설명하는 캡션의 위치가 잘 안 맞는다.

이탈리아 번역서인지 주로 이탈리아 소재 회화들이 많이 소개됐다.

자주 접하지 않았던 그림들이 많아 신선한 점은 좋은데, 대신 생소한 용어나 장소들이 자주 나와 검색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번역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종종 보인다.

확실히 우리말로 된 책들이 문장 읽기가 편하다.

<성 프란체스코의 환시>를 <성 프란키스쿠스의 망아>이런 식으로 번역해서 직관적으로 와 닿지가 않았다.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시대별로 나눠서 화가와 대표작을 소개하는 방식은 좋았다.

서양화의 매력은 역시 화려한 색감과 정교한 묘사 같다.

확대된 상태로 자세히 그림을 본 일이 없고, 외국 미술관에 가서 진품을 봐도 슬쩍 보고 지나쳤던지라 선명한 세부 장면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17세기까지는 좀 지루했는데 18세기 특히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부터는 너무나 감동적인 내용들이 많았다.

그 자신들이 세상의 미학을 바꾼 위대한 창조자들이면서도 진정한 예술을 위해 끝없이 경주하고 혹시라도 그것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전달이 됐다.

확실히 현대 화가들은 중세의 장인들과는 다른 자의식과 사명감을 가진 예술가들인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21p

북유럽 출신의 화가들은 길드에 소속되어 작품에 대한 보수도 높고 사회적 지위 또한 높았다. 그런 한편 이탈리아 화가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작품 활동에 대한 규제 또한 엄격했다. 뒤러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문화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이자 구도의 광학법, 그리고 기하학과 원근법의 거장으로 알려지길 원했다. 그는 작품에 그려진 인물의 수나 재직기간, 혹은 값비싼 금박이나 푸른 안료의 사용과 같은 작품 외적인 요소로 자신의 수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만으로 작품의 값을 매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173p

당시 도시인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농민에 대한 묘사는 희화화되거나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브뢰헬 같은 화가들은 그들을 호의적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표현했다. 에라스무스 역시 농민들은 없어서는 안 되며, 종교 개혁자들 역시 농사는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며, 도시의 타락과 대조적으로 농민들의 단순한 생활방식이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198p

"이 예의 바르지만 완고한 화가는 사전에 정한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작품을 파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때문에 수집가들은 그의 대리인이 루벤스가 결정한 가격을 통보받게 되면 그에 따라 그림을 구매하곤 했다. 루벤스는 유창한 화술과 방대한 식견, 예의 바른 태도, 그리고 '광란의 붓놀림'이라고도 불릴 정도의 빠른 솜씨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으로 국제적인 명성과 부를 축적했다.

236p

17세기 스페인에서는 부자와 빈자는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다. 가난한 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부자는 그들을 도움으로써 죄를 구원받는다고 여겼다. 무리요의 그림에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배고픔이나 슬픔올 고통받는 모습이 아니라, 남루하지만 잘 먹고 즐기는 모습이다.

 그가 풍속화풍으로 그린 성모와 아기 예수는 섬세한 묘사로 그가 남긴 종교화의 백미로 평가받으며 18~19세기에 수많은 수집가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정작 무리요가 당대에 명성을 쌓게 된 것은 성모의 무염시태 주제의 작품들 덕분이다. 그는 극적인 구도로 당대의 스페인 교리와 신앙을 담았다.

272p

그를 숭배하던 드니 디드로는 1765년 살롱전에서 샤르댕의 작품들을 보고, 그의 작품들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모든 것이 뒤범벅되어 혼란스러운가 하면 단조롭고, 사라져서 없어지는가 하면 그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마력을 지녔다고 칭송했다. 샤르댕의 정물화가 지닌 사실성은 대상을 세세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묘사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단순화하고 빛과 색채의 관계를 포착하는 그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다. 그의 작품을 세잔이나 반 고흐가 높이 평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는 작품을 '완성'되었다고 생각되지만,'마무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다. 너무나 정확한 기법으로 그려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빼어난 명작들은 색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채색되어 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았을 때 최고의 효과를 낸다. 렘브란트는 그 결과에 고민하면서도 이런 방법을 고수했다(중산층은 샤르댕보다 반 데르 헬스트를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샤르댕은 렘브란트 못지않게 훌륭한 화가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반 고흐는 샤르댕을 칭송했다.

(역시 같은 화가라 대중들과는 보는 수준이 다른 것 같다. '완성' 과 깔끔한 '마무리' 가 어떻게 다른지, 위대한 예술가와 평범한 화가는 어떻게 다른지 고흐가 명확히 설명해 준다)

 당시의 대중들은 물론 화가들까지도 정물화는 역사화에 비해 열등한 장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샤르댕을 존경했던 디드로조차 "나는 샤르댕이 즐겨 그리는 무생물은 형태도 색채도 위치도 변하지 않아서 그리기 가장 쉽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도덕적, 철학적, 종교적인 중요성이 결여되어서 작품의 주제로 택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겨졌던 무생물을 주제로 택한 것이, 샤르댕이 오늘날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된 셈이다. 지드는 샤르댕을 사랑하는 이유는 작품 외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그의 작품만을 보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으며, 그것은 샤르댕이 그리기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또한 보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려놓아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 것이다"라고 했다.

 이 작품에 대해 앙드로 말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플랑드르의 정물화에 의존해 그들의 장식적인 취향의 영향을 받은 이류들과는 거리가 먼 샤르댕의 작품은 코로와 같이 형태를 단순화한 우아한 작품을 선사하고 있다." 

 사실 샤르댕은 사물의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색채와 형태를 표현해 대상을 돋보이게 했다. 이런 현대적인 작품성은 세잔과 입체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278p

호가스는 다른 판화 연작들도 직접 인쇄하고 신문에 광고를 실어 예약을 받고 팔았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여타지역에 비해 일찍 형성된 영국 부르주아 사회의 단면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영국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은 중산층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이미 풍자만화와 시사만화 등 풍자적인 장면들이 매체에 실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298p

다비드는 신고전주의의 창시자로 평가된다. 특히 <호라티우스 형제들의 맹세> 같은 작품은 당대의 예술적 취향을 바꿔놓을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푸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스 고전주의 미술에서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의 전통을 재현하고자 시도했다. 다비드는 장식성을 강조하는 로코코 양식과 달리, 명확한 동작과 간결하고 뚜렷한 형태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조형언어를 창조했다. 또한 그로, 제라르, 앵그르 등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다비드가 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은 단지 성공한 제자들을 많이 배출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현대적 시각에서 볼 때 최초의 지적인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당대의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적극 참여해 예술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예술가다.

329p

쿠르베는 단독으로 전시회를 마련해 40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살롱의 심사위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비범한 걸작이지만 교양적이지 않다고 평했던 들라크루아는 이 작품을 둘러보는 한 시간 동안 전시장에는 자기 혼자뿐이었다고 말했다.

330p

고대의 누드는 아카데믹한 주제로 비물질적, 신적인데 반해 쿠르베의 이 작품에서 여성의 누드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묘사되어 관능적이다. 사실 누드는 주로 신화 주제의 그림에 등장해왔으며 비평가들과 대중이 선호하는 주제이기도 했다. 

334p

마네 자신도 친구에게 "사람들은 내게 상처를 입힐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 작품이 당대의 반감을 사고 대중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동시에 이 작품으로 인해 이름을 알리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했던 듯하다. 사실 자연을 배경으로 있는 세 사람과 여성의 누드가 큰 물의를 일으킬 만한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당시에 유행하던 구도를 따르지 않은 현대적인 배치와 남자들은 상류층의 정장을 입고 있는 반면, 옆에 앉은 여성은 누드라는 점이 당시로서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비난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표현 기법이었다. 들라크루아는 "불편해 보일 수도 있는 색조다. 게다가 인물들이 지나치게 두드러져 보이는 미숙한 구성이어서, 마치 익지 않은 떫은맛의 과일을 대하는 느낌이다"라고 평했다. 마네는 자신이 공부했던 고야나 벨라스케스, 그리고 일본 판화, 특히 우타마로의 판화에 영향을 받아 매우 평면적이고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는 색채들을 사용했다. 동시에 구도의 균형과 부드럽고 조화로운 색채, 자연스러운 명암법에 대한 연구도 멈추지 않았다. 에밀 졸라는 "분명하고 분별력 있는 시각을 가진 이 화가의 그림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우아함과 거친 현실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풀밭 위의 식사>를 계기로 마네는 젊고 진보적인 화가들의 대부가 되었으나 보수적인 아카데미로부터는 거부당했다. 그 자신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이끄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작품이 인상주의가 꽃피는 하나의 씨앗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340p

양식적인 면에서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은 다른 인상주의자들의 작품들과 가장 가까운 작품 중 하나다. 특히 거울 속에 반사되는 세상에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모네를 연상시키는 붓터치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달리 마네는 검은색을 즐겨 사용했으며, 야외에서 실경을 그리던 그들과는 달리 빛의 효과와 반사를 자신의 화실에서 연구하고 작업했다.

345p

모네는 이 작품에서도 빛과 나무 그림자, 그리고 여인들의 자연스러운 포즈를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전형적인 풍경 속 초상화나 여인들의 만남의 이유 혹은 그들의 심리 상태나 계층을 드러내는 데는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자세나 표정에서는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없다. 그의 이런 선택은 전통적인 회화에서 중요시하는 가치와는 매우 다른 것이어서, 이 작품은 1867년 살롱전의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림은 문학이라는 그림 외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색과 형태, 구도 등 그림 자체의 내적인 것에 집중하게 됐다. 인상주의가 왜 현대회화의 시작인지 알 것 같다)

304p

"터너 이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라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사실 터너가 그린 풍경화에선 대기 자체보다 눈에 띄는 요소가 거의 없다.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존 러스킨은 이렇게 언급했다. "그는 자연에서 섬세함과 장엄함, 충만함과 공간감, 그리고 신비함을 보았다.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색 대신, 그는 자신이 실제 같다고 느끼는 색을 사용했다. 그가 만들어낸 색채는 가장 빛나고 아름다우며 독특한 것이었다. 그는 무지개를 묘사하기 위해 계곡으로 갔고, 불꽃을 그리기 위해 화재현장으로 갔으며, 하늘의 푸른색과 청명한 금빛을 표현하기 위해 바다를 찾았다." 

348p

증기가 만들어내는 형태와 빛의 효과에 매료되었던 모네는 이 같은 대기의 변화를 묘사하기 위해 넓고 거친 붓터치를 사용해, 생 라자르 역사와 배경에 있는 건물들이 증기에 녹아드는 듯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에 대한 모네의 열정은 그가 르누아르에게 쓴 편지에서 잘 나타난다. 훗날, 아들 장은 "기관차가 떠나는 순간, 증기로 앞이 흐려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은 경이로운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라고 쓴 모네의 편지를 회상했다. 모네는 안개 속에 서 있는 도시 사람들의 삶을 담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증기와 빛의 효과를 담는 데 충실했다.

(모네가 느꼈던 경이로움과 뿌연 증기로 주변이 아득해지는 그 효과가 너무나 잘 느껴지는 그림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화폭에 재현하고자 했던 모네의 열정이 절절히 느껴진다)

"이 곳에서의 시간이 자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대성당 연작을 끝내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반복하는 것뿐입니다. 보면 볼수록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이 연작을 완성하겠다는 것은 거만한 생각에 불과할 뿐이야라고 되뇌곤 합니다. 완성한다는 것은 진정 완벽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으며, 만약 진정으로 완벽하길 원하며 끊임없이 파고든다면 지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당시 이 작품들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카미유 피사로는 그의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이 작품은 강한 의지로 완성해낸 신중한 작품으로 나는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가진 그림을 어느 곳에서도 만나지 못했다"라고 적었다.

355p

이처럼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리고자 한 그의 노력으로, 이 작품은 그림이라기보다 스냅사진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는 드가가 수없이 드로잉을 반복하며 구도를 바꾸고, 대상을 묘사하는 방법 또한 개인의 심리적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연구한 결과다. 그러나 앵그르와는 달리 인물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동작을 통해 심리를 나타내고자 한 점에서 사실주의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362p

"나(르누아르)는 주제를 내가 원하는 대로 배치한다. 그리고 어린 아이처럼 그 위에 붉은색이 낭랑한 종소리와 같이 깊고 풍부한 색채이길 바란다.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까지 더 많은 붉은색이나 다른 색들을 사용한다. 단지 그것 뿐이다. 나는 어떠한 특별한 법칙이나 나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요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설명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떤 작품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예술에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형용할 수 없으며, 모방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관람자를 사로잡아 현실로부터 다른 세계로 이끈다. 이 말은 예술가가 자신의 열정을 작품에 담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예술가는 관람자를 자신의 열정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론을 듣고 있노라면 비평가들의 현학적인 말과는 다르게, 예술의 핵심을 찌르는 감동이 느껴진다. 직접 그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진리 같은 것 말이다)

368p

이 시기 세잔의 작품들은 모든 형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벤투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단순화되어 있고 사물의 본질에 다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세잔 자신도 1904년에 "구와 원통, 그리고 원추로 자연의 모든 모습을 묘사할 수 있다"라고 밝힌 바 있듯이, 그는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영속적이고 시간의 변화에 관계없는 자연의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면을 찾고자 했다. 다리와 물, 나무와 대기의 모습과 같은 작품 속의 사물들은 빛과 색채를 섬세하게 분석해 수많은 붓질로 묘사되었고, 그 붓질 하나하나는 모자이크 조작과 같이 독립된 각각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903년 그는 파리에 있는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에게 쓴 편지에서 

 "내 앞에 펼쳐진 천국을 바라보며 매우 끈기 있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나의 운명이 천국으로 향하는 유대인의 지도자와 같을까요? 내가 과연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약간의 진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왜 이렇게 더디고, 또 어려운 것입니까? 예술은 영원히 머무르고 싶을 정도로 순수한 곳이 될 수 있을까요?" 

(완벽하고 순수한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화가의 간절한 마음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위대한 화가들도 끈질기게 보다 완벽한 예술의 세계로 가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했던 모양이다) 

라고 썼다. 2년 후 에밀 베르나르에게 쓴 편지에서는 

 "나는 이제 늙었습니다. 거의 칠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빛을 통해 보이는 색채로부터 받는 인상은 추상적이어서, 그 모든 것을 묘사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결과 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나 작품은 미완성입니다. 한편, 나의 계획은 이와는 정반대에 가 있기도 합니다."

 라고 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원근법을 무시해 거리감이 생략되어 들판의 초록색과 구름을 표현한 푸른색이 같은 명암으로 처리되어 있다. 세잔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하던 대기의 표현은 산을 채색한 것과 같이 풍부한 색채와 중량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렇게 자연을 단순화된 기본적인 형태로 집약하여 구도를 새로 구축한 것이 세잔의 후기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입체주의와 야수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374p

"나는 위대한 예술가이며, 나 자신이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나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따르느라 수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고갱은 1892년 이렇게 썼다. 사실 이 무렵은 자신의 작품이 생소할 만큼 창의적임을 자각하고, 그로 인한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며, 가족, 일, 친구,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 그리고 파리에서의 생활을 등진 채 코펜하겐의 상선을 타고 있을 당시, 혹은 파나마 운하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며 쓴 것이다.

 1886년 7월, 지속적인 가난에 시달리던 그는 퐁타방에 있는 부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이만 헤어져 각자 살아가는 게 어떻겠소. 훗날 사람들이 나의 예술을 열린 눈으로 바라봐주는 날, 나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이 진흙탕 속에서 일으켜줄 거요."

(사람들의 몰이해와 지독한 가난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천재성과 자기 예술의 혁신성을 인지하고 있던 불운한 천재의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문구다)

380p

"사람들은 내가 너무 그림을 빨리 그린다고 한다. 이것은 감정이나 자연에 대한 진실된 느낌에 관한 것이 아니지. 이 느낌은 때로는 너무 강해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그림을 그리고, 때로는 계속되는 붓질이 마치 말이나 글과 같이 계속 쏟아지지. 그리고 이내 이것이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 그러고는 다시 힘든 나날을 보내곤 한단다. 영감조차 텅 비어버린..." 반 고흐의 삶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정신적 불안, 빚, 파산, 정신병원에서의 생활, 회복, 그리고 또 다른 좌절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예술에 대해 지치지 않은 열정과 사명감을 지녔던 화가.

 반 고흐는 이 작품에서 신체적인 특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 보다 색채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는 신체적인 특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당시 개발되어 실용화되고 있던 사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던 반 고흐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도 자신 이외의 다른 많은 예술가들도 정신질환에 시달렸음을 언급하며 이것이 그의 창작 활동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도 "저는 제가 여전히 쥔데르트의 농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밭을 경작하듯 저는 캔버스를 채워나가는 것이지요"라고 전하기도 했다.


 

<오류>

24p

시찰리아의 왕이던 샤를 2세가 1296년 숨을 거두고, 그의 아들인 나폴리의 왕, 루이는 그의 형제인 로베르에게 왕위를 수여한다.

->시칠리아의 왕은 아버지인 카를로 1세이고 카를로 2세는 나폴리만 지배했다. 카를로 2세는 1296년이 아니라 1309년에 사망했다. 뒤를 이은 사람은 3남인 로베르이고, 둘째인 툴루즈의 성 루이는 나폴리의 왕이 아니라 주교이다.

166p

헨리 8세는 자신이 영국 교회의 수장임을 공표했다. 영국 국교회와 가톨릭 사이에 긴장감이 돌고 있었고, 같은 시기 프랑스의 가톨릭은 카를 10세와 대립하고 있었다.

-> 헨리 8세 당시 국왕은 프랑수아 1세이고, 교황은 레오 10세였다. 그 앞의 프랑스 왕은 샤를 8세였다. 카를 10세가 누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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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강의 - 순수 미술의 탄생과 죽음
조주연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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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해하기 좀 어려웠다.

읽기 전에 슬쩍 훑어보니 현대미술작품 도판들이 컬러로 실려 있어 가벼운 이론서인 줄 알았는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미학 강의라 힘들게 읽었다.

그럼에도 꽤 재밌고 왜 현대 미술이 이런 식으로 발전했는지, 더 정확히는 도대체 저런 게 어떻게 미술이라고 할 수 있냐는 의문을 풀어주는 책이다.

이런 미학적인 고뇌와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미술가들은 공예가와 달리 일상의 필요로부터 독립하여 철학적인 세계관을 표현하는 예술가가 된 것 같다.

현대미술은 환영과 입체로부터 벗어나려는 오랜 투쟁의 결과인 듯하다.

재현 거부와 평면성, 이것이 바로 모더니즘의 핵심인 것 같다.

순수미술이라고 하면 광고나 환경미화 같은 필요에서 벗어나 감상을 목적으로 그려진 회화를 일컫는 말인 줄 알았는데, 모든 재현으로부터 벗어나 3차원적인 공간감을 느끼지 못하게 순수하게 색,면과 같은 조형요소만으로 표현하는 추상미술을 뜻한다.

이런 개념으로 보면 르네상스 화가들은 일종의 기술자들이고, 모더니즘 화가들은 오히려 철학자라는 생각이 든다.

절대적인 유미주의자 같은 모더니즘에 반발해 생긴 것이 곧 아방가르드인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팝아트다.

지고지순한 절대적인 탐미주의에서 벗어나 싸구려 광고 등을 미술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것에 대한 반발이 포트스모더니즘인데 개념미술, 대지미술, 과정미술 등 온갖 이상한 현대미술들이 다 이 범주에 속한다.

설명을 듣고 보니 현대미술은 철학의 미학적 표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부감 강했던 현대미술에 대해 약간의 이해가 생겼고, 여전히 대중은 재현미술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우리를 선도해 가는 이들이 바로 예술가가 아닌가 싶다.

어려운 독서였지만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번역서가 아니라 훨씬 가독성이 높은 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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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X 여행 - 공간 큐레이터가 안내하는 동시대 뮤지엄
최미옥 지음 / 아트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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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나 표지 디자인이 너무 평이해 아쉽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작가가 직접 찍은 것 같은데, 선명하고 좋은 사진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미술관 전체를 보여주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는 것 같다.

전문 사진작가와 협업하는 책에 비해 사진 수준이 아쉽다.

서구의 여러 미술관 소개는 너무 흔해 이제는 식상하지만 이 책은 비교적 현대적인 미술관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단순히 현대미술관에 국한하지 않고 말 그대로 뮤지엄, 즉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여러 기관들을 소개해 신선했다.

저자가 공간 디자이너다 보니 건물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 소장품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다는 점이 아쉽다. 

맨 마지막에 사북탄광문화관광촌이 날 것 그대로 남지 않고 대기업에 의해 변형될까 봐 우려하는 저자의 염려는, 에센 지역의 루르 공업단지가 멋진 뮤지엄으로 변신했다고 찬탄하는 것과 대조되어 의아했다.

지나간 것이 옛 것 그대로 남아있다면 더이상 현대 세대에 의미를 줄 수 없는 것이고, 지금 우리 세대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변모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가보고 싶은 뮤지엄은, 성북동에 있다는 한국가구박물관이다.

한옥 20채를 모아놓고 그 안에 목가구를 전시한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을 때 조선 시대 사랑방을 꾸며놓은 전시실에서 사방탁자나 반닫이 같은 목가구가 얼마나 정겹고 우아한지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파리에 있는 기메 미술관과 케 브랑리, 아랍문화원 등도 꼭 가 보고 싶다.

파리는 정말 세계 최고의 문화 중심지임이 분명하다.

이번에 파리 여행을 하면서 미술관이 얼마나 많은지 광대한 문화적 공간에 감탄했다.

이 책에 소개된 로댕 미술관의 정원도 너무 아름다워 공항에 가야 하는데 계속 못 가고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인상깊은 구절>

286p

뮤지엄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은 진품, 즉 오리지널리티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같이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맘만 먹으면 복제된 이미지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원본의 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뮤지엄이라는 공간이 진귀한 물건을 보여주는 데 매력이 있었다면, 현대에는 '진짜'를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원화가 갖는 매력은, 아무리 영상 문화가 발달해도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아우라 같다. 반 고흐의 작품은 안 오고 온갖 영상물로 대체한 전시회를 갔을 때 느꼈던 허망함이란! 예술 문화가 발달할수록 원작을 소장하고 있는 서구 유명 미술관의 힘은 강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20년 전 배낭여행 갈 때만 해도 모나리자를 보는데 아무 제약이 없었는데, 이번에 루브르 가서는 줄서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오류>

386p

그 유명한 체 게바라는 원래 쿠바 사람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상류층 가정에서 자랐으며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의사였다.

-> 체 게바라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고 박사 학위가 아니라 학사 학위로 고쳐야 할 것 같다.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의 위대함을 찬양하면서 왜 그 후의 독재와 경제 낙후는 언급하지 않는 걸까? 관심이 없는 것일까? 항상 의문이었던 점이, 미국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은 독재자를 몰아 낸 좌파 혁명가들은 왜 다시 독재자가 되는 것일까?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은 전부 1당 독재, 1인 독재를 하고 심지어 북한은 3대 세습 왕조가 됐다. 좌파와 독재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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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마 마스터피스 - 뉴욕 현대미술관의 회화와 조소
앤 템킨 엮음, 강나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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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구입해 놓고 미뤄뒀던 책이다.

5만원이라는 책값을 충분히 하는, 정말 좋은 화집이다.

"MoMA 하이라이트"에는 작품 해설이 같이 있는데, 이 책은 말 그대로 화집이라 작가 이름과 제목만 있다.

해설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현대 미술의 특성상 작품을 보고 직관적으로 느끼는 쪽이 더 매력적인 것 같기도 하다.

현대 미술은 모방을 넘어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미학적 개념을 풀어내는 것 같다.

공감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있지만 자주 보다 보니 조금씩 낯선 미학에 익숙해지는 기분이다.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지만,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사회와 큐레이터들이 끊임없이 작품을 후원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서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인상깊게 읽었다.

현재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더라도 미래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작품을 구매해야 하는 큐레이터들의 미학적 고민이 느껴진다.

앞부분의 화가들은 19세기와 20세기 초 모던 아트라 그래도 좀 감상할 만 했는데 뒷쪽의 동시대 미술은 여전히 난해하다.

그나마 들어본 적이 있는 작가들만 관심있게 봤고 처음 접하는 낯선 작가들의 작품은 솔직히 미학적 감동이 없어 어려웠다.

차이 궈 치앙의 설치미술 정도나 마음에 와 닿을까.

현대미술은 대중보다 훨씬 빨리 앞서 가는 엘리트적 영역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자주 접해서 익숙해지는 수밖에.

뉴욕 현대미술관이라 그런지 아니면 현대미술을 미국이 주도해 가서 그런지 미국 작가들이 많고 중남미 작가들도 꽤 소개되어 신선했다.

의외로 흑인 작가들이 많아 신기했다.

자본주의는 이 모든 기괴하고 난해한 작품들을 다 예술의 영역으로 품어 안을 수 있어 더욱 발전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 작품집이 많이 번역되면 좋겠다.

표지는 정말 아름답다!



<인상깊은 구절>

9p

1929년 설립 당시 설립자가 품었던 신념처럼, 오늘날의 미술은 그 어떤 지난날의 미술과 비교하더라도 그 훌륭함을 겨룰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과 그 이전 시대 미술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시각 언어의 다양성일 것이다. 현대미술가들은 대체로 자신만의 고유한 양식을 만들어내려는 목표를 품는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시하는 일이나 전통을 따르는 일보다 예술가 고유의 창의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개성은 혁신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이 책에 담긴 작품들 속에 드러나는 예술적 방식과 어휘의 다양성은 일반화할 수 없다. 앞선 세대의 예술가들이 이룬 것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예술가들 공동의 맹세를 달성하고도 한참 더 나아갈 정도로 말이다.

11p

대상을 있는 그대로 닮게 묘사하는 것은 대체로 중요하지 않고 구상적인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확신이 창작의 바탕이라는 현대미술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관객들도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구도 - 흰색에 흰색> 같은 난해한 순수추상 앞에선 혼돈에 빠졌다. 미술 작품이라면 의례히 미술적 기교를 증명해 보이리라는 사람들의 기대는 번번히 깨어졌다.

 때로 알프레드 H.바 2세의 앞서가는 안목은 모마 이사단 다수의 반대에 부딪히는 일도 있었다. 그런 경우 그는 우회적인 경로를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모마 컬렉션에 포함시켰다.

13p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특정 시기의 미술에 관해 공통적인 의견이 형성되는 것은 창작 후 20~30년이 지나서인 듯하다. 1990년대에는 모마가 보유한 1960년대의 미국 팝 아트와 미니멀리즘 작품들에 관해 비판적인 시각이 드리워졌는데, 그것은 세계적 경향과 궤를 같이하는 일이었다.

16p

작품 선택은 대체로 작가의 커리어에서 자신만의 미술적 어휘가 온전한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 중대한 시기의 것을 위주로 하였다. 그러나 독창성이라는 현대미술의 만트라를 가슴 속 깊이 품은 작가들은 생애에서 한 번 이상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혁신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창작에 접근하곤 했다. 그러므로 특히 현대미술에서는 한 작품을 통해 어느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요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작품의 배치가 완결되지 않고 언제나 진행 중인 이유는 매년 약 50점 이상의 작품이 모마에 새로 들어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관점으로 인해 수십 년 전에 창작된 작품들에 대한 해석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가장 근래에 창작된 작품들은 이 책 앞쪽에 담긴, 시간을 통해 가치를 증명받은 작품들처럼 상징적인 위치를 얻지 못했다. (어쩌면 영원히 그럴 수도 있다)

 모마 컬렉션을 연대순으로 기록해온 사람은 미술사의 미래는 우리가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오늘날 고전이라고 불리는, 또는 당연히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작품들도 처음 모마 컬렉션에 포함시킬 당시에는 아주 대범한 선택이거나, 확신할 수 없는 선택인 경우가 많았다. ... 최근에 취득한 이 작품은 아직은 20년, 30년 후에 중대한 위치를 차지할 작품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는 눈이 변하면서 언젠가 이 작품의 아름다움과 번뜩이는 지성은 조명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종종 그러하듯이, 우리는 작품이 언젠가 지니게 될 역사적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알지 못하면서도 그 작품을 선택한 선견지명이 있는 이들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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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명작 100선 - 유럽 5개국 10대 미술관에 소장된
김상근 지음 /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기대했던 제목보다는 임펙트가 약해 아쉽다.

서점에서 보고 읽고 싶은 목록에 올려놨던 책이다.

표지 디자인도 좋고 무엇보다 도판이 화려하다.

연세대학교 신학 교수라는 저자의 약력도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 좋았는데 역시 전공자가 아닌 애호가의 한계가 있는 책이다.

가벼운 감상문 수준의 유럽 미술관 관람기가 범람하는지라 이 책 정도만 돼도 훌륭하긴 한데 그림 자체에 대한 설명보다는 관련 지식들을 적당히 버무린 수준이라 아쉽다.

유럽 5개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오스트리아의 유명 미술관들의 작품들을 선정해 르네상스라는 시대 배경과 함께 기술하고 있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벨기에 등 북유럽 르네상스가 빠져 아쉽다.

뜬금없이 보이는 삼성이나 미국에 대한 적대감은 공감이 어려웠다.

저자는 메디치 가문을 조건없는 예술 후원자로 설명하는데 얼마 전에 읽은 <상인과 미술>, <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 등에 따르면 위대한 로렌초 역시 오늘날의 삼성 일가와 다름없이 부의 과시, 재산 형성 등을 목적으로 예술 작품들을 사들였다.

메디치 가에 빗대어 삼성을 비난하는 것은 피상적인 평가로 보인다.

합스부르크 왕가에 미남 미녀가 많다는 부분은 좀 의아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주걱턱으로 대표되는 기묘한 얼굴이 특징인데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외국에서 번역된 미술관 작품 소개책들은 번역투의 어색한 문장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정도 수준은 유지할 수 있는 우리나라 책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인상깊은 구절>

11p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초대교회의 공의회는 성모에게 "하나님의 어머니"란 호칭을 부여하였다. 예수가 하나님이므로, 예술을 낳은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마리아를 신격화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다.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다가 생긴 확장논리였다. 

348p

사실 <쾌락의 동산>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것은 남녀의 무분별한 성적 접촉과 탐욕의 추구였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나는 보스를 좀 더 보수적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가 살았던 16세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과격한 표현으로 성적 타락을 경고해야만 하는 막가는 사회는 아니었다. 중세적인 절제가 남아있던 시대였으며 여전히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맹위를 떨치는 때였다. 보스의 고향인 네덜란드에서는 전체 인구의 단 1%만이 라틴어를 이해하는 성직자들이었으며 또 다른 1%만이 귀족으로 생활했다. 나머지 98%는 모두 중세적 신앙을 간직하거나 종교개혁자들의 새로운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였다. 그래서 나는 보스의 <쾌락의 동산>을 어떤 과격한 신조를 내세우기 위한 선전 포스터가 아니라 성서의 내용, 특별히 <잠언>에서 언급되고 있는 도덕적 삶에 대한 교훈으로 이해하고 싶다.

350p

정면으로 관람객을 응시하는 이 유명한 초상화를 신성모독의 징표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당시에 북유럽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 Christi)" 사는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뒤러는 자신을 그리스도처럼 그림으로써 자신의 경건한 신앙심을 표현한 것이다.


<오류>

13p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에게 시집 온 밀라노의 공주는 별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줄줄이 딸만 여덟을 낳았기 때문에

-> 몬테펠트로의 부인인 바티스타 스포르차는 딸 여섯을 낳고 죽기 직전 아들 구이도발도를 낳았다.

17p

코시모의 아들이었던 조반니 데 메디치 (1421~1463) 혹은 피에로 데 메디치 (1449~1469)로 추정된다.

-> 코시모 데 메디치의 큰 아들 피에로는 1416년 생이다.

71p

교황 레오 10세의 조카였으며 나중에 자신도 역시 교황 클레멘스 7세로 등극하게 되는 줄리오 데 메디치 추기경은~

-> 클레멘스 7세는 레오 10세의 조카가 아니라 사촌이다.

241p

루돌프 2세는 삼촌이자 동시에 형제가 되는 펠리페 2세가 통치하던 에스파냐에서 성장했다.

-> 펠리페 2세는 루돌프 2세의 외삼촌이고, 루돌프 2세의 누나인 안나가 펠리페 2세와 결혼했으니, 형제가 아니라 매형이다.

306p

147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3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2세가 결혼함으로써~

-> 페르난도 3세가 아니라 페르난도 2세이다.

307p

스페인을 상속받고 나중에 포르투갈까지 통치하게 되는 펠리페 2세는 아버지와 이모의 예술적 취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 아버지 카를 5세의 여동생인 헝가리의 마리아를 가리키므로 이모가 아니라 고모이다.

332p

널리 알려져 있는 귀도 레니의 또 다른 명작은 <베아트리체 첸지의 초상화>이다.

-> 이 작품은 귀도 레니가 아닌 그의 제자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작품으로 판명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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