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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출세작 - 운명을 뒤바꾼 결정적 그림 이야기
이유리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기대보다 재밌게 읽었다.
여러 책들을 짜집기한 편집본이면 어쩌나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뒷부분 참조 목록들을 보면 확실히 전공자가 아닌 아마추어 작가의 한계가 있는 것 같긴 하다.
문장력도 고른 편이고 쉽게 잘 읽힌다.
도판이 비교적 선명해 감상하기 좋았다.
서양 화가 뿐 아니라 백남준, 이쾌대 등의 우리 화가들도 같이 실려 있어 신선했다.
둘 다 엄청난 부자였고 특히 백남준은 한국 전쟁 당시에 홍콩에서 공부하고 일본으로 피난을 떠날 정도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디오 아트 같은 비싼 예술을 할 수 있었나 보다.
그렇게 부유해도 독일에 가서는 이방인이자 소외 계층으로 분류되는 아시아인에 불과했다는 게 아이러니 하다.
고흐처럼 가난에 찌들어 결국은 생명마저 앗아가는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부유함이 밑바당에 깔려 있어야 꽃을 피울 수 있는 유형도 있는 것 같다.
로트레크의 어머니는 백작인 남편과 이혼 후 평생 불구인 아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어머니도 아들을 외면했다고 나와 의아하다.
밀레가 사실은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었고 근면하게 일하는 농민들의 삶을 예찬하는 일종의 청교도적인 관점에서 그들을 그렸다는 견해는 다른 책에서도 본 것 같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십자가 책형도에 대한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신앙적 관점이 아닌 도살된 고깃덩어리와 같은 범주로 본다는 게 너무나 충격적이다.
베이컨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음울한 분위기가 기존 관념의 해체와 변형 탓인가 싶다.
앞서 읽은 <전설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에서 나왔던 반 고흐의 조카 이야기가 나와 반가웠다.
유명세를 얻기 전에 요절한 시숙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친 두 모자의 사연이 가슴 찡했다.
보통 형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 준 동생 테오의 노력만 회자되는데 그 역시 몇 달 만에 형을 따라 요절했으니 어떻게 형의 작품을 알릴 수 있었겠는가.
테오의 부인인 요한나가 바로 재혼을 해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미처 몰랐다.
재혼한 남편도 화상이었기 때문에 시숙의 작품을 알리는데 좀더 유리했을 것 같다.
아마도 요한나는 시숙의 작품이 얼마나 훌륭한지 남편을 통해 잘 알고 있었고 그녀 역시 깊이 감동했을 것이다.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삼촌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고, 단 한 작품도 팔지 않고 정부에 기증해 반 고흐 미술관을 세운 조카의 노력도 정말 대단하다.
<전설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에 이 조카의 열정이 잘 그러져 있다.
정말 고흐는 가족복이 있었나 보다.
고흐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그린 아몬드 붓꽃 그림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