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귀족 연감
이혜진 옮김, 디브렛 원작 / 루아르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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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귀족들에 관해 잘 알려주는 자료입니다. 이 시기 문화사를 다룰 때 유용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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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모든 학문의 여왕‘으로 통했던 신학 박사가 되려면 사실상 14년 이상의 수련을 거치고 35세 이상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젊은 학생들이 어려운 신학을 기피하고 돈벌이가 되는 법학과 의학으로 몰리는 세태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신학자들 사이에서 간간이 나오기도 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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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브루 파우치 엘살바도르 SHG EP - 40ml*5ea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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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보다 간편하고 목넘김이 특히 마음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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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2-05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eath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Heath 2023-12-05 21: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올 한해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소년문고를 이야기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우출판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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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왜 읽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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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린 머독의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를 읽었다. 리뷰를 쓰는 데 책의 내용과 너무 동떨어진 내용이 떠올라서 따로 잡다한 글을 하나 써보기로 했다. 


이 책 앞표지, 뒷표지 날개에는 저자 모린 머독이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을 만난 에피소드가 나온다. 저자는 캠벨의 말에 충격을 받고 여성을 위한 영웅의 여정을 만드는 일에 착수하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의구심이 드는 지점이긴 했다. 내가 여태 읽은 캠벨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기 때문에. 특히 캠벨은 『여신들』(1972-1986년까지 캠벨의 강연을 엮은 책이다)이라는 저작에서 지금까지의 신화가 아닌, 앞으로 여성이 창조해나갈 신화의 중요성을 말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신화 속에는 독자적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여성을 위한 모델은 없다. 또한 이런 여성들과 결혼하려는 남성을 위한 모델도 없다. 우리는 이를 흔한 동정심이 아니라 공감 속에서 서로 성장을 끈기 있게 격려하면서 함께 풀어 나가야만 한다. - P12

 

없는 미래 속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휩쓸려 빠져들게 되는 시대이기에 개인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야만 한다. 낡은 모델은 이미 역할을 다했으며, 새로운 모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우리의 삶을 재미있게 만들고, 가운데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은 우리 (p. 13)신이다. 그것이 오늘날 도전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선조'이며, 부지불식간에 미래의 삶에 영감을 불어넣을 신화 모델과 그것을 지켜 신화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아주 실제적 의미에서 지금은 창조의 시대다. - PP12-13.


수세기에 걸쳐 남성들이 해방되었듯이, 여성들 역시 해방되어 독자적, 개인적인 발전을 이루어 있게 되었다. 남자들을 지배적 지위로 올려놓은 것은 근육의 힘이나 이러저러한 것들이 아니라 인격체로서의 해방이었다. 남자들은 과거 자연이 부여한 역할들로 이상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 P443

 

나는 여학생들에게, 신화에 대해 내가 말할 있는 모든 이야기란 남자들이 오래전부터 말해 왔고 경험해 왔던 바에 불과하니, 이제부터는 여자의 관점에서 여성들의 장래의 가능성에 대해 남자들에게 말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렇다. 그것이 미래일 것이다. - P444


그렇긴 한데 캠벨이 머독에게 한 말은 캠벨이 다른 저작에서 비슷하게 말한 점이기도 하다. 어느 책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자 아이는 신체가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히 정신적으로 성숙해지지만 남자 아이는 그렇지 못하므로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한다 였던가? 저자 모린 머독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어쨌든 모린 머독은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에서『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캠벨이 제시한 (남성을 위한) 영웅의 여정과는 다른 (여성을 위한) 영웅의 여정의 구조를 제시하였다. 다만 『여신들』에서 캠벨이 말한 바를 실천하는 데 앞장선 것일까? 다른 학문에서 흔히 보이는, 후속 세대가 선구자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학문을 발달시키는 것과 유사한 과정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모린 머독의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캠벨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캠벨의 저작과 만난 날은 2020년의 어느 날이다. 지금 구매리스트를 체크해보니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과 『신화의 힘』 중고를 산게 2020년 4월 18일이다. 캠벨과 만나기까지의 여정은 개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여정이었다. 그 시작은 2010년대 중반의 어느 날까지 거슬러간다, 그 무렵 헤이든 화이트의『메타 역사』라는 책과 만났다. 




화이트의 책은 그 어떤 역사책이나, 역사에 관한 역사책과도 다르다. 화이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역사는 역사가들이 세계관, 장르, 은유 기법으로 '플롯화'한 것이며, 역사는 과학보다는 문학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런 화이트의 주장을 접하면서 이 책에 언급된 역사가와 역사철학자들의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가끔 화이트의 주장이 언급되는 책(ex: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보면 내심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화이트의 책을 읽은 후 마음 한켠에는 엉뚱하게도 이야기,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화이트의 책 자체가 역사가/역사철학자의 역사 서술에서 플롯을 읽으려는 시도이니,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은 꺼지지 않고 오래 갔지만 그렇다고 확 타오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2019년에 영화를 하나 보고나서 뒤늦게 이야기와 스토리텔링에 확 꽂혔다. 그 결과 알라딘 중고서점을 기웃거리며 이책 저책 사서 읽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시학을 구매하던 시절이었다.



읽으면서 학부 수업 때 교수님이 인용한 문구를 그대로 봤다. 시는 진리를 말하지만 역사는 일어난 일만 말하므로 시가 역사보다 위랬던가? 다른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던 주장을 원전(번역본이기는 하지만)으로 직접 접해보니 느낌이 상당히 묘했다.


이야기를 창조하는 대표자하면 역시 작가. 그래서 운좋게 중고서점으로 『작가란 무엇인가?』를 구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건 막상 구해놓고 아직도 안 읽었다는 점.


 


그러다 2022년 헤밍웨이 탄생 123주년 리커버판이 새로 출간되었다. 




아무튼 2020년 초 무렵 관심사가 과학으로 점차 옮겨갔다. 이유는 모르겠다. 개연성이랄 만한 것도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굳이 개연성을 따지자면 개인적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진 저자가 사회, 경제학적 서술을 할 때 과학 지식(그것도 생물학) 지식을 잔뜩 끌어왔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과학자 중에서 다윈은 사회과학 서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서 예전부터 과학 중에 생물학 책은 가끔 챙겨보곤 했다. 특히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자주 챙겨봤다. 


무슨 책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어떤 생물학자가 쓴 책에서는 인문학도들에게 당부하기를 "생물학은 다른 과학처럼 수학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니 "생물학도 같이 공부해라!" 이랬던 것 같기도 하고. 분명 어느 카페에 앉아 그 책을 읽었는데, 카페의 위치와 카페에서 책을 읽은 장소까지도 정확히 기억난다. 그런데 막상 책 제목과 저자 이름만 기억나지 않는다. 내 뇌가 용량을 확보하기 위해 망각해버렸나보다.


코로나 팬데믹 초창기 시절,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및 마스크 쓰기 실천을 당부하던 시절,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마이클 액셀로드의 『협력의 진화』를 읽고 난 후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게 된 순서는 오래전 다른 도킨스의 책들과 함께 사 놓고 책장에 고이 모셔만 둔 『이기적 유전자』를 먼저 꺼내 읽고, 『이기적 유전자』에서 언급된 『협력의 진화』라는 책에 흥미가 가 중고로 구매해 읽은 후, 도서관인지 집안의 서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 눈에 띄여 읽었다.


  


윌슨의 『통섭』에는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과 영웅의 여정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기억에 의거해 내용을 추리자면 인간의 두뇌가 자기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하나가 아닐까? 이런 뉘앙스 였던 걸로.


그렇지만 바로 캠벨과 연결되진 않았다. 『통섭』을 읽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중간 과정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마침내 캠벨의 책을 알라딘 중고로 주문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의 힘』을 같이 주문했다.


 


나중에 이 두 책의 최신 판본이 출간되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가격이 높아진 탓에 출판사를 향한 비판이 자주 보였다.




어쨌든 두 책을 읽으면서 캠벨에 빠졌다. 책을 읽기 전에 아는 신화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만한 단군 신화와 가나출판사에서 2000년대 초에 출판, 한창 신드롬을 일으키며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시리즈 뿐이었다. 이집트 신화, 북유럽 신화는 건너 들은 수준. 북유럽 신화 같은 경우는 토르가 워낙 유명하니 상세한 내용은 몰라도 오딘, 토르, 로키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집트 신화는 오시리스가 세트에게 죽은 후 이시스에 의해 부활, 저승을 다스리게 되었다는 점 정도. 그정도로 특별히 신화에 대해 아는 바는 없었다.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의 힘』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얕았는지 알게 되었다. 신화가 허무맹랑한 옛날 이야기, 혹은 재미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 인간의 가치관, 세계관, 무엇보다도 삶을 바라보는 태도, 삶을 어떻게 이어나가야하는 가에 대해 알려준다는 점에 매료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지점은 캠벨이 제시한 영웅의 여정을 삶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는 점일까. 혹은 삶에 구조를 부여한다는 점일까. 거창한 사례를 들 필요 없이 잠에서 깨어나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잠들기까지의 과정도 영웅의 여정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삶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캠벨은 순식간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들어가게 되었다. 덧붙이자면 지금까지의 인문학 공부도 돌이켜볼 수 있었고, 뭔가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어려운 책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기도 했다(그래도 읽기 어려운 책은 여전히 읽기 어렵다).


그 후 지금까지 중고, 새 책 통틀어 캠벨의 책 중에서 구할 수 있는 캠벨 책은 다 구한 듯 하다. 앞에서 언급한 『여신들』만은 못구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여신들』은 밑에 나열한 책들에 비해 읽기 쉬운 편이긴 했다.


    



때마침 캠벨의 저작이 새로 출간되기도 했다.



다만 이쯤 오니 캠벨이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해서 한다는 느낌도 조금 들었다. 캠벨의 여러 저작들을 읽으면 같은 사례를 드는 경우를 몇 번씩 보게 된다. 연구서에 가까운『신의 가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도판집에 가까운 『신화의 이미지』를  제외한 나머지 저작들은 대중 강연을 엮은 책들이다 보니  이런 경향이 더하다. 


그렇긴 하지만 내가 캠벨에 관해 완벽히 이해했느냐 하면 그건 아닌 듯 하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캠벨에 관해 설명하시오'라고 하면, 제대로 설명할 자신은 없다. 한창 캠벨의 책을 읽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책을 읽고 글을 남긴다는 생각도 없었고,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지도 않았고, 기껏해야 인상적인 구절 몇 개 인용해서 기록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 시절 캠벨을 읽으면서 담은 지식은 뇌가 거의 다 망각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만 잔재처럼 남아있다. 캠벨의 책들을 접하면서 이전에는 보지 못한 것들, 알지 못한 것들이 다가온 점도 있고, 어떤 점은 허무맹랑하다 싶었던 점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캠벨이 '벼룩 조차 생명의 신비를 품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보고 이 세상에 나쁜 책은 없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 점도 있다. 내가 무슨 책을 읽든, 내용이 좋든 나쁘든, 번역이 좋든 나쁘든 간에 '책'은 '책'이고, 나의 지적 여정을 이루는 과정의 일부분을 이룰테니까. 


지금 다시 캠벨의 책들을 읽으라면 읽기는 하겠는데 읽고 나서 생각을 정리해 리뷰로 쓰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머독의 책은 캠벨에 비해 생각도 금방 정리되고, 글도 빨리 써진 것 같다. 아니면 그동안 캠벨에 관해 읽은 것들이 머리 속에 정리가 안된 채로 널부러져 있다가 머독의 책을 계기로 다시 정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참 정신없는 지적 여정이었다. 시작도 뜬금없지만, 중간과정도 뜬금없고, 캠벨에 도착하는 지점에서는 중간 과정도 생각이 안 날 정도. 


마지막으로 머독의 책을 만난 계기는 캠벨에 비하면 다소 간단하다. 2022년 어느 날 도서관에서 무심코 '영웅의 여정'으로 검색하다 『여성 영웅의 여정』을 발견했다. 때마침 SNS에서 개정판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가 발간된다는 광고를 보고 바로 주문했다. 다만 읽은 것은 책을 사두고 1년이 지난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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