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백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하루 수케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평점 :
품절


산미가 마음에 듭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 - 역사적인 미국 연방대법원 사건들과 숨은 이야기
L. 레너크 캐스터.사이먼 정 지음 / 현암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도 여러 종류의 책이 있다. 그중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담고 있는 내용의 가치가 높아지는 책이 있는 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용의 가치가 퇴색하고 마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아쉽게도 후자에 가깝다. 저자들의 잘못은 아니다. 단지 이 책이 2012년에 나왔기 때문에 그 한계가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이 책은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심의한 31가지 역사적 재판을 다룬다. 각각의 판결은 크게 다음의 테마들로 구분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 종교, 사상, 양심 /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 대통령 대 연방대법원 / 비즈니스 / 긴급판결. 이중 단 하나의 판결만 다루는 긴급판결을 제외한 나머지 5개의 테마들은 대체로 5~8가지 판결을 다룬다.


각각의 개별 판결은 판결이 시작된 배경을 다루는 '프롤로그', 대법원의 판결을 요약정리한 '판결문',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반대의견'이나 '보충의견', 판결 이후의 뒷이야기를 다루는 '에필로그'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판결이 만장일치로 나왔을 경우, 반대의견이 생략되는 경우도 있다. 드래드 스콧 대 샌포드 판결이나 고레마츠 대 정부 판결에서는 반대의견이 판결문보다 더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독자는 첫째로 해당 판결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알 수 있고, 둘째로 판결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으며, 셋째로 해당 판결에 대한 반대의견이나 보충의견을 확인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판결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가도 알 수 있다. 


아울러 지루하고 어려울 수 있는 법률 문제를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맞추어 읽기 쉽게 풀어 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가령, 나 자신의 사례를 들자면, 작년에 번복된 로 대 웨이드 판결은 그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정작 해당 판결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전개 과정, 판결 이후의 영향 등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이 책을 통해 로 대 웨이드 판결의 전개 과정은 어떠했는지, 제인 로라는 이름을 내세워 실제 소송을 걸었던 인물은 누구였으며, 판결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개략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각각의 판결을 전부 다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다만 31가지의 다양한 판결들을 보면 시대상의 변화를 잘 체감할 수 있다. 예컨대 1856년 드래드 스콧 대 샌포드 판결과 1954년 브라운 대 토피카시 교육위원회의 판결을 비교해보자. 책에서 두 사건은 연이어 배치되어 있고, 두 사건 사이에는 98년의 격차가 있다.


먼저 드래드 스콧 대 샌포드 판결을 보자. 판결부터 정신이 아득해진다. 여러 내용 언급할 필요 없이 핵심은 간단하다. "흑인 노예는 인간이 아니다" 실제로 이 판결은 대법원 역사상 최악의 판결로 회자되며, '스콧 대 샌포드 판결 이래 최악의 ...' 같은 수식어구로 자주 활용된다. 


이어서 1954년 브라운 대 토피카시 교육위원회 판결이다. 이 판결은 인종 격리정책에 관한 판결이다. 드래드 스콧 대 샌포드 판결 이후 98년이 지난 후 미국 연방대법원은 "격리는 곧 차별이다" 라는 판결을 내렸다. 거의 1세기 걸려 이룬 진보라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판결 중 코레마츠 대 정부의 판결도 충분히 놀랍다고 할만하다. 정부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본계 미국인(그것도 미국 시민)의 권리 제한을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 판결도 연방대법원 역사상 수치스러운 판결로 남았다. 


여기서 다시 드래드 스콧 대 샌포드 판결로 돌아가 조금 다르게 보자.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는 트럼프 시대 이래 좌우가 극단적으로 갈려 소위 '문화 전쟁'을 겪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분열은 19세기에도 있었고, 그때는 원인이 노예제 문제였다. 어떻게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의 분열성과 극단성은 21세기 들어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시점부터 존재했고, 각종 제도적 장치로 그동안 억눌러오긴 했지만 간간히 터진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세계사에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이 역시 달리 볼 여지가 있다. 규모상 미국 보다 한참 더 작은 나라들에서조차 민족 갈등이나 종교 갈등과 같이 여러 요인에서 기인하는 갈등과 충돌이 빚어지고, 가끔 내전으로 번지거나 국가가 분열되는 경우로도 이어진다. 교과서에 이름이 나온 제국이나 왕국(그리고 공화국)치고 반란과 내전이 없는 경우는 드물다.  


여기서 미국은 공공연하게 '제국'으로 불리고 연구될 정도로(제국으로서의 미국에 관해서는 역사학자 다니엘 임머바르가 지은 『미국, 제국의 연대기』(2020)를 추천한다) 거대한 국가이다. 50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종도 다양하고 매일 새로운 이민자가 유입되는 나라다. 매일 뉴스만 보면 인종 관련 이슈가 빠지는 날이 없음에도, 미국이 국내 갈등을 법적 절차에 따라 수습하고 봉합하면서 국가적 분열을 어떻게든 차단하는 모습을 보면 경이로워 보일 정도다.


한편 1969년 브랜든버그 대 오하이오 판결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아이러니가 집약된 KKK단과 관련이 있다. 브랜든버그 대 오하이오 판결은 판결 당시에는 인종주의적 표현도 표현의 자유로 보장해야 하는가 라는 주제와 관련이 있다. 대법원은 "폭력 행위에 대한 옹호와 실행은 구별되어야 마땅하다"는 판결을 내리며 KKK단 지도자 브랜든버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윌리엄 더글러스 대법관은 언론의 자유에는 예외가 없어야한다는 보충의견도 내놓았다. 요컨대 KKK단 단원이 "모든 유색 인종, 유태인, 가톨릭 신자들은 미국땅을 떠나라"(p. 187)고 울부짖을 권리는 있다는 것이다(해당 행위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해당 판결은 각종 혐오표현이 난무하는 지금 시대에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하는가?'라는 문제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판결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KKK단이다. KKK단의 근거지는 주로 남부였다. 남북전쟁 이후 재건기 당시를 다룬 20세기 초의 영화 『국가의 탄생』이 바로 이 KKK단의 창설 과정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역사가 펼쳐지는 데, 한때 KKK단의 후견인 역할을 한 미국 민주당이 21세기 현재에는 진보적 어젠다를 내세우며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되었다. 반대로 19세기 중반 노예제 해방에 앞장선 공화당은 현재 보수 정당이 되었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흥미로운 판결들이 많다. 20세기 후반의 판결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한국 사회가 겪은 많은 문제들에도 참고가 될만한 판결들도 많다. 직장 성희롱 문제를 다룬 1998년 벌링턴 산업 대 앨러스 판결, 예술과 외설의 기준이 문제가 된 1973년 캘리포니아 대 밀러 판결,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둘러싼 1967년 케이시안 대 뉴욕 조립대 이사회 판결 등, 현대 사회의 여러 쟁점들에 참고가 될만한 판결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의 문제를 꼽자면 이 책 자체가 지닌 한계다. 이 책은 2012년에 출간되었고 2012년까지의 판결만을 수록하고 있다. 2023년 지금 시점에서 몇몇 판결은 뒤집혔다. 대표적으로 2003년 그루터 대 볼링저 판결은 2023년 현재 대법원에서 적극적 우대 정책을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뒤집혔다. (2003년 당시 반대의견을 낸 대법원장 토마스 클래런스도 이에 관여했다)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역시 작년에 뒤집히면서 미국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 


부연설명 해보자면, 전자의 경우, 어떻게 보면 이미 예견된 결과일 수 있다. 2003년 시점에서 이미 대법원 측에서 적극적 우대조치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었다. 당장 판결문에서부터 "지금부터 25년 후 쯤이면 입학 심사에서 소수 인종의 선호는 그 필요성이 없어지리라 본다"(p. 257)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25년 후에 일어날 일이 20년 후에 일어났을 뿐이다.(그만큼 미국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그렇기에 인종을 초월해 미국 여성 전반과 관련된 문제인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것에 비해 그 파급력이 세보이지 않는다. 한편, 여성의 낙태권과 관련해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것은, 작년 중간 선거에서 인플레이션 덕분에 한창 기세가 오른 공화당의 이른바 '레드 웨이브'가 별거 아니게 보일 만들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이처럼 과거의 판결이 뒤집히는 사례들을 보면 어떤 이에게는 역사의 진보로, 어떤 이에게는 역사의 퇴보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특히 2020년대 들어 뒤집힌 두 건의 판례(로 대 웨이드, 그루터 대 볼링저)를 보자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방 대법원 역시 미국 사회의 제도 중 하나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연방 대법원의 판결 자체가 미국 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기제가 아니라, 문제를 임시 봉합하는 미봉책이 아닌가 한다. 사회를 이루는 개개인 각자의 삶의 여정이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 어느 사회나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간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미국 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은 합헌이라 판결내린다고 미국 내의 동성결혼 반대자들이 하루 아침에 그동안 고수한 가치관을 버리고 전향할까?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동성결혼 지지율이 높은 것과는 별개로 개개인 각자의 신념이 하루 아침에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판결을 보고 있으면 사법부의 권위로 사회의 갈등을 잠시 억누르는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법원이라는 중재 수단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없었다면 미국의 모습은 지금과 너무 딴판일 것이다.


이 책이 법률 문제를 다루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 미국 사회도, 미국 사회의 연방대법원도 구성원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에 맞춰 법률도 계속 재해석되며 판결도 달라진다. 때문에 새로운 판결이 나오거나 기존의 판결이 뒤집힌다면 그에 맞춰 내용을 갱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번 인쇄되면 수정할 수 없는 책이라는 매체로는 그 같은 변화를 반영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위키백과가 훌륭한 보완수단이 될 수 있다. 영어가 된다면 영문 위키에서 List of landmark court decisions in the United States 문서를 통해 이 책이 다루지 않거나, 이 책 이후의 이루어진 중요 판결에 관한 내용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연방 대법관에 대한 미국 정부와 국민들의 기대는 그 호칭 자체에서 잘 나타난다. 미국에서 정의가 이루졌다Justice has been served는 표현은 악당을 처치하는 헐리우드 액션 영화 속의 히어로가 아니라 실은 재판의 결과를 일컫는다. 즉 적절한 법률적 절차(재판)를 거쳐 나온 공정한 판결에 대한 찬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관을 일컫는 호칭이 정의Justice 자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알고 보니 정의를 수호하는 기사들은 영화 스타워즈에서처럼 멋진 망토를 입고 광선검을 휘날리며 우주 공간을 누비는 것이 아니라, 워싱턴 D.C. 1번가에서 검은 법복을 입고 앉아 말words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 P22

그러나 대법관들이 항상 순도 100%의 공명정대한 판결, 즉 모두가 이견 없이 인정하는 정의를 실현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연방대법원의 기능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예들은 헌법을 통해 연방대법원의 설립을 구상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의도, 즉 삼권분립을 통한 정부 기관들의 상호견제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한 반증일 뿐이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홉 명의 대법관이 주재하는 연방대법원은 하급 법원을 거쳐 올라온 각종 사건들을 심사하고 판결을 내리는 미국 사법부의 최고 기관입니다. 흔히 미국을 움직이는 주역이라고 하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나 의회의 입법 의원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미국 역사의 향방을 좌우한 대사건들 뒤에는 연방대법원 판결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연방대법원에서 심의하는 안건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부터 미합중국이 당면한 현실, 그리고 미국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상황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연방대법원이 내린 판결과 그 배경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 P16

실제로 미국은 연방대법원의 대법정 뿐 아니라 대통령의 집무실부터 국회 의사당의 회의장, 재판정, 기업의 회의실, 대학의 강의실, 주말 저녁의 칵테일파티에 이르기까지 토론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고, 설득당하고,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계속해 나가는 사회입니다. 즉 토론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미국인들에게는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의견서들을 통해 연방대법원 법정에서 벌어졌던 불꽃 튀는 토론에 참여하다보면 독자 여러분 자신이 어떤 신념이나 생각을 글이나 말로써 논리정연하게, 그러면서도 때로는 유머를 섞어가며 여유롭게 풀어 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 P17

연방 대법관에 대한 미국 정부와 국민들의 기대는 그 호칭 자체에서 잘 나타난다. 미국에서 정의가 이루졌다Justice has been served는 표현은 악당을 처치하는 헐리우드 액션 영화 속의 히어로가 아니라 실은 재판의 결과를 일컫는다. 즉 적절한 법률적 절차(재판)를 거쳐 나온 공정한 판결에 대한 찬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관을 일컫는 호칭이 정의Justice 자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알고 보니 정의를 수호하는 기사들은 영화 스타워즈에서처럼 멋진 망토를 입고 광선검을 휘날리며 우주 공간을 누비는 것이 아니라, 워싱턴 D.C. 1번가에서 검은 법복을 입고 앉아 말words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 P22

그러나 대법관들이 항상 순도 100%의 공명정대한 판결, 즉 모두가 이견 없이 인정하는 정의를 실현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연방대법원의 기능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예들은 헌법을 통해 연방대법원의 설립을 구상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의도, 즉 삼권분립을 통한 정부 기관들의 상호견제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한 반증일 뿐이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베르토 코스타의 '언어의 뇌과학(El Cerebro Bilingue)'을 읽으며 떠올린 잡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과 크게 상관은 없지만 이중언어자가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 가도 중요해 보였다. 


현재의 한국만 따져보자. 지금 한국은 이중언어 구사자에 유리한 환경이 되가는 것 같다. 이유는 여러가지 일 것이다. 이민자 및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 세계화로 인한 기업들의 해외 진출, 국제결혼의 증가 등. 수능에서도 영어와 제2외국어 시험을 실시하고 서점가에 외국어 코너를 가보면 다양한 외국어 학습 서적들이 즐비하다. 영어야 말할 것도 없고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교육 기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언어 사이에도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절대다수 한국인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제외한 외국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를 꼽으라 하면 영어일 것이다. 

영어는 아무래도 다른 언어에 비해 위상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영어보다 사용자 수가 많은 언어가 있긴 하나, 해당 언어가 국제 공용어인가? 라고 다시 물어보면 저절로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특히 지식 생산과 관련해 영어는 압도적이다. 어떤 분야든 새로운 지식과 그 지식을 담아 전달하는 매체는 영어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이 속한 범주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책의 범주는 뇌과학 일반, 언어학/언어사, 뇌과학/인지심리학이다. 해당 범주로 들어가 번역서의 목록을 쭉 훑어보면 영어권에서 번역된 번역서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된 영어권의 무수한 뇌과학 저작들 사이에서 보기 드문 '스페인어' 저작이다. 

텍스트가 영어로 생산되고 이어서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경우는 많다. 그런데 그 반대는? 


한국에서 영어의 위치는 여러 경험적 근거로 확인 가능하다. 앞서 서점가의 외국어 코너를 떠올려보자. 영어는 외국어 코너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알라딘은 영어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이트이기도 하다. 먼저 국내 도서에서 '외국어' 분야를 보면 외국어의 하위범주 절반 가량이 영어로 채워져 있다. 토익/토플/텝스/영어회화/영어독해/영어학습법 등등. 나머지 언어들(중국어, 프랑스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이 범주 하나만 할당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어의 독보적인 위상을 체감할 수 있다. 이제 국내 도서 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외국 도서 탭으로 넘어가보자. 여기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영미도서가 압도적이다. 


교육과정도 마찬가지. 초등, 중등교육과정에서 한국 학생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같이 배우고, 대학에 가서 학교나 학원, 인강을 통해 영어 수업을 듣는다. 졸업 후에도 취업을 위해 영어 학원을 다니며 공인 영어시험을 준비한다. 대표적으로 수능은 한국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입지를 아주 잘 드러낸다. 수능은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탐구, 제2외국어와 한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어는 국어, 수학과 대등한 과목인 반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은 모조리 제2외국어라는 범주에 속해 있다. 


이외에도 영어가 침투한 사례들을 다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과거 '영어 공용어화론'이 제기되었으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금 누군가가 영어 공용어화론을 제기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의 뇌과학 - 이중언어자의 뇌로 보는 언어의 비밀 쓸모있는 뇌과학
알베르트 코스타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 원제는 El Cerebro Bilingue으로 2017년에 출간되었다. 원제와 저자의 이름, 그리고 번역자의 경력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영어권에 비해 보기 드문, 스페인어권 저작이다. 


알라딘에서는 이 책을 크게 뇌과학 일반, 언어학/언어학사, 뇌과학/인지심리학 이라는 범주로 구분해놓았다. 각각의 범주를 검색해보면 주로 영어권 저자들의 책이 검색된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은 보기 드문 '스페인어권' 저작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간략한 책 소개로 들어가보자. 이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과학 서적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 답하려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하나의 뇌에 언어가 공존할 있을까?" 책에는 우리가 자주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뇌의 언어적 기능을 알고 싶다면 이중언어 현상을 살펴봐야 한다. 연구를 통해 언어가 주의력, 학습, 감정, 의사 결정 등을 포함한 다른 인지 영역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있다. 이런 점에서 이중언어 사용은 인간 인지(human cognition) 연구에서 창문 역할을 한다. - P9


저자는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부차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특히 이 여행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과연 두 언어에 노출된 아기들은 두 언어를 어떻게 구분할까? 이중언어와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아기들의 언어 학습 과정은 어떤 점이 다를까? 이중언어자가 두 언어를 계속하게 해주는 뇌 영역은 어디일까? 이중언어 사용은 다른 인지 능력 발달에 어떤 영향을 줄까? 뇌 손상을 입으면 두 언어가 어떻게 손상될까? 제2언어(외국어) 사용은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 P9


그리고 이에 맞춰 가설을 세우고, 해당 가설을 입증하는 연구 자료를 제시하여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나간다. 사실 저자가 이 책에서 답하려는 내용은 프롤로그에 언급되어 있다.


1장에서는 어린아이가 언어를 동시에 학습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살핀다. - P13


2장에서는 성인 이중언어자의 뇌에서 언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룬다. 특히, 인지 신경과학과 신경심리학을 바탕으로 연구를 살핀다. - P13


3장에서는 일반적인 언어 처리 과정에서 이중언어 학습 사용 결과를 분석할 것이다. - P14


4장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이 다른 인지 능력, 특히 주의 체계(attentional system) 발달에 끼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것이다. - P14


마지막 5장에서는 2언어(외국어) 사용이 의사 결정 과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 P14


여기서 각 장의 내용을 보다 더 자세히 살펴보자. 1장은 이중언어에 노출된 아기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는 장이다. 정확히는 두 언어에 노출된 아기가 두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아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끊임없이 언어를 흡수한다. 그것이 단일언어든, 이중언어든. 아기들은 말하는 사람의 입모양을 보면서 무슨 언어를 말하는지 구분할 줄 안다. 또한 서로 다른 말을 들으면서 언어를 구분할 줄도 안다. 다만 언어에 단순히 노출되기 보다는 상호작용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


결과는 사회적 접촉이 외국어 학습에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 작용할 있는 환경에 있지 않고 단순히 언어만 노출시킨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을 때보다는 누군가와 상호 작용을 아이의 집중력과 동기가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자녀가 외국어를 배우길 바란다면, 동영상이 일을 대신 해줄 거로 너무 기대하지 말고 언어를 사용해서 아이와 놀아주길 바란다. - P52


아울러 언어는 아이들이 편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피부색이 같지만 영어를 할 때 외국인 억양이 있는 아이보다는 피부색이 달라도 모국어처럼 영어를 하는 아이들과 더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즉 그들의 원하는 친구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소는 피부색보다 말하는 방식이었다. - P54 



2장에서 저자는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나의 뇌에 두 언어가 공존하는가, 그리고 두 언어를 계속 사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P. 60). 처음에 저자는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의 언어 능력과 관련된 연구들을 소개하고 이어서는 이중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중언어자에 대해 논의로 넘어간다. 2장에서 저자는 언어를 자유롭게 전환하는 이중언어자를 두고 저글링을 하는 곡예사로 표현한다. 하지만 언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책에서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들이 한국어를 장기간 쓰지 않아 한국어를 잃어버린 사례가 언급된다.


뇌 손상을 입은 사람의 언어 행동 연구와 뇌 영상 기술을 통해 확보한 건강한 사람의 뇌 활동 평가로 이중언어자의 언어 사용이 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뇌에서 언어 통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언어를 아는 것 뿐만 아니라, 사용(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다가왔길 바란다. - P102


3장의 제목은 '이중언어를 하면 뇌가 어떻게 변할까'이다. 3장에서 주로 제시되는 가설과 연구들은 이중언어가 언어 처리 및 다른 인지,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의외로 3장은 이중언어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비교하면서 시작된다.


이중언어 사용이 일반적으로 언어 사용과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수십 년 전이긴 하지만, 이중언어 사용이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 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상가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극단적인 의견이 나오지는 않지만, 이중언어 사용이 가져올 수 있는 악영향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 P104


한편, 최근의 어떤 연구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이 특정 인지 능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이중언어자가 '더 똑똑하다'(P106)고 선전했다. - PP105-106.


그러나 저자가 관심을 가지는 지점은 이중언어 사용 경험이 뇌의 언어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여기서 저자는 어느 한 편을 들지 말고 사람들의 언어 능력에 대해 신중히 말할 것을 강조한다. 이중언어 사용은 분명 뇌 구조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긴 하나 영향을 끼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중언어 사용은 우리의 언어 발달과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중언어 경험이 주는 혜택이나 문제에 대해 글이나 말을 접할 신중해야 한다. 적어도, 과학을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 P141


4장에서는 이중언어 구사자의 주의력을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책에 언급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단일언어 사용자에 비해 이중언어 사용자가 갈등 해결 측면에서 뛰어나다. 이어서 다중작업, 즉 멀티태스킹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결론은 이중언어 사용이 주의 체계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노화로 인한 인지 저하와 이중언어간의 관계가 다루어진다. 저자는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인지력 감퇴를 방지하는 실험적 증거는 있으나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마무리한다. 


5장은 감옥에서 적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배운 넬슨 만델라를 인용하며 시작된다. 


어쨌건 만델라가 했던 말 중에 도움이 될 만한 문구가 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머리로 간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어쩌면 만델라가 적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염두에 두었던 말일 수도 있다. 그는 도리에 맞게 말할 뿐만 아니라, 그들 마음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길 원했다. - P183


이어서는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따져본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그리 합리적이지 못하다.


우리 행동의 기대 가치를 극대화하고 문제의 여러 변수를 늘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위대한 경제 사상가들이 말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이고, 우리의 결정은 신중하고 합리적인 유형보다는 직관적 과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 P195


나아가 저자는 외국어가 우리의 감정에, 그리고 의사 결정에 얼마나 관여하는지를 밝힌다. 저자는 I love you와 Te quiero 중 모국어인 후자에 더 감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예전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때 외국에서 잠깐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어로 말했으면 낯 뜨거웠을 말을 영어로는 잘도 뻔뻔하게 말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다시 저자가 언급하는 사례로 돌아가자면, 여러 도덕적 딜레마를 모국어로 접했을 때와 외국어로 접했을 때 차이가 있다. 그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도 여기에 언급된다. 트롤리 딜레마 같은 도덕적 딜레마를 접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그 반응이 다르다. 해당 딜레마를 모국어로 접할 때에 비해 외국어로 접했을 때 피험자들은 보다 냉철하고 '실용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책에서 저자가 염려하는 점은 누군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이중언어자와 단일언어자를 비교하면서 어느 한쪽의 우월성을 부각시키거나 한쪽을 폄하하는 것이다. 저자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과학이 남용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처럼 과학을 이용하는 것은 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아울러 저자는 도중에 본인의 경험에 의거해 과학계에 만연한 관습을 비판하는 모습도 잠시 보인다. 과학적 실험 그 자체가 아니라 연구 결과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연구자의 연구물 출간 여부가 결정되며 그 결과 많은 연구가 발표되지 못한다. 저자는 실험 결과가 부정적이더라도 다른 연구자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을 샀던 이유, 이 책을 읽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외국어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언급되지만 이 책은 어떻게 외국어를 공부해야하는지 알려주는 실용서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이중언어의 사용과 관련된 사회적, 정치적 논의를 다루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이중언어의 습득과 구사 과정에서 아기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뇌가 얼마나 경이롭게 작동하는가 알려주는 교양 과학서이다. 특히 외국어가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5장은 독자에게 다른 의미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마지막으로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 될 수 있겠다. 이 책은 참고문헌을 포함하여 232페이지에 불과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머리로 간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 P1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