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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스
오시이 마모루 감독 / 대원DVD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1. 프랑스 애들이 참 좋아했을 것 같은 애니. 한 눈에 봐도 조잡한 명언들로 이루어져서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데 대충 성서라던가 밀턴의
실낙원을 참조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 복잡성 때문에 공각기동대 원작에 추리 요소가 가미되어, 미스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분해서 볼
만하다. 뭐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 스포일러를 뿌려도 상관없을 것 같으니 살짝 힌트를 뿌려준다.
이번에도 역시 로봇기체를 만드는 회사가 사건의 중심에 개입한다. 처음에는
길거리의 아이들을 납치한 다음 세뇌시켜서 안드로이드에 넣은 다음, 몸을 판다던지 청부살인이라던지 다방면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높으신 분들
중엔 로리 하악거리는 사람들도 제법 많고, 그런 사람들을 방심시키면 죽이기에도 훨씬 손쉬울 테니까.) 게다가 청부살인 시엔 먼저 자해를 한 다음
살인을 하는 것 같은데, 이게 로봇관련 제3법칙을 절묘하게 비켜난 수법이라 회사에 책임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일단 그 기체가 섹서로이드이다
보니 유족들도 고소하기가 찝찝하기도 하고. 아무튼 그 기체를 원하는 인간들의 수요가 많아지자 아무래도 회사 내 사원의 아이들까지 억지로 끌어다가
쓴 듯. 제품검사부장 퍼커슨은 자신의 아이까지 잡혀가게 되자 자신의 전적이 있으니 차마 경찰에 신고할 수는 없고, 안드로이드 기체가 마치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일부러 난동을 부리게 한다. 그리고 경찰의 눈에 띄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살인...
아무리 생각해도 어른이나 애나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ㅋㅋㅋ 아무래도
감독은 천진난만하게 아무 것도 모르고 살인을 저지르는 아이들을 잔혹하게 그려내기 위해 '이노센스'라는 단어를 제목에 넣은 것 같은데, 난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놈의 유전자를 이어받았고 그런 놈한테 가정교육을 받았으니 애새끼도 똑같지.'

2. 영상미와 전투씬만큼은 정말 끝내준다. 그러나 홍진회 건물이 환상이었던 걸 떠올리면 아마도 이 건물들도 환상이 아닐까...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곧 세상은 원래부터 태어난 얼굴과 몸매에 관련된 유전자는 아무 상관도 없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왜냐하면 자신의 원래 모습에서 아바타를 뒤집어 쓰고,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업데이트를 시키면 사람들의 눈엔 그 아바타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보이는 모습도 기분나쁘긴 마찬가지이긴 한데 이것마저도 실제가 아니라면, 세계 최고로 부흥했다는 이 도시도 실제론 그저 폐허 무더기에
지나지 않는 건가.

3. 비록 가상현실이긴 하지만 자신의 몸이 기체로 변해 회처럼
떠지는 체험은 참 기분 나쁠 것이다(...) 토구사가 이제 다시는 바트랑 같이 팀짜지 않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래도 토구사도
나름 공각기동대에서 인기를 구가하는 캐릭터인데 저렇게 처참하게 망가지다니 ㅠㅠ
아무튼 토구사가 해킹당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난 이 작품 말고도 매트릭스도 봤는데, 이 기묘한 느낌은 아무래도 감독이 매트릭스에서 빌려온 듯하다. 공각기동대가 만들어지고 그
작품의 여러 장면들을 토대로 하여 매트릭스라는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고, 그 영화를 다시 카피해서 공각기동대 외전이 나오고. 흠... 마치
감독이 작품으로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 제일 쓸모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작품에서 제일 맘에 드는 인물이 바로 이 박사님이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싶은 인형사와도 다르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소좌와도 전혀 다른 새로운 캐릭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뒤에서 상황을 관조하며 감상을 적는 캐릭터라고 해야 할까. 아이와
인형은 별로 다르지 않으며 그렇기에 인형은 자신이 버림받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이론은 제법 객관적으로 비친다. 하지만 그녀의 몸이 기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반전.
결국 인형을 살아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인간밖에 할 수 없는 생각이며,
로봇을 인간과 똑같이 만들기를 집착하는 자체가 그들을 고철로 있게 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여기에 숨어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과 로봇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감정인데, 그 감정 중에서도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동질화와 이기심'이라는 논리가 된다. 내가 너 같고 너가 나 같은 게
사랑이라면?
영화의 첫 장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들의 신도, 우리들의
희망도, 결국 단순히 과학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사랑 역시 과학적이지 말라는 이유가 있을까요?' 사랑은 동질화에서 이기심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영화는 굉장히 냉소적인 작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