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날이 있다면 그건 만우절이다.일부러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는 날이라고? 왜? 어차피 세상을 살다보면 누군가를 속여야 하거나 원치 않아도 어쩔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 있는데, 왜 굳이 특정한 날을 정해서 사람들을 속이는거지? 아!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니까 특정한 날을 정해서 이날은 절대 믿지 말자 하고 정한 거라면 그건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오늘 쓴 글은 딱 하나였는데, 작년 오늘 쓴 글이었고, 만우절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글에 내가 살면서 단 한번도 만우절에 농담이나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썼었다. 그리고 댓글에 알라딘 이웃인 카스피 님께서 만우절에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내 표현을 믿지 못하겠다는 뉘앙스로 글은 남겨 놓으신 것을 봤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다. 만우절에 일부러 거짓말이나 농담을 한 적은 없다고. 그 말이 평생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거나 농담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나도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건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러리라 생각한다. 나는 농담이나 거짓말을 일부러 특정한 날에 분위기에 편승해서 유행처럼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늘 바빠서 내 생일도 잊고 지나가는 사람인데, 만우절이란 날짜 따위 일부러 기억해서 시시껄렁한 농담 따위 지껄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다만 어제 쓴 글에도 밝혔듯이 만우절에 마치 거짓말처럼 부고 소식이 왔던 지인이 있었다. 내가 약 20년 전에 특정한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무렵에 그는 아주 유명한 진보정당 정치인의 보좌관으로 일했었다. 어쩌다 어떤 특정한 사업 때문에 만났었고, 서로 나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친밀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기획했던 어떤 행사에 그가 그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참여했던 것을 계기로 조금 친해졌다. 그날 나는 당시에 큰 아이를 품고 있었던 임신 말기의 아내와 함께 했었다. 그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나와 내 아내 이렇게 네 사람이 짧은 시간 친해져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내 기억은 개인적으로 미화되었다고, 그 시간은 그저 형식적인 혹은 예의상 참여할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자리였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건 이젠 대답할 수 없는 그의 몫이니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쉽기는 하다. 암튼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이후에 그와 다양한 장소와 시점에 마주치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저 그런 관계였다. 결코 친구라 부를 수 없는 동지라 부를 수는 있었겠지만, 조금은 어색한 그런 사이. 그와 좀 더 친해진 계기가 녹색당에서 활동했던 시기였다. 과거에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지만, 친해지지 못했던 우리는 녹색당에서도 자주 만났지만 그리 친해지지는 못했다. 다만 내 생각에, 아마도 그도 마음으로는 충분히 친밀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조금 더 얼굴이 두터웠던 내가 그에게 몇 차례 친한 척을 했었다. 그는 싫지 않은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답을 하곤 했었다.
비슷한 나이였고,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아서 친한 척을 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아니 어느 해 만우절에 부고 소식이 날아왔다. 설마 했다. 노동당 박은지씨 이후로 본인상 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접했다. 에이. 만우절이라고 이런 재미없는 장난을 치나! 이거 누구 짓이야! 라고 화를 내고 싶었는데, 농담도 장난도 아니었다. 이럴 수가! 절말 그가 죽었다니! 다시는 볼 수 없다니!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다시는 그 분을 볼 수 없다는 그 느낌이, 그 상실감이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상실감을 깨달으며 문득 눈물이 흐른다. 그냥 쓱 쳐다보면 옆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냥 늘 곁에서 씩 웃어주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자주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와 이 활동가를 언급하는데, 그들과 특별한 어떤 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알고 지냈던 인연이 있었을 뿐이고, 조금 아주 조금 친분이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이들의 죽음은 내게 엄청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종종 언급하는 것이다. 그 충격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에.
그래서 내게 만우절은 슬픈 날이다. 여성의 날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여성의 날이라고 여성들끼리 꽃을 주고 받는 것이 한 편으로 아름다워 보이지만, 나에게 그날은 박은지 부대표의 죽음을 들었던 날일 뿐이다. 남들이 만우절이라고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주고 받아도, 그 날은 나에게 한때 존경했던 정말 훌륭한 삶을 살았던 어느 활동가의 죽음을 전해 들었던 날일 뿐이다.
아직 유서를 쓴 적은 없지만, 언젠가 유서를 쓰게 된다면 이 두 사람의 죽음을 꼭 언급할 것이다.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던 이유는 이들 두 사람의 죽음의 영향이 크다고. 박은지 부 대표가 아직 어린 아들을 두고 죽음을 선택했을 때, 우리 아이들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이 차이가 많지는 않았다. 이젠 성인이 된, 그래서 아니 그 훨씬 이전 청소년 시기에도 친구처럼 느껴졌던 든든한 큰 아이는 그 당시에 이미 사춘기 소녀였다. 그의 아들이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사춘기 소년이었다면 그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돌연사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우리 곁을 떠나 버린 또 다른 친구처럼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날 수는 없었다. 아직은. 나는 두 명의 아이가 이 사회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주고 지켜봐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울
사실 이런 이야기는 사람을 한없이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게 만든다. 내가 나라는 자아를 깨달았던 청소년 기의 어느 날, 햇살이 너무나도 따뜻했던 어떤 오후 이후로 평생 나를 괴롭게 만드는 그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데, 그럼 왜 살아야 하는가? 내가 지금 당장 죽는 것과 나중에 몇 십년 후에 죽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위인전 같은 책에 단 한 줄 적힐 확률도 없을텐데, 그럼 내 인생은 무슨 가치가 있는 걸까? 왜 살아야 하는 거지?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물음에 답을 할 수 없다. 엊그제 꽤 규모가 큰 행사에서 발제를 맡아 무대에 올라 정책 제안을 했었다. 비록 빨간당과 파란당의 에비 후보들은 오지 않았지만, 소규모 정당들의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선 이들도 왔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울 시장이라면 꼭 펼쳐야 할 에너지 정책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내가 긴 시간 이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해주셨다. 한 5년 전에 세 시간짜리 강의를 했던 인연으로 만났던 특정 지역의 선배 활동가들은 나에게 "왜 이렇게 갑자기 흰 머리가 많아지셨나고?" 질문을 하시며 친근감을 보여주셨다. 우리 동네 언니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여러 분이 오셨고 응원을 보내주셨다. 또 내가 환경운동과 에너지 운동을 20년 넘게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과거에 존경했던 선배도 나에게 친한 척을 해주셨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참여했던 시민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행사 이후에 나는 극심한 우울감에 빠졌다. 어치피 세상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에너지 정책을 떠들어도 어느 정치인 하나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여전히 매년 여름을 더울 것이고, 해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 기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을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나는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
허무함, 허탈감, 상실감, 슬픔, 외로움 등 내가 이 삶을 더는 지속하지 말아야지 하고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는 이유는 많다. 그건 내 권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남아있는 사람들의 감정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일단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들. 이들 때문에 섣불리 어떤 선택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에이. 어쩔 수 없다. 일단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지. 다른 선택지는 없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오늘 밤 달이 엄청 밝더라. 이 말을 건넬 수 있는 한 사람이 간절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