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가보지 못한 길


멀다. 멀어.


평소 집에서 일터까지는 걸어서 15~20분 가량 걸린다.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걸으면 20분. 조금 서둘러 걸으면 15분. 뛰어오면 10분 정도 걸린다. 오늘 아침에는 파주에서 출발했는데, GTX 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고 왔는데, 40분 조금 넘게 걸렸다. 아, GTX 역까지 걸어간 시간을 포함하면 50분이 넘겠구나. GTX 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서 종점인 운정중앙역에서 연신내역까지 15분 밖에 안 걸리는데, 그럼에도 6호선으로 갈아타고 오다 보니 이 정도 걸렸다. 딱 연신내 근처에서는 시간 상으로 큰 이점이 생기겠지만, 연신내를 벗어나면 체감상 크게 좋은 줄 모르겠다. 물론 당연히 GTX 가 없었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전체 시간이 줄어든 것은 분명 편해졌다.


하지만 GTX 가격이 너무 비싼 것도 문제다. 빨리 가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이걸 매일 타는 것은 큰 부담이다. 나는 후불 교통카드를 쓰기 때문에 평소에 버스나 전철요금을 확인하지 않는 편인데, GTX 의 경우에는 궁금해서 확인해봤다. 연신내에서 개찰구를 지나며 찍으면 처음에 1,500원을 결제하고, 운정중앙역에 내리면 다시 2,400원을 결제한다. 즉, 연신내에서 운정중앙역까지 편도 3,900원이 나온다는 이야기. 이걸 왕복하면 하루에 7,800원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면 아마 더 나오겠지. 연신내에서 전철을 갈아타거나, 다른 버스를 갈아타면 또 요금은 더 나올 것이다. 8,000원이 넘을 거라는 이야기. 하루 8,000원에 20일을 곱하면 16만원. 한 달 교통비가 어마어마하다. 나는 평소 5만원도 나오지 않는데, 3배가 넘는구나.


일터를 비롯해 주로 회의를 다니는 곳들, 일터 외에 내가 활동하는 다른 협동조합이나 단체의 사무실들이 모두 동네에 있기 때문에 나는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주로 걸어 다닌다. 일부러 걷고 싶어서 걷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서 버스로 한번에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적어서 그렇기도 하다. 연신내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번에 편하게 가는 버스가 하나 있는데 배차간격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서 그걸 바로 탈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꽤 긴 시간동안 이렇게 걸어 다닌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이젠 어디를 갈 때마다 버스나 전철 시간을 본 후에 걸어서 얼마나 걸릴지도 생각해본다. 지도 앱에서 나오는 도보 추정 시간은 너무 길게 나와서 그걸 바로 믿기는 어렵고, 내가 실제로 걸어본 거리를 대입해서 적절한 시간을 유추해 봐야 한다.


과거 오늘


오늘 북플에서 확인한 과거 오늘 올린 글은 하나였다. 3년 전 오늘 쓴 글이고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체스를 배워와서 아이에게 체스를 배워 함께 두곤 했던 이야기들과 [퀸스 갬빗]이란 드라마, 그리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 책까지 다룬 글이었다. 처음 체스를 배워서 한창 흥미를 가졌던 아이는 시간이 지나 이젠 체스를 두지 않는다. 아예 관심이 없어진 듯하다. 당시에 내가 져주지 않고 계속 이겨버려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그 글에도 썼던데, 나는 어떤 일이든 일부러 아이들에게 져 주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잘 배우고 익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려고 일부러 져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 아마 작은 아이는 당시에 내가 일부러 져 주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2015년, 그러니까 10년 전 오늘 올렸던 게시물이었다. 당시 나는 지역 시민신문에 책 소개 꼭지를 맡아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던 출판계 선배가 운영하는 출판사 따비에서 낸 신간 [밥의 인문학]을 소개하는 원고를 써서 보냈고, 발행된 신문에서 해당 기사를 사진 찍어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따비 출판사 대표인 선배를 태그 했었다. 해당 신간 소개 기사에 나는 꼭 동네 서점인 불광문고에서 책을 찾아보라고 권했었다. 내가 올린 게시물을 본 따비 대표님은 나하고도 잘 알고 지냈던, 불광문고 점장을 댓글에 태그하며 잘 부탁드린다고 했고, 점장님은 답글로 잘 보이도록 진열해놓았다고 했다.


구독자가 많지 않은 지역의 시민신문이었기 때문에 내 기사를 읽고 실제로 불광문고에 가서 해당 책을 찾아본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달 나름의 기준으로 좋은 책을 선정해서 읽고 공들여 소개 기사를 썼었다. 짧은 글이라 더 쓰기가 어려운 글이었지만, 잘 소개하려고 나름 노력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선정한 책이 내가 아는 사람의 출판사에서 나온 경우라면 그걸 꼭 티를 내곤 했었다.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내가 올린 게시글을 통해 출판사 대표와 동네서점 점장이 서로 소통하면서, 내 SNS 가 좋은 책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이 재미있었다. 이번 기회에 다시 내가 쓴 짧은 글을 읽어본 것도 재밌다. 해당 기사를 아래 붙여본다.


밥은 하늘입니다.

밥의 인문학/ 정혜경 지음/ 따비/ 16,000원



매일 점심시간마다 뭘 먹을지 고민이다. 일터 근처에는 식당이 많지 않아, 선택의 폭이 좁다. 예전 직장 동료는 매일 점심 메뉴 고민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가서 앉아있으면 알아서 차려주는 백반집이 제일 좋다고 했다. 아마 많은 직장인들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한편 예전에 비해 밥과 반찬이 나오는 한식류의 식사보다는 면 종류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맨날 먹는 밥인데, 밖에선 좀 다른 거 먹어보자는 생각도 있을 것이고, 주머니 사정과 입맛을 고려해 면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한편 요즘은 ‘구석기 식단’이라는 것이 유행해서 밥을 자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밥을 많이 먹는 우리 식단 덕분에 탄소화물을 과다섭취하고, 그 때문에 배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이렇게 점점 쌀의 소비는 줄어들고, 오랫동안 이 땅의 식단에서 중심이었던 밥이 이제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밥의 의미를 되새겨 우리 민족에게 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활 속에서 밥을 조명한다. 우리나라의 밥의 역사(즉 농경의 역사와 음식의 역사)를 살펴보고, 쌀밥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문화사도 다룬다. 또 과학적으로 쌀밥이 가진 영양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짓는 밥을 소개하면서 마무리 짓는다.



저자는 쌀이 다른 곡식보다 뒤늦게 한반도에 들어왔을 거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쌀이 밥상에서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맛과 영양 면에서 단연 돋보였기 때문이다. 쌀이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전까지(그러니까 농경시대 이전의 구석기 시대에) 주식이었던 육류나 어패류가 자연스럽게 부식(즉 반찬)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쌀이 주식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누구나 마음껏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수의 지배 계급만이 늘 밥을 먹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쌀이 모자라서 다른 곡식들로 끼니를 이어가야 했고, 그마저도 없을 때가 많아 풀뿌리와 나무 껍질을 먹었다. 흔히 말하는 하얀 쌀밥은 평생 꿈도 못 꿀 음식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조선 시대 요리책에 나오는 다양한 밥에 대한 이야기다. 몇 권의 책에 나오는 목맥반, 소맥반, 청량미밥, 좁쌀밥, 멥쌀밥, 피밥, 율무밥, 백미반, 조밥, 현미밥, 제밥, 빙침반, 황반 등 다양한 밥 이름을 보면서 과연 어떤 맛이었을지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한편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맛있는 밥을 짓는 법을 알려주고, 또 색색가지 밥 짓는 요리법도 알려준다.



아, 이 책을 읽기 전에 밥을 배불리 먹어둘 것을 권한다. 읽다 보면 자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윤기가 도는 맛있는 밥 생각이 간절해진다.

















사실 이때만해도 밥 먹는 양을 줄이는 중이기는 했어도 밥을 거의 안 먹고 살지는 않았기 때문에 위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나는 평소에 거의 밥과 면을 먹지 않는 방식으로 한동안 살았었다. 지금은 다시 또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하고. 그냥 정해진 틀 없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먹는데, 1일 1식도 마찬가지다. 대개는 배가 고프지 않아서 하루 1끼만 먹어도 괜찮다. 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움직일 일이 많은 날이나, 강의를 했다거나, 머리를 많이 써야했던 날에는 점심을 먹기도 한다. 가끔 점심 약속이 생기는 날에도 크게 부담 없이 그냥 점심을 먹는다. 1일 1식이라는 틀에 굳이 얽매이지 않고 그냥 기분과 상황에 따른다.


암튼 밥을 거의 먹지 않고 살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종종 물어보기도 했었다. 지금도 가끔 하루 한 끼만 먹고 배가 고프지 않냐? 괜찮냐? 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저 기사를 봤다면 밥도 안 먹는 사람이 이런 글을 썼다가 나를 비난했을 것 같다.


일부러 밥을 안 먹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밥만 엄청나게 좋아했고,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먹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식습관이 내 몸에 좋지 않다고 여겨 식습관을 바꾼 것이다. 밥을 자주 많이 먹지는 않지만, 여전히 밥을 좋아한다. 그리고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다른 먹거리를 잘 찾아서 챙겨 먹는 것도 귀찮아져서 이젠 그냥 먹는 편이다. 많이 먹고, 많이 달리고, 더 많이 운동하면 된다고 생각을 바꿨다.


오늘은 수요일, 저녁 8시까지 매장을 본 후에 달리기를 하러 갈 예정이다. 달리기의 즐거움을 기대하며 지금은 다시 열심히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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