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달리기 이야기로
우리 동네 의료협동조합에서 올해도 건강실천단 활동을 한다. 올해가 3년차인가? 일단 나는 3년째 참여하고 있다. 첫해는 달리기 모임, 두 번째였던 작년에는 하루 시 한 수 읽기 모임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인 올해는 무려 3개의 모임에 참여한다. 작년에 이어 하루 시 한 수 읽기 모임은 그대로. 그리고 올해 달리기 모임은 매일 30분 달리는 것이 모임의 기본 룰이라고 했다. 아! 매일 30분이라고! 이거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신청했는데. 일주일에 5번 이라던가, 암튼 가끔은 쉬어줘야 할텐데. 현재 내 체력으로는 매일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강도를 조절하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에 강도를 조절해 일부러 천천히 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 달리기 모임이 이거 하나 밖에 없어서 들어왔다는 다른 사람도 매일 달리는 것은 무리라고 의견을 남겼다. 마침내 모임지기가 각자 본인의 몸 상태에 따라 가능한 만큼 달리는데, 가능하면 매일 달려보자는 의견이었다고. 88일 동안 매일 달린 사람은 어쩌면 모임지기 한 명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들자, 나도 조금 무리라도 같이 달려서 두 명으로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첫날 30분을 달리자마자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웠다. 너무 힘들었다. 나로서는, 내 페이스로는 매일 달리기는 절대 무리다.
첫날이었던 22일 화요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지구의 날이라서 그랬는지 비가 왔다. 비가 미세먼지를 씻어주고, 가뭄에 시달리는 봄을 적셔줬다. 그날 저녁에는 아이들을 만났다. 애들 엄마와 작은 아이가 새로 이사 간 아파트 근처에는 아주 큰 공원이 있다. 예전에 살던 곳에도 바로 근처에 큰 공원이 몇 개 있었다. 정말 파주에는 큰 규모의 공원이 많다. 그리고 최근에 개통한 GTX 종착역인 운정중양역에서 그리 멀지 않다. 운정중앙역에 내려 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가 만나는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오면 금방 그 아파트를 만난다. 몇 차례 걸어 다니면서 이 공원이 달리기 하기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건강실천단 첫 날이었던, 지구의 날 밤에 집으로 돌아오기 전 그 공원에서 30분 달리기를 했다. 큰 아이는 그 공원의 한쪽 끝에서 버스를 타고 원룸으로 돌아가는데,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고 외진 곳 인데다, 밤이라 애들 엄마는 늘 내게 큰 아이가 버스 탈 때까지 지켜봐 달라고 했었다. 그날도 아이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달렸다. 한동안 불광천만 달리다가 아주 오랜만에 다른 곳을 달리니 색다른 기분이 들어 좋았다.
예전에 짧은 거리를, 그러니까 2~3 킬로미터 정도만 달렸던 시절에는 여기저기 아무 곳에서나 달렸다. 우리 동네에는 큰 공원이 아예 없고, 적당히 달릴 곳이 거의 없다. 나는 동네 골목길들을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운영했던 달리기 모임에서는 주로 혁신파크에서 달리기를 했다. 그러다 작년 여름부터 장거리 달리기, 적어도 5~6 킬로미터 이상을 달리기 시작하면서는 그 정도 거리를 달릴 곳이 불광천 밖에 없어서, 매번 불광천을 달렸다.
불광천을 달리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천변 산책로를 따라 한강까지 연결이 되니 10킬로미터 이상 20킬로미터 이상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거리를 늘려 달릴 수 있다. 달리는 동안 신호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들 때문에 조금 붐비는 시간대만 피하면 한가로운 길을 달릴 수 있다. 단점은 방금 말한 사람들과 자전거들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달리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리고 매번 같은 곳을 달리다 보니 익숙함과 함께 지루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가끔 일부러 거리를 확 늘려서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도 그런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이번에 파주에서 공원을 달려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일단 달리는 경로를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정말 다양하게 만들 수 있었다. 외곽으로만 돌 수도 있고, 중앙을 가로 질러 갈 수도 있고, 외곽과 안쪽 산책로를 섞어서 돌 수도 있고, 방향을 반대로 틀어서 오르막 길을 반대로 오르내리도록 바꿔줄 수도 있고. 하나의 길을 한 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같은 길을 돌아와야만 하는 단조로운 불광천에 비해 이 공원은 정말 재미있었다.
다만 불광천을 뛰고 나면 잠시 거점에서 세수하고, 물을 마시며 쉬다가 집까지 걸어서 돌아오면 되는데, 파주에서 공원을 뛰고 나면 대중교통을 통해 돌아와야 하는데, 땀에 흠뻑 젖은 몰골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30분 달리기를 마치고 세수를 하고 바람에 땀을 말리고 운정중양역으로 향하기는 했지만, 분명 내 몸에서는 땀 냄새가 났을 것이다. 아무리 평소 땀 냄새가 안 나는 편이라고 이야기를 듣긴 했어도, 그래도 바로 옆에 누군가가 앉는다면 냄새가 안 날 수 없을 것이다. 평소 밤 11시가 넘어서 운정중앙역에서 전철을 타면 사람들이 거의 없기는 했는데, 어떤 날엔 한 칸에 나 혼자 타고 돌아온 적도 있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역으로 갔는데, 그날 따라 사람들이 많았다. 어쩌면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때는 비교적 초기라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암튼 가는 도중에 좌석이 거의 다 찼고, 결국 내 옆에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앉았다.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옆 자리의 사람은 내가 내릴 때까지 특별히 불편해하거나 불쾌해하는 기색이 없었지만,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불편했을 수도 있겠지.
둘째 날이었던 어제는 불광천을 달렸다. 저녁 8시까지 매장을 보는 날이었는데, 마침 매장 안 테이블에 책 모임 사람들이 9시까지 모임을 하겠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 분들이 알아서 매장 문을 잠그고 가시라고 안내하고 나는 퇴근 했었지만, 어제는 나도 할 일이 남아있어서 그냥 9시까지 매장을 보면서 일했다. 책 모임을 마친 분들이 뒤늦게 매장에서 몇 가지 제로웨이스트 물품들을 구매하고 나서, 달리기를 하러 갔다. 책 모임에 속한 분 한 분과 일부러 달리기를 하려고 오신 분이 또 한 분. 이렇게 여성 두 분도 달리기를 하신다고 해서 같이 30분 달리기를 했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니 출발 지점에서 동시에 출발해서 딱 30분 되는 시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처음에는 두 분이 어느 정도 달리시는지 궁금해서 잠깐동안은 함께 달려보면서 자세를 좀 봐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기엔 길을 막으며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두 분의 속도도 예상보다 많이 느렸다. 그냥 내 페이스 대로 달려야겠다고 생각을 바꾸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첫날 파주에서는 540 페이스로 5.4킬로미터를 달렸고, 둘째 날 불광천에서는 539 페이스로 5.4 킬로미터를 달렸다. 일부러 의식한 것도 아니고 속도는 계속 들쭉날쭉 변했는데, 결과는 거의 똑같이 나왔다. 요즘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달리면 대체로 530에서 540 정도 페이스로 달리게 되는 것 같다. 거리가 3킬로 정도 되면 몸에 열이 오르며 페이스가 올라 510 이나 500 까지 올랐다가,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조금씩 지치면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540 에서 550 정도까지 떨어지는 듯. 마지막까지 여기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결국은 전체 페이스는 540 정도가 만들어 진 것 같다. 전날 뛰고 연달아 뛰는 거라서 둘째 날이 더 힘들 줄 알았는데, 첫날이 훨씬 더 힘들었다. 둘째 날은 그냥 달릴 만하다고 느꼈다. 뒤에 일정이 없었다면 아마 거리를 늘려 한 8킬로미터 정도 달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냥 딱 30분에 맞춰 끝냈다.
그리고 3일째인 오늘은 하루 쉴 예정이다. 아침에 고민을 좀 했다. 런닝 복장을 챙겨 나갈 것인지 말 것인지. 외부 일정이 없는 날엔 아침에 그냥 런닝 복장 그대로 출근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아침에 구청 공무원들과 면담이 잡혀 있어서 평상복을 입고 나와야 했다. 오늘은 저녁까지 매장을 보고, 마치고 곧바로 워크숍에 참여해야 한다. 워크숍이 끝나는 시간은 아마 9시 반. 뒷 정리를 하고 나면 아마 10시. 어제보다도 더 늦은 시간이다. 그리고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먼 길을 가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달리기는 무리가 될 것 같았다.
요즘 계속 평일에는 잠이 모자라고, 주말에 몰아서 자고 있다. 그냥 출퇴근만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인데, 매일 달리기를 하려면 체력을 더 길러야 할 것이다. 아마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점점 익숙해지긴 하겠지.
시 쓰기와 글쓰기
건강실천단 첫 날 달리기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를 제목으로 시를 하나 써보고 싶다고. 달리면서 머리 속으로 시를 써봤다. 나중에 전철에 타서는 폰을 꺼내 메모장에 두드렸다. 빠르게 완성하고 문창과에서 시를 공부하고 있는 큰 아이에게 보여줬다. 큰 아이의 평가는 "시가 아니라 에세이 같아요." 였다. 음, 뭐 꼭 칭찬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 딴에는 시라고 생각하고 쓴 글이 '시'가 아닌 것 같다고 하니 조금은 실망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내 기준에서는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날이 바뀌기 전에 '하루 시 한 수 읽기' 모임에 그 시를 공유했다. 그리고 큰 아이가 평가한 저 문장을 그대로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모임 구성원 중 꾸준히 달리기를 하시는 여성 선배님 한 분이 반응을 남겨주셨다.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 입장에서 달리기 '시'를 잘 읽었다고 쓰셨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시'라고 일부러 강조했다는 점. 예전에 철인3종 경기에도 여러 차례 나갔었다고 들었고, 평소에 시를 많이 읽으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다. 달리기와 시 이 두 가지 주제에서 그 분과 나는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재치있는 반응에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나서 생각했다. 결국 나는 시를 계속 쓸 사람은 아니다. 다음날 생각해보니 큰 아이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내가 선택한 단어와 문장은 시 보다는 산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평생 시 보다는 소설에, 산문에 더 관심이 있었고, 지금도 늘 산문을 쓰는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겠지.
아래는 엊그제 쓴 시
달리기 / 감은빛
긴장되는 마음,
심호흡이 필요해
가벼운 제자리 뛰기
준비운동
그리고 출발선
자, 이제 가자
눈은 조금 멀리 전방을 주시하고
상체를 살짝 앞으로 내밀고
가슴과 허리를 쭉 펴고
발이 땅을 박차고 나간다
양 팔은 접은 채로 자연스럽게 흔들어
너무 뒤로 가거나 앞으로 가지 않게
아주 가볍게
옆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
자, 이제 조금씩 속도를 올려
빠르게 다가왔다가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
내 온 몸으로 부딪쳐 왔다가
아주 짧은 순간 안아준 후에 떠나가는 바람
양 옆을 스쳐가는 나무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헐떡여지기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질거야
세상 어떤 무엇이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두 번에 걸쳐 힘차게 숨을 내뱉어
배 속 깊은 곳까지 숨이 닿았다가
내 온 몸으로 산소를 전달해야 해
호흡과 심장 박동과 발을 내딛는 속도를 맞춰
내 몸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에 주목해
나는 온 세상의 기운을 받아 계속 달릴 수 있어
달리는 동안 나는
힘차게 물을 박차 오르는 날치가 되고,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쉬지 않고 날아가는
흑꼬리도요가 된다
명왕성을 지나 오르트구름을 향해가는
보이저1호가 되기도 하고,
심해와 물 위를 오가는 개복치가 되기도 한다
점점 숨이 차고 발이 무거워지면
호흡을 깊게 유지하고
아주 조금씩 속도를 줄여야 해
바로 발을 멈추지 말고
저 멀리 목표를 정하고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나가야 해
달리기를 멈추면
바로 앉거나 눕지 말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걸어보자
땀이 식으면
이제 세상에 대한 사랑이 뜨겁게 차오를거야
지구를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달린다
3월 말에서 4월 초에 혁신파크 공공성 지키기 투쟁 관련 글을 써 달라고 청탁을 받았었다. 그때 개인적인 감성을 많이 담아서 글을 써봤다.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 개인적인 내용이 많았다. 친한 사람들,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지인 서너명에게 글을 보내며 한번 읽어봐 달라고 했다. 반응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대체로 개인적인 내용들은 좀 들어내고, 내가 잘 알고 있는 전문적인 내용들을 좀 더 보완하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그들에게 보내긴 했었다. 내가 봐도 글이 중구난방이었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히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쨌든 담고 싶은 느낌이 있어서 일부러 개인적인 기억들을 담아서 개인적인 감상을 넣었던 것인데, 그게 전체적인 글에서는 군더더기 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그들의 조언처럼 그걸 다 들어내 버리기는 싫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마감일은 훌쩍 지났고, 나는 내가 원하는 느낌의 글을 쓰지도 못하고, 조언을 해준 사람들의 의견대로 글을 고치지도 못했다. 결국 시간에 쫓겨 적당한 타협점을 찾았다. 군더더기 처럼 느껴지는 내용을 조금은 과감하게 지우고 에너지 이야기 부분을 좀 더 보완했다. 하지만 전체 글의 방향을 바꾸지는 않았다. 여전히 어정쩡한 느낌은 남아있었다. 그렇게 글을 보내고 나서는 미련을 버렸다. 나중에 기고 글을 올리는 과정에서 에너지 부분이 조금 더 보완된 수정안이 돌아왔다. 누군가 수정해준 덕분에 지인들의 조언들처럼 무게 중심이 그쪽으로 좀 더 가있었다. 뭐, 어차피 내 손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서 그대로 다 수용했다.
이번 기고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느꼈다. 나, 참 글을 못 쓰는구나. 그리고 의외로 내 주위에 글을 잘쓰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또 하나 느낀 것은 나이가 들면서 좀 쓸데없는 버릇과 고집들이 자꾸 생기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내가 익숙한 방식으로 쓰다 보면 꼭 서론이 길고, 잠시 엉뚱한 이야기로 샜다가 돌아오는 나쁜 버릇이 들어 있다는 걸 느낀다. 그냥 혼자 쓰고 읽을 거라면 어떻게 쓰던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특정한 목적과 특정한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글이라면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는 나는 자꾸 그 방식을 바꾸려는 생각보다는 그걸 통해서 색다른 느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재주는 따르지 않는데 엉뚱한 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바보 같은 모습이다.
오늘 원고료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돈이 들어오면 아이들과 맛있는 것 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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