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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지의 시대
  • 장이지
  • 9,000원 (10%500)
  • 2023-12-22
  • : 1,441






 시집 제목이 《편지의 시대》여서 봤다고 해야겠네요. 아직 저는 편지를 쓰니 말이에요. 예전보다 덜 쓰기는 합니다. 아쉽네요. 다시 힘을 내서 편지를 쓸까 봅니다. 제가 쓴 편지 반가워할지 모르겠지만. 편지를 쓰던 많은 사람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어디 가지 않고 그저 편지를 쓰지 않을 뿐이겠습니다. 지금은 빠르게 연락할 수 있으니. 편지를 쓰려면 편지지부터 봉투 우표 그리고 어떤 펜으로 쓸지도 정해야 합니다. 편지지와 우표 고르는 거 즐거운 일이기는 하죠. 이제는 어릴 때도 편지 별로 안 쓰겠습니다. 아주 안 쓰겠군요. 어쩐지 편지 쓰고 보내는 방법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네요. 편지봉투에 주소 잘 쓰고 우체통에 넣으면 됩니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정말 갈까, 하고 의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 잘 갑니다, 주소만 잘 쓰면. 한번 써 보세요.


 장이지 시인 시집은 처음 만났습니다. 시집이 여러 권 나온 듯하네요. 언젠가 이름 본 것 같기도 해요. 편지를 말하는 시집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봅니다. 《라플란드 우체국》에도 편지를 말하는 시 많을 것 같습니다. 여기 담긴 시에는 편지가 들어간 게 많고 엽서도 쓰는 게 나와요. 엽서는 쓰려고 하지만 못 쓰기도 하는군요. 편지나 엽서는 종이에 상처를 내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도 그런 거기는 하군요. 편지는 한사람한테 쓰는 거기는 하지만, 이런 시집이나 소설 여러 글은 여러 사람한테 보내는 편지죠. 편지를 쓰는 사람 별로 없는 것 같았는데, 작가는 언제나 쓰는군요. 지금 제가 쓰는 것도 편지일까요. 편지와 아주 다르지 않기는 합니다.




 우표를 모으기 시작한 건 우연이었어요 한 친구가 우릴 배신하고 우린 더 단단해졌지요 각기 다른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우린 서로를 그리워하며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누가 먼저였는지 잊었지만 편지와 함께 외국의 멋진 우표도 동봉하게 되었는데 진귀한 우표를 찾으려고 발품깨나 팔았지요 우리의 편지는 차츰 우표를 교환하기 위한 것이 되더니 어떤 일로 영영 끊어지게 되었어요 재수 학원에선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그를 딱 한번 먼발치에서 보았지만…… 그애 잘못이 아니예요 이것은 우표를 붙이지 않은 우정에 관한 에피소드라고 해두죠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우릴 배신한 먼 옛날의 그 친구에게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죠? 우표를 붙인다는 거 말이에요 그 아이는 아무 맥락도 없이 우리에게 등을 돌렸죠


-<우표수집 삼총사>, 65쪽




 편지에서 뺄 수 없는 게 바로 우표죠. 처음엔 친구가 셋이었는데 한사람이 빠졌군요. 셋은 그렇게 되는 일 있기도 합니다. 세 친구에서 남은 두 친구는 편지를 썼는데, 오래 가지는 않았나 봅니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지요. 같은 학교에 다니고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바뀌어도 멀어지는데,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면 더 편지 쓰기 쉽지 않겠습니다.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한때 친구와 편지를 나눈 일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인 듯해요. 저한테 우표는 모으는 게 아니고 편지 쓸 때 봉투에 붙이는 겁니다. 우표 써야 할 텐데.




 흘러가 버렸다 국지성 호우가 쏟아졌다 가방도 마음도 젖었다 가지고 다니던 네 편지를 펼치자 오로라의 악보가 나왔다 네가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언제까지라도 보고 싶었는데 너는 없다 언젠가 학교 앞에서 만난 넌 큰 기타를 메고 있었다 네가 음악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나는 강의실로 가고 있었다 너는 방금 쓴 노래를 들려주겠노라 했다 나는 그런 네 모습이 낯설어서 “나중에, 나중에” 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173쪽




 앞에 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니 쓸쓸하네요. 친구가 죽은 걸까요. 친구지만 다 아는 건 아니었던 듯하네요. 뭔가 해야 할 때는 나중이 아니고 지금이죠. 친구가 들려주겠다는 음악을 듣는 것도.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나중에’ 하고 말한 적 있을지도. 친구한테 한 말은 아니고, 혼자 나중에 편지 써야지 했어요. 편지는 써야지 했을 때 바로 써야 합니다. 미루면 언제 쓸지 몰라요.


 여기 담긴 시 어렵네요. 시집을 보면 이 말 빼놓지 않고 하는군요. 제목에 편지가 들어가서 어떤 편지 이야기가 있을까 했는데. 장이지 시인도 편지의 시대는 끝났다고 시에 썼어요. 그런 시대 다시 돌아올 일은 없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편지를 쓰지 않는다 해도 저는 앞으로도 편지 쓸 거예요. 좀 느리게 간다 해도. 제 편지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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