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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서재
  • 부오니시모, 나폴리
  • 정대건
  • 11,700원 (10%650)
  • 2024-10-14
  • : 604
N25057

"자기 삶을 사랑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왜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지만 겨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구는 것인지."


맛있는 피자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피자를 맛있게 먹어본 적은 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멋진 관광지, 맛집, 맛있는 커피라도 그다지 특별할 건 없다. 특별함을 만드는 건 타이밍, 그리고 누구와 함께 였냐는 거다.


최근 <급류>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정대건 작가님의 위픽 시리즈인 <부오니시모, 나폴리>를 읽고나서 위와 같은 생각을 했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를 떠올려 봤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특별한 순간들, 그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거다.


'나이 성별 무관 같이 피자 먹고 재밌게 노실 분.' 나폴리 여행 중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동행' 글을 보고 네명의 남여가 모인다. 그 무리중 한명은 주인공인 '선화'이고, 한명은 '한'이라는 남자였다. 왜 그들은 나폴리로 왔던 것일까?


한번도 경로를 이탈한적이 없는 삶을 살아왔던 '선화'였지만, 2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가 결국 파혼하게 되고, 한국의 삶이 싫어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던 중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님>의 배경인 나폴리로 무작정 오게 되었다.

[실은 내가 그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데도 결혼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남들처럼 해야해서. 대학 입학, 취업, 그다음은 결혼이라는
과업대로 살아온 내게.] P.26

[정해진 경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안 될 것 같은 게 꼭 내 몸에 갇힌 기분이었어요.] P.28


'한'은 좀 특이했다. 그는 여행자가 아니었고, 나폴리에서 피자를 배우고 있는 요리사였다. 20대 후반에 크게 교통사고를 당한 후 남은 은생을 행복하게 살기위해 무작적 나폴리로 왔고 이곳에서 요리를 배우기로 한 것이었다. '한'에게는 다른 고민도 있었다. 바로 자신의 성 정체성이었다. 연애에 있어서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던 '한', 다가가기 보다는 다가오는 걸 원하는 좋아하는 '한'에게 사랑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한은 상대방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이 먼저 욕망하는 시늉을 해야 할 때마다, 초등학교 학예회 때 억지로 무대에 올라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역할을 연기하던 순간처럼 느껴지고 고통스러웠다.] P.50

[만지는 것보다 만져지는 걸 좋아해요. 세상이 정한 성 역할이 아니라 둘만의 사랑이 하고 싶어요.] P.55


낯선 타국에서 두 사람은 친하게 지낸다. 원래는 잠깐 머물다 떠날 예정이었던 '선화'는 나폴리에 더 머물게 되고, 두 사람은 나폴리를 여향하면서 피자도 함께 먹으면서 서로의 과거를 이야기 하면서 더욱 친밀해 지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가족조차 하지못했던 이해.

[자기 삶을 사랑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왜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지만 겨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구는 것인지.] P.73


두 사람의 감정은 미묘하게 흐른다. 일반적으로 정해진 사랑(결혼)의 범주가 싫어 한국을 떠난 '선화'는 '한'에게 호감을 느끼고, '한'의 성 정체성을 아는 그녀는 먼저 다가갈지 말지 고민한다. 분명 내가 먼저 다가가면 우리의 관계는 더이상 타인이 아니게 될테지만, 과연 이게 맞는 걸까? 그와의 만남을 좋은 추억으로 남겨야 할지, 새로운 사랑의 시작으로 해야 할지 사이에서 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

[한순간의 선택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생각하면 지금도 종종 놀라곤 한다.] P.83


짧은 단편이었지만 상당히 재미있었고, 많은 걸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었다. 위픽시리즈가 작품별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데, 이 작품은 극호였다. 정대건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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