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나를 회계팀 백선화 대리라고 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해방감을 느꼈다.- P9
"결국 우린 모두 왔다가 돌아가는 여행자들 아닌가요."
그 미소는 당신과 싸울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듯한 미소, 모든 공격성을 무화시키는 여유롭고 너그러운 미소였다.- P14
눈을 피하지 마세요. 이탈리아에서는 건배할 때 상대방 눈을 쳐다보지 않으면 7년간 운이 없다고 해요.- P15
여름의 눈부신 풍경들, 동성을 사랑하게 된 엘리오에게 편견 없이 축하하고 응원해주는 아버지의 태도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P17
"왜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행복해지고자 하는 일이 응원받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P18
"외로워서요." 그는 담백하게 말했다.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외로움을 그렇게 부끄럽지 않게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P23
실은 내가 그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데도 결혼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남들처럼 해야해서. 대학 입학, 취업, 그다음은 결혼이라는
과업대로 살아온 내게.- P26
정해진 경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안 될 것 같은 게 꼭 내 몸에 갇힌 기분이었어요.- P28
이탈리아에 왔는데 의무처럼 로마를 가지 않는다는 것, 관성으로 남들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속이 후련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그걸 선택했을 때 느끼는 드문 쾌감이었다.- P38
한은 상대방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이 먼저 욕망하는 시늉을 해야 할 때마다, 초등학교 학예회 때 억지로 무대에 올라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역할을 연기하던 순간처럼 느껴지고 고통스러웠다.- P50
만지는 것보다 만져지는 걸 좋아해요. 세상이 정한 성 역할이 아니라 둘만의 사랑이 하고 싶어요.- P55
자기 삶을 사랑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왜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지만 겨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구는 것인지.- P73
한순간의 선택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생각하면 지금도 종종 놀라곤 한다.- P83
일상에서 얼굴을 알고 지내는데 내 글을 전혀 읽지 않는 지인들보다, 제 문장을 읽는 이름 모를 독자분들이 휠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P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