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죽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사랑하는, 희망하는 그의 사전에는 아마도 없었을 '자살'을 택했다. 

나는 오전10시경에 이 소식을 접하고, 지금까지 큰 느낌이 없다. 흡사 아무런 느낌없어지는 마취주사를 맞은 것 처럼... 

노무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흔히 하는 말로 노빠이며, 2000년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로 난 노빠였다. 

그런 노빠가 오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의외로 담담해보이네'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네'라는 말을 들었다. 

솔직히 동생이 전화로 "형, 노무현이 죽었데"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가슴이 덜컹했지만, 그게 다였다. ... 

 

그래, 무척 슬프다. 그의 죽음을 전하는 TV프로그램에서 그의 얼굴을 보면 정말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다.  

그런데 안 눈물이 안 나온다. 아마도 언젠가 소주 나발을 불며 울부짖을 때가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아니다. 

 

이명박이 죽였다. 

"명바기가 대통령 된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냐? 명바기가 대통령되면 유감이긴 하지만 괜찮다"고 했던 사람들, 그리고 아마 노무현 마저도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오판이 이제는 노무현을 죽게까지 했다. 

단순하게 검찰 수사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볼 수 없다. 검찰 수사, 측근과 가족, 본인에 대한 치욕적인 수사, 그것만이 그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리라. 

그가 공들여온 모든 것이 날아가는 시국, 노무현이라는 아이콘이 가지는 상징성이 훼손되어 그 스스로 노무현을 잊으라고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아닐까. 이겨낼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최후의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으리라. 

그가 5년동안 공들여왔던 제도와 정치지형, 정책, 이 모든 것이 명바기로 인해 공중분해되고 훼손당해오고 있다. 심지어는 그가 간 오늘 하루 그를 추모하고자하는 시민들이 서울 시내에서 추모제 한번 할 수 없게 억압당하고 있다. 

난 2002년 12월 19일, 광화문에서 개표소식을 전하는 조선일보 전광판을 보고 환호했다. 다음 날짜의 노무현 당선이라는 1면 헤드카피를 장식하는 신문을 들면서 조중동이 쓰러지고, 개쓰레기 보수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았고, 오히려 대통령 탄핵까지 당했으니까.  

아직까지 대연정 제안에 대해서는 이해는 하되, 정말 바보같았다고 생각을 하지만, 난 그의 철학과 정책과 제안들을 모두 다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빠라고 놀림감이 되었지만, 난 정말로 그가 연임을 해서 그의 뜻하는 바를 5년 더 해서 이루기를 맘속으로 빌었다. 물론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고, 그 자리를 이명바기가 꾀차고, 나라를 엉망진창 더렵히고 있다.  

역사발전을 가로막고 제도를 후퇴시키고, 국민을 병신으로 만들고 있다. 노무현은 진지하고 집요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명바기가 하고 있는 짓거리를 보고 얼마나 속이 쓰라리고 잠이 안 올까. 내가 해 놓은 작은 거 하나도 누군가가 와서 짖밟으면 애가 타게 마련인데, 국가대계 조차도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짖밟히니, 그 전 설계자인 노무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작년은 그나마 좋았다. 비록 정권 재창출은 실패하여 그의 모든 것이 단절될 운명에 처해져있기는 하지만, 희망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방문객을 맞고 새로운 농법을 구사하여 쌀을 생산하고,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패달을 밟았다. 그는 홈페이지에서 가끔 하고 싶은 말도 했다. 

많은 수의 지지자들이 이 떨어져나갔지만 그래도 최소정예지지자들이 그를 여전히 존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 3월이 되어 그놈의 박연차가 뉴스에 나오고 그는 '생계형 뇌물수수'라는 조롱을 받으며 파렴치한 전 대통령으로 낙인 찍혀가게 되었다. 그 누구를 위한 검찰조사인가를 생각해보면, 이건 그냥 명바기가 노무현을 파렴치한으로 만들기 위해 검찰을 이용해 먼지털기를 한 것 밖에는 안된다.  

암튼 그는 이제 가고 없다. 그의 죽음으로 그의 모든 유산들이 완전히 끝장날지, 아니면 이것이 단초가 되어 명바기 생명력을 끊을 수 있을 것인가? 전자는 쉬워도 후자는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역사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이라면 분명 노무현이 꿈꿔왔던 가치는 다시 다른 모습으로 실현될 것이다. 

아무쪼록 저 세상에서는 밝은 얼굴로 편안히 지내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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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5-24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은 아픈데 저도 눈물이 안나오네요. 슬픔보다 충격과 분노가 커서일 겁니다. 마음에 분노만 가득하네요.
 
싸이보그 그녀 - Cyborg s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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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는 잘 봤지만, <엽기적인 그녀>와 <여.친.소>는 너무 딱하게 봐서 '곽재용' 감독을 믿질 못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TV프로그램에서 여주인공의 인터뷰를 봤었는데... 너무 '괜찮다~'는 느낌을 받아 영화를 검색해봤더니, 으외로 영화도 '괜찮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에서 촬영되고, 일본 배우들이 나온다는 이색적인 소개를 보고서는 한번 봐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재미있었다.
코믹멜로에, SF, 재난블럭버스터가 섞여있다. 뭐... 이런 영화를 보고 '쓰레기 영화'라고 비난하는 쪽도 있겠지만, 이정도면 최소한 별 4개를 줄만한 "코믹멜로 앤 SF재난블럭버스터"다.

일본에서는 관객을 좀 동원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반응이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데, 영화홍보사에서는 왜 이런 포스터를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포스터만 보면 정말 '곽재용식 또 한번 비난 받을 멜로 영화'라는 딱지를 받을 만하다.

너무너무 잘만들고 좋은 영화는 아니지만, 오락 영화로서는 참 잘 만든 영화다! 재밌다!
물론 30대 중반 이후 남성들에게는 그러할 것 같다.
생활에 찌든 그대여~ 여주인공 아야세 하루카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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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보그 그녀 - Cyborg s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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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기대 없이 봤는데, 최고다! 코믹연애인줄만 알았는데 SF, 재난 블럭버스터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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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잉 - Kno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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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나 재난영화가 아니다. 인류구원에 대한 영화다. 영웅이 없다는 점에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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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 The R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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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에 대해서 저처럼 전혀 모르고 보시는 분들은 그냥 모르시는 채로 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방금 시사회를 보고 왔다.
10분을 지각하여 헐레벌떡 자리에 앉아서 봐서 좀 아쉽긴 하지만, 1시간50분 내내 정말 한순간도 놓치지않고 영화에 몰입을 한 것 같다.

삶의 무게란 것은 누구의 삶의 무게도 절대로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는 그런 삶의 진중함, 그리고 너무나도 진솔한 사람의 얘기를 감정적이지 않고, 일방적이지 않게 잘 다루고 있고 있다.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럽다.

절대로 가볍지 않는, 아니 너무나도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풀어나갈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들 피도 눈물도 없는, 죽여도 시원찮다고 생각했던 '나치 전범' '나치 부역자들'을 중심에 두고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시도일 수 있다. 영화는 그 전범, 부역자를 풋사랑이라는 열정의 시각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게...

배우들의 연기 또한 100점을 주고 싶다. 특히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초반에는 단순히 이뻐서, 섹시하다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아니라 순박하게 살아가는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거칠게 살았지만 그것은 다만 살아있는 인간이었기에 남을 속이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온 사람,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용소 감시원이 되는 것도, 아우슈비치에 보낼 수용자들을 선별했던 것도, 마을 전체가 폭격되는 상황에서 폭격 맞아 불에 타고 있는 교회 안에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문을 열어달라고 간절히 외쳤을 때도 그녀는 다만 있는 그대로, 모자란 양심 그대로 행동하였을 것이다.

죄에 대한 심판을 받을 때 조차도 그녀는 담담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저지른 죄가가 가벼운 것은 절대 아니지만, 실제 보다 훨씬 과장되게 덮어씌어진 죄에 대해서 그녀는 억울해하며 항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끄러움을 알았기 때문일까?

그녀가 자살하기 1주일 전 스무몇해 만에 만난 그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 배운게 있냐고 했었던지 모르겠다. 그녀는 아무것도 배운게 없고 글만 깨우쳤다고 했다. 죽은 사람들은 죽었을 뿐이라며...

사람이 백짓장 같은 순 없다고 생각한다. 또 불의에 직면했을 때 최소한의 정의감을 발휘해야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내 좁은 식견 내에서의 짧은 생각일 뿐일 것이다. 지독한 부정에 직면했을 때, 그 속에 내가 한 명의 가해자일 수도 있을 때 정의감을 발휘해서 나는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은 무척 큰 일일 것이다.

우리 역사도 독일과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물론이고 일제에 부역한 전범들을 우리는 쉽게 용서할 수가 없다. 만약 서대문형무소의 어떤 하급 감시원에 대한 시각을 이 영화처럼 가진 우리나라 영화가 있었더라면 우리 사회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하다. 나로서도 처음 상상해보는 질문이라.. 대답하기 어렵다.

어떤 부정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단지 살아가기 위해 행동했을 뿐인 아주 평범하고 순한 사람들의 죄는 어디까지일까?

영화는 이 역사의 죄인을 죄인인줄 모르고 사랑했던 소년이 법대생이 되어 친구, 피해자, 비판자, 법률가 입장에서 그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던져준다.

마지막에 장년이 된 '꼬마'가 그녀의 유품을 가지고 피해자에게 찾아간 장면도 대단히 영화를 사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한편의 인간극장처럼. 결국 피해자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피해자 여성이 깡통을 빛바랜 흑백사진 옆에 두었을 때의 그 흑백사진 안의 얼니 소녀들과 사람들은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하다. 피해자 어머니를 향해 "가해자도 자살을 했다는 군요. 20년간 감옥에서 살고 결국 죽었어요."라고 마음속으로 독백이라도 했을까?

책으로도 한번 봐야 영화가 좀더 이해될 것 같다. 책을 보다보면 아.. 영화의 이 장면이 이런 의미였구나하고 반추되는 보람도 얻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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