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웃긴 대목들도 꽤 있다.
제목의 라벨스타인은 앨런 블룸을 모델로 한 작중 인물.
그러니까 형식적으로는 소설로 제시되는 책이긴 하다. 그런데 다 바로 화자 "나"는 솔 벨로우로, 라벨스타인은
앨런 블룸으로 여겨진다. 책이 나왔을 때, 이걸 회고록으로 보면 안되고 소설로 봐야 하지 않는가, 그게 벨로우의 의도였다. 두 사람의 생애를 책 속으로 읽어넣지 마시라.. 얘기하는 이들 있었던 거 같다. 지금은, '거기 이름 빼고 허구가 있음?'이 대세인 듯.
아무튼 다시 생각해도 웃긴 대목이 있는데
병든 블룸에게 지상에 남은 시간이 실제로 셀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시간의 문제지 죽음이 그의 아주 가까이에 왔음이 확정됐을 때. 이때 블룸은 갑자기
아무에게나 성욕을 느끼게 된다. 갑자기 아무에게나 sexual feeling이 일게 된다.
블룸이 벨로우에게 말한다.
"죽음이 이토록 기묘한 최음제일줄이야." (기묘한 최음제: weird aphrodisiac.)
저 영어 구절도 웃김에 조금 기여하는 거 같다. 죽음과 최음제(aphrodisiac)의 연결을 죽어가는 사람 자신이
한다는 게 그 자체로 참 웃기기도 한데, 최음제라는 말도 웃김.
이 두 사람이 실은 15년 나이차 나는 사이라는 걸 기억하면서
"형"을 넣어 생각하면 조금 더 웃겨지기도 한다. 형. 죽음이 얼마나 이상한 최음제인줄 알아?
죽음이 이토록 기묘한 최음제일줄 몰랐다고 하더니
"그런데 내가 왜 이 얘길 형에게 하고 있지? 형이 알아두면 좋을 거 같다 생각했나 봐."
이미 죽은 친구를 기억하면서
자기 죽음도 가까이 있음을 자각하는 노인이 쓴 책이라
죽음이 중요한 주제일 수밖에 없겠기도 하다. 이 주제에, 30대의 나였다면 별로 마음가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귀기울여 듣게 되는 여러 대목들이 있다. 죽음의 한 (존엄한?) 방식을 "legit"하게 제시하는 책일 거 같다. 순전히 농담의 연속 같기도 한데 그러나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