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끓어 넘치고 삼키는 것들 사이 무엇이 남을까. 느릿느릿. 저밋저밋. 애벌레, 도랑물, 지저귐, 웃음소리, 집요하게 악착같이 끈질기게 모조리 삼켜버리는 검은 열덩어리.
그래도 검은 잿빛으로 변해가는 저 끝에 여린 연두빛도 아른거리겠지. 가녀린 나비의 숨소리 들리겠지.
답답하다.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한다. 대면하거나 응시하거나 그래도 별 수 없다. 다시 들여다본다. 선을 따라가거나 무늬를 따라가본다. 뭔가 희미하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넘는 방법도, 타오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몰라, 그저 이렇게 남기기로 한다.
막막했다. 막막하다. 여전히 진행형인 일들. 먹먹함을 잊은 자들. 연민이라는 것의 의미마저 모르는 사람들. 눈물을 잊은 자들. 눈물을 잃은 자들. 다리가 무너져야 다리가 튼튼해지고, 배가 가라앉아야 배가 뜬다. 배는 또 바다로 떠날 것이고, 다리가 없는 다리는 또 허공 위에 지어질 것이다. 매듭을 모르는 순환의 고리.
활자. 텍스트. 글. 중독이라고. 글을 읽는 사람, 글을 해석하는 사람, 글을 보는 사람, 글을 무서워하는 사람, 글을 찾는 사람, 글을 어지러워하는 사람. 글을 모시는 사람들까지.
글에서 찾아낸 밑줄의 마음들을 녹여내고 싶다. 돌멩이 하나하나 돌탑을 쌓듯이 빈 공간을 활자로 채우고 나니 화병이 볼만해진다. 네 손 끝과 내 글끝이 닿도록 펜을 그린다.
날리거나 불리거나 걸리거나 네 마음이다. 내 마음이다. 그 색색의 마음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펄럭인다. 그림자에 텍스트를 넣어볼까 하는 오만을 접는다. 리폼 패브릭 스티커를 이용하거나 면섬유에 색을 입혀 오리고 붙인다.
간절함들이 어서 닿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