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여왕 백 번째 여왕 시리즈 2
에밀리 킹 지음, 윤동준 옮김 / 에이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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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타의 족보 잘레를 지키고 하스틴에 의해 점령당한 타라칸트를 구하기 위해 칼린다는 데븐 일행과 함께 타렉의 아들 아스윈 왕자를 찾아 나선다.

운명의 신은 칼린다에게 어떤 운명을 할애했을까?
원하지 않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 서열 토너먼트를 치러야 했지만 그런 잔인한 악습을 없애기 위해 칼린다는 토너먼트에서 서로 싸우지 않도록 자매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죽음에 진심 어린 애도를 표했다
피비린내 진동했던 결투장은 칼린다의 설득에 동조하는 자매들이 생기고 그녀로 인해 새로운 룰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그녀를 응원하고 그녀는 킨드레드가 되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의 토너먼트를 멈추지 않았다.
자나단으로 피신한 아스윈을 찾았지만 아스윈의 킨드레드를 뽑는 각국의 공주들과 토너먼트를 치러야만 하는 칼린다.
원하지 않았지만 갖게 된 권력과 백성들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자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 토너먼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하는 칼린다.
그런 칼린다에게 접근하는 타렉과 똑 닮은 아스윈
칼린다와 떨어져 난민이 된 데븐 
이들은 모두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새로운 형식의 판타지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려한 결투 실외에도 볼거리가 풍성할 거 같은 배경이 이 이야기의 최대 장점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연약한 듯 강인한 의지가 돋보이고
땅. 바람. 물. 불의 힘을 가진 부타들에 대한 이야기도 특별하진 않지만 특별한 배경 때문에 더 빛나 보이는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세 번째 이야기 악의 여왕이 기다리고 있음이다.

불의 여왕에서 칼린다는 자신이 버너라는 부타의 힘을 가졌다는 걸 인정하고 그것을 이용하고 극대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 사람의 군주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지 새삼 깨닫는다.
부타는 타렉에 의해 도륙을 당하고 그 명백한 이유를 얻기 위해 백성들에게 심어 놓은 부타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심들이 무차별 살상과 이유 없는 거부감을 갖게 만든다.
그 모든 것은 단지 천명의 부타의 피를 얻어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타렉의 소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그토록 지킬 것을 위해 싸웠으나
결국 잘레를 이용한 악마 소환은 이루어지고 타렉의 모습으로 변신한 악마는 세상을 파괴하기 위한 전진을 시작한다.

미약하기만 한 소녀 칼린다의 어깨에 지어진 무게가 너무 버겁다.
타렉이 심어 놓은 부타에 대한 증오심이 그녀에게 열광하던 백성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돌변시켰다.
칼린다는 돌아선 그들의 안전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그녀는 데븐과 아스윈 두 사람 중에 누구를 택할까?

칼린다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고달프다.
그저 사랑하는 이들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게 전부인 그녀에게 운명은 쉬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언제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한 결정이다.
그것이 다음 편 악의 여왕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조바심이 난다.
아직 정체를 다 모르겠는 아스윈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이 더 강한 데븐
이 둘 사이에서 칼린다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나는 그것이 제일 궁금하다.
아직까지는 첫사랑 데븐에게 마음이 더 많이 있지만.
사랑은 움직이는 거니까.
나는 아스윈이 더 매력 있게 느껴지기에 데븐 보다 아스윈에게 한 표 던져본다.
재앙을 몰고 온 아스윈이지만 칼린다의 악마의 불을 잠재워 주는 제국의 희망이냐
지고지순하지만 약간 우유부단한 데븐이냐.

이 칼린다라는 여전사에겐 어떤 남정네가 더 어울릴지 짝 맞춰 보는 재미도 있다.
작가의 마음이 어디에 있던 나는 아스윈을 응원할란다!


내가 좋아하는 판타지
여자 주인공이 시련에 굴하지 않고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아가는 모습이 멋지다

내 어릴 땐 이런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의 그늘에서
남자의 도움을 받아
남자가 이끄는 대로
남자의 결정에 만족하며
남자에게 자신의 모든 걸 일임하고
남자의 선택만을 기다리던

그런 줏대도
자존심도
열정도
자존감도
주체성도 없는
그런 여자들에 대한 학습만이 난무했다

이 이야기를 많은 공주들에게 전하고 싶다
내 안의 힘을 결코 간과하지 말고 살라고
부당해도 안주하지 말고 칼린다처럼 맞서라고
그 용기에 반드시 힘을 보태주는 사람들이 꼭 있을 거라고
그러니 절대 나약을 미덕으로 삼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때론
낯선 이야기 하나가
많은 걸
바꿀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르더라도
결국 세상의 모든 작품은
그걸 보고
그걸 읽고
그걸 듣고
그걸 만지고
그걸 느낀 사람의 의도에 달렸다는 걸
그걸 말하고 싶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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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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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자음과 모음 경장편 소설상 수상작
가장 살벌하고 황당무계한 소동극

표지에서 알 수 있듯이
서로 꼬리를 물어가며 얽히어 돌고 도는 느낌이
마치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내지는 쳇바퀴를 연상하게 한다
현실을 잘 표현한 신선한 문체였다.
시집처럼 앙증맞아서 가지고 다니며 읽기도 좋다.

범상치 않은 재미 속에
현실을 풍자하는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신인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엄마를 위해서 원하지 않는 삶을 살 각오가 되어 있는가?




시트콤을 읽었는데
시트콤 한편을 본 것 같다.
분명 읽었는데
무언가를 본 느낌이다.

재. 미. 있. 다.
그리고
무. 섭. 도. 록. 슬. 프. 다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이토록이나 웃픈 건지 몰랐다

대화와 지문 같은 짧은 설명으로 인해 
읽는 이가 머릿속에서 스스로 영상을 만들어내어 재생한다
동영상을 보는 거 같다는 심사평처럼.

그녀는 인생이라는 강요에 가장 잘 대처하는 방법은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학교에서 바지 없이 깨어난 남자는 바바리맨 취급을 받지만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봐 주는 사람은 없다.
그는 졸지에 치한이 되어 경찰에 붙들리지만 어차피 치한보다 더한 놈이란 건 밝혀질까?

그들은 한 쌍의 로맨틱한 시체 같았다고 한다.
그 시체들 중 한 명은 해서는 안될 짓을 했고, 한 명은 치기 어린 정의감 때문에 세 인생을 한순간에 말아먹을 뻔했다는 건 알고는 있을까?

친구는.
십 대 시절 친구는.
무슨 짓을 해도 같이해야 한다고.
피 끓고, 머릿속에 온통 성에 대한 호기심이 들끓어서 생각 대신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런 시절에 나를 제어해주고, 나를 말려줄 수 있는 친구는 또 얼마나 있을까?

아이는
딸아이만은
내 삶을 대물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모성애일까, 엄마 욕심인 걸까?
엄마는 자신이 재단해 놓은 틀에 딸아이를 억지로 밀어 넣고 등까지 떠민다.
아이는 숨이 막히지만 엄마는 절대 듣지 않는다.

엄마라는 관 속에 생매장 당할 바에는 차라리 머리가 깨져 죽는 게 낫다.


듣는다는 건
들어준다는 건 
지. 는. 것. 이. 다.

기싸움에서 지면 안 되는 게 엄마의 입장이다.
왜?
엄마니까.


"넌 할 수 있어! 무조건 서울대 가. 안 그러면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서울대가 그렇게 좋으면 엄마가 수능 쳐서 들어가!"


연아 엄마 연희 씨.
집에선 그러지 말아야지
최소한의 양심은 지켜야지
그래서 딸아이가 서울대 가기를 원한 거야?
서울대 가면 그렇게 안 살 거 같아서?
그렇게 안 사는 게 어떤 건지 치부를 들키고 나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인가?
당신이 연아를 이해하는 것 보다 연아가 당신을 더 많이 이해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당신만 모르는 일이지...


엄마도 나처럼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엄마 역시 나처럼 살기 싫어 울어본 적이 있었을까? 그러던 와중에 어쩌다 보니 자신과 똑 닮은 나를 낳고, 당신의 삶을 나에게 따라놓은 걸까?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말이다.


 

짧은 이야기에 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모두 주인공이고
모두 주변인이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에 연루된 인물들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하루의 마지막을 향해 각자의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끝났다 싶을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언제나 현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계속되니까.
그래서 이 모든 숨 가쁜 사건 속에서 속시원히 해결된 건 없다.
그것 또한 현실이다.
현실처럼 명쾌하지 않은 것도 없지.

첫 등단 작품인데
새로운 소설 기법으로 읽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시트콤 기법이라 내 맘대로 붙여본다.
유행처럼 번질 기세다.

짧고
굵고
강하게
임팩트 쩌는(이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이보다 더 적당함을 찾기 어렵다)
새로운 소설
시트콤.

많이 시청해주세요!
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왜냐하면
읽고 있는데 정말 보고 있는 거 같으니까!


아무도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한동안 정적만 감돌았다.
어색함을 느낄 필요가 없는 실속 있는 침묵이 그들을 점차 진정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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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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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비바, 제인

 

레이철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 있다면 단연 레이철이다.
나는 그녀의 신랄함이 좋다.
필립 로스를 좋아하고, 교육자였고, 아비바의 엄마이고, 로즈의 친구이며 자신의 삶을 주관 있게 살아가고 있고
어떤 일에도 호들갑스럽지 않은 레이철 셔피로.

예순넷이 된다는 건 다시 고등학생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할 말이 많다만!
나는 언제 그만해야 하는지 안다.

 

나도 그녀처럼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어졌다.
아비바에게 그녀는 친구였고, 루비에게 그녀는 처음 보지만 언제나 알았던 할머니였다.
자식의 어리석음을 걱정하지만 탓하지 않았고, 그저 지켜보는 거 같았지만 성인인 딸이 제대로 선택해주기를 바라면서 표 안 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소식한 통 없이 그녀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뜬금없이 전화해서 손녀딸을 찾아와주라는 부탁에도
잔소리 없이 쿨했던 레이철 셔피로.
아비바에게 전해졌을 그녀의 한 부분이 제2의 인생을 살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을 게다.

나는 이따금 마이크와 마주친다. 그는 재혼했다. 덧붙이자면 그때 그 정부는 아니다. 그 불쌍한 여인은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그를 딴 여자한테 장가보냈다. 나는 내 처지보다 그녀의 처지에 훨씬 더 분노했다.
.
.

레빈 얘기도 해야 할까? 그는 여전히 하원에 있다. 다른 사람들 딸 앞에서 제 성기는 그럭저럭 잘 간수하고 다니는 모양이다. 그 얼마나 훌륭한 남자인가.


아비바 스캔들로 학교에서 사임 후 그녀는 남편의 오랜 정부 최를 찾아간다.
그곳에서도 그녀는 마치 오랜 친구와 차 한 잔을 마시듯 수다를 떨었다.
화를 내고, 분노하고,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자신의 감정을 비워내며서 상대에게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그녀의 방식이 내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비록 남자 보는 눈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제인 영

 

 

제인.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영희와 같이 흔한 이름.
아마도
특별했던 이름으로부터 숨기엔 가장 보통스러운 이름이 간절했을 것이다.
루비라는 이름의 딸과 함께 메인주 엘리슨 스프링스에 살면서 행사 기획사를 차린다.
주로 웨딩 플래너가 주 업무이기는 하지만.
똑똑하고 조숙한 딸 루비를 조수 삼아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당신이 내 정체에 대한 당신 생각을 떠벌려봤자 그게 나한테 무슨 영향을 주겠어? 사람들이 신경이나 쓸까? 아마 안 쓸걸? 난 일개 시민에 불과하고 누구한테 표를 받아야 할 일도 없잖아? 난 아무 때고 딴 데로 이사 가서 웨딩플래닝을 하면 그만이지.


이렇게 말했지만 상황이 그녀를 그녀의 오랜 꿈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한다.
과거의 그림자를 걷어낼 마음의 준비가 이제서야 되었다.
루비.  그 한고비만 빼고.




루비

 

 

열세 살.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고, 엄마와 함께 메인 주에 산다.
학교생활은 그닥 재미없다. 별로 인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치한 애들하고는 레벨이 다르니까.
친구 같은 엄마의 조수로서 엄마의 일을 돕고 있다.
엄마가 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선거운동을 돕는 일도 한다.
그러다.
알게 됐다.
엄마의 과거를. 
내 출생의 비밀을.

"엄마는 왜 시장이 되려는 거야? 그렇게 많은 비밀을 가진 사람치고 너무 멍청한 짓 같아."
"나도 모르겠다, 루비. 아니, 알기야 알지, 네가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야."
"지*한다, 아비바 그로스먼!"
엄마한테 '지*한다'고 한 건 하나도 미안하지 않아. 왜냐면 (1) 십삼 년 동안 거짓말을 한 주제에, (2) '나이가 들면'알게 될 거라니, 너무 어이가 없잖아.

 

무모하게 보이겠지만
난 아빠를 찾아 플로리다로 간다.
우리 아빠는 하원의원이 분명하다.



엠베스

 

 

그녀는 변호사이자 하원의원의 아내다.
그녀를 보자니 미국 드라마 굿 와이프의 첫 장면이 떠오른다.
기자회견장. 플래시가 불꽃처럼 터지는 그곳에서 다소곳한 알리샤는 남편의 곁을 지킨다.
성 스캔들로 위기의 시간을 맞은 그 남편 옆에서 남편의 손을 쥐여주고 웃음으로 우리는 굳건하다를 보여준.

사실 남편이 바람피운 게 그렇게까지 대수로울 건 없었다. 공개적으로 바람피운 남편을 둔 아내가 됐다는 게 힘들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여자라는 몸에 안 맞는 수의를 입고 있는 게 힘들었다. 남편이 사과할 때 그 옆에 온순하게 서 있는 게 힘들었다. 눈길을 어디다 둬야 할지 파악하는 게, 적절한 정장 재킷을 고르는 게 힘들었다.

그녀는 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자신을 아비바 게이트 이후에도 남편 곁을 지켰다는 사실로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남편은 하원의원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녀 덕에.
아마도 그녀는 아비바를 희생양으로 내버려 둔 건지도 몰랐다.
어쩜 그 대가를 지금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어쩜 내비치지 못했던 가슴 앓이가 암처럼 그녀 몸에 기생한 건지도 모른다.
어쩜 두 아들과 아들과 다름없는 남편을 지켜내는 게 그녀의 의무였는지도 모르지.

이것이 결국 그녀의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를 위해 그녀는 거짓말을 했고, 사람들을 속였고, 오욕을 참고 견뎠고, 알고도 모른 척했다. 이 남자가 불쾌한 일을 겪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비호했다. 루비, 세상의 파괴자로부터 이 남자를 지켜냈다.
그녀는 그 어떤 여자보다 더 에런 레빈을 사랑했다.

 

 

그런 거다.
부인이란 직업은...


아비바(봄철, 순진무구함)

스무 살 여자아이는 사랑을 착각했을 뿐이었다.
호기심이 사랑으로 변질되기 가장 쉬운 나이.
동경을 사랑으로 오해하기 가장 쉬운 나이.
성공한 남자가 멋져 보이는 가장 어린 나이.

그는 장난감이 잔뜩 있는 어린애이고 당신은 그가 가끔 생각날 때만 갖고 노는 인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당신은 끊임없이 그가 그립다. 심지어 그와 함께 있을 때도 그가 그립다.

그가 가고 나면 당신은 그의 쓰레기통이나 여행가방이 된 기분이다. 사랑받는 게 아니라 기능성 도구가 된 기분이다.

 

아비바가 자신을 위해 옳은 선택을 해주길 바랐다.
아마도 자신감 결여에서 온 결핍을 대단한 남자와의 사랑으로 채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불륜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녀에게만.
그는 재선했다.
그리고 그의 결혼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본질을 흐리는 것들이 그녀의 인생을 망가트렸다.
물론 그녀의 행동이 옳은 건 아니었지만
공인으로서 자기 딸 나이의 여자와 불륜 행각을 벌인 정치인은 면죄 받았다.
그 스무 살짜리 여자는 그 남자의 죄까지 걸머지고 난파되었다.
아비바 그로스먼이라는 이름으로는 어디에서도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왜냐면 그 편이 더 나으니까. 결국 언젠가는 나오게 될 얘기였어. 난 그때 일이 부끄럽지 않아, 더이상은. 또 당시 내가 처했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가 했던 일들도 부끄럽지 않아.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그때 일로 나를 평가하고 싶어서 나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면, 그건 그들의 선택이지."

혹독한 시련은 강건함을 키운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대가를 치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남자들이다.
그들은 책임도 지지 않았지...

부당함을 느끼는 동시에 통쾌했다.
난장판을 만들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토록 깔끔하게 갈무리하다니.
울분을 토해도 모자랄 이야기를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게다가 유머러스하게까지 포장하다니.
명치끝이 꽉 막혀서 체증을 유발할 거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희망스럽게 끌고 가다니.
각자의 입장에서의 여성들이 한 사건에 연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찌질하지 않게 인생을 통제하는 방식이 감동적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여성들은 죄다 멋스럽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복병 같은 암초를 만나게 된다.
그것들은 전부 내 선택의 결과이다.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역부족일 때도 있다.
그 결과는 나를 파괴하려 하지만, 아니 파괴하지만, 그걸 견뎌내고, 이겨내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아!비바는 실패하는 인생을 선택했지만.
제인은 실패한 인생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생을 선택했다.

불륜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은 불륜을 저지른 두 사람이 똑같이 져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여자보다는 남자들에게 더 많은 면죄부를 준다.
남자는 그래도 된다는 누가 정했는지 알 수 없는 불문율이 적용받는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모든 경멸과 모욕은 여자에게 쏟아진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런 이야기엔 국적도 선진국도 문명국도 다 포함되지 않는다.
역사가 그래왔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가정을 지키는 건 왜 여자여야만 할까?
엠베스가 알리샤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하원의원 레빈은 없었을 것이다.
힐러리가 옆에서 미소 짓지 않았다면 대통령 클린턴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해서 남은 건
인생의 그늘이다.
얼룩진 고난의 행보이고.
그녀들의 시간 낭비였을 뿐이다...

모건 부인처럼 나이 들고 싶어졌다.
한때의 실수를 실수로 알아봐 주는
그래서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그런 어른으로...


아~ 비바, 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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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쳐다보지 마 스토리콜렉터 67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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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보다 더 범인을 잘 잡는 심리학자. 이번엔 어떤 범인이 그를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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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우주.지구.생명.인류에 관한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이정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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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지구
생명
인류

네 개의 분류로 나누어 설명되어진 책

말하자면
지금 살고 있는 이 행성에 대한 포괄적 이야기로 보면 될 거 같다

지질학자인 월터 앨버레즈의 글은 내레이션 같다.
지구 생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화면과 쉬운 설명을 듣는 느낌이랄까.
에세이처럼 쓰여져서 과학지식이 다채롭지 못한 나 같은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은 책이었다.


1991년에 발견한 밈브랄 노두는 6600만 년 전 특별한 바위가 떨어진 시간이 생명 역사에서 특별한 사건인 대멸종이 일어난 시점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말 그대로, 그 충돌과 대멸종이 없었다면 십중팔구 공룡이 지구상에서 여전히 가장 큰 동물일 테고, 포유류는 여전히 작을 것이며, 인간은 등장하지도 못했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를 현재로 이끈, 불가능해 보이는 역사적 여정의 출발이자 가장 극적인 사례이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아주 작은 차이로 지구에 행성이 떨어지고 그 충돌로 공룡들의 세계가 멸망했지만 그로 인해 인간 포유류가 살아갈 환경이 주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깨달음이 얼마나 소름 끼치는 것인지...
어쩜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가 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갑자기 쥬라기 공원이 생각난다.
공룡 DNA를 복제해서 공룡들을 되살려 낸 테마파크.
인간이란 어찌도 이리 오만방자한 걸까?

빅 히스토리
큰 관점에서 보는 지구의 역사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우주, 지구, 생명, 그리고 인류에 관한 순서로 책이 쓰인 깊은 뜻이 있는 거 같다.
빅 히스토리는 우연의 연속이라는 파노라마와 같은 관점에서 역사가와 과학자 들이 함께 전통적 역사에 우주와 우주의 과거를 연구하는 과학적 통찰력을 결합시켜 새롭게 개척한 분야이다.

지구의 근간을 알아가자니 내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주 자그마하게 느껴진다.

우주는 영원하지 않고 수명이 유한하며 역사를 가진다는 사실을 마침내 증명한 것은 허블뿐 아니가 휴메이슨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허블은 망원경 때문에 알았는데 휴메이슨이 누군지는 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는 허블의 연구에 지대한 도움을 준 조수이자 동료였다. 하지만 학계는 허블은 인정해도 휴메이슨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중퇴자였고, 노새 마부였으며 천문대 수위였으니까.
1950년이 되어서야 스웨덴의 룬드 대학에서 휴메이슨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늦게라도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월터 앨버레즈는 2006년부터 버클리 대학에 ‘빅 히스토리: 우주, 지구, 생명, 인류’라는 제목의 강의를 개설하여 운영해오고 있고, 이 책은 그 강의에 기반한 것이다.  그동안 별개의 학문으로 발전해 온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화학, 인류학, 고고학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모두 포괄적으로 다룬다.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최적의 학문"

 

빅 히스토리란 개념을 생각해낸 것만으로도 지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역사학자와 과학자들의 생각에는 분명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점을 다 같이 생각해봄으로써 좀 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만약 현재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 물질 종류, 또는 기본상수 들이 달랐더라면 인간이 처한 현실 중 어떤 양상도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 중 하나라도 현재의 값과 조금만 달랐다면 우주는 지금과 완전히 다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 조건들이 핵융합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우리 태양은 생명이 진화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천천히 탔다.

인고의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니 인간이 태어나는 신비와 다를 게 무엇일까?
자연과 우주란 이렇듯 오묘하다.

인간을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보았을 때 산맥은 소통과 이동에 결정적 장애물이었다. 히말라야산맥과 알프스산맥은 인도와 이탈리아 문명을 보호해 주었다. 물론 침략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그중 어떤 것은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비행기와 거대한 터널을 이용하여 산맥들을 쉽게 가로지르므로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산맥이 역사에서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했는지 잊게 된다.

 

산맥을 가로지르게 되면서 인류는 광범위하게 서로 연결되게 되었다.
그것이 좋은 의도인지 아닌지는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서로의 문명이 섞이고, 서로의 문화가 어우러지는 결과물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니까.

어떻게 문명이 그냥 사라질 수 있을까? 역사학자들은 청동기시대의 도시들이 사라진 원인에 대하여 가뭄, 이주, 철기시대의 도래 등을 포함한 몇 가지 가설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가설에 특히 흥미가 있다. 하나는 스탠퍼드 대학의 지구물리학자 아모스 누르Amos Nur가 제안한 것으로 넓은 지역에서 지진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가설이다. 또 하나는 밴더빌트 대학의 역사학자 로버트 드류스Robert Drews가 제안한 것으로 후기 청동기시대 도시들이 방어 수단으로 이용하던 마차 활쏘기 부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이방인 부족들이 도시들을 차례로 점령하여 파괴했다는 가설이다.이유가 무엇이든 결과는 끔찍했다. 키프로스에서만 기원전 1200년경에 팔레오카스트로Paleokastro가 불타고 아이오스 디미트리오스Ayios Dhimitrios는 폐허가 되었으며, 신다Sinda, 키티온Kition, 엔코미Enkomi가 모두 불탔다. 중동에서 문명이 회복되는 데에는 수백 년이 걸렸다.

 

포르투갈이 일찍이 탐험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배로 탐험을 하면서 지도를 만들고 다른 대륙과 교류가 있어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했었지만 결국 리스본에 8.5의 강진이 일어남으로 인해서 탐험에서 발견한 많은 자료들이 소실되었기에 이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되어 버렸다.

지금도 요즘 들어 부쩍 지진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되고 있다.
그래서 저 밑줄 그은 내용을 담담하게 지나칠 수 없다.
지진과 함께 오는 쓰나미는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기록이라는 것이
특히나 우리가 지금 즐겨 하는 디지털 기록이라는 것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을까?
저런 자연재해로부터?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우리를 살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이다.
멸종한 공룡이 우리에게 어떤 경이감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공룡 취급받는 시절이 올지 모른다.
먼 미래의 이 지구의 주인들이 우리의 화석을 발견하곤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그려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생각해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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