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 손웅정의 말
손웅정 지음 / 난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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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 건 난데 어느 순간 책이 나를 소유하고 있더라고요. 내 소중한 공간을 다 차지하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더라고요.



책쟁이들이라면 위에 말에 고개를 하염없이 끄덕일 것이다.

이 문장에 인덱스를 붙여놓고 한참을 되풀이 읽는다.

사실 나는 이 책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의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버린다' 이 부분이 정말 맘에 안 들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자동 재생되는 손웅정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 목소리에 담긴 어떤 힘이 그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아까 와서 책에 밑줄도 못 긋고

접지도 못하고

메모도 못한다.

그래서 내 책은 읽은 티도 안 나는 새 책들뿐이다.

방안 가득 책무덤 속에서 책 제목을 또 되뇌어 본다.

'버린다'는 아직 내게 닿지 않는다.

나는 아직 그 단계에 닿지 못했다..

책은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손웅정 선생님 특유의 목소리가 자동 재생되는 신기한 현상을 느꼈다.

그의 힘찬 목소리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거는 거 같다.

그래서 글로 읽으면서 소리로 듣는다.

덕분에 뇌에 쏙쏙 새겨지는 거 같다.

중간에 그의 독서 노트가 담겼다.

정말 문장 하나하나가 단순, 명료, 담백하다.

쥐스킨트가 울고 가겠다.

내 몸이 반듯한데

내 그림자가 휠 수 있을까.

이 문장이 곧 손웅정 그 자체다.

모습부터 목소리까지 그분의 모든 것이 강성이다.

하지만 그 강성 뒤에 천진하게 웃는 모습은 담백한 부드러움이다.

이 책엔 그의 모든 신념과 철학이 담겼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뭔가 답답함이 마음을 짓누를 때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 때

이 책을 읽게 될 거 같다.

내가 원하는 스승이 이 책에서 호통을 칠 테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매일매일

기회를 주자.

우리가 우리에게 매일매일

용기를 주자.

삶이 단순하다는 걸

복잡함을 단순화시켜야 한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직접 실천하며 살아가는 분의 말이기에 뇌가 빨리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허세가 없는 이야기와

허세가 없는 그의 노트에 적힌 글이

내게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거 같다.

뭔가 자꾸 나아가게 만드는 책 앞에서 그 어떤 철학자의 책 보다 더 많은 울림을 받았다.

곁에 두고 계속 읽으며 담백하고 단순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는 모든 것이 책에 있다고 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 말에 의미를 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직접 실천하며 사는 분의 말처럼 진심이 닿는 게 또 있을까.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열변을 토하는 인간과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몸소 실천하는 사람.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의 주인은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어떤 철학서 보다 더 철학적이다.

생각이 굼떠질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읽을 것이다.

진심인 강성의 목소리로 단순한 진리를 토해내는 목소리가 나를 다그칠 테니까...

그나저나..

나는 언제쯤이면 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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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리커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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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끝내 부서지지 않을 한 조각의 마음이 언제까지고 남아 있으리라는 걸 아는 것.

<파과>는 내가 처음 읽은 구병모 작가의 책이자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처음으로 완독한 전자책이기도 하다.

전자책으로 처음 완독한 책으로 기억하고 있으나 이전 리뷰을 살펴보니 그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어쨌든 나는 <파과>를 읽으며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에 열광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조각'은 대한민국 5천 년 역사상 가장 강렬한 캐릭터였다.

60대의 여성 킬러라는 사실은 그 어떤 서사를 가진 여성 캐릭터를 다 눌러버리는 기세였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조각'의 모습은 '윤여정'선생님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왜 이름이 '조각'일까.

이 궁금증은 개정판 작가의 사인과 함께 쓰인 글에서 채워졌다.

부서지지 않을 한 조각의 마음...

그래서 '조각'일 거라 혼자 믿어본다.


이번에 파과가 새롭게 리커버 되어 나왔다.

그리고 영화화되기를 고대했는데 뮤지컬로 먼저 세상에 선보였다.

파과의 파격적 행보다.


'분명 글인데 작가의 말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무성영화 한 편을 보면서

변사의 해설을 듣는 기분.'

전에 썼던 리뷰에 이렇게 적어놨다.

그 느낌은 여전하다.

작가가 끝없이 내 귀에 속삭이는 느낌이다.

조각의 끝을 알고 있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애잔하다.

전에는 속도감 있게 읽었다면 이번엔 음미하며 읽었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파과>라는 제목의 이중적 의미처럼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움직이는 조각의 삶은 위태위태해 보인다.

그러나 전 생애를 긴장 속에 보낸이답게 그는 절대 머뭇거리지 않는다.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젊었을 때와 다르게 몸이 움직이지는 않지만 수 십 년 몸에 밴 결기와 본능은 지켜야할 것을 지킨다.

늘 지키기 보다 해치기를 했었던 조각에게 이제야 지킬것이 생겼다.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


스스로 한 약속이지만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다.

인생이 그렇다.

언제나 변수가 작동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기를 원한다.

윤여정 선생님이 이 역을 맡았으면 좋겠다.

그분만큼 조각과 매치되는 배우는 없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네일 아트를 한 한 팔을 높이 들어 올리며 생애 처음을 맛보는 조각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남은 시간들을 전과는 다른 것으로 채워갈 조각을 응원한다.

어딘가 내 시선이 닿는 곳.

그러나 의식하지 못한 채로 조각은 흘러갈 것이다.

내 곁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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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클래식
차무진 지음 / KONG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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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다른 음악과 다른 점은 들을 때마다 상념을 다르게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곡가나 연주자가 누구이고, 음악의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굳이 알지 못해도 됩니다. 각자가 알아서 들으면 됩니다. 지루해지면 듣기를 그만두어도 되는 것이 클래식 음악 감상법입니다. 단, 하나 팁을 드리자면요, 겨울이 클래식을 감상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라는 것만 말씀드리지요.



<어떤, 클래식>으로 처음 차무진 작가의 글을 만났습니다.

클래식은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그래서 늘 공부하고 알아가고 싶은 영역이죠.

클래식에 관해 읽은 책도 여럿 되지만 생활 속에서 클래식을 접하는 시간은 많지 않네요.

이 <어떤, 클래식>은 차무진 작가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들과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치 콩트를 읽는 거 같아요.

스스로 클래식 초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클래식 초보들도 편하게 읽고 들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클래식

평소 잘 듣는 클래식

뭔가 사연 있는 클래식

남의 사연이지만 그 사연이 꾸며낸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했던 이야기라 재밌습니다.

아마도 차무진 작가님의 책들이 다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 더 백>에 대한 리뷰를 읽은 날 이 책에서 <인 더 백>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었습니다.

차무진 작가와 김민섭 작가가 처음 만난 날 서로 덥석 손을 잡고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채 소주잔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에서 찡한 기운이 들었네요.

아버지의 무게란...

말러의 <죽은 아이를 위한 노래>를 이렇게 들어 봅니다.

슈만의 유령 이야기로 CD를 강매한 음반가게 사장님이 뜬금없이 보고 싶어집니다.

치맥은 알아도 치간은 몰랐던 나는 이제 치간의 여러 버전을 들어봤습니다.

저도 지네트 느뵈의 곡이 좋아요. 영상이 없어서 아쉽지만...

작가님이 옛 애인과 싸우고 뛰쳐나간 그 새벽에 옛 애인분께서 혼자 들었다는 자클린의 눈물.

듣다 보니 그분은 새벽에 많이 울었거나, 냉정하게 마음을 정리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펜바흐의 미발표곡인 <자클린의 눈물>에 담긴 사연을 읽다 보면 조용한 분노가 스밉니다.

베르너가 자클린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이 곡을 헌사했음에 감사했어요.

누군가는 그녀의 슬픔과 고통을 알아줬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이 곡은 슬프면서도 따스한 느낌이 들었어요..

클래식을 이렇게 다정하고 가깝게 느낀 적이 없었는데 아마도 차무진 작가님이 자신의 에피소드에 클래식 음악을 담아서 그런 거 같습니다.

이 책에 담긴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작가님의 감정을 느껴보다가 결국은 내 감정이 되어 버리는 경험을 했어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어떤, 클래식>으로 클래식에 입문해 보시면 어떨까요?

클래식이 그리 어렵지도 전문적이지도 않다는 걸 깨닫게 되실 겁니다..

이 책을 받고 #그믐 에서 함께 읽기에 참가했었는데 같이 읽으신 분들의 수다가 너무 좋았어요.

제가 많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올려주신 글들 읽으며 음악 찾아 듣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 이 책에 담긴 클래식 음악들을 찾아 들으며 책을 읽으니 더 집중이 잘 되어 좋았습니다.

차무진 작가님의 클래식 리스트였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도 이 리스트의 곡들은 또 다른 기억으로 저장될 거 같네요.

같은 음악에 저장된 서로 다른 기억들...

언젠가는 그 기억들이 서로 만날 날이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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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인 밤 모호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난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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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던 그림들과 본 적 없는 그림들의 향연.
동서양을 아우르는 밤의 세계~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를 동시에
지적 충족까지 만족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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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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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석기로 발사된 돌덩이처럼 완전히 다른 삶 속에 처박히게 되면, 아니 적어도 얼굴이 유리창에 닿아 짜부라질 정도로 심하게 등 떠밀려 남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미 비포 유>가 개정판으로 새로 나왔다.

몇 년 전 영화로만 보았을 때랑 원작 소설을 읽은 지금 마음은 같은 듯 다르다.

그때는 윌의 결정에 대해 반감이 있었다고 해야겠다.

그래도 더 노력해 보지. 루가 있으니 전과는 다를텐데..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좀 더 견뎌보지...

지금은 윌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한다.

안타까운 마음은 넘치도록 들지만 그의 결정을,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거 같다..

나 자신이 루이자를 설득하는 마음이었으니까...





윌 트레이너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설득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117일이었다.



죽음과 친해지는 나이가 되면서 다양한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상황이 온다면 나도 윌과 같은 생각을 할 거 같다.

아니,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몸에 갇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그저 숨을 쉰다는 이유로 살아야 할까?

태어나는 건 선택지가 없을지라도 죽음에 대해서는 인간으로서의 선택지가 있어도 되지 않을까?

루이자의 모든 노력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 믿으며 영화를 봤던 내가 떠올랐다.

영화는 잘 만들어졌지만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는 디테일한 감정은 덜 담겨있었다.

루이자의 감정으로 윌의 마음을 짚어 볼 수 있어서 나는 윌의 결정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든다..

"어젯밤에 그 친구를 보면서 그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생각했어요.... 그 친구가 행복하기를 세상 그 무엇보다 바라지만, 나는.... 나는 도저히 그가 하려는 일을 감히 내 잣대로 판단할 수가 없어요. 그 친구가 선택할 일이에요. 자기가 선택해야 된단 말이에요."

네이선의 말에 백 배 공감한다.

나아지지 않을 장애.

늘 느껴지는 고통.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그걸 견뎌내라고 말하는 건 어쩜 가장 무례한 짓인지 모른다...

다른 생각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고 노력했다. 오로지 그 순간을 살고자, 사랑하는 남자를 삼투압처럼 빨아들이고자, 내게 남아 있는 그를 내 몸에 새기고자 전력을 다했을 뿐이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가까워서 그가 말하자 소리가 내 몸을 관통해 진동했다.

루이자의 고통이 너무 생생해서 잘 참았던 눈물보다 터져 버렸다.

이렇게 감정이 격해져서 운 건 오랜만인 거 같다.

영화 보면서도 펑펑 울었는데 그때와는 다른 짠한 마음에 더 많이 울었다.

끝을 알면서도 그다음 페이지에 다른 게 있기를 갈망하는 마음이라니....

여전히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호사스러운지 모릅니다.


루이자가 살아온 인생을 통틀어서 윌과 함께 한 6개월 동안 가장 많은 변화를 느꼈다.

그녀에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윌.

루이자의 꺾인 날개를 다시 펼 수 있게 만들어 준 윌의 마음이 한없이 깊게 느껴져서 윌을 보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었던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

사랑하기에 떠나야 한다는 걸 알았던 사람...

<미 비포 유>

보통은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러나 이 이야기는 죽음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존중되어야 한다.

어설픈 논리로 윌의 결정을 판단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거 같다.

모두가 묻어두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가슴 아프고 아름답게 이야기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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