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피리 1 - 마법의 돌
한스 벰만 지음, 이선희 옮김 / 씨엔씨미디어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듣는귀'라는 소년이 이상한 돌을 손에 넣게 되고, 할아버지로부터 피리를 배우면서 세상을 여행합니다. 소설은 얼핏 중세 유럽의 시골을 배경으로 한 요정이야기 따위의 동화같으면서, 뒤집어보면 로드 무비식 성장소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류의 단순한 성장소설은 아닙니다. 오히려 환상적인 소재들을 동원해 인간의 변화과정과 삶의 의미를 멋지게 은유해놓은 매력적인 '철학소설'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건, 왜 우리나라에는 일본에서 베껴온 듯한 에스에프 귀신얘기 말고, 이런 환타지소설이 없을까 하는 겁니다. 문학사에는 문외한인 제가 알기에도 유럽에는 '아서왕의 이야기'가 있었고, '니벨룽겐의 노래'도 있고, 드라큘라 얘기도 있고, 그런 것들이 현대에 와서는 대서양을 건너가서 '오즈의 마법사'라든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한층 젊어진 모습을 드러내고, 근래에는 해리 포터같은 마법 소년의 모험이야기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독자들을 매료시키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겐 왜 그런 환타지의 장르가 남아있지 않은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한테도 고대 건국신화의 명목으로 남아있는 알에서 태어난 왕자 이야기, 하백의 딸 이야기, 약간 미스테릭하고 컬트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금오신화, 어릴 때 만화영화로 재밌게 봤던 도깨비감투, 선녀와 나뭇꾼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근세에 들어와서 이런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나라'들이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요.

독일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의 환타지 장르는 어디로 갔을까 하는 거창한 고민까지 하게 된 건, '돌과 피리'가 해리 포터류의 동화와는 달리 독일의 자연을 소설속에 잘도 버무려놨기 때문입니다. 시대적 배경도, 지리적 배경도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읽다보면 상상속에 시퍼런 숲과 뒤틀린 나무들, 눈덮인 들판과 벼랑, 동굴속을 흐르는 개울물, 이끼로 덮인 호수 따위가 머리 속에 떠오릅니다.
저도 한번 상상을 해봤습니다. 딸기, 올빼미, 마녀, 도마뱀, 달팽이같은 다종다양한 '생물'들이 나오는 환타지소설을 머리속에 떠올리려 애썼는데, 잘 되지 않더군요. '마녀'니 '달팽이'니 '도마뱀'이니 하는 것은 이미 외국식 생각의 토양에서 나온 것이고, 딸기 또한 전래동화에서 본 적이 없죠. 제가 도시에만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 자연을 한스 벰만처럼 멋있게 묘사할 문장들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외국 문학을 읽고 자란 탓일 겁니다.
'우리의 뒷세대들도 우리나라 산천을 속속들이 보여주는듯한 재미난 환타지 소설들을 읽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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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영어로는 The Lord of the Rings인데, 나는 '반지제왕'이라는 제목을 볼 때마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내가 제일 먼저 구입했던 이 책의 한글판 제목은 '반지전쟁'이었고, 3권으로 돼 있었다. 그걸 보다가... 재미없고 자꾸만 앞부분 줄거리 잊어먹고 지루해서 절반까지 보다가 때려치웠다. 절반까지 보는 데만도, 시도하기를 몇번이었는지 모른다. 처음부터 다시 읽은 적도 있고.

결국 원서를 다시 구입했다. 무려 4만5000원 넘게 주고, 영어책을 사서 읽고 있다. 한글 번역판이 숱하게 나와있는데 굳이 영어책을 산 이유는? 이미 매니아 자처하는 이들은 줄거리 주르륵 꿰고 있는데 이제사 뒷북으로 읽으려니 쪽팔려서다. 영어로 읽으면 좀 폼이 나지 않을까 해서...

태반이 모르는 단어이지만 의외로 문장은 단순하고 쉽다. 특히 호빗들이 부르는 노래(제발 그만 좀 불러라 이 꼬맹이들아)는 소리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해석은 잘 안 되지만 각운이 있고 박자가 있어서 시조 읽듯 읽으니 그나마 재미가 있다.

현재 스코어- 1권 절반쯤 봤으니, 전체로 따지면 이제 겨우 6분의1을 읽은 것인가. 헌데 어찌된 일인지 한글책 펴들고 졸았던 시절보다는 훨씬 재밌는 것 같다. 오옷 나는 원서에 강한 것이냐 -_-;; 영화를 통해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어서인지, 영화에서 놓쳤던 부분을 세심하게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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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위에는 책이 쌓여 있고, 나는 요즘 날마다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고 있고, 비록 최근에는 책을 사지 않았지만 내가 이 서점에 쏟아부은 돈도 상당한 액수에 이르며, 심지어 책에 대한 글을 쓰는 블로그까지 갖고 있다. 그런데 책에 대한 애착은 갈수록 줄어만 간다.

책상 위의 책들을 하나 하나 불러본다. 시인이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추억과, 이국 여자애들 이름까지 다 불러봤던 것을 기리며. 책꽂이에 '신화의 힘', 책꽂이에 '엘러건트 유니버스', 책꽂이에 '신의 전사들', 책꽂이에 '도도의 노래',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타셴에서 출간된 영어판 작은 화집들... 허망하다. 저 책들을 씹어넘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적 허영심과 후까시를 향한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책은 내게 '눈으로 읽고 손으로 흘려보내는' 것들이 되었다. 원래부터 애착이 없었나? 그것도 맞다. 책을 읽어제끼고 누구한테 줘버리거나 재활용상자에 내다 버리거나 사무실 귀퉁이에 '주인없는 책'으로 매장시켜 버리는 것이 나의 독서사이클이며, 기어이 그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 내 책들의 운명이다.

언젠가 알고 지내는 후배는 "무인도에 갖고 갈 것들"하는 류의 심리테스트성 질문에 당당하게 "책"이라고 답하더라. 또 누구는 스스로 "책탐이 많다"하고, 또 누구는 "죽어도 책은 못 버린다" "책은 아무에게도 안 빌려준다"고 하는데 나는 영 그런 '책과 관련된 룰'이 없다. 굳이 룰을 따진다면, 책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 마치 돈처럼 돌고 돌되, 안돌아도 그만 돌아도 그만, 이라는 있으나마나한 룰이다. 책이라는 물질은, 그 네모진 덩어리 자체는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어져버린 것이다.

책방 블로그에서 이 따위 소리를 늘어놓자니 좀 이상한데, 책을 읽는다는 것에 너무나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테레비를 보고 영화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 행위 자체를 높이 숭상하면서 자부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무엇이 스스로를 '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 자부하게 만드는가?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이 많음을 자랑하는 것인지, 책에 퍼부은 돈이 많음을 자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시커먼 글자들과 그 사이 희뿌연 여백에서 얻은 상상과 행복과 기쁨을 예찬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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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3-2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왜 그리 욕심이 없으신지...
책 다 읽은 건 버리지 말고, 꼭꼭 싸매두었다가 절 주시오.

딸기 2004-03-3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님이야 워낙 다독이시니... 제가 읽은 책들은 이미 진즉에 구두님 손을 거쳐갔던 것들이 아닐까 사료되옵니다.

바람구두 2004-03-3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그런 말씀을...
책이란 많고도 많은 것인데...
제가 어찌 다 읽는단 말이오.
그러지 말고, 좀 주시오. 흐흐.

비로그인 2004-10-07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수업시간에 집에 불이 나서 단 한가지만 갖고 나와야 한다면 무엇을 갖고 나올 것인가를 놓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거기 모인 학생들의 거의 대다수가 책이라고 대답했었지요. 저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이 우리 모두를 그렇게 대답하게 했을까?

그때 일을 두고두고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딸기 2004-10-07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뭘까... 제가 페이퍼에 쓴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라면 이해가 가기도 하는데요, 어떤 이유이신지 알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