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제국 - 서양인의 마음속에 비친 중국 이산의 책 13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이산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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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제국>. 서양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금세기 이전까지 여러 차례의 접촉(주로 정복과 관련있는)을 통해 형성된 중국의 모습은 바로 저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의 중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의 접근 방법은 늘 독특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현대 중국을 찾아서>는 정통 역사책 글쓰기를 보여주는 반면 또다른 저술인 <강희제>는 황제의 회고록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양쪽 모두 아주 훌륭합니다.

<칸의 제국>은 마르코 폴로에서부터 보르헤스까지 서양인들이 중국에 대해 적어놓은 텍스트들을 꼼꼼이 분석해서 '서양인의 마음 속에 비친 중국'을 설명합니다. 마르코 폴로 이후 서유럽의 탐험가들과 예수회 선교사들, 중국을 방문한 여성 관찰자들,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을 지켜본 에드가 스노 등을 통해 서양인들의 '중국관'을 살펴보는 거죠.
또한 '시누와제리'로 표현되는 프랑스의 이른바 '이국정서', 차이나타운으로 대표되는 미국내 중국인 소사이어티 등에 대해서도 찬찬히 뒤를 밟아갑니다.

사실 우리는 중국과 역사적으로 밀접하다못해 찰싹 붙어 있어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정작 '중국관'에 있어서는 그다지 정리되지 못한 상태인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중국을 중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중공'이라고 불렀던 것만 떠올려봐도 알 수 있죠.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중국이란 이름을 다시 쓰게 됐을 때 생소하고 신비스런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역사시간에 그렇게 맣이 들었던 이름인데도 말입니다.

'쿠빌라이'로 상징되는 정복자, 화려한 도자기와 정원, 차와 전족 같은 중세의 이미지, 마오쩌둥과 대장정에 대한 환상과 뒤이은 비판, 그리고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Chinaphobia 까지, 중국에 대한 서양인들의 생각은 극단과 극단 사이에서 겹치고 구부러지고 흔들립니다. 그 '중첩과 왜곡의 역사'를 좇아가는 스펜스의 발걸음은 진지하면서도 경쾌하달까요, 한문장 한문장 때로는 시처럼 때로는 소설처럼 흥미를 자아냅니다.
이 책이 더욱 값진 것은, '중국관의 역사'를 찾는 과정에서 폴로에서 보르헤스로 이어지는 서양의 지성사까지 섭렵할 수 있게 해놨다는 점입니다. 골드스미스, 마크 트웨인, 마르크스와 에즈라 파운드, 몽테스키외 등등 쟁쟁한 인물들이 모두 중국에 대해 한 보자기씩 벌려놓은 이야기들을 줄줄 풀어놨습니다.

일단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앞서도 말했지만 우리의 중국관이라는 문제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내 화교 탄압에서부터 조선족 문제까지- 우리도 가리봉동 '연변타운'을 포함하는 중국관의 문제와 우리 스스로의 역사인식을 다시 세워야 하는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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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을 찾아서 1 이산의 책 6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희교 옮김 / 이산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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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건국에서부터 89년 천안문 사태까지 중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이 중국의 현대('근대'라는 말과 구분 없이 쓰겠습니다^^)를 만들었는지, 중국의 지도자들은 현대가 던져준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늙은 용처럼 무기력해 보였던 이 거대한 나라는 끊임없이 도전과 응전을 계속하면서 싸워나갔다는 겁니다. (물론 저자가 이런 구도로 서술을 하는 것은 아니고, 제가 읽으면서 받은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 싸움의 대상은 민족문제(명말 청초)에서부터 외세, 현대화의 난제들, 공산당 내부의 사상문제까지 다양합니다. 싸움의 형식 또한 대장정에서 사상운동까지,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싸움의 지도자들은 때로는 권력에 눈 멀어 조국과 민족보다 정쟁에 몰두하는 일도 있긴 했지만, '스스로의 손으로 역사를 만들어간' 거인들이었습니다.

1권은 명 말기와 청초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외세와의 투쟁'을 주로 다룹니다. 2권에서는 국공 대립과 공산정권 수립 이후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본격적인 중국 역사서를 읽은 것은 처음인데, 이 정도로 잘 쓰여진 역사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자료와 예시가 정말 충실하고, 저자의 평가와 감상이 인상적으로 결합돼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꿰어서 진주같은 저서를 만들어낸 저자의 능력, 학자적 식견, 깊이와 열정 모두 존경스럽습니다. 번역도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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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 그 역사와 문화 역사 명저 시리즈 2
스탠리 월퍼트 지음, 이창식 신현승 옮김 / 가람기획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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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 인도미술사를 한 학기 배웠었다. 그 강의 중에 데이비드 린 감독의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봤다. 인도에 대해서도, 미술에 대해서도, 영화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별로 없었던 나는 거의...이해를 할 수 없었다.

마침 그 때 기숙사에서 나와 함께 지내던 룸메이트 선배가 인도종교-즉, 요가를 전공한 종교학과 대학원생이었는데 인도인 혼혈이라 해도 될 정도로 외관상 인도인과 비슷하고 인도에 푹 빠져있던 사람이었다. 이 선배는 방안에서도 인도 향을 피우고, 인도 그림(천에 그린 총천연색의 세밀화)과 인도 사진을 붙여두고, 거꾸로 서서 요가 수행을 하는 분이었는데 과연 그 학기의 나의 생활은 '인도의 香과 함께'라고 해도 될 만했다.

가끔 학교에 인도 전통의상을 입고 갈 만큼 인도인이나 진배없는-틀림없이 전생에 인도인이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 선배가 영화 '인도로 가는 길'에 대한 해석을 해주었는데, 풀이가 그럴듯했다. 영국 장교의 약혼자인 여주인공이 식민지 인도에 와서 인도의 미술(성애를 묘사한 카주라호의 사원조각 등)을 보고 자기 내면의 성적인 욕구를 느끼는 장면이 나오는데, 서양인들에게는 당시 인도의 저런 미술품을 통해서 性과 욕망의 분출을 느끼는 것이 곧 '인도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강석경을 비롯해서 인도에 대한 책이 여럿 나오고 인도 바람이 불고 또 주변에 인도에 다녀온 사람들이 제법 있지만, 나는 인도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나 궁금증을 가져본 적은 사실 없다.

'인도학'에 있어서는 석학 대접을 받는다는 미국 학자 스탠리 월퍼트가 낸 '인디아, 그 역사와 문화'라는 책을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며칠이 지났는데 서평을 올리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막상 그러지를 못했다. 아주 맘에 드는 책이었는데, 이 책이 준 단상들이 여러가지여서 그랬는지, 생각이 정리가 안 됐다고나 할까.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나는 '인도'라는 말을 들으면 사진에서 본 갠지스강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이나 타지마할의 하얀 대리석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라마야나를 소재로 한 총천연색의 그림이나 크리슈나를 그린 라지스탄의 그림들이 생각난다. 미술사 시간에 슬라이드로 본 그림이 머리 속에 너무 강하게 틀어박혀서 그런 걸까. 그 때 라마야나 요약본을 찾아읽었는데, 줄거리는 잘 생각 안 나지만 아주 재미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까무잡잡한 남자와 여자, 나무 그늘, 원숭이, '브라흐마 다다 왕이 비나레스를 다스릴 적에'로 시작하는 인도의 민담들.

월퍼트가 들려주는 인도이야기는 그런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쭉 꿰는 실과 같다. 인도의 자연과 신화, 종교, 사회상, 현대까지의 역사를 줄줄이 읊는데 쉬우면서도 재미있어서 노학자로부터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특히 이 사람은 인디라 간디, 네루, 진나 같은 인도의 대표 인물들을 직접 만났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인물평을 듣는 것도 재미있다. '네루의 얌전한 딸'에서 유능한 정치가로, 독재자로, 다시 '인도의 어머니'가 된 인디라 간디 이야기라든가 신념을 가진 지도자 네루 이야기 따위는 다른 역사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증언이나 마찬가지여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또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분쟁을 다루면서도 몇년에 몇 명이 죽었네 하는 사실들만 나열해놓은 것이 아니라 배경을 저절로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해놨다. 다만 90년 정도까지의 상황만이 담겨져 있어 그 이후 10년간의 역사는 업데이트 되지 않은 것이 아쉽긴 하다.

어느 한 나라, 그것도 인도처럼 거대하고 깊은 나라에 대해 저자가 보여주는 통찰력도 놀랍다. 통찰력은 기본적으로 식견에 비례하겠지만 월퍼트의 경우에는 인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또 하나의 바탕이 되는 것 같다. 애정과 거리두기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저자의 뛰어난 문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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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트라이앵글 1 -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노암 촘스키 지음, 유달승 옮김 / 이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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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트라이앵글'. 노암 촘스키의 책인데, 원제는 'Fateful Triangle'이고 '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숙명'이라는 말, 별로 어렵잖게 접할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나 자신이) 쉽게 쓰는 단어는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때로는 팔레스타인의 한 여인이 된 것처럼 두려움과 분노에 몸을 떨기도 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숱하게 교육받았던 '식민지의 참상'. 그것은 주입에 가까운 교육을 통해 내 머릿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경험해보지 않았음에도 뇌의 한 부분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그것을 일종의 '전(前)기억' 혹은 '전승(傳承)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의, 그리고 우리나라 젊은이들 모두의 그것은 아마도 식민지의 억압과 차별, 고통이 될 것이다.

'숙명의 트라이앵글'은 나에게 그런 '전기억'을 상기시켰다. '두발 달린 짐승'(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비로운 점령자들'(이스라엘인들)이 어떻게 짓밟고 때리고 고문하고 죽였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땅을 빼앗고 노동을 착취하고 나라를 빼앗았는지를 보면서 나는 내내 고통을 작게나마 공감했고, 무서움에 떨었다.

이 책의 1권과 2권의 절반 정도는 지난 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양민학살을 다루고 있고, 2권의 뒷부분은 이른바 '평화과정(Peace Process)'을 비롯한 그 이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레바논 학살 부분은 촘스키가 사건 직후인 83년에 직접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을 방문하고 여러 자료를 모아 쓴 것이라서 아주 구체적이고 볼만하다.

올초 아리엘 샤론이 이스라엘 총리가 됐을 때 어째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움에 떨었는지, 왜 샤론을 '살인마 전두환 보듯' 했는지가 소상히 나와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을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어버린 이스라엘 내부의 계급구조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 있다.

언어학자답게 촘스키가 이 책에서 이스라엘의 악행과 사건의 전후관계 못지 않게 주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지점은 '진실은 어떻게 왜곡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기자들의 근원적 죄악은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모든 PLO 전사들, 나중에는 모든 PLO 구성원들-외교관, 관리, 교사, 의사, 팔레스타인 적십자 결국 팔레스타인인들 전체에 대해 사용한 것이다. 이 개념에 따라 그들은 PLO 전사들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의미하는 '테러리스트 캠프'를 폭격한다'

중동을 장악하고 있으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지배와 억압의 '트라이앵글'이 형성되고, 뉴욕타임스 같은 미국내 '유대인 언론'들과 지식인들이 반(反)아랍 논리를 만들어 퍼뜨리고, 그것이 각국에서 재생산되는 과정을 거쳐 '아랍(팔레스타인) 테러집단'이라는 명제로 굳어지고, 그 피해는 이스라엘의 미사일과 총탄에 나가떨어지는 팔레스타인 소년들의 시신을 덮치는 것이다.

이 의도적인 '논리의 악순환'이 지금 미국의 시민들을 죽이고 또 아프가니스탄의 숱한 인명을 죽이는 것을 보면, '숙명의 트라이앵글'은 '극악무도한 저주와 분노와 고통의 트라이앵글'인데 여전히 미국식 평화와 안보라는 이름 아래 그 논리가 재생산되고 있으니.

지구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고 그들의 친구들이 고통을 되돌려주기 위해 다시 살인극에 나서고 있음을 안타까와 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이 하도 안 좋아서 읽기가 '개같은' 수준이라는 점. 내용으로 봐서는 별점 5개를 매겨야 하지만, 번역이 하도 자갈밭같아서 별점 3개로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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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
매트 리들리 지음, 신좌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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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의 작가 매트 리들리의 최신 저서입니다. 원제는 'The Origins of Virtue'. 우리 말로 한다면 '미덕의 근원'이고, 좀더 정확하게 뜻을 살펴본다면 제 생각에는 아마도 '선행의 근원', '인간은 왜 착한 일을 할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전작인 <게놈>(제 짧은 소견으로는, 과학서적 중 최고봉이 아닌가 싶습니다)에 비해 독자의 층을 확 넓혔습니다. <게놈>이 전문서적의 냄새를 풍긴다면, 이 책은 '유전자의 문제'를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장시키고 있거든요.

사이언스북스에서 붙인 '이타적 유전자'라는 제목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비되는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죠. 아주 잘 붙인 제목입니다. 사실 리들리는 논쟁의 선(line) 위에서 놓고 보자면,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정반대의 '이타적 유전자'라는 제목이 어울리느냐. 유전자의 '이기적 속성'(자신을 끝없이 복제해서 대를 잇고자 하는)이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이기적(나쁜놈의 의미)'인 것과 같지는 않다는 거죠. 리들리 식으로 말하자면 '칭찬을 받기 위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다 하더라도,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것은 어쨌든 좋은 행동이다'라는 겁니다.

인간의 유전자가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를 따지는 것도 재미는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들에게 유사 이래 전해내려오는 협동심과 착한 마음 같은 미덕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들이 인간의 '번성'에 도움이 됐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인간 유전자의 이기적 속성(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끔은 서로 도와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니까 돕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인류사회의 발전을 위해 더 중요하다는 얘기. 성선설과 성악설의 문제를 유전자(본능)의 차원에서 쉽고 재미있게 다뤘기 때문에,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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