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 - Gandhi
요게시 차다 지음, 정영목 옮김 / 한길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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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하트마 간디>. 이름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인물이다. 책을 읽는 사이사이, '읽고 나면 글로 남기고 싶은 감상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마지막장을 덮고 난 지금 오히려 내 머리속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내가 최근 세운 계획 중의 하나는 이 사람에 대해 '이해'를 해본다는 것도 들어있었다. 850쪽이 넘는 긴 전기를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사실 의무감을 가지고 책장을 넘겼었다. 지난해 인도史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간디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할 거리들이 별로 없었다.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단편적인 몇가지 어휘들, '비폭력' '스와라지' '스와데시' 같은 것들 뿐이었으니까.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읽었다. 재미있어서 책장을 마구 넘긴 적도 있었고, 대충대충 훑어넘긴 부분도 있었다. 책의 절반까지 오는 동안 내가 받았던 느낌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비폭력, 그러나 '무저항'은 아니다. 오히려 철두철미한 저항이되, 그 방식은 완전한 '비폭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나의 오른 뺨을 치면 왼뺨도 대주어라.
인도인 요게시 차다가 쓴 이 전기는 저자의 설명대로, 평전 형식으로 돼 있다. 연대기 순으로 기술되어 있어 간디의 드러난 행적은 쉽게 알수가 있다. 또 자료를 충실하게 언급하고 간디 주변 인물들-네루 진나 파텔 같은 정치가들-의 성격과 취향까지 생생하게 묘사해놓은 것은 큰 장점이다.

그런데도 나는 간디라는 인물을 이해할 수 없었고, 다 읽고 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금욕과 채식에 대한 무지막지한 집착, 성욕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 도대체가 '정치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정치행보들. 브라마차리아(완전무결, 욕망의 완전한 절제)를 위한 '동침 실험'(간디는 자신이 성욕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여제자들은 물론, 손녀와도 한 이불을 덮고 벗은 몸으로 잠을 잤다)이나 양의학을 모두 부정한 것, 단식에 매달리는 것 등등.
종교인, 사상가, 철학자로서가 아닌 정치가로서의 간디는 요즘 사람 혹은 인도인이 아닌 사람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 밖에 없는 노선도 많이 걸었던 모양이다. 영국이 약할 때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이런 걸 '고양이 쥐 생각'이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악어의 눈물'이라 할 수도 없고. 쥐가 고양이 생각해준 거라고 해야 하나?

영국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영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줘야 한다, 그러니 영국을 위해 참전을 하자. 간디는 실제로 이런 주장을 했었다고 한다. 또 2차 대전 중에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히틀러의 탄압을 몸으로 받으라, 가스실로 보낸다면 가스실로 가라, 죽인다면 죽어라'라는 글을 썼고, 남아공의 감옥에 갇혀있었을 때에는 영국인 총독을 위해 신발을 만들어 출옥 뒤 선물을 했다.
그러나 책의 3분의2정도를 읽었을 때, '이해할 수 있든 없든 이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리를 위해(진리에는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사람.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 영적인 기운과 범접할 수 없는 인격으로 결국은 주변을 감복시키는 사람. 무언가를 위해 100% 헌신하는 사람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다(너무 극단적인 얘기인가?)

책 자체의 섬유질은 치밀한데, 간디가 어째서 그같은 사상을 갖게 됐는가 하는 부분은 설명이 부족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저자가 인도인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인도인이 아닌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힌두교의 정서와 문화, 역사적 맥락이 쉽게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열정을 가지고 투신하는 사람'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무리를 해서라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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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 보르헤스 전집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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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편들이 다 환상적이지만, 내게 가장 '판타스틱'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건 '아스테리온 집'이었다. 황소인간의 오랜 고독, 상상속의 집 구경, 적막하면서도 '쿨'한 느낌이 묻어나는 분위기. 그리고 보르헤스다운, 너무나도 보르헤스다운 반전. '믿을 수 있겠어, 그 괴물은 방어도 안 했어. ' 그래서 나는 보르헤스를 좋아한다. 누구나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나 자신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하나라고 상상한다거나 아니면 또다른 등장인물을 만들어내 나를 이입하는 짓 말이다.

그런데 항상 내가 나를 이입하는 대상은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어쩌면 주인공들의 존재는 아주 명백하고 강렬해서(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캐릭터가 확실해서') 차마 거기에 나를 집어넣을 엄두를 못 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주인공이 되는 건 좀 재미없다 싶기도 했고.

나는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이입, '새 주인공 만들기'의 오래된 경험을 많이 떠올렸다. 오래오래 사는 사람-이건 내가 아주 좋아하는 모티브인데-이 등장하는 이야기(아마도 <불한당들의 세계사> 첫번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같은 것들. 그러나 내 마음을 와락 끌어당겨서 빙글빙글 돌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이 '아스테리온 집'이었다.

소재로서만 봐도, 미노타우로스라는 존재는 소설의 소재로서는 아주 매력적이다. 괴물, 미로, 제물, 그리고 멋진 용사와 미녀. 모든 것을 다 갖춘 모티브라 해도 될 것 같다. 보르헤스의 소설은 사실 좀 난해하다. 그치만, 바로 그 보르헤스가, '독서는 행복이고 작품은 읽기 쉬워야 한다'고 했다니, 나는 그 주장을 따르기로 했다. 보르헤스의 작품 자체는 행복을 묘사하지 않지만 읽는 순간 만큼은 즐겁고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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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개의 거짓말
라픽 샤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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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책을 읽었다. 라픽 사미의 소설이라면 예전에 '한줌의 별빛'을 읽은 적이 있다. 시리아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소년 사이의 우정을 그린 것이었는데, 아주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1001개의 거짓말'은 소설이라면 소설이고, 우화라면 우화이고, 또 주인공 사딕의 주장대로,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어느 것이 거짓말이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이 다단한 세상에서 선뜻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무엇이든 진실의 일면과 거짓의 일면을 갖고 있는데. 순환논법에 회의론이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유려한 말솜씨로 사딕이 풀어내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너무 재미있어서 읽는 내내 몇차례나 배를 쥐고 웃었다.

주인공 사딕이 살고 있는 곳은 시리아의 모르가나. 어느날 인도에서 서커스단이 찾아오는데, 하필이면 독재자 대통령과 쿠데타군과의 전쟁 때문에 이 작은 도시에 갇혀 서커스단이 떠나지를 못하게 됐다. 이야기꾼 사딕은 어느새 마을 사람들과 이웃이 되어버린 서커스단에서 여러 친척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된다. '1001개의 거짓말'은 사딕과 다종다양한 친척들의 이야기이고, 천일야화에 나오는 오래된 전설과 거짓말들이고, 또 지금은 늙어 옛 추억을 곱씹게된 늙은 사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서구화되고, 이야기조차도 서양식 이야기에 익숙하게 됐지만 역시나 '동양적인 그 무엇'이 주는 친숙함이란 것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사딕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줄곧 아주 편안히 긴 의자에 누워서 혹은 이불 덮고 온돌 바닥에 드러누워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아주 즐거웠다. 바다 속 얼음여왕의 이야기, 기억력이 아주 좋은 코끼리 이야기, 가짜 대통령 노릇을 하다가 교통순경이 된 무쉰의 이야기, 대대로 이름이 똑같은 하덱이라는 독재자의 이야기...

모르가나에 염소가 사라지기 전과 그 이후. 늙은 사딕은 그렇게 추억의 분기점에 이름을 붙였다. 염소몰이꾼이 아침마다 염소를 끌고 다니며 신선한 염소젖을 그 자리에서 짜내어 팔던 시절과, 정부에서 들여온 젖소에게서 짜낸 '수감된 우유'를 먹기 시작하게 된 이후의 시절. 그것은 분명 우리가 '현대화' 혹은 '서구화'라고 부르는 것들을 의미하는 시대구분이다.

사딕이 스스로도 '거짓말 혹은 진실'이라고 이름붙인 우화 하나하나에는 인간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통찰력이 깊이 배어있다. 그러면서 독재자와 서구화의 문제 같은 커다란 이슈들도 피해가지 않는다. 어째서 아라비아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은지. 사막이기 때문이라고 사딕은 말한다. 새하얀 눈과 푸른 바다는 아주 아름답지만, 사막의 신기루처럼 '진실 혹은 거짓말'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지 않느냐고, 사막의 신기루가 아랍 사람들에게 그런 아름다운 환상들을 불어넣어 준 것이라고. 이야기 한편 한편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익살맞아서 여러 종류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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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unny Baby 1
김지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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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무서운 얘기 하나 해줄까? 내 선배 부인 얘긴데, 실화야. 쌍둥이를 낳고 두달만에 임신이 됐는데 또 쌍둥이였대. 무더운 여름인데 집에 에어컨이 없었던 거야. 두번째 쌍둥이가 태어나니까 남편의 눈길이 싸늘해지더래. 집안은 네 아이로 와글와글. 이 누나의 친정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와병중. 그런데 하필 옆집이 공사중이라 여름에 창문도 못 열어놓고, 방 두개짜리 좁은 집에서...'

남편이랑, 아내랑 여름밤 에어컨 바람 시원하게 틀어놓고 마루에 드러누워 나누는 납량특집 엽기괴담의 내용입니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쌍둥이 남자아기들을 키우는 종민이와 수진이,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어린' 부부에게는 임신, 출산, 더위가 그야말로 납량특집이지요. 간담 서늘해지는 '쌍둥이 괴담'을 듣고 잔 다음날, 수진이는 감기에 걸려 오한에 시달립니다.

마이 퍼니 베이비. '웃기는 우리 애들' 정도로 번역하면 될까요? 청춘남녀의 사랑과 결혼을 그린 '마이 퍼니 레이디'의 후속편이라고 하는데 전편은 아직 못 봤습니다.
만화가 김지윤은 아기를 낳아본 여자가 틀림없습니다. 임신, 출산, 육아의 일들을 어쩜 그렇게 우스우면서도 리얼하게 그려놨는지.

'오빠(남편), 나만큼 배 많이 나온 여자 봤어?' '아니, 못 봤어'. 유난히 배가 많이 불렀다는 말을 들었던 저로서는, 이해하고도 남는 대화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배가 많이 나왔나 하는 작고도 신기한 고민. 수진이의 질문 이면에 담긴 감정까지 그대로 전이가 되더군요. 수진의 질문에 답하는 종민의 머리 위에는 생각풍선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저 배가 들어가기는 들어갈까...' 어쩜 제 남편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너무 재미있습니다. 왜 재미있냐면, '사실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아기와 나, 아따아따, 아기는 외계인 등등 아기가 나오는 만화들(주로 일본만화들)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코믹진지애정어린 만화는 처음입니다. 요즘 만화들을 보면 대학생 고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 초등학생들이 등장해서 연애한다고 설치던데(?) 결혼까지 한 주부, 애기낳고 대학 졸업해서 직장 취직해서 겪는 일들을 소재로 삼아 심금을 웃기는 명작으로 만들어놓다니.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다 찾아봐야겠습니다. 아기 키우는 주부라면 기필코 읽어야할 필독서 명단에 올려놔도 될 것 같습니다. 아기 키우는 아빠들도 물론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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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의 충돌 - 시장의 신화와 중국의 선택
한더치앙 지음, 이재훈 옮김 / 이후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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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의 충돌. 이른바 '신좌파'로 불리는 중국의 소장 경제학자 한더치앙은 중국의 시장경제 실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구상 인구 5분의1의 운명이 달린 이 실험에 대해 현지의 젊은 경제학자가 내쏟는 비판은 시장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 저자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 로스토우의 경제발전단계론을 비판하면서, 이들 이론들을 추종하는 이들을 '시장낭만주의자'로 몰아부친다. 폴 크루그먼의 자유시장 예찬에 대해서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대신 보호무역주의를 국가정책으로 확정해 독립적이고 강력한 산업체계를 세운 덕분에 오늘날 크루그먼이 발딛고 설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세계의 경제주체(미국)와의 경쟁에 뛰어들어 윈-윈을 노리자는 일각의(지금은 이미 대세인 듯 보이지만) 주장에 대해서는 '침략자의 주구'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시장낭만주의의 대안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시장현실주의'다. 경쟁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경쟁이론, 보호무역론과 함께 1950년대에 시작된 중심-주변이론을 다시 끌어들여 '시장현실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구전'의 전략을 논한다. 효율성 우선이 아닌 일자리 우선 경제모델, 자원절약형 발전, 전략산업과 과학기술·교육의 육성 등이 전략의 주요 내용들이다.

논박은 격렬한데 사실 내용이 알차 보이지는 않는다. 재미난 것은 중국 내 젊은 지식인의 생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는 것. 서슴없는 비판과 용감한 제안들 속에서 오히려 그들의 혼란과 고민이 많이 배어나온다. 결국 중요한 것은 '중국이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 즉 '체제'의 문제가 아닌가.

한더치앙은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심과 '세계화 대세론'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드러내보인다. 적나라한 반미감정을 표출해놓기도 했다. 저자는 시장이 다수의 인간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그 메커니즘-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을 들면서 경고를 하지만, 이런 분노와 반발심은 국제관계에서의 현실론에 부딪치면 논리력을 금방 잃어버린다. 매판자본가의 출현을 경계하면서 '민족은 이익공동체'라는 말을 되뇌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중국 젊은 지식인들의 처지이구나 싶어 조금 씁쓸해졌다.

이 책이 쓰인 것은 2000년이고, 이듬해 중국은 WTO에 가입했다. 정운영은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실험을 가리켜 '인류의 5분의1을 상대로 벌이는 도박'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라는 칭화대학의 후안강 교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대체 자본주의와 뭣이 다르냐는 정운영의 질문에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다'면서 '중국은 공동으로 부유해지는 것을 추구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운영은 '시장은 과연 덩샤오핑이 생각하는대로 '체제중립적'인 도구인가'라고 반문하고, 한더치앙은 '시장은 결코 체제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므로 사회주의를 견지해야 하지만 시장에서의 경쟁을 피할 수는 없다'는 당연한 말을 내놓고, 중국인들 대다수는 상하이 증시에서 '마작 대신 주식을' 즐긴다니, 역사는 오늘날이 중국을 어떻게 기록을 할지 궁금하다.

하긴, 중국과학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속도로 봤을 때 2049년에야 중국 인구의 42%가 '중등 발전국가'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논자들의 비판이나 우려와 상관없이 중국은 개혁개방(이름이야 어떻게 붙었건)의 길을 달려가고 있는데, 반세기 뒤에 중국 인구의 절반에 불과한 이들이 기껏 현재 프랑스 사람들 수준의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라니 '논쟁무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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