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선생이고 뭐고 다 잊어버려요." 베끄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현명한 여자였지만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말을 한 건 실수였다. 그날밤 그녀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내가 흥분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나 자신의 평가와 다른 사람의 평가만 알고 더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내가 잊어야 하는 에마뉘엘 선생과 연관짓지 못하게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일주일 밤낮을 나는 잠에 취해 보냈다. 나는 꿈을 꾸다 깨어나서도 바로 그 질문들을 떠올렸다. 질문들에 대한 답은 불한당같이 그리스식 모자를 투구처럼 눌러쓰고 잉크 얼룩이 잔뜩 묻은 초라한 외투를 걸친 아주 우울하고 작고 까무잡잡한 남자가 일어났다 앉았다 걸었다 강의했다 하는 곳 외에는 아무 데도 없었다.
걱정했던 대로 슬픔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다가오는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뜻밖의 행복이 나타나 자리를 잡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더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정말이지 새로운 경험이었다.
"뽈 선생의 친구가 되었다고 왜 그렇게 기뻐하는 거죠?" 독자는 물을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당신 친구였잖아요? 당신을 편애한다는 증거도 수없이 보여줬잖아요?"
그건 그렇다. 그는 그런 증거들을 쭉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열렬하게 진실한 친구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것은 정말이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의 겸손한 의심, 다정한 존중이 좋았다. 나를 향한 신뢰감,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면 고마워하는 신뢰감이 좋았다.
그는 나를 "누이동생"이라고 불렀다. 그것도 좋았다. 그래, 날 신뢰하기만 한다면 누이동생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나더러 미래의 아내에게 시누이 노릇을 해달라고 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누이동생이 될 용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암암리에 독신으로 남을 것임을 서약한 몸이므로 그런 딜레마에 빠질 위험은 거의 없어 보였다.
빨리 아침이 와서 종소리가 울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은 후에도 기도시간과 아침식사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 같고 모든 시간이 머무적거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문학시간이 왔다. 나는 우리의 오누이 같은 관계를 좀더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었다.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얼마나 오빠처럼 처신하는지 보고, 내가 얼마나 누이동생처럼 느끼는지 판단하고, 내가 과감하게 여동생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 그가 오빠처럼 솔직하게 나를 대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인생이란 원래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법이다. 그날 하루 종일 그는 내 곁에 오지도 않았다. 그의 수업은 평소보다 더 조용하고, 더 온화하고, 더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아버지같이 대했지만 내게 오빠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 말은 안 걸더라도 교실을 떠나기 전에 나를 보고 웃어주기는 하리라고 기대했으나 한마디 말도 웃음도 없었다. 단지 어색해하며 황급하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을 뿐이다.
말뿐이지 결코 내가 얻을 수 없는 특권이었구나! 어떤 여자들은 그걸 이용하겠지!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그런 용감한 무리에 낄 수 없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나는 혼자 내버려두면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남들이 물리치면 물러났다. 잊히면, 감히 나를 상기시키는 말도 못하고 눈빛으로라도 그런 내색을 하지 못했다. 어디선가 내 계산이 잘못된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이 지나 어떻게 된 일인지 밝혀지길 바랐다.
그의 칙칙한 외투와 검은 머리카락은 진홍빛 반사광으로 물들었고, 잠깐 얼굴을 돌렸을 때 스페인 사람처럼 생긴 얼굴에는 태양의 생기 있는 키스에 대한 답으로 생기 있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그는 오렌지나무와 제라늄과 어마어마하게 큰 선인장을 돌보면서 목이 타는 나무들에게 물을 주어 모두 싱싱하게 되살려놓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입술에는 아끼는 씨가를 물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그것이 최고의 사치품이자 필수품이었다.
그는 더이상 학생이나 선생 들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작은 스패니얼리스(새로운 단어를 만들자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개는 명목상으로는 베끄 부인 집의 개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주인으로 알고 이 집의 누구보다도 선생을 좋아했다. 섬세하고 귀엽고 보드랍고 사랑스럽고 조그마한 이 애완견은 그의 옆에서, 풍부한 표정을 담은 눈으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아장거렸다. 종종 그가 장난으로 모자나 손수건을 떨어뜨리면 그때마다 그 개는 왕국의 깃발을 지키는 작은 사자 같은 분위기로 그 옆에 웅크렸다.
나는 앉아서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천천히 내리는 땅거미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나는 책상 위에 펼쳐놓은 것을 모두 그러모은 후, 펴보지도 못한 책 더미를 들고 3반 교실의 내 자리로 갔다.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나는 순순히 그 소리에 따랐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교실 벽을 훑고 길게 늘어선 유리창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가 인사를 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인사에 답할 시간도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닫힌 현관문 앞에는 그림자조차 없었고, 문지방만 창백한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거룩한 가톨릭교회’는 결코 위협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단지 신자로 인도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가톨릭이 박해를 한다고요? 오, 그럴 리가요! 결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아니었다. 이 책은 튼튼한 사람에게 먹일 질긴 고기가 아니고 아기에게 먹일 우유였으며, 가장 사랑스러운 막내를 위한 어머니의 부드러운 모성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감상적이고 위선적이고 깊이가 없는 소책자이긴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의 우울을 걷어내고 웃음을 끌어냈다.
그의 판단은 목발이 필요했다. 그 판단이 곧 넘어질 것 같아서였다.
나는 일곱 산의 자줏빛과 붉은빛 옷을 입은 노파3가 보이는 이 넘치는 모성애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녹이는 애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받아들일 마음도 없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웃음이 나왔다.
이 몸짓을 보고 나는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흥분하거나 자책에 시달려 슬프거나 내면적으로 동요되면, 몹시 추운 겨울날에 꽁꽁 언 눈을 그런 식으로 파곤 했다. 이마를 찌푸리고 이를 악물고서 몇시간이고 땅을 파면서 한번도 고개를 들거나 입을 열지 않았다.
"조금도, 전혀 감동받지 않았어요!" 그리고 여전히 깨끗하게 접혀 있는, 물기라곤 없는 손수건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증거로 제시했다.
그는 만족하지도 않고 마음의 위안도 거의 받지 못한 채 돌아갔지만, 신교도가 반드시 그의 스승이 암시한 대로 불경한 이교도는 아니라는 것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는 ‘빛’과 ‘생명’과 ‘말씀’을 존중하는 신교도의 방식도 다소 이해하게 되었다. 거룩한 것에 대한 신교도의 숭배는 그가 따르는 가톨릭교회에서 계발된 것과 똑같지 않지만 그 나름의 힘, 어쩌면 더 깊은 힘과 더 큰 경외감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느정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애착을 가지지 못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가 선조의 종교를 버리기를 열렬하게 바라지 않았다. 가톨릭 자체는 잘못되었다고, 황금과 진흙을 섞어 빚은 거대한 이미지라고 생각했지만, 이 가톨릭 신자만큼은 순진무구함과 순수한 신앙의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어 틀림없이 신께서 사랑하실 것 같았다.
나를 향한 세번째 유혹은 가톨릭이라는 왕국의 장관, 로마의 영광이라는 형태로 펼쳐졌다. 국경일이나 축일이면 나는 성당으로 인도되어 가톨릭의 의식과 예식을 보았다. 나는 잠자코 구경을 했다. 여러 면에서 물론 나보다 훨씬 우월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장관에 감명을 받았고, ‘이성’은 저항했지만 ‘상상력’은 굴복했다고 공표해왔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화려한 행렬, 장엄한 미사, 수많은 양초, 흔들리는 향로, 사제들의 모자와 그들이 착용한 보석, 어떤 것도 나의 상상력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러한 장관이 장엄하다기보다는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심詩心이 일 만큼 영적이지 못하고 천박하고 물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 종교에선 신과 인간 사이에 격식이 없으며, 적당한 예식을 위해 필요한 예배 속에는 오직 집단으로서의 인간의 본성만이 담겨 있다고 했다.
"사제와 신학자 들이 뭐라 하든," 에마뉘엘 선생이 중얼댔다. "하느님은 선하시고, 진실한 사람 모두를 사랑하시오. 그러니 당신이 믿을 수 있는 걸 믿고 가능한 한계 안에서 믿으시오. 적어도 우리는 같은 기도를 드리고 있잖소. 나 또한 울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소. ‘하느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다가 활기를 주는 대답을 내놓았다. 대답이 거듭될수록 그레이엄은 점점 더 훌륭한 음악을 듣는 것만 같았다. 이어지는 대답 하나하나에서 함축성 있으며 설득력 있는 마법의 음조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음조는 그레이엄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보물창고를 열고 생각지도 못했던 내면의 힘을 드러내주었다.
더 좋은 일은, 잠재되어 있던 그의 선량함이 일깨워진 것이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이 말하는 방식을 좋아했다. 목소리와 말투와 표현을 서로 마음에 들어했고, 상대방의 재치를 즐겼다. 이상할 정도로 빨리 서로의 말뜻을 알아챘고, 종종 세심하게 고른 진주처럼 생각이 잘 맞았다.
"내가 환상을 소중히 여기고, 내가 돌로 굳어 눈이 멀까 두렵다는 말이에요."
"당신들 둘 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판단하고 있군요." 내가 말했다. "둘이서 얘기하거나 생각할 땐 제발 날 화제로 삼지 말아줘요. 난 두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난 이 세상 어떤 남자 혹은 여자와도 당신들이 이해하는 식으로 아름다운 삶을 나누지 않을 거예요. 나에게도 친구가 한명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것도 확실치 않아요.확신이 들 때까지는 혼자 살 거예요."
"루시, 과연 누가 당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연인들에게는 광적인 이기주의 같은 것이 있어서 그 대가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 행복의 목격자를 가지고 싶어한다.
폴리나는 편지를 쓰지 말라고 했는데도 브레턴 선생은 편지를 썼다. 그녀는 답장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단지 나무라기 위해서 답장을 했다면서 내게 그 편지들을 보여주었다.
"그애는 내가 가진 단 하나의 진주요." 그가 말했다. "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들도 그 아이가 순수하고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탐낼 거요."
나는 그의 성공을 기원했다. 그리고 그가 성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패자가 되게끔 태어나지만, 그는 승자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지상에 정말로 저런 행복이 있단 말인가? 나는 아버지와 딸과 미래의 남편이 하나가 되어 모두 축복을 받고 서로 축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문했다.
그렇다. 그런 행복도 있다. 로맨스로 물들이지 않고 상상력으로 과장하지 않아도 그런 행복은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며칠간, 혹은 몇년간 천상의 행복을 미리 맛본다. 그리고 선한 사람들(사악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행복이 결코 오지 않는다)이 그런 완벽한 행복을 한번이라도 느끼면 그 달콤한 효과는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 없다. 훗날 어떤 시련이나 병마나 죽음의 그림자가 뒤따라와도, 미리 맛본 영광은 쓰라린 고뇌를 변함없이 달래주고 먹구름을 물들이며 빛난다.
더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이다. 나는 세상에 그런 운명을 타고나 자라고, 부드러운 요람에서 느지막이 조용한 무덤으로 인도되는 사람들이 있음을진실로 믿는다. 아무리 험난한 고통이 닥쳐도 그들의 운명은 꺾이지 않고, 어떤 광폭한 어둠이 닥쳐도 그들의 여행길은 어두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대개 제멋대로 되어먹은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선별한 조화롭고 친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비심을 지닌 온화한 사람들이며, 신의 친절한 속성을 친절하게 대행하는 사람들이다.
이 행복한 이야기의 진실을 더이상 미루지 말자. 그레이엄 브레턴과 폴리나 드 바송삐에르는 결혼했다. 그리고 브레턴 선생은 과연 하느님의 친절한 대리인이었다. 그는 세월이 흘러도 타락하지 않았다. 그의 결점은 점점 더 줄어들었고, 미덕은 원숙해졌다. 지적으로 더 세련되어졌으며 도덕적으로도 더 훌륭해졌다. 모든 찌꺼기는 다 걸러지고 맑은 포도주만 남아 조용히 빛났다. 그의 상냥한 아내의 운명 역시 밝았다. 그녀는 늘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의 발전을 도왔다. 그녀는 그에게 행복의 초석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레이엄과 폴리나 두 사람의 삶은, 야곱이 사랑했던 아들의 삶처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6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신께서 보시기에 좋았기 때문에 그러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그런 운명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우리가 겸허하게 체념하든 그러지 않든 신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창조의 충동이 그것을 부추기고,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권능의 힘이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한다. 내세의 삶의 증거는 반드시 주어진다. 필요하면 피와 불1 속에라도 그 증거는 새겨지게 되어 있다. 피와 불 속에서 우리는 자연에 퍼져 있는 기록을 추적하며, 피와 불 속에서 우리 자신의 경험과 교차되는 증거를 만난다. 고통받는 자여, 이런 불타는 증거를 보고 두려워 혼절하지 말지니. 지친 방랑자여, 행장을 갖추고 위를 보면서 행진해나갈지니. 순례자들과 비통해하는 형제들이여, 동반자가 되어 나아갈지니. 우리 대부분은 이 험난한 세상을 가로질러 난 어두운 길을 가게 되어 있으니, 꾸준히 한발 한발 걸을지니. 우리의 십자가를 깃발로 삼을지니. 그분의 약속을 지팡이로 삼을지니, "하느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2하니. 그분의 뜻을 현재의 희망으로 삼을지니,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3으니. 그분의 가슴을 최후의 안식처로 삼을지니, "하느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4니. 가없는 영광을 최고의 상으로 삼고, 상을 탈 수 있도록 달릴지니. 훌륭한 병사가 되어 고난을 견딜지니. 주어진 길을 완주하고, 신앙을 지키고, 정복자보다 더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의지할지니.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5
"당신은 여물통 속의 개11로군요!" 내가 말했다. 그녀가 은밀히, 그리고 늘 그를 원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를 "참을 수 없는 사람"12이라고 했고 "고집불통"13이라며 놀렸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이해관계 때문에 그를 묶어두기 위해 결혼을 원했던 것이다.
이것이 나와 베끄 부인의 만남 중 유일하게 진실을 드러낸 만남이다. 잠깐 동안 일어난 그날밤 같은 장면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앙심을 품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내 잔인한 솔직함 때문에 나를 더 증오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강인한 마음속의 은밀한 철학으로 마음을 여미고는 불쾌한 기억을 모조리 잊기로 결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 격렬한 입씨름을 다시 거론하지도 반복하지도 않았다.
학생들과 선생들에게 합류하니 그들 모두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모두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내 마음이 탄로난 것이 분명했다. 가장 어린 학생조차도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절망하는지 안다고 생각하니 몹시 불쾌했다.
사람들에겐 마음을 읽고 어두운 비밀을 해석하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많았다.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비밀을 지키게 하고, 비밀만이 그의 군주가 되게 하소서. 그날 하루 동안, 다른 사람들이 내 슬픔의 원인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지난 육개월간의 내 내면적인 삶은 여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증거가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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