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너희에게 장미를 주겠으나, 빵은 알아서들 구하거라 

템포러리는 고전적인 취향을 비웃거나 한 수 아래로 취급하지만, 고전적인 취향은 컨템포러리를 존경하거나 적어도 두려워한다는 얘기를 수긍하시나요. 다짜고짜 예술에 계급이 존재한다고 고발하면서 시작하는 이 당돌한 책은 자꾸 마음을 쓰리게 합니다. 예술의 감성적 측면 같은 건 애시당초 없습니다. 이 책은 예술의 '경제론'입니다. 

네덜란드 정부가 칸딘스키의 그림 한 점을 샀을 돈이면 자국의 모든 화가 지망생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술가에게 자유를! 자본에서의 탈출을!? 그러나 예술가 지망생 여러분, 이 책은 여러분을 찬양고무하기 위해 태어난 책이 아닙니다. 거의, 그 반대입니다.

미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예술가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직업군은 성직자 밖에 없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우리는 예술이 종교와 손을 맞잡고 걸어감을 알 수 있다. -p.137 (이 서재의 머릿말로 쓸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예술의 경제학은 '일반 사회의 경제학' 못지 않게 치열하며, 어쩌면 훨씬 잔인합니다. 프로 스포츠보다 냉혹한 승자 독식 시장이고, 정부의 지원 시스템을 파악하기 위해 자기 스타일을 체크할 줄도 알아야 하며, 각국의 기성 예술가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벽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어지간한 회사 면접은 찜쪄먹을 정도로 자기PR을 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스타일보다는 전략적인 유연함을 보여야 하고, 심지어 '미안하지만 밟고 올라설'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이 세계의 예술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유일한 것은 예술이라는 장미의 이름,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이름 뿐...

승자 독식 체계의 로또급 확률에 현혹된 신입 예술가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이뤄진 공급 과잉의 세계. 이에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빈곤 증가.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소수 권력집단의 카르텔화와 친 자본-권력화. 다소 과격한 주장이긴 하지만 일리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겪어보신 분들은 더 잘 알겠지요. 당신이 평범한 예술가 지망생이라면 이 책을 읽고 미래를 재구상하시기 바랍니다(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신이 열성적인 예술가 지망생이라면 읽지 않기를 권합니다. 당신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독한 예술가 지망생이라면 이 책은 좋은 가이드가 될 겁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전자에 속했으며, 이 책을 소개하는 기분은 마치 참회록을 낭독하는 기분입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장미만을 손에 쥐어준 신을 원망하지 말고 그 장미를 놓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바랍니다. 

 

We sing, We dance, We steal sunlight 

 지난 번에도 소개드린 바 있는 책이지요. 다시 한 번 왔습니다. 모든 뛰어난 (예술) 에세이가 그렇듯 이 책 역시 서두르지 않으며, 어떤 발견의 순간들을 공들여 모으고

생각이 펼쳐질 때, 말의 형상이 싹트고 꽃필 때, 우리 모두가 둘러앉아 이야기하고 이야기하며 시간이 우리를 이기도록 두었던 어두운 테이블 위로 말의 표현이 지친 꽃잎들처럼 쌓일 때와 같은 텅 빈 묵상의 시간들. 흔히 말하듯, 그냥 시간을 보내기. 다시 말해, 시간이 우리를 포획하도록 두기. 

"말씀해 주시겠어요." 언젠가 나는 수녀원 독방에서 열아홉 살부터 (활기차게, 그래 보였다) 살아온 예순 살의 은둔 수녀님께 여쭈었다. "묵상적 삶의 정수는 무엇일까요?" 

"한가한 시간." 그녀는 망설임 없이, 도자기 같은 푸른 눈으로 명랑하게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세계-마티스가 그 일부를 드러내며 

마티스는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늙은 직조공이 말한 장식 예술의 정의에 찬동했다. "부귀보다 더 귀중하며, 모두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것." 가난하지만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지상에서는 아닐지언정, 최소한 "주머니 속 밀림"이 정교하게 프린트된 선명한 공장제 옷감이라는 천상의 영역에서는 유산 상속을 바랄 수 있었다. 마티스는 트위드 양복과 조끼로 부르주아처럼 차려입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일찍이 부자들의 헤픈 허기가 이국적 아름다움을 물리도록 탐닉하는 것을 보았던 노동계급 소년이었고, 불필요한 쾌락의 힘을 인식했다. 가혹한 북부 지역의 사제가 압도하는 가톨릭교, 사다리를 조심스럽게 움켜잡고 올라가 아버지의 몫이었던 결핍에서 벗어나는 이 모든 것은 부르주아적 자기만족을 낳지 않았다. 이는 그를 포브Fauve로, 야수로 만들었다. 

보앵의 옷감을 수요한 부자들의 사치스러운 미의식과 그 물건들을 공급한 진흙투성이 마을 노동자들의 자랑스러운 제작품 사이에서, 마티스는 혼자 피뢰침처럼 서서 두 세계를 연결했다. 아름다움은 사업이었다. 이는 먹을 것이었고 잘 곳이었다. 이렇게나 계급적인 세상에서, 아름다움이 일용 노동을 지배하고 식탁에 빵을 제공하는 세상에서, 가난은 자기에게 창조하도록 맡겨진 영광에 영향 받지 않을 수 없다. 마티스는 절대 잊지 않았던 것 같다. 가난한 자의 허기는, 오래된 노동가요가 말하듯, 빵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그리고 장미도.

그리고, '마티스'가, 

"구름 모양이 극도로 상쾌하다." 그가, 비행기 탑승을 마법 같이 느꼈던 19세기인이 말한다. "구름 기둥이 솟아오른 광대한 벌판이 길을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더 가까이 가 이를 뚫고 침묵의 안개와 흩어진 빛 속으로 나아간다... 갑자기 우리는 찬란하고 애무하는 듯한 빛(찬란할 뿐 아니라 즐겁기도 한 빛) 속에 다시 한 번 있다." 

경험 전체가 계시적이었다. "비행기 여행은," 그가 존재의 다른 상태에 대해 말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마음의 평화를 우리가 잊을 수도, 찾을 수도 있게 해준다. 놀라운 것은 부동감, 그리고 커다란 안도감이다. 우리가 추락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는 빛 속으로, 그의 영속적 주제로 올라갔던 것이다. 

그리고 수피교의 춤, 피츠제럴드 시대의 예술과 권태, '발견'에 대한 여러가지 열망, 세심한 여행기적 성찰, 어떻게 예술이 열락의 문을 두드리는가, 들라크루아와 마티스, 앵그르와 마티스, 19-20세기의 위대한 여성 소설가들, 끝없는 오달리스크, 그리고 아라베스크가 등장합니다. 각 단락은 연결고리 없이 등장한 듯하지만 멋진 솜씨로 엮이게 됩니다. 마티스에 대한 스탕달 신드롬처럼 신열에 들떠 시작한 책. 그러나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면 <블루 아라베스크>는 오히려 인생과 세계에 대한 관찰기에 가깝습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객관성을 담보하는 전기도 아니고 학술적인 분석서도 아닙니다. 심지어 마티스에 관한 일부는 그녀의 상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두 번째 인용을 보시면 느낌이 오시겠죠). 얼핏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렇습니다. 마티스는 하나의 끈이고 거기 끼워진 보석들은 '세계'입니다. 리듬과 패턴과 햇빛 때문에 자신의 비밀을 노출시킨 세계요. 우리는 한 권의 책을 읽었으며, 이어 노래하고 춤추고 잠시나마 햇빛을 훔칠 것입니다.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셔...

  

세계와 소통하기

            
 

<현대 타이포그래피-비판적 역사 에세이>. 이 멋진 표지는 누구의 것인고 하니, '슬기와 민'이군요. 출판사 스펙터프레스는 이 분들껍니다. 안그래도 비주류 역사책은 잘 안 나가는데 세상에 타이포그래피의 역사...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내용은 흥미롭습니다. 각종 폰트의 발명, 인쇄와 편집의 소소한 혁명들, 그리고 그 배후에서 벌어지는 미학 담론들과 정치론들의 국지전. 어떤 원형의 텍스트에 가장 알맞는 옷을 입히는 이 타이포그래피라는 작업, 예술적 감수성과 철저한 실용적 요소를 두루 갖춰야 하는 줄타기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 재밌습니다. 텍스트를 비주얼화한다는 건 소쉬르식으로 우기면 '사고의 시각화의 역사'나 다름없으니까요. 예술-인문쪽 좋아하시는 분들께 의외로 중요한 출발점을 시사할지도 모릅니다. (여담. 저는 산세리프체를 좋아하는데요. 이 폰트를 둘러싼 공방들을 읽자니 세상에 참 평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시사들도 무슨 죄다 투쟁의 역사...)

<약한 건축>은 건축을 주제로 한 비평서인데요. 앞의 책과 마찬가지로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솔직히 건축에 관심없는 분들은 재미없을 확률이...높습니다. -_-) 주류 건축사들을 훑으면서 이것도 까이고 저것도 까입니다. 대부분의 새로운 시도가 자기 논리 안에서 매몰되는 비극적인 역사를 추적한 다음, 조심스레 제시되는 것은 '자의식이 희박하고 덜 구획지어진' 반쯤 열린 공간으로써의 건축물입니다. 동양 사상을 첨가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해도 될런지, 그렇다면 기존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 밟아온 '탈정치->몰정치'의 역사를 어떻게 피해갈지에 대해서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해봐야 안다는 거겠죠. 모든 정치적인 것들은 시지프스의 냄새를 풍깁니다.

너무 무거운 책들만 나왔나요... <세상을 껴안는 영화 읽기>는 쉽게,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영화로 보는 인권 이야기'입니다. 아니나다를까 본문의 말투는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삼은 느낌입니다. 말하자면 '재밌게 배우는 인권 이야기'죠. 매 영화 소개가 끝날 때마다 질문꺼리가 있어서 논술 공부용으로도 괜찮을 듯합니다. 본문은 영화 스토리의 축약이 대부분이라 특별한 분석을 바라는 중급 이상 내공 소유자들은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조숙한 초등학생부터 너무 공부에 몰두했던 대학 초년생들까지 권해 드립니다.

<이스탄불에서 온 장미 도둑> 제목 예쁘죠. 터키에서 온 사진가 아리프 아쉬츠의 서울 탐색기입니다. 실제로 온 서울의 장미를 꺾어 '훔쳐서' 서울 내 각 지역별 장미들의 차이까지 꿰고 있는 이 남자. 좀 더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꽤 낯설은 모습이긴 합니다. 다만 좀 더 깊이 써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네요. 정치나 역사에 관한 이야기에서 어느 시점 이상으로 치고 들어가지 않는데요. 일부러 멈춘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책이 무거워지지 않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네요. 사진은 꽤 좋습니다. 간만에 만나는 스트리트 스냅이네요.

 

그리고                    사진 + 공간

             

<낮은 데로 임한 사진>은 노장 최민식 선생님의 에세이-사진 모음입니다. 이 대책없는/망설임 없는 휴머니즘-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습니다만, 어쨌거나 때로 그런 온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순간들이 있지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는 측면에서는 일가를 이룬 장인이며, 그 신념의 단단함과 함께 서민들의 삶을 바라본다는 것은 꽤 든든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슈타이켄의 가족사진전 같은 스타일을 싫어하시더라도 이 분의 사진은 일단 한 번 만나고 봅시다. 

<랭포드의 사진 강의>는 바바라 런던의 <사진학 강의>의 대항마로 영국에서 내세우는 사진학 총론입니다. 사진의 간략한 미학적 특성에서 시작해 빛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고, 그 고찰이 기초적인 광학으로 이어지며, 기초 광학이 카메라 메커니즘으로, 그것이 다시 감재(필름)로 이어지고 또 암실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이어 디지털 작업이 등장하고 포트폴리오 제작에 대한 조언이 이어집니다. 네, 부드럽죠. 이런 유기적인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사진이 빛으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시스템이란 걸 배우는 것보다 개론에서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더불어 암실 작업의 중요성(콘트라스트는 직접 조율해보지 않으면 절대 감을 잡을 수 없다)을 비롯해서 저자의 직접적인 조언들도 눈에 띕니다. '강의'는 역시 이런 식이어야겠죠. 수록된 사진 퀄리티도 괜찮고, 초보에서 중급(?)까지 두루두루 참고로 삼을만한 책입니다. 

<a monologue>는 솔직히 의외...였습니다. 배우 박상원 씨의 사진집인데요. 사진 퀄리티가 괜찮습니다. 아마추어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구요. 소위 '연예인 사진집'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주로 90년대 중후반 일본 감성파 사진 혹은 싸이월드 스타일의 사진이 대량 생산되는 유명 아마추어들과는 다른 담담한 분위기가 빛을 발합니다. 재밌는건 사진의 스타일이 고정되지 않고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는 게 엿보인다는 건데요. 이렇게 조금씩 변화를 주는 시도도 좋아 보입니다. 비록 해외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컷들이 많긴 하지만, 나도 할 수 있다! 라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가슴에 불을 당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대가들의 책보다 유용하죠.

<공간에게 말을 걸다> 재밌었어요! 모든 시각 예술에 적용 가능한 '배경의 미학'이 가득합니다. 기둥과 천장, 복도와 회랑, 층간 구조의 노출 등등 각종 구조물들의 배치가 보는 사람에게 어떤 심리적 효과를 불러 일으키는지를 보여 줍니다. 풍부한 예시가 장점인데요, 특히 매 꼭지마다 그 주제를 모형 세트로 촬영한 사진이 들어 있어서 이해하기 편해요. 주로 실제 건축물과 영화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예시를 보는 것도 재미납니다. 특히 몇몇 건물의 내부 스케치는 시적이기까지 해서 더욱 좋았어요. 읽는 것도 재미있고, 그야말로 모든 분야의 시각 예술에 적용해볼 수도 있는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는 책입니다. 미리보기를 통해서 살펴보시면 돼요.

  

-끝. 봄이네요. 꽃샘추위도 있고 그렇습니다. 부디 봄에 파묻히지 말고 그 위에 올라타세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참. 이 책을 놓칠 뻔했네요. 방대한 데이터북으로도, 정치와 대중예술의 관계학으로도, 그저 독립된 하나의 역사책으로도 손색이 없는 역작입니다. 이런 게 나오면 참 감사하다는 마음 들어요. 게다가 저는 심수봉을 정말 너무 좋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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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방글 2009-04-1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스탄불에서 온 장미도둑은 표지 디자인이 좀 아쉽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09-04-15 14:10   좋아요 0 | URL
표지가 약간 난삽해보이긴 해도 그래도 꽤 예쁩니다. 실물이 더 나은거 같네요.

한종석 2009-08-0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 예술가들은 가난할까 이거 읽어봐야겠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09-08-05 18:11   좋아요 0 | URL
네, 예술가 지망생들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아디오스, 영광의 날들이여." 

-책 표지의 하단을 장식하고 있는 클래식 황금기의 명 지휘자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황금기는 이들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었죠. 이 책은 고전음악의 황금기를 뒷받침한 조연들까지 불러들여 풍성한 이야기들을 제공합니다. 전쟁 중에 사용된 음파 기술로 레코딩의 한계를 끌어올린 '민주적 게이 공학자 천국' DECCA. 소니에 합병되고 카라얀과의 계약도 실패(갑자기 사망)하면서 무너져버린 CBS의 슬픈 최후. 그리고 조용히 세상을 떠나려고 한밤중에 묻힌 카라얀의 무덤에 찾아가 눈물을 흘린 단 한 명의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 아, 낙소스 탄생에 얽힌 한국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어두운 먹구름이 동쪽에서 몰려왔다. 홍콩에서 음반 배급을 하고 있던 독일 출신의 한 무역업자가 한국에서 가정방문으로 판매할 대중적인 클래식 패키지를 주문받았다. CD 제작 단가가 떨어진 것을 확인한 클라우스 하이만은 파리에 살고 있던 한 슬로바키아인한테서 오케스트라 테이프를 서른 개 구입해 패키지를 주문한 사람에게 팔려고 음반으로 찍었는데, 이미 그는 망한 뒤였다. "그래서 나는 서른 명의 오케스트라 거장들이 지휘한 음반을 갖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동유럽 오케스트라였기에 정가를 받고 팔 수도 없었죠. 연주는 그럭저럭 들을 만했지만요. 결국 염가 레이블로 발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낙소스(Naxos) 레이블이 시작된 겁니다." 

-p.178 

음반사들이 저자를 고소했던 점에 비추어, 이 이야기들이 전부 사실일거라는 보장은 아마 아무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건과 실화급의 비화/야사만으로 생각하기에는 아깝습니다. 일단은 재미있기 때문이고, 틱틱거리는 말투로 시비를 거는 듯 보이다가도 클래식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하는 저자의 귀여움(..)때문이기도 하겠죠. 그리고 그 무엇보다 클래식 음반 시장 몰락의 맥락을 잘 해설해주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임에 분명하니까요. 그 몰락은 작곡자, 연주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에 편입된 음반사와 무능한 경영진, 그리고 '불운'들이 겹쳐 만들어낸 환상 교향곡이었던 거죠. 

클래식 음악 산업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 죽음의 결론이 부활일지, 변용일지, 영원한 침묵일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번성기에 이어 황혼에 접어든 이 세계를 사랑하는 애호가들께는 그 저무는 빛마저 어떤 감회를 선사해 드릴 겁니다. 배경음악은 이졸데의 죽음 어떻습니까? 저는 토스카니니로 할래요. (이 책에서 꼽은 명반은 푸르트벵글러입니다) 

아참, 불멸의 명반 100선과 최악의 음반 20선도 쏠쏠합니다. 비록 최악의 20선이 논쟁에 휘말릴 정도의 문제적 선정은 별로 없긴 하지만요. ㅎ 

 

        

단상, 다큐멘터리 사진가를 사랑한 '우리'는 누구인가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이 더욱 커지고 있는 이 시점에도 왜 '우리의' 다큐멘터리 사진들은 여전히 변방을 맴돌고 있을까요. 소통의 방법이 문제인지, 일반 대중의 사진론과 그 틈이 너무 벌어진 것인지 (사실 인디영화도 비슷한 원인이겠죠. 워낭소리는 하나의 '현상'이구요) 성찰이 더 필요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다양한/흥미로운 방법론으로 현대사의 각종 요소마다 흔적을 기록한 이 역사-미학적 결과물들이 왜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지 참 궁금해요. 역사적 유용성과 함께 다양한 미학적 논의가 가능한 풍부한 텍스트-이미지들인데 말이죠.

<우리가 사랑한 다큐멘터리 사진가 14인>은 유명 다큐 사진가 14인의 소개, 인터뷰, 사진들 몇 점을 모아 놨습니다. 좀 짠한 장면은 '우리가 사랑한'이라는 제목 앞부분입니다. 우리는 누구일까요. 이 땅과 역사에 애착을 갖고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그 현장을 남긴 사진가 당사자들은 아니겠으며, 소리높여 외치고 분개하고 '읽지만' 그조차 내 취향에서 벗어나는 모험을 시도하기를 꺼리는 분들도 아니겠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적은 사람들입니다. 지금은요. 

예술을 한다는 건 힘든 일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 중에서도 더하죠.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의무와 미학적 성취를 위한 예술가의 고뇌를 동시에 짊어진 분들을 한 번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열 네 명의 선정 작가들은 거의 현재 한국 다큐사진의 드림팀이며(물론 국수용 씨나 에어리어 박 등등 에이스가 더 남아 있습니다), 단언하건대 이 책을 읽고 나면 역사,예술,인생,회한(!) 그 무엇이든 하나 이상은 건질 수 있을 겁니다. 내용이 치열해도 잘 정리해서 남 얘기 듣듯 하기에는 인터뷰만한 게 없거든요.  

p.s: 다큐멘터리와 포토저널리즘은 구분되어야겠죠. 포토저널리즘의 최전선은 <World Press Photo'08>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 표지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네 종류의 썰

                

<벤야민 & 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은 제목의 포스에 비하면(?)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데 있어 두 가지의 상반된 입장을 놓고 서로 반대쪽에서 파들어가는 재미있는 교양 문화서예요. 기계복제시대에 접어들어 모더니즘적인 아우라 대신에 자기복제성-대중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미학을 만들 거리는 벤야민류(포스트모던한 선언?)의 희망적 분석, 그리고 '개성 몰살의 초강력 인민 마약'이 될 거라는 아도르노류 비관론이 정면 충돌합니다. 써놓고 보니 어려워 보이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미디어 쪽에 관심있는 분은 부담없이 접하셔도 돼요. 인용 작품들에 대한 소개는 물론, 책의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친절하게 질문까지 챕터별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미디어-사회분석. 이론 해설 및 비교. 난이도 중하. 

<스캔들 미술사>는 일종의 미시사 책입니다. 그림에 얽힌 사연을 따라가 보는거죠. 그림의 미학적 성취는 이 책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역사의 증거로 제시되지요. 렘브란트의 야경꾼은 그 자체로 끈질긴 보존과 복구의 살아있는 증거이고, 마네의 올랭피아는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 시대의 폭력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기존의 미술사 책에서 다루지 않은 면모를 구경할 수 있어서 재밌습니다. 그림을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읽기, 그림을 분석하기, 그림으로 잡담하기에 이어 이런 미시사 책들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고급 킬링타임. 미시사. 에피소드 북. 난이도 하. 

<블루 아라베스크>는 섬세한 단상입니다. 만약 원서를 읽는다면 단어의 어감에도 무척 신경을 썼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잘 짜여진 수필이죠. 미술하고는 담 쌓고 살던 저자가 어느 순간 마주친 마티스의 작품 때문에 충격에 빠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면 보통 마티스에 대한 절절한 찬양같은 걸로 이어지게 마련인데, 이 책 역시 그런 길을 따라가는 듯 싶다가도 (인상깊을 정도로) 차분하게 한 겹 한 겹씩을 더 깔아 놓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우주와 질서에 대한 성찰에까지 다다르게 되죠(안심하세요. <시크릿>보다는 장 그르니에에 가깝습니다). 책 제목처럼, 아라베스크 무늬처럼 잘 짜여진 이 조용한 이야기는 좀 더 주목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따스하고 풍부한 몽상들은 늘 좀 더 주목받을 필요가 있긴 하지만요. 과감한(?) 파랑/검정의 2도 본문 인쇄 역시 싸이키델릭합니다. 예술 소재의 수필. 사색록. 난이도 중. 

<재즈 문화사>는 의외의 책입니다. 역사와 사회의 변화가 재즈를 어떻게 태동시키고 변화시켜 왔는지를 추적하고 있거든요. 아티스트와 명반 소개를 위주로 구성된 국내 재즈 책들을 생각해보면 독보적인 접근입니다. 종종 예술은 신화적인 후광에 파묻히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렇게 천재와 뮤즈들의 각축장처럼 소개하는 다른 책들과 함께 <재즈 문화사>를 읽으면 균형있는 접근이 되겠습니다. 불황과 전쟁과 대선과 정치적 성향이 재즈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얼핏 당연한 것 같지만, 그 '사실'들을 직접 읽고 저장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지요. 책 자체의 퀄리티로만 보자면 특별한 성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 '보통의 역사서'로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는 존재 자체가 소중한 책입니다. 음악 사회학. 역사서. 난이도 중하. 

  

-봄은 오나보네요. 이것저것 많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까지 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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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3-03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적인 죽음>은 클래식 호사가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인듯합니다. 그런데 200페이지 책의 가격이 만만치 않군요. ..<블루 아라베스크> 도 관심이 가네요. ㄳ

외국소설/예술MD 2009-03-0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페이지는 오류네요. 목차를 합하면 500페이지가 넘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나저나 블루 아라베스크를 알아보시다니 역시 센스쟁이세요.

드팀전 2009-03-03 09:27   좋아요 0 | URL
아..얼결에 제가 하나 기여를 했군요.^^
 

가장 정치적인 것이 가장 '폼'난다, 혹은 

문화 게릴라용 유격 전략전술 강해, <뱅크시, 월 앤 피스>

 

책의 원제 <Wall and Piece>는 금방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War and Peace>를 연상시킵니다. '벽'을 이용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집이기 때문에 재미난 말장난으로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이 제목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뱅크시의 양 측면을 모두 드러내는 중층적인 제목입니다. 그는 '벽과 조각들'을 이용해 '전쟁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이는 곧 일탈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와 신자유/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문화 게릴라 뱅크시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의 진짜 정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알려지지 않았죠. 경찰들의 눈을 피해 그래피티 작업을 하고 박물관의 그림들 사이에 자기 그림을 슬며시 걸어 놓는 문화 게릴라이며, "모든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꿈"인 팔레스타인 봉쇄 장벽(얼마나 거대한 '스케치북'인가!)에 찾아가 벽이 무너지고 하늘이 열리는 그림들을 그려 놓습니다. 공공연히 자본주의와 관료-권력을 조롱하는 뱅크시의 반권력 미술(모두가 참가할 수 있고, 세상 모든 곳이 그림을 그릴 터다)은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미술과 즐거움의 관계, 미술과 정치-권력의 관계, 그리고 미술과 사람들의 소통에 관해서요.  



 
                                 <런던에서의 작업>                                                     <팔레스타인에서의 작업>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지만, 책의 서문 말마따나 뱅크시의 여정은 이제 시작인지 모릅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가 벽에 그려놓은 그림들에는 보호막이 둘러쳐지기 시작했고, 그의 작품들은 비싼 값에 거래되기 시작했으니까요.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좌파 밴드' RATM의 언행 불일치(까지는 아니지만)를 생각해 보면 뱅크시가 지금껏 해 온 말들이 그의 커져가는 자본주의적 위상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68혁명 이후로 쭉 이어진 얼터너티브 문화의 주류 편입기에 한 사례가 더해지는 선에서 그칠 수도 있겠죠. '우리에게 사랑과 상상의 자유를 달라'는 신좌파의 구호는 늘 자본의 예쁜 포장능력에 무릎을 꿇어 왔으니까요.

체 게바라의 상품화에 반대하며 그의 초상화가 줄줄 흘러내리는 그래피티를 선보였던 뱅크시가 그저 비상한 재간둥이일지, 아니면 혁명 전야까지 영원히 어둠 속에서 그림을 그릴 게릴라일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죠.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작품만으로도 중요한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즐겁고 또한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즐겁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이라는 교훈이죠. 대중들의 '즐거움'이라는 중요한 고지를 선점한 자본주의 시장의 맞선 게릴라식 역습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저는 그저 기대에 차서 지켜볼 뿐입니다. (밴드도 아니니까 RATM처럼 해체는 안하겠죠...-_-;) 

참전 지원자들은 구입 및 소지, 배포를 권합니다. -예술MD 금주의 선택 

  

 

디자인, 인류와 지구를 지켜라!

                  



1. 디자인, 한국을 구출하라 : 평론가 최범의 두 번째 평론집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독재형 관치와 신자유주의를 부드럽게(!) 오가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종속된 한국 디자인의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껀수별로' 조목조목 비판합니다. 좀 어이없는 기획이었던 디자인 올림픽이나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피어나는 각종 비엔날레의 향연도 살펴보고, 국가와 디자인이 서로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살핀 뒤 '이용이 아니라 공존'을 위해 시스템 자체에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더 많은 관심이 아니라!)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당연한 결론이 아니냐구요? 그러나 이 책은 구체적인 사실 적시와 함께, 이런 책에서는 보기 드문 '행정적 대안 제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기 드문 '단행본 시론'이라 하겠습니다. 

2. 디자인, 자본주의를 돌파하라 : 평론가 서동진의 디자인 비평집 <디자인 멜랑콜리아>. 현재를 장악한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과 '신경제'간의 암묵적인 협약을 돌파하기 위한 고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대안 디자인'정도가 아닙니다. 불온서적이예요. 디자인이야말로 어떤 사회의 '드러난 겉모양'이며, 또한 (시민과 사회간의 상호 에너지 교환 장치로써의) 정치가 그 겉모습을 드러낸 부분이라는 그의 지론은 단순한 진보적 디자인 담론을 뛰어넘어 '그 다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회의 시스템과 연결된 디자인이라는 열쇠를 통해 '바깥에서 안으로' 시스템을 추적해 들어가자는 (일종의 문화적 해킹?) 얘기인데요, 현 체제 하에서는 디자인의 긍정적 발전의 한계가 너무 명백하니, "한 번, 산 자여 따르지 않겠는가"라는... 이 책의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다소 현학적인 글쓰기와는 달리 그 바닥에 흐르는 뜨거운 감성인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현재 세계라는 매트릭스에 포섭된 수많은 디자인 운동들의 사례를 열거하며 그가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사실 좀 동조하고 싶습니다. 근데 네오는 어딨나요. 

3. 디자인, 매트릭스를 돌파하라 : <인터페이스 연대기>는 한국 사람이 쓴 디자인 문화 비평서라기에는 좀 아스트랄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이 도구와 소통하는 방법(인터페이스)에 대해 사회문화적 접근을 시도하는 재미있는 책이예요. 핵전쟁 시나리오와 베트남전과 대도시 개발시스템의 관계 (<분산의 다이어그램:신경망 도시, 구치 땅굴, 세미라티스>), 포촘킨 파사드와 포스트모더니즘 광고/건축미학의 집합 등 재밌는 주제들이 등장합니다. 인터페이스는 항구적으로 보다 나은 것을 찾아가는 이상적인 여정이 아니라, 한 사회가 집약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일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이 책은 드러내 보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역사의 인터페이스를 살펴본다는 것은 어떤 사회의 욕망 또는 히스테리의 징후를 훑어내는 작업으로도 유효한 셈이죠. 이 징후 읽기에 대해 어느정도 '징후'만 안겨주며 종횡무진하던 책은 마지막 장(<우리, 파시스트 - 테크놀러지의 강철폭풍>)에 다다라 대중친화적 인터페이스-매체의 파시즘적 공격력을 고발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서민, 대중, 다중... 초식동물의 특성에 가까운 이 '집단'은 언제나 귀를 쫑긋 세우고 징후를 알아채지 못하면 늘 댓가를 치러야만 알게 되지요. <인터페이스 연대기>는 기민함을 좀 더 제공해 드릴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의 잦은 에러가 사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계획이란 걸 아시나요? OS의 발전속도를 일부러 늦추어 인공지능 컴퓨터의 개발 가능성을 저지 혹은 지연하려는, '다른 지구에서 온 동지들'의 놀라운 활약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인터페이스야말로 매트릭스의 표면이고 우리의 생활 구역이므로, 정신 바짝 차리시고, 데자뷰 현상이 일어나면 주위의 가장 가까운 전화기를 시야에 확보해 두시기 바랍니다. 부디 건승하시길. (앞선 윈도우즈 관련 언급은 그리폰북스의 <21세기 SF 도서관>에서 가져온 설정임을 밝힙니다~) 

 

& +   

               



<다카페 일기>는... '이봐 위에. 싸우지들 말라고. 해피 홈이 최고야' 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그런데 책을 보고 있으면 '그렇군 역시 해피 홈이 최고일지도 몰라', 라고 어느새 동조하게 된달까요.; 저는 아마추어 블로거의 '책'에는 점수다운 점수를 줘 본 적이 없지만, 이 책은 의외로 매력적입니다. 아마 첫경험인거 같아요 저도. 2006년 일본 블로거 대상을 탔다는데 그럴만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의 엽기발랄한 모습도 인상적이고, 종종 출현하는 '보는 사람에게 햇살이 쏟아지는 느낌의' 사진들도 감탄스럽습니다. 사실 그거야말로 중산층의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데올로기적인 사진임은 분명하지만, 뭐 어떻단 말입니까. 그걸 알고 오히려 그걸 위해서 이 책을 집어든 거잖아요. 게다가 퀄리티도 좋고, 조금은 마력적이기까지 한걸요. 일상에 지친 분들께는 최소한 진통 효과만큼은 뚜렷할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무지 부러운 가족입니다.; 초판 한정 제공되는 엽서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행복을 부르는 부적 정도로 사용해도 왠지 작동할거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콘란과 베일리의 디자인 & 디자인>은 크고 비싸고 멋져요. 전반부는 디자인계의 두 대가가 만나 각종 주제에 대해 토론을 펼친 뒤 그 결론을 책으로 옮겨 담았고, 후반부는 거의 디자인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명/지명/상품 등을 배열해 놨습니다. 때로 냉소적인 비판이 드러날 때가 더 재미있는데요. 제가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디자인 백과사전식의 배열보다는 개인적으로는 문화-디자인 담론을 다루는 앞부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객관적인 가치(?)라면 역시 후반부, 국내에서는 아마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에 관한 베스트들을 모아놓은 소사전' 정도가 되겠지요. 사실, 그냥 소장용으로 꽂아놔도 폼이 막 나는 '커피테이블 북' 이기도 합니다... 아 오해마세요. 담겨있는 콘텐츠는 상당히 흥미롭고, 담겨있는 사진들도 시원하고 멋집니다. 모더니즘 미학의 극치를 포드 공장 내부에서 발견하다니!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증거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로 '도시'를 꼽았습니다. 한국의 광역시들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근/현대사와 도시 내 디자인 요소가 어떤 관계를 주고받았는지 (아쉽게도 불륜적인, 즉 부적합한 관계가 훨씬 많은 편입니다) 알 수 있습니다. 탐사라고 해도 맞는 것이, 실제 역사 사료들을 충실히 가져와 옮겨 놓았고, 사진 자료도 풍부하게 싣고 있거든요. 그래서 단순한 '썰로 푸는 연구'가 아니라 발로 뛰며 직접 보고 비교하는 현장학습형 디자인-도시론이 되겠습니다. 이 무슨 도시의 명소도 아니고 온갖 자질구레한 곳들을 다 돌아다니는 희안한 답사기기도 하지만.. 글쎄요.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저도 부산 출신이라 부산 얘기 재밌게 봤어요. 아참, 위에서 소개드린 지구 구출용 디자인 책 세 권과 묶어 보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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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방글 2009-02-0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뱅크시, 월 앤 피스는 멋지구만

외국소설/예술MD 2009-02-02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뱅크시 모르는 분들에게는 서슴없이 추천 가능한 책입니다. 반달리즘에 대한 애증이 뒤섞인 <디자인 멜랑콜리아>와 함께 추천해 드리지요. ^^

라온 2009-02-05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멜랑콜리아 여기에도 있었네염. 적어뒀었는데.

외국소설/예술MD 2009-02-0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준수한 시론이라고 생각됩니다. 분명히 드러나는 성향은 플러스구요.
 

아래 책 상세 페이지의 미리보기를 꼭 구경해보시기 바랍니다

 

성공적인 디자인이란 시각적 효과만으로 여타의 해설이 필요없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설득시키는 것이겠죠. 그럼 디자인에 관한 책에도 그 정의가 적용될 수 있을까요? 디자인을 디자인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메타-디자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 재미난 작업을 해치워버린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디자인계의 멋쟁이 저술가 스티븐 헬러와 머코 일릭의 공저, <디자인 해부학>입니다. 

21세기에 눈에 띈 디자인 작업들을 기존의 디자인 역사와 엮어보는 이 책은 꽤 풍부한 글밥을 담고 있습니다만, 좀 과장해서 말씀드리면 글씨를 하나도 읽지 않더라도 굉장히 재밌습니다. 성공적인 디자인 작업을 한 페이지를 할애해 보여주고 그 디자인의 핵심 구성 요소 3가지씩을 뽑아낸 다음, 접혀 있는 옆 페이지를 펼치면 그 구성 요소들의 변천사를 화살표를 따라 손쉽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말이 필요없는 디자인 연대기죠. 직관적이고 깔끔하며 효과적입니다. 책 클릭하고 들어가셔서 미리보기를 한 번 보세요.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디자인에 관한 책은 거의 현대미술에 버금갈 정도로 어렵거나, 쉽게 쓴다는 것이 그만 에세이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요, <디자인 해부학>은 가장 직관적이고 효과적이라는 디자인적 정의를 책 자체가 실현함으로써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정확히 웅변합니다. 굳이 해설하지 않고 그 자신의 특성으로 말없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저 약간의 타이포그래피와 예쁜 편집으로 승부하는 (내용은 일반 교양 예술 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책들과는 발상 자체가 다르죠. 아주 즐거운 책이고, 어렵지 않으며, 시각적 포만감은 물론 발상의 신선함까지 제공합니다. 진심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 근데 표지는 좀...-_-; (그러나 원서 표지도 이렇습니다.;)

<난이도 중: 글을 읽으려고 시도할 경우 약간의 용어 지식이 필요함. 글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이제서야 만나다니...(한숨)

 

이 책도 설명보다는 감탄 위주로 써야 할 책입니다. 이유 불문하고 여지껏 책으로 다루어진 적이 없었던 한국 정원에 관한 답사기인데요. 개인적인 감상기가 되지 않도록 아예 팀이 꾸려져 객관적으로 쓰려 노력했고, 각 정원별 배치도와 함께 중요 포인트마다 꼼꼼한 설명이 붙었습니다. 첨부된 사진도 정원 사진답게 나무와 자연 경관을 바짝 끌어들이는 등 매우 공들인 모습이고요. 그야말로 애정이 담뿍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자랑을 일삼기에는 아직 때가 일러" 만방에 점잖게 소개하고자 하는 저자들의 들뜬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거기다가 정원 종류별 분류와 정원에 주로 심는 나무며 풀에 대한 소개 등등, 그야말로 답사를 위해 만들어진 충실한 가이드 북이죠.

예를 들어 볼까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경복궁 편을 한 번 볼짝시면(엣헴), 사람들이 구경 다니는 길에 아미산이라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아미산 아래를 지나가면서 슬쩍 올려만 보고 지나가버린단 말이예요. 애매한 풀 좀 보고 휙하니 지나갑니다. 근데 이걸 교태전에 올라가 바라보면 그제서야 빛을 발해요. 열린 문 틈 사이로 네모 반듯하게 들어오는 풀이며 나무며 하늘이 마치 움직이는 그림 같더란 말입니다. 보라고 꾸민 것들은 가장 보기 좋은 곳에서 봐야 그 진가를 아는 법, 마침 함께 실어놓은 사진도 네모난 창문 밖으로 호젓한 가을 풍경이 퍽 단정하고 멋스러워요. 

서양은커녕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과도 그 분위기가 극히 다른, 자연과 건축이 시나브로 섞여버린 이 녹색성장 하이브리드 스타일의 한국 정원을 책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세상에 가 볼 곳이 더 늘었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드무니까요. 이 땅을 사랑하는(강부자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분들 모두에게 강력히 권하는 바입니다.

<난이도 하: 권태와 일상에 찌들었으나 아직 꿈과 희망을 놓지 않은 분들, 중에서 호젓함과 허허로움의 맛을 아는 분들께>

사진, 두 번은 조금 깊게, 한 번은 즐겁게

              

<사진의 북쪽>은 우리나라의 '현역' 여성 사진가들에 대한 월간사진의 연재분을 모은 책입니다. 북쪽=빨강이라는 공식에 잘 부합하는 표지와는 달리 그다지 정치/사회적으로 불온한 내용은 없습니다. 변방을 의미하는 북쪽에서부터 불어온 여성/사진이라는 바람에 대한 이야기지요. 여기 실린 사진들의 장르는 포토저널리즘에서부터 디지털 합성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데요, 대신에 작품 감상(분석보다는 감상에 가깝습니다)과 약간의 인터뷰로 구성된 각각의 꼭지를 관통하는 주제는 명확합니다. 여성성이라는 추상이 어떻게 실체화되느냐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이죠. 표현과 재현이라는, 다소 역설적인 사진의 매력으로 인해 여성성이라는 주제는 실재하는 삶을 발견함과 동시에 작가의 발언이 가능한 매혹적인 예술로 변화합니다. 인문사회과학과는 다른 편에서 예술과 여성과 소수와 '타자'는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고찰하고 세계 내의 영역을 넓히고자 투쟁하는지, 순진함부터 격렬함까지, 딱부러지는 리얼리즘부터 디지털 키치 작업까지를 망라한 이 책은 여러 면에서 검토할만한 유효한 텍스트입니다. 저는 이래서 사진이 너무 좋아요. ^^

<난이도 중상: 글밥 자체는 크게 어려운 수준이 아니나,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같은 사진은 거의 없습니다. '현대사진'입니다>

전국 곳곳의 큰 소식을 붙여두었던 80년대 초반의 공설 게시판. 청소를 했는지 붙어있는 대자보는 없고, 각종 '직할시'며 충청도 경상도 할 것 없이 흰 벽과 검은 그림자만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전라도 소식을 붙이는 벽앞으로는 군인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광주 항쟁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전시가 금지되고 작가 자신도 고초를 겪었던 그 연작사진의 작가, <나다>는 중견 사진가 정동석의 베스트(?) 작품집입니다. 정통파(?) 민중미술 계열 출신의 사진가 중에서 아직까지 왕성하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입지는 좀 독특한데요. 현대 한국 사진판의 조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결코 꺼지지는 않을 듯한 묘한 느낌이죠. 그건 아마도 세월의 무게와 역사의 무게... 그가 증거해온 역사의 지난한 발걸음이 유독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사회 고발에서 자연에 대한 성찰로, 그리고 다시 도시의 삶을 비추는 열성의 걸음걸음이 청년의 그것처럼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가운 윤구병 선생님의 글을 포함해 그의 작업마다 각각 다른 분들이 여러 각도에서 사진가와 그의 사진들을 위한 글을 담아 놓았습니다. 정동석 씨(선생이라기에는 아직 너무도 젊게 느껴지는)의 사진에 대해서는 책에서 여러 각도로 분석한 바, 그에 대한 이 짤막한 소개만으로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건승하시길.

<난이도 중상: 각 꼭지별로 글밥의 난이도 차이가 좀 있으니 감안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앞서 소개한 두 권의 책과는 아주 다릅니다. 사진으로 어떻게 더 잘 놀 수 있을까, 이 고민이 이 책 전체의 화두죠. 토이 카메라를 사랑하고 필름 사진의 매력을 아는 분들께 어필할 수 있겠습니다. 재밌는 점은 유명한 필름 똑딱이 카메라 소개하기 코너. 이거야말로 팬심을 자극할 요소거든요. 물론 기존에 앤티크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들은 종종 있었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20세기 후반의 P&S(자동카메라)들을 집중적으로(그러나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반갑습니다. 저도 한때 똑딱이 좀 갖고 놀았던.. 네 여튼. // 카메라 소개와 재미있게 사진 찍기 등의 팁들이 소소히 들어차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집중적으로 원하는 열성파 당원들께서는 다른 책을 보시는 게 좋겠지만, 예쁜 사진들을 부담없이 감상하면서 겸사겸사 팁도 챙기는 맛에 만족하시면 이 책도 괜찮습니다. 작가들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는 것도 독특한 재미겠구요.

<난이도 하: 쉽고 편하게 감상하면서 틈틈히 지식도 챙겨보는 실속파.. 중에서 온라인 감성류 사진 좋아하시는 분들께>


                                                                    세 권의 반가운 개정판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었거나 한번쯤은 들춰봤을 책, <세계 영화사>로 알려졌던 A History of Film의 최신판이 번역되었습니다. 기존의 편집이 읽기에 꽤 불편했고 오역이나 오탈자가 심심찮았던 점을 감안해 아예 새로 뽑아냈다고 하네요. 출판사를 옮기면서 새 번역자가 통째로 번역했고, 자간이나 행간도 적절합니다. 비록 흑백이긴 하지만 도판의 크기도 더 커졌고, 개정증보판 답게 발리우드 이야기나 디지털 기술의 발달, 인디 영화와 소수자 감독들에 대한 비중을 높였다고도 하고요. 여튼간에 제목이 <세상의 모든 영화>이긴 해도, 이 책은 그 명성 드높은 세계 영화사의 가장 따끈한 버전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전공자는 물론 영화 팬들에게도 재미있는 꺼리를 많이 던져주는 양서임은 확실하지요. 이 두꺼운 책을 아직 유의미할 정도로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다소 딱딱하기는 해도 읽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해서 소개 결정. 쾅쾅.

<난이도: 중상,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어렵지 않은, 혹은 어렵더라도 꼭 도전하고픈 책일겁니다> 

현대미술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시인이며 사진가이며.. 쉽게 얘기해서 종합예술가인 신현림이 이 책에서 시도한 방법은 시로 보여주기입니다. 인상깊은 현대 미술작품들을 펼쳐놓은 뒤에 그와 닮은 시를 딱딱 박아 놓은거죠. 뉘앙스를 다른 뉘앙스로 옮겨내는 작업은 사실 대단히 위험한데요, 이 책에서는 시를 통해 '비유'한다는 승부수가 부드럽게 작동합니다. 게다가 반쯤은 에세이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도 있고요. 현대미술을 체계적으로 만나는 책은 아니지만, 체계적으로 만나기 이전에 먼저 접해보기에는 여러모로 괜찮습니다. 예술과 인간(특히 감상자) 사이의 소통, 베스트급의 목록으로 적절히 골라낸 작품들의 면면, 거기다 알싸하고도 따뜻한 시들까지 골고루 접해볼 수 있으니까요. 최소 일석 이조의 성과를 노려봄직합니다.

<난이도 중: 현대미술을 난이도 중하 이하로 설명할 수 있는 책이 있을까요. 시로 비유한 것은 재미나지만, 시조차 좋아하지 않는다면 접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불멸의 오페라>는 저 번쩍번쩍한 모습만으로도 유명하지요. 이 책도 최근 개정 증보판이 나왔습니다. 가격은 올랐지만 추가한 정보들이 쏠쏠하니 이해해 주세요. ㅎㅎ 특히 수록된 추천음반들의 경우 08년을 기점으로 절판된 음반들 대신에 구입 가능한 음반들을 위주로 전면 재구성했습니다. 또한 원래 시청각예술인 오페라를 접하기에 가장 좋은 매체인 DVD에 대한 소개가 추가되었다는 점이 매우 반갑고요. 아직 구입하지 않으신 분께서는 당연히 이 신판을 선택하시면 되겠습니다. 책 자체야 워낙 호평받았으니 칭찬 한 줄 보탠다고 소용이 있을까요. 그저, 재밌습니다.

<난이도 중하: 초보든 고수든 오페라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다들 재밌게 읽으시는 마법의 책입니다.> 

그리고 두 권의 음악 
           

제목이 참 인상적인 <베토벤의 가계부>는 역사에 남은 작곡가들의 삶을 경제적 여건을 통해 풀어가보는, 매우 실용적인 코드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입니다. 아껴서 잘 살자는 얘기가 아니라, 돈이라는 문제를 각양각색으로 돌파한 여러 모습을 바라볼 수 있거든요. 아 그럼 반실용적인 책인가요. -_-;; 어쨌든. 베토벤이 가계부를 정말 썼냐고 하면 네 그렇습니다. 열렬한 가계부 신봉자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산수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 열성에 비해 장부의 정확도는 매우 낮았다고 합니다. -_-;; 책 속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살림꾼인 베토벤은 물론, 슈베르트나 쇼팽처럼 돈계산과는 담쌓은 평범한 천재들도 있었고, 파가니니나 푸치니처럼 돈계산에 밝고 떵떵거리며 살았던 음악 갑부들도 있었습니다. 음악이라는 꿈을 위해 의사나 법 공부를 때려친 사람들(베를리오즈, 슈만)도 있었으며, 일에 치여 겨우겨우 휴가 때에나 작곡하던 양반(말러)도 있었죠. 이런 다양한 모습을 통해 개개의 인간들이 자본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살펴보는 건 꽤 가십스러우면서도 흥미롭습니다. 나무를 사랑하는 남자 고규홍 씨의 글은 내내 편안한 것이 틈틈이 읽기에도 좋습니다.

<난이도 하: 클래식 몰라도 괜찮습니다. 알면 더 재밌구요.> 

<물고기 마음>은 음악계 최고의 엄마친구아들, 루시드 폴의 시가집입니다. 책의 90%는 기존에 발표된 노래 가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 앨범을 다 갖고 있거나 가사를 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 것도 사실인데요. 각 앨범의 탄생 배경이나 특출난 싱글곡에 얽힌 뒷이야기, 그리고 인생에 대한 루시드 폴의 조근조근한 글솜씨를 보는 것도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해요. 게다가 행 연 맞춰 편집된 노래 가사들이 퍽 예뻐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말입니다. 보너스로 미니 CD에 새 싱글 두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2집과 3집 사이 정도의 분위기네요. 부드럽고, 따뜻해...

<난이도 하: 사랑 쪼금 해 보셨고 스물 넘도록 살아오셨으면 됩니다. ^^;>

어쩌다 여기까지 써 왔을까요. -_-;;; 정신없이 써 내렸더니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차회예고 해볼까 했는데 패스.;;;  부디 즐겁게 읽으셨기를, 거기다 좋은 책 한 권쯤 발견하셨으면 더 감사하구요. 그래도 늘,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시죠. 이번 주도 행복하셔야 합니다.  (아 지난 주에 인사 빼먹었던가...)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에 수록된 시 한 수 적으면서 물러납니다. 

나의 이솝 

                         데라야마 슈지 

초상화 속에
그만 실수로 수염을 그려넣었으므로
할 수 없이 수염을 기르기로 했다
문지기를 고용하게 되었으므로
문을 짜 달기로 했다

일생은 모두가 뒤죽박죽이다
내가 들어갈 묘혈 파기가 끝나면
조금 당겨서라도
죽을 작정이다

정부가 생기고 나서야 정사를 익히고
수영복을 사면 여름이 갑자기 다가온다
어릴 때부터 늘 이 모양이다

한데
때로는 슬퍼하고 있는데도 슬픈 일이 생기지 않고
불종을 쳤는데도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하여
개혁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바지 멜빵만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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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책에 몹시 관심이 가네요. 키다리 아저씨 덕분에 나머지 숙제를 하듯 책을 읽는 요즘? 입니다. 어떤 책을 읽기에는 너무 수준 미달이라는 생각; 종종 찾아오므로 좋은글 계속 부탁 드립니다. 올 한해 쭉 그냥 행복하세요.

외국소설/예술MD 2009-01-15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의 북쪽>은 참 괜찮은 시론이지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쭉 행복하세요.

NA 2009-01-15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블록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네요..ㅎㅎ 그래도 꾸준히 찾아옵니다..ㅎㅎ
신현림씨 책 같은경우엔 개정증보판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왕이면 기존것과 어떻게 다른지 코멘트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거 같습니다..^^
이번주에도 좋은 책 많이 소개받아서 좋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09-01-15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이나 종교 코너에 들어오시면 editor's blog의 최신판을 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부디 애용해주시기 바라며.. 리플은 늘 용기를 백배 진작시켜 준다는 걸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ㅎㅎ 신현림씨의 책은 구판을 따로 어떻게 구할 수가 없어 비교는 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아쉽네요...

나탈리 2009-02-03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하고 재미나게 설명해주시는 군요.
마음이 동하는 책이 몇권(아니..거의 대부분 이라 큰일 --; 다 읽지도 못하면서..) 있네요
좋은 책소개 감사드립니다 :)

외국소설/예술MD 2009-02-04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려에 감사드리며, 마음에 드는 책이 많으셨다니 그저 영광입니다. ^^
많이 구입해주세요. ㅎㅎ
 

본의아니게 연말특집 

연말 특집은 아닌데 그렇게 됐네요. 이번 새 책 이야기는 무려 세 명의 MD가 연합전선을 펼칩니다. 무엇보다 저자가 직접 열정적으로 썼다는 느낌이 드는, 뜨끈뜨끈한 클래식(중에 교향곡) 이야기 책 <금난새의 내가 사랑한 교향곡>의 특집이랄까요. 딱 10곡의 교향곡만 뽑아서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책입니다. 작곡가 소개와 작곡 당시의 배경 소개, 곡에 얽힌 에피소드, 그리고 기본적인 곡 구조 분석까지 한 곡의 교향곡을 둘러싸고 풍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초심자를 먼저 배려하다보니 익숙한 레퍼토리와 에피소드들이 많은데요. 고수 분들은 이 책 리뷰에 아량을 갖고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ㅎ

근데 이 책, 다 좋은데, 딱 10곡을 이야기하면서도 추천 음반이 없다는 점이 참, 여러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쉽습니다. 사실 책의 난이도가 완전 입문용이라기보다는 초중급 수준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기초적인 음악 용어나 곡의 구조에 대해서는 알아야 읽기 좋습니다) 굳이 음반 추천이 필요한 건 아니죠. 반면에 추천의 부작용이야 책이고 음악이고 좋아하는 분들은 다 아실테구요. 그래도요...ㅎ

원래는 '아쉽습니다'에서 끝내고 넘어갔을텐데요. 이번에는 '없으면 잇몸으로 고고씽...' 글쎄요 왜 그랬을까요. 어쨌든. 뭐 재미있는 일 없나 하던 참에 잘됐다 싶어 두 명의 MD를 꼬셨섭외했습니다.

저하고 클래식음반 담당 공효현 MD님, 그리고 이런거 재밌어하시는 잡식성 음악매니아 홍성원 경제경영/자기계발 MD님 해서 세 명이 이 책에 나온 10곡의 교향곡에 대해 각각 한 장씩 골랐습니다. 지금 저는 제 추천음반 이외에는 모르는 상황인데요, 만약 세 명이 동시에 같은 음반을 추천하게 되면 기념으로 작은 이벤트라도 하나 열겠습니다. 약속. ^^; 

(이하 명칭은 저-최, 공효현MD-공, 홍성원MD-홍 으로 하겠습니다. 음반정보는 음반 그림을 클릭하시면 상품페이지로 이동!)  

 

1. 하이든 교향곡 제45번 F샤프 단조 '고별'

                                

                                    <공의 선택>                         <최의 선택>                       <홍의 고백> 

공- 인간적이며 따뜻한 연주. 헝가리 출신의 도라티와 최상급의 연주자로 이뤄진 필하모니아 헝가리카의 1970년대의 녹음. 하이든의 교향곡의 시기의 내적 구조를 잘 드러내는 음반. 
최- 안탈 도라티의 지휘반을 전곡 박스 외에는 구하기 어려워진 관계로 차선책(엘로퀸스 수입좀해줘요). 속도감있고 날렵하지만 베이스의 든든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쫀득쫀득하게 다져져 있다. 약간 우쭐대는 듯한 느낌이 오히려 즐겁게 어울린다.  
홍- 딱히 많이 들어본/아끼는 음반이 없다. 그저 교향곡의 아버지에게 죄송할 따름; 

 

2.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 G단조 K.550 

 

                  

                          <공의 선택>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 마음속에 간직한 맑은 노래같은 연주. 번스타인과 빈필의 궁합이 잘 맞아떨어진 녹음. 모차르트 만년의 단조 교향곡속에 숨겨진 인간성을 잘 포착한 음반. 
홍- 번스타인과 모차르트? 왠지 모르게 어색하지만 그래서 더 애착이 갔던 음반이다. 뭔가 더 화려하고 웅장한 40번을 찾던 끝에 발견했던 음반이기도 하다. 번스타인/빈필 조합의 최전성기때 녹음이다. (#이 음반과 위 음반의 40번 연주는 동일한 84년 음원입니다. 홍MD는 39번 교향곡을 아주 좋아해서 저 음반을 골랐다고 합니다.) 
최- 번스타인&모차르트보다 더 이상해보이는 조합. -_-;; 그렇지만 내 스타일이다. 전성기 케겔 특유의 '현대음악스러운 무감각 무표정 그루브'가 모차르트와 만나서 참 미묘한 정결함이 느껴진다.

  

3. 베토벤 교향곡 제3번 E플랫 장조 Op.55 '영웅'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의 선택> 

홍- 무덤에 가져갈 음반 중 하나. 황제로 칭송받던(?) 시절의 카라얀과 에로이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도 없을 것 같다. 여기 수록된 에그몬트 서곡 역시 최고다. 
최- 한 장을 고르라면 이것 뿐이다. 이 교향곡의 에너지가 속도에서 온다는 특징을 여실히 활용한 장쾌한 연주. 소편성임에도 불구하고 완급조절을 기막히게 잘 해서 파워의 부족함이라는 느낌도 없다. 
공- 무뚝뚝하지만 강렬한 연주. 불굴의 의지를 지녔던 클렘페러와 필하모니아 만들어낸 진정한 "영웅". 1950년대의 모노녹음이지만 GROC 시리즈의 백미 가운데 하나로 꼽을만한 음반. 

 

4.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Op.14 

               

                                <최의 선택>                        <홍의 선택>                       <공의 선택>

최- 무엇보다 종! 다른 연주와 달리 진짜 교회 종을 가져와서 울리는데, 그 느낌의 차원이 다르다. 카라얀이 대개 그렇듯 미끈하고 빤질한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환상교향곡 자체가 자아도취와 탐미적 환상을 위한 곡이라서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홍- 카라얀의 60년대 음반도 소장하고 있는데 이 70년대 음반에 손이 더 자주 간다. 전반적으로는 카라얀의 70년대 베토벤 전집과 같이 거침 없는 질주의 느낌이 강하다. 5악장의 종소리 녹음으로도 유명하지만 2악장의 매력도 상당하다. 
공- 균형감 있는, 약간의 건조함마저 장점으로 들리는 연주. 60년대 뮌시와 보스톤 심포니의 두 번째 녹음. 이 곡에 있어 최상의 레퍼런스로 불릴 만한 음반.

   

5. 멘델스존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 

                  + 아바도..

                         <공의 선택>                       <최의 선택>                        <홍의 선택> 

공- 전반적으로 넘치는 활기와 뛰어난 직관으로 가득한 연주. 이 레퍼토리에서는 아바도에 전혀 밀리지 않는, 극히 자연스러운 녹음. 데카 레전드시리즈의 이름에 걸맞는 음반. 
최- 아바도와 카라얀의 절충형? 낭만 가득한 풍부한 사운드지만 현악군의 몸놀림이 날렵하고 전체적인 균형감각이 탁월하다. 그래서 가벼운 발걸음에 실린 민속풍 선율이 느끼하게 변질되는 일이 없다. 지킬 건 지키는 멋쟁이.
홍- 1순위는 물론 아바도지만 다른 것을 골라보았다. 도흐나니/클리블랜드 조합은 소장할만한 수준의 명연을 다수 남겼는데 (말러 5번 필청) 이 음반도 그 중 하나다. 기름기 쏙 빠진 사운드에 뚜렷한 해상력이 장점이다. (#걍 아바도 하시지..-_-;;)

 *모든 음반을 아바도와 비교하고 있지만 정작 아바도는 없는 기현상...;; 

 

6. 브람스 교향곡 제1번 C단조 Op.68 

                   

                             <홍의 선택>                        <공의 선택>                         <최의 선택>

홍- 카라얀의 80년대 녹음을 가장 좋아하는데 편향성을 걷어내고자(?) 차선을 꼽아보았다. 뮌시/파리오케스트라 조합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실황연주다. 참고로 라이센스로도 발매되었던 음반이지만, 도시바 EMI 수입반이 훨씬 낫다. 
공- 4악장의 절정에 이르는 과정의 힘이 느껴지는 연주. 오리지널스로 발매한, 밸런스를 잘 맞춘 녹음. 1960년대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뛰어난 모습을 볼 수 있는 음반. 
최- 교향곡 1번만큼은 대놓고 전투적이라도 OK. 교향곡 작곡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며 포효하는 야수, 브람스도 그 순간만큼은 싸나이니까! 돌격력 최강을 자랑하는 조지 셀의 지휘는 내 이런 상상을 만족시킨다. 

 

 7.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E단조 Op.64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의 선택>

홍- 전혀 예상밖의 선택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젤 최전성기때의 빈필과의 연주(60년대 녹음)는 맘에 들지 않았던 적이 없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현 사운드가 담겨있다. 특히 같은 음반에 있는 6번 '비창'은 그야말로 '강추'다. 
최- 6번은 무조건 번스타인이지만 5번은 참 어렵다. 고심끝에 스베틀라노프로 선택. 말 그대로 압도적인 위력의 실황녹음 앞에서 입이 떡 벌어진다. 러시아 풍 비장미의 극점에 다다른 뜨거운 폭풍. 라이센스 음질도 매우 좋으나, 표지는 왜이러세요. 
공- 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열정이 가득한 연주.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가 빚어내는 광포함과 거대함이 느껴지는 녹음. 차이코프스키의 잘 알려진 4-6번 교향곡에서 빠질 수 없는 음반.

 

8.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 '신세계에서' 

                 

                             <공의 선택>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 풍부한 감성과 신선한 느낌으로 일관하는 늘 새롭게 들리는 연주. 1960년대 데카 녹음의 황금기에 이뤄진 녹음. 드보르작의 교향곡에서 케르테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만큼인지 보여주는 음반. 
홍- 이리저리 돌고 돌다가 결국 다시 찾게되는 음반이 바로 이거다. '반지', '말러 8번', '마술피리'와 더불어 솔티가 남긴 가장 위대한 음반이 아닐까. 시카고심포니가 왜 금관으로 유명한지, 확실한 답을 들려준다. 
최- '신세계'는 다이나믹함과 은근한 애수 사이에서 절충점을 잘 찾아야 하는 까다로운 곡이다. 뉴욕 필하모닉과 젊은 번스타인의 조합은 당당한 자신감과 다소 노골적인 서정성을 겸비했다. 분주하고 자기과시적인 신천지, 미국은 바로 여기다.

 

9.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E단조 Op.27 

                  

                             <공의 선택>                         <홍의 선택>                        <최의 선택>

공- 너무나 낭만적인 음악, 너무나 낭만적인 연주. 아날로그이지만 3악장이 가지는 극한의 서정성이 때론 더 풍부하게 들리는 녹음. 이 곡의 레퍼런스이자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을 대표할 만한 음반.  
홍- 말러 7번, 베토벤 3번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이다. 음반도 꽤 많은데, 그중 고르라면 1순위가 프레빈/런던심포니 연주이고 그 다음이 바로 이거다. 서정성은 프레빈의 승, 다이내믹은 얀손스의 승! 
최- 테미르카노프/쌍뜨뻬떼르부르크 필하모닉의 음반과 함께 숨겨진 명연. 런던 심포니야말로 두텁고 우아한 선율을 내기에는 최고이며, 로제스트벤스키는 파워와 서정성을 어떻게 겸비해야 하는지를 늘 잘 알고 있다. 

 

10.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D단조 Op.47 '혁명' 

                   

                            <최의 선택>                             <홍의 선택>                         <공의 선택>

최- 5번 한 곡으로만 보자면 홍MD의 선택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세계의 연속성을 감안하면 콘드라신의 이 지독한 전집이 최고다. 신랄하고 과격하며 거침없다. 오마주든 패러디든, 이게 '쏘련'의 진가다. 
홍- 곡을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음반이다. 콘드라신도 좋고 로제스트벤스키도 좋지만 역시 이 므라빈스키의 도쿄 실황음반이 최고다. 한때는 구하기 정말 힘들었던 음반이기도.. 
공- 쇼스타코비치의 혁명이 가지는 긴장과 에너지를 잘 느끼게 하는 연주와 녹음. 비록 러시아계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아니지만 일사분란함과 표현력에 있어 최상의 기능을 보여주는 음반. 

 

와... 이거 생각보다 힘드네요. -_-;; (그러고보니 겹친 음반은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분량이 너무 길어서 다른 책 소개는 다음으로 미뤄야겠습니다. 비록 이번에는 음반 소개가 되었지만 다들 즐거운 이벤트로 이해해주시리라 믿어요. 예술분야야말로 책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_+

이 책을 구입하신 입문자들께는 쏠쏠한 도움을, 고수분들께는 비교의 즐거움을 드리고자 한번 해 봤습니다. 도움 주신 두 MD님께 감사드리며, 다음 주를 기약할께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 주, 행복한 한 해 되세요. ^^ 

p.s: 또다른 명반을 추천해주시면.. 음.. 제가 감동합니다.; 

품절음반이 많네요 공MD님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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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염 2009-01-01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교향곡의 아버지께 죄송할 따름..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는 드보르작 교향곡은 쿠베릭을 추천하고있습니다.
그나저나 금난새씨의 최근 연주 레퍼토리를 보면 모두 저기에 있는 10곡내에서 활동하셨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09-01-0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벨릭 좋지요~ 워낙 유명한 곡들이라 음반 고르기도 참 고민이 많이 되더군요.
그리고 하이든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