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온다? 우리가 간다! - 뉴노멀을 살아갈 청소년을 위한 열린 강좌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17
전승민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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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미래와 맞닥뜨린 느낌이다. 환경오염이 원인이 된 기후 재앙, 원인모를 전염병의 창궐, 격리된 삶, 옆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회, 멀게 느껴졌던 이 모든 일이 하루 아침에 현실이 됐다. 무딘 느낌에는 긴 시간 밖에 나가지 못하는 정도일지도 모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가 묘사하는 모든 모습들이 코로나19 상황에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다. 이런 현실이 자꾸자꾸 부풀면 '영화에서나 보던', '결코 현실에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미래를 만나게 되려나.



'뉴노멀'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나타난 세계경제의 질서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주로 경제 분야에서 "저성장, 규제 강화, 소비 위축, 미국 시장의 영향력 감소" 현상이 나타남을 의미했다. 현재는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시점에 등장하는 새로운 표준"으로 정의된다. 변화의 시기를 지나 새로운 일상에서 필요한 새로운 기준이 바로 뉴 노멀이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질병의 공포로 꽁꽁 묶었다. 근 1년 사이 자유로운 외출, 장거리 여행은 꿈같은 일이 됐고 얼굴 반만 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지인들과의 거리는 배 이상 멀어졌다. 쉽게 끝이 예측되지 않는 이 고립의 시간이 끝난 후 우리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전문가 다수의 예측처럼 이전의 일상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우리는 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말할 때 뉴노멀을 고려해야하는 이유다. 『미래가 온다?우리가 간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십대'를 위한 청소년 인문 시리즈다. '6인의 전문가와 함께하는 미래 수업'이라는 의도하에 미래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또는 다뤄져야 할 여섯 가지 주제들을 담고 있다. 주제들을 일별해보면 'AI와 미래기술', '기후환경', '에너지 전환', '생산과 소비', '전염병과 보건', '혐오와 인권' 등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통찰과 쉽게 읽히는 입말체 문장이 책의 가독성을 높이고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주제를 친근하게 만들었다. ​ '1장 AI와 미래기술'에서는 '콘택트와 언택트가 어우러지는 세상이 온다'는 소제목 아래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하는 '언택트' 생활이 유발할 변화를 살펴본다. 근미래에는 차세대 통신 기능과 인공지능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안전한 대면 문화를 위한 기술도 필요해진다. 예를 들면 다중 회의에서 감염의 위험을 줄이는 '공기순환 시스템' 같은 것. ​ '2장 기후환경'의 부제는 '위태로운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류'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문제가 기후환경에 관한 것이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이 지적된지 오래고 지구를 지키기 위한 세계 협약도 마련됐다. 그러나 여전히 지구의 기후환경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기후 변화는 생태계 변화를 야기한다. 남극 펭귄은 이상 기후로 인한 폭풍에 휩쓸려가고 북극곰은 더 이상 살 땅이 없다. 환경 보호를 위한 친환경 기술의 현재를 훑어보면서 '에너지 절약', '저탄소 식사', '친환경, 고효율 제품 사용'과 같이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사례들을 제시한다. ​ '3장 에너지 전환'에는 '기후 악당, 착한 에너지를 찾아라'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여기서 말한 '기후 악당'은 누굴 부르는 걸까.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을 말하는 거겠지 싶겠지만 아니다. '기후 악당'은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수준은 세계 12위 정도입니다. 이는 독일의 40% 수준인데, 에너지는 독일과 비슷한 양을 쓰는 것입니다. 살림에 비해 에너지 다소비 국가이니, 온실가스 배출량도 많아서 '기후악당'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p.95 원전에서 발생하는 전기의 비용에는 시설 건설·유지비, 핵폐기물 처리비, 사고처리비 등의 공공비용이 포함돼 있지않아 싼 것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고 우리나라의 에너지 효율이 이토록 낮은 사실도 (부끄럽지만) 처음 알았다. 재생에너지와 친환경에너지 사용에서 나아가 에너지 효율화가 시급하다. '4장 생산과 소비'는 '끝없는 생산과 소비에 브레이크를 걸어라'라는 부제와 짝꿍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부양하는 과다 생산, 과다 소비는 환경문제와 직결돼 있다. 책은 '패스트 패션'이 전지구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보여준다. 한 번 입고 버리는 소모품으로서의 패션은 환경오염과 더불어 노동착취 문제까지 일으키고 있었다. '소유의 시대'에서 '공유의 시대'로 '새로 사기'에서 '물려 쓰기'로 전환을 위한 모색이 필요하다. ​ '5장 전염병과 보건'은 부제처럼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로 읽혔다. 이 모든 급격한 변화의 시작이 코로나19다. 백신도 치료약도 없는 전염병은 인류 전체를 감염의 공포로 몰아 넣었다. 코로나는 인간의 대처보다 빨리 진화하고 상황은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는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했고 의료불평등이 문제로 대두됐다. 'K-방역'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빠른 초기대처를 했던 우리나라는 2021년 2월 현재 4차 대유행을 예측하는 상황이다. 누구 한 사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는 '우리'의 문제이다 보니 '공동체의 삶'에 대한 숙고가 절실하다. ​ '6장 혐오와 인권'의 부제는 '우리에게 스며든 혐오, 공감으로 넘어서기'다. 코로나19의 전염을 차단하기 위해 우리는 근 1년을 각자의 장소에 고립됐다. 고립은 몰이해를 낳고 편견과 배제를 초래한다. 코로나19는 혐오를 `양산했다. 혐오는 가짜 뉴스를 타고 확산됐고 타자에 대한 증오가 일상의 일이 됐다. 코로나는 우리 안에 숨겨졌던 편견을 전시하는 기회였다. 인종주의적 시선과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드러났다. 인류는 집단 생활을 하는 종이다. 배척하기를 일삼아서는 생존을 보장하기 어렵다. "연대와 협력", "관계"는 절대 가치다. ​ 책은 각 주제를 다루면서 당면한 현실을 제시하기 전에 해당 주제의 역사적 맥락을 훑어준다. 이를테면 '기후환경'을 다룰 때는 기원전 5600년 전 지중해 해수면 상승으로 흑해 주변이 모두 물에 잠기는 고대의 사건부터 다룬다. 역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현재의 문제를 대할 수 있는 구성이다. ​ 코로나19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와 그 시대에서 이어질 미래를 관망해보기 좋은 책이다. 다만 책에서 제시된 기술의 이면이 있다는 걸 짧게라도 알려줄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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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지식 - 역사의 이정표가 된 진실의 개척자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승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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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 과학사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금지된 지식』은 역사의 흐름을 바꾼 앎과 그 앎을 찾아내고 주장한 사람들을 다룬 책이다. 과학 지식을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풀어쓰는 작업을 많이 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과학을 넘어 인간 지식 전체를 소재로 삼았다. 인간은 새로운 지식을 접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더군다나 그 지식이 '상식'이라 불리는 기존의 지식에 도전하는 경우에는. 인류 초기부터 현재까지 새로움의 발견은 바로 수용되기 보다는 상당한 유예기간을 거쳐 지식의 지위를 얻었다. 사소한 다름도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생각해보면 인류 역사를 바꾼 지식들이 겪은 우여곡절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수많은 은폐와 금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지식은 굳건히 스스로를 드러냈으며 그것을 주장했던 이들은 복권됐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더라도. 저자는 발견되고 억압받고 투쟁을 거쳐 수용되는 지식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지식은 힘이며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바로 이런 이유와, 그 밖의 다른 이유들 때문에 인간은 역사 이래로 다른 사람이 기존의 지식을 습득하거나 새로운 것을 학습하려고 할 때마다 이를 방해할 방법들을 끊임없이 고안해왔다. 이 책은 지식을 금지하고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수많은 부질없는 시도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p.8, 머리말 中


책은 7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대체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따른 지식 억압사를 보여준다. '1장 낙원에서 금지된 것'에서는 성에 대한 금기가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서술한다. '2장 우리에게 지식이란 무엇인가'에는 다윈과 프로이트의 이론이 그 시대에 어떤 파란을 일으켰으며 그것에 반하려던 움직임을 소개한다. '3장 비밀을 다루는 법'은 계몽주의와 계몽주의의 자기 모순에 대해 또 비밀정보기관과 그들의 침묵에 대해 이야기한다. '4장 성스러운 것을 엿본 죄'는 과학이 금지된 지식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장이다. '5장 인간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하라'에서는 유전자 연구에서의 금기와 함께 "진실을 누가 말할 수 있느냐는 질문"과 "어떤 지식이 맞고 무엇이 진정한 지식이라는 이름에 합당했는지"에 대한 역사를 보여준다. '6장 과감하게 봉인을 떼다'는 지식의 오용 사례에 대해 서술한다. 마지막 '7장 지식사회의 사생활과 비밀'은 "자유의 도구로 여겨졌던 인터넷이 실제로는 정확히 그 반대의 기능을 하고 인간은 그 데이터에 사로잡"힌 현실을 보여준다.



지동설을 두고 일어났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사건에서 프로이트의 주장에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반발했는지 다윈의 진화론에 대응했던 반론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읽다보면 하나의 지식이 진리로 여겨지기까지 참으로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어떤 지식은 그것이 밝혀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적 설명이 연구 대상의 비밀을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그 비밀에 더 깊이 빠져들게" 한다는 말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했다.


계몽을 말하는 과학과 그 전문가들은 결코 세계의 탈주술화를 말할 수 없으며, 반대로 그들의 제안과 사유는 그 반대인 주술화를 장려한다.

p.121


2021년 현재 우리가 가장 우려해야 할 금기로 저자는 거대 테크기업들의 비밀에 대해 서술한다. 원자화된 인간들의 네트워크를 지향한다는 그들 기업의 네트워크 속에서 인간은 '사생활'을 잃고 '사고의 자유'조차 잃는 길을 따르고 있다. 사람들은 '중독'이라는 수렁에 빠져 테크기업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볼 뿐 그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은 알지 못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모르게 하는 일을 금지"해야 한다는 말로 글을 맺는다.



아마도 이 세대는 다음 현실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더는 어떤 방에도 혼자 앉아 있지 않고 그 방에서 환상을 펼치지도 못한다. 대신 어디에나 존재하는 새장에 갇혀 있다. 그 새장은 자유의지를 더는 허락하지 않으며 우리를 감시하고 조작한다. 이 현실을 모르게 하는 일이 금지되어야 한다.

p.356


과학사가가 펼치는 금지된 지식의 세계는 다채로웠다. 성서의 시대부터 페이스북의 시대까지 인류 역사 전체를 종횡무진 오가며 풀어놓는 서술을 때로는 따라가고 때로는 놓쳤다. 내게는 "인간 지성의 본질을 꿰뚫는"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지식이 너무 거대하고 통찰은 지나치게 눈부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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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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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소설의 내용은 기억이 나는데 어떤 소설집에 들어있는 것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지인 말대로 나는 현재만을 사는 사람인 것 같다. 읽은 책의 기억이 정말 오래 가질 않는다.) 인공 수정으로 완벽한 아이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해커가 정작 자기 아이의 장애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사는 세상을 창조하는 이야기였다. 저자가 누구였더라... 외국 작가의 단편이었던 것같은데...

 

Episode 2

'김초엽X김원영 공저'. 저자 이름을 보고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 소설가가 변호사와 공저로 책을 쓴다는 것이 언뜻 납득되지 않아 '김초엽'이라는 이름의 다른 작가가 있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이 너무 닮았다. 혹시 싶어 작자 소개를 찾아 봤더니 소설가 김초엽이 맞았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나 강렬해서 다음 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에세이라니.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작가의 문장은 어떤 주제를 다뤄도 읽기에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주제가 '사이보그'였다.

 


Episode 1 그리고...

한 밤중에 책을 뒤졌다. 대체 그 이야기가 어느 책에 들어있었던가. 놀랍게도 국내 작가 김초엽의 책이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그러고 보니 김초엽 작가의 소설에는 딱 꼬집어 설명하기 힘든 "뭔가 다름"의 느낌이 있었다. 해외 작가의 SF를 읽을 때면 간혹 느껴지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랄까. 그것의 느낌은 기분 나쁨이 아니라 경이감에 가까웠다. 갑자기 사각지대가 눈에 들어온 듯한 낯선 새로움이었다.

 

Episode 2 그리고...

김초엽 작자 소개에는 내가 못봤던 '사각지대'가 하나 더 있었다. "후천적 청각장애인이다"라는 문장이었다. '아!'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세상을 지각하는 방법이 달랐던 사람이구나, 그래서 작가가 그린 세상이 우리가 느끼는 세상과 닮았으면서도 다른 느낌이 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의 생각이 차별을 담은 시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책을 어서 읽어야 했다. 좀더 알아봐야 했다.

 

김초엽 작가와 김원영 변호사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는 장애를 가진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장애와 세상을 바라본 이야기다. '사이보그(cyborg)'는 보통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를 일컫는 용어"로 쓰이는 동시에 "현대의 첨단 기술문명이 낳은 새로운 존재의 상징"을 지칭한다. 책에서는 불편한 부분을 보완하는 기계 장치와 동반하는 사람들을 '사이보그'로 정의한다. 김원영 변호사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김초엽 작가는 보청기로 청력을 보조한다. 두 사람은 '장애'라는 차원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한편 성별, 나이, 직업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 김원영 변호사는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장애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배경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과거보다는 장애학이 사회적으로 회자된 이후의 시기를 살아온 두 사람이 이 책에서 주목한 문제의 지점은 아래와 같다.

 

장애가 있다고 규정된 우리의 몸을 쉽게 부정하고 치료하고 구원하겠다는 주장을, 그것이 설사 과학적 의견에 토대를 두고 있더라도, 우리는 신중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과학 지식을 신뢰하고 기술의 효용에 기대를 걸지만, 첨단 지식과 기술의 발전이 언제나 인간의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하지는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지금 이곳의 삶을 소외시키거나 나 자신을 온전하지 못한 존재로 규정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를 우리는 우려한다.

pp.10-11

 

책은 기계 기술과 함께 공존해야 하는 장애인의 정체성 문제를 시작으로 장애와 그것을 보완하는 기계 사이의 보완과 불화의 모습들을 거쳐 완전한 사이보그가 실현된 미래에도 필요한 '함께'의 모습까지를 10개의 장에 걸쳐 다룬다. 한 가지 주제를 두 저자가 번갈아가며 서술한다. 애초 김원영 변호사의 의도대로 두 사람의 시각은 닮음과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차이는 두 사람이 애초에 가지고 있던 성별이나 나이, 직업에서 기인한다기 보다는 장애 정도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눈에 띄는 장애를 가진 경우와 굳이 말하지 않으면 쉬이 알아채기 힘든 경우.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는 내내 장애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지나치게 비장애인적인 것일까 의문을 가졌었다. '장애'라는 조건이 너무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에 장애인의 삶에 대해 상상하기 어려웠었다. 이번 책 『사이보그가 되다』 는 그런 상상력의 빈곳을 채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장애인이 기계와 결합해 사이보그가 되는 경험의 일부를 나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을 보조하기 위해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시력에 도움을 받기 위해 안경이 필요하다. 이것들이 미약하나마 사이보그의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없을 경우 몹시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이런 경험을 몇 십배 또는 몇 백배 증폭시키면 장애의 경험에 살짝 닿지 않을까. 빈곤한 상상력으로 장애 경험에 공감해보려는 시도는 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읽을 수 있게 했다.

 

기술과 장애의 관계에 대한 장을 마무리하는 김초엽 작가 문장을 기억하고 싶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과학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의현실은 과학기술과 그렇게 마주치지 않는다. 첨단의 기술과 일상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개발돼도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기술을 인체에 적용하는데 장애를 견디는 만큼의 고통을 감수해야할 수도 있다. 심지어 최고의 기술이 어떤 개인에게는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 김초엽 작가는 "기적의 과학기술"보다는 실제 장애인의 "구체적인 경험"에 귀를 열어야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과학기술에 거는 기대는 너무나 쉽게 현실과 어긋나고 또 미끄러진다. 어떤 기술도 완전무결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 기술 낙관론자들이 약속하는 기술 유토피아는 결코 그런 방식으로 이곳에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완전한 기술과 불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지금 이 세계를 바꾸어나가야 한다. 언젠가 나타날 기적의 과학기술에 미리 찬사를 보내는 대신, 이미 현실에서 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기는 사이보그들의 구체적인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pp.87-88

 

책 후반에서는 돌봄의 문제를 다룬다. 홀로 일상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누군가의 돌봄이 필수적이다. 돌봄의 역할이 우리 사회에서는 대부분 가족 특히 여성에게 의무지워진다. 이런 책임과 의무의 역할이 무겁고 힘들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내 생각은 편견이었다. 김원영 변호사는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다.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이 언제나 비극은 아니며, 누군가를 돌보는 삶도 그저 동정의 대상이나 숭고한 예찬의 조건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결여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한 기술에 열광한다면, 자칫 서로에 대한 착취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

p.291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불완전함과 함께 살아기기 위한 기술"에 대한 두 저자의 대화는 날카롭지만 따뜻했다. 장애의 다양한 사례를 알 수 있었고 미래의 찬란한 기술보다 일상의 삶을 돕는 기술이 얼마나 더 절실한 것인지 살필 수 있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함의 형태가 크거나 작고 잘 보이거나 숨겨져 있을 뿐이다. 일부의 불완전함만이 보편적인 일상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불완전함의 크기가 클 수록 일상에의 절실함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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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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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지막은 죽은 솔새. 소년, 우주를 삼키다. 케이틀린 스파이스.

이 말들이 답이다.

의문들에 대한 답.

p.32


트렌트 돌턴의 소설 『소년, 우주를 삼키다』는 세 가지 키워드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너무 일찍 "어른의 마음"을 갖게 된 아이의 '기적에 가까운 성장소설'이라는 홍보 문구와 다르게 이 소설은 내게 스릴러의 외피를 갖춘 심리소설이었다.


주인공 엘리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엄마와 마약 중계상인 라일 아저씨 집에서 형 오거스트와 함께 산다. 엄마와 라일 아저씨의 의심스런 외출 시간동안 옆집의 슬림 할아버지가 형제를 돌본다. 엘리의 형 오거스트는 어린 시절 어느 날 말을 잊었지만 동생에겐 세상의 전부다. 슬림 할아버지와 형의 보호가 있지만 엘리의 학교 생활은 녹록치 않다. 게다가 중계상의 위치에서 단독거래를 하려던 라일 아저씨가 마약 거물에게 잡혀가고 엄마가 구속되는 일이 일어난다. 아이들은 낯선 아빠와 함께 살아야 하는 고달픈 상황에 처한다. 오랫동안 못봤던 아빠는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며 책만 보고 술로 밤을 지새는 사람이다. 엘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감옥에 수감된 엄마를 보러 가고 라일 아저씨 실종의 미스터리도 풀려고 한다. 범죄 보도 기자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는 길도 차근차근 밟아간다.


『소년, 우주를 삼키다』를 읽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다시 읽었다. 제제의 성장에서 한 발 더 나간 성장기라는 책의 홍보 문구를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제의 성장에도 이런 혹독함이 있었던가 싶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여섯 살이고픈) 다섯 살 아이의 시야로 본 세상이라면 『소년, 우주를 삼키다』는 확실히 십대의 세상이다. 제제를 언급하는 홍보문구에 아이를 대상으로 하거나 아이가 그려지는 소설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처절한 교도소 생활과 잔혹한 마약상들이 등장하고 그 속에 고통인줄도 휩쓸리는 아이들이 있다.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에 눈에 띄었다. 호주는 국가에 대해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됐다. 청정 자연으로 기억했던 나라의 도시 변두리 슬럼가를 속속들이 들여다본 기분이다. 어디까지가 작가의 실제 경험의 경계인지 궁금하다.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어떤 사건도 예사로운 건 없었다. 그중 무엇 하나라도 그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라면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을 게다.


소설 속에 현자 또는 해결사처럼 등장하는 슬림 할아버지는 '택시 운전사 살인사건'으로 복역하며 수 차례 탈옥해 유명세를 떨친 실제 인물 '보고 로드의 후디니'다. 호주에선 탈옥 사건으로 유명한 인물로 관련 책도 나와 있었다. 이런 인물의 출소 이후의 삶을 소설에 대입한 시도는 호주 독자들에게는 더 흥미롭게 느껴졌을 것 같다. 작가가 슬림 할아버지를 그린 시각은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혜를 가졌다.


"난 좋은 사람이야." 슬림 할아버지가 말한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기도 하지. 누구나 다 그래, 꼬마야. 우리 안에는 좋은 면도 나쁜 면도 다 조금씩 있거든. 항상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어려워.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 그렇지."

p.223


엘리는 범죄 사건 기자가 되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어쩌다 범죄자가 됐는지"가 궁금해서다. 엘리는 범죄자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그 순간"을 찾고 싶어 한다. 슬림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되는 일이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누구나 "선택의 여지"가 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있다고. 슬림 할아버지는 엘리의 모든 선택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의 모든 선택에 도움을 준다. 엘리가 할아버지 자신이 꿈만 꾸던 일을 할 수 있도록.


책의 서두에서 던져진 키워드는 책장이 줄어들면서 하나씩 하나씩 풀려간다. "너의 마지막"과 "죽은 솔새"가 어떤 관계인지, "케이틀린 스파이스"가 누구인지, "소년"이 "우주를 삼킨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러나 이 중요한 말을 엘리의 형 오거스트가 무심코 손가락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히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이 "다시 돌아왔기"때문이라는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이 소설에 판타지의 요소가 가미되는 대목이다. 엘리는 자기에게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겪으면서 이렇게 호소했다. 내가 작가에게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말이었다.


"그냥 좀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안 돼요? 띄엄띄엄 듣는 건 이제 넌더리가 나요. 어른들은 맨날 단편적인 얘기만 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꼭꼭 숨겨두죠. 더 크면 말해줄 거라더이 이제 나도 컸는데 엄마는 오히려 더 애매한 얘기만 하잖아요. 앞뒤가 안 맞아요. (…)"

pp.490-491


모든 걸 명확하게 제시하고 시작하는 소설이 어디 있겠는가. 또 그런 소설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어딘지 모를 캄캄한 숲 속을 질주하는 차안에서 형에게 매달려 있던 다섯 살 엘리는 자신의 주변에 얽힌 모든 사건을 해결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열 일곱 살이 됐다. 희망을 걸어볼 구석이라곤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소년 엘리는 꿈을 꾸었고 거짓말 같이 그를 돕는 손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자기 앞의 우주를 삼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주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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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 불법의 경야
김종건 지음 / 어문학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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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말잇기를 하듯 알게 된 책이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읽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알게 됐다. 모더니즘 3대 소설 중 하나라고 하니 호기심이 들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댈러웨이 부인』을 (이해는 둘째치고) 읽을 수는 있었으니 이 작가의 책도 읽을 수는 있으니라 기대했다. 그의 작품 목록에서 발견한 『피네간의 경야』. 그런데 이 작품이 읽을 수 없는 책으로 유명했다.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이 충분히 흥미롭고 숙고할 만한 것인데 불구하고 왜 읽을 수 없다는 걸까. 실물부터 확인했다. 책은 1천쪽 가까운 부피였고 첫 장부터 무슨 소린지 전혀 알 수 없는 한글로 된 외계어 문장들이 가득했다. 혹시 싶어 함께 찾아본 해설판은 더 어마어마한 1천 4백여쪽이었다. 대략 훑어볼 요량도 접어야했다. 작품에 대한 호기심은 간직한채로.

『피네간의 경야』는 숨바꼭질하듯 나타났다. 켄 리우의 소설 「모든 맛을 한 그릇에-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에서 아버지가 잠 안오는 딸에게 불러주는 노래로 등장했다. 독서가 조 퀴넌은 파란만장한 일생 독서기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에서 인생 마지막까지 읽을 거리로 남겨 둘 책으로 소개됐다. 왜 이책에 그리들 집착하는 걸까.


『제임스 조이스 불법의 경야』는 "『피네간의 경야』 입문자에게 권하는 책"으로 소개된다. 본문보다 긴 해설서를 읽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책으로 출판된 것 같았다. 원본도 해설서도 읽을 깜냥이 못된다면 입문자용 책이라도 읽어봐야겠다 싶어졌다. 그런데 부제가 불길했다. "불법이라 할Illicitable, 몽계획夢計劃dream-scheme인 <경야>의 언어유희 해설"이다. 음, 이게 어느 나라 말이란 건가. 책의 내용을 함축해 한 줄로 소개하는 부제가 이렇다면 그 다음은.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경야>: 각 장의 개요"는 말 그대로 『피네간의 경야』 를 각 장 별로 요약하고 있다. 장 별 내용에 대한 이해는 별개로 하겠다. 2장은 "글라신의 센서스: 신화, 전설, 우화의 소재를 바탕으로 한, <경야> 이야기의 대강"이다. 아일랜드의 『피네간의 경야』 전문 학가 애덜라인 글라신(Adaline Glasheen)의 해설이다. 저자 김종건 교수는 글라신의 개요가 "조이스의 멋진 무의미와 무한한 다양성을 생략한다"면서도 "백과사전적"이기 때문에 "초심자들에게 주는 이득이 있다"고 말한다. 여기 이 연구서가 초심자들에게 주는 이득이 있다. 글라신의 제3 센서스는 백과사전적이다. 세세하게 텍스트를 이해하도록 독자들을 돕기에 여기 싣는다. 그녀의 연구서는 조이스의 말들을 쪼개고 뒤섞어 잡탕을 만들어 수천 수만 풍부한 맛과 향을 내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힘들지라도) 말타주(몽타주)이다. p.53 "3장 불법의 경야"에서는 『피네간의 경야』에 대한 다양한 비평을 소개한다. "4장 <경야>와 현대 신양자물리학"에서는 소설가의 현대 신양자물리학에 대한 지식을 서술한다. 저자는 『피네간의 경야』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신양자물리학, 양자역학, 빛의 입자설 등을 서술한다. 물리학은 내 이해의 한계를 벗어나는 지점이므로 물질 구성 입자를 일컫는 '쿼크(quark)'라는 단어의 유래를 안 것으로 충분하다. <경야>의 I부 4장의 초두에는 바다 새들이 트리스탄과 이솔테가 연대하는 장면을 조롱하는 "퀴크!"라는 가사가 담겨 있다. 이 말은 새 물리학의 구성요소인 입자를 상징한다. 이는 1939년 원본에서 "Three quarks for Muster Marks"의 시행으로 노래된 가사의 일부로, 1960년대 미국의 물리학자 겔만드(Murry Gellmannd)에 의해 최초로 발명된 신물리학(New Physics)의 입자 용어이다. p.189 "5장 미국의 조이스 남동부 대장정"은 저자 김종건 교수가 석·박사학위를 받은 털사대학교에 가게되는 여정을 담은 여행기다. 저자는 털사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은 후 살고 있던 캘리포니아를 떠나 오클라호마로 향한다. 미국 남동부를 횡단하는 자신의 여행을 스타인백의 소설 『분노의 포도』의 대장정에 견주어 기술한다. 또한 연구에 도움을 받았던 연구자들에 대한 소개도 세세하다. 『제임스 조이스 불법의 경야』를 『피네간의 경야』 입문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다. 첫 두 장은 책에 대한 해설이니 책을 처음 접하는 호기심을 가진 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3장의 비평 부분도 도움이 된다 치자. 그러나 4장 양자물리학 부분과 5장 기행문은 그렇지 않다. 전자는 초심자를 질리게 할 것이고 후자는 사족이다. 5장은 회고록에 적당한 내용으로 보인다. 책은 무척 어려웠다.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문장 자체가 난해했다. 난해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저자의 문장은 한글로 된 외계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술호응은 가볍게 무시되고 단어의 어순도 자유로웠다. 대체 문장을 이렇게 쓴 이유가 뭘까. 이런 문장을 그대로 책으로 만든 걸 보면 편집자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을테니 말이다. 『피네간의 경야』의 경우는 워낙 저자 조이스의 언어유희가 복잡하여 번역문 역시 난해하리라 예상한다. 이렇듯 <경야>는 영어가 30%, 조이스가 만들어낸 신조어, 합성와 함축어 그리고 65개국의 외래어들이 중첩되고 혼성된 "언어유희"(linguistic punning)로서, 주된 기법은 "동음어의"(同音語義)(homonym)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국어 번역을 위해 우리의 한글을 한자와 혼용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 방법이었다. p.8 그러나 이 책 『제임스 조이스 불법의 경야』는 입문자를 대상으로 풀어쓴 책이 아닌가. 그런데 마치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조이스가 쓴 문장을 대하는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인가. 호기심 많았던 초심자들은 이쯤에서 본서 읽기를 멈추고 싶어질 것 같다. 저자는 한국 제임스 조이스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다. 조이스에 대한 방대한 저술활동을 인정받아 번역상도 수상했다. 평생의 노력은 인정해드리고 싶지만 책으로 확인한 바 그 노력의 결실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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