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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일용이 - 30년 동안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만난 아이들 이야기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엮음 / 양철북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갈수록 학교는 힘이 든다.
보람은 줄고 버거운 일이 많이 생긴다.
올해 드디어 명예퇴직 희망자가 넘쳐나서 희망했지만 퇴직하지 못한 선생님들이 있다 한다.
교육의 문제가 산적해있던 80년대에 비하면,
지금은 학교 풍토도 많이 개선되었다.
무엇보다 교장이 말아먹을 수 있는 금품수수 관행이 거의 사라졌고,
교사들에게도 일방적 지시를 일삼던 시기는 지났다.(물론, 일부 사립학교는 아직도 치외법권 지대인 모양이지만.)
그러나, 아이들을 옥죄는 교육의 공기는 더 산소가 희박해져가고 있고,
제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는 가족 이기주의는 팽배해져, 결국 한국 사회에서 공교육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저변에는 세계화와 발맞춰가는 사회, 정치적 액션이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데,
문제는 회오리바람처럼 커지는데, 해결책은 늘 찻잔 속의 회오리다.
도무지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세대가 탄생했다.
교사에게 대놓고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자행한다.
이건 IMF 이후, 가정의 해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영화 '집으로'의 연장선에 선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하지 못해 답답해 내지르는 소리이고, 몸짓인 것인데,
학교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고등학교는 '퇴학'이란 조치로 둘레밖으로 내쫓을 뿐이지만,
초,중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보듬고 있어야하는데,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이 책에서는, 아픈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아픈 마음이 잘 적혀 있다.
물론, 글은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비춰주기보다는, 아전인수 격으로 미화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학교 현장의 무기력에서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고 발뺌만 할 때,
이런 책을 읽는 일은, 유용하진 않을지 몰라도, 유효하다.
무기력해서 명퇴 카드를 조몰락거리고 있는 땀밴 손바닥으로
이 책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의 잘못도 있었음을, 나의 잘못이 아이들을 더 아프게 했을 수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
사실 그거 말고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거 같습니다.
여기 선생님들은 그래서 스스로 무기력하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누군가 따뜻한 눈길로 지켜봐 주는 마음,
아이들은 그걸 몸으로 느껴요.
때로는 나를 지켜봐 주는 선생님 앞에서 어깃장을 놓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지금 내가 힘드니까 도와 달라는 신호라고 생각해요.(머리글, 7)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그날' 중)
세상이 참 그렇다.
모두 병들었다.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소외되어 어쩔 줄 몰라하고,
사회의 구성원들은 누구 하나 없이 고통을 호소한다.
그렇지만, 다들 겉으로는 멀끔하게 돌아다닌다.
특히나 아이들은 약하다.
약해서 보호받아야 하지만, 그 보호장벽은 무너지고 아이들에게 상처가 바로 닿는다.
아이들이 모두 아파하는데, 어른들은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 듯 하다.
아이들이 아파할 때, 적어도 눈 돌리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들게 하는 책.
참 그럴 듯한 말이다. 화합.
좋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하고 어떻게 화합하느냐이다.
교장, 교감 또는 부장교사들 뜻에 맞으면 그게 화합이고,
그렇지 않으면 학교가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나야말로 아이들 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과는 전교조, 교총을 떠나 같이 얘기하고 싶고 술도 한잔 나누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 대부분이 교장 뜻하고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 사람들과 화합하겠는가.(43)
참 그렇다.
학교에서 화합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전교조 교사들이 화합을 방해하는 저해요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를 제기하고, '벌떡 교사'가 되어 회의 시간에 벌떡, 일어서서, 이런 걸 이야기해 봅시다~
하는 건전한 문제 제기를 화합을 깨뜨리는 사안으로 본다.
어떤 회의에도... 아이들 일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참 보기 힘들다.
사람은 하나하나 소중하다고 하는데
겉으로 보면 다 똑같아 보인다.
별로 소중한 것 같지도 않다.
때로는 말도 안 듣고 멍청한 짓을 해서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조디처럼 이렇게 생각을 글로 그러내면 소중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자꾸 글을 쓰자고 하는 것이다.(92)
그렇다.
글을 쓰게 하면, 말하기를 시키면,
아이들은 자기를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이 책을 잘 읽어보면, 특히 초등학교 아이들일수록,
자기를 열도록 시키는 글쓰기가 도움이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춘기가 지나면, 감추고 싶은 것도 있게 마련인 게다.
신체적 성장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성숙'의 시기가 청소년기이므로...
공부시간에 왜 이런 문제도 모르느냐고 나는 딱딱한 얼굴로, 사랑없이 말했고 아이는 한숨을 쉬었다.
책가방 메며 내 곁에 와서 작은 소리로 "선생님, 이제 수학 잘 할게요." 겨우 그 말을 하고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는 여자아이. 아니야, 그게 아니야. 미안해.(111)
교사들도 당연히 잘못한다.
그런데, 그걸 잘못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자기 몫의 문제는 생각지도 않고, 잘못의 전부를 아이에게 전가한다.
미안해~
잘못했을 땐,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상수를 보지 않고 얘기만 들었을 때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몇 가지 원칙을 정해 두었다.
내가 뭘 변화시킬 수 있다고 욕심내지 말기.
상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해 주기.(180)
편애하는 교사들을 아이들은 미워한다.
편애...는 아이들이 판단한다. 선생님은 나만 미워해~ 하고...
그렇지만 편애의 선배는 '선입견'이다.
학년이 바뀔 때,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전 학년 담임이 새 학년 담임에게,
이 녀석은 꼴통이고, 이 녀석은 문제아라고 짚어준다.
골동품은 오래 전해질수록 가치있지만,
꼴통도 오래 품으면 내편이 되기 쉽단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꼴통을 골동품 제자로 만들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욕심내지 말고...
이렇게 예쁜 녀석을 왜 몰라 봤을까.
시력좋은 눈을 달고 있다고 해서 다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220)
이제 새 학년도가 얼마 안 남았다.
새 학교로 옮겨서 새 아이들과 만날 텐데,
올해로 발령 25년차가 되는 나도 늘 아이들이 두렵다.
다만, 아이들의 반짝이는 재능을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밝은 눈이 트이기를 바랄 따름이다.
검은 민달팽이 한 마리가 길 위에 나와있다.
문득 달팽이가 느리다거나 내가 빠르다는 건 진실과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엔 자기만의 속도가 있기 때문이다.
달팽아, 너는 네 속도로, 나는 내 속도로 가자.
그럼 우린 잘 가는 거다.(순진한 걸음, 48)
달팽이에겐 달팽이의 걸음을 허하는... 그런 사회였음 좋겠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근대화를 달성한 국가~!의 이면엔,
가장 피폐한 제도의 그늘이 그만큼 짙다.
아이들의 마음에 드리운 그늘에 빛을 주는 교사가 되기엔 난 턱도 없이 모자란 줄 잘 안다.
그렇지만, 이런 책을 읽는 일은,
적어도 아이들이 내는 빛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기도 하다.
딱, 이즈음에...
새학기를 한달 앞둔 지금.
이 책을 만난 건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