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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
강유정 지음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이 쓰는 말 중에 '사랑'처럼 넓은 용례를 가진 말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감정'만큼 절실한 것도 없을 것이고,
그래서 '사랑하는 또는 사랑받는' 사람을 보는 건 질투심이 만렙으로 차오르게도 하지만,
부러움 한켠에서 흐뭇한 만족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강유정의 이 책은 읽는 사람을 많이 배려하고 있다.
이런 류의 책들이 가지는 가장 큰 단점은,
자신만큼 세상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살 거라고 착각하는 사이비 전문가들의 언사에 있다.
그러나 강유정의 글은 간단하지만 명확하게 영화의 줄거리를 짚어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이미 본 영화는 더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고, 독자가 놓친 측면을 바로잡아 주며,
못본 영화나 봤더라도 대부분의 장면을 까먹은 영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도와주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런 글쓰기가 훌륭한 글쓰기다.
줄거리는 너무 장황해도 불편하다.
독자가 읽고 싶은 것은 영화의 시놉시스가 아닌 것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가면서,
영화의 포인트를 설명하는 데 강유정은 성공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마치 그와 커피라도 한 잔 앞에 두고 재재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과도 같다.
그렇게 이 책은 편안한 책이다.
그의 이야기는 '사랑에 베인 상처'로 시작해서, '부석사 가는 길'로 끝난다.
사랑에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만, 부석사 가는 길은 그의 상처를 치유해 줄 여행처럼 보인다.
그의 사랑이야기는 <몸>에서 시작한다.
간혹 플라토닉 러브니 어쩌니 하기도 하지만,
남녀간의 사랑에 몸은 당연히 결부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어쩌면 풋사랑이나 첫사랑과 성인의 사랑은 <몸>에 대한 철학의 차이에서 농도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2장에서 남자의 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봄날은 간다'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와 '데미지'의 욕망으로 다루기엔 복잡한 내용이 아닌가 싶다.
남자의 몸은 언제나 섹스만을 상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가 남자의 사랑에 대하여 다룰 수밖에 없는 건,
3장의 연애-게임의 법칙으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쓰기 때문일 거다.
3장에선 사랑의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 챕터에서 다뤄지는 사랑의 극단들을 통하여
그는 많은 생각들을 하고는 있지만, 사랑의 본류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난 나의 생각으로,
이 책의 백미는 4장이 아닐까 한다.
<사랑에 다치다>란 제목으로
'클래식', '러브레터', '내 머릿속의 지우개', '너는 내 운명' 등의 국내 영화와,
몇 편의 외국 영화를 소개하는데,
사랑이란 이름으로 교차되는 다양한 <오해>들에 대하여,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사랑에 대한
지극히 소수의 <올바른 이해>에 대하여,
그 사랑의 오묘한 엇갈림과
그 엇갈림이 직조해내는 인생의 묘미를 잘 풀어내고 있어 보인다.
이 책의 프롤로그가 <사랑에 베인 상처>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작가의 관심사가 폭발적으로 집중될 수 있는 챕터인 만큼 밀도가 있다.
마지막 장은 <사랑아, 멈추어 다오>라고 해서 어떤 노래 제목을 패러디하고 있다.
내가 본 몇 안 되는 사랑 영화 중 절정은 '화양연화'였다.
과연 그들의 사랑은 '멈추어 다오'하는 간절한 당부가 필요한 것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또 과연 그들의 사랑을 꼭 멈추어야 할 만큼 인간의 도덕도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화양연화, 꽃처럼 아름답던 시절...
어리벙한 안성기가 주연한 '기쁜 우리 젊은 날'로서는 보여줄 수 없는
사랑의 고뇌를 담았던 영화.
사랑과 결혼은 무관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결혼이란 제도에 대하여도 잠깐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이 중에 혹시 <사랑에 마음을 베인> 사람이 있다면
그가 부석사 108 계단을 오르면서 사랑의 치유를 경험하기 바라고,
또 이 책을 읽는 사람 중 <새로운 사랑에 빠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래 댓글에 주소를 남겨주면 좋겠다.
내가 그의 소망을 이뤄줄 순 없지만,
이 책으로 위무는 되어줄 수 있을 것이므로. ^^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영화 리뷰를 잘 써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참고할 법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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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에 '내 머리 속의 지우개'란 영화가 있다.
'머리 속'에는 '뇌'가 있고,
'머릿속'에는 '생각'이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몸은 그대론데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잃게 되는 안타까움이므로,
'생각'을 잃는다는 '머릿속'이 옳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