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역사철학자들』(임희완 씀, 건국대학교출판부, 2003)에서 헤겔 부분 요약. 역사와 이성 과목 발표문 초고.> 

  헤겔(G.W.F. Hegel : 1770~1831)은 역사철학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헤겔 이후에야 비로소 역사는 철학의 연구대상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역사철학(philosophy of history)이 철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았다. 역사란 무엇인가, 그 역사의 주체는 누구인가, 역사는 어떤 목적을 향해 진행되는가, 그 진행에 따른 변화의 양상은 어떠하며 또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등의 질문, 다시 말하면 역사철학의 주제는 모두 헤겔이 역사철학을 정초하면서 설정한 연구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후의 역사철학자들은 거의 모두 헤겔에게 사상적으로 큰 빚을 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헤겔의 역사철학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철학 전반을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헤겔의 개념들 - 이성, 정신, 자유, 국가

  헤겔은 역사철학의 목표를 역사에서 드러나는 이성(reason)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역사현상은 합리적인 과정(a rational process)을 밟아서 일어나는데, 이 과정을 인도하고 주재하는 것이 바로 이성이다. 이성은 그 자체로서 역사를 전개시키는 힘이며, 역사의 변화과정을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펼쳐보인다. 헤겔에게 역사의 주체는 이성인 것이다. 

  이런 역사를 이끄는 힘으로서의 이성은 지금까지 인정받았던 이성의 개념과는 다르다. 그 개념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연과학을 지배하는 법칙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이성이고 다른 하나는 신의 섭리인 이성이다. 헤겔은 앞의 이성은 인과에 묶여있어 자유가 없다는 이유로, 뒤의 이성은 초월적이어서 역사에 자신을 전개시킬 수 없는 차원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두 가지 종류의 이성에 대한 정의를 거부한다. 여기에서 헤겔이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역사가 인과율에 묶인 단선적이고 일차원적인 변화 혹은 과정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역사 자체에 내재해 있는 것이지 그 층위를 뛰어넘는 어떤 다른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이성은 역사 속에서 정신(spirit)을 실현시킨다. 여기에서 정신은 개인의 정신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신이다. 인간의 정신이란 자연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필연적인 숙명이나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뜻하며, 이는 곧 인간의 정신의 핵심은 자유(freedom)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정신의 발전, 자연과 대립하는 인간의 자유의 확장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를 철학적으로 반성(reflection)한다는 말의 의미는, 이렇게 자유가 확장되는 과정을 발견한다는 말과 같다. 

  이런 자유의 확장은 의지(will)를 통해 역사 속에서 발현된다. 하지만 이 의지는 역사의 무대 위에 있는 구체적 개인의 의지가 아니다. 오히려 개인은 이성과 반대되는 정념(passion)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사는 합리적 과정을 밟아나간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의지가 개인의 의지가 이성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헤겔이 말하는 ‘이성의 간계(이성의 간지, the cunning of reason)’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개인은 정념에 따라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행동은 결국 이성이 정교하게 짜놓은 과정에 따라 자유가 확장되는 역사로 나아간다는 것이 바로 ‘이성의 간계’라는 말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성이 개인을 통해 드러날 수 없다면, 의지는 어떤 존재를 통해 역사현상에서 드러나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이 질문에 헤겔은 ‘국가(들, state(s))’라고 답한다. 그가 사용하는 국가라는 단어는 민족공동체 혹은 문화공유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는데, 그는 외형적인 법이나 물리적 강제력 등이 아니라 가치체계 혹은 특정한 신념을 공유하는 집합체 등 국가를 정신적인 면을 중요시하여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 국가(들)은 역사현상 속에서 이성을 담지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 존재이고, 국가 내의 구체적 개인들을 이성의 기획에 따라 자유를 확장하는 경향으로 통제한다. 따라서 헤겔의 체계 안에서는 개인의 통제와 자유가 양립하는 모순적 상황이 가능해진다. 또한 이런 국가(들)의 신념체계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종교가 국가(들) 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따라서 헤겔은 국가를 구성하는 이러한 가치체계와 종교의 모습을 지켜보면, 그 국가(들)에서 자유가 얼마나 확장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헤겔의 역사 해석 - 자유의 확장

  헤겔은 이같은 자유의 확장 즉 이성의 기획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그 역사들을 분석해보면, 대체로 역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갈수록 자유가 확장되며 자유로운 사람들이 많아지는 경향을 띈다. 또한 그는 현재 시점에서 그 정점은 게르만 민족이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데, 게르만 국가(민족)이 인간의 자유가 가장 확장된 제도와 종교를 신념체계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역사가 가장 처음 시작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지역은 중국이다. 고대 중국은 황제 한 사람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정신상태는 아직 자연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부터 파생된 우연한 가치체계를 도덕적 신념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어, 근본적으로 자연에 종속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도 또한 마찬가지로 자연에 기반한 제도와 그 제도를 정당화하는 종교적 신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유가 성취되지 않은 국가이다. 

  그 뒤에 페르시아는 의도적으로 각 지역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제도를 조직함으로써, 자연에 기반하지 않은 최초의 사회제도를 탄생시켰다. 헤겔이 말하는 자유의 탄생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또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상징을 종교적인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인간의 자유가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발현된 모습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 국가는 이러한 자유를 통해 역사에서 가장 먼저 철학적 ‘반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 그는 페르시아 인들과 조우한 뒤에 접한 최초의 자유로부터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을 수행하였고, 이것은 역사에서 자유를 확장하려는 ‘정신’을 발견하는 아주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 정신이 발현되어 다른 국가들보다 자유가 확장된 형태로 나타난 제도가 바로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이다. 로마는 이런 그리스의 민주주의의 몰락을 접하면서 강력한 통제와 국가권력을 구축할 수 있는 정신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국가이다. 이 강력함을 바탕으로 자기의 정신을 주변 지역에 확산시키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게르만 국가를 접하고 그에게 기독교를 동시에 전파한다.

  헤겔에 따르면, 게르만은 지금까지 역사현상에 등장했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발전된 형태의 국가다. 게르만 민족은 모든 인간이 자유롭다고 선언하는 기독교를 신념으로 삼고 있으며, 이 신념을 제도화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헤겔의 역사 과정 - 변증법

  헤겔은 위와 같은 역사적 사례들을 분석하여 이성이 어떤 합리적 과정으로 역사를 인도하는지 밝혀내고자 한다. 여기에서 헤겔이 역사를 과정이라고 이해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위에서도 밝혔듯이 그는 역사를 단선적 발전 혹은 일차원적 진행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을 함축한다. 구체적인 역사 즉 일정한 기간의 역사에 한정시켜 보았을 때, 발전하고 있다고만 볼 수 없는 사례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 전체를 통찰하였을 때 역사는 정신이 발현되는 방향으로 인도된다고 말할 수 있으며, 헤겔에 따르면 이 방향은 변증법적이다.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은 단순한 상승이나 발전이 아닌, 기존의 신념의 체계(정립, thesis)에 대한 반성을 통해(반정립, antithesis) 전혀 다른 차원의 사고방식(종합, synthesis)이 생성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과정은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을 총체적으로 인도하는 존재가 이성이기 때문에, 변증법은 이성의 작동원리(mechanism of reason)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변증법은 이성이 보여주는 단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필연적이다. 

  하지만 변증법적 과정이 필연적이라고 해서, 역사의 전개를 예측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증법적 과정은 어디까지나 역사 전체를 통찰했을 때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이지만, 역사의 전개를 예측한다는 것은 역사적인 맥락에 한정되어 어떤 사건이나 상황의 발생에 대해 미리 말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양쪽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기 때문에, 변증법적 필연성이 역사적 사건의 필연성을 말해줄 수 없다. 여기에서 헤겔은 우연과 필연을 양립시킨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자유가 확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그런 조건들이 역사 속에서 마련되지만, 그 조건들이 맞물려 총체적으로 폭발(?)하는 도약의 계기는 우연적인 개입(사건)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이 우연적인 개입은, 역사 전체를 통찰하는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 개입이 어떤 계기인지 의미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즉 역사현상에서 일어난 구체적 사건들이나 신념의 체계들은, 현재 상황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서 그 의미가 확정된다. 변증법적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단계로 인식되는 것이다. 전혀 다른 사고방식(synthesis)을 성취한 뒤에는, 그와 같은 신념의 체계는 신념으로서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한때 이성에 따르는 합리적인 가치였을 그 신념의 체계가 종합을 통해 교체되었으므로 더 이상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헤겔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야기들

  헤겔의 역사철학은, 범주나 개념으로부터 구체적 사건을 연역해내지 않고 그 반대의 방향을 취했다는 점에서 매우 높게 평가받을만하다. 그는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것을 이끌어냈고, 그 틀을 역사현상으로부터 끄집어내기 위해 역사를 분석하였다. 따라서 그의 과제는 역사적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고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규정하고 그 의미가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따라서 헤겔은 근본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정신, 물질의 운동으로서의 구체적 역사와는 동떨어진 것들에 연구의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헤겔의 역사철학에 대한 비판은 ‘너무 형이상학적이다’는 말 한 마디로 집약할 수 있다. 이 말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 설령 헤겔의 체계가 역사적 사례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그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결국 헤겔이 밝혀낸 역사의 주체로서의 이성은 결코 역사현상 그 자체에서 발견할 수 없는 개념 혹은 과정이다. 오히려 역사라는 학문을 가능하게 해주는 선결조건으로서 이성을 제시했거나, 이성 혹은 그와 비슷한 개념을 인간이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만 역사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헤겔의 역사철학은 역사 이상의 것을 연구하거나 함의하고 있다. 둘째, 헤겔은 자신의 ‘형이상학적 선이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기 멋대로 역사적 사례를 끄집어들였다. 그 선이해란 다름아닌 이성이다. 사실 이것은 정당화될 수 없거나 그 근거가 매우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헤겔의 선택과 배제를 통해 그럴듯한 모습을 띄게 된 것이다. 모든 국가는 각각의 삶의 양식이 있고, 현재도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그 모두를 외면하고 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역사 설명의 틀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사회적 맥락과 정념에 지배되는 인간이 아닌 존재, 즉 역사를 탈맥락적이고 일관되게 필연적으로 지배하는 법칙 혹은 과정을 역사의 주체이자 역사현상의 원동력으로 설정하였다. 이런 논리적 귀결은 역사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을 요청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이곳을 벗어난 어떤 목적과 의도를 성취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이 전개된다는 아주 평범한 견해는 우리가 여전히 헤겔의 역사철학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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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랑 방학 때 했던 『論語』강독 소모임에서 간단하게 정리>   

제자백가 사상이 남아있는 문헌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여러 국가들이 난립하고 경쟁하여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각 국가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세계(천하)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를 뒷받침해줄 통치 이데올로기를 요청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난립한 국가만큼이나 다양한 사상들이 등장하였고, 이를 한데 묶어 ‘제자백가’라고 말한다. 

  제자백가에 대해 다룬 저술은 많지만,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가까운 시기에 쓰여진 저술로는 「논육가요지」와 「예문지」가 있다. 「논육가요지」는 『사기』를 집필한 사마천의 아버지인 사마담이 썼는데, 당대에 가장 흥한 여섯가지 학문 - 儒家, 道歌, 墨家, 名家, 法家, 陰陽家의 특징과 그에 대한 사마담의 평가가 담겨있다. 「예문지」는 중국 역사서인 『한서』의 일부분으로서, 이 책이 집필될 당시에 남아있던 여러 가지 사상이나 학파의 특징과 경향이 적혀있다. 이 글에서는 「논육가요지」에 따라 유, 도, 묵, 명, 법가 등 다섯 가지 학파에 대한 내용을 간추려 적을 것이다. 


儒家

  유가 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仁이다. 이것을 가장 처음 정식화한 사람은 孔子다. 공자는 仁을 다양한 맥락에서 서로 다른 뜻으로 쓰고 있지만,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정의는 ‘인간이 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내면적 근거’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 인간의 실체가 바로 仁인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다른 존재들과 차별화되며, 비로소 도덕과 윤리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仁이라는 논리적인 근거는, 구체적으로는 忠과 恕라는 (도덕적) 감정으로 나타난다. 忠은 盡과 그 뜻이 통하는데,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타자(타인)를 대하는 태도를 뜻한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거짓과 숨김이 없이 있는 그대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信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恕는 상대방과 자신의 마음이 같음을 느끼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태도, 즉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공감은 단순히 감정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도덕적 자질과 판단능력에 대한 공감이다. 恕에 따라서 인간은 객관적으로 옳은 실천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며, 또한 이것을 타자(타인)에게 공인받을 수 있기도 하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仁이 밖으로 드러날 때, 공자는 이미 확립되어 있는 규범인 禮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禮는 도덕적으로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이 실천한 구체적인 사항들이다. 따라서 禮는 당연히 도덕의 올바른 표현이다. 공자가 禮로 본 것은 주나라의 예법인데, 역사적으로 가장 도덕적으로 완숙한 사람이 바로 주나라의 건국자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禮는 시대에 따라서 변화를 겪을 수 있지만, 禮의 변화는 仁에 비추어보았을 때 예측이 가능하다. 또한 禮가 인간의 도덕적 내면을 드러낸다는 본질적인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면의 仁과 외적으로 확립된 규범인 禮가 일치하는가 그렇지 않는가, 禮는 어떻게 정당하게 근거를 두는가 하는 문제는 공자 대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공자는 그저 적절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상황에 맞게 실천하는 것을 해답으로 제시할 뿐이다. 이 문제는 이후의 유가 사상가들에게 이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진다. 크게 仁의 정의에 따라 내면적인 속성을 중시하는 맹자 학파와 외적인 규제로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禮를 중시하는 순자 학파로 나뉜다. 

  맹자는 仁을 구체적으로 仁義禮智라는 네 가지 덕목으로 설명한다.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 네 가지 마음의 상태가 있는데 이것을 사단이라고 하며, 각각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 나쁜 것을 미워하는 마음(羞惡), 겸손함 마음(辭讓),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是非)을 가리킨다. 이같은 마음가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인간의 기본이자,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든 행동(실천)은 도덕적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이다. 오히려 맹자는 禮 같은 사회적 요구사항들이 인간의 이러한 면을 가리고 억누르기 때문에 비도덕적인 행위들이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반면 순자는 인간의 내면에 도덕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이 도덕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천사항들 즉 禮를 반복-습득하여 도덕적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를 化性起僞라고 한다. 禮를 습득하는 동안 인간은 그 내면이 바뀌게 되며, 비로소 비도덕적이었던 상태를 벗어나 진정한 인간, 자신이 하는 행동이 도덕적 근거를 갖춘 인간이 되는 것이다. 


道家

  도가는 도덕이나 윤리, 또는 인간의 인식에 따라 주어지는 여러 가지 개념과 그에 따라 구축된 사회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데서 출발하는 학파이다. 따라서 가치판단에 대한 상대성을 강조하게 되고, 이 상대성을 아예 뛰어넘어버리는 초월적인 기준과 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자는 이것을 道라고 이름을 붙였다. 

  노자에 따르면, 道는 만물을 생성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로서, 무한하다는 속성을 띄고 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들어낸(습득한) 어떤 규정도 들어맞지 않으며, 어떤 개념도 이를 포착해낼 수가 없다. 따라서 이것은 無라고 부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無라고 쓰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경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에 가깝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고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는 여러 사물들의 근거가 되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개념이나 규정으로도 정의될 수 없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정의 가능하다면, 그것은 그 정의 바깥에 있는 존재들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자가 말하는 無란 이런 의미에서의 無이다. 따라서 無는 모든 有 즉 존재들의 근거가 되며 모든 구체적인 존재들이 생성될 수 있는 원리가 될 자격이 주어진다. 따라서 道의 작용은 無에 기반하며 이루어지는 無爲이다. 

  장자는 위와 같은 노자의 생각을 더욱 발전시켰다. 有 즉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존재들에 대한 여러 가지 판단은 결국 인간의 기준에서 행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다르게 말해서 인간이 아닌 다른 사물들, 즉 만물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는 기준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이것을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게 되는데,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깨닫는 것이 진정한 지식,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에 이르는 길이다. 

  이런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성취해야 하는 상태를 장자는 無待의 경지라고 말한다. 無待 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세계를 통찰하는 행위를 뜻한다. 아무리 위대한 존재들이라도 그 존재들은 자신의 유한함에 의지하여 여러 가지 판단들을 내리게 되는데, 이런 유한함을 뛰어넘어 자신의 존재조차 망각하는 것이 바로 無待의 경지이다. 이는 정신적인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자신의 존재 없이 사유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신 속에서의 존재 즉 자아를 흩어버리는 것이 바로 이 경지의 핵심이다. 장자는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心齋), 사유의 도구인 개념을 치우고 큰 하나에 집중하며(專一), 급기야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坐忘) 수양을 그 방법으로서 제시한다. 


墨家

  묵자는 경험에 기초한 가장 단순한 인간에 대한 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다름 아닌 인간은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익과 손해는 물질적인 의미를 강하게 띈다. 모든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며,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므로 이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힘은 인간의 노력(力)이다. 인간의 힘에 의해서 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변화하게 된다. 이익과 손해는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묵가 사상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감각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존재로 바라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익만 보고 어떤 사람은 손해만 본다면, 그것은 모두가 이익을 보는 사회에 비해서 불행한 사회다.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가 보는 사람이 따로 나누어져 있는 사회는 차별이 있는 사회, 계급이 있는 사회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회적 불균등을 없애면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이 이익을 볼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묵가 사상에서는 차별과 차등애를 중시하는 유가의 사상과 예법을 비판하며, 모든 이가 신분이 같은 사회(尙同)와 그 모든 사람이 서로를 똑같은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고(兼相愛) 주장한다. 또한 이를 통해서 노력의 산물인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하는(交相利) 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사회는 이익을 위해서는 자유롭게 뭉칠 수 있는 개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각자의 능력에 맞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 전체를 관리하는 일부터 가장 사소한 재화를 만들어내는 일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직분에 차이가 있을 뿐 소득이나 계급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공동체 전체에 관련된 일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고 보다 현명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尙賢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공동체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똑같이 사랑하라는 등의 덕목들을 도덕적으로 어느 정도 권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도덕적인 심판을 내리는 존재를 묵가에서는 上帝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神靈과 의미가 같다. 인간의 노력을 중시하는 묵가의 전체적인 입장과 모순이 되는 점이 있지만, 상제의 존재를 상제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교정하는 가상의 존재로서 묘사하고 있다는 것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名家

  正名은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서, 구체적인 상황과 그것을 지칭하는 언어를 일치시켜 세계를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구동시키는 원리를 밝히려는 노력이다. 다시 말하면 언어(名)와 구체적 존재(實)을 일치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춘추전국시대의 모든 사상가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名과 實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에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명가는 이 正名의 문제를 사회적인 차원이 아닌 이론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하였다. 즉, 우리가 감각하는 사물과 그것을 지칭하는 언어 사이의 문제를 사회와 결부시키지 않고 순수하게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 시도한 것이다. 이것이 명가가 다른 제자백가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명가는 기본적으로 實을 통해서 名을 규정하려는 입장을 띄고 있다. 名은 그 자체로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킴으로써 ‘무엇’을 의미하게 된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名을 남발하면 그것은 아무런 實이 없는 언어, 즉 언어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기호가 되고 만다. 

  인간이 어떤 名을 일컬어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것은 名이 어떤 것을 가리킬 수 있는지 확정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지시함으로써 만들어진 名을 실제적인 언어(指物)라고 부른다. 이때에 와서야 언어는 자신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언어를 사용할 때에는 절대로 그 언어가 가리키는 사물을 가리킬 수는 없으며, 언제나 그 사물을 지시하는 언어를 매개로 해야만 한다. 따라서 인간의 인식에 있어서는 외부의 사물 자체가 아닌 언어가 중심이 된다. 


法家

  법가는 유가의 순자 학파에서 파생한 학문적 경향이다. 실제로 법가를 집대성한 한비자는 순자에게서 수학하였다. 따라서 법가의 사상은 순자 학파의 색채가 강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하게 인간의 여러 행동을 규제하고 지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도덕과 윤리라는 무형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이익과 손해를 정치적-행정적 권력을 통해 조절함으로써 점차 강력한 정권을 세워야한다는 입장을 편다. 

  정부가 가장 신경을 쓰고 기민하게 조정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법(法)이다. 법은 그 법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의 행동을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적인 이익을 생성하고 그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 법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계획되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개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을 변법(變法)이라고 하는데, 현명한 변법은 국가의 부와 군사력을 급속도로 꾸준히 증대시킨다. 

  또한 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그 법의 지배가 허용되는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은 법의 효력이 빈부와 귀천에 구애받지 않고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법의 효력은 모든 이에게 공정하게 미쳐야하기 때문에, 계급에 따라 차별적인 통치방식을 주장하는 유가 학파와는 반대되는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법은 법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법을 집행하는 최고의 권위자인 군주가 그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권위를 가져야한다. 이 권위는 사람을 다루고 제어할 줄 아는 기술(術)과, 사회가 이미 용인하고 있는 한에서 이미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는 지위(勢)를 통해 획득할 수 있다. 법가는 이미 확립되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만큼이나 術과 勢를 중요시한다.

  術은 군주가 자기 뜻대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여러 방법이다. 마음을 비워서 자기 뜻이 다른 사람에게 읽히지 않게끔 하고(虛靜), 수하의 사람들이 자신의 직분에 맞는 일만 하게끔 지시하며(循名責實), 자기 마음을 어지럽히는 자들을 물리치며(防姦), 상과 벌의 권한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고 스스로 쥐고 있어야(執二柄) 군주는 자신의 뜻대로 사람을 부릴 수 있다. 勢는 권력을 행사할 적절한 사회적 위치를 뜻한다. 勢를 얻지 못한다면 결국 뜻하는 바를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또는 가능성)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術에 勢가 합쳐지고 국가 재정과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질 때, 강력한 군주와 강력한 국가가 탄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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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근대정치사상사』(강정인, 김용민, 황태연 編, 책세상, 2007)에서 루소 부분을 요약. 방학 때 했던 소모임 '초코파이의 사회학' 발제문.> 

序. 루소의 작품을 읽는 순서

  루소(1712~1778)는 자신을 변호하는 저서인 《대화》를 통해서, 자기는 모든 작품을 통해서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내용은 다름아닌 ‘인간은 자연적으로natural 이성적이고 양심적이지만, 사회화 과정에서 이성을 잃고 타락한다.’ 는 내용이다. 또한 이런 내용을 가장 잘 주장하는 저서는 바로 《에밀》이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모든 작품은 《에밀》에서부터 거꾸로 읽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이 자신이 확립한 원리와 그에 따르는 여러 분야에 대한 주장을 정확히 읽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1. 《에밀》- 자연과 사회

  《에밀》은 인간을 어떻게 가르쳐야하는가에 대한 루소의 생각이 담겨있는 책이다. 루소가 이 책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교육이란 한 인간을 종합적으로 길러내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모습이 달라지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면모 가운데 발현되거나 억압당하는 것들이 결정된다. 이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또한 인간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관점을 확립하는 것은 인간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과 같다.  

  루소가 에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립구도는 바로 ‘자연’과 ‘사회’ 사이의 대립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는 좋으나 인간의 손에 의해(사회의 영향력 때문에) 타락]한다. 좋은 상태란,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능력 - 이성, 양심, 자유를 모두 갖춘 상태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인간을 비이성적으로/비양심적으로/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따라서 교육은 인간이 태어났을 때 그대로의 모습, 즉 이성과 양심과 자유를 발현하게 만드는 일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정치사상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에밀》은 인간의 삶에 정치적 지평이 반드시 포함되어있음을 밝혔기 때문에 중요하다. 루소가 이야기하는 부르주아에 대한 비판은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다. 사적인 삶(혹은 이득)과 공적인 삶(혹은 이득)을 구분하고, 이것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 점은 근대정치사상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 때문에 사적인 삶을 중요시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사유화(?)시킴으로써 공적인 삶을 인간의 삶에서 배제된다. 공적인 삶의 배제는 많은 인민의 불행으로 나타나고, 따라서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루소는 이런 사람들을 ‘부르주아’라고 비판하며, [조국은 모르고 돈만 안다]고 표현했다.
 

2. 《사회계약론》- 사회계약과 일반의지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자연인을 구속하는 사회가 어떻게 구속이 되며, 그 구속은 어떻게 정당성을 획득하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 사회계약은 기본적으로 홉스와 로크의 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인들이 모여서 계약을 체결하며, 그 계약은 사회 내에 사는 모든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홉스와 로크의 논의와는 달리, 루소는 자연권이나 자연법에 기반하지 않고 사회계약을 설명한다. 즉, 계약이 체결되기 전 자연상태에서 인간에게 생존권이나(홉스) 신체와 재산에 대한 자유로운 처분의 권리(로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모든 권리들이 계약을 체결한 뒤에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권리들은 계약의 입법자인 시민에 의해 결정되며,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것 또한 시민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인간의 집단이 홉스가 생각한 것처럼 투쟁상태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이성적이고 도덕적이며 자유롭다.’는 루소의 근본적인 가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개개인의 판단 기준이 다 다른 것은 무엇으로 교정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루소의 대답이 바로 [일반의지]이다. 일반의지는 계약에 의해 ‘창출’되며,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구속되지 않는다. 이 일반의지는 시민 개개인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면서 생기는 이해관계를 모두 제거한 뒤에 남은 부분, 즉 다시 이야기해서 모든 시민이 추구할 수 있는 공통의 이익을 뜻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일반의지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사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이것이 루소가 이야기하는 ‘정의와 유용성의’ 조화이다. 

  (효진의 의견 : 그러나 이 일반의지는, 책에서도 다루고 있듯이 순전히 개념적인 것이다. 일반의지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는 시민의 여러 가지 견해에 따라서 결정된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내용’을 결정하는 일인데 - 혹은 이 ‘내용’을 결정하는 작업이 바로 정치인데, (적어도 이 책에는)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일반의지에 대한 이런 모호한 설명은 전체주의적으로도, 혁명이론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 일반의지를 이데올로기적 방식으로 해석할 경우, 일반의지로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조작의 성격을 띄게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루소의 설명에 따라 이것은 정당성legitimacy을 획득하게 되는데, 아주 위험하다 - 물론 별 거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계약을 통해 형성된 사회 내에서 시민은 입법자로서의 자격을 지니며, 따라서 이 입법자는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 나아갈 때 이성과 도덕, 자유를 발휘하게 된다. 이것은 계약에 대해 취해야되는 시민의 태도에 대해 두 가지 면모를 설명해준다. 하나는 시민으로서 자신의 자유를 일반의지에 일치시키는, 다시 말해 자기입법에 자신을 복속시킴으로서 자유와 복속을 이론적으로 양립시킨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 계약의 불합리-비이성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폭넓게 마련해준다는 점이다. 


3. 인간불평등기원론

  루소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듯이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이성적이고 도덕적이며 자유롭다.’ 인간의 불평등은, 모두가 평등한 자연상태에서부터 출발한다. 루소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을 두 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자유롭다는 것을 의식한다는 점 그리고 완전가능성을 담지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실천한다는 점이다. 완전가능성은 스스로에게 있는 결핍을 채우고 무결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지향성을 의미한(듯 하)다. 이 두 가지 가운데 불평등은 완전가능성에 대한 실천에서 기원한다. 

  완전가능성은 필연적으로 소유 관념을 창출한다. 그것은 결핍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소유는 다시 인간소유(가족)와 재화소유(재산)으로 발전하며, 이것을 사회를 통해 법적으로 정당화함으로써 인간의 불평등은 고착화되고 심화된다. 또한 이렇게 조직된 사회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다시 말해 인간의 완전가능성을 발현하면 발현할수록 이 사회는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완전가능성이 이런 식으로 발현되는 것을 루소는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완전가능성의 발현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선악이라는 관념 자체가 완전가능성의 발현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소는 완전가능성은 자연에 비추어 자연 그 자체를 발산하는 방향으로 발현되어야한다고 말한다. 


4. 학문예술론

  학문과 예술은, (효진이 해석하기로) 한 사회의 현상과 태도를 가장 추상적으로 압축하고 표현한 것이다. 학문과 예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본성이 타락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 학문과 예술이 발전하고 축적한다는 것은, 위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사회가 점점 복잡하고 고도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루소의 입장에서 다시 해석하면, 인간은 점점 자연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사회화되고, 따라서 비이성-비양심-타율적으로 점점 변해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이나 사상이 가장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학문이나 예술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가장 의지해야 할 것은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순수한 마음, 즉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양심은 학문이나 예술이 보여주는 그 어떤 내용보다도 더 이성적이며 도덕적이고 자유롭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것에 따라 사는 사회인이 되기보다는, 자신에게 의지하며 현재를 지속적으로 창조해가는 미개인이 루소의 입장에서는 더욱 바람직한 인간이다.


結. 요약과 결론

  루소의 인간관과 역사관은, 총체적으로 복고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복고적 역사관은 자연을 이상화하는 데서 출발하여,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로 나타난다. 자연에 대한 루소의 정의는 당시에 다른 사상가들이 바라보던 자연이라는 개념에 대한 수정이자 비판이다. 또한 인간관과 역사관은 단선적-직선적-발전지향적인 시각이 기본적인 근대modernity에 대한 총체적인 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루소가 당대의 어떤 다른 사상가들에 비해 독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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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과 선배가 만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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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0-06-1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흣 이 사진 재밌군요. ^^

박효진 2010-06-11 13:15   좋아요 0 | URL
엇... 처음 뵙습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ㅋㅋㅋ
제가 다니는 과의 모든 학생들이 배를 잡고 웃은 사진입니다.

쉴즈 2010-06-2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도 피해자...?

박효진 2010-06-21 11:54   좋아요 0 | URL
아마도?
 

  데카르트의 철학, 특히 『성찰』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오해를 가장 많이 사는 부분이 바로 「제 3성찰 - 신에 관하여 : 그가 현존한다는 것」이다. 1, 2성찰에서는 인간이 지닌 인식능력이 믿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유한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신으로 퇴보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등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제 3성찰은 제목도 그렇고, 실제로 그 내용에 있어서도 신의 현존을 증명하는 내용이다. 이후에도 신의 현존에 대한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철학자는 자신의 시대 안에서 사상을 전개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자기 생각을 쓰면서, 그 당시에 쓰던 언어와 개념을 통해 자신의 글을 서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쓰는 말이 그의 생각을 온전히 대변해주는 것 또한 아니다. 따라서, 그 언어의 한계 밑에서 자기만의 독해, 또 다른 생각을 잡아내야한다. 이 글의 내용은 글쓴이가 읽어낸 제 3성찰의 바닥에 깔려있는 또 다른 의미이다. 

  데카르트의 제 3성찰은, 자신의 논증 속에서 인간이 정신 속으로 갇혀버린 난국(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에 처한 가운데, 정신의 외부에 있는 최초의 타자의 현존을 증명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타자는 그가 정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한다. 

  1, 2성찰에서 데카르트는 모든 감각정보를 부정하고, 오로지 정신만이 명증하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모든 감각을 멀리하며, 물질적 사물의 상을 내 생각에서 모조리 지워버리자.(p.56 첫 번째 줄)’ 하지만 참과 거짓을 설정할 수 있는 기준을 남겨두는데, ‘극히 명석 판명하게 지각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것을 일반적 규칙으로 설정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p.57 일곱 번째 줄)’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정신이 타자의 현존을 인정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 타자의 현존이 정신 속에서 극히 명석 판명하게 지각된다면, 그것은 곧 타자의 현존에 대한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감각은 거부되고, 그것이 어떤 판단의 기준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즉, 내 외부에 어떤 사물이 있고, 이런 사물로부터 저 관념이 유래하고, 또 그 관념은 사물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설령 이에 대한 내 판단이 옳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내 지각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다.(p.57 밑에서 일곱 번째 줄)’ 게다가 데카르트가 회의하는 대상은 단순히 감각자료일 뿐만 아니라, 모순이 없는 명제까지 포함된다. ‘예컨대 둘 더하기 셋은 다섯이라는 것을 고찰할 때 나는 적어도 그 진리성을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명석하게 직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나중에 이런 것들도 의심해야 한다고 판단했는데(p. 57 밑에서 둘째 줄)’ 

  기하학적 명제마저도 어떤 존재가 속이고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것이 신이라면, 우리는 가장 먼저 그런 기만자 즉 신의 존재 유무를 파악하고 그러한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성찰에서 신은 이런 맥락을 배경에 두고 등장한다. 즉, 인간의 명석 판명한 인식을 위해 요청되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는 위치가 바뀐 셈이다. ‘그러므로 이런 의심의 근거를 제거하기 위해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신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지, 또 존재한다면 기만자일 수 있는지를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p.59 밑에서 열 번째 줄)’ 

  현재 단계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정신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정신을 분석하는 일 밖에 없다. 데카르트는 이에 따라서 인간의 정신을 관념, 의지, 정념, 판단으로 나눈다. 둘 이상의 관념이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며 떠오르는 것이 의지, 정념, 판단이기 때문에, 데카르트에게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념이다. 또한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것은 나머지 셋 가운데 판단이다. 이러한 판단은, 아직까지는 모순적이지만 않다면 참으로 간주되는 혼란스러운 상태다.

  데카르트는 관념에 세 가지 속성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만들어질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본유), 둘째는 감각을 통해 만들어진 것(외래), 셋째는 다른 관념을 짜깁기해 만든 것(만든)이다. 이 가운데 외래관념의 경우, 사람들은 흔히 그것이 외부의 사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자연적 충동(p.62 아홉 번째 줄)의 영향이거나(자연이 나에게 그와 같이 가르치고 있다고 내가 말했을 때의 의미하는 바는, 어떤 자발적인 충동에 의해 나는 그렇게 믿게 되었다는 것이지, 그것의 참됨이 어떤 자연의 빛에 의해 나에게 명시되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외부와 관계없이 생성되거나, 그 사물의 각기 다른 모습이 감각을 통해 전달되어 같은 관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그러나 주목할 것이 있다. 과학적 지식과 본유개념을 동일하게 간주한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근거에서 얻은 것, 즉 내가 본유적으로 지니고 있는 어떤 개념들로부터 끌어낸 것이거나(p.63 위에서 네 번째 줄)’) 

  이런 외래관념을 제외하면 본유관념과 만든-관념이 남는다. 이들에 대한 대상의 현존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그들의 표상적 실재성을 검토하는 방법이 있다. 표상적 실재성이란 관념의 속성이기도 하고, 어떤 특정한 한 관념의 속성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표상적 실재성을 띄기 위해서는 자연의 빛이 알려주는 인과법칙에 따라, 표상적 실재성을 띄게 해주는 원인으로서 형상적 실재성이 있어야 한다. ‘자연의 빛에 의해 분명한 것은, 전체 작용 원인 속에는 적어도 그 결과 속에 있는 것만큼의 실재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p.64 위에서 넷째줄)’ 표상적 실재성은 관념과 관념 사이의 관계에 한정되며 정신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속성이지만, 형상적 실재성은 관념과 외부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형상적 실재성은 표상적 실재성보다 크거나 혹은 같다(각주 70). 

  하지만 아직 데카르트는 정신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따라서 ‘나’의 세계는 표상적 실재성만 존재하거나, 혹은 ‘나’를 근거로 삼는 형상적 실재성과 그것을 반영한 표상적 실재성을 띈 관념들만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형상적 실재성의 근원의 근원을 계속 추적해 올라갈 수 있는데, 이것은 자연의 빛이 가르쳐준 인과법칙에 따라서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원형에 근접해간다. ‘한 관념이 다른 관념으로부터 생길 수는 있지만, 이런 소급은 그러나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으며, 마침내 제일의 관념에 도달하게 되는 바, 이 관념의 원인은 이른바 원형과 같은 것이며, 관념 속에 그저 표상적으로만 있는 모든 실재성이 이 원형 속에는 형상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p.66 가운데)’ 이 ‘원형’은 자신의 정신의 연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다. 데카르트의 과제는 이제 이 ‘원형’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으로 바뀐다.

  그에게 관념은 다시 생물, 물질(무생물), 신이라는 세 종류로 나눠진다. 모든 생물은 만든-관념이다. 물질에 대한 관념은, 여러 가지 감각으로 관찰되는 자료들은 제2성찰에서 나온 밀랍의 사례에서 보듯 그 대상 자체의 속성이 아니다. ‘이 관념에 있어 명석 판명하게 지각되는 것은 극히 적다는 것을 알게 된다.(p.67 밑에서 여덟째 줄)’ 물질에서 명석 판명하게 지각되는 것은 연장(부피), 형태, 위치, 운동, 실체, 지속, 수 등이다.(여기서 데카르트가 왜 근대적 정신의 선구자인지를 알아보셨다면 철학과 대학원을 추천합니다. 농담 아님.) 감각으로 인한 관념들은, 만약 그것이 외부에서 주어진 관념이라면 그에 걸맞는 표상적 실재성과 형상적 실재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한다. 하지만 ‘나’의 정신 속에서는 두 실재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감각으로 인한 관념들은 내 내부에 근원을 두고 있는 관념들이다. 즉, 상상이라는 이야기이다. 또한 연장, 실체, 위치, 수 등도 아직까지는 표상적 실재성만 갖추고 있는 단계이다. 상상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고 나서야 신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제까지의 증명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신을 제외한 모든 관념은 인간의 상상의 산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관념들이 명석 판명한 것은 아닐 뿐만 아니라, 명석 판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상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외부와 아무런 접촉이 없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데카르트는 ‘관념이 정신에 근원을 두고 있다.’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타자의 현존 없이도 인간의 정신 속에 세계가 구축될 수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데카르트는 마지막으로 신의 관념을 검토한다. 검토의 주안점은 ‘신 관념이 정신에 근원을 둘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데카르트는 처음부터 ‘신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바는, 무한하고 비의존적이며, 전지전능하며, 나 자신을 창조했고, 또 다른 것이 존재한다면 그 모든 것을 창조한 실체이다. 실로 이런 것은 내가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나 자신에서 나온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p.69 밑바닥).’ 라고 못박으며 시작한다. 

  ‘나는 유한하다(p.70 두 번째 줄)’는 말이 갑자기 등장해 뜬금없지만, 이 말은 성찰이라는 책의 출발점이다. 유한한 존재이기에 잘못된 인식을 하는 것을 보면서 데카르트는 회의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유한한 존재 안에 무한한 존재(실체)인 신이라는 관념이 있다는 것은, 그 관념의 근거가 정신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무한 실체의 관념은 실제로 무한한 실체로부터 유래해야(p.70 세 번째 줄)’ 한다. 

  또한 데카르트는 신이 무한한infinite 존재이지 규정할 수 없는indefinitive(‘유한한 것의 부정(p.70 다섯 번째 줄)’)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의 부정, 즉 비존재를 뜻할 뿐이다. 신 관념이 존재-비존재를 초월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듯이 보인다. 또한 신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무한’이기 때문에, 어떤 관념이든 그에 대한 표상적 실재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실재적인 어떤 것도 나에게 나타내지 못한다고는 가상할 수 없(p.71 첫 번째 줄)’다. 또한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유한한 인간의 정신에 당연히 온전히 잡힐 수도 없다. 무한한 존재라는 것 자체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정신이 완전한 인식에 이르는 과정을 밟아나가면 무한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가능성을 상정하는 것 자체가 정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반증이다. 신은 언제나 ‘완전한 현실태’로서 무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한에는 어떠한 한계도 없다. 따라서 무한에 다다른다고 하는 표현 자체가 모순이다. 게다가 무한한 존재인 신은 자신 안에 모든 표상적 실재성과 형상적 실재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그 기원으로 둘 수가 없다. 

  하지만 만약 신이 무한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외부에 현존한다는 것은 아직 ‘나’의 정신 안에 증명되지 않았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신이 현존하지 않더라도, 신 관념을 가진 [나]는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전히 질문은 인간의 존재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이 가정을 논파하는 시작도 ‘나’의 존재에서 출발한다. 내가 존재한다면, ‘내가 만일 내 자신에서 나왔다고 한다면(p.74 세 번째 줄)’ 나 자신을 완전하다고 인식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타자가 없고, 결핍이 없다. 따라서 감각에 대한 어떠한 의심도 품을 수 없다. 유한에 결국 갇히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유한한 존재는, 무한한 시간 앞에서 그 존재의 현존조차 보장받을 수 없다. 무한히 작은 시간 속에서 어떤 시각의 나와 다른 시각의 나는 그 동일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동일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현존하는 것이 아니다. 부단히 새로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보존은 단지 생각의 차원에서만 창조와 구별될 뿐임은 자연의 빛에 의해 명백하게 알려지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p.75 일곱 번째 줄)’ 

  그렇다면 내 존재와 현존을 보장해주는 것은 어떤 존재인가. 그것은 결코 나 자신이 될 수 없다. 현재 단계에서 ‘나’는 아직 사유만 할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존재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이런 조건이 결국 ‘나’, 즉 정신 외부의 어떤 존재를 요청하게 된다. 이것은 무한한 시간을 조망하며 ‘나’의 존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 존재는 바로 신인데, ‘나는 사유하는 것이고, 또 신의 관념을 갖고 있으므로, 내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사유하는 것이어야 하고, 또 신이 갖고 있는 모든 완전성의 관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p.75 밑에서 네 번째 줄)’ 

  이 원인, 즉 원형이 신이라는 무한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데카르트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첫째, 신은 정신을 비롯한 모든 것의 현존을 보장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모든 근원을 캐물어가는 질문의 끝에는 반드시 신이 자리잡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사유하는 나’의 현존을 보존해주는 존재는, 다름아닌 ‘나’ 속에 신의 관념을 불어넣어준 바로 그 외부의 존재, 즉 신이기 때문이다. 둘째, 완전하다는 것은 단 하나의 존재라는 뜻이다. 변화하지 않고, 분할되지 않는 존재야말로 완전한 존재 즉 무한한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다. 따라서 신이 아닌 다른 여러 개가 아니다. 셋째, 이 단계에서 데카르트가 말하는 ‘나’는 여전히 정신에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관념을 산출하는 존재 이외의 다른 존재(부모)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의 관념은, 외래 관념도 아니고, 만든-관념도 아니다. 따라서 본유적이다. 이것이 본유적일 수 있는 이유는 신이 자신의 모습과 유사한 존재로서 인간을 창조하였기 때문이(랜)다. 따라서 무한하고 완전한 존재로서 신이 존재하며 현존해야만, 신 관념을 가진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신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나’를 기만하는 존재가 될 수는 없는데, 속이는 것은 거짓을 가정해야만 가능하지만, 신의 무한함 안에 거짓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연의 빛에 의해 명확하게 밝혀지기 때문이다. 

  신의 현존을 증명한다고 말하는 데카르트의 글은, 곳곳에 이 글의 주안점에는 인간이 놓여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증명마저도, 앞에서도 말했듯 그 목적이 ‘인간의 인식이 정당한지 검토하는 과정’에서 증명해야 하는 과제였다. 또한 인간의 정신을 통해 신을 증명할 뿐 아니라, 신의 현존마저도 인간의 현존과 외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교두보로서의 의미 이상을 지니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의 현존에 대한 증명은 ‘정신의 외부에 있는 최초의 타자에 대한 증명’ 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무한한 존재인 신에 대한 증명은, 앞에서도 나오듯 존재들의 현존을 보장해주는 존재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증명은, 신 자체에 대한 증명일 뿐 아니라, 데카르트가 회의 속에서 구해내지 못했던 정신 외부의 모든 사물에 대한 증명, 그리고 정신적이지 않은 또 다른 타자들의 존재에 대한 구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제 3성찰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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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서양철학소모임 발제문.

1. 써놓고 보니 표상적 실재성과 형상적 실재성 사이에 연결고리가 약하다. 데카르트가 약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고, 난 이게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2. 제 3성찰에서 전개되는 데카르트의 신존재 증명을 더 명확히 이해하려면 아리스토텔레스-스콜라 철학의 신 관념,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에서 가장 큰 화제였던 ‘존재-비존재’, ‘유한-무한’ 논쟁에 대한 선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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