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만만해지는 책 - 한 번 배우고 평생 써먹는 숫자 감각 기르기
브라이언 W. 커니핸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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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챙겨보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온통 뭐가 뭔지 모를 말로 가득해서 실제로는 알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알 수 있는 게 단 하나 있다면, 거의 모든 중요한 기사엔 빠짐없이 숫자가 등장한다는 사실일 겁니다. 사회 섹션을 보면 노인인구가 몇 명이라 국민연금이 위험하다고 하고, 경제 섹션을 보면 올해 GDP는 얼마에 코스피가 얼마를 찍었으니 주식투자를 하라고 하고, 산업 섹션에서는 올해 현대기아차가 자동차를 몇 조 어치를 팔아 코로나 속에서도 성장했다고 칭찬하고, 심지어 문화 섹션에서도 BTS의 효과가 돈으로 따지면 몇 조에 이르러서 웬만한 대기업 수준이라는 기사가 보입니다.

혹시 제가 말씀드린 사례에서 공통점을 발견하셨나요? 이런 뉴스의 공통점은 숫자를 제시한 뒤에 그걸 해석하고 평가하며 특정한 판단을 이끌어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고급 한국어 사용자이면서 독자인 우리들은 여기에서 멈추면 안됩니다. 이 숫자가 믿을 만한지, 그 숫자에 대한 뉴스의 해석과 평가는 합리적인지 따져봐야겠습니다. 추정치 도출에서 시작해 단위 보정하기, 큰 숫자는 10의 제곱으로 처리해 약분하기, 매번 같은 양의 사건이 발생한다고 임의로 가정하는 리틀의 법칙 이용하기, 숫자로 따질 수 없는 것 구별해내기, 통계에서 편향 찾아내기, 그래프 가로세로 꼼꼼히 보기 등 우리에겐 이미 합리적 사고의 도구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도구를 사용하는 연습을 시작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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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키워드는 ‘숫자감각’입니다.

앞에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이 책은 숫자와 관련해 여러 생각의 도구를 제공합니다. 특히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숫자들은 대부분 통계의 결과라는 점에서 이 도구들은 통계를 제대로 해석하는 기초적인 방법인 셈입니다. 특히 이 책이 집중하는 부분은, 터무니없는 숫자를 제시한 뒤 그 숫자를 잘못 해석하고 평가하는 경우 또는 뉴스에서 제시한 해석이나 평가를 뒷받침하기에 그 숫자가 적절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 경우를 판별해내는 것입니다.

이런 비판적 검토를 위해서 흔히 정확한 정보, 요즘 말로는 팩트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첫장부터 이런 생각을 뒤집고 일단 상식적 수준의 어림짐작부터 시작해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 짐작은 정확하지 않을 것이지만, 건전한 생활인의 상식에 기반한 계산이라면 실제 수치에서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는 게 이 책을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생각입니다. 진짜 팩트인 숫자가 필요할 때에는 그에 알맞은 자료를 찾아 필요한 만큼 정밀성을 높여가면 될 뿐, 모든 비판적 독해에 팩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이 강조하듯 시민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숫자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숫자를 다루는 감각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어떤 분야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강도의 훈련이 동반돼야 합니다. 그 방식으로 많이 보거나, 많이 읽거나, 많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죠. 우리들 중 상당수가 숫자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다른 감각에 비해서 숫자에 대한 감각은 이 훈련의 강도가 높다고 지레 겁부터 먹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건전한 상식과 이성을 갖추고 있는 인간인 한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 못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이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그런 생각의 방식을 활용할 수 있는 기삿거리는 포털사이트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니, 일단 소재는 널려있는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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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해드리는 콘텐츠는 고의관의 <작은 수학자의 생각 실험> 시리즈입니다. 숫자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면 그 다음 단계는 수학 자체로 깊게 들어가는 것일텐데요. 그러다보면 대량의 기호가 들어가는, 약간은 어려운 책을 접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리즈도 그런 다소 어려운 책 중 하나입니다. 총 세 권이고, 각각 물리법칙과 확률과 암호라는 분야에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딱딱한 단어로 분야를 이야기하면 실생활과 떨어져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물리법칙을 모르면 자동차 계기판을 만들고 해석할 수 없고, 확률을 모르면 로또와 연금복권의 원리를 이해할 수 없고, 암호를 모르면 여러분의 개인정보는 휴지조각이 돼 인터넷에 돌아다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숫자에 대한 감각을 얻는 것도 연습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수학에 익숙해지는 것도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건전한 상식과 이성을 갖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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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과 정의 - 대법원의 논쟁으로 한국사회를 보다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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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우리 생활과 얼마만큼 연관이 있을까요? 가끔 내가 뭔가 불리하다 싶으면 ‘법대로 해 법대로!’라고 외치곤 합니다. 분쟁이 생겼을 때 양쪽에서 모두 그렇게 외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재미있어요. 모두 법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니까요. 이렇게 우리는 결정적일 때 법에 기대고자 합니다. 하지만 법에서 쓰는 단어 문장 논리는 한글로 써있으면서도 한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죠.


그래서 우리에겐 우리의 생활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법에 정통한 전문가의 해설이 필요합니다. 생활에 관심이 없으면 허황된 개념만 늘어놓기 쉽고 법을 잘 모르면 우리에게 법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테니까요. ‘김영란법’을 만든 김영란 전 대법관이라면 어떨까요? 우리 삶의 가장 구체적인 부분까지 관심을 두었으면서 동시에 최초의 여성 대법관을 지내며 그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라면 법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상세하고 전문적인 해설을 들을 수 있겠죠? 단, 너무 전문적이면 버거울 테니 우리 주변 시사 이슈부터 시작하기로 하죠. 김영란의 ‘판결과 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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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해석’입니다.


법은 기본적으로는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입니다. 그러나 법은 그 단어로 우리 생활 속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규정함으로써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러하니 이렇고 저런 것이 법에 요롷고 조롷게 쓰여 있으니까 이것과 저것은 요롷고 조롷게 처리하는 것이 맞다, 이런 식이죠. 이렇게 판단할 때 크게 두 가지 해석 과정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어떤 사건이 어떤 법이 규정한 것에 부합하는 사건인지, 즉 법적으로 다룰 만한 사건인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사회가 변화하고 점점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면서 법의 인정을 받으려는 사건의 유형도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이전에 법이 관장하는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사회현상도 법이 개입해야 한다는 식으로 관점이 변해가죠.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고요. 이런 걸 있어보이는 용어로 ‘인정투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 중엔 가부장적 차별의 시정과 성인지적 감수성의 등장, 과거에 국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과 정리 같은 것들이 아마 이 해석의 영역에서 문제가 되는 사건일 것입니다.


둘째는 법 체계 안에서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만큼 법 또한 다양한 가치를 옹호합니다. 하지만 그 가치들은 서로 빈번하게 충돌하기에 무엇이 먼저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법이 이 우선 순위를 명시적으로 적어놓았다면 법관은 이에 따라야 합니다. 때로는 추상적으로 우선 고려되는 가치가 실제 사람들의 삶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동시에 법관에게는 사회 변화나 법관의 양심을 고려해 판결할 의무과 권한이 있기도 합니다. 바로 이 지점 즉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부분에서 가치의 우선 순위를 강화하거나 때로는 뒤집기도 하는 해석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이런 해석과 관련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들은, 안타깝게도 자기결정, 사적 지배, 계약 우선의 원칙 같은 것을 맥락을 배제한 채 우선시해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거쳐서 이 사회를 관장하는 규칙인 법은 진보하고, 같은 법을 놓고도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이 사회의 더 많은 영역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러한 문제와 역사가 무엇인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책이 바로 ‘판결과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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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권해드리는 책은 같은 저자가 쓴 다른 책인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입니다. 이 책도 ‘판결과 정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여러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분석하는 내용인데요. ‘판결과 정의’가 시사 이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면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법적 논리 자체를 분석하는 쪽에 무게가 더 많이 실려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직접 판결에 참여했던 사건을 실었다는 점에서 좀 더 자세하고 솔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문서를 다루는지 경험하고 싶다면 함께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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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 그림과 원리로 읽는 건축학 수업
로마 아그라왈 지음, 윤신영 외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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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하루를 한 번 생각해볼까요? 방이든 숙소든 우리는 집 안에서 아침을 시작합니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리로 내려와 보도블럭과 아스팔트로 된 도로를 밟으며 등교하거나 출근을 하고요. 콘크리트나 벽돌로 지어진 건물로 들어가 공부하거나 일을 하죠. 점심을 먹고 잠깐 산책을 하러 주변 공원에 가면 작은 개울가를 건너는 다리가 보입니다. 한 번 건너보기로 하죠. 음식물로 텁텁해진 입안을 깨끗하게 할 겸 양치하러 화장실에 가면 수도꼭지가 있습니다. 틀면 언제든 깨끗한 물이 나오고, 나를 씻겨준 물은 하수구로 흘러갑니다. 집에 오는 길에 친구와 약속을 잡고 근처 쇼핑몰의 지하 아케이드 상가에 있는 맛집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주변을 둘러보니 꽤 오래돼 보이던 건물 주변에 펜스가 둘러져 있고 ‘철거 예정’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네요.

이처럼 잘 둘러보면 우리의 삶은 건축의 결과물과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지은 곳에서 활동하고 쉬면서 무언가 지어지거나 무너지는 장면을 항상 목격하죠. 너무나도 일상적이기에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이 모든 것이 인류의 역사적 경험와 함께 만들어진 첨단과학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살펴보면 어떨까요? 건축이라는 관점에서 주변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 로마 아그라왈의 ‘빌트 -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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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인공물’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건축물이라는 대상에서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지루한 파트이긴 하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말하자면 건축이라는 기술 자체를 결정짓는 요소인 힘 즉 역학에서 시작해서 콘크리트와 철강 등 소재의 역사,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의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인 상하수도와 엘리베이터의 원리, 건축물에서 발생한 여러 사고로부터 얻은 교훈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에 반영된 방식 등 그야말로 건축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건축물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의 변화와 발달은 자연과의 투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건축에서 자연은 일종의 대전제인 셈인데요. 건축물의 기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떻게 중력을 이겨내고 높이 솟는 건물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겠죠. 또한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지름 1mm 철근이 3톤을 견디게 만들 수는 없고, 절대 부서지지 않는 콘크리트나 벽돌을 만들 수도 없고, 더러운 물을 사용하고도 배탈이나 피부병이 나지 않게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사실 이런 게 가능하다면, 우리가 굳이 건물을 지어서 그 안에 들어가 살 필요도 없겠지만요.

그래서 인류는 고민합니다.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만들려면 어떤 소재를 써야 할지, 자원을 조금이라도 덜 들이고 똑같은 기능을 하게 만들수는 없을지,  같은 돈을 써서 조금 더 많은 기능을 갖게 할 수는 없을지, 예전에 쓰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설계하면 더 나은 결과가 있지는 않을지, 게다가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예쁘기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바로 이런 모든 역사적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 ‘인공물’ 그러니까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그 어떤 인공물도 함부로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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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트와 같이 읽으면 좋을 책은, 빌트보다는 조금 더 무겁지만 역시나 충분히 좋을 책인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입니다. 도시는 인류가 만들어낸 건축 기술이 한데 모인 아주 복잡한 구조물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과학/공학적 의미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인문학적 의미까지 지니는데요. 도시의 승리는 이렇게 넓은 범위에서 도시를 조망합니다. 그리고 그가 내리는 결론이 매우 충격적입니다.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인간친화적이고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왠지 도시는 인간성 말살과 환경파괴라는 단어와 더 친숙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니 굉장히 이상한 주장이죠? 그가 왜 이렇게 주장하는지, 한 번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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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소녀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김명환.김엘리사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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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만나 독재 시절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온 헤라르도. 집에 오는 길에 차가 고장났는데 다행히도 길에서 선의를 베푼 운전자인 의사 로베르토를 만나 함께 집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라르도의 아내인 파올리나는 로베르토가 감옥에서 자신을 고문하고 성적으로 학대했던 의사라는 사실을 기억해냅니다. 그가 잠든 사이에 때려눕히고 기절시켜 의자에 묶어놓고는 “나를 고문했다”고 자백하길 강요하죠. 반면 로베르토는 파올리나가 정신병에 걸려 헷갈린 것이라며 풀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헤라르도는 위원 자격을 상실하고 아내의 사적 복수를 방관했다는 비난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아픈 기억을 무작정 묻어두라고만 할 수는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합니다. 헤라르도는 로베르토에게 거짓으로라도 진술하고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합니다.

이 세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로베르토는 정말 고문관이었을까요? 파올리나의 복수는 정당한 것일까요? 헤라르도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요? 어두운 역사를 정리하는 방법에 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희곡 <죽음과 소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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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진상’입니다.

칠레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사진상규명은 첨예한 정치적 문제입니다. 일제강점기나 전쟁 시기 각종 민간인 학살과 며칠전 헬기 사격 관련 판결이 내려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해 군부독재 시기에 있었던 각종 사건 중 일부는 아직까지 그 진상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정치적 문제로 부각되면, 한쪽은 아무 사건에나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들이밀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래를 바라보자는 틀에 박힌 말만 반복하며 덮고 가는 데 급급하죠. 특정한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태도는 유리하냐 불리하냐에 따라 어느 쪽에서나 보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덮고 가자는 쪽이 더 뻔뻔하고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사람들이 사건의 진상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몸에 남은 상처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엄연히 존재한다면 우선은 그 상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 귀를 기울여 들어봐야 할 것입니다. 없는 사람 취급하고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다고 해서 피해가 사라지진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태도야말로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보다는, 우리가 이 책에서 보는 파올리나의 행동처럼 사적으로 복수하겠다는 열망만 더 강하게 만듭니다. 요새 인터넷에서는 이런 걸 ‘사이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더라고요. 통쾌하긴 하지만, 사이다의 설탕이 혀에 뒷맛을 남기는 것처럼 뭔가 텁텁하죠.

파올리나가 그렇고 모든 사람이 그렇듯 자신의 피해에 대해서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피해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정리하는 것. 이게 ‘진상’을 밝히는 일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에 호소하지 않아도, 그 사건에 지대하게 관심을 쏟지 않더라도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되겠구나’라는 느낌을 줄 수 있게끔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 이 목적이 달성됐을 때야말로 ‘진상’이 규명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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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콘텐츠로 제가 가져온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인빅터스>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분리 시절 백인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진 스포츠 럭비를 흑인들도 함께 즐기는 온국민의 스포츠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오늘 읽은 책 <죽음과 소녀>가 과거사 청산이라는 주제에 대해 사적 복수를 상징하는 파올리나와 갈등을 상징하는 헤라르도를 보여준다면, <인빅터스>에서는 그것과 완전히 정반대에 있는 ‘조건 없는 용서’를 상징하는 인물인 넬슨 만델라를 보여줍니다. 럭비에 신경쓰는 대통령 만델라에 대해서 “고통받았던 흑인을 외면하고 백인을 그대로 우대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이 나라의 흑인 중에 내가 가장 많은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니 내가 용서하는 것도 가장 큰 용서가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을 보면, ‘도덕적 지향점이 뚜렷한 위대한 정치인의 모습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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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 - 좋은 정치를 위한 국회 사용 설명서 정치발전소 강의노트 5
박선민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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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입니다. 법치주의는 무슨 뜻이죠? 모든 사회 구성원이 따르겠다고 형식적으로 동의한 법에 의해서 국가가 운영된다는 뜻이죠. 그래서 법은 우리 삶의 모습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법을 만드는 기관은 어디죠? 다들 잘 아시다시피 입법부 즉 국회입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국회에 관한 뉴스를 보기 시작하는 순간 머리가 아파 옵니다. 상임위는 뭐고 특별위원회는 뭔지, 내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의안이 발의는 됐다는데 왜 통과는 안 되는 것인지, 국가 경제와 관련된 중요한 법안이 바로 뒤에 있는데 왜 쓸데없이 누구를 임명하네 마네 하는 문제로 드잡이를 하고 시간을 끄는 것인지. 용어도, 돌아가는 생리도 도통 모르시겠다면, 이 책을 한 번 꼼꼼하게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16년차 국회의원 보좌관이 말하는 국회의 모든 것,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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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꼽은 키워드는 ‘입법부’입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행정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활하다 국가와 부딪히는 문제가 생겼을 때 실제로 일을 처리해주는 조직이 행정부니까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선거도 대통령 선거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때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찾아가서 하소연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따지고보면 행정부는 법에 따라서 일을 처리해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법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돼있을 때나 내가 필요한 사항이 법에 제대로 반영돼있지 않을 때는 공무원들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그 사람들이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법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거나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당연히 행정부가 아니라 입법부, 국회로 가야 하죠.

하지만 법에 내 소원만 반영할 수는 없겠죠. 우리나라엔 나와 똑같은 권리를 지닌 동료 시민이 5천만명에 이르고, 그 사람들의 소원도 가지각색일테니까요. 그래서 나와 같은 소원을 지닌 사람들을 조직하고, 반대로 나와 소원이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를 나누며 내 소원을 관철시키거나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합니다. 이런 타협의 선을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켜야 하는 일반적인 규칙으로 만드는 일을 대신하는 곳이 바로 입법부, 국회입니다. 그래서 국회는 본질적으로 대립과 투쟁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그 대립과 투쟁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원칙을 도출해내는 가장 생산적인 기관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 책의 제목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이 지닌 의미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기구가 있는데요. 바로 정당입니다. 이렇게 국회에서 하는 일을 생업에 바쁜 우리를 대신해서 담당해주는 기관이죠. 이 책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국회 못지 않게 정당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합니다. 정당은 다수의 의견을 모으는 동시에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만들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의견이 모인다고 반드시 합리적이지는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정당을 설득하고 타협점을 찾기 위해서는 방안이 합리적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으로는 지지자들에게 합리적 방안의 필요성을 퍼뜨려 양해를 구해야 하고, 밖으로는 다른 정당에게 지지자들의 요구사항을 가능한 한 많이 관철시켜야 합니다.


이렇다보니, 본질적으로 정당을 둘러싼 안팎은 역시나 국회만큼이나 대립과 투쟁의 장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항상 시끄럽습니다. 그러니, 국회에서 정당에서 싸운다는 뉴스를 보시면서 “쟤네는 맨날 싸우는 것밖에 안 해?”라고 생각하시기보다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아, 물론 어떤 취지에서 어떤 법안을 놓고 싸우는지 끊임없이 감시하는 시민의 의무는 항상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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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권해드리는 추천콘텐츠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입니다.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 대통령일 링컨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우면서 동시에 역사적으로 가장 빛나는 시기인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키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인종차별을 하지 말자”는, 지금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를 헌법에 삽입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하고 타협하려 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고스란히 엿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약간 환경이 다르지만 입법부라는 환경의 복잡함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열정 또는 치졸함같은 것을 정말 날 것 그대로 보실 수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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