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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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리는 얼굴이 있다. 그려지지 않는다. 떠오르지 않는다. 형체도 없는 얼굴, 그러나 선명하다. 가만히 세 글자, 당신의 이름을 불러본다. 최지은의 『우리의 여름에게』를 읽을 때는 몰랐다. 읽고 나서 나는 읽는 내개 그 얼굴을 그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여름에 돌아가신 엄마였다.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나 환한 웃음 대신 무겁고 피곤한 낯빛이 전부였던 얼굴. 그러나 내가 모르는 얼굴이 있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수줍음과 설렘 말이다. 우리가 보낸 여름에도 그런 날들이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의 부재는 강력하다. 끝내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부재를 인정하는 노력도 할 수가 없다. 인정하는 순간 삶이 무너져내릴까 두려워서.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건 자랑이 될 수 있다. 나의 유일한 자랑, 삶을 지탱하는 자랑, 시인 최지은의 글은 그런 자랑이었다. 오래 듣고 싶은 당신의 자랑이었다. ‘당신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란 박준 시의 한 구절처럼 말이다.

가장 가까운 이를 떠나보내고 살아가는 일은 상실과 나란히 걷는 일이다. 때로 어깨동무를 하고 발을 맞추고 때로 상실을 부축하거나 상실에게 기대며 걷는 일. 어린 나이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나의 어린이는 그걸 조금 일찍 감당했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큰아버지가 주신 탕수육에서, 선생님의 화난 말투에서. 그러니 저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어린이는 열한 살이 넘도록 할머니의 품에 안겨 머리를 감으면서도 할머니의 걱정이 되면 안 되었다.

어디 하나 모날까 봐 조심스럽게 그러나 강단 있게 들려주는 저자의 이야기는 맑은 동그라미 같았다. 조금씩 커져도 절대 터지지 않을 힘을 지닌 동그라미라는 게 느껴졌다. 기억의 시작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엄마,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부재가 익숙했던 시간을 채우던 불안.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할머니의 돌봄과 보살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든든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자랑이었다. 우주 같은 사랑. 그 사랑을 딛고 앞으로 나간다. 슬픔을 바라볼 힘을 키우고 슬픔이 지나간 자리를 비추는 햇빛을 발견하다.

슬픔을 슬픔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지나가면,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오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언가 때문에라도 슬픔은 슬픔으로 두고 싶다. 언제든 슬플 요량으로 이불 끝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날이 밝으면 이 빛을 기억하며 씩씩하게 나가 걷자고 생각하면서. 한번 더 이불을 끌어당겼을 땐 처음 보는 햇빛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63쪽)





어른이 된 후에 마주한 엄마, 아버지, 할머니, 큰 언니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과 부재는 나의 슬픔의 근원이 되었다. 슬픔의 그물에 빠져지내기도 했다. 저자는 어땠을까. 알 수 없는 어떤 마음이 담긴 글을 읽으며 헤아려본다. 읽다가 가만히 멈추고 읽다가 눈물을 흘리고 읽다가 대견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진다. 저자의 마음속 어린이를 다정하게 안아주고 싶다. 그러다 금세 글을 읽으며 위로받는다. 특히 이런 글 앞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무거운 수박을 굳이 들겠다며 결국엔 수박을 깨트린 다섯 살 어린 손녀를 혼내는 게 아니라 쪼개진 수박을 붙여 모은 할머니. 두부와 콩나물을 사 오라는 할머니의 심부름.

할머니라면 이럴 때 나에게 어떤 심부름을 줄까. 어떤 말을 들려줄까. 할머니의 해답을 상상하면 조금 덜 속상해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두려움도 미움도 잊어버리고 ‘문득 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하게 되는 마음이. 그러니 매일 아침 현관문을 나서며 상상합니다. 저 방에서 할머니가 나와 오늘 나에게 하나의 심부름을 준다면 무얼까?

ㅡ기쁘렴.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117~118쪽)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막막함을 느낀다.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지만 누군가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다. 그럴 때 나는 큰언니를 생각한다. 이상하다. 엄마가 아닌 큰언니라니. 큰언니라면 어떨까.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가 할머니가 어떤 심부름을 줄까 생각하는 것처럼.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라는 심부름. 큰언니는 마지막 순간에 행복하라고 말했다. 무엇을 하든 행복하라고. 행복이 우선이라고.

엄마는 초여름에 떠났고 큰언니는 막바지 더위와 함께 떠났다. 여름은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더욱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모든 게 성장하는 여름처럼 나 역시 여름을 먹고 살아간다. 술이나 길고 긴 대화에 의지하며 잠들었던 과거의 여름이 지나고 쌓여 고유한 여름밤의 기쁨을 안다. 여름에 물든 상처가 만들어 낸 삶의 풍경을 기억한다. 저자가 스스로를 돌보고 더 깊게 사랑하는 여름. 저자의 할머니와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저자를 돌보러 오는 것처럼 나의 그들도 그렇다는 걸 느낀다. 저자는 그 사랑과 돌봄 덕분에 슬픔과 상처와 결핍은 채워졌고 아무런 조건 없이 선물을 주는 기쁨으로 나누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변했다. 내 마음은 달라졌다. 어린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어린 내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서로 달라졌다. 틈이 생겨버렸다. 구멍이 생겼고 어둠이 오갔고 바다가 출렁이고 그 위로 파도가 오고 또 갔다. 엉뚱한 구멍을 파기도 했고 어둠을, 바다를 손에 쥐려고 힘껏 애쓰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됐다. (126쪽)

읽을 부분이 줄어드는 게 아쉬운 책이다. 가볍고 가뿐하면서 힘 있는 아름다운 글이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감출 수 없다. 『우리의 여름에게』는 나누고 싶은 여름이 되었다. 여름이면 생각날 책이 되었고 여름이면 그리울 감정이 되었다. 우리가 지나온 여름과 앞으로 살아갈 여름이 얼마나 환하고 빛날까 기대한다. 어떤 여름은 지독해서 무릎이 꺾이고 주저앉아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식혀줄 한 줄기 바람이 함께 할 여름이라는 믿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여름에 보태는 마음을 지키는 마음이 있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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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그녀
왕딩궈 지음, 김소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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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세상은 고요해진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나와 당신, 둘 사이에만 고유한 침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말할 때 세상은 요란해진다. 나와 당신의 관계를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고요하고 은밀하면서도 끝나지 않을 소란으로 가득하다. 처음 만난 왕딩궈의 장편소설 『가까이, 그녀』는 은밀하고도 고요한 사랑으로 다가왔다. 십 대 때 대만 유수의 문학상을 휩쓴 작가가 절필 후 20년 만에 쓴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내게 큰 의미가 되지 않는다. 『가까이, 그녀』란 제목과 꽃으로 입을 가린 표지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가까이, 그녀’란 누구일까. 짐작대로 아내일까, 아니면 가까이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그녀일까. 아니면 사랑과는 무관한 그녀일까. 입을 가린 꽃은 무엇 의미하는 것일까.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는 걸까.


소설은 작년에 57세의 생일을 맞은 남자, 그러니까 올해 58세인 화자인 ‘량허우’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신의 근황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량허우는 감옥에 있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신혼부부인 아들의 집에 잠깐 있다가 따로 나왔다. 아들 ‘뤠이슈’와 사이는 좋지 않다. 량허우가 감옥에 간 이유,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다. 그렇다. 아내가 죽었다. 나는 아내가 무척 그립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량허우’는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을 둘러싼 여자들에 대해 들려준다. 현재 자신의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은 며느리와 간병과 살림을 봐주는 아윈이 있다. 물리적으로 가까울 뿐 소원한 사이다. 기억 속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시계점에서 일할 때 가게에 들어온 아내,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짝사랑한 종잉. 그녀들 가운데 가장 궁금한 건 스물한 살에 만난 아내 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작가는 쉽사리 그녀의 부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공들여 아주 천천히 들려주기로 작정한 것 같다.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일찍 시계점에 일을 한 사정과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이 아닌 시계점으로 돌아온 사연. 놀랍게도 감옥에 찾아온 종잉과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까지 상세하게 전하지만 쑤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그 편지를 통해 차별받은 어머니와 누나에 대한 애틋함과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끄러움을 전한다. 그가 살아온 시대, 아니 그 가까이의 그녀들의 삶은 억눌림이 있었다. 가족과 사회는 그녀들을 억압했다. 아내 쑤도 그랬다. 아버지와 오빠들의 폭언과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했다. 종잉도 다르지 않았다. 학생운동을 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헌신했고 결혼했지만 결국 이혼했다. 그녀들의 삶은 없었다.


어쩌면 쑤는 돈과 권력을 쥐고 흔드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마음으로 량허우와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쑤가 사랑한 사람은 브라질로 이민을 간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량허우는 달랐다. 쑤를 사랑했고 그녀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 그 방식을 몰랐다. 쑤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간극이 컸던 것일까. 그것은 아들 ‘뤠이슈’로 이어졌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가족으로 살아온 시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경험한 바에 의하면 돈을 지불하고 시계를 산다고 해서 시간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시계를 착용하지 않아도 모두와 똑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시계를 착용함으로써 갖게 되는 일종의 완전성에 있다. 그건 마치 부드러운 미소가 얼굴에 광채를 더해주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런 게 아니어도 시간은 살 수 없다. (202쪽)


소설에서 시계점과 시계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량허우에게 삶의 공간은 집보다는 시계점이었고 그곳에서 아내 쑤를 만났기 때문이다. 쑤가 아버지에게 가출 후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다는 의미로 선택한 롤렉스 시계와 스위스 장인의 마지막 작품으로 량허우가 아내에게 선물한 스위스 시계는 특별하다. 아내는 떠났지만 그 시계를 통해 그녀와의 시간을 간직할 수 있기에.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런 이유로 시계를 선물하는 게 아닐까.


엉킨 실타래 같은 삶을 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엉킨 부분을 싹둑 잘라내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엉킨 부분을 푸는 동안 실로 무엇을 짤까 계획할 수도 있다. 잘라냈으면 존재 불가능한 계획. 량허우가 종잉에게 편지를 씀 자신의 삶을 돌아본 시간이 그렇다. 아들에게 변명이나 변호를 하지 않았던 것도 아들이 엉킨 부분을 찾아 풀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닐까.


상대로 인해 고통을 느낀 적이 없다면 그건 진정으로 사랑이 없었다는 의미다. 아는 것도 없지만, 또 무엇이든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251쪽)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쑤의 삶이 곧 나의 삶이기에 죽음 역시 나의 죽음이라는 것. (281쪽)


량허우의 삶과 사랑처럼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소설이다. 쑤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은 끝까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잘 짜인 소설이다. 쑤를 향한 량허우의 사랑은 애절하고 애처롭다. 사랑의 소리와 몸짓을 조금만 키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량허우가 되어 가까이에 있는 그녀들과 마주한다. 가만히 그녀들을 생각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삶을 선택하고 살아온 그들이다. 도움을 받을 이가 없어 안타까운 시절을 살아낸 그녀에게 가만히 손을 내밀어 본다. 입을 가린 꽃을 치우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량허우가 사랑한 쑤의 목소리, 지금 곁에 있는 종잉의 목소리를 상상해 본다. 종잉과 량허우가 사랑을 말할 때 세상은 고요하고 은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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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팝니다, T마켓 - 5분의 자유를 단돈 $1.99에!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앵글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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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소설을 만났다. 그런데 정말 재밌다고 할 수 있을까? 재밌게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씁쓸한 기운이 몰려오는 건 왜일까? 길고 복잡한 이름의 저자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의 『시간을 팝니다, T마켓』 은 그런 소설이다. 시간을 파는 마켓이라고, 정말 가능한 일일까.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오는 제목이다. 때마침 시간을 견딜수록 엄청난 상금을 받는다는 설정의 드라마를 보고 난 후였다. 놀라운 건 이 소설이 11개국에서 출간되어 20년 가까이 베스트셀러란다.


서두가 길다. 소설로 들어가 보자. 소설은 아주 평범한 보통 남자(TC)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세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주변의 샐러리맨으로 보면 되겠다. 그의 꿈은 곤충의 몸과 영혼을 연구하는 과학자였지만 현실은 그냥 회사원이다.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고 아들 둘이 있다. 그리고 매달 갚아야 하는 주택 융자 상환금이 있다. 뭔가 기시감이 오는가? 어쩌면 당신과 똑같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며 사는 삶. 어느 날 라디오에서 말기 암 환자 전문의가 하는 말을 듣게 된다. 모든 이들은 생의 마지막에 인생을 결산해 본다고. 우리의 주인공 TC도 자신의 빚을 떠올렸고 그 빚을 갚으려면 3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월급쟁이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회사를 관두고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시간을 파는 것이다. 물론 아내는 남편이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어떤가, 어디서 들어 본 스토리 같지 않은가.


이제 TC가 팔려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자. 바로 시간이다. 병원에서 소변 검사를 할 때나 사용할 법한 플라스크 용기에 시간을 담아 팔겠다는 것이다. 엉뚱한 의뢰에 귀찮은 공무원들은 TC가 필요한 것들을 다 통과시켰다. 설마 진짜 그런 물건을 팔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TC는 굴하지 않았고 직진했다. 차마 이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은 못하는 대신 친구의 가게에 물건을 진열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단돈 1.99$에 살 5분의 T(시간)를 살 수 있다. 사실, 빈 용기에 불과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비밀이다.


“이 상품을 어떻게 쓰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설명을 드리지요. 이 한 통을 제 가게에서 삽니다. 용기를 열면 5분의 T를 갖게 되는 겁니다. 물론 원하실 때 5분을 소비하실 수 있지요. 이 5분은 바로 구매자의 것이며 다른 누군의 T도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T는 원래 구매자에게 없던 시간이지만, 이 제품을 사시면 그 5분은 다시 구매자에게 귀속되는 셈이죠. 어디에 있든, 뭘 하고 있었든지 상관없이 말입니다.” (86쪽)


중요한 건 구매자에게 5분은 귀속되며 어디에 있든, 뭘 하든 상관없다는 것. 그러니까 5분의 구매자는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거나 눈을 감거나, 화장실에 갈 수 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5분의 시간. 그 5분이 얼마나 간절한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5분의 단잠, 5분의 여유, 업무를 미룰 수 있는 5분. 그렇다. 이제 TC는 5분의 용기가 아닌 더 큰 용량의 용기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시간을 점차 늘어난다.


5분의 여유와 휴식은 점점 커지고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당장 업무를 봐야 하는데 담당자가 자신의 시간을 구매했으니 일을 할 수 없다고, 뒤로 미루겠다고 하는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된 시간 구매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사회적 문제였다. 급기야 구매한 T를 소비해야 할 소비 기간까지 정해졌다. 물론 전 세계적인 열풍으로 이어졌고 35년짜리 시간도 판매가 되었다. 너도나도 35년짜리 T를 사기에 급급했다. 나만 유행에 뒤처질 수 없다는 일종의 동조심리가 같은 거라고 할까.


어떤 나라에서 T가 든 컨테이너는 며칠 안에 사회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대안 가치가 되었다. 다른 모든 것은 가치가 없었고 원하는 이도 없었다. 부동산이 곧 가치가 급락할 자산이 되리라는 점을 직감하기란 쉬웠고, 사람들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처분하고 싶어 했다. (144쪽)


T를 사기 위해 아파트는 담보가 되었다.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인가? 마냥 웃기고 재미난 웹툰과 소설이 될 수 없다는 걸 직감했을 것이다. 보통 남자((TC)가 사는 사회를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 그렇다. 이 소설은 경제 소설이다. 소설 속 ‘대차대조표’나 ‘자유 주식회사’, 주식, 광고는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경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의 주인은 누구인지 묻는다. 현재 누릴 수 있는 기쁨, 여유가 아닌 미래에 저당잡힌 삶을 위해 살 거냐고 말이다. 진정한 삶의 가치를 위해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현 체제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이 있지만 때로 우리를 과도하게 노예화하며 체제를 지탱하고자 노력하는 개인에게 고통을 야기한다. 부富를 기준으로 한 국가 간 순위는 우울증을 겪는 국가들의 순위이기도 하다. 현대를 살고 있는 세계 시민들은 우리가 자신에게 씌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절실한 필요를 느끼고 있다. (177쪽, 저자의 말 중에서)


오직 나만이 계획하고 쓸 수 있는 시간과 현재를 사는 삶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한 적이 언제였던가. 남들과 비교하며 떠밀리듯 살아온 삶이 도착할 미래는 행복할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은 자신의 몫이니 시간의 노예가 아닌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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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
시메노 나기 지음, 박정임 옮김 / 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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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다. 일본 소설 『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는 고양이 때문에 궁금했다. 뭔가 따뜻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았다. ‘마음 배달 고양이’라니. 마음을 어떻게 배달한다는 것일까. 당연 소설의 화자는 고양이다. 인상적인 건 19년의 묘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난 고양이 ‘후타’는 저승의 삶에 적응 중이다. 저승의 삶이 나쁜 건 아니지만 생활비와 간식비가 필요하다. 장난감이나 간식은 스스로 벌어서 사야 한다는 말이다. 후타는 임무를 완수하면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는 공고에 보고 카페 ‘퐁’을 찾아간다.


주인 ‘니지코’는 카페의 우편함을 만들고 손님들의 사연을 받는다. 손님들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그 일은 모두 후타의 몫이다. 니지코와 후타는 이승을 초록 세계로, 저승을 파란 세계로 부르기로 한다. 후타는 의뢰한 사람이 만나고 싶은 인물을 찾아가 그들의 마음 중 일부를 전한다. 중요한 건 만나고 싶은 상대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 상대의 특별한 말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임을 의뢰인 스스로가 눈치채야 한다. 간절하게 그리워하고 원한다면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카페를 찾은 손님들의 사연은 저마다 간절하다. 돌아가신 아빠에게 첫 개인전을 보여 드리고 싶다는 딸, 태어나지 못한 딸을 해마다 그리워하는 부부, 사랑이 아닌 현실적인 미래를 선택했지만 옛 연인과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여자, 과거 상처를 준 선생님께 보란 듯이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청년,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소식을 끊었지만 엄마를 만나고 싶은 중년의 딸.


후타는 우선 의뢰인이 찾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그들의 말이나 마음을 꼬리 끝에 슬쩍 묻혀 온 후 의뢰인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니.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지하철도 타고 택시도 타고 의뢰인의 일상도 관찰하고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살핀다. 그러면서 고양이가 아닌 인간의 삶과 관계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게 된다. 각각의 에피소드 모두 흥미롭지만 태어나지 못한 딸을 그리워하는 부부 사연과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지만 이혼으로 이어져 엄마와 연락을 하지 못하고 곁에서 지켜보는 딸의 사연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이지만, 어느 순간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마음과 다르게 나가는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고 괜한 자존심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니까. 그런가 하면 태어나지 못한 딸의 사연은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승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딸은 저승에서 잘 지내고 있고 내년이면 학교에도 들어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전한다. 그 마음을 전해 들은 부부가 나누는 대화 “추억도 소중하게 키우면 성장하는 걸까.” (124쪽)를 마음에 새기고 간직하고 싶다.


삶이란 계획대로 흐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내 맘과 다르게 어긋난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이라는 걸 잊고 산다. 고양이 후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의 모습을 통해 각자의 상처와 과거, 그리운 이를 떠올린다. 한순간 소원해진 관계, 연락이 끊긴 친구, 용서를 구하지 못한 사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이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반대로 내가 그런 사람일 수 있으니 나도 잘 살아야 한다는 어떤 다짐으로 이어진다.


좌절이 없었던 인간과 실패나 후회를 경험하고 기억하는 인간. 티끌 없는 하나 없는 아름다움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하지만, 상처를 극복한 인간에게는 그 이상의 강인함이 있다. (192쪽)


소설처럼 세상을 떠난 사람을 만나는 일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카페 퐁에 방문해서 우편함에 사연을 쓰고 싶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리워하면 그리워하는 대로, 기억하면 기억하는 대로 잊히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삶을 이승과 저승으로 나누는 일은 의미가 없다. 현명한 후타의 말처럼 말이다. 내가 기억하고 그리워한다면 영원히 내 안에 있을 테니까.


이쪽에 와서 알 된 사실은, 현세니 사후세계니 하면서 마치 초록 세계가 중심인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사실 이쪽에서 저쪽을 보면 초록 세계야말로 이곳에 오기까지의 여정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말이다. (80쪽)


고양이와 말을 할 수 있는 니지코, 무지개다리를 떠올리는 카페 퐁,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고양이, 꼬리 끝에 닿는 순간 혼이 옮겨간다는 판타지 요소는 소설 적 재미를 풍부하게 만든다. 드라마도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어쩌면 곧 드라마로 만날 수 있을지도. 그나저나 나도 고양이 꼬리를 슬쩍 만져볼까. 어떤 고양이가 후타 같은 고양이인지 알 수 없으니 모든 고양이를 만져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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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욕망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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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랑을 아프게 하고 영원한 고통을 주고 죽음으로 돌려주고 싶었다는 게 맞겠다. 물론 나는 죽지 않았다.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내 사랑이 보잘것없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다. 죽음에 골몰했던 순간이 지나니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스워졌다. 사랑은 그런 것일까. 잘 모르겠다. 알고 싶지 않다. 사랑은 알려고 할수록 단단하게 벽을 쌓는다. 소중하고 온전했다고 믿었던 사랑은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영혼까지 잠식했던 사랑은 아주 먼 옛날 흩어진 기억의 조각으로 남는다. 나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이게 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마지막 욕망』 때문이다.


늪처럼 빠져드는 보뱅의 문장, 읽고 있지만 나갈 수 없고 헤매게 만드는 문장, 그러나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문장.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죽음. 아니 욕망이라고 해야 맞을까. 그러니 그냥 쓴다. 잘 몰라서 여전히 보뱅의 문장에 갇혀서. 선명한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을 뭐라 말해야 적당할까. 사랑에 대한 갈구, 욕망.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 죽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간절함. 절절한 사랑일까. 천천히 죽음이 움직이는 이런 문장에 나는 반하고 만다. 그렇다고 죽음을 찬양하는 건 아니다.


블랙베리나 라즈베리의 거품처럼 솟았다가 솜털처럼 미지근하게 흘러내리는 피가 생생히 느껴졌다. 마치 첫 태양에 살짝 베인 꽃이 벌어지듯이. (10쪽)


마치 피가 땅에서 흘러나오고 그 땅이 사라져 가듯이. 몸이 가벼워지고 조금씩 비워진다. 기이하고 완전한 부드러움. 흡사하다. 당신이 나를 끌어당겨 꽉 안았을 때, 나를 숨 멎게 하고 풀어주었던 그 부드러움과 참으로 흡사하다. (11쪽)


소설 속 ‘나’는 ‘당신’이 선물해 준 철필로 나를 죽음을 실행한다. 그토록 사랑한 당신을 남겨두고 나는 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일까. 이제 둘 사이의 사랑을 만나볼 차례다. 나와 당신은 연인이다. 은밀하고 은밀한 연인, 불륜이다. 나에게는 남편이 있고 딸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죽음과 하나가 된 내가 들려주는 당신에 대한 이야기, 당신과 나눈 사랑 이야기. 당신은 호텔에 머물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당신과 호흡하고 당신과 마주한 풍경들, 함께 느꼈던 모든 감정들, 그 떨리는 숨결, 그 비밀스러운 기억을 섬세한 감각으로 펼쳐놓는다.






은밀한 사랑은 둘만의 공간을 채우고 세계를 확장하지만 그 세계의 밖은 대로 고통으로 채워진다.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은 보낼 수 없는 편지가 되고 나는 그 편지처럼 접혀진다. 사랑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삶을 흔드는 것일까. 누군가 나와 당신의 사랑이 공개할 수 없는 지지 받을 수 없는 사랑이라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정녕 그런 것일까. 아닐 것이다. 설령 비난과 책망이 난무해도 사랑 안에 거한 이들은 그 사랑 안에서 저마다 특별하다.


기다림. 기다리기. 올 수 없는 것,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나요? 사랑이 저주임을 알고 있나요? 당신에게서 삶을 송두리째 뽑아버리고서는 살아 있게 남겨두고, 일상을 벼락에 맞아 불타버린 황폐한 곳으로 만든다는 것을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차라리 나을 정도입니다. (59쪽)


나는 다정함과 잔인함이 욕망의 이면에 서로 달라붙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존재는 부재로 인해 성장했기에 부재를 피할 수는 없었다. 탄생은 죽음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때로는 나가는 일이 포기나 멀어짐보다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74쪽)


당신에겐 나 아닌 사랑이 있었다. 당신이 사랑한 그녀. 오렌지 나무로 남은 사랑을 당신이 잊지 못하는 걸 안다. 그러니 당신이 떠날 때에도 당신을 이해한다. 이제 조금 선명해진다. 당신은 떠났다. 내가 선택한 죽음의 이유는 명확해졌다. 아름다운 은율로 흐르던 둘의 시간, 기다렸던 계절과 꽃. 당신이 없는 삶은 당신을 또렷하게 불러온다. 여기 없어서 당신은 존재한다. 여기 없어서 당신이 더 생생하다. 당신이 없어서 견딜 수 없는 삶.


사랑이 시작되는 이유도 별로 없지만, 사랑이 끝날 때는 더더구나 아무런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129쪽)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어떤 것일까. 상대를 향한 사랑이 깊을수록 나는 희미해지는 것일까. 그 사랑이 짙어갈수록 나의 형체는 사라지는 것일까. 어떤 말로도 정의내릴 수 없는 사랑. ‘나’는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일까. 당신이 아닌 나만이 사랑의 끝을 정할 수 있었다. 아니, 사랑의 완성을 위한 선택이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온몸에 새겨진 사랑을 간직한 채 당신에게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말이다. 우리가 될 수 있고 우리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마지막 욕망이었던 것이다. 어떤 주저함과 두려움 없이 죽음을 통해 당신에게 향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게 아니다.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나’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 정성을 다한 곡진한 사랑이다.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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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05-30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을때는 이해를 잘 못했는데 자목련님 리뷰를 보고 아하! 이랬습니다. 너무 어두운 보뱅에 적응을 못했는데 다시 읽어봐야 할거 같아요~!!

자목련 2024-05-31 12:01   좋아요 1 | URL
보뱅의 책 가운데 제일 읽기 어려운(?) 소설이었다고 할까요. 아름답지만 무겁고, 흐터진 상징과 언어를 줍느라 힘든. 그러나 탄성을 자아내는 보맹의 문장이란!

서니데이 2024-06-0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편안한 주말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부터 6월 시작입니다.
좋은 일들 가득한 한 달 되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좋은 주말 되세요.^^

자목련 2024-06-03 13:00   좋아요 1 | URL
조금씩 더위를 실감하는 날들이에요.
서니데이 님, 즐겁고 활기찬 날들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