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높이는 2,744m
한라산 높이는 1,950m다.
어렸을 때 한 번 듣고 당장 외워져버린 기이한 행동을 가지고 있다.
적어 놓고서도 믿음이 가지 않아 한 번 검색을 해보니
백두산 높이는 2,744m가 맞긴 하지만 남한에서 주장하는 높이이고, 북한에서 주장하는 높이는 2,750m라고 나무위키가 전해준다. 음..그렇군! 그래도 틀리지 않은 숫자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쓰담쓰담!
그에 반해 한라산의 높이는 좀 다르다.
1947.269m라고 지식백과에서 말한다.
엥? 2~3m가 더 작아졌구나?
그래도 얼추 비슷하니까...이것도 어디야!
등산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난데없는 산 높이 타령을 왜 하냐면 어제 평산 책방을 다녀오면서 어릴 때부터 보아온 영축산을 올려다 보며 잠깐 고독에 잠겼기 때문이었다.
계속 영축산 높이가 조금 가물거렸다.
1,150m?..1,159m?
뭐였지?
백두산은 2744, 한라산은 1950, 영축산은 115????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영축산 높이는 1,081m고, 그 곁의 신불산이 1,159m라고 한다.
어린 시절 잠깐 교회에 다닌 적 있었는데 그때 전도사 님이 성경시간에 우리나라 절의 높이가 얼마나 되는 줄 아느냐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응당 백두산, 한라산 두 개의 산 높이를 알아야 할 것이라며 열변을 토하셨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 있는 산 높이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며 저 숫자의 높이를 몇 번씩 주입식으로 따라부르게 하시어 외우게 하셨다.
살면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백두산, 한라산 높이의 숫자는 때론 나도 모르게 ˝백두산의 높이는 2,744m이고 한라산의 높이는 1,950m다.˝라고 중얼거리면 주변 사람들이 눈이 똥그래져가지곤 어떻게 그걸 아느냐며 너 혹시 천재니? 하는 듯한 눈빛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뭘 이정도 가지고..겸손한 척하며, 어깨에 승모근 생긴 것처럼 봉긋 힘이 들어가곤 했던, 나에겐 더없이 재밌던 시절이기도 했었다.
(그시절 얼마나 자랑할 게 없었으면ㅜ
지금은 뭐 입만 열면 자랑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암튼....백두산, 한라산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고,
영축산 이야기를 쓴다는 게 또 서론의 몇 문단이나 잡아 먹었다.ㅜ
암튼....
영축산은 양산 통도사 절의 뒷편에 우뚝 서서 울산의 삼남면 일대까지 마을을 감싸안은 폭 감싸안은 듯, 또는 은은하게 내려다보는 듯 그런 표정을 담은 채, 고장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지켜주는 산이다.
어린시절부터 줄곧 천미터가 넘는 높은 산을 바라보며 자랐었기에 볼 때마다 내 눈엔 그리 보였었다.
마을을 온화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친근한 느낌이 들었었다.
바라보기는 대학 다니기 전까지 친정에 살고 있었던 시간만큼은 수도 없이 바라보았지만 정작 저 산을 올라가 본 것은 두 번이 다였다.
중학교 때 교회에서 전도사 님 지도하에 오이 하나씩 들고 줄을 서서 교회 언니, 오빠 뒤를 따라 울면서 올라갔었고, 또 한 번은 이십 대 초반 회사에서 직장 동료들과 또 어쩔 수 없이 산을 올랐었는데 그땐 근처 신불산으로 해서 올라 영축산으로 하산해서 내려온 듯했다. 그때도 울 뻔했으나 마침 비가 조금 부슬부슬 내려 빗물이 얼굴에 흘러 눈물인지, 빗물인지...
말을 말자! 저질 체력이라고 계속 인증하는 기분이니...
암튼 그래서 영축산은 엄청 높고 준엄하단 것이다.
어릴 때 저 산의 명칭은 영취산이었다. 간혹 영축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어(학교 선생님이셨던가?) 한 번씩 헷갈렸던 적 있었는데 성인이 되고 보니 영축산이라고 명칭이 바뀌어 있었다.
학창시절 교가 첫구절이 ˝영취산의 정기 받아...˝ 로 시작했었는데 그럼 지금은 노래 가사가 바뀌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산을 바라보면 산봉우리가 예사스럽지 않은 느낌이 드는데 영축산이란 이름은 신령스러운 독수리가 살고 있는 산이란 뜻이다.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법화경을 설파했던 곳이 ‘영축산‘이라고 한다. 자장율사가 통도사 절을 창건할 때 이 이름을 본따 통도사 뒷산을 영축산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영축산이 중간에 왜 영취산이라고 표기가 바뀌었냐면 신령스런 독수리를 표기하는 한자가 불교에서는 독수리 ‘축‘으로 읽히지만, 일반 옥편에선 독수리 ‘취(鷲) ‘로 읽히다 보니 영축산을 한동안 영취산으로 표기했다고 한다.(어렴풋이 한문선생님과 국어선생님께 들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지금은 통도사의 불교 용어가 맞을 것이라고 인정하였던지 지금은 ‘영축산‘이라고 불린다.
통일을 하니 군더더기는 없긴 하다만, 아직도 입엔 영취산이라고 불렀던 오랜 습관이 남아 있어서인지 때때론 산을 가리키며 아이들에게 저 영취산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엔 영축산이 엄청나게 높은 산으로 느껴져 ‘알프스 소녀 하이디‘ 만화 영화를 보면서 영축산의 정경과 오버랩되어 내겐 늘 영축산이 하이디가 뛰노는 알프스 산이라고 상상하곤 했었는데 어른이 되었을 때, 영축산을 중심으로 곁의 신불산, 간월산, 재약산, 가지산, 운문산등 다들 해발 천미터가 넘는 준봉들이 많아 겨울이면 이 고봉들이 알프스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하여 영남 알프스라고 불리게 된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을이면 억새 명산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여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등산객들이 몰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작년 가을무렵 바람돌이 님도 이 중 억새가 피는 장소의 산을 오르신 페이퍼를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예전에 1박 2일에서 김승우 배우가 메인 MC가 되었을 때, 억새 장관일 때 찾아가 촬영을 하던 장면을 본 기억도 떠오른다. 그때 석양이 질 무렵이었던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다녀본 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고 중얼거리던 모습에서 아, 내가 어린시절 살았던 곳이 그렇게나 아름다운 곳이었다니? 뭉클하였다.
나중에 1박 2일에서 김주혁 배우가 메인 MC가 되었을 때, 또 촬영을 왔었는데 아예 그 높은 산에서 텐트에서 잠을 자는 무모한 벌칙을 수행하는 장면은 좀 걱정스럽긴 하더라. 입이 돌아가지는 않았으려나? 걱정되더라는...그래도 양산 원동마을이었던가? 어느 마을에 내려가 돼지 갈비를 먹고 김주혁 배우는 너무 맛있게 먹던 장면이 인상적였었는데 훗날 동료 배우들이 그의 장례식장에 그 돼지 갈비를 공수해가 상에 올려줬는데 프로그램으로 봤었는지? 기사로 읽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인상적였었다. 아마도 우리동네 이야기니다 보니 내겐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였었고, 오랫동안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다보니 본론도 못 꺼내고 서론만 나열하고 끝을 맺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엥? 아직도 서론이라고?)
이제부터 본론을 시작하겠다.
실은 어제 저 영축산자락 아래 터를 잡으시고, 지난달 중순에 책방까지 여셨다고 하신 소문이 자자하여 언제 한 번 가봐야지! 생각만 하다 바로 어제 엉겁결에 남편과 함께 그 곳에 다녀왔다는 자랑질이 주요 골자인 것이다.
평산마을 바로 그 동네에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친구가 살았어서 마냥 마실 다녔던 그 동네에 높으신 어르신이 노후에 사실 집을 지었다는 뉴스는 믿어지지 않았다.
부산 바다만 바라보고 살던 남편은 내가 살던 동네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사귀면서 우리 친정동네에 인사하러 오면서 준엄한 영축산의 매력에 사로잡힌 듯 하였다.
영축산자락 아래서 자란 아가씨와 결혼하여 사위가 된 남편은 한 번씩 통도사 절 뒤에 있는 마을을 왔다 갔다 하더니 동네가 조용하고 아담하니 괜찮아 보인다며 우리 노후에 이곳에 집을 짓고 살자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꺼냈었다. 나는 단칼에 싫다고 대답했었다. 내가 살던 고향같은 마을에 다시 들어와 살며 뼈를 묻는다는 건 왠지 갑갑하게 느껴졌었다. 마을을 돌면서 여기 저기 아는 사람들 틈 속에서 행동 반경이 자유롭지 못한 삶이 싫었다. 시골에 들어가 사는 것을 바라고는 있으나, 내가 살던 동네는 아니란 거다. 하지만 남편의 촉이 정확했다.
문 전 대통령 님이 선택한 동네라니?????
며칠동안 아...땅값만 안 올랐어도 미리 터를 잡아둘 걸 그랬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기뻤다.
얼마나 좋은 동네란 느낌이 들었으면 선택을 하신 것일까?
이것 또한 큰 자랑거리라 남편에게 나한테 잘 하라고! 큰 소리를 뻥뻥 쳤었다. 대통령 님이 선택하신 동네에서 자라고 배웠던 사람을 아내로 맞이한 건 당신이 큰 복을 타고 난 것이라고!
으이구... 복 많은 남자같으니라구!!!
그래서 남편과 둘이서 아이가 학원을 간 세 시간의 자유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궁리하다, 갑자기 ‘평산책방‘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고, 우린 세 시간 안에 다녀와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 보니 냅다 달렸다.
동네 안은 분명히 복잡할터이니 통도 환타지아 놀이공원 입구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썬크림도 안발랐고, 양산도 없었지만 둘이서 완전 빠른 걸음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다.
책방 입구쯤 태극기 부대 노인들이 확성기로 떠들어 대는 마의 구간을 건넜다. 건너는 중 남편이 성질 난다고 그쪽에다 대고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젊은 경찰들 보기 부끄러워 팔뚝을 쿡쿡 찌르며 억지로 끌고 올라갔다. 책방 앞에서도 줄이 길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책방은 단층으로 자그마했다.
책방은 작은데 찾아오시는 관광객들이 많으니 이거 제 시간에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늘에 서서 땀을 식히며 줄을 서 있는데 저 너머 마을회관 입구인가?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 혹시 저기 저 곳에 문 전 대통령 님 나타나신 것 같은데? 고개를 빼고 쳐다보니 남편은 내가 달려갈까 의심스러웠는지 아니라고 했다. 한 오분쯤 지나니까 사람들이 마을 윗쪽으로 우르르 줄을 서서 올라가는 것이다. 그 피리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그림 장면 같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분위기 심상치 않아 보였지만, 일단 책방에 들어갈 순서가 되어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붐벼 책 구경이나 하겠나? 싶었지만 요리 조리 쏙쏙 빠졌다 나왔다 하면서 책구경을 요령껏 했다.
이건 아마도 다년간의 오프라인 서점과 도서관을 둘러 본 경력이 붙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남편은 복잡하니 망연자실 한 곳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손에 책이 다섯 권이나 들고 있었다.
알라딘에서도 이 달에 책을 두 번이나 주문했는데....
특히나 <갈대 속의 영원>은 여기서 사면 ㅈ님께 땡투도 못하잖아? 마음 속의 땡투냐, 클릭의 땡투냐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일단 내려 놓고 여러 사람이라 땡투하기 곤란한 <젠더 트러블>을 챙겼고, <오늘부터의 세계>는 남편이 사달래서 다음 주 생일이니까 생일 선물로 사주겠노라 큰 소리치며 챙겼다.
그리고 평산책방이 아니면 다른 곳에선 구입하기 불가능한 약간 평산책방 굿즈같은 느낌의 <책 읽는 사람 - 문재인의 독서 노트>도 챙겼다. 대통령 님이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읽으신 책 제목과 밑줄 긋기한 것 같은 인용문을 옮겨 놓은 페이지가 간간히 소개되어 있으며 노트 주인이 직접 독서록을 작성할 수 있는 독서노트 형식의 책인데 책표지가 감격스럽게도 어린 시절부터 바라보며 감수성을 키워 왔던 바로 그 영축산이 수채화로 그려져 있다. 안 살 수가 없지! 당장 사야지!!!!!!
그렇게 책 세 권을 사 들고, 옆의 테이크 아웃 커피 매장에서 아이스 커피 두 잔을 주문을 해서 쪽쪽 빨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세 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서 또 아이들에게 엄마 평산책방을 다녀왔다고 또 자랑질을!!!!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 님을 직접 뵈었다면 이건 뭐 대대손손 자랑을 할 각이었는데....
아까 내가 바라 본 그 풍경 속에 대통령 님이 계셨던 것이다.
걸어나올 때 앞에 가시던 중년 부부께서 대통령 님 아까 얼굴을 직접 보고 사진도 찍었다고 자랑을 하셨다.
아.....그것 보라고!! 남편의 똥촉이 아쉬워 팔뚝을 꼬집었더니 오늘만 날이냐고, 나중에 또 오면 되지! 라고 말한다.
오.....그 방법이 있었네?
그땐 대통령 님 언제 출동하시는지 시간 미리 체크해서 아침 일찍부터 가 있자고 남편이 얘기했다.
오....좋다.좋아!
그땐 애들 셋 다 데리고 가자!!!!
그래..좋다. 좋아!!!
대통령 되시기 전 그러니까 한 7,8년 전 동네 엄마들이랑 무상급식 운영해달라고 경남도청 앞을 찾아가 시위를 한 적 있었다. 그때 비도 부슬부슬 오기 시작하여 우비를 껴입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엄마가 저기 문재인 의원님이시다!! 소리를 질러 그때 우리도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아이들처럼 일제히 우르르 몰려가 차에서 내리시는 문 전 대통령 님을 먼 발치에서 본 적 있었다. 비 오는데 고생 많다고 덕담을 해주셨는데 그때 대통령 님 머리 주위로 동그랗게 하얀 아우라가 쫙 펼쳐지는데 혼자서 와!!!!! 감탄. 대감탄.
다시 재회를 한다면 지금도 아우라를 뿜어내실지 궁금하다.
다음 번에 방문할 때는 꼭 만나뵙길!!
사진인증도 꼭 해야지!
그래서 책 두 권 샀다고 자랑한다.
평산책방에서 산 페미니즘 책과 인문학 책
그리고 굿즈 독서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