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남원을 언제 가보았나
전주는 작년에 가보았지
전주 향교 은행나무를 보지 않았겠나
대성전과 명륜당 앞 은행나무
은행나무 황금 물결을
그 물결의 끝물을 보지 않았겠나
전주 지나며 생각하니
그게 가을이고 늦가을이지 않았겠나
그런데 남원은
남원 광한루는 어찌 되었나
이제 남원은 바래봉 눈꽃축제도 열린다는데
언제적 남원을 보고
이제껏 못본 체한단 말인가
언젠가 고창 선운사 가는 길에
잠시 들른 광한루
하지만 춘향사당도 둘러보지 않고서
남원에 가보았다니
인연이란 그런 게 아니지
강의 때마다 춘향이 흉을 보고서도
그렇게 입을 닦는 건 아니잖은가
그건 동백꽂도 보지 못하고
선운사에 가보았다 하는 것이지
가도 가보지 못한 것이지
인연도 인연이 아닌 것이지
전주 남원을 언제 가보았나
전주에서 수제비 먹은 적 있다고
입을 닦는 건 아니란 말이지
남원을 가본 체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
남원이 어디에 있는가
오며가며 남보듯 지나갈 일이 아니지
어서 남원에 가야지
남원은 추어탕 아니겠나
상계동의 남원추어탕으로 될 말인가
어서 남원에 가봄세
이 봄에 가봄세
이건 언약이라네
춘향과의 언약이라네
남원으로 오게나
하는 틈에 공주 지난다
전주에서 공주까지
남원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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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백색을 메고 나선 길
지하철을 타고 용산으로 간다
이렇게 적으면 시도 아니라고
배변활동이 불규칙적이신 분
아랫배에 가스가 차는 분
옆에서 참견하는 광고판
아랫배에 가스가 찬 건가 생각하기 전에
이것도 각운이지 싶다
기름진 음식을 자주 드시는 분
장이 예민하여 화장실 출입이 잦으신 분
이건 나열법에 해당하지
백석 시가 그렇고 김수영 시가 그래
기본이라서 그래
화장실 출입이 잦은 건가
운동 부족으로 배변 기능이 약해지신 분
인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시작활동이 불규칙적이신 분
쓰려고 하면 머리에 안개가 끼는 분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메마른 시만 쓰는 분
장이 예민하여 시만 생각하면 화장실 출입하는 분
이 모든 게 운동 부족이라는 말이지
시운동이 부족한 거야
아침마다 3음보, 4음보씩 걷고
끼니 때마다 직유와 은유를 챙겼어야 해
아이러니와 역설을 연마하고
주말이면 시어를 채집하러 다녔어야지
제주 성산포에 가지 못한다면
광명 동굴에라도 내려가보든가
이제는 용산역에서 다시 기차로
무진기행에 나선다 여기까지
써도 시가 될 기미가 없으니
이 모두가 운동 부족이란 말이지
기차는 광명역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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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 2019-01-1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근대 프랑스문학 강의 정말 재밌었습니다! 점점 문학의 바다에 빠져듭니다.나눠주신 프린트물 내용 역시 읽기 쉽고 유익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붙들고 있었습니다^^푹쉬시고 낼 뵙겠습니다. 먼 길 발걸음 감사합니다^^

로쟈 2019-01-20 11:34   좋아요 0 | URL
네 오후에 뵐게요.~

PATAGON 2019-01-2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 너무 좋은데요.
리드미컬하면서도 위트있고,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모든 게 운동부족때문일 줄은..ㅎㅎ

로쟈 2019-01-21 23:56   좋아요 0 | URL
재밌다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여름 인상을 겨울에 적는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렇게 적었지
여름 영화를 겨울에 보았다
도스토옙스키의 페테르부르크가
레닌그라드로 불리던 시절
여름은 그래도 여름이었고
발가벗은 젊음은 불길도 삼켜버릴 것 같았지
빅토르 최의 여름이 그와 같았지
알루미늄 오이도 먹어치우던 시절
무엇이 이념이고 무엇이 사회주의던가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노래던가
너희들은 모두 쓰레기였지
게으름뱅이가 노래한다네
여름이 왔고 나는 걷는다
우리는 끌려가고 싶지 않다네
세상이 변해가고 있었고
우리는 총알받이가 되고 싶지 않았어
아스팔트도 빗길에 흐느끼던 날
너는 눈물을 훔치고 나는 걷는다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네
우리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네
그렇게 여름이 오고 있었지
우리는 맨몸으로도 여름이었지
여름이 오고 나는 걷는다
빅토르 최는 여름을 노래했지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었고
세상은 겨울에도 열기를 뿜는 듯했어
우리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여름이 끝났다
여름이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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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1-17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샘께 시심을 일으켰군요^^ 저도 레토보고 좋아서 계속 빅토르음악을 듣고 있어요^^

로쟈 2019-01-19 00:03   좋아요 0 | URL
아하.
 

자몽티를 마시며 무라카미 류를 읽는 건
미안한 일이지 자몽에게
자몽이 인질도 아니잖아
자몽을 엉덩이로 깔고 앉을 게 아니라면
자몽의 얼굴을 내리깔고 앉을 게 아니라면
그것도 보통 엉덩이가 아니지
거대한 엉덩이야 아주 거대한 엉덩이가
얼굴을 내리깔고 누를 때 나는
울지 않을 테야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자몽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
잘못은 무라카미 류에게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여간에 류는
흑인 여자의 거대한 엉덩이에 깔려 헉헉거리지
자몽티를 마시며 무라카미를 읽다니
도대체 자몽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인지
류는 본래가 그런 류야
그렇게 밟혀보는 게 일이지
그에겐 거대한 엉덩이가 거대한 터널이고
아메리카야 발전소고 재판소야
어디로든 빠져나갈 수 없을 때
류는 토악질을 참으며 숨을 고르지
거대한 모든 것은 숨 쉴 틈을 주지
살아간다는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하지만 자몽만은 안 돼
이제 자몽을 집에 보내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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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역 앞 이디야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며
내게 남은 10분을 헤아린다
사형수의 마지막 5분을 생각하면
두 번 죽고도 남을 시간
나는 누군가에게
마지막 10분이었을 시간을 생각한다
나는 그때도 강의자료를 보고 있을까
몰락의 시간에도 밤은 부드러워라
타르코프스키가 말한 병사는
총살되기 직전 젖은 구두를 마른 곳에
얹어두고자 했지
그의 구두가 그의 유언이었지
그의 구두가 오래
그를 기억했는지는
타르코프스키도 말하지 않았다
내게는 3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커피는 아직 식지 않았지만
나는 떠나야 하리
전철역 앞 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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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12-1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분의 달콤한 시간,
때로는 5분, 때로는 3분.
저의 달콤한 시간은
침대에서 뜨거운 커피마시며
멍하게 생각에 잠기기.
식기 전에
얼른 털어넣고
식탁으로 가서 커피잔에
물 붓고 영양제 몇 알 털어넣기.
그리고 아침일과를 시작합니다.

로쟈 2018-12-10 20:46   좋아요 0 | URL
커피 마실 시간이면 10분은 필요하겠는데요.~

로제트50 2018-12-10 21:14   좋아요 0 | URL
급하면 한 모금 마시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