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데버라 캐머런 지음, 강경아 옮김 / 신사책방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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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라 캐머런의 '페미니즘' 이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책이 생각보다 얇고 작아서 큰 기대는 없이 읽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좀 읽은 사람들에게도, 처음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와닿을 책이다. 아는만큼 보이기는 하겠지만. 


페미니즘의 정의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쓸 때


ㅇ 관념으로서의 페미니즘 : 마리 시어가 말했듯, 페미니즘은 "여성도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이다. 

ㅇ 집단적 정치 활동으로서의 페미니즘 : 벨 훅스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ㅇ 지적 체계로서의 페미니즘: 철학자 낸시 하트삭에게 페미니즘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방법이자 (..) 분석 모형"이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교차성을 꺼내지 않더라도, 다양한 계급과 문화를 배경으로 한 인류의 반인 여자와 나머지 반인 남자의 이야기가 한 목소리로 설명되고 논의될 수 있을리 없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슈 파이팅이 이루어진다.


 " 여성은 남성만큼이나 인간이라는 주장을 펼치려면,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토대 위에 하나로 모여야 한다. 여성은 무척 광범하고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집단이기에 이들을 하나로 모으기란 항상 쉽지 않다. 페미니스트는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추상적 관념을 지지하기 위해 연대할 수 있지만, 그러한 관념이 구체적 현실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거의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너 페미야? 라는 (너 빨갱이야? 를 떠올리게 하는) 답정너 yes or no 질문에 할 말, 안 할 말, 못 할 말, 한꺼번에 쏟아놓을 수 없어서 답을 해도 안해도 찜찜한 상황을 맞게 된다. 이 책에서는 그간 내가 해온 답과 그 답을 하며 느끼는 복잡함과 스트레스의 실타래를 좍좍 풀어서 정리해준다. 이 한 권이 만능은 아니겠지만, 아주 좋은 시작과 중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30년대 영국에서 여성과 남성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와 여성만의 차별점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 사이의 분열은 구 페미니스트와 신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두 개의 충돌하는 접근법을 낳았다. 구 페미니스트가 남성과의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 운동했다면 (동일임금, 동등한 고용 기회 등), 신 페미니스트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이처럼 극단을 오가는 진자 운동 속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계속해서 재발명됐다." 


19세기 페미니즘의 극집전 요소를 부각하고자 제2 물결이라고 불렀고, 제3 물결은 90년대 초반 제2 물결의 접근법과 대조를 이루려는 활동가들의 선언이었다. 지난 10년 사이 눈에 띄게 증가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제4 물결'로 불리기도 한다. 


"'물결' 모델은 과거의 유산이 현재에 여전히 남아 있는데도 새로 등장하는 각 물결은 이전의 것을 대체한다고 느끼게 하여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님 페미임? 이라는 질문이 남성들에게서 온다면, 니가 (그러고도 ) 진짜 페미냐? 라는 질문은 여성들에게서 온다. 과거의 유산이 새로운 운동의 방향에 녹여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녹여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테고. 


저자는 이 책에서 페미니즘(들)의 복잡성을 톺아보고 탐구하는 작업을 하고자 하고, 기초하는 두 가지 믿음을 이야기한다. 


1. 현재 여성은 사회에서 예속 상태에 있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을 겪고 체계적 불이익을 받는다. 

2. 여성의 예속은 불가피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는 정치적 행동을 통해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 


"페미니즘의 이야기는 복잡한 것 투성이다. 모든(혹은 대다수) 여성이 '페미니스트'라는 딱지를 적극적으로 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이를 받아들인 여성 간에도 언제나 갈등이 존재해왔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살아남았다. 페미니즘에 사망 선고를 내리는 목소리들은 언제나 과장된 것이었다. 오늘날 페미니즘의 핵심 신념인 "여성도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을 당당하게 반대할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신념을 행하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발생한다. 


이 문제에 관해 페미니스트가 어떻게 답했는지는 앞으로 이 책이 다룰 주제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지배구조, 권리, 노동, 여성성, 성, 문화, 경계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양한 고전과 현대의 레퍼런스와 간결하고 명료한 정리, 작은 책이지만, 현재의 페미니스트들이 고민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눈에 들어오게 잘 정리해서 보여준다. 이 책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데 시작이자 중간일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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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아름다운 사진집을 주말 아침에 펼쳤다가 감동 받는다.
이미 알고 있던 것에 이야기들이 얹어질 때 그것이 얼마나 더 특별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특별해진 것은 더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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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 건강하게 살다 가장 편안하게 죽는 법
우에노 지즈코 지음, 이주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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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지즈코의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을 꾸준히 추천해오고 있었다. 싱글 노년 시리즈 3권을 마무리하고도 죽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는 책을 쓴 우에노 지즈코 선생님.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의 주제가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였고, 내용이 겹치는거 아닌가 싶었으나 아주 유익하게 잘 읽었다. 


저자는 삶으로, 공부로, 글로 혼자 사는 것이 혼자 살다 죽는 것이 왜 좋은지. 왜 괜찮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적, 문화적으로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20년 앞서간다고 하고, 그건 지금까지 꽤 잘 맞았고, 이제는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가 더 앞서가는 것도 있다. 매년 세계 기록을 깨는 최저 출생률 같은 것 말이다. 고령화 사회, 초고령화 사회를 미리 맞이한 일본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미래도 짐작해보게 된다. 초고령화 사회 다음은 뭔지 아는가? 다사 사회다. 사람이 많이 죽는 사회. 대량 죽음의 사회. 우리는 초고령 사회에 이어 다사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나 개인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이기도 하다. 


65세 넘으면 전기 고령자, 75세 넘으면 후기 고령자로 들어간다. 90세를 넘길 확률은 남성은 4명 중 1명 이상, 여성은 2명 중 1명 이상이라고 한다. 100세를 넘긴 장수 노인은 일본에만 약 8만 명에 이른다. 고령자가 되면, 건강했던 사람이라도 '비틀비틀->비실비실->쓰러짐' , 즉 간병의 시기가 온다. 누구에게나 오는 그 시기를 건강할 때 준비해야 한다. 


1인가구와 2인가구, 3인, 4인 가구를 조사해보았을 때 2인 가구의 만족도는 최저라고 한다. 2인 가구는 남녀 양쪽 모두 싱글보다 만족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만족도가 남성보다 더 낮다. 책에 인용된 쓰지가와 씨의 말을 빌리면 '2인 가구는 아내의 단독 패배' 라고 한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이 지적에 대한 부가 설명은 필요 없다. 남녀건 여여건 남남이건 '2인 가구 노후의 이상적인 모습은 혼자 사는 사람 2명을 한 지붕 아래에서 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건 노후가 아니라 어느 연령대의 어느 성별에게라도 적용되는 말이라고 늘 생각했다. 


만족도와 '고민도' 를 함께 조사한 것이 인상깊었다. 1인가구가 만족도도 높지만, 고민도가 현저히 낮다.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도 많아서일 것이다. 하다못해 자녀가 가까이 사느냐 멀리 사느냐에 따라 멀리 살면 고민도가 더 떨어지기도 한다. 눈에 안 보이면 마음도 멀어져서? 


EBS 에서 혼자 사는 5-60대 여자 3명의 한 달살이 다큐를 본 적 있다. '외로움은 대부분 일시적인 감정'으로 '일정 시기가 지나면 익숙해진다.' 따라서 싱글이 된 지 얼마 안 된 초보 싱글은 외로움을 느끼지만 '처음부터 혼자라면 외로워하지 않는다.' 라는 글을 읽으며 남편이 죽고 자식들이 나가고 혼자가 되어 외로워하며 우는 여자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렇게 늘 같이 이다 혼자가 되어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애초에 외동으로 자라서 전혀 외롭지도, 불안하지도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외롭다고 하면 잘 이해가 안 됐어요. 왜 외롭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70대 여성) 


가장 외로운 사람은 마음이 통하지 않는 가족과 함께 사는 고령자라는 말에 공감. 고령자가 아니라도. 책 읽으며 시간을 많이 보내는 나는 함께 하는 사람을 외롭게 할거라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러니, 나는 혼자 책읽으며 살거나 혼자 책 읽는 사람 둘이 살거나여야 하나 생각했다. 


"가족이 많고 몸 상태도 좋아서 외로움과 불안 모두 전혀 없어요. 하지만 만족도는 아무리 높아도 60점 정도예요. 가족과 함께 살면 아무래도 나를 억누르고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하니까요. 당연히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질 수밖에요." (60대 여성) 


가족과 함께 살 때 자신을 억누르는 사람이 가족 중에 누구인가. 


저자는 고독사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재택사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재택사로 변화하는 흐름은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재택'이라고 해도 그곳에는 이미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간병을 기대할 수 없다." 


죽음에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간호사만 있어도, 아니, 요즘은 간병인만 있어도 죽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간병보험과 간병에 민간과 공기관의 실험과 투자가 있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다. 간호 비용 또한 병원> 시설 > 재택이라고 하니 과도기만 지난다면, 재택사가 장려되고 재택사를 자진해서 선택하는 경우가 자연스레 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몇 가지 싱글에 대한 편견을 부셨는데, 그 중 하나가 임종시 참관이다. 


"고령자의 죽음은 서서히 진행된다. 간병인은 평소 노인의 일상을 지켜보기 때문에 그때가 슬슬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떨어져 있는 가족에게 상복을 준비해오라고 말해줄 수도 있다. 그러니 혼자서 죽고 싶지 않고 누군가가 지켜볼 때 죽고 싶다면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처럼 평소에는 혼자 지내던 사람이 임종 때만 친족에게 둘러싸인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자연스럽다. 가능하면 조용히 가게 해주면 좋겠다." (79)


그러네. 고독사건 재택사건 죽으면 끝이지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 통념은 아무도 없이 혼자 외로이 죽는 불쌍한 노인. 이라는 거였는데, 혼자 잘 살다 죽는 사람이 굳이 죽는 순간에 사람들로 둘러 싸이기를 원할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죽을 때는 혼자 조용히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별 인사와 감사는 여력이 될 때 해두기.평소에 하며 살기.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고독사에 대한 유품정리인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묘사가 담긴 책을 읽고 마음 한편으로 안심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독사하는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았고 주로 50대 후반에서 60대였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고령자라고 할 수도 없다. 즉, 중장년 남성의 문제이지 고령자 여성의 문제는 아니다. 


고독사한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고립된 인생을 살았다. 고립된 인생이 고독사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살아 있는 동안 고립되지 않는다면 고독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84) 


고립 말고 자립할 것. 


이 책은 치매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노후와 간병, 죽음에 대한 눈을 넓혀줬다. 나는 치매에 걸리면 죽어야지 생각하고 있었고, 안락사든 존엄사든 열려 있는 입장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생각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치매에 걸려도 혼자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치매 걸리는 상황에 대해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다. 

팔팔하게 살다가 어느 날 덜컥 죽는 것은 바랄 일이 아니다. 사람은 천천히 내리막길을 걸어갈 뿐이다. 주변의 많은 노인들을 보면서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조만간 움직이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호흡이 멈춘다. 이를 임종이라고 부른다. 혼자 사는 내가 이대로 내리막길을 걸어가다가 어느 날 홀로 집에서 죽을 수는 없을까? 그동안 혼자 살아왔는데 임종이라고 해서 거의 만나지 않던 일가친척이 전부 모이는 것도 이상하다. 혼자 조용히 죽고, 어느 날 그 사실을 발견해도 ‘고독사‘라 부르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게 이 책을 쓴 동기다. - P210

고작 10년 만에 노후의 상식이 180도 바뀌었다.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다‘에서 ‘함께 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로 바뀌었다. ‘혼자 사는 것은 불쌍하다‘에서 ‘혼자 사는 것은 편하다‘ 로 바뀌었다. - P211

"우에노 씨, 앞으로 간병 보험은 어떻게 되나요? 간병 업계는 노동 붕괴가 진행되겠죠?"
나는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어떻게 될지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주세요."

간병 보험은 우리 유권자가 만든다. 우리 유권자가 간병 보험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들 수 있다. 늙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사망률은 100%이다. 5명 중 1명이 치매에 걸린다고 한다. 간병 없이 살겠다며 열심히 운동하고, 치매를 예방한다고 두뇌 체조에 매달리기보다는 간병이 필요해져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 안심하고 치매에 걸릴 수 있는 사회, 장애가 있어도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아직 너무나 많다.

당신도 함께 싸워준다면 기쁘겠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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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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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번스라는 장르를 만들어야 한다. 별 다섯개 중 여섯개. 어느 해 1월 첫 날 '밀크맨'을 읽고, 정말 너무 좋아서, 올해의 책이다. 냅다 질렀던 기억이 있다. '밀크맨'이 만들어지기 전 애나 번스의 데뷔작 '노 본스' 를 읽었다. '밀크맨'을 좋아했던 많은 독자들의 평은 엇갈린다. 매 챕터 읽으면서 이게 뭐야? 뭐라고? 맙소사! 정말?! 의 연속이다. 끝도 없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때까지. 구병모 작가는 이 책이 "살과 피와 뼈를 지닌 언어가 멱살을 잡고 흔든다." 고 평했다. 전혀 과장이 아니다.  


60년대에서 90년대까지 벨파스트 협정이 이루어지기까지 아일랜드에서 북아일랜드 지역 분쟁시기를 '트러블 The Troubles' 라고 부른다. 이 시기 그 중심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가족과 마을의 이야기이다.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폭력의 광기에 점령당한 마을에서 여자아이가 시체더미를 넘어 살아남는 이야기이다. 사람의 이성이라는 것, 문화와 민주주의, '국가' 라는 것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지 읽는 내내 섬뜩하다. 짐승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숨죽이고 살아남기에 급급한데, 한편으로는 또 안전감이 무너져서 그런 환경에서도, 아니, 그런 환경이라서일까, 먹고, 마시고, 논다. 살아남는 법, 싸우는 법, 도망가는 법, 무시하는 법들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내일은 없는 것처럼 들이받는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 살든 죽는 사람들이 있다. 


엄청난 텐션을 유지하며 끝까지 읽는데, 마지막이 어이없게 안심된다. 밀크맨도 그랬던듯. 이 이야기가 이렇게 끝난다고? 안심되고, 좀 귀엽기까지 하게. 그게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책 덮자마자 얼른 밀크맨 다시 읽어야지 찾아두었다. 그리고 또 노 본스 다시 읽어야지. 


이 책을 읽는 중에 '감옥으로부터의 소영'을 읽었다. 더 트러블과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 씨받이의 딸로 태어나 노동운동했던 '소영'의 이야기이다.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 당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폭력'과 '무질서'와 '부조리'가 있다. 불평할 수 있는 일상이 언제라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애나 번스는 1962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보고 겪은 것들을 '노 본스'와 '밀크맨'으로 녹여냈다. 주요 배경인 아도인은 저자가 실제 자고 나란 동네이다. 부커상 수상 당시 소감에서 "나는 폭력과 불신, 피해망상이 만연하고 사람들은 가능한 최대로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곳에서 성장했다." 고 말했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책은 어둡고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니, 밝은 부분을 찾기는 힘들고, 블랙 유머라는 평에 어디가 웃긴가 싶긴 하지만, 현실감이 없을 정도의 폭력을 묘사하는 작가의 글이, 작가의 힘이 이 이야기가 밑으로 가라앉지 않게 위로 띄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멀지 않은 과거와, 현실과, 앞으로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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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fu*k Yourself: A Motivational Self-Help Book (Hardcover) - 『시작의 기술』원서
Gary John Bishop / HarperOne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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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칭 책이다. 번역본과 오디오북까지 합하면 서너번 읽은듯. 읽어야할 책들이 천만권인데, 서너번 읽었으면 진짜 좋아하는 책인거지. 이번에 또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좋은 코칭 책, 좋은 자기계발서란 뭘까? 좋은 방향으로 적당한 압력으로 밀어주는 책이 나에게 맞는 좋은 자기계발서인것 같다. 개리 비숍의 오디오도 좋아하는데 (아니, 그런 소리는 집어치우고. 당장 하라고! 기막혀 하는 그 스코틀랜드 억양) 


이 책에 나오는 일곱가지 확언assertion 은 내가 몇 년째 모닝페이지에 적고 있는 확언이다. 오랜만에 책 다시 읽으며, 확언들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생각하는 뜻과 좀 다른 맥락인 것도 있어서 다시 조정. 일곱가지 확언은 다음과 같다. 


I am willing. 나는 할 의지가 있다. 

I am relentless. 나는 부단하다. 

I embrace the uncertainty. 나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인다. 

I am not my thought; I am what I do. 나는 내 생각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하는 행동이다. 

I expect nothing and accept everything.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I am wired to win. 나는 내가 생각한대로 한다. 

I got this. 내가 할거야.  


이번에 조정한 것이 I am wired to win. 이게 '나는 이기게 되어 있어' 라는 뜻이지만, 내용 읽어보면, 내가 생각한대로 되게 되어 있다는 의미. 밤에 야식을 먹지 않는다. 라고 다짐하고, 매일 야식을 먹으면, 야식을 먹고자 하는 니 마음이 이긴다는 뜻. 즉 지금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도 내가 생각한대로, 원하는대로의 나라는 거. 


코로나 터졌을 때, I embrace the uncertainty가 도움이 되었다. 일이 확 줄고, 계속할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아도, 인생에 확실한 건 인생이 불확실하다는 것뿐이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라고 매일 아침 몇 년을 썼더니, 나는 어떤 불확실성에도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확언의 중요성과 그것을 받아들이는건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위의 확언들을 믿었고, 각각 속도와 정도는 달라도,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다.


시작 부분도 좋아한다. 


Have you ever felt like a hamster on a wheel, furiously churning your way through life but somehow going nowhere?

당신이 쳇바퀴 도는 햄스터같다고 느낀 적이 있는지? 평생 분노하며 일 쳐내고 있지만, 어디로도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의 한계를 그어주고, 모든 것은 니가 결정한 니 선택이다. 나쁜 습관을 빨리 버리고, 그래야, 그 자리를 좋은 습관으로 채울 수 있다. 는 이야기. 매일 야식하는 니가 쓰레기같이 느껴진다면, 왜 그걸 계속해? 라고 귀에서 게리 비숍이 기막혀 하는 소리가 자동재생된다. why are you still doing it?? 


중요한건 언제나 지금 바로 하는 것이다. 


책의 제목은 unfu*k yourself 부제는 Get out of your head and into your life 

생각만 하지 말고, 삶으로 뛰어들어. 


나는 제법 생각나는 것 바로 하는 사람이 되었고, 바로 못하는 것이 내 탓이라는 것까지 인지하게 되었다. 

근데, 시작한 것을 이어가는건 ... 그건 좀.. 인 사람이지만, 아직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씩 나아지다보면 꾸준한 것도 조금씩 되겠지. 


*번역본으로는 '시작의 기술' 로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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