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
이윤기 지음 / 동아일보사 / 2000년 7월
구판절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왜 고향부터 묻는지, 왜 출신학교부터 묻는지, 섬기는 종교부터 묻는지, 나이부터 묻는지 나는 그 까닭이 여간 궁금하지 않다. 어째서 상대에게서 자신과의 '동류항'을 찾아내려 하는지, 찾아내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동류 의식을 느낄 수 없으면 견딜 수 없이 쓸쓸해 하닌지, 어째서 동류항을 찾아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동아리가 되면 아늑한 평화를 느끼는지,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이 어째서 우습게 보이는지, 어째서 '불출'로 따돌리고 싶어지는지, 그 까닭이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다.-227쪽

1453년 오스만 터키 군을 이끌고 지금의 이스탄불을 장악한 술탄 마흐메드는 아야 소피아를 파괴하지 않았다. 술탄 마흐메드는 대성당 옆에 회교 사원식 첨탑을 세우게 하고 그 대성당을 회교 사원으로 쓰게 했을 뿐 파괴한 것이 아니었다. 아야 소피아에는 성직자들이 문맹에 가까운 동방 교회의 신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그려 놓은 무수한 모자이크 벽화가 있었다. 그러나 술탄 마흐메드는 그 벽화를 훼손하지 않았다. 그 위에 회를 칠했을 뿐이다. 내가 찾아간 아야 소피아에서는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1964년부터 시작된 회칠을 뜯어내고 고생창연한 기독교의 벽화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그러니까 회교도들은 기독교 교회의 벽화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그 위에 회칠을 한 다음, 500년 동안 자기네 사원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아야 소피아의 , 성모자상이 올려다 보이는 돔을 두고 '장엄한 광경( Awe- Inspiring Generosity) ' 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내눈에 보인 것은 오스만 터키의 회교가 지닌 '장엄한 아량( Awe-Inspiring Generosity)' 이었다. 회칠이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고대의 벽화를 보면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오스만 터키 제국의 저 놀랄 만큼 관대한 문화적 유연성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제국을 경영할 역량을 가진 자들의 도량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종교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비극적 인식에서 나온 것인가?-24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