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안전교육, 주방에도 필요하다!

앞치마에 머릿수건을 두른 채 한 손에는 국자, 다른 한 손에는 뒤집개를 들고는 완벽하게 새댁 코스튬 플레이를 한 태연. 짜잔! 하고 주방에 나타난다.

“엄마 아빠, 나 완전 사랑스러운 새댁 같죠? 이런 현모양처 스타일을 어떤 남자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홍홍홍.”

“태연아, 주방은 위험한 곳이야. 장난치지 말고 숙제나 해.”

“어머, 왜 이러실까. 저 오늘 학교 실과 시간에 달걀말이도 한 아이라고요! 이제 장금이도 울고 갈 요리 퍼레이드를 보여드릴 테니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그래, 대체 무슨 요리를 할 건지 들어나 보자.”

“음…, 일단 오징어 튀김을 하고, 압력솥에 갈비찜을 하겠어요. 인터넷으로 레시피도 다 뽑아놨으니 지도 편달은 정중히 거절할게욧!”

“태연아, 요리에 대한 열정은 좋은데 말이다. 요리는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야. 튀김은 특히나 더 그렇지. 튀김 기름은 물보다 온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같은 화상이라도 정도가 매우 심하고, 산발적으로 여러 군데 화상을 입는 경우도 많아요. 만약 화상을 입었을 경우에는 약을 바르기 전에, 무조건 흐르는 찬물에 15분 이상 대고 화기를 빼줘야 해. 안 그러면 화기가 계속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더 깊은 상처가 되거든.”

“에이, 그건 뭘 모르시는 말씀인데요.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데인 상처에는 된장이 최고래요. 또 벌 쏘인 데도 된장, 긁힌 데도 된장. 암튼 된장만 한 게 없다고요. 그러고 보면 할머니는 역시 원조 된장녀였던 거예요. 그쵸?”

“안 돼!! 그것만은 할머니 말씀을 따르면 절대 안 돼요. 된장, 소주, 감자 같은 걸 화상 부위에 바르면 오히려 세균 감염이 될 수 있단 말이야. 화상을 입었을 때는 일단 화기를 뺀 다음, 젖은 수건으로 환부를 감싼 뒤 병원에 가야 한단다. 만약 옷을 입은 채 화상을 당했다면 절대 옷은 벗으면 안 돼. 피부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거든. 또 화기를 빨리 빼겠다고 얼음을 대는 것도 절대 안 돼요.”

“아, 뭐가 그렇게 절대 다 안 돼요! 알겠어요. 그럼 오징어 튀김은 포기. 압력솥에 갈비찜을 하는 건 괜찮죠? 압력솥에 해야 고기가 폭 익어서 보들보들 맛나다고 인터넷에 나와 있거든요.”

“그것도 안 돼.”

“또 왜요!!”

“압력솥이 왜 위험한지, 우선 압력솥의 원리부터 알아보자. 압력솥의 원조인 ‘압력찜통’은 프랑스의 발명가 드니 파팽(1647~1712)이 발명했단다. 파팽은 물보다 부피가 1300배 이상 팽창하면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수증기에 주목했고, 금속 용기를 밀폐한 압력 찜통을 만들었지. ‘스팀 다이제스터’라고 불린 이 찜통은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익혀주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어. 증기기관도 이 찜통을 응용해 시작된 거란다.”

“증기 기관이 압력 찜통에서 출발한 거라고요? 와, 대단! 압력솥이 새롭게 보여요. 근데 압력솥을 이용하면 왜 요리가 잘 돼요?”

“평상시 대기압(1기압)에서 음식은 섭씨 100도에 익기 시작하지만, 압력을 두 배로 높여주면 섭씨 120도에 익기 때문에 훨씬 빨리 요리가 된단다. 실제로 압력솥을 이용하면 조리시간이 1/3로 줄어들지. 고기도 속까지 푹 익어 부드러워지고. 반대로 산에 가면 기압이 낮아지니까 섭씨 100도 이하에서 물이 끓고 음식도 잘 익지 않아요.”

“그렇게 좋은 압력솥으로 보들보들 갈비찜을 한다는데, 왜 말리시는 거예요?”

“어린이가 다루기에는 압력솥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야. 압력솥 위를 보면 딸랑딸랑 추가 달려있는 게 보이지? 아까 얘기한대로 수증기는 물보다 1300배나 팽창하는 무시무시한 힘을 갖고 있어. 그래서 압력이 지나치다 싶으면 요 추가 살짝살짝 수증기를 빼서 압력을 조절해준단다. 그런데 찹쌀처럼 점성이 강하거나 기름진 음식을 조리할 때는 이 추가 막혀 압력조절이 잘 안 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럼 솥이 뻥 터져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 실제로 2013년 한국소비자원 통계에 따르면 압력솥 안전사고 137건 중 20건이 폭발사고이고, 점성이 강하거나 기름진 음식을 조리할 때 폭발할 위험이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나와 있단다. 심지어 압력솥은 폭탄으로도 쓰여요.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 같은 분쟁 지역은 물론이고, 2013년 미국 보스톤 마라톤 테러 사건에서도 압력솥이 무기로 쓰였단다. 그 만큼 위험하다는 거야.”

“어머, 저 떨고 있어요? 그럼 압력솥을 세상에서 없애야 하는 걸까요?”

“아니 그 좋은 걸 왜 안 써? 압력솥으로 한 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다만 압력솥 추는 항상 깨끗하게 청소를 해야 하고, 밥 이외의 음식을 할 때는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단다. 그런데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기에는 네가 너무 어려서 안 된다는 거야. 이제 알겠니?”

“흠…, 알겠어요. 그럼 전자레인지를 이용할게요.”

“그것도 정~말 조심해야 해. 전자레인지는 마이크로웨이브(극초단파) 즉 아주 짧은 분자들을 일 초에 수백만 번 부딪히게 해서 그 마찰열로 조리를 하는 건데, 이 극초단파는 금속을 통과할 수 없어. 그래서 자칫 금속 용기에 음식을 담아 조리하게 되면 전자기파 간섭이 일어나서 스파크가 일거나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단다.

“음…, 아빠가 저의 안전을 그토록 염려하신다니, 어쩔 수 없군요. 그렇다면 다른 요리! 우유와 시리얼 대령이오!”

“음…, 이게 요리인가….”

“정말 이러실 거예요? 흥!!! 어린이 대장금의 꿈은 접겠어요. 대신, 철저한 안전 의식을 가진 아빠가 싹 다 만들어주세요! 그게 영 어려우시다면 배달의 민족답게, 통 크게! 배달 음식 무한 주문권을 주세요. 그 정도 조건이라면 뭐 위험한 요리에 도전하지 않는 정도의 성의는 보여드립죠. 헤헤.”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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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40 호/2014-06-02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포장마차는 오랜 기간 지친 직장인들을 위로해 주던 서민들의 쉼터였다. 그리고 이 포장마차에는 떡볶이, 어묵, 닭똥집, 오돌뼈, 곰장어와 같은 우리나라 고유의 먹거리가 풍부했는데, 홍합탕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안주다. 우리나라 해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홍합은 술안주뿐 아니라 많은 요리의 재료로 쓰이고 남녀 모두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아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홍합은 저 멀리 지중해에서 온 것이다. 원래 홍합은 토산종(그 지방에서 특유하게 나는 품종) 담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1950년대에 경남 지역에 지중해 담치가 유입된 이후, 고유종 홍합은 동해안 일부에만 서식하고 있다. 지중해 담치라고 불리는 이 외래종 홍합은 지중해가 고향이다.

달팽이보다 느린 홍합이 어떻게 저 멀리 지중해에서 우리나라로 이주할 수 있었을까. 이는 언뜻 생각하면 미스터리처럼 느껴지지만, 놀랍게도 이들은 배를 타고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게다가 지중해 담치는 번식력과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 편이어서 우리나라 토종 홍합의 영역을 대부분 빼앗았고 이제는 국내에 완전히 정착해 양식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지중해 담치는 배를 타고 왔는데, 그렇다고 정식 수입을 위해 배에 태워진 것이 아니다. 지중해나 유럽에서 들어오는 배의 평형수(ballast water)에 섞여서 우리나라 바다로 들어온 것이다.

배에 화물을 실으면 배의 무게가 증가해 가라앉고, 배에서 화물을 빼내면 배의 무게가 가벼워져서 물 위로 뜨게 된다. 따라서 배를 적절한 수심에 떠 있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의 무게를 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배는 일반적으로 ‘평형수 탱크(ballast tank)’를 갖추고 있다. 화물을 내릴 때에는 그만큼의 무게에 해당하는 물을 평형수 탱크에 채워 넣어서 무게와 수심을 유지하고, 거꾸로 화물을 실을 때에는 채워져 있던 평형수를 외부로 버려서 전체 무게와 수심을 유지한다. 일반적으로 평형수는 배 주위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바닷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유해수중생물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해상을 통한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오늘날 이렇게 이동하는 평형수의 양은 연간 100억 톤 이상에 달한다. 또한 이를 통해 연간 7,000종 이상의 생물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때 병원균을 포함한 외래 생물종이 해양 생태계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박 평형수 및 선체 부착에 의한 외래 생물의 침입은 전 세계 해양 환경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토착 생태계 변화, 어장의 고갈, 병원균 전염과 같은 수많은 생태 문제는 물론 인체 독성 유발 등의 건강상 문제까지 유발한다.

우리나라의 주요 항구가 있는 연안 해역을 대상으로 외래 생물종에 대한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지중해 담치, 유령멍게와 같은 외래 생물종이 18종이나 정착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중해 담치는 양식 동물의 부착과 성장을 방해하고 토종 홍합의 서식지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유령멍게는 죽으면 물밑에 가라앉아 바닷물을 오염시킨다. 북태평양산인 아무르불가사리는 조개류를 무차별적으로 포식한다. 인천, 제주, 온산 등에서 발견된 포르세라갈파래는 해양의 녹조 발생률을 높인다. 이것은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요트 경기를 앞두고 칭다오 일대를 덮쳐 중국 정부에 수천 억 원의 재정 손실을 입힌 녹조와 같은 종이다.

전문가들은 해양 외래 생물이 국내로 유입되는 가장 큰 원인이 선박 평형수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2004년 2월 74개국 정부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배의 평형수 관리를 위한 국제 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으로 국제 항행에 종사하는 모든 배는 2017년부터 평형수 처리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평형수 처리 장치는 평형수 및 침전물 내에 유해 수중 생물이 배출되거나 주입되는 것을 예방하고 제거하는 장치를 말한다. 이를 위해 기계적, 물리적 그리고 화학적인 처리 기술을 사용한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되고 있다.

기계적인 처리 기술의 대표적인 방법은 일종의 필터인 여과기를 설치하는 것으로, 평형수만 빠져나가고 유해수중생물은 통과할 수 없도록 거르는 것이다. 50μm(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정도의 아주 미세한 여과기를 사용하는데, 장치가 간단하고 비교적 많은 양의 평형수를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50μm보다 작은 수중생물은 처리하기 어렵고, 여과기가 막히면 이를 교체하거나 막힌 여과기를 뚫기 위한 추가 장비가 필요하다.

물리적인 처리 기술은 자외선의 살균 작용을 이용해 평형수 내의 유해생물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없애는 방법이다. 하지만 유해 생물이 변이를 하거나 다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선박 평형수를 일정 온도 이상으로 가열해도 수중 생물을 살균시킬 수 있으나, 이 경우에는 배출하는 물의 온도가 높기 때문에 배출되는 항구의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화학적인 처리 기술은 오존을 이용해 생물을 살균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오존의 경우 살균 효과는 뛰어나지만 시설비가 고가라는 단점이 있다. 또한 전기 분해를 이용해서 유해 생물을 살균하는 방법은 살균 효과가 뛰어나지만 선체가 부식될 우려가 있고 장치가 고가라는 단점이 있다.

위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다양한 평형수 처리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평형수 처리 장치 개발은 이제 시작되는 단계로 당분간은 여러 가지 기술이 적용되고 검증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기술로 평형수를 처리하거나 여러 가지 기술을 조합해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형수 처리 기술 개발은 해양 생태계의 파괴를 예방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신규 시장이 열리는 기회이기도 하다. 현재 국제해사기구의 승인을 받은 관련 기술 31건 가운데 11건(35.5%)을 국내 기업이 보유하고 있고, 지난해 기준(2013년)으로 평형수 설비 시장의 수주액 7900억 원 가운데 4585억 원(58.0%)을 국내 기업이 달성했다.

우리나라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뿐 아니라 많은 중소기업에서도 자체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기술 개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앞으로 열리는 평형수 처리 장치 시장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

글 : 유병용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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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12: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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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23: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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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35 호/2014-05-26

[Keyword로 읽는 과학] 더 큰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

“드드드득…, 탁! 토독…, 탁! 타닥!”

시간 차를 두고 터져 나오는 톡톡 소리와 함께 향긋한 냄새가 번진다. 왠지 기분이 좋아지며 입안에 군침이 돈다. 팝콘을 튀기는 소리다. 말린 옥수수 알갱이에 열을 가해서 만들기 때문에 탁(pop) 하고 터지는 옥수수(corn)라는 이름이 붙었다.

팝콘은 섭씨 200도가 넘어야 터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탁 하는 소리가 띄엄띄엄 들린다. 아직 열이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냄비가 본격적으로 달궈지면 타다닥 하고 연속적으로 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더 흐르면 소리의 빈도가 잦아들면서 팝콘 한 봉지가 완성된다.

우리의 신경이 평소보다 조금 더 무뎌진다고 생각해보자. 감기약을 먹어서 몽롱할 때는 주변에서 오가는 소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한 가지 일에 너무 깊이 빠져들거나 여러 업무를 동시에 처리할 때도 감각 정보가 상당 부분 차단된다.

이럴 때는 팝콘의 소리가 달라진다. 드드드득 하고 부글거리는 낮고 조용한 소리는 들리지 않고 탁 하고 터질 때만 인식이 된다. 아무 낌새도 없다가 갑자기 큰 소리가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 조용해지는가 싶다가 잠시 후 탁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팝콘이 터지듯 크고 강렬한 자극에만 우리의 뇌가 반응하는 현상을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이라 한다. 데이빗 레비(David Levy) 미국 워싱턴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가 만들어낸 용어다.

2011년 6월 CNN을 통해 처음 소개된 ‘팝콘 브레인’ 증상은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를 지나치게 사용하거나 여러 기기로 멀티태스킹을 반복할 때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뇌에 큰 자극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바람에 결국에는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생활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팝콘 브레인을 가진 사람은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한다. 잔잔하고 미묘한 요소들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새로운 소식이 뜨지 않았나 10분이 멀다 하고 스마트폰 화면을 켜보면서도 방 청소나 설거지 같은 살림살이는 뒤로 미루기 일쑤라면 팝콘 브레인을 의심할 만하다. 급한 업무를 처리할 때도 아닌데 여기저기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인터넷 접속을 반복하는 것도 전형적인 증상이다.

인간의 뇌는 강렬한 자극을 선호한다. 한 가지 자극이 반복되면 지루함을 느껴서 그보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중독’의 시작이다. 중독은 크게 유해 물질에 의한 신체적 중독과 약물에 의한 정신적 중독으로 나뉜다. 신체적 중독은 원하지 않은 독성 물질이 몸 안에 들어간 상태여서 해독제를 통해 신속한 치료를 해야 한다. 반면에 정신적 중독은 자발적으로 특정 성분을 섭취하거나 특정 행동을 반복하다가 발생한다. 당사자가 깨닫기 전까지는 심각성을 알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마약, 알코올, 카페인, 도박 등 아이들에게는 금지된 식품이나 행동을 통해서 정신적 중독이 심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터넷 접속, 컴퓨터 게임, 온라인 쇼핑 등 일상생활의 행동만으로도 깊은 중독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아, 아동, 청소년과 같이 성인 이전의 시기에는 뇌 발달이 완성되지 않았다. 뇌의 특정 부위만 지나치게 사용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일상적인 행동만으로도 중독에 빠진다면 뇌의 구조가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다. 가장 큰 위해 요소로 지적되는 것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견딜 수가 없는 증상을 ‘인터넷 중독 장애(IAD)’라 부른다. 아직 정식 질환으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위험성은 충분하다. 일반적으로는 학업이나 업무와 관련성이 없는데도 인터넷에 하루 6시간 이상 접속하는 행동을 6개월 넘게 지속할 때 인터넷 중독 장애라 판단한다.

2011년 중국 연구진은 하루 10시간 이상 인터넷을 사용하는 14~21세의 학생 17명의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해서 인터넷 중독 장애가 뇌의 구조까지 바꾼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은 하루 2시간 미만 동안 인터넷을 사용하는 16명의 대조군에 비해 뇌 신경 섬유가 모인 백질 부위가 현저히 두꺼웠다. 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면 감정 조절, 의사 결정, 자기 제어 등에 어려움을 겪는다.

2014년 5월 초 미국정신과협회(APA)의 연례 대회에서는 인터넷 중독 장애를 보이는 청소년은 뇌에 비정상적인 특징이 나타났다는 발표가 있었다. 한두 건의 실험이 아닌 최근의 연구 13건을 종합한 결과다. 인터넷 중독 장애는 부정적인 정신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 연구가 지적하는 부작용만 해도 우울증, 자살 충동, 강박 장애, 식이 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알코올 및 약물 중독 장애 등 다양하다.

예전에는 인터넷 중독의 주범으로 컴퓨터가 지목되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사용 인구는 이미 4천만 명을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용 시간도 길어져서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다. ‘2013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을 과도하게 사용해서 금단 현상, 내성, 일상생활 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중독 위험군이 10~19세의 25.5%에 달한다. 2012년에는 중독 위험군이 18.4%였던 것에 비해 1년 만에 7% 이상 높아진 수치다.

팝콘 브레인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은 인터넷에 연결된 전자 기기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CNN은 인터넷 접속 시간 기록하기, 하루 인터넷 사용량 정하기 같은 딱딱한 방법 이외에 2분 동안 창밖 바라보기, 전자 기기 쓰지 않는 시간 가지기, 문자 메시지가 아닌 전화로 연락하기 등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예방법을 제안했다. 3년 전 방법이지만 지금도 그대로 적용돼야 하는 수칙들이다.

팝콘 브레인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스마트폰의 화면을 끄고 바깥 경치를 바라보며 주변 사람들과 못 다 나눈 대화를 이어가자.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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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29 호/2014-05-14 

[만화] 멸종 비상 바나나, 해답은 유전자 다양성!

태연, 식탁 위에 바나나를 산더미만큼 쌓아놓고 콧소리를 내가며 신나게 먹는다. 사람인지 배고픈 고릴라인지 알 수 없는 진풍경이다.

“태연아, 그러다 진짜 원숭이 되겠다. 그만 좀 먹어!”

“아빠는 지금 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세요? 그 유명한 바나나 다이어트를 위해 억지로 먹는 거라고요. 호호호, 지금 저의 웃음은 깊은 고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해탈의 웃음인 것이죠.”

바나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열량이 높은 생과일 중 하나야! 100g당 무려 93kcal, 토마토의 3배가 넘는다고. 또 100g당 탄수화물은 24.1g로 파인애플의 4배가 넘어요. 대신 지방이 적고, 식이섬유가 풍부해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을 쉽게 느낄 수 있어서 다른 음식을 적게 먹으니까 살이 빠진다는 건데…. 그런데 넌, 정말 너무 먹잖아! 고기를 먹어야만 살찌는 게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코끼리도 풀만 먹는다고!!”

“정말요? 저는 바나나를 먹을수록 살이 빠지는 줄 알았잖아요. 좋아하는 바나나도 엄청 먹고 살도 빼고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는데, 힝~ 완전 망했어요. 어쩐지 점점 코끼리 몸매가 된다 했더니.”

“그런데 어찌 생각하면 지금 먹을 수 있을 때 실컷 먹어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구나. 바나나 값이 크게 오르거나, 아니면 바나나가 아예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니 말이야.”

“아빠…, 그… 그런…, 무서운 얘긴 하지 마세요. 이렇게 맛있는 바나나가 사라진다니요. 12년 평생 그렇게 무서운 말은 처음 들어봐요.”

“슬픈 얘기지만 사실이란다. 최근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가 ‘바나나 불치병’, ‘바나나 암’이라고 불리는 ‘변종 파나마병(TR4)’이 중동과 아프리카의 바나나 농장으로 급격히 퍼져가고 있다고 발표했거든. TR4는 바나나 풀(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라 여러해살이 풀이다)의 뿌리가 곰팡이에 감염돼 서서히 말라죽는 병으로, 보통 2~3년이면 거대한 농장 전체를 고사 상태로 만들지.”

“난 또 뭐라고. 사람들이 참 뻥이 심해, 그죠? 아니 전염병 한두 번 겪어봐요? 조류 독감, 구제역 할 것 없이 허구한 날 전염병이 퍼진다고 해도 닭이나 돼지가 멸종된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어요. 과학자들이 다 잘 알아서 할 텐데 뭘 그러세요. 휴~, 진짜 바나나 못 먹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그런데 바나나는 좀 경우가 다르거든.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대부분 ‘캐번디시’ 한 가지 품종뿐이야. 씨를 뿌려서 재배하는 게 아니라 우수한 품질을 가진 바나나 풀의 뿌리나 줄기를 접붙여서 번식시켰기 때문에 유전자가 극도로 단순해졌지. 바나나 풀이 수만 개가 있다 해도 각기 다른 바나나가 아니라 모두 복제품이라는 거야.”

“그게 어때서요? 제일 좋은 품질의 바나나만 먹을 수 있으니까 좋잖아요.”

“잘 생각해봐. 세상에 딱 한 가지 유전자 조성을 가진 바나나만 있는데, 그 유전자 조성에 치명적인 질병이 생겨났어. 그럼 어떻게 될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염이 될 거고 차단도 쉽지 않을 거야. 실제로 캐번디시 이전에는 ‘그로미셜’이라는 한 종류가 바나나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파나마 병이 창궐해 멸종됐단다. 농장들은 다행히 파나마 병에 잘 견디는 캐번디시라는 품종을 개발해 고비를 넘길 수 있었지. 그런데 캐번디시에 치명적인 TR4가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해 제2의 그로미셜 사태, 즉 바나나 멸종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거란다.”

“진짜요? 그럼 빨리 제2의 캐번디시 품종을 개발해야죠!!”

“물론 그래야겠지. TR4는 한 번 발병하면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염병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유전자군을 찾는 것뿐이야. 그러나 그 전에 유전자 다양성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단다. 자연 상태의 생명체는 여러 유전자들이 끊임없이 섞이고 그 안에서 다양한 변이가 일어나면서 풍부한 유전자 다양성을 확보하게 돼있어. 그래서 질병이나 가뭄 같은 급격한 환경 변화가 발생하면, 그 변화에 취약한 유전자군은 죽고 이를 이겨낸 유전자 변이 개체들은 살아남아 종을 보존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뛰어난 품질의 동식물을 대량 생산하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점점 유전자군이 단순화되고 바나나 멸종 같은 극단적인 일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란다.

“그러다 몽땅 멸종돼 버리면 난 뭘 먹고 살아요. 흑흑”

실제로 1847년에 ‘아일랜드 대기근’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어. 아일랜드 전체 인구 800여만 명 가운데 200여만 명이 사망하고 200여만 명은 먹을 것을 찾아 해외로 이주한 일이었는데, 유전자 다양성을 무시한 인재(人災)로 유명한 사건이지. 당시 아일랜드인들은 지속적으로 감자를 품종개량해서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보유한(매우 낮은 수준의 유전자변이) 감자만을 생산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갑자기 감자 잎마름병의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가 출현해 모든 감자가 죽어버린 거야. 그래서 감자가 주식이던 아일랜드인들의 1/4이 굶어 죽는 참변이 발생한 거지. 그런데 그 이후로도 인간의 욕심은 점점 더 유전자 다양성을 축소시켰고, 지금은 감자, 바나나 같은 식물은 물론 가축들의 유전자도 극히 단순해져 버렸단다. 외부의 환경 변화에 저항할 능력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뜻이지.

“아빠, 진심으로 12년 평생 가장 슬픈 이야기에요. 제가 사랑하는 이 세상의 엄청나게 많은 먹을거리들의 유전자가 단순화되고 있다니요. 그러다가 인간 유전자까지 단순해지는 거 아니에요?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아가들만 만들어내면 어떡해요! 인간도 멸종되는 거여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지금부터 유전자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다 같이 진지하게 해야겠지. 그런데 태연아, 너 대화하는 내내 바나나를 무려 17개나 먹어치운 거 알고 있냐!! 멸종에 대한 불안감이 너에게 폭풍 바나나 식탐을 불러온 건 이해하겠지만 이건 아니지, 정말 코끼리가 될 수도 있다고!!”

“코끼리의 특성을 지닌 인간이라…. 유전자 다양성 측면에서 좋은 일 인거 같아요. 그럼 전 딱 17개만 더 먹을 게요~! 그리고 딸기로 다이어트 시작!”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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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5-1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전염성 질환들은 유전자의 다양성이 지켜지지가 않기때문에 발생하는거 같더군요.
오로지 인간의 단기적인 편의만을 위해서 종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있으니 킁...

마노아 2014-05-14 14:01   좋아요 0 | URL
소탐대실이네요. 이런 게 너무 많다는 게 더 한숨이구요. 끙...!
 

제 2124 호/2014-05-07

[이달의 역사]대항해 시대를 연 캡틴 쿡의 일생

 

[이달의 역사] 코너에서는 ‘과학자의 열정과 삶을 돌아보다!’라는 주제로 과학의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불운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과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과학적 열정을 다루고자 합니다.


캡틴 쿡으로 잘 알려진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은 영국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대항해 시대를 연 장본인 중 한 명이다. 1747년 18살이 된 쿡은 석탄 운반선의 견습공으로 들어가 영국 해안을 오가며 항해술을 익힌 후 보다 넓은 바다를 동경하여 1755년 영국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그의 항해 능력은 곧바로 인정을 받아 한 달 만에 하사관이 되었고 바크선(Bark船, 범선)의 선장이 됐다. 이후 약 10여 년 동안 영국 해협과 북아메리카 식민지 등지에서 지도 측량을 하면서 지도 제작법을 배운 것이 그로 하여금 과학사의 중요한 인물로 기록되는 단초가 됐다.

■ 세 차례에 걸친 항해

쿡은 세 번에 걸쳐 중요한 탐험을 수행했다. 1차 항해는 막강한 권위를 갖고 있던 영국왕립학회와 영국해군본부가 공동으로 추진한 타히티로의 금성 관측 탐사대 파견이다. 1769년에 금성이 태양면을 통과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서로 멀리 떨어진 데서 관측하면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를 정확히 잴 수 있다고 생각한 영국 정부가 탐험대를 구성한 것이다.

이 탐험대는 과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되는데 과학을 위한 탐험대 파견으로는 최초이기 때문이다. 해군 본부는 이 일을 맡을 인물로 하사관 쿡을 추천했다. 쿡은 뛰어난 항해술뿐만 아니라 측량과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으므로 쿡을 대위로 승진시킨 후 탐사 대장으로 지명한 것이다.

1768년 8월, 쿡의 제1차 탐험대는 엔데버 호(Endeavor, 368톤)에 94명의 일행을 태우고 플리머스항을 출항했는데 일행 중에는 동·식물학자, 사생화가들도 포함됐다. 1769년 타히티섬에 도착한 탐험대는 관측소를 설치한 후 이어서 비밀리에 내려진 ‘미지의 남방 대륙‘ 존재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항해에 들어갔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지구의 양 극에 두 개의 주요한 대륙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구가 자전할 때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려면 북반구의 유라시아 대륙처럼 거대한 땅덩어리가 남반구에도 있어야만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17세기 들어 네덜란드 탐험가들이 남방 대륙을 탐색했지만 이들이 발견되지 않아 쿡에게 이를 탐사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쿡은 이 항해에서 뉴질랜드가 2개의 섬으로 나뉜 것을 발견했고 오스트레일리아 동해안을 탐사한 후 문명인이 살 수 있는 땅임을 확인했다. 그는 이 대륙의 동쪽 땅을 뉴사우스웨일스라고 명명한 뒤 영국 땅임을 선언했는데 오스트레일리아는 그가 찾던 남방 대륙은 아니었다.

쿡은 1차 탐험에서 30명이나 되는 선원을 잃는 악전고투 끝에 1771년 7월 영국 도버에 귀환했다. 그는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항해 답사기를 제출했는데, 꼼꼼하고도 철저한 항해 보고서는 당대의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노고는 곧바로 인정받아 중령으로 진급했는데 그의 이런 파격적인 승진은 쿡의 정밀한 항해 기록으로 태평양 지역이 세계 지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쿡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채집한 갖가지 동식물 표본은 박물학(생물학)에 크게 이바지했고 그가 데려 온 캥거루는 유럽인들의 미지에 대한 관심을 끌게 했다. 쿡은 단순한 선박의 함장이 아니라 완벽한 과학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1차 항해에서 미지의 남방 대륙을 찾는 데 실패하자 영국 정부는 계속 미지의 남방 대륙을 탐사하도록 2척의 배를 배정했다. 1772년 7월, 1차 탐험 때보다 훨씬 좋은 과학 장비를 싣고 영국을 출발했다. 승선 인원은 총 200여 명으로 선원뿐만 아니라 천문학자 등 과학자들도 포함됐다.

■ 대항해 시대와 괴혈병

2차 항해는 쿡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것은 당대의 항해에서 고질병이었던 괴혈병을 치료하는 선구자가 됐기 때문이다. 15세기 들어 대형 선박으로 원(遠)거리 항해가 가능해지자, 오랜 항해 동안 저장 음식에 의존하자 괴혈병이 생기기 다반사였다. 괴혈병의 증상은 매우 고약스러워서 몸이 피곤해지고 허약해지며 팔다리가 붓고 잇몸에서 피가 난다. 좀 더 진행되면 폐와 신장까지 문제가 생겨 사망에 이른다.

쿡도 처음부터 괴혈병 치료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선원들의 괴혈병을 처음 접한 것은 1758년인데 괴혈병이 가져오는 참상에 놀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기간 항해를 하다 보면 당연하게 괴혈병이 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 역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그런데 제임스 쿡이 부여받은 임무는 항해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선원들의 건강이 담보되지 않으면 자신에게 부여된 중요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쿡은 선원들의 균형 잡힌 식단을 위해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선원들에게 공급했다. 만약 항해 중 신선한 과일과 야채가 떨어지면 절인 양배추를 보급했다. 그리고 쿡은 배가 항구에 정박하면 제일 먼저 신선한 식료품부터 챙겼다. 그의 식단에 결론적으로 비타민C가 공급되어 괴혈병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이른바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셈이다.

처음에는 선원들이 그가 제공하는 식단에 불만을 터트렸으나 그가 지휘하는 함선 내에서는 괴혈병이 발병되지 않자 그의 식단은 주목을 받았다. 그 후 많은 선단들이 그의 식단을 기본으로 채택했다. 놀랍게도 그의 식단은 고질적인 괴혈병을 거짓말같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것이 그를 궁극적으로 대항해 시대를 열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자 과학자로 인식하는 이유다. 쿡의 조치는 결론적으로 비타민C, 즉 아스코르브산을 먹도록 한 것이다.

■ 미지의 남방 대륙을 찾아서

쿡은 2차 탐험에서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지나 남극 대륙의 75마일 지점까지 접근하였는데, 당대로서는 대단한 항해 기록으로 평가된다. 그때까지 남극해는 그 누구도 항해해 본 적이 없는 미지의 바다였다. 쿡은 이곳에서 처음 빙산을 보았고 이어서 남극까지 얼음으로 대륙이 덮혔다는 것을 발견했다. 쿡에 의해 ‘미지의 남방 대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2차 항해에서 쿡은 미스터리로 잘 알려진 남태평양 상의 이스터섬에서 유명한 ‘모아이’를 발견하기도 했다.

2차 항해는 쿡에게 큰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영국왕립학회는 평민인 그를 특별히 회원으로 선출했고, 항해 중 괴혈병 희생자를 내지 않은 공적으로 왕립학회의 최고 영예인 코플리(Copley) 메달을 수여받았다. 쿡이 왕립학회로부터 이와 같이 파격적인 대우를 받은 것은 괴혈병 방지 노력 외에도 항해 역사상 특별한 업적 때문이다. 당시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는데 쿡은 크로노미터(chronometer)를 이용해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해 냈다.

■ 3차 탐사에 나서다

쿡에게 주어진 3차 탐사의 목적은 북서항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당시 유럽 열강은 북극해를 지나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북서항로를 경쟁적으로 찾고 있었는데 영국 정부가 이번에도 경험 많은 쿡을 탐사 대장으로 임명했다. 1776년 7월, 제임스 쿡은 2차 항해에서 사용했던 2대의 함선에 200여 명의 선원과 과학자들을 태우고 출항했다.

1778년 1월, 쿡 일행은 북쪽으로 항해를 시작해 유명한 크리스마스 섬은 물론 유럽인 최초로 샌드위치 제도(지금의 하와이)를 발견했다. 그들 일행이 하와이에 상륙했을 때 예상외로 원주민들은 낯선 방문객들을 호의적으로 맞아주었다. 그들이 하와이 원주민으로부터 환대를 받은 것은 풍요의 신 로노(Lono)가 하얀 돛을 단 카누를 타고 온다는 하와이의 전설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쿡의 선단은 하와이를 출발해 다시 북상하여 북서항로를 발견하려 했지만 태풍 때문에 하와이로 기수를 돌렸다. 이것이 쿡의 마지막이 됐다. 하와이로 항로를 잡은 것은 바로 전 해에 원주민들이 그들을 성대한 의식에 초대하는 등 환대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당시 쿡의 일행, 즉 부하들이 하와이 원주민의 풍습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선원들은 만취하여 서로 싸움을 하고, 잘못된 우월감을 가지거나 원주민 여성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기 일쑤였지만 큰 말썽 없이 하와이를 출발하여 탐험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태풍을 피해 다시 하와이로 들어왔을 땐 과거에 쿡의 부하들이 저지른 행동에 원주민들이 분개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원주민들은 그들 선박에 있는 쇠붙이들을 빼냈다. 어느 날 배에 딸린 소형 보트까지 사라지자 쿡은 대원 10명과 함께 상륙해서 추장을 붙잡아 원주민들이 훔쳐간 배와 물건을 돌려주기 전에는 추장을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그것이 쿡의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실수였다. 성난 원주민 수천 명이 그들을 포위하고 공격을 해오자 쿡 일행은 상륙선 10m 앞까지 달아났지만 쿡은 원주민들에게 결국 살해됐다.

그는 위대한 항해가, 탐험가, 지도 제작자이자 뛰어난 리더십, 불굴의 용기, 탁월한 항해술, 조국에 대한 헌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쿡이 빈농의 아들이라는 낮은 지위였음에도 당대의 유능한 항해가로, 또 과학자로 떠오른 것은 항해에 과학적인 바탕을 세우고 제도법과 항해술에 과감하게 새로운 기준들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하층민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노력과 실력만으로 사회적 높은 지위를 성취한 의지의 사나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는 당대의 다른 탐험가들이 기독교를 모토로 대부분 비인도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인도주의적인 교양을 심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다른 문화의 정복자나 파괴자로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지리 정치학적 과제를 수행했다고 하지만 그 목적은 영국의 해상 패권 장악을 위한 것임은 틀림없다. 그를 보는 시각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선장이었던 제임스 쿡은 과학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과학적 탐구 조사 중 맞은 영웅적 죽음, 즉 ‘과학의 순교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완고한 영국 해군이 비로소 쿡의 희생으로 인해, 그의 행동들은 괴혈병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국 해군은 그를 기리기 위해서라도 그가 주장한 식단을 철저하게 지켰다고 한다. 항해에 과학적인 바탕을 세우고, 괴혈병을 사라지게 만든 원동력이 된 제임스 쿡은 과학적 인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글 :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 참고문헌
『탐험과 발견』, 이병철, 아카데미서적, 1989
『탐험사 100장면』, 이병철, 가람기획, 1997
『이타적 과학자』, 프란츠 M. 부에티츠, 서해문집, 2004
「제임스 쿡」, 표정훈, 네이버캐스트, 2009.04.29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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